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 카피라이터 10년
이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낀 거지만 나는 10년의 세월을 대부분 여자와 싸우는 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분명 싸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부도 하고, 때로는 협박도 하고 심하게는 사기도 쳤다. 두유, 아이스크림, 과자, 빵, 초콜릿, 음료, 커피, 생리대, 피임약, 하이패션, 브래지어, 여성 속옷, 팬티, 조미료, 백화점, 만두 등등은 대부분 여자가 주 소비자인 제품들이다. 이 많은 제품을 광고하면서 나는 시장에서 주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고, 젊은 여자들의 새우 눈짓을 받으며 속옷 매장에서 그들의 은밀한 고민들을 엿들어야 했다. 총각 시절 피임약(좌약) 광고를 할 때는 행위시 여자의 기분을 물을 곳이 없어 쩔쩔맸다. 그런가 하면 생리대 카피를 쓸 때는 더욱 난감했다. 감촉을 느끼기 위해서 얼굴에 비벼 보고, 흡수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물감을 떨어뜨리면서 이것저것을 비교해 보았다. 혹 누구에게 들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브래지어 카피를 쓸 때도 사정은 같았다. 제품 하나를 몰래 집으로 가지고 와 방에서 내 가슴에 차 보고 그 느낌을 느끼려고 아무리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밤새 고민하여 10개 이상을 써서 낯을 붉히며 후배 여자 카피라이터에게 물으니까 한마디로 "아니올시다."였다. 남자로서 여자를 이해하고 그 느낌을 카피로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카피를 쓰면서 남자가 어쩜 그렇게 여자 맘을 속속들이 아느냐고 칭찬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여자를 성의 노예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카피라이터는 여자를 알아야 한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 같은 여자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잡힐 것 같으면서 사라지고, 떠날 것 같은데 바로 코앞에 나타나는 게 여자이다. 그래서 카피라이터는 모름지기 여자 박사여야 한다. 여자를 모르는 카피라이터는 이미 카피라이터가 아니다.
■ 천의 얼굴, 여자는 어떤 존재인가?
"여자의 눈물을 보고 믿지 말라. 왜냐하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우는 것이 여자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나는 엊저녁에 '예스(YES)'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노(NO)'라고 말합니다." -로버트 브라우닝
"계집은 상을 들고 문지방을 넘으며 열두 가지 생각을 한다." -한국 속담
"여자는 사랑하거나 싫어하거나 한다. 제3의 방법은 없다." -시루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셰익스피어
"여자는 정복할 뿐만 아니라 정복당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커리
"여자란 것은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항상 완전히 새로운 존재이다." -톨스토이
"여자는 교회에서는 聖女, 거리에선 天使, 가정에서는 惡魔." -프랑스 속담
■ 소크라테스,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내로라하는 철학자, 문호들이 여자의 본 얼굴을 찾으려 무한히 노력했지만 결론은 역시 '아리송해'다. 정말 도통 알다가도 모를 존재가 여자인 것이다. 남자의 시각에서 단순화되고 속물화되었으며 매우 변덕스럽고 연약한 존재로 묘사되는가 하면 때론 희생적이고 눈꽃처럼 순결한 존재로 추앙받기도 한다. 천의 얼굴, 천의 마음을 갖고 있는 존재가 바로 여자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시장에서 콩나물 값 십 원을 깎기 위해 흥정하던 알뜰 주부가 백화점에 가서 몇 백 만 원의 모피 코트를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구매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오면 여자란 존재는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불가사의한 존재,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막강한 구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당연히 광고도 여자에게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변덕 심한 여자의 마음을 움직일 요소를 찾아 광고 전략화시켜 나가야 하는 게 카피라이터의 임무가 되었다.
■ 여자를 알아야 시장을 잡는다
오늘의 여자는 어제의 여자가 아니다. 더 이상 '인형의 집'의 노라가 아니다. 어려서는 부모의 귀여운 인형으로, 커서는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의 어머니로 세 번 태어난다는 여성관은 설득력이 없다. 여자는 네 번, 다섯 번......, 수없이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복종과 희생을 강요당하던 여자는 이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다. 그런 여자는 아마도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나 찾아봐야 할 것이다. 여성 해방 운동과 선거권의 확보 등을 통해 사회, 정치적으로 남자와 동등한 위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오히려 경제권을 장악, 남자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남자가 벌어들인 돈은 여자가, 여자가 번 돈도 여자가 소비하는 여자 소비 주도의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직장에서 죽어라고 고생한 남편들은 온라인 통장에 모두 강탈(?)당하고 매일 여자한테 손을 벌리는 불쌍한 존재가 된 것이다. 남자가 일하는 시간에 여자는 남자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사우나에서, 백화점에서, 영화관에서, 레스토랑에서, 의상실에서 돈을 팡팡 쓰는 것이다. 여자를 알아야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자를 모르고서야 광고를 한다고, 카피라이터라고 말할 수 없다.
■ 여자는 무엇에 약한가
배울 만큼 배웠다. 재산도 부족함 없이 소유하고 있다. 시간도 있다. 성공한 남편, 속 썩이지 않는 자식도 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어느 날 문득 여자가 품게 되는 자서전적 고백이다. 과연 여자는 무엇에 약하고 흔들릴까? 여자는 무엇에 현혹돼 마음을 열까? 여자는 무엇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열까?
우선, 여자는 자존심에 약하다. 상류 사회에서는 이 물건은 필수적이라고 광고하면 당장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게 여자이다. 뒤떨어지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뚱뚱한 몸매로는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을 뺀다.
둘째, 유행에 사족을 못 쓴다. 멀쩡한 커튼을 수십만 원 주고 바꾸는 것도 그놈의 유행 때문이다. 유행에 낙오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패션은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항상 선도하기를 희망한다. 굽 높은 구두가 유행이면 굽 낮은 구두는 신발장에 2년이고 3년이고 낮잠을 자야 한다.
셋째, 분위기에 약하다. 전열등 밑에서보다 촛불 밑이 사랑을 고백하는 데 좋은 이유는 여자의 무드 속성 때문이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그럴 듯한 레스토랑에서 먹기를 원한다. 무드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남자가 분위기 없게......." 이런 불평을 여자들은 곧잘 한다. 무드 있는 광고가 그렇지 않은 광고보다 여자에게는 효과적이다.
넷째, 비극에 약하다. 여자는 본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백혈병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며 불타는 사랑을 하면서 죽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비극적 요소를 가미하면 정화(카타르시스)가 이루어져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다섯째, 아부에 약하다. 속이 뻔히 보이지만 예쁘다고 하면 금방 입이 짝 벌어진다. 40 먹은 여자에게 "대학생인가 보죠?" 하면 십중팔구 물건을 사게 된다.
여섯째, 여자는 겁에 약하다. 필요하다면 겁을 쥐라. 그러면 홀딱 넘어간다. "당신은 늙어 가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들어 가고 있다."고 겁을 주면 부랴부랴 사게 된다. 이 밖에 여자는 남편, 자녀, 동물, 자연, 성(性) 등에 천성적으로 약하다.
■ 여자를 움직이는 카피
·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라
여자는 나이를 불문하고 백마 타고 오는 기사를 기다린다. 탤런트처럼 살고 싶고, 배우처럼 아름답고, 때로는 백만장자의 아내가 되어 여행을 다니는 꿈을 꾸게 된다. 필자가 진도 모피 광고를 할 때에도 여자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이용해서 크리에이티브를 전개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에 행복을 느낀다," "모피는 그 여자의 오늘을 말해 준다."로 여자들을 자극했다. 돈이 있어서 진도 모피를 입는 게 아니고 진도 모피를 입을 만큼 성공했고, 아름답고, 신분도 상승되어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여기에 장미희라는 대스타가 더욱 여자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을 것이다. 진도 모피를 입으면 저렇게 우아해진다는 생각으로 지갑을 열었을 것이다.
· 여자의 질투심에 불을 붙여라
여자의 질투심은 어찌할 수 없는 속성이다. 여자는 딸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존재이다. 여자만이 느끼는 질투심 내지는 경쟁 심리를 이용하면 쉽게 무너진다. 앞에 있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를 칭찬하면 거의 이성을 잃는다.
· 유행에 앞서 가는 방법을 제시하라
유행에 뒤떨어지면 여자는 불안을 느낀다. 누구보다도 세련되고 현대적이라야 안심한다. 청바지가 유행하면 청바지를 사야만 한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미니를 입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여자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파트의 커튼을 유심히 보라. 한 집에서 커튼 문양을 바꾸면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유행 앞에서는 돈이 문제가 안 된다. 일단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아야 된다.
· 필요하면 성적 매력에 호소하라
본능은 때론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을 입으면 남자의 시선을 받는다고 설명하라. 이 제품을 사면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하라. 성적 매력에 호소하는 광고를 보면 여성을 상품화했다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여자에게 이것만큼 강력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승화된 성적 매력에 호소하는 일을 항상 강력한 힘이 있다.
·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라
김수현의 드라마는 항상 인기가 있다. 비판의 말을 던지면서도 다들 텔레비전 앞에서 울고 불고 야단들이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드라마에 약하다.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극화(劇化, dramatize)한 감성 소구에 먹혀들어 간다. 드라마를 연출해서 들려주면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감동하게 된다. 혼자 떠들지 말고 이야기로 그럴 듯하게 꾸며 속삭이면 백이면 백 다 넘어간다. 명(名)카피라이터가 되려면 드라마 연출 능력이 있어야 한다.
· 쉽고 재미있게 써라
여자는 본시 비논리적이다. 어려우면 곤란하다. 쉽고 재미있어야 설득된다. 여자가 느끼는 재미 요소를 평소에 많이 연구해야 한다. 여자의 생활 양식(life style)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가운데 재미 요소를 발견할 것이다. 여자의 섬세한 감각으로 느끼는 광고의 재미가 의외의 성공을 약속해 준다.
· 화끈하게 아부하라
아부는 누구나 좋아하는 묘약이다. 그러나 그 아부도, 할 때 확실히 해야지 잘못하면 역반응이 난다. 속이 훤히 드러날 아부도 분위기를 보고 잘하면 약이 된다. 여자에게 잘 먹히는 아부는 나이, 아름다움, 신분, 행복, 아이 등이다.
· 바라보면 꽃이 되는 여자라고 말하라
바라보면 꽃이 되는 여자! 여자라면 누구나 거리에서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 남자는 거리에서 봉변을 당하면 지갑을 보고, 여자는 거울을 보는 법이다. 패션 광고에서 특히 이런 전략이 필요하다. 거리에서, 파티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집에서까지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다고 하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 여자의 지성을 믿는다고 칭찬하라
당신이 이 제품과 만나는 순간 현명해진다고 해 보라. 또는 이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신은 매우 현명한 주부라고 칭찬해 보라. 너도 나도 사족 못 쓰고 살 것이다. 여자는 칭찬에 약하다. 특히 당신은 지성과 현명함을 갖춘 여자라고 치켜세우면 만사형통이다.
· 아름다운 희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여자는 자신만을 위해서 선뜻 사지 않는 물건도, 자녀를 위한다거나 남편을 위한 거라면 억만금을 주면서도 구매하게 된다. 인스턴트 제품의 경우는 이 전략이 효과적이다. 인스턴트 제품일 경우 너무 편리함만을 강조하면 사지 않는다. 여자를 게으른 여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을 거르는 남편을 위해, 공부할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설득하면 큰 저항감 없이 구매한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고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 자녀의 학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접근하면 쉽게 사게 된다.
· 협박하고 겁을 줘라
남편을 위해 지금까지 희생한 삶, 자녀를 위해 고생한 세월....... 자, 이제 당신한테 남은 것은 무엇이냐고 겁을 줘라. 약한 존재이기에 겁이 나 협박에 쉽게 넘어간다. 열 번 좋다고 말하는 것보다 때론 한 번 겁 주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 앞에 있는 것처럼 대화체로 써라
마치 애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듯 그렇게 친근감 있게 써라. 대화하듯, 속삭이듯....... 대중에게 말하듯 하면 외면한다. 오직 단 한 사람, 바로 당신을 위해서만 알려 준다고 하라. 그래야 만족한다. 그래야 여자는 흐뭇해한다.
· 이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하라
여자는 소유욕이 강하다. 사랑도, 재산도, 아름다움도 모두 혼자 소유하길 원한다. 이 세상에 이 모든 것이 오직 당신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쓰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다음, 지갑을 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