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산책우리말 소리에 관한 小考

金上俊 /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 연구회 간사

1. 우리말 音素 配列의 신비를 찾아
    우리는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어떤 말의 발음이 어렵거나 해서 자주 틀리는 특별한 말소리가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옛날 어느 서당의 훈장이 '바람 풍'을 발음하지 못해서 '바담 풍'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거니와 이런 정도의 틀린 발음은 오히려 약과에 속할 것이다.
    감기가 들거나 피곤해서 혓바늘이 돋거나 입술이라도 부르트면 'ㄷ, ㄹ' 계통의 헛소리나 'ㅁ, ㅂ' 계통의 입술소리를 발음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상태에서 특히 빠른 속도로 방송해야 하는 뉴스나 중계방송이라도 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입술과 혀에 문제가 있을 때 노래 곡목이 '밤바다에 바람이 불면' 같은 것이라도 섞이게 되면 진땀이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뉴스나 중계방송에서 '삼립식품, 직접 회로'와 같은 계열의 말이나, '지도자들이, 어린이들이' 등의 말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어린이날 방송을 할 때는 아침부터 조심을 하게 된다.
    뉴스나 중계방송은 1분간에 평균 350~400 음절의 표출 속도로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일상 언어보다 더 어려운 듯하다.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데도 기준 속도로 발음하다가 갑자기 늦출 수가 없어서 더욱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위의 말들을 발음하는 데 있어서 거의 모든 아나운서들이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마 'ㅂ·ㄱ, ㄷ·ㄹ' 계열의 音素가 'ㅈ'이나 '니'와 같은 구개음과 결합될 때는 발음하기 어려운 말소리의 배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밖에도 '예정입니다'와 같은 말도 어려운 발음이어서 '예정으로 있습니다'로 고쳐 읽거나, '이영호입니다, 이영미입니다'와 같은 구개음이나 'ㅂ' 계열의 말들도 '이영호였습니다, 이영미였습니다'로 바꿔서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더구나 외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발음할 때 우리말의 말소리[音素] 배열의 흐름에서 벗어나면 자주 틀리는 경우가 있어서 음소 배열의 신비함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국제 올림픽 위원장 사마란치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

위의 이름들에서 '마라, 바라, 베레'는 아무래도 우리말의 음소 배열 원칙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나 기자들이 '사마란치'를 '사라만치'로, '무바라크'를 '무라바크'로, '에베레스트'를 '에레베스트'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라'보다는 '라마'가, '바라'보다는 '라바'가, '베레'보다는 '레베'가 우리말의 배열에 맞는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현상이 있는 말들을 골라내어 연구해 보면 우리말의 음성 언어학의 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나아가 표준 발음이나 외래어의 표기와 발음법을 규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에서 예를 든 '예정입니다'는 차치하고라도 '입니다, 습니다'의 발음이 표출 속도가 1분에 300음절 이상만 되면 발음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입니다'의 변형된 발음이 많아지는지도 모른다. 같은 계열의 '했습니다'의 발음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발음 [핻씀니다]가 어려우니까 [니]를 빼고 [핻씀다]로 하는 경우
[다]를 빼고 [핻씀니-]로 하는 경우
[니]를 길게 해서 [핻씀니-다]로 하는 경우
[니]가 [네]로 변하는 사투리 [핻씀네다]로 하는 경우
구개음 [니]가 아닌 연음으로 [핻쓰메다]나 [핻쓰미다]로 하는 경우
목사님들이 즐겨 쓰는 'ᅳ' 음의 이중 모음화 현상인 [핻씨으메다]
사투리 [핻씸더]의 경우

이렇게 우리도 하기 어려운 발음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구인들은 [핻씀네다, 핻씀네까]로 하고, 일본인들은 '했습니까, 갔습니까, 왔습니까'를 '했쏘까, 갔쏘까, 왔쏘까'로 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집 주인이 '우리 집 자장면 맛있습니다'라고 해야 할 경우에 '우리 집 자장면 맛있어 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니다'가 '하는 것 같습니다'로 변해서 더 쉬운 말인, '하는 것 같아요'에서 '하는 거 같애요'로 변하는 음소 배열의 편의성이라는 면에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안녕하십니까?'가 '안녕하세요?'나 '안녕하시죠?'와 같이 '~요, ~죠' 형태의 어미로 나타나는 현상을 인정한다면 언중들의 언어 현상을 연구해서 쉽고 편하게 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중들이 잘못 쓰는 말을 표준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안 하고는 차치하고, 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자세만이라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다음과 같은 경우의 말도 유형별로 묶어 두면 재미있는 예가 될 것이다.

모터케이드→모터케이트
바리케이드→바리케이트
아케이드→아케이트

위의 경우는 '드'가 '트'로 소리 나는 잘못인데 방송에서도 틀리지 않도록 자주 주의를 하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스트로→스토롱
플래카드→프랑카트

위의 경우는 '로, 라'에 'ㅇ' 받침이 들어간 것인데 좀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스트롱'은 이제 거의 듣기 어려우나 '프랑카트'는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소파→쇼파
카바레→캬바레
샘푸→삼푸→샴푸
콤프레서→콤프레샤

이 말도 '사→샤, 소→쇼, 카→캬' 형태로 변한 것인데,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샴푸'를 표기법에 맞게 '샘푸'로 바꾸려면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우리말의 경우에도 아무리 고치려고 노력해도 잘되지 않은 말이 많이 있다.

가다: 가려고→갈려고
내다: 내려고→낼려고
대다: 대려고→댈려고
매다: 매려고→맬려고
사다: 사려고→살려고
오다: 오려고→올려고
하다: 하려고→할려고

위의 말에서 '~려고' 형태의 어미는 문자로만 남아 있고 실제의 언어생활에서는 '~ㄹ 려고'로 변해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하늘을 '날다'에서 '날으면, 날으는' 형태의 어미도 '날면, 나는' 등으로 써야 하는데 올바로 쓰는 경우가 드물다.
    음소의 배열이 발음하기 편리한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아무리 통제를 가해도 고치기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문자 언어에서보다 음성 언어에서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2. 된소리[硬音]의 명예 회복을 위하여
    '소나 타라는 차,' '소나 타는 차'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쏘나타'로 이름을 지었다는 국산차가 있다. 음악을 연주하듯이 부드러운 차라는 뜻의 이 차를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표기(작명)하면 '소나타'라야 한다.
    학교의 시험에서 '소나타'와 '쏘나타' 중 맞는 것을 고르라고 출제된다면 소나타만 맞게 돼 있다. 그러나 미주 지역에서 재발행되는 각종 일간지를 보면 사후써비스, 이삿짐센타, 썬그라스, 써니여행사, 네온싸인, 추럭싸인, 깨스, 힐싸이드, 후버땜, 대형뻐스 등의 경음(된소리) 사용이 거의 대부분이며, 후리(free)랜서, 후러싱(Flushing), 메쎄지(message) 등의 편한 발음으로 표기한 말이 많이 보인다(中央日報 생활 정보, 1991. 8. 27.). 이상의 미주 동포들이 사용하는 외래어는 우리의 외래어 정책에도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외래어 표기에서 표기 원칙과 일상생활의 발음에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ㄱ, ㄷ, ㅂ, ㅅ, ㅈ'의 경음 사용이다. 즉 'g, d, b, s, j'를 표기법에서는 'ㄱ, ㄷ, ㅂ, ㅅ, ㅈ'로 표기하고 있으나, 실제의 일상생활 언어는 'ㄲ, ㄸ, ㅃ, ㅆ, ㅉ'로 소리 내는 경우가 많다.
    세계 어느 나라의 말과 달리 우리말은 자음의 音相이라는 것이 있어서 'ㄱ-ㄲ-ㅋ, ㄷ-ㄸ-ㅌ, ㅂ-ㅃ-ㅍ, ㅈ-ㅉ-ㅊ, ㅅ-ㅆ' 등으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이 중에서 'ㅅ'으로 표기하는 's, c, psy, sc' 등의 경우에 실제의 소리는 평음 'ㅅ'이 아닌 경음 'ㅆ'으로 소리 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것도 막연히 언중들의 발음 습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칙적으로 'ㅅ'과 'ㅆ'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앞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손질할 때는 참고해야 한다.
    규칙이라는 것도 복잡한 것이 아니라 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ㅆ'으로 소리 나는 경우에는 표기는 그대로 'ㅅ'으로 두더라도 발음은 'ㅆ'으로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s' 계열의 자음은 뒤에 모음이 이어지면 경음 'ㅆ'으로 소리 나고, 자음이 이어지면 평음 'ㅅ'으로 소리 난다.

예) service: 서비스→써비스
sonata: 소나타→쏘나타
sence: 센스→쎈스
silk: 실크→씰크
sony: 소니→쏘니
circus: 서커스→써커스
circuit: 서킷→써킷
census: 센서스→쎈서스

위의 's+모음'의 유형이 's'를 경음으로 만드는 데 비해 's+자음'의 유형은 평음으로 소리 나게 한다.

예) scale: 스케일
screen: 스크린
shaft: 샤프트
shamanism: 샤머니즘
sky: 스카이
slump: 슬럼프
spin: 스핀
stop: 스톱
strike: 스트라이크

이렇게 규칙적으로 소리가 나눠지는 현상이 있는데도 영미인들은 우리처럼 'ㅅ-ㅆ'와 같은 자음의 음상이 문자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발음 기호 's'로 통일해서 표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발음은 위의 예처럼 분명히 평음과 경음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ㅅ'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뒤에 모음의 발음이 이어지기 때문에 'ㅆ'로 소리 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예) scene: 신→씬
scenario: 시나리오→씨나리오
science: 사이언스→싸이언스
psyche: 사이키→싸이키
psychograph: 사이코그래프→싸이코그래프

이상의 's, c'에 비해 'g, d, b, j' 계열의 말이 모음과 합해져서 경음으로 소리 나는 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실제로 영어 사전에서 's' 계열의 단어는 'b, d, g, j'를 합한 수와 거의 맞먹는다. 더구나 이 계열의 말은 우리말로 표기했을 때 1음절일 경우에 경음이 두드러지고 2음절이나 3음절 이상일 때는 평음으로 나기 때문에 사안별로 분류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경음으로 소리 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예) gas(까스), gang(깽), goal(꼴), gown(까운), gum(껌), dam(땜), dollar(딸러), back(빽), bag(빽), ball(뽈), bill(삐라), jam(쨈), jazz(째즈)

우리는 글자 모양은 겹자음이고 소리는 경음 혹은 된소리라고 하는 'ㄲ, ㄸ, ㅃ, ㅆ, ㅉ'에 대해 지나친 거부 반응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나쁜 소리라고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는 필자도 학교 교육에서 배운 대로 경음은 임진왜란이나 6·25 전쟁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어져서 평음으로 해야 할 곳에 경음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착각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경음은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음소로서 그렇게 나쁜 소리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고유어나 외래어로 우리말에서 형성된 말 중에 경음으로 된 좋은 것들로 '쌀, 떡, 빵, 껌, 꽃, 꿈, (아)빠, (오)빠' 등이 있다. 물론 격음에도 '콩, 팥, 풀' 등이 있으나 '창, 총, 칼' 등이 있어서 경음 못지않게 격음도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경음에 대한 거부 반응은 그 소리가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소리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일본어의 우리말 표기는 경음을 모두 죽이고 일본어의 유기음을 격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음성학적으로 일본어의 유기음이 우리말 격음에 가까울지 모르나 실제로 일본어의 일상 언어는 거의 모두 경음으로 발음하고 우리도 경음으로 알아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쿄'는 '도꾜', '오사카'는 '오사까', '오카자키'는 '오까자끼', '다카사키'는 '다까사끼', '나카타쓰'는 '나까다쓰', '하코다테'는 '하꼬다떼', '오카쿠라'는 '오까꾸라', '핫토리 겐타로'는 '핫또리 겐따로', '사쿠리타 다케시'는 '사꾸리따 다께시', '사이토 마코토'는 '사이또 마꼬또', '히쿠치 다카야쓰'는 '히꾸찌 다까야쓰'가 우리말의 음소 배열이나 우리의 정서에 어울리며, 일본어의 발음에 더욱 근접한 소리일 것이다.
    설혹 인명과 지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난데스까, 소데스까, 아나따, 이꾸라데스까' 등의 일상 언어를 우리말로 표기할 경우에 '난데스카, 소데스카, 아나타, 이쿠라데스카'로 발음하는 것이 과연 어울리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외에 '부츠, 셔츠, 스포츠'의 끝소리 '츠'도 '쓰'로 표기하여 '부쓰, 셔쓰(샤쓰), 스포쓰' 등으로 바꿔 언중들의 언어생활이 편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콩트'나 '콩코드, 생텍쥐페리' 등도 오래 전에 쓰던 대로 경음을 되찾아 '꽁뜨, 꽁꼬드, 쌩떽쥐베리' 등으로 우리말의 음소 배열에 맞는, 쉽게 얘기해서 우리 입맛에 맞는 말로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표기 자체를 바꾸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 표준어가 복수 표준어를 택하여 '구린내'와 '쿠린내', '고까'와 '꼬까', '넝쿨'과 '덩쿨'을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고, 발음에서도 '계, 폐, 몌, 혜'를 [게, 페, 메, 헤]로, '디귿이, 디귿을, 디귿에'를 [디그시, 디그슬, 디그세]로 발음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결정을 한 표준 발음법의 정신을 살린다면, '소나타'와 '쏘나타', '버스'와 '뻐스', '가스'와 '까스', '달러'와 '딸러'의 표기와 발음을 현실 언어에 맞게 못 고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외래어도 고생고생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영주권을 받은 귀화한 우리말, 즉 국어로 정착한 말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의 국어 정책은 남북 교류의 확대와 통일에 대비하여 북한의 문화어에 적절히 대응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여 보수와 혁신을 슬기롭게 조화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