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와 서남 방언

이기갑 / 목포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높임법과 한국 방언
    "반말 치지 말아야!" 다섯 살 먹은 필자의 사내아이가 친구들과 놀면서 하는 말이다. 자기보다 조금 어린 아이가 자기에게 함부로 말했다고 해서 해 대는 불평의 소리인 것이다. 물론 이 아이가 알고 있는 '반말'이 국어 문법학에서 말하는 엄격한 의미의 '반말'과 완전히 같을 리는 없을 것이나, 겨우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 세계에서까지 '반말'과 같은 높임법의 술어가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은 결국 한국어와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법이 차지하는 비중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적절한 높임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다툼이 빚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경험한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방언 사이의 높임법 체계의 차이 때문에 말하는 이의 뜻과는 무관한 오해가 생기는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남 방언의 일부에서 이인칭 대명사 '자네'를 윗사람에 대한 친밀감의 표시로 사용하는 수가 있다. 학교 후배가 선배에게, 또는 동생이 형이나 누나에게 사용하는 이 표현이 이 방언의 토박이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충격이 대단하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높임법 자체가 한국어의 특징적인 문법 범주이기도 할 뿐 아니라 방언마다의 체계도 다르기 때문에, 각 방언의 높임법 체계를 파악하는 일은 학문적 의의 외에 사람들 사이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효과를 아울러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의 높임법이 대상에 따라 주체 높임, 객체 높임, 상대 높임의 세범주로 이루어져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어의 각 방언들도 이 세 종류의 높임법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방언에 따라 세세한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 글은 서남 방언과 표준어를 비교하면서 높임법의 문법 범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를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남 방언은 전라남북도 방언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전라북도 방언에 대한 필자의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특히 전라남도 방언을 논의의 중심으로 하였다.

2. 주체 높임법
    문장의 주어로서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주체라 부르고, 이 주체에 대한 높임의 표지로 안맺음씨끝 '-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서남 방언에는 이 '-시-'와 더불어 '게'라고 하는 형태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이 방언의 특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 '게'에 대해서는 기존의 몇몇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있기는 하지만 박양규(1980)에 와서 이 형태의 통사적 제약이 분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1) 나락이랑 다 비어겠소? (벼랑 다 베셨습니까?)
(2) 식구들이 다 모타게서 집이는 좋겄소. (식구들이 다 모이셔서 댁은 좋겠습니다.)
(3) 말은 고로케 해게도 속은 안 좋으신 것 같습디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속은 좋지 않으신 것 같더군요.)

위의 예에서 보는 바처럼 이 방언의 '게'는 표준어의 '-시-'와 같이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기능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이 '게'가 나타나는 환경이 특이하여 앞과 뒤에 각각 씨끝 '-어/아'를 요구한다는 점이 '-시-'와는 다르다(박양규 1980). 이러한 통사적 분포의 특징은 이 '게'가 원래 독자적인 용언인 '겨-'에서 왔기 때문이다.
    '겨-'가 의미적으로 존재의 '잇-'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 두 어휘가 동일한 통사적 결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뒷받침된다. 중세어에서 '잇-'이 '-어/아'와 결합하여 상태의 지속을 나타내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겨-'도 '-어/아'와 결합하여 상태의 지속과 함께 높임의 뜻을 보이고 있다.

(4) 묏고래 수머 겨샤 (석보상절 6:4)
(5) 곳 우희 안자 겨시거든 (월인석보 8:22)

현대 전남 방언의 '게'가 반드시 씨끝 '-어'를 앞세워야 하는 통사적 제약은 중세어의 이러한 통사적 특징을 물려받은 데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게'가 다시 '-어'를 뒷세우고 있는 통사적 제약은 특이한 것이다. 중세어에서 보듯이 '겨-'는 씨끝과의 결합에서 특별한 제약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오늘날 전남 방언의 '게'가 갖는 이러한 제약은 이 방언에 와서야 겪었던 고유한 역사의 결과로 보인다. 특정한 어휘나 통사적 구성이 결합상의 제약을 확대해 가면서 문법적 요소로 변해 가는 현상은 언어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며, '게'가 '-어'만을 뒷세우려 하는 통사적 제약 역시 이러한 문법화 과정의 일반적 성격에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존재를 뜻하던 '겨-'가 주체 높임의 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의미론적 근거는 자명하다. '겨-'는 존재의 의미 이외에 높임의 뜻을 가져 오늘날의 '계시-'와 같은 뜻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이 높임의 의미를 가졌음은 '겨-'에서 발달된 '겨오셔'(현대의 '께서')가 존대의 주격 표지라는 사실에서 뒷받침된다. 따라서 '겨오셔'의 발달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게'가 갖는 높임의 뜻은 설명된다. 한편 그 높임이 하필 주체의 높임이어야 되는 이유 역시 '겨-'가 존재의 자동사라는 사실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자동사이기 때문에 '겨-'가 높였던 대상은 언제나 주체였고, 이러한 의미론적 관계가 문법화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현대 전남 방언에서의 '게'의 지위는 씨끝 '-어'를 앞과 뒤에 세워야 하는 제약 때문에 조동사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양규(1980)에서도 언급된 바처럼 이 방언에서는 표준어의 '계시-'라는 낱말에 대해 '지ː겠-'이라는 특이한 낱말이 대응하고 있다.

(6) 늑 아부지 집에 지ː겠냐? (너희 아버지 집에 계시느냐?)
(7) 서울가 지ː겠구만이라우. (서울에 계시구먼요.)

이 '지ː겠-'은 씨끝 '-고'와 '-어' 다음에서 조동사의 용법을 갖는다. 다만 '-어' 다음에서는 '겠-'이라는 이형태로 실현된다는 점이 특이하다(박양규 1980).

(8) 멋 허고 지ː겠소? (무엇 하고 계시오?)
(9) 기양 눠ː겠으씨요. (그냥 누워 계십시오.)

이 '지ː겠-'의 둘째 음절 '겠'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은 '겨어 잇-'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이며 첫 음절의 '지-'는 존재의 '겨-'에 소급하는 것으로서 '지ː겠-'의 형태에는 역사적으로 '겨-'가 중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박양규 1980).

3. 상대 높임법
    3.1. 말할 이가 들을 이에 따라 높임의 정도를 달리하는 현상을 상대 높임이라 부른다. 현대 한국어에는 상대 높임을 표시하는 언어 형태로서 우선 안맺음씨끝 '-이-'와 '-습-'이 있고, 또한 특별히 높임의 기능만을 담당하는 토씨 '요'가 있다. 그러나 상대 높임법의 가장 전형적인 표지로는 마침법의 맺음씨끝이라 할 것이다.
    서남 방언에서의 사정도 표준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방언에서 안맺음씨끝 '-이-'와 '-습-'을 찾아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음의 예가 이들 형태들을 보여 준다.

(10) 내가 허리다. (내가 하겠습니다.)
(11) 날이 좋습디다. (날씨가 좋더군요.)
(12) 차말로 간답디여? (정말로 간대요?)

겉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허리다'가 '허-리-이-다'로, 그리고 '좋습디다'가 '좋-습-드-이-다'로, 또한 '좋습디여'가 '좋-습-드-이-어' 등으로 분석될 수 있으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상대 높임의 표지인 '-이-, -습-' 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두 종류의 안맺음씨끝의 유무에 의해 서남 방언의 상대 높임법은 일단 [+높임]과 [-낮춤]의 두 단계로 나뉠 수 있다.
    3.2. 표준어에서 토씨 '요'가 높임의 기능을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것이지만, 서남 방언이 이를 대신하여 '-라우'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다지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이 형태는 이미 小倉(1944)에서 언급된 바 있기도 하다. 다음의 예가 이 형태의 쓰임을 보여 준다.

(13) 어ː서 자끄라우? (어디에서 잘까요?)
(14) 집이서라우. (집에서요.)
(15) 차말이라우? (정말이요?)

이 '-라우'의 쓰임은 표준어의 '요'와 완전히 일치하므로 구태여 장황한 예나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라우'는 충청도 방언의 '-유,' 경상도 방언의 '-예' 그리고 제주도 방언의 '-마씀' 등과 함께 표준어의 '요'에 대응하는 각 방언들의 대표적인 형태들이라 할 수 있다.
    형태적으로는 다르지만 '-라우'가 표준어의 '요'와 기능상으로 완전한 일치를 보이고 있으므로 '-라우'의 존재는 서남 방언의 대단한 특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서남 방언의 상대 높임을 나타내는 토씨 가운데 '야'의 존재야말로 이 방언의 한 특징을 보인다고 하겠다. '야'는 그 기능에서 높임의 '-라우'와 대립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의 예를 보기로 하자.

(16) 요곳 잔 묵어 바야. (이것 좀 먹어 봐.)
(17) 집이서야? (집에서?)
(18) 낼ː도 가지야? (내일도 가지?)

'야'는 주로 반말에 붙는다는 점에서 '-라우'와 거의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그리고 반말이 '해라체'와 '허소체'에 걸쳐 두루 쓰이는 등분이라면, 여기에 '야'가 붙은 형태는 '해라체'로 고정되는 특징을 갖는다. 반말의 표현과 토씨 '야'의 차이가 이 점에 있다. 따라서 서남 방언은 '-라우'와 '야'라는 두 토씨에 의해 높임('허씨요체')과 낮춤('해라체')의 이분적 대립 양상을 보인다고 하겠다. 이 대립의 양상이야말로 서남 방언이 보여 주는 상대 높임법상의 커다란 특징인 셈이다.

3.3. 서남 방언의 상대 높임법의 또 다른 특징으로서는 그 등분을 들 수 있다. 한국어의 마침법의 맺음씨끝이 들을 이에 대한 말할 이의 높임의 정도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 높임의 정도를 흔히 상대 높임의 등분(speech level)이라 하는데 등분의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 표준어와 서남 방언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표준어의 상대 높임 체계는 대체로 '합쇼체-하오체-하게체-해라체'의 네 등분으로 나뉘고, 여기에 '합쇼체 -하오체'와 같은 높임의 등분에 두루 사용되는 '반말+요'와 '하게체-해라체'의 낮춤 등분에 두루 쓰이는 '반말' 등으로 짜여 있다(성기철 1985). 표준어의 등분 가운데 '하오체'와 '하게체'는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이 두 등분은 말할 이가 들을 이를 어느 정도 대접하는 의식을 나타내며, 또한 이런 등분의 말은 적어도 중년 이상의 나이 든 말할 이들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못하는 등분이라는 점에서도 두 등분이 공통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이익섭/임홍빈 1983:230~234).
    서남 방언의 상대 높임의 등분에 대해서는 박양규(1980)에서 각주를 빌어 그 요체가 간단히 거론되었고 구체적인 씨끝들에 대한 기술은 이기갑(1982)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박양규(1980)에서는 우선 이 방언의 상대 높임 체계가 '허씨요체-허소체-해라체'의 세 등분으로 짜여져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방언에도 '해라체'와 '허소체'에 두루 쓰이는 '반말'과, '허씨요체'에 두루 쓰이는 '반말+라우'가 있어 이원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기는 하다. 따라서 표준어와 서남 방언의 상대 높임법 체계를 비교할 때 나타나는 두드러진 차이는 표준어의 '하오체'와 '하게체'에 대해 이 방언이 단일한 등분인 '허소체'를 대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서남 방언의 '허소체'의 쓰임은 표준어의 '하오체-하게체'와는 사뭇 다르다. 표준어의 '하오체-하게체'가 현대에 와서 그다지 활발한 쓰임을 갖지 못하는 표현임에 반해 서남 방언의 '허소체'는 사용의 빈도나 분포에 있어 결코 쇠퇴의 기미를 엿볼 수 없는 등분이다. 또한 '하오체-하게체'가 중년 이상의 말할 이를 요구하는 제약을 갖는다면, 서남 방언의 '허소체'는 청년층에서도 대단히 활발하게 사용되는 등분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이러한 차이를 갖기는 하지만 서남 방언의 '허소체'는 표준어의 '하게체'와 비슷한 지위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이 등분에 대응하는 이인칭 대명사가 '자네'라는 점에서 표준어의 '하게체'와 완전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 등분을 표시하는 씨끝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표준어의 '하게체'는 대체로 '-게, -네, -(으)ㄹ세, -나, -세'와 같은 씨끝들을(이익섭/임홍빈 1980:230), 그리고 '허소체'는 '-소, -네, -이시, -은가, -세, -제, -음시, -으께, -드라고'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형태들을 표준어와 비교하면 표준어에 없는 어형을 제외할 경우 명령의 '-소'와 물음의 '-은가'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1)

(19) 자네 요리 좀 오소. (자네 이리 좀 오게.)
(20) 자네가 질ː 잘허네. (자네가 제일 잘하네.)
(21) 그렁께 말이시. (그러니까 말일세.)
(22) 자네는 지끔 어ː디가 있는가?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
(23) 기양 가세. (그냥 가세.)
(24) 폴ː쎄 다 했제? (벌써 다 했지?)
(25) 자네한테 다 줌시. (자네한테 다 줌세.)
(26) 인자 슬슬 가 보께? (이제 슬슬 가 볼까?)
(27) 그만 가 보드라고. (그만 가 보지.)

그러나 등분을 표시하는 구체적인 형태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쓰임의 세세한 내용에 있어서는 '하게체'와 '허소체'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표준어에서 '하게체'의 쓰임을 결정하는 조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말할 이: 장년 이상
들을 이: 청년 이상
상황: [+격식성]

표준어에서는 장년 이상의 말할 이가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청년 이상의 들을 이에게 어느 정도의 격식을 갖추면서 하는 전형적인 말투가 바로 이 '하게체'이다. 대표적으로는 장모가 사위에게, 아버지가 성인이 된 아들 친구에게, 손위 동서가 손아래 동서에게, 그리고 대학의 교수가 대학생 제자에게 하는 말투인 것이다 (이익섭/임홍빈 1980:230).
    이에 반해 서남 방언의 '허소체'는 그 쓰임새가 상당히 다르다. 우선 '허소체'의 쓰임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말할 이: 청년 이상
들을 이: 청년 이상
상황: [-격식성]

원칙적으로 서남 방언에서의 '허소체'는 청년 이상의 말할 이가 청년 이상의 들을 이에게 하는 말투이다. 이를 표준어와 비교하면 말할 이의 세대가 이 방언에서는 청년까지 낮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서남 방언에서는 대학생 정도의 연령층에서도 이 말투는 대단히 활발하게 사용된다. 또한 표준어에서는 대체로 말할 이가 들을 이보다 높은 나이일 경우에 쓰이는 것이 예사임에 반하여, 서남 방언의 경우는 말할 이가 들을 이보다 나이가 많을 때뿐 아니라 비슷한 경우에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학생 동급생끼리의 전형적인 말투로 쓰이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친밀감이 깊어지면 '해라체'의 사용이 편할 것이지만 대학생들의 경우 약간의 어른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흔히 '허소체'가 사용되고 있다. 한편 남편의 아내에 대한 말투도 서남 방언의 경우는 전형적인 '허소체'가 쓰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남 방언의 '허소체'는 표준어의 '하게체'의 쓰임의 범위를 포괄하면서 이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말투임을 알 수 있다.
    '허소체'가 표준어의 '하게체'와 다른 특징의 하나는 그것이 [-격식성]을 띠고 있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하게체'의 쓰임의 분포가 좁고, 또한 쓰이는 경우에도 말할 이가 들을 이에 대한 약간의 대접 의식이 스며 있는 표현법이라면, '허소체'는 훨씬 넓은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기에 상대방에 대한 대접 의식보다는 오히려 친밀감의 표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허소체'가 친밀감의 표현이라는 사실은 이것이 청년층 이하의 세대에 나타나는 특이한 쓰임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28) 누ː님, 어ː디 강가? (누나, 어디 가?)
(29) 성, 나랑 같이 가세. (형, 나랑 같이 가.)

위의 예는 어린아이나 청소년들이 자신의 형이나 누나에게 사용하는 말투의 하나이며, 이 말투에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친밀감이 다분히 들어 있다. 제1장에서 언급한 '자네'의 특이한 용법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윗사람에게까지 가능한 '허소체'의 쓰임은 전라남도 안에서도 일부의 지방에 한한다. 대체로 광주를 중심으로 한 서북부 지방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투이다. 이러한 '허소체'의 쓰임이 극단화되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말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30) 엄니, 지끔 멋 헝가? (엄마, 지금 무엇 하셔요?)

물론 부모에게 사용되는 '허소체' 역시 전라남도 방언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 가정의 성격에 따라 출현 가능성이 달라지는 예라 할 것이다. 비교적 부모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며 아이들과의 관계가 친구와 같이 친밀한 가정, 그리고 아이들의 말투에 대해 관대한 가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이러한 '허소체'의 쓰임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 등분이 표준어의 '하게체'와 달리 [-격식성]을 그 사용의 조건으로 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이다.
    서남 방언의 '허씨요체'는 체계상으로는 가장 높은 등분이다. 그러나 방언의 본질적 성격이 입말 투의 언어이기 때문에 '허씨요체'가 비록 방언의 토착적인 표현으로서는 최상의 등분이기는 하지만 격식성을 결여한 등분이라는 점에서 표준어와는 차이를 보인다. 성기철(1985: 141)에서 도표로 보여 주었듯이 대부분의 학자들은 표준어의 최상위 등분인 '합쇼체'가 [+격식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서남 방언의 '허씨요체'는 이와 달리 [-격식성]의 말투인 것이다.

(31) 낼ː또 비가 안 온닥 허요. (내일도 비가 안 온다고 해요.)
(32) 비도 겁ː나게 옵디다. (비도 엄청나게 옵디다.)
(33) 요새 집이 아그들 어ː디가 있소? (요새 댁의 아이들 어디에 있습니까?)
(34) 모다 항꾼에 간답디여? (모두 한꺼번에 간다고 하던가요?)
(35) 집이가 허씨요. (댁이 하십시오.)
(36) 내립시다. (내립시다.)
(37) 그러지라우. (그러지요.)
(38) 어ː따 쓰끄라우? (어디에 쓸까요?)
(39) 어찔라고 조로큼 큰다우? (어쩌려고 저렇게 큰대요?)

한편 '허씨요체'와 같은 등분의 높임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격식성]을 갖춘 표현들이 이 방언에도 있다. 예를 들어 '-습니다, -습니까, -요'와 같은 표준어적 표현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결국 표준어에서 유입된 어형이 토착적인 어형에 비해 더 격식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주는 예라 할 것이다.

(40) 차말로 좋습니다. (정말로 좋습니다.)
(41) 낼ː은 멋 허실랍니까? (내일은 무엇 하시렵니까?)
(42) 비도 많이도 오구만이요. (비도 많이도 오네요.)

필자의 방언 조사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시골의 중장년의 제보자들이 대학 교수의 신분을 가진 방언 조사원들에게 하는 전형적인 말투가 바로 위와 같은 예이다. 위의 각 문장이 격식성을 나타낼 필요가 없을 경우에는 대체로 토씨 '-라우'가 첨가된 다음의 예로 바뀔 것이다.

(43) 차말로 좋아라우.
(44) 낼ː은 멋 허실랑그라우?
(45) 비도 많이도 오구만이라우.

표준어와 토착적인 방언 표현 사이에 높임의 등분이나 격식성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방언마다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 점에서 서남 방언의 예도 결코 예외나 특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각 방언의 높임법 체계를 기술하면서 방언의 고유한 표현에만 집착하다 보면 방언과 표준어가 공존하여 사용되는 현실을 무시하게 될 뿐 아니라, 두 상이한 언어 체계가 하나의 방언 체계에서 공존하면서 빚어내는 섬세한 말맛의 차이 등을 놓칠 염려가 있기에 여기에서 간단히 언급하였다.

4.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서남 방언의 높임법 가운데 주체 높임과 상대 높임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 객체 높임법을 제외한 것은 이 범주가 현대 표준어에서도 그다지 생산적인 높임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에 있어서도 서남 방언과의 특별한 차이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각 방언이 독자적인 높임법 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서남 방언의 예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글이 서남 방언의 높임법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이 아닌, 표준어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기술이기는 하나, 이를 통하여 이 방언의 특징적인 높임법 현상이 어느 정도는 파악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특히 주체 높임의 '게'와 상대 높임에서의 '허소체' 등이 이 방언의 특징적인 것이었음을 결론적으로 지적하고 싶다.

5. 참고 문헌
박양규(1980), 서남 방언 경어법의 한 문제: 이른바 주체 존대법에 나타나는 '-게-'의 경우, 방언 3.
성기철(1985), 현대 국어 대우법 문제, 개문사.
이기갑(1982), 전남 북부 방언의 상대 높임법, 언어학 5.
------(1986), 전라남도의 언어 지리, 탑 출판사.
이익섭/임홍빈(1983), 국어 문법론, 학연사.
小倉進平(1944), 朝鮮語 方言の 硏究, 岩波書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