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의 뜻풀이]
파생 접사의 뜻풀이
1. 머리말
1.1. 필자는 이 글을 준비하면서 국어 국문학을 전공하는 몇 대학생, 대학원생에게 국어사전에서 파생 접사를 찾아본 일이 있는가 물어보았다. 대개의 대답은 예상한 대로 (필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예상한 대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달포'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떠난 지 달포는 되었다."라는 문장을 보면, 자기가 '달포'라는 단어를 만났다는 것, 자기가 그 뜻을 모른다는 것, 그 단어는 거의 틀림없이 사전에 실려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가 또한 '-포'라는 접미사도 만났다는 것은 모른다. 그가 '달포'를 배우기 위해 사전을 찾았을 때, 그것이 '달-포'와 같이 붙임표로 분석되어 실려 있는 것을 보고서 '-포'라는 언어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도, 이번에는, 그것이 '달포'와 별도로 사전에 실려서 풀이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1) 사전을 늘 이용하는 사람일지라도 파생 접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관심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 이와 같은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포'의 존재조차 모르는 것은 그것이 현대 국어에서는 생산력이 없는 파생 접사이기 때문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포'가 생산력이 없다는 것은 대체로 우리가 '달포'와 더불어 '해포, 날포'를 배워도 새로이 '*주(週)포'라는 말을(2)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현대에 생산력이 있는 파생 접사의 예로 '-껏'을 들어 생각해 보자.
이번에도 사람들은 보통 '힘껏, 마음껏, 정성껏, 여태껏'과 같은 부사들의 의미나 용법에 대해 모를 것이 없고, 그래서 그 안의 파생 접사 '-껏'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3) 역시 사람들이 모르거나 아는 것은, 그래서 하나의 어휘적 단위로 인식되는 것은 파생어 전체로서의 '힘껏, 마음껏' 등이지 거기에서 분석해 낸 '-껏'이 아니다. 이렇게 생산적인 접사 '-껏'도 사람들이 사전에서 확인해 볼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임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포'의 경우와는 달리 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소신(所信)껏, &실력껏, & 양심껏, &요령껏, &욕심껏, &적당껏, &정도껏'과 같은 새말을 만들어 쓰고, '?:짐작껏, ?팔자(八字)껏'과 같은 말을 들으면 '이상함'을 느끼고, '*상태(狀態)껏, *자신(自信)껏, ??시력(視力)껏'이란 말을 들으면 그런 말 은 국어 단어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4)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기존어이든 아니면 '&'이나 '?', '*'를 붙인 말이든 이 모든 '-껏' 부사들의 뜻을 별 어려움 없이 알아차릴 수 있다.
1.2. 이렇게 사전에서는 생산성에 관계없이 모든 파생 접사를 사전에 수록하고 있지만, 그러한 접미사를 사전에서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굳이 파생 접사를 사전에서 찾아볼 사람은 문법을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사람, 또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배우는 언어 학습자에 한정될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국어사전들은 파생 접사를 찾는 독자(이들을 적극적인 사전 이용자라고 부르기도 한다.)들에게 그들의 기대와 요구에 맞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가? 또 보통의 사전 이용자가 적극적인 사전 이용자가 되도록 유도하기 위해 파생 접사나 파생어의 사전적 처리에서 개선해야 할 점들은 없는가.
이 글에서 필자는 이러한 물음에 초점을 맞추어, 몇몇 국어사전을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국어사전에서의 파생 접사 항목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최근까지 국어 형태론 분야에서 축적된 연구 성과를 파생 접사의 사전적 처리에 반영하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국어사전의 뜻풀이' 가운데 '파생 접사의 뜻풀이'이다.
사전에서의 뜻풀이는 엄격하게는 정의항 가운데서도 의미에 관한 기술만을 가리킬 것이나 실제로는 정의항 전체가 하는 일을 '뜻풀이'로 보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넓은 의미의 뜻풀이는 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다음에 사전의 한 단락(표제항과 그 표제항에 관련된 모든 기술. 단락이 모여서 사전 본문 전체를 이룸.)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한다. (5)
이 단락은 '말-'이란 표제어와 그에 대한 풀이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전 단락은 하나의 표제항과 몇 개의 풀이항들(문법 범주항, 정의항, 용례항, 관계어항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가운데 문법 범주항과 용례항은 정의항의 뜻풀이를 보충하는 일도 동시에 하고 있다. 위에서는 용례 '말매미, 말벌'로써 이 접두사가 명사 중에서도 최소한 곤충 이름에 붙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이것도 '뜻풀이'의 일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7) 그러므로 국어사전에서의 파생 접사의 뜻풀이를 다룬다면 정의항의 기술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뜻풀이와 관련되는 다른 풀이항들에 대한 검토도 아울러 행하여야 할 것이다.
2. 파생 접사의 문법 범주항과 정의항
2.1. 파생 접사란 어기에(8) 붙어 파생어를 만드는 어휘 단위이다. 그러므로 파생 접사의 정의는 "①어떠 어떠한 어기에 붙어, ②어떠어떠한 의미를 더해, ③어떠어떠한 문법 범주의 파생어를 만드는 말"과 같은 틀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2장에서는 이 정의의 부분을 ③, ①, ②의 순서로 살펴보기로 한다.
2.2. 현행 국어사전에서는 단어의 경우에는 그 품사를(동사의 경우에는 자동사, 타동사라는 하위 범주까지) 다 밝히고 있으나, 파생 접사의 경우에는 그 문법 범주를 간단히 접미사와 접두사로만 밝히고 있다. 접두사라든가 접미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어기의 앞에 붙느냐 뒤에 붙느냐에 따른 구별일 뿐 그것의 문법적인 기능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접미사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만들어 내는 파생어를 특정의 품사가 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단어에 품사를 밝히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접미사의 품사 관련 기능도 밝혀야 할 것이다. (9) 그러나 현행의 국어사전은 이러한 정보를 문법 범주항에서도 정의항에서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2)의 '-포'가 어떤 품사의 단어를 만드는지 정의로는 알 수 없고 다만 용례를 통해서 명사일 가능성이 높고, 부사일 가능성도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1) (3)의 경우에는 정의항의 따옴표 속의 풀이말이 부사형으로 끝난 것으로 해서 '-껏'이 부사를 만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용례를 통해서는 '-껏' 파생어의 품사를 전혀 알 수 없다. 사전의 접미사 항목에서 그 품사 관련 기능을 명시하지 않는 것은 단어 항목에서 품사를 명시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접미사의 경우에는 품사의 범주항의 명세를, 예를 들어 부사화 접미사 같으면 '『미』 『부사화』'와 같이 표시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의 파생 접사 항목들에는 그 접사가 붙어 만들어 내는 파생형의 문법 범주 명시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답-'에는 명사나 어근(단어의 중심부이되 굴절 접사가 붙을 수 없는 형식)에 붙어 형용사를 만드는 것과(예: 아름-답-, 정-답-, 꽃-답-, 참-답-), 명사구에 붙어 형용사구를 만드는 (예:[눈 속에 피는 꽃]-답-, [교양 있는 신사]-답-) 두 종류가 있다. 그런데 위 (4)의 풀이는 그 두 가지의 '-답-'을 혼동하고 있다. 아마도 '-답-'은 형용사구화 접미사와 형용사화 접미사의 두 동음이의어로 나뉘어야 할 것이다.(문법 범주 표시는 각각 『미』 『형용사구화』, 『미』 『형용사화』와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5)에서는 인용된 두 사전 모두 '-끼리'가 파생 접사라는 것을 말해 줄 뿐, 정의에서도 용례에서도 그 품사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을 말하자면, '-끼리'가 접미사라면(12) 그것은 단어를 형성하는 접미사가 아니라 구(부사구)를 형성하는 접미사이다. '책은 책끼리 묶었다'라는 예문에서 '책끼리'는 부사어이고, '늦게 온 사람은 [늦게 온 사람]-끼리 모였다'에서 '늦게 온 사람끼리'는 부사구라는 것은 설명의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끼리'의 문법 범주 표시는 예를 들어 '『미』 『부사구화』'와 같이 되어야 할 것이다. (6)의 '-스름-하다'에서 실질적으로 정의항의 풀이 대상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접미사 '-스름-'이다. 그리고 이 '-스름-'이 붙어 이루어진 파생형(예를 들어 '푸르스름-, 둥그스름-')은 단어가 아니고 어근이다. 어근도 품사 관련 기능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나(예를 들어 '흐느적-거리-'의 어근 '흐느적-'은 동사 어근, '푸르스름-하-',의 어근 '푸르스름-'은 형용사 어근), 필자는 아직 이에 대해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쨌든 (6)의 경우는 표제형도 '-스름-하다'보다는 '-스름-' 또는 '-으스름-'이 합리적일 것이고, 그 문법 범주 표시도 『미』 『형용사 어근화』와 같이 표시되어야 할 것이다.
2.3. 새로 나오는 사전은 당연히 국어에 일어난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새로 나오는 사전은 국어학의 새로운 성과들을 반영하여야 한다. 파생 접사 항목에 국한하여 말하자면, 새로 나오는 사전은 지금까지의 국어 형태론, 특히 단어 형성론의 성과를 반영하여야 한다. 국어의 단어 형성론 분야에서는 이전의 전통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1970년대 전반까지는 주로 구조주의적 방법에 의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1970년대 후반 이후에는 생성 문법의 영향으로 단어 형성 규칙의 정밀화가 이루어졌다. 구조적 연구 방법과 생성적 연구 방법의 중요한 차이는, 전자가 주로 기존 파생어들을 형태소로 분석해 나가는 관점에서의 것이라면, 후자의 형태소들을 결합하여 단어를 만들어 내는 관점에서의 것이라는 데 있다. 그리하여, 사전에서의 파생 접사 기술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전자의 단어 형성론에서는 파생 접사의 설정 기준 확립과 그에 따른 파생 접사의 목록 작성이 이루어졌고(고영근 1972a, b, 1973a, b, 1989참고), 1970년대 후반 이후에는 파생 접사들이 파생어를 만들어 내는데 가해지는 여러 가지 제약들과 파생 접사의 의미론이 연구되었다(송철의 1990:1~2 참고).
파생 접사의 정의항에서는 파생 접사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는가? 그것은 당연히 파생 접사의 의미가 되겠으나, 그 외에도 파생 접사가 붙는 어기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전의 정의항에서는 대개 '어떠어떠한 어기에 붙어 어떠어떠한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파생 접사를 정의하는데, 여기에서 어기의 범위를 제한하는 부분, 즉 어기 선택에 걸리는 제약을 기술하는 부분은 생성 형태론의 단어 형성 규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이 제약은 기존의 파생어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는 특별한 관심 사항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어기 선택 제약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 위 (3)의 '-껏-'의 정의항이나, (5)의 '-끼리'의 정의항은 상당히 미흡한 것이다.
어기의 선택 제약에는 음운론적인 것, 형태론적인 것, 통사론적인 것, 의미론적인 것이 있다. 반복 동작을 뜻하는 동사 파생의 접미사 '-이-'를 가지고 이 문제를 생각해 보자. 사전에서는 이 접미사에 대해 (7)과 같이 간단히 풀이하고 있는데 (<새 글 한글 사전>과 <새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이 접미사를 싣지도 않고 있다), 여기에 표현된 어기 선택 제약 '부사에 붙어'를 실상을 보여 주기에는 너무나 간단할뿐더러 정확하지 못하기도 하다.
(8)과 (9)에서 보듯이 이 접미사는 ㄱ이나 ㅇ으로 끝난 어기에 붙는다는 음운론적 제약을 가진다.(13) 또 (10)에서 보듯이 이 접미사는 정작
부사보다는 어근에 붙으며, (14) 단 반복형 어근은 아니어야 한다는 형태론적 제약을 가진다. 또한 의미론적으로는 (11ㄱ)과 같은 의성어 어근이나, (11ㄴ)과 같은 상태성 어근이 아닌 동작성 어근만을 어기로 한다는 의미론적 제약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이-'의 정의항은 'ㄱ이나 ㅇ으로 끝난 동작성 어근에 붙어'라는 어기 선택 제약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15)
2.4.파생어는 어기에 파생 접사가 더하여져 만들어진 단어이다. 어기, 파생 접사, 파생어는 모두 언어 형식으로서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기의 의미에 파생 접사의 의미가 작용하여 파생어의 의미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기와 파생어의 의미는 직접적으로 파악될 수 있으나, 파생 접사의 의미는 파생어의 의미와 어기의 의미를 비교함으로써 간접적으로만 파악될 수 있다는 것과, 파생어의 의미에는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쓰이면서 새로이 얻거나 잃은 부분이 생긴다는 사실(즉 의미론적 어휘화)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접미사 '-꾼'의 파생어들의 정의에는 어기와 관련된 어떤 일을 '밤낮' 혹은 '걸핏하면' 한다든가 , '잘'한다든가 '업(業)으로' 한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의미들이 파생어 차원에서 새로이 얻은 의미인가 아니면 파생 접사의 원래 의미인가 하는 것은 쉽게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어 대사전'에서 ' -꾼'파생어의 정의를 보기로 하자. (아래에서 밑줄은 필자의 것임.)
이러한 의미들은 '-꾼'의 정의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위 (12~14)의 예들에서 '늘, 잘, 직업적으로'의 의미를 다 가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고, 그 세 가지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 '-꾼' 파생어도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칭의 시점에서 단 한 번, 서투르게, 소일 삼아 낚시를 하는 사람도 '낚시꾼'이며, 어쩌다 한 번 잠깐 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엇인가를 구경하는 사람도 '구경꾼'인 것이다. 그렇다면 '-꾼'의 의미는 단순히 '어기와 관련된 일을, 또는 어기와 관련된 방법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며,(17) '늘, 잘, 직업적으로'와 같은 의미는 파생어 차원의 어휘화 과정에서 얻은, '-꾼'과는 무관한 의미인 것인가? 그렇다면 (15)의 정의에서 '전문적·습관적으로'는 일부의 '-꾼'파생어들이 어휘화 과정에서 얻은 의미이지 접미사 '-꾼'에 원래 있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아니면, '늘, 잘, 직업적으로'는 자유로이 선택될 수 있는 의미로 보아 '-꾼'의 의미를 '어기와 관련된 일을, 또는 어기와 관련된 방법으로 어떤 일을 (늘) (잘)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과 같이 하여야 하는가?(18) 필자는 아직 이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요즈음 새로 생겨난 '통일-꾼'이란 파생어와, 접미사로부터 단어화한 '꾼'("그 사람 아주 꾼이야.")에 부여된 의미를 고려한다면, 두 번째 견해가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요즈음의 '통일꾼'이나 '꾼'과 같은 명사는 의도적 혹은 창조적으로 의미 부여하여 쓰는 말이기 때문에 특별히 중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꾼'의 의미에 대해 한 가지 더 언급될 것이 있다. 그것은 많은 '-꾼' 파생어가 부정적인 가치 평가를 받을 인물을 지칭한다는 것과 관련하여, 그러한 평가와 관련된 내포적 의미도 '-꾼'의 의미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그런 의미야말로 파생어 차원에서의 어휘화로 획득한, '-꾼'과는 무관한 의미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16)에서의 '강경생'에 대한 '강경꾼'의 대립, 그 외에 '정치인'에 대한 '정치꾼'의 대립의 내용은 뒤의 것들이 '낮춤'이란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낮춤'이란 의미의 발생은 '-꾼'에 책임이 돌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긍정적 가치 평가의 '살림꾼', '통일꾼'도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평가적 의미는 많은 파생 접사의 의미 기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된다.
2.5.사전에서 다의어와 동음이의어가 잘 구별되어야 한다는 일반론은 파생 접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접미사 '-이'의 경우를 '국어 대사전'에서 보기로 한다. (19)
'국어 대사전'에서 형식이 똑같은 접사 '이'들을 다룬 방식은 우선 그것이 문법적으로 보조 어간(선어말 어미)인가 파생 접미사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는 (17)의 접미사를 일반적으로 파생 접미사로 보지만, 이 사전이 바탕한 문법 이론에서는 그것을 보조 어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17)을 따로 항목화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한편 (18)과 (19)를 따로 세운 것은 (19)의 접미사가 동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국어 대사전', '새 한글 사전', '새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모두 명사나 어근으로부터 동사나 형용사를 만드는 '-거리-, -대-, -스럽-, -답-, -롭-'과 같은 접미사를 '-다'를 붙여서 표제형으로 삼는데, (19)의 '-이-'도 바로 이런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관례가 없었다면, (19)의 '-이-'도 (18)의 다의 중의 하나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18)의 기술은 형용사·동사로부터의 명사화 접미사, 형용사로부터의 부사화 접미사, 명사로부터의 부사화 접미사, 그리고 사람 이름의 일종의 축소 명사화라는 여러 기능의 접미사들을 모두 한 접미사로 보는 불합리한 것이다. 단어의 경우라면, 품사가 다른 단어는 어원이 같거나 영파생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되지 않는 한 다의어로 처리하지 않는다. 따라서 (18)의 다의어는 모두 별개의 표제어로 독립시켜야 할 것이다.
3. 파생 접사의 용례항과 파생어의 표제항
3.1.단어나 굴절 접사 항목에서의 용례는 표제어의 전형적 용법을 보여 줌으로써 정의항의 풀이를 효율적으로 보충해 주는 기능을 한다. 전형적 용법이란 하나의 예로써 같은 성격의 수많은 예의 존재를 유추적으로 대표한다는 뜻이다. 파생 접사 항목에서의 용례는 파생어(또는 파생어를 포함하는 구나 문장)인데, 역시 가능한 한 표제어(파생 접사)의 전형적인 용법을 보여 주도록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파생 접사만이 가지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생산성이 특별히 크지 않은 대부분의 파생 접사의 경우에는 몇 개의 전형적 파생어로 나머지 대부분의 파생어들의 존재를 유추적으로 암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20) 그러므로 단어나 굴절 접사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몇 개의 용례가 오히려 사전 이용자들의 경제적인 학습을 도와주겠지만, 파생 접사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예를 포함하여 될수록 많은 예를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파생 접사 항목의 용례는 단어나 굴절 접사 항목의 용례와 다른 또 하나의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파생 접사 용례항의 용례 하나하나는 독립한 표제어(파생어임) 하나하나와 일 대 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동일 접사에 의한 파생어들이 하나의 파생 가족을(21) 이룬다고 할 때, 한 파생 가족의 성원들은 우리 머릿속의 추상적인 사전에서는 서로 긴밀한 연락이 가능하도록 배열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책이라는 구체적인 사전에서도 그러한 긴밀한 연락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의 연락은 참고어 항을 통하여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나,(22) 우리 머릿속의 추상적인 사전에서처럼 긴밀하게 연락지어 주는 방법은 그들을 파생 접사 항목의 용례 항에 모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용례 항을 통해서 서로 연락 없이 흩어져 있는 파생 가족들이 우회적으로나마 비로소 연락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2. 이런 면에서 현재의 국어사전들에서 파생 접사 항목의 용례 항은 너무나 소홀히 처리되고 있다. 반대로, 국어사전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한자 자전이 택하는 다음과 같은 용례 처리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된다.
'가(家)'는 단어의 선행 성분이 되기도 하고 후행 성분이 되기도 한다. 이 자전에서는 '家'가 선행 성분이 된 154개 예어(例語)들에는 뜻풀이를 하였고, '家'가 후행 성분이 된 예어들 (부호'◉' 뒤의 예어들)에는 뜻풀이를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家'가 후행 성분이 된 예어들의 부분이 일종의 역순 사전과 같은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자전 이용자는 '家'자로 끝난 단어들을 한자리에서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家'로 끝난 예어는 모두 97개가 열거되었는데, 그것이 차지하는 지면은 이 자전에서 충분히 수용할 만한 크기라고 생각된다.
참고로 국어에서 몇 개 대표적인 생산적 접미사가 만들어 내는 파생어의 대체적인 수효와, 생산성의 면에서 보통인 접미사들이 만들어 내는 파생어의 대체적인 수효를 각각 (21)과 (22)에 제시해 본다.
형용사화의 '하(다)'는 접사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한국어 형용사 사전'에 수록된 총 형용사 수는 11,124개이므로 '하다' 형용사는 전체 형용사의 8할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다. 접사의 용례로서 8,795개 혹은 1,494개의 파생어(혹은 어기)를 나열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500개 정도는 사전의 편집 방식에 따라 수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국어의 대부분의 접미사들은 50개가 채 되지 않는 파생어들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위 (20)에서 '家家'로부터 '家諱'에 이르는 부분은 사전 항목의 성격과 '家'의 용례항의 성격을 아울러 가진다. '새 우리말 큰사전'에서도 다음의 (23)과 같이 합성어 'A+B'에서 선행 성분 A에 먼저 가나다순을 적용하여 배열함으로써 합성어들이 A의 하위 항목이 되게 하는 배열법을 쓰고 있다.
이런 방법을 접두사를 가진 파생어들에도 적용한다면 접두사 항목이 본 항목이 되고, 파생어 항목들은 접두사 항목의 하위 항목이 되며 동시에 접두사의 용례로서의 성격도 가지게 될 것이다.(23) (24)는 '새 우리말 큰사전'에서 접두사 '맨-'과, 거리를 두고 흩어져 있는 그 파생어들을 필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재배열해 본 것이다.
이렇게 접미사 항목의 용례항에는 가능한 한 그 접미사에 의한 파생어를 망라하여 실어 주고, 접두사 항목에서는 그 파생어들을 하위 항목으로 모아 줌으로써, 하나의 단어 형성 규칙에 의해 형성된 파생어들이 한꺼번에 그 규칙과 함께 조감된다. 또 사전의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접미사 파생 가족의 성원들은 파생 접사 항목의 용례항을 통하여 서로 연락된다. 이러한 체재는, 사전에서 파생 접사를 찾는 사전 이용자 즉 언어 전문가에게는 한자리에 망라되고 정리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언어 학습자에게는 파생어가 생성될 때의 유연성(접사의 존재)을 인식하면서 그에 바탕하여 일련의 파생어들을 한꺼번에 학습할 수 있게 해 준다.
3.3. 사전에서 파생어를 찾을 때, 표제어를 형태소 분석이 된 모습으로 제시한다든가 또는 형태소 분석을 따로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그 파생어에 대한 풀이의 일부가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전 이용자로 하여금 적극적인 언어 학습자가 되어 파생 접사를 따로 찾아보도록 유도하는 기능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예는 '국어 대사전'에서 파생어인 표제어를 제시한 방식이다.
(ㄱ,ㄴ)의 '-(으)스름-', '-이'는 현대 국어에서 생산적인 파생 접미사인데 분석되지 않은 채 제시되었고, (ㄷ,ㄹ)의 '-우', '-포'는 현대 국어에서 똑같이 비생산적인 접미사인데 (ㄷ)에서는 분석을 보이지 않고 (ㄹ)에서는 붙임표로써 분석하여 보여 주고 있다. (ㄱ)의 '-(으)스름-'이 분석되지 않은 것은 이 사전이 복합어를 단 한 번 분석하여 올린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고(그래서 '-하(다)'만이 분석되었음), (ㄴ, ㄷ)이 접미사 분석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이들이 한글 맞춤법에 따라 어원을 밝혀 적지 않는 경우에 속하므로 표기에서 형태소 경계와 글자의 경계가 일치하지 않아 붙임표를 넣을 자리가 없기 때문인 듯하다. (ㄴ)의 '부엉-이, 맹꽁이'에서는 'ㅇ[ŋ]'을 초성 글자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우연히 '어원적 표기'를 하게 된 것인데, '부엉-이'에서는 분석하고 '맹꽁이'에서는 분석하지 않은 것은 일관성을 잃은 것이다.
붙임표로 보여지는 이러한 단어 형성에 관한 정보가 그 단어(파생어)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사전의 모든 파생어 항목은 (ㄹ)과 같이 표제어 제시와 함께, 또는 맞춤법 등의 이유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형태소 분석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24) 그럼으로써 파생어 항목과 그의 접사 항목 사이의 연락도 가능해질 것인데, 이것 또한 사전 이용자로 하여금 적극적인 사전 이용자가 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4. 마무리
지금까지, 새로 나오는 사전은 그때까지의 그 분야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가능한 한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 아래 기왕의 몇 국어사전들에서의 파생 접사 항목의 풀이를 살펴보았다. 파생 형태론의 최근의 연구는 단어 형성 규칙을 정밀하게 기술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즉 어떤 접사가 어기를 선택하는 데 가해지는 여러 가지 제약과 파생 접사의 의미(어기의 의미와 파생어의 의미 관계)를 정밀하게 드러내는 데 관심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기왕의 사전들에서도 파생 접사의 정의는 이러한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는 못하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런 면에서의 기존 사전의 미흡한 점들을 드러내 보이고, 그 개선 방안을 제시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파생 접사는 일반적으로 제한된 생산성을 가진다. 따라서 파생 접사의 용례는 그것이 전형적인 예어(例語)라 할지라도 유추적 예측성이 제한되므로, 모든 예어를 열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지면의 제한 때문에 용례의 열거도 제한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가장 경제적인 용례 제시 방법이 찾아져야 할 것이다.) 파생 접사의 용례항은 또한 사전의 거시 구조에서 연락 없이 흩어져 있을, 동일 접사에 의해 파생된 파생어 무리(본고에서는 이것을 파생 가족이라고 불렀다.)를 서로 연락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 파생어 항목 쪽에서도 파생 접사의 분석 모습을 제시하여 파생 접사를 찾도록 유도함으로써 이 연락은 두 방향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파생 접미사 항목에서는 정밀하고 정확한 정의와 함께 망라적인 예어를 제시하고, 파생어 항목에서는 파생 접사의 분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인 사전 이용자에게는 체계적이며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일반적인 사전 이용자는 적극적인 이용자가 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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