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 민족 학교에서의 한어 한자 교육에 대하여
중화 인민 공화국은 한족을 주체로 하고 한어를 통용어로 하는 다민족, 다어종의 통일된 나라이다. 1990년 제 4차 인구 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인구가 11억 3천 3백여 만 명이다. 그 중 한족 인구가 10억 4천2백여 만 명으로서 전국 총 인구의 91.96%를 차지하고 55개의 소수 민족 인구가 도합 9천 1백만 명으로서 전국 인구의 약 8%를 차지한다. 회족과 만족이 한어, 한자를 통용하는 외에, 53개 소수 민족이 자민족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 중 22개 민족이 자기 민족의 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20여 개 민족이 국외의 같은 민족과 동일한 언어 또는 문자를 쓰고 있다. 중국의 조선 민족 인구는 1백92만여 명으로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 8개 현, 시에 82만 1천여 명이 상대적으로 집거해 있고 그 외 1백11만 명(조선민족 총인구의 58%)이 주로 연변을 제외한 길림성과 흑룡강성, 요령성 등 동북 3개 성에 분산 거주하고 있다. 내몽골, 하북, 북경 등 관내 외 성, 시와 자치구에도 몇 만 명의 조선 민족이 살고 있다.
현대 한어, 한자는 한족들의 공통어이고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화 민족의 통용어일 뿐만 아니라 1973년 12월 18일, 제28차 유엔 총회의 결의에 의해 영어, 불어, 노어, 포르투갈 어와 함께 5종 사업 용어의 한 언어가 되어 국제 생활에서 날마다 그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중국의 조선 민족은 국내 다른 소수 민족과 마찬가지로 생활과 사업의 절박한 수요로부터 자원적이며 자각적으로 한어 한자 학습 교육을 바싹 틀어쥐고 있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 한어 한자 교육은 날마다 중시받고 부단히 강화되고 있다.
◆ 한어 한자 교육에 대한 역사적 고찰
중국 조선 민족 학교에서의 한어 한자 교육은 조선 민족 반일 지사와 민중 및 종교계 인사들에 의해 조선 민족 근대 학교 교육과 더불어 19세기 초엽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해방 전까지는 일본 제국주의의 언어 동화 정책과 여러 가지 조건의 제한으로 부동한 유형의 적지 않은 학교들에서는 한어 한자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1908년에 성립된 화룡 현대 라자 명동 학교 등 학교들에서는 중어(中國語)과를 설치하고 한어 한자 교육을 실시하였지만 응당 받을 중시를 받지 못하였고 그 효과도 이상적이 못 되었다.
1945년 8월, 일본 제국주의가 투항하게 되자 해방이 된 연변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조선 민족 학교가 이후죽순처럼 곳곳에서 일어섰다. 이런 학교들에서는 우선 "소수 민족의 언어, 문화, 종교 신앙과 풍속을 존중한다."는 '동북 각 도시 민주 정부 공동 시정 강령'(1946년, 동북 각성 대표 연합 회의에서 채택)의 제 18항 규정에 따라 우선 일본 제국주의의 유린을 받던 조선 어문 교육을 회복 발전시켰고 조건이 구비되는 중·소학교마다 자발적으로 중어(中國語)과를 설치하고 절로 교과서를 만들어 한어 한자 교육을 실시했다. 1948년, 전 동북이 다 해방되자 학교 교육은 문화과 교학을 위주로 하는 신형의 정규화 교육 단계로 들어가고 학과목들도 기본상 통일되었다. 동북 각 성의 조선 민족 학교들에서는 거의 다 한어과를 설치하고 1주일에 3시간씩 수업하게 하였다. 그 당시의 교학 계획에 의하면 전반 교학 시수 가운데서 한어과 수업 시간이 초급 중학에서는 9.7%, 고급 중학에서는 12.5%를 차지했다.
1947년 3월에 창립된 연변 교육 출판사는 그해 가을에 조선문과 한자를 섞어서 내리 쓴 글씨로 중소 학교 '한글(그 후 중학교의 '한글'은→'조선어'→'문학'→'문학 독본, 조선족 어문'→'조선 어문'의 순서로 개칭되었다.)을 편집 출판하였고 1949년에 초급 중학교 통용 '중국어'를 출판하였다. 1951년 12월 길림성 교육청에서는 문건을 발부하여 '중국어'를 정식으로 '한어'로 개칭하고 그해 연변 전원 공사 교육과에서는 초급 중학 1학년부터 한어과를 설치한 것을 소학교 5학년부터 설치하게 하고 1주일에 4시간씩 보게 하였다.
이 시기 한어 한자의 교육은 경험이 없는 어려운 형편에서 발걸음을 내디딘 관계로 낡은 서당의 한자 교학 방법의 영향을 받아 한자의 이해와 읽기 능력 양성에 중점을 두고 글자의 뜻풀이 및 어휘와 문장의 해석에 치중하였다. 이 교학 방법이 그 후 교학 실천 가운데서 점차 발전하여 한자와 어휘를 해석하고 어려운 문장을 번역하고 과문을 따라 읽고 단문 짓기 연습을 하는 교학 순서로 고정되었으며 오랫동안 많은 교원들이 이 방법을 써 왔기 때문에 이것이 전통적 교육 방법으로 되었다.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교원들이 이 방법으로 수업하고 있다.
1952년,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성립되면서부터 중국 조선 민족 학교에서의 한어 한자 교육은 새로운 진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연변 교육 출판사에서는 중·소학교의 한어과 교과서를 전부 새롭게 편찬 출판하였는데 새롭게 변화된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과문에 새로 나온 글자를 따로 내와서 주음 자모를 달아 주었고 (2) 초급 중학 교과서에서는 품사와 문장성분 등 문법 지식과 응용문 지식을 첨가하였고 (3) 고급 중학 교과서에서는 허사 용법 참고 지식을 증대시켰고 (4) 과문 뒤에 연습 문제를 두었고 (5) 고급 중학 교과서 뒤에 화학 원소, 나라 이름 등 지식을 한조 대역하여 부록으로 두었다.
1954년 2월, 길림성 교육청에서는 한어 교학 좌담회를 열고 "민족 학교의 한어과는 주요하게 한어를 배워주어 학생들의 듣기, 읽기, 말하기, 글쓰기 능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그해 하반년, 연변 교육처에서는 교학 연구실을 세우고 주로 조선 어문과 한어 한자 교육 문제를 연구하였고, 관계 일군을 조직하여 조선 민족 중·소학교 한어 교학 요강(초안)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957년에 정식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이 몇 해 사이에 선후로 여러 차례의 좌담회를 열고 한어과 교학의 목적, 임무와 특점을 초보적으로 명확히 하였고, 한어 교수의 질적 제고를 위해 교수 방법을 효과적으로 고치고 필요한 대책들도 강구하였다. 예를 들면 1952년 동북 인민 정부 교육부와 길림성 교육청에서는 적지 않은 한족 교원을 뽑아서 연변 일부 학교에 조동시켜 한어과 교수를 담당하게 하였고, 1950년 6월에 세워진 연길현 어문 연수 학교를 1952년 9월에 와서 연길현 한어 사범 학교로 고쳤고, 1953년 9월에 와서는 연변 한어 사범 학교로 고치고 주요하게 소학교 한어 교원을 양성하게 하였으며, 1956년 연변대학에 한어 학부를 증설하고 중학교 한어 교원을 양성하게 하였다.
이 시기 한어 한자의 교육 방법은 전통적 교육 방법으로부터 새로운 개진을 가져왔다. 1950년대 초엽에 실시했던 직접법(번역과 문법 강의 대신 모방과 잘 기억하는 것으로 한어를 직접 배우게 하는 방법)과 자각적 대비법(번역과 문법 강의를 중시하는 방법)의 교학 실천을 잘 총화하고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흡수하여 우리의 실정에 맞게 종합적이며 영활하고도 다양한 자기의 교학 방법을 탐구 실천하였다.
1958년부터 몇 년 동안 '좌'적 착오 사상의 영향으로 한어 한자 교육에는 일부 폐단과 혼란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주요한 표현으로는 (1) 당의 민족 정책을 위반하고 한어과를 위주의 위치에 놓았고 민족 학교의 교수 용어를 한어로 고쳤다. (2) 한어과 교학 시수를 1950년 870시간으로부터 1960년에 와서는 2,688시간으로 증대시켜 조선 어문 시간보다 488시간이나 더 많게 하였다. (3) 흑산 식자 경험을 보급한다는 명의로 한족 학교의 어문 교수 방법을 그대로 옮겨와 보급했다. (4) '운동'의 형식으로 한어 '약진'의 효과를 보려 했다. 이상의 극단적인 주장과 폐단은 전반적인 교수의 질적 제고에 막대한 손실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어 한자 교수에도 커다란 지장을 주었다.
1961년부터 국민 경제의 '조절, 공고, 충실, 제고'의 방침을 관철하면서 한어 한자 교육에서도 좌적 경향을 숙청하고 새로운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62년 9월에 연변 조선족 자치주 중·소학교 한어 교학 편집 위원회를 내왔고 1963년에는 한어과를 소학교 2학년부터 설치하게 하고 조선족 학교에서는 한어란 이 도구를 잘 장악하는 목적으로부터 듣기, 말하기, 읽기와 쓰기의 네 가지 능력을 훨씬 높여 고급 중학교를 졸업할 때면 조한 두 언어를 다 잘 알아야 한다는 분투 목표를 뚜렷이 제기하였다.
이 시기에 교학 개혁 실험과 한어 교학 연구 활동이 활발히 벌어졌으며 한어 한자 교학 방법상에서도 58년 이후 한동안 한어과의 개성을 잃고 한족 학교의 어문과를 맹목적으로 따라간 것을 1960년부터는 개성을 되찾고 더욱 큰 개진을 가져왔다. 그 당시 주로 세 가지의 한어 한자 교육 방법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는데, 그 한 가지는 연변 제1중학교 초급 1학년에서 잠시 교과서를 쓰지 않고 시간과 정력을 집중하여 구두어와 말 틀 교수를 틀어쥐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연변 제1중학교 초급 1학년에서 잠시 교과서를 쓰지 않고 시간과 정력을 집중하여 구두어와 말 틀 교수를 틀어쥐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연변 사범 부속 소학교에서 유형별로 나누어 식자 교육을 틀어쥐고 많이 읽고 많이 연습하는 방법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교과서의 요구에 좇아 한자와 어휘를 배우고 익히는 방법이다. 총체적으로 구두어 훈련을 강화하고 사용을 강조하는 동시에 편향성을 방지하고 듣기, 말하기, 읽기와 쓰기를 잘 결합하게 하였다. 만일 한어 한자 교학이 조국의 통용어를 배우는 독립적인 한 학과로서 낡은 서당의 한자 교학과 다르고 외국어 교학과도 다른 언어 교학이라 한다면 50년대 중기에 그 형태를 초보적으로 보여 주었고 60년대 초기에 와서는 제2언어 실천과로서 자기의 특색을 아주 뚜렷이 나타내었다.
10년 동란 기간(1966~1976) 한어 한자 교육은 전반 민족 교육과 더불어 큰 재난을 입게 되었다. 한어 교과서를 쓰지 말고 직접 모 주석의 저작을 교과서로 사용하라는 해당 정신에 좇아 처음에는 '모택동 선집'과 '모주석 어록'으로 중소학 한어 교과서로 대용하다가 1970년부터는 연변 교육 출판사에서 한족 어문 교과서를 견본으로 하여 편집 출판한 9년제 한어 교과서를 쓰게 되었는데 이 교과서도 기본상 '어록화'된 정치 교과서였다. 게다가 정치 운동의 충격으로 수업 시안을 보증할 수 없어 교수 질은 전례 없이 내려갔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교원들은 민족 교육 사업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한어 교학 법칙을 계속 탐구하였다. 1973년에 가진 전주 조선 민족 중·소학교 한어 교학 개혁 좌담회 이래 '문형 훈련'과 '듣기, 말하기를 앞세우는' 등 방법을 중소학 교학에 도입시켰다. 이 시기의 문형 교학은 전 한 시기 구두어 교학의 발전으로서 교과서 건설과 교학 방법에 대해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 당시 한어의 수많은 유형의 문형을 전형성과 상용성의 각도에서 일정한 수량으로 한정해 놓고 거기에다 바꾸어 써넣기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여 구두어 기초를 닦고 문장 조직 능력을 키우고 문형 격식을 익히며 언어와 어휘를 좀 더 많이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1975년에 동북 3성 조선어문 교재 협의 소조를 세우고 조선 어문과 한어 교재 건설을 한층 강화하였다. 이해에 한어 교과서를 개편하면서 문형 교수 등의 연구 성과를 시험적으로 교과서에 도입한 결과 일정한 효과를 보았다.
◆ 한어 한자 교육의 현 상태와 발전 전망
1976년 '4인 무리'가 분쇄된 후 한어 한자 교육은 단시기의 회복기를 거쳐, 거족의 발전을 이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지금 동북 3개 성의 소학생 수는 21만여 명이고 중학교 학생 수는 15만여 명이며 내몽골 소학생 수는 3,600여 명이다. 전국 조선 민족 중소학 학생 수는 도합 36만여 명이 된다.
이들은 거주 조건, 언어생활 환경이 서로 다름에 따라 한어 한자 기초와 수준이 서로 같을 수 없고 기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학교마다 학생들마다 일정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일부 학교들에서 교학 개혁 실험을 하고 있어 그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그러나 교육 행정의 통일적 지도 밑에 같은 학제와 교수 계획에 따라 같은 교과서와 말로 수업을 받는 이상, 기본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에서 쓰는 조선어에는 한자를 섞어 쓰지 않으므로 조선 어문과에서는 한자 교육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어과에서는 조선말 한자음 독법이거나 번역을 통하여 한어 한자를 배운다. 아래에서 한어과를 통해 중국 조선 민족 학교에서의 한어 한자 교육 실태와 그 수준을 몇 개 제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1. 학제 개혁과 한어 한자 교육 계획에 대하여
지금 조선족 학교의 학생들이 보통 교육 단계에서 조선 어문과 기타 학과목 외에 국가에서 제정한 한어문 교수 요강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는 정도로 한어 한자를 잘 배우게 하려면 적어도 2,000시간을 더 주어야 한다. 이는 일반 중·소학교의 2년에 해당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전에는 늘 조선 어문 등 과목의 수업 시간을 줄이고 매주일 수업 시간을 3~4시간 더 늘이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과중해지고 '이중 언어'(조선 어문과 한어) 교수질과 기타 학과목의 성적이 올라가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폐단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1982년에 동북 3성 조선 어문 교재 협의 소조에서는 소학교 학제를 5년에서 6년으로 연장함으로써 소학교의 기존의 모순들이 점차 해결되었다. 그러나 초급 중학교의 모순들은 해결된 대신 날마다 첨예해지는 추세를 보여 주었다. 때문에 동북 3성 조선문 교재 협의 소조에서는 우리 조선 민족 교육의 실태와 사회의 수요, 청소년들의 심신 발전 상황, 그리고 경제 상황을 조사 연구하고 1987년 8월에 동북 3성 회의를 열고 전일제 조선족 소학교와 초급 중학교의 학제를 소학교는 계속 6년제로 하고 입학 연령을 한 해 앞당겨 만6세로 하며 한어과를 지난날 소학 2학년부터 설치하던 것을 소학교 1학년부터 설치하게 하며 초급 중학교는 1년 연장하여 4년제로 하되 먼저 동북 3성적으로 5개 소학교와 6개 초급 중학교를 선택하여 새로 편집한 교과서와 과정을 통일적으로 시험해 보게 하였다. 교과서 편찬의 의거로 작성한 '6.4'제 교수계획을 분석해 보면 '6.4'제는 '6.3'제보다 '이중 언어'를 다 잘 배울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점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의무 교육 단계에서 제기된 교육 임무를 완수하고 우리 민족의 수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담보가 있게 되었다. 한어과 교수 계획을 예로 들어 보면 소학교 1학년에서 매주 4~6시간, 2학년에서 매주 4시간, 3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매주 5시간, 도합 986시간으로서 '6.3제 때보다 136시간 늘어났으며 초급 중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매주 4시간, 도합 536시간으로서 '6.3'제 때보다 30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2. 소학교 단계에서의 한어 한자 교학의 총적 내용과 요구에 대하여
각 학년 급의 주요한 교학 내용과 요구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1학년 상 학기에는 주로 말을 배우고 하 학기에는 성모, 운모, 성조를 익히고 병음 자모로 된 과문과 과외 독물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600개 좌우의 상용 어휘를 장악하고 15개 좌우의 상용 문형 격식을 익히고 이미 배운 어휘와 문형 격식으로 간단한 구절을 만들어야 한다. 간단한 예절식 용어를 익히고 과당 용어를 장악해야 한다.
2학년 급에서는 한어 병음을 계속 공고히 장악하고 2,000개 좌우의 상용 한자를 장악하며 28종 획수, 8종 필순 규칙, 20개 상용변과 부수 등을 익혀야 한다. 400개 좌우의 상용 어휘를 장악하고 30개 상용 문형 격식을 익혀야 한다. 이미 배운 글자와 문형 격식으로 단문을 짓고 한자가 섞인 과문과 과외 문선을 정확히 낭독할 줄 알아야 한다.
3학년 급에서는 250개의 한자를 장악하고 동음자를 구별할 줄 알며 40여 개의 상용변과 부수를 익혀야 한다. 음의 순서와 부수로 사전의 글자를 찾고 400개 좌우의 상용 어휘를 장악하며 30개 좌우의 문형 격식을 알아야 한다. 과문의 주요 내용을 복술할 줄 알고 이미 배운 언어 재료로 간단한 회화를 하고 의사가 연관되는 몇 구절의 말을 적을 줄 알아야 한다.
4학년 급에서는 300개 좌우의 상용 한자를 장악하고 450여 개의 상용 어휘를 장악하며 40개 좌우의 상용변과 부수를 장악하며 25개 좌우의 문형 격식을 알아야 한다.
5학년 급에서는 300개 좌우의 상용 한자, 450여 개의 상용 어휘, 25개의 상용 문형 격식을 알아야 한다. 실사의 품사를 알고 간단한 일상 회화를 할 줄 알며 200자 좌우의 토막 글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
6학년 급에서는 270여 개의 상용 한자, 400여 개의 상용 어휘, 20여 개의 상용 문형 격식을 익히고 내용이 완전하고 의사가 연관된 200~300자의 토막 글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 한어 병음판을 넘고 주요한 문장 성분을 학습하며 아동 독물을 열독하고 이해하고 내용 귀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초급 중학 단계에서의 한어 한자 교학의 총적 내용과 요구에 대하여
1) 기초 지식: 소학교에서 이미 배운 1,300개 상용 한자를 공고히 한 기초 위에서 1,200개 상용 한자를 계속 배우며 자전을 익숙하게 사용할 줄 알며 5분 동안 50개 한자를 만년필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소학교에서 배운 2,500개 상용 어휘를 공고히 한 기초 위에서 2,500개의 상용 어휘를 계속 배우며 사전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허사, 단어 결합, 단일문과 상용 복합문, 상용 문장 부호 사용법 등 일정한 문법 지식을 배우고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간단한 기서문, 설명문, 의론문과 상용적인 응용문을 배워야 한다.
2) 기본 능력
4. 고급 중학 단계에서의 한어 한자 교학의 총적 내용과 요구에 대하여
1) 기초 지식: 한어 병음을 계속 공고히 하며 이미 배운 2,500개 상용 한자를 공고히 하고 1,000개의 한자를 계속 배우며 이미 배운 5,000개의 어휘를 공고히 하고 1,000개의 어휘를 계속 배운다. 복잡한 복합문, 필요한 수사 지식을 익히고 구두어와 서면어에서 좀 더 정확히 운용할 줄 알아야 한다.
2) 기본 능력
5. 한어 한자 교학에 관한 연구 활동과 개혁 실험 상황에 대하여
관계 부문의 조사에 의하면 연변 조선족 학생들은 한어 한자 수준이 높지 못한 탓으로 과학 문화 소질의 제고폭도가 연변 지구 한족 학생들보다 늦으며 졸업 후에는 적응성이 차하다. 그리고 전국 부분적 대학교들에 가서 조사한 데 의하면 조선족 학생들의 한어 한자 기초가 차하다는 반영이 매우 많다. 이런 데다가 조선 민족 중·소학교의 교학 총 시수는 이미 12,190시간에 달하여 한족 학교보다 1,320시간이나 더 많았으며 조선 어문, 한어문과 외국어의 교학 총 시수는 수업 총 시수의 41,92%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현 상태는 관계 부문의 중시를 돌리게 되고 더욱 많은 학교와 단체들에서 교학 연구 활동과 교학 개혁 실험을 폭넓게 벌여 이런 국면을 돌려세우도록 힘쓰게 하였다. 연변 1 중의 '집중적으로 글자를 익히고 대량적으로 독서하여 초급 중학 단계에서 고급 중학의 과정을 앞당겨 끝내는 표준 도달' 실험, 길림 지구 영길현 조선족 실험 학교의 '조선어문과 한어문이 서로 보충하고 서로 추진하여 교수 질을 높이는' 이중 언어 실험, 왕청현 제2실험 소학교의 '병음으로 말을 배워 앞당겨 글을 읽고 집중하여 글자를 익히는' 실험, 유수촌자제 소학교의 '그림 보고 말을 배우고 병음으로 글을 익혀 앞당겨 읽고 쓰게 하는' 실험, 연변 민족 교육 개혁 판공실의 '이중어 교육 개혁을 중심으로 삼고 조한 어문을 다 잘 알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반 민족 교육 개혁' 실험 등 동북 3성 범위에서 벌인 이러한 실험을 통해 교학 질이 높아지고 교학 법칙을 적지 않게 탐구하였으며 더욱 많은 경험들을 쌓았다. 교학 개혁 실험과 더불어 이십여 년 기간에 교학 연구 활동도 아주 활발하였다. 1980년 초부터 선후로 연변에는 자치주 급과 8개 현, 시급, 그리고 길림, 요녕, 흑룡강에는 성급, 전국적으로는 동북 3성 조선족 중·소학 한어문 교학 연구회가 성립되어 이론 및 실천적 면에서 여러 가지 실제 문제를 가지고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학술 연구 활동을 벌여 한어 한자 교육 사업을 크게 밀고 나아갔다. 그중 더욱 뚜렷하게 효과를 본 연구 성과라면 한어문 교학이 종합 교학의 방향으로 전진하게 한 것이다. 교학법 면에서 보면 주로 한어 한자 자체의 교학 원칙을 더듬어 낸 것인데 그 주요한 내용은 자각적 실천으로 언어 기능을 장악하는 원칙, 어음, 문자, 어휘, 문법을 서로 결합하는 원칙, 문법을 서로 결합하는 원칙,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전면적으로 발전하게 하는 원칙, 본 민족어를 제한 이용하여 한어로 사유를 하도록 추진하는 원칙 등이다. 그리고 한어 한자 교학 가운데 존재한 문제에 비추어 주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 연구 성과를 이룩하였다. 즉, 한어 한자 교학은 지식의 전수식으로부터 기능 훈련식에로 전이하고 언어 단방면만 발전하던 데로부터 언어와 사유 쌍방면이 공동 발전하는 데로 전이하고 교원의 강의를 위주로 하던 데로부터 학생이 배우도록 배우는 데로 전이하고 과내 시간 수업에만 의거하던 데로부터 과내 시간 수업을 기초로 하고 과내외가 결합하는 데로 전이하고 맹목적으로 본 민족어를 배척하거나 남용하던 데로부터 본민족어를 제한 이용하는 데로 전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 조선 민족 학교에서는 자체의 교학 실정과 경험에 발을 붙이고 남들의 작법과 경험에서 우리에게 쓸모 있는 것만 흡취하여 자기의 특색이 있고 효과적인 종합 교학법을 세우는 방향에로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 교과서와 참고 독물을 에워싸고 학술 연구 활동과 개혁 실험 활동이 아주 효과적으로 활발히 벌어지고 있지만 편폭 관계로 그만 줄인다.
6. 조선 민족 학교에서 한어 한자 교학의 발전 전망에 대하여
장기간의 역사 발전 행정에서 한어는 사실상 국내 여러 민족이 통용하는 언어 문자로 되었다. 소수 민족이 한어를 배우는 것은 소수 민족 지구의 정치 경제와 과학 문화를 발전 번영하게 하고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며 각 민족들 사이의 내왕과 단결을 강화하는 데 자못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민족 학교에서의 한어문과는 제2어문과로서 도구과의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교학 목적과 요구가 본 민족 어문과와 좀 다르고 외국어과와도 다르다. 한어문과의 교수 목적은 현대 한어 한자를 초보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 졸업 후에 생산과 사업에 종사하거나 한 급 높은 학교에 진학하여 학습하는 데 더욱 훌륭한 기초를 닦아 주는 것이다. 상술한 교학 목적으로부터 민족 학교에서는 중앙의 해당 정신에 좇아 "우선 자기 민족의 언어를 잘 배우고 한어문도 응당 잘 배워야 한다."는 이중 언어의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 동안의 교학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한어 수준이 올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고 따라서 한 조 두 가지 언어를 다 잘 배우는 이중 언어 방침을 제대로 견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원인도 분석하고 여러 모로 대책도 강구하였으나 그 효과가 뚜렷하지 못하고 종국적으로는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였다. 이에 일부 학자와 관리 일군들은 한어문 수업 시간에만 의거하여 한어 수준을 제고하려는 데 그 원인을 찾으면서 다음과 같은 해결 방안과 주장을 내놓았다. 고급 중학교 단계에 와서 조건이 구비된 학교에서는 부분적 학과목을 한어로 수업하고 조 한 어문학과 이중어 교학으로부터 두 가지 어문과를 배우고 두 가지 교수 용어와 두 가지 문자의 교과서를 같이 쓰는 이중어 교육에로 전이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자면 한어문 수업시간에만 의거하여 교과서만 배우는 봉폐식 이중 언어 교육 틀을 버리고 두 가지 언어를 다 배우고 병용하는 가운데서 한어의 학습 범위와 학습 도경을 넓히고 한어 학습환경을 만들고 언어 실천의 기회를 증가하여 하루 속히 두 가지 언어를 다 잘 배우게 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이 이미 일부 학교에서 교학 개혁의 내용으로 실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한어 한자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조선어에 한자를 섞어 쓰는 등 여러 가지 개혁의 성질을 띤 실험들을 벌이니까 있다. 실천을 통해 조 한 두 언어를 다 잘 배울 수 있는 이상적 방안이 조만간에 나오리라 믿어 마지않는다.
◆ 참고 문헌
강영덕, 연변의 한어문 교학, 1988.
김경암, 전일제 의무 교육 10년제에 관하여, 1991.
한어문 교학과 연구, 1987년 제1기, 1988년 제2기.
한어문 교학과 연구, 동북 조선 민족 교육 출판사 한어문 편집실, 1987~1989년도의 소학판과 중학판 1기와 2기.
중국 조선족 교육, 1986년~1990년도의 제1기부터 제12기.
한어 학습(연변 대학 '한어 학습' 잡지사), 1988~1990년도 간행물.
교학 연구, 민족 교육관 길림성 교육 학원 민족 교육 연구실, 1988~1990년도 간행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