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에서의 外來語 問題

金完鎭 / 서울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Ⅰ.
    다른 언어의 단어들을 받아들여 제 어휘 체계 안에 수용하는 행위를 借用이라 하며 차용된 말을 借用語 또는 外來語라 부른다. 이 두 용어는 개념상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사용된다.
    借用語가 loan-words 또는 LehnwӦrter에 해당하는 학문적인 술어라면, 外來語는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비교적 통속적인 용어이다. 따라서 '外來語'라는 명칭은 언어 정책 또는 언어 순화의 차원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요, 국어사 기술 같은 데에서는 경원되는 용어다.
    특히 지금의 제목에서와 같이 '문제'라는 표현이 첨가되면 그것은 단순한 존재론적 관찰이나 논의의 단계를 넘어 그에 대한 대처 방안 또는 정책을 거의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외래어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일부 깔려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외래어 문제의 논의가 외래어를 죄악시하는 극단적인 당위론에서 출발한다면 외래어를 받아들이지 말고 또한 이미 들어와 있는 것도 추방하여야 한다는 극단론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의 어떤 언어도 차용 없이 독자적으로만 생존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외래어를 거부하는 심리까지도 객관적인 힘으로 인정은 하되, 외래어를 쓰는 심리 또는 쓰고 싶어하는 심리까지를 함께 고려에 넣어야 균형 있는 관찰이 성립되고 합당한 대응책도 마련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매우 비근한 보기로 일간 신문에 나오는 '말 맞추기(cross world)'가 외래어를 요구하는 현실을 지적한 일이 있다. '월드컵', '노벨상', '드가', '아라사' 같은 말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월드컵▨
정가▨
사▨

'월정사'와 '정가' 그리고 '월드컵'을 알고 나면 '드가'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드가'는 서양 사람(정확히는 프랑스 화가)의 이름 같다는 분별력은 요구된다 하겠다.
    '아라사(俄羅斯)'는 '러시아' 또는 '노서아'에 선행했던 어형으로 지금은 쓰지 않는 것이니까, 이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언어사적 지식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들에게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외래어의 변모에 대한 지식까지가 살아 있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지식이 언어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국사 일반의 지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지 모른다.

Ⅱ.
    지난 한 세기를 대상으로 우리의 외래어 수용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살펴보자, 제도적이며 체계적인 대처 방안은 다음 장에서의 과제로 잡기에 여기서는 언중들의 자생적인 대처 방안을 주로 하여 관찰하기로 한다.
    외래어 문제가 제기되면 일종의 향수를 가지고 되돌아보는 번역 수용의 예들이 있다. telephone, telegram, tele-communication등에 대하여 '電話, 電報, 電信' 등으로 수용한 것을 미덕으로 숭상하며 현대에 와서도 television을 '電視'라 하는 중국의 경우를 모범으로 일컫는 것을 본다. 물론 지금도 이런 식의 번역 수용에의 노력이 단절된 것이 아니나, 원어의 어형을 복사하는 쪽으로 대세가 기울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가령 computer에 대한 초기 번역은 '계산기'였으며 어원적으로도 정확한 번역이었으나, 그 발달과 함께 computer science를 電算學이라 하게 되고 연구 기관이나 회사에 電算室이 설치되게 되었지만, computer 그 자체는 계산기나 전산기가 아니라, 곧바로 '컴퓨터'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과학이나 기술에 관계된 단어를 수용함에 있어서는 그 발달과 함께 같은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에 변화가 온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할 것이고 그것이 원어 복사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이라는 호칭이 한때 보편화되었던 '國際 聯合'과 '國聯'이라는 그 약칭을 제치고 완전한 우위에 서게 된 것은 다른 차원에서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2차 대전 전의 '국제 연맹'은 끝까지 그렇게 통했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그 본을 따서 '국제 연합'이라 불렀던 'United Nations'는 그 약칭으로서의 'U.N.'을 그래도 음역하는 '유엔'으로 낙착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국제 연합'이나 '국련'이라는 호칭이 적절치 않아서가 아니라 UNESCO나 IPU의 보기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제 기구의 이름을 영어식 약칭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된 결과의 한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해야 옳을 것이다. 이 흐름은 외래어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정치 지도자의 별명을 YS나 JP 또는 DJ라고 부르는 것에도 연결된다 할 것이다.
    漢字語的 표현의 쇠퇴는 비단 번역 수용의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西歐의 문물이 일차적으로 중국이라는 통로를 통하는 시기에 있어서는 意譯을 통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音譯을 택하는 경우에도 漢字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폴레옹(Napoléon)'을 '奈破崙'이라 적고, '보스턴(Boston)'을' 波士頓'이라 하는 것 등이 그 전형적인 예였으며, '歐羅巴'나 '亞細亞'를 '구라파', '아세아'라 읽는 것은 한자의 중국음과 한국음 사이의 괴리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漢字를 맞추어 넣은 것도 더러 있다. 가령 Latin을 중국 사람들이 '拉丁'이라 했고, 지금도 '拉丁化 抍音字母' 등에서 그래도 쓰고 있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자기 발음에 가까운 '羅典'으로 바꾸어 썼던 것이다. '浪漫的'이라는 말도 일본 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魯慢的'이라는 표현도 쓰였지만, '浪'자로 romantic의 'ro'에 대응시킬 수 있는 것은 일본어뿐인 것이다.
    人名, 地名을 포함하여 서양에서 들어오는 단어들을 意譯과 音譯의 방식으로 한자어화 한다는 것은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개념을 대표하는 것이면서도 漢字語 체계 아래 포용될 수 있는 것이 되게 함으로써 동양 3국의 전통 감각에 맞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평가된다. 한글로 음사된 외래어가 상당한 시간을 거치고서도 원어와의 연상을 유지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할 것이다.
    서양 문물의 통로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는 것은 외래어 수용의 양상을 크게 변전시킨다. 서구 문물의 수용에 있어 중국이 더 이상 영도적 위치를 지킬 수 없게 됨에 따라, 새로운 기수로 나선 일본이 그 대역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신학문의 많은 술어들이 일본인의 손으로 제정되어 역수출되기에 이른다.
    의역이 가능한 것은 대개의 경우 한자어로 정착되었지만, 그것이 마땅치 않을 경우 전처럼 한자의 음을 빌어 적는다는 번거로운 절차가 이제는 불필요하게 되었고, 새로 알게 된 민영, 지명을 급히 적어야 할 때에는 그런 절차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일본인 특유의 拜外思想도 작용하여 외래어를 가타카나로 적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을 것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에서의 외래어 사용의 증가는 30년대에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을 당시의 간행물들을 통해서 알 수 있거니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한 조선어 학회가 그 후속 사업의 하나로 '외래어 표기법'의 제정을 서두른 것도 외래어 문제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임을 실감케 한다. 이 시기가 바로 일제 치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외래어 사용의 역사가 일본의 언어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케 한다. 당시의 서구계 외래어라는 것이 일본어 단어들과 함께 우리말에 들어온 것으로 그 음상이 다분히 일본어화된 모습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일이다.

보기: fan→フアン →후앙
chain→チェイン →지엥
hammer→ハンマ →함마
coffee→コ-ヒ一 →고히
back→バツク →빠꾸

해방과 함께 외래어 수용에 있어서의 일본어의 매체 기능이 일단 청산되고 그 자리에 영어가 들어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외견상 문화적 단절이 지속되었던 기간에도 우리의 지식층이 일본 서적에 대하여 높은 의존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어의 영향이 완전히는 종식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국교 재개 이후에는 경제 관계의 긴밀화 등과 함께 오히려 영향력을 되찾고 있다고 할 측면이 있으나, 일본어 교육을 받은 세대가 거의 일선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는 것이 전과는 크게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이후에 들어온 것일 수밖에 없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의 음상이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것임이 분명하다.

nylon→チイロン→나이롱
vinyl→ビニル→비니루
television→テレビ→테레비

물론 이런 단어들의 수가 많지 않고 그 유입 경로가 상층을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고 발음 면에서의 순화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방 직후에 있었던 일본계 단어의 추방과 함께 외래어에서의 일본 색 불식 작업은 어느 누구의 지도 아래 이루어졌다기보다 언중의 민족 감정의 한 발로였다고 하는 것이 정당한 평가일 것이다.

Ⅲ.
    이 장에서는 외래어를 관장하는 '외래어 표기법'을 (문교부 고시 제85-11호로 1985년 12월 28일 공표)의 제정에 직접 관여하였고(국어 연구소 외래어 표기법 위원회 및 문교부 국어 심의회 외래어 분과 위원회), 공포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79년의 국어 심의회 안과 83년의 학술원 어문 연구 위원회 안의 제정에 역시 관여하였기 때문에 현행의 '외래어 표기법'에 대하여 옹호하는 위치에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 모른다. 물론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모든 것이 지선 지미했다고 자부한다는 말은 아니고(개인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자랑으로라도 쓸 형편이 아니지만) 세부적으로는 추가되었어야 할 항목이 있음을 느끼고, 또 적지 않은 경우 절대 선의 옹립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대안들 가운데서의 선택이라 할 것이 많음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였음이 사실이고 또 그들 가능한 대안들을 놓고 앞으로도 학문적인 토론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대부분의 선택은 타당하였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총칙이라 할 제1장 표기의 기본 원칙 5개 항을 먼저 소개한다.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
제2항 외래어의 1음운의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제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제5항은 가장 끝에 와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 제정의 정신과 적용 대상을 명문으로 표시하고 있다. 관용에 관한 규정은 이미 1940년의 外來語 表記法 統一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제3절 제15항에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이미 널리 또는 오래 慣習되어 아주 굳어진 語音은 굳어진 그대로 적는다.
例: 原音 慣習音
krist(希伯來 Christ) 그리스도[基督]
læmp(英 lamp) 남포[洋燈]
gΛm (英 gum) 고무[護謨]
hwait ∫əːt(英 white shirt) 와이샤쓰[洋服 內衣]

원어의 추정에 문제되는 것들이 있으나, 그런 것은 여기서 덮어두기로 하고 이 제15항의 예시는 그 앞에서의 여러 규정들의 적용이 면제되는 단어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됨을 말하고 있으나, 예시된 보기들만큼 특징적이 되지 못하는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는 그것이 관용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규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극단적인 논자들은 외래어 표기법 자체의 성립을 의심한다. 외래어라는 용어를 외국어와 구별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드는 보기의 대부분은 외국어이지 외래어가 아니라는 논리를 편다. 국어에 들어와서 어형이 확정된 말들만이 외래어고 그것들만을 위한 것이라면 확실히 표기의 원리들이 특별히 필요할 것 같지가 않다. '남포'나 '고무' 같은 어형을 사전에 수록하는 것으로 족하다 할 것이다.
    어형을 정할 기준이 필요한 것은 여러 형태로 동요되는 것, 갓 들어왔거나 앞으로 들어올 것에 대비한다는 데에 더 적극적인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긴급을 요하는 것들로서는 일반 명사보다는 인명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 명사가 많을 것이다.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란 것은 결과적으로 모든 외래어가 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관용'의 꼬리표가 붙고 안 붙고 하는 결정이 나는 것이다.
    이 결정은 일반 국민이 내리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모인 권위 있는 기관에서 정하고, 언중은 용례집이나 사전에 나온 어형을 확인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표준어 사정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하여 과장이 아닐 것이다.
    세칙들의 적용도 전문가가 하는 것이지 일반 언중이 하는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세칙이 까다롭다든지 복잡하다든지 하는 비판은 정당한 것이 아니기가 쉽다. 물론 어떤 규칙이고 간에 간편하고 분명하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만, 이미 들어와 어느 정도 고정된 외래어들에서 귀납해야 한다는 세칙의 성질상 어느 정도의 복잡성은 감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수정 의견이 많은 일분 항목에 대하여는 신중한 논의 끝에 규칙의 간편화를 기한 경우가 없지 않다. 그 가장 전형적인 경우가 표기 세칙 제1절 영어의 표기 제1항과 제2항의 경우이다. 제1항은 무성 파열음 p, t, k에 관한 항목이고, 제2항은 유성 파열음 b, d, g에 관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본래 1958년의 문교부 표기법에서는 t는 유성음의 b, d, g와 묶고 무성음 쪽은 p, k만으로 규칙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묶는 것이 기이한 결합이면서도 구체적인 외래어 현실에 더 부합되는 것이지만, 지금처럼 고침으로써 관용으로 처리할 예외가 많아지기는 하지만 규칙의 체계화를 선택하는 것이 득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여론을 업고 단행한 장모음 표기의 폐기는 가장 대담한 변혁으로 평가되고, 외래어 아닌 국어의 일반 어휘의 표기법과의 균형을 기했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논란되던 현안 중의 상당수는 표현의 변개에도 불구하고 종전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표기의 기본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 살펴보자.
    제1항과 제3항은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6장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고, 1940년의 표기법 통일안 총칙에 지금에 가까운 표현을 발견할 수가 있다.

第六○項 外來語를 表記할 때에는 다음의 條件을 原則으로 한다.
(一) 새 文字나 符號를 쓰지 아니한다.
(二) 表音主義를 取한다.

이 두 조항이 1940년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통합된다.

一. 外來語를 한글로 表記함에는 原語의 綴字나 語法的 形態의 어떠함을 묻지 아니하고 모두 表音主義로 하되, 現在 使用하는 한글의 字母와 字形만으로써 적는다.

우리의 제3항에서의 7종성만을 쓴다는 사실은 표음주의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40년의 표기 예에서도 7종성 이상을 사용한 예는 보이지 않거니와 그것은 외래어의 음운론적 특성을 적절히 파악한 결과라 할 것이다.
    제2항의 1음소 1기호의 원칙은 학문의 발전에 따라 1958년부터 등장하게 된 조항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명분론에서 돋보일 뿐 표기법 체계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할 만한 존재는 되지 못한다.
    이미 1940년의 표기법 통일안에서의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의 대조표가 본질적으로 1985년의 우리 대조표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며, 우리의 표기 세칙이 해당 외국어의 어형 표기에 있어 아직도 [ ]괄호 안에 음성 기호를 달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일이다. 그 표기가 정밀 전사 아닌 조략 전사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는 음소적 표기에 상응하는 것이 되지만 독일어의 ach-laut[X]와 ich-laut[ç]를 '흐'와 '히'로 달리 표기하도록 한 것은 異音 단위의 표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기본 원칙 다섯 개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것은 제4항이다. 파열은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부정적 표현의 조항이 기본 원칙에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로 도시 기본 원칙 감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5년에 와서 이것이 이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발전의 징표로 각광받게 할 수가 있다. 제4항에 비견할 명문의 표현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지만, 그에 해당하는 내용은 이미 1940년에 존재했었고 1958년에 확장되었다가 1985년에 극대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40년의 표기법의 대조표 첫머리에 나오는 pari(佛 paris)에 대하여 파리(巴里)라 하고 있거니와 kafe(佛 cafe)에 대하여도 카페[茶店]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어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어의 경우에도 italia(伊 ltalia)에 대하여 '이탈리아'라고 적도록 하고 있다. 라틴계 언어들의 k, t, p 등 무성 파열음은 영어나 독일어에서와는 달리 기음이 거의 없이 발음되기 때문에 우리 귀에는 경음의 'ᄁ, ᄄ, ᄈ'처럼 들린다. 그래서 한때 Camus의 표기를 놓고 '카뮤'냐 '까뮈'냐의 경쟁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의 경음 같으면서도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은 무성 파열음의 표기를 영어나 독일어의 경우에 준하여 유기음 'ᄏ, ᄐ, ᄑ'으로 적는 원형을 보였다 할 것이다.
    그렇던 것이 58년의 문교부 표기법에서는 일본어에까지 같은 원칙을 적용하여 무성음은 무조건 'ᄏ, ᄐ, ᄑ'으로 적고 유성음은 모든 위치에서 국어의 평음'ᄀ,ᄃ,ᄇ'으로 적기로 했던 것이다.
    1958년의 문교부 표기법에 대한 반발은 주로 이 일본어 표기법을 둘러싸고서의 일이었는데, 일본어 발음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전통적 관념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표기 체계를 수립하였다는 데서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는 반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0년의 일어 표기법에서는 어두의 k:g:t:d 에 대한 구별을 하지 않고 다 같이 평음으로 적게 되어 있었다. 어중에서의 k는 'ᄁ'으로 적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t 에 있어서는 매우 제한된 경우에만 'ᄄ'으로 적고, 대개는 d 와 한가지로 'ᄃ'만으로 적게 되어 있었다. p는 상당히 이색적으로 어두에서 'ᄑ', 다른 자리에서는 'ᄇ'으로 적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1985년의 표기법은 유성음에 대한 무성음의 표기를 유기음 'ᄏ, ᄐ'등으로 한다는 선을 지키는 데에 자족하고 어두에서의 유무성 구별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 1940년의 선으로 후퇴하였다. 일본어의 무성 자음들이 어두에서 약간의 기음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한국어의 평음에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음에 예민한 한국인의 언어 감각이 어두에서의 유기음 처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의 언어 감각은 이런 후퇴에 대하여 불만인 것 같다. 분명히 식별하는 것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반발인 듯, 이 부분에 대한 우리의 결정에는 따라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본 포럼에서의 인명 표기는 이렇게 나타난다.

쿠몬 公文 타하라 田原
타나카 田中 타케우치 竹內

1985년의 표기법에서의 대단원은 중국어의 표기 체계의 전환에서 찾아진다. 중국어의 자음 체계는 국어의 경우처럼 무기음 대 유기음의 대립을 근간으로 해서 성립된다. 그러면서도 그 무기음 쪽이 마침 우리의 된소리에 가깝게 발음됨으로 해서 종래의 표기에서는 평음을 배제하고 경음과 격음 위주의 표기에 기울었던 것이다. 이것은 p:P'식에서 b:P로의 음운론적 전환을 실현한 라틴화 병음 자모의 출현에 비견할 발전이라고 자평할 수 있을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경음을 배제하는 것은 경음이 어떤 결함을 가진 소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표기 체계를 단순화하고 경음을 씀으로 해서 생겨날 막대한 수효의 활자 수를 줄일 수 있다는 데에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Ⅳ.
    언어에는 일종의 자정 능력이라고 할 것이 있다.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일시 유행하던 외래어를 걸러내고 동요되던 어형도 국어 어휘 체계 내에서 제자리를 찾게 한다. 또 스포츠나 연예계, 나아가서는 과학 기술 용어 등에서 외래어가 기승을 부린다 하더라도 이른바 점잖은 문제들에서는 외래어의 사용이 억제되는 현상 등을 생각할 수가 있다.
    이 자정 능력의 작용이 중요하고, 교육과 계몽을 통하여 그 능력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나, 현대와 같이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에서는 그 자정 능력만을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게 되어 있다. 마치 자연 환경의 보존과 정화에 있어 그 추진 주체로서의 환경청이 있고 그에 호응하는 국민의 활동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외래어 문제에 있어서도 행정적 주체로서의 문화부 내지 국립 국어 연구원의 활동과 그에 상응하는 각 분야에서의 협조 체계, 그리고 그 결과를 일반 국민에게 잘 알릴 수 있는 홍보 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핵심적인 과업은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칙 제5항에 규정된 사업, 즉 관용 여부의 결정을 위한 외래어 심의와 그에 수반된 작업이 될 것이다. 국어사전이나 외래어 사전에 실린 것을 위시하여 외국의 인명이나 지명의 용례를 하나하나 심의하여 관용을 확정하며 관용이 되는 이유, 즉 표기 세칙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를 기재하는 것까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한 곳에서만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 된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홍보 활동은 이러한 유대의 확보에도 적지 않이 공헌할 것으로 생각된다.
    제5항의 사업을 추진함에는 얼마간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 현재 표기 세칙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영어를 위시하여 독일어, 프랑스 어, 에스파냐 어, 이탈리아 어, 일본어, 중국어에 불과하다. 이 밖의 다른 언어에서 들어오는 말에 대한 지침이 없는 것이다. 장차 외래어 표기법에 추가될 내용을 준칙 또는 내규로 작성하여 공표해 놓고 준용하는 것이 혼란을 피하는 최소한의 조처가 되지 않을까 한다.

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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