[특집/동양 삼국의 사전 편찬에 관한 문제]

국립 국어 연구원에서는 지난 10월 30일(金)과 31일(土) 이틀에 걸쳐 한국, 중국, 일본의 사전 편찬 문제를 주제로 하는 '동양 삼국의 사전 편찬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를 국립 중앙 극장 소극장에서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모아 이번 호의 특집으로 싣기로 한다. 그리고 지난 7월 30일 국립 국어 연구원 회의실에서 발표한 멜추크 교수의 논문 내용 요지도 이 특집으로 싣기로 한다. - 편집자 주 -

國語 辭典의 語源 表示에 대하여

李基文 / 서울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우리나라에는 아직 사전다운 사전이 없다. 진정한 의미의 大辭典은 하나도 없다. 좀 지나친 말로 들릴는지도 모르나, 이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큰 사전'(6권, 1947~1957)은 국어 사전의 역사에서 길이 잊을 수 없는 업적이다. 오늘날의 모든 사전들의 母胎가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光復 전후의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애당초 사전 편찬의 正道를 밟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여섯 권의 어엿한 사전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오직 그 편찬자들의 탁월한 능력과 고귀한 희생 정신에 말미암은 것이다.
    사전 편찬의 正道는, 적어도 大辭典의 경우에는, 그 言語로 쓰인 文獻들을 검토하여 거기에 사용된 단어들을 採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방법으로 편찬된 사전으로는 몇몇 특수 사전을 들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國語學者와 가까운 古語辭典들이 있는데 그 嚆矢는 方鐘鉉의 '古語 材料 辭典'(前集 1946, 後集 1947)이었다. 이것은 광복 전, 특히 그 마지막 몇 해 동안 편자가 직접 正音 문헌들의 책장을 뒤지면서 만든 카드들을 옮겨 놓은 것이었다. 사전의 모양을 갖추지 않은 자료집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영향은 매우 컸다. 그 직접적인 영향은 그 뒤에 간행된 남광우의 '고어 사전'(1960)과 劉昌惇의 '李朝語 辭典'(1964)에 나타났다. 이 책들은 사전의 모양도 조금은 갖추었고 내용도 충실해졌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큰 사전'에 수록된 옛말이다. 일반 사전으로서 古語를 본격적으로 수록한 최초의 試圖란 점에서 特記할 만한 것이다. 이 책 권6의 통계를 따르면 이 책에 수록된 옛말은 3,013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이 옛말 수집 작업은 광복 전의 편찬 과정에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지 않고는 1947년에 간행된 권1의 옛말 표제어들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큰 사전'은 부분적으로나마 옛말에 있어서는 사전 편찬의 正道를 밟으려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실상 이 사전은 옛말 항목에 한하여 出典을 明示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런 방법이 漢字語에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큰 사전'에 실린 옛 漢字語는 制度語에 한정되어 있다(권1 첫머리 '범례' 참고.). 그리고 이 경우에는 出典을 明示하지 않았다. 남광우와 유창돈의 사전에도 한자어는 수록되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이 사전들을 이용하는 사람은 우리 옛 문헌, 특히 正音 문헌에는 漢字語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옛 漢字語의 蒐集은 지난달에 권1이 간행된 檀國 大學校 東洋學 硏究所의 '韓國 漢字語 辭典'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이 사전은 일일이 出典을 밝힌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어 사전이다.
    現代語 語彙의 경우에도 出典을 밝혀 引用한 예가 아주 없지 않음을 지적해 둔다. 이 점에서 금년 초에 간행된 한글 학회의 '우리말 큰 사전'이 크게 돋보인다. '참고 문헌 목록'이 책머리에 실려 있음을 본다. 더구나 이 속에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간행된 사전들 중에서는 '큰 사전'을 토대로 한 '조선말 사전'(6권, 1960~62)에 간혹 문학 작품으로부터 뽑은 引用들이 보인다. 그러나 모처럼 돋은 이 싹이 이 사전으로 그치고 말았음은 애석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의미의 국어 사전은 이제부터 우리들이 힘을 모아 이루어야 할, 어쩌면 우리 世代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크고 무거운 課題가 아닌가 한다. 이 글은 이 사전의 편찬에서 어원 표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를 지금까지의 사전들을 검토하면서 간단히 논해 보고자 한다.

2.
    한마디로 語源 表示라 하지만 그 내용은 한결같지 않다. 우선 語源이란 말을 좁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넓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영국의 New English Dictionary(1884~1928, 通稱 Oxford English Dictionary)는 그 갖춘 이름에 '歷史的 原則으로'(on Historical Principles)란 말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語源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 것이나 매한가지라 할 수 있다. 이 사전은 각 단어의 起源에 遡及하는데 그치지 않고 文獻上 확인되는 그 단어의 최초의 출현 연대를 제시하고 그때의 意味와 그 뒤의 여러 문헌에 사용된 예들이 보여 주는 意味 變化를 추적하여 제시하였다. 이 사전은 현재까지 간행된 사전들 중에서 우리가 위에서 말한 大辭典의 理想에 가장 접근한 것의 하나다.
    語源 표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일반 사전에 있어서의 어원 표시의 방법과 내용에 대해서는 몇몇 학자와 사전 편찬 실무자들이 말한 것이 있지만, 그중에서 Patrick Drysdale('Dictionary Etymologies: What? Why?, and for Whom?', Papers of the Dictionary Society of North America, 1979)이 영어 사전을 염두에 두고 제시한 10項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1) 根源 言語 또는 語族
(2) 최초의 영어 語形과 (또는) 직접적 根源
(3) 영어에 들어온 年代 또는 時代
(4) 영어에서 나타나는 語形들과 意味의 變化
(5) 中間 段階들
(6) 文獻上 확인되는 窮極的 根源
(7) 意味의 發達
(8) 窮極的 基底形 또는 假構形, 가령 印歐語 語根
(9) 親族 諸語에서 발견되는 同源語들
(10) 同一 語基에서 派生된 다른 영어 단어들

우리 국어의 많은 단어들에 대하여 이 10項을 만족시킬 만한 어원 표시를 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는지 모른다. 많은 단어들의 역사가 中世 및 古代의 자료에서 확인되고 다시 게르만 共通語, 印歐 祖語에 소급할 수 있는 영어의 경우가 부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不可能을 可能케 하라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데도 하지 않은 일들을 하자는 것이다.
    國語學에 있어서 어원 연구가 아직도 초기 단계에 있음을 감안할 때, 사전의 어원 표시가 이루어지기 어려움도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각 단어에 대하여 그 역사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출생과 성장 과정을 모르고 인물을 평하려고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원에 대한 고려는 사전 편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補註 1).
    이 글에서는 固有語, 漢字語, 外來語로 구분해서 논하기로 한다. 이 구분이 반드시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누어 논하는 것이 편리할 듯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固有語라고 믿고 있는 것이 옛날에 들어온 外來語임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이런 사실의 지적이야말로 어원 표시의 가치가 현저하게 드러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固有語]
    고유어의 어원 표시에 관심을 나타낸 최초의 사전은 '큰 사전'이었다. 이 사전의 권1 첫머리에 있는 '범례'의 다섯째 項으로 '어원의 표시'를 마련한 데서 편찬자들의 어원에 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어휘 자체로서 이미 어원이 나타난 것은 따로 어원 표시를 하지 아니하고, 그렇지 아니한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해석 가운데 어원 된 말을 써서 설명을 겸하기로 하고, 혹은 주해 끝에 옛말을 소개함으로써 대신하기로 하였음. 이를테면:
        껄끔거리다 ― 껄끄럽고 뜨끔거리다
        멥쌀 ― (옛말 : 뫼)
    따위와 같음.

'껄끔거리다'의 '껄'을 '껄끄럽다'와 관련시킨 것은 그럴듯하지만, '끔'을 '뜨끔거리다'와 관련시킨 것은 인정하기 어렵지 않은가 한다. 이 사전의 공헌은 '멥쌀'에 대하여 '뫼'을 제시한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뫼'와 ''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더라면 錦上添花였을 것이다.
    이 사전을 뒤적여 보면 적지 않은 고유어들에 대하여 中世 및 近代 문헌에 나오는 古形들이 제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 (옛말: , )
(2) 겨울 ― (옛말: 겨, 겨올, 겨을)
(3) 가말다 ― (옛말: 말다, 알다, 말다, 알다)

(1)에서는 近代 語形이 제시되지 않아 中世 語形과 現代 語形의 중간 고리가 없으며 (3)에서는 ''과 '알-'에 대한 설명이 없어 큰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사전의 古形 제시는 매우 불충분한 것이지만, 그런 대로 국어사전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위에 인용한 '범례'의 글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큰 사전'은 문헌의 古形과 아울러 方言形들도 제시하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 (갓)
(2) 가을 ― (가슬, 가실, 가울)
(3) 가말다 ― (가스말다, 가으말다)

이러한 方言形의 제시가 어원 표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큰 사전'의 이러한 개척적 試圖가 그 뒤에 이어지지 않았다. 이 사전을 토대로 편찬된 평양의 '조선말 사전'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간행된 李熙昇의 '國語 大辭典'(1961) 이하 모든 상업적 사전들에서도 이런 試圖는 보이지 않는다.
    이 어원 표시는 '큰 사전'의 개정 증보판이라 할 수 있는 '우리말 큰 사전'에서 겨우 명맥이 유지되었다. 이 사전의 권1 첫머리의 '일러두기' 맨 끝의 '말밑(어원)' 項에 보면 '토박이말의 말밑인 옛말 또는 원말'을 [ ] 속에 보인다고 하고 다음의 두 예를 들었다.

가을 ― [<]
겨우-내 ― [<겨울내]

그런데 이 사전을 뒤적여 보면 그 옛말 표시가 '큰 사전'보다도 크게 줄었음을 볼 수 있다. 어찌하여 이런 결과가 되었는지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큰 사전'의 방언형 제시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이런 뒷걸음질 속에서 한 가지 나아진 점이 있다면 變化의 次序를 보이려 한 것이다.

가말다 ― [<알다 <알다]
겨울 ― [<겨 <겨]

그러나 이 次序 표시는 音韻보다도 文字의 그것으로서, 조사한 문헌의 年代를 따라 기계적으로 늘어놓은 혐의가 짙다. 권4의 예를 든다.

가 ― [=가온/가온대>온/온대>가온듸]
곁 ― [=겯>>>겻>]

그리고 '원말'의 표시는 '큰 사전'을 비롯한 다른 사전들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것으로 새삼 들어 말할 것이 못 된다.
    이 '우리말 큰 사전'에 대해서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옛말과 이두를 제4권에 분리하여 실은 사실이다. 그 결과 제4권은 특수 사전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일반 사전으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연면히 이어진 한 단어가 두 군데 표제어로 나타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여기서 '옛말'이란 固有語만을 가리킨 것인데, 이 경우도 옛말과 현대어의 구별은 때로 미묘한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로 近代語 문헌에 나오는 현대어와 동일한 語形들은 배제된 예가 허다하다(권4 끝에 있는 '옛말과 이두에 대한 일러 두기' 참고.). 그리고 漢字語의 옛말들은 권1~권3에 실려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균형을 깨뜨린 처사인가를 깨닫게 된다(後述 참고.).
    위의 敍述을 통해서 종래의 국어사전들의 어원 표시의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믿는다. 단편적인 古形의 제시가 고작이었고 語源 解釋의 경지에서는 한 걸음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單純語는 부득이하다 치더라도, 派生語와 複合語에 대한 고려조차 없었음을 지적할 필요를 느낀다. 현대 맞춤법에 의한 표기만으로도 自明한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은데 국내에서 편찬된 어느 사전도 이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일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주의를 끄는 것이 S. E. Martin 등이 편찬한 New Korean-English Dictionary(1968)다. 이것은 극히 부분적이요 또 그때까지의 國語史 연구의 성과를 외면하고 있음이 흠이지만, 파생어와 복합어의 어원 표시를 시도한 유일한 사전이 아닌가 한다.

(1) 바가지 ― [박+-아지]
(2) 바깥 ― [?<밖+-앝(?<밭); cf. 풀-앝]
(3) 부삽 ― [n.abbr.<불+n.]
(4) 사람 ― [der.subst.<다]
(5) 시내 ― [〈var.실+내]

이 중 (2)는 ''과 '곁'의 결합인 '밧곁'이 변한 것이요 (4)의 '시내'는 '실' 谷]과 '내'의 결합임을 몰랐던 것이다(補註 2).
    끝으로 固有語를 재료로 써서 만든 新造語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이들만큼 연대의 제시가 절실히 요구되는 경우도 드물다. '씨, 이름씨'와 같은 문법 술어로부터 '가락국수, 초밥' 등에 이르기까지 新造語들이 이제는 버젓이 사전에 올라 있다('큰 사전'에 이 부류의 단어들이 거의 실리지 않았음은 주목할 만하다.). 굳어질 만큼 굳어진 것은 실려도 무방하겠지만, 그것들이 그리 오래지 않은 新造語임을 밝히지 않은 데서 오는 혼란은 매우 큰 것이 있다. '한글'은 지난 10년대 초에, '어린이'는 20년대 초에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을 분명히 하려면 적어도 20세기의 문헌들만이라도 빠짐없이 검토해야 할 것이다.

[漢字語]
    거의 모든 사전에서, 漢字語의 경우에 표제어를 한글로 표기하고 바로 이어 괄호 속에 漢字를 제시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다. 최근의 '우리말 큰 사전'만이 뜻풀이를 하고 나서 그 뒤에 [ ] 속에 漢字를 제시하고 있는데, 어원 표시의 일관성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이렇게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실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漢字 표기는 단순한 어원 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널리 쓰이고 있으므로 漢字 表記는 바로 우리 文字 生活인 現實인 것이다.
    지금까지 漢字語에 대해서는 古語와 現代語의 구별을 분명히 하는 일이 적었다. 한자어는 예외 없이 그 한자의 현대음으로 발음된다는 특수성이 이 구별을 흐리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옛날에 쓰이다가 오늘날은 쓰이지 않게 된 廢語들은 마땅히 古語로 치부되어야 할 것이다.
    漢字語는 漢字라는 문자를 매개로 하는 점에서 일반 外來語와는 크게 다르다. 中國에서 만들어진 들어온 것도 우리나라 漢字音으로 읽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漢字語도 무척 많다. 이 두 부류를 명확히 구별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오래 두고 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어느 부류에 속한 것이거나 그것이 쓰이기 시작한 年代도 밝혀야 할 것이다.
    漢字語에는 또 하나의 根源이 있다. 日本에서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들이다. 19세기 말 이래 대량으로 들어온 이들 한자어에 대해서는 마땅히 그 직접적 根源이 日本임을 표시되어야 할 것이요 그 年代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補註 3).
    우리나라 漢字語의 歷史에 대한 광범하고도 깊이 있는 연구가 절실히 요망된다. 최근의 '韓國 漢字語 辭典'의 간행은 이 연구에 좋은 발판이 될 것으로 믿는다.

[外來語(借用語)]
    現代에 歐美 諸語와 日本語에서 들어온 외래어에 대해서는 그 根源이 된 언어들의 語形을 제시하는 것이 국어사전의 관례가 되어 있다. 이것은 실상 종래의 국어사전들의 어원 표시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그 근원 언어를 정확히 밝히는 데도 어려움이 있지만, 이들 외래어가 직접 들어왔는가, 어떤 언어를 거쳐서 들어왔는가 하는 것이 거의 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日本語를 거쳐서 들어온 것들이 문제로 제기된다. 그 상당수가 광복 후에 다시 근원 언어와의 직접 접촉으로 고쳐진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
    여기서 '큰 사전'이 '범례'의 '어원 표시' 項에서 "만일 발음이 변한 것은 ←표를 앞에 두었음."이라고 한 점이 주목된다.

고무(← 프. Gomme)

이 단어의 직접 근원이 일본어 'gomu'임을 간접으로나마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우리말 큰 사전'은 이런 표시를 없애 버렸다. '큰 사전'이 이 단어의 궁극적 근원으로 불어의 'gomme'를 제시한 뒤에,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모든 국어사전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조선말 사전'만은 영어의 'gum'을 제시하였다.). 일본어 사전들이 'gomu'의 근원으로 네덜란드 어의 'gom'을 제시한 것과 다르다.

(1) 빠꾸 ― [<영. back]
(2) 빽 ― [<영. back]
(3) 배크 ― [<영. back]

여기서 (1)은 영어 'back'으로부터 일본어 'pakku'를 거쳐 들어온 것이요 (2)는 영어로부터 직접 들어온 것으로 그 의미가 다르고 (3)은, 규범화한 것인데 이런 규범화가 과연 유익한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歐美 外來語의 경우에 국어사전이 너무 많이 싣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독일어에서는 우리가 外來語라고 부르는 단어들을 다음과 같이 세 부류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1) Gastwort: 외국어에서 갓 들어와서 아직 동화되지 않은 단어.
(2) Fremdwort: 어느 정도 동화되기는 했으나 아직 외국어 단어라고 인식되는 단어.
(3) Lehnwort: 완전히 동화된 언어.

이 중 (3)으로 판정된 단어들은 사전에 수록되어야 하겠지만, (1)은 마땅히 제외되어야 한다. 그리고 (2)는 분별해서 수록해야 할 것이다. 현행 국어사전에 (1)에 속하는 단어들이 범람하고 있음은 여간 민망스럽지 않다.
    우리 국어는 예로부터 여러 언어들과 접촉하여 왔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외래어가 들어왔다. 아득한 옛날의 것들은 밝히기가 어려우니 제쳐놓더라도 중세 국어의 시기와 그 이후에 몽고어, 여진 어, 만주어 등에서 들어온 단어들이 적지 않다(補註 4). 그리고 中國語에서, 漢字를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 들어온 단어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오래 전부터 이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拙著, 國語 語彙史 硏究, 1991, 참고.) 그 성과가 지금까지 국어사전들에 반영된 일이 있는 것 같지 않다.

3.
    언제나 우리 민족은 歷代의 모든 文獻에 나오는 語彙를 빠짐없이 集大成한 大辭典을 가질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과 '빠짐없이'다. 이것이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大辭典의 理想이다. 이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편집 진용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나 경비의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요긴하다(補註 5).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大辭典이 상업적 출판사에 의해서 이루어질 가망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국어 연구원밖에 없다고 필자는 믿는다. 국어 연구원이 이 일을 하지 못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大辭典을 기대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이런 大辭典의 편찬에서는 어원 표시가 하나의 핵심 작업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國語史 연구의 중요한 성과들이 사전에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전 편찬 진용이 국어사 연구를 先導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수한 편집 진용의 존재가 더욱 큰 중요성을 띠는 所以가 여기에 있다.
    國語 大辭典 편찬이라는 民族的 大業의 성취를 위하여 국어 연구원을 중심으로 우리 學界의 總 力量이 집중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補註>
    1) 어원 표시를 하는 利點으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으나, 그 하나는 標題語의 설정 기준을 제공함을 들 수 있다. '큰 사전'의 '한-숨' 項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잠을 계속하여 자는 한동안.(한 소금) ② 근심이나 설움으로 말미암아 속에 맺힌 기운을 내뿜노라고 길게 쉬는 숨.(② 옛말: 한)

현대어의 '한숨'에 두 뜻을 인정하였는데 이것이 그 뒤의 사전들에 그대로 이어져 '우리말 큰 사전'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세 국어에는 다음과 같은 두 단어가 있었다.

(1) 숨 ― 숨 자고 睡一覺(飜譯朴通事 上 52~53)
(2) 한숨 ― 한숨 디 소리(釋譜詳節 19.14)
한 ― 한 디(月印釋譜 序 23)

여기서 (1)은 數詞 ''(1)과 '숨'의 복합이요 (2)는 형용사 '한'[大]과 '숨'의 복합임을 알 수 있다. '큰 사전'의 '한숨' 항에 보이는 (1)은 '숨'에서 온 것이요 (2)는 '한숨'에서 왔음이 분명하므로 마땅히 別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이렇게 別項으로 되어 있는 사전으로는, 필자가 본 바로는, 이윤재의 '표준 조선말 사전'이 유일하다.).
    또 하나의 利點으로 현행 사전들의 漢字 표기의 잘못을 고칠 수 있음을 들 수 있다. 한 예만 들어 본다.

[삽(鍤)]
    '삽'이란 기구를 가리키는 중세 국어 단어는 '삷'이었다. '訓蒙字會'의 '鍤 삷 삽' 참고. 현대 국어의 '삽'이 '삷'의 변화가 아니라 '鍤'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2) 최근에 간행된 금성 출판사의 '국어 대사전'(1991)이 어원 표시를 시도하고 있으나 國語史 연구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지 않는다. Martin이 사전에서 찾아본 語項들을 이 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바가지 [√박1+-아지]
(2) 바깥 [√밖+-앝]
(3) 부삽(-鍤) [√부(<√불1)+√삽]
(4) 사람 [√살=1+-암]
(5) 시내 [≤√시(<실:골짝)+√내3]

여기서 대체로 Martin 사전과 같음이 눈길을 끈다. (4)에서 Martin 사전은 접미사를 밝히지 않고 다만 派生 名詞(der. subst.)라고 했는데 이 사전은 접미사를 '-암'으로 명시하였다. 이 사전의 편자가 어원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이 (4)가 중세어의 '사'에 소급함을 밝혀 접미사가 '-'이었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5)에서는 그동안의 어원 연구의 성과가 반영된 드문 경우지만, 막상 이 사전에 '골짝'을 의미하는 '실'이 표제어로 나와 있지 않다.

3) 日本語에서 들어온 漢字語라고 표시된 것이 '우리말 큰 사전'에 간혹 나타난다.

≪수속→절차[일. 手續]
≪장소 ①→곳 ②→자리 ③→처소[일. 場所]

이들 표제어에는 예외 없이 손톱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쓰지 말아야 할 말, 잘못 적은 말 앞에" 쓰이는 기호다. 이 손톱표는 다음과 같은 일본어 단어들 앞에도 보인다.

≪스시→초밥 [일. susi]
≪우동→가락국수 [일. udon]
≪가께수리→왜궤 [일. kakesuzuri]

처음 두 언어는 20세기에 들어온 것이지만 나중 단어는 이들과 다르다.
    譯語類解補(1775)에 '각기소리'[千眼廚], 京板本 春香傳에 '각계수리', 韓佛字典(1880)에 '각계수리'(Meuble à tiroirs, Armoire à tiroirs)가 보인다 ('千眼廚'에 대해서는 倭語類解의 '千眼廚 단스' 참고.). 이것은 일찍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단어들 중의 하나다. 이 표제어에 손톱표를 하면서 이런 역사적 사실이 고려되었는지 의문이다. 이 사전(권4)에 위의 예들이 보이지 않는다.

4) '우리말 큰 사전'(권4)에 다음과 같은 어원 표시가 보인다.

가라- [만. kara]
공골- [만. konggoro]
부루- [만. borulu]
졀다- [만. jerde]
악대 [만. akta]

찾아보면 더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 語項들에 '同文類解', '漢淸文鑑' 등의 인용이 있음을 보아, 이들 만주어 단어들의 출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모두 中世 蒙古語에서 중세 국어에 들어온 것임은 필자가 60년대 초부터 밝혀 온 바다(拙著 '國語 語彙史 硏究' 參考.).

5) 여기서 위에 든 영어 사전 NED(通稱 OED)의 경우가 좋은 참고가 된다. 이 사전의 편찬은 1859년에
    첫 편집 책임자인 Herbert Coleridge가 임명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1879년에 James A. H. Murray가 새로 편집의 총 책임을 맡으면서 본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10년 예정으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 실제로는 50년이 걸렸던 것이다. 첫 分冊이 1882년에 간행되고 마지막 分冊이 1928년에 간행됨으로써 총 15,487면에 달하는 이 사전이 完刊을 본 것이다. Murray가 책임을 맡은 뒤 3년 만에 첫 分冊이 나온 사실은 그와 그의 협조자들이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 사전의 편찬에서 特記할 사실은 자원 독자(volunteer readers)들의 공헌이었다. 역대 문헌들을 읽으면서 그 속에 나오는 단어들을 뽑아 준 것은 이 사람들이었다. 500만의 용례가 수집된 중에서 180만을 넘는 용례가 사전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를 생각할 때(우리나라에 이런 자원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중에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자원 독자의 공헌을 기대하기 어려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