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경어법의 변천
Ⅰ
"임금님, 어찌 저를 모르십니까?"---- 아득한 옛날, 서천국의 사라수 왕을 찾아온 한 중이 자기 소개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그의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임에도, 얼른 알아보지 못한 왕이 그에게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1459년(세조 5년) 간행의 '월인석보'란 책에 실려 있는 안락국 설화의 한 장면이다. 물론 위의 인용문은 잠시 현대어로 번역해 본 것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월인석보'는, 그보다 10년 남짓 전에 간행된 '석보상절'와 함께, 국어사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어 온 문헌이다. 특히 경어법의 연구에서 그러하였다. 이 두 책에는 흔히 연기 설화라 부르는 불교 서적 특유의 옛날 이야기들이 담뿍 실려 있고, 이야기 하나하나는 다양한 인물들 사이의 생생한 대화 속에서 전개된다. 적어도 이 시기의 언어생활에 관한 한,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울 많은 정보들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위 예문의 밑줄 친 부분들만으로도, 부지런한 독자는 중세 선인들의 말이 오늘 우리의 것과 같지 않았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국어의 역사를 말할 때에는 이를 고대, 중세, 근대의 세 단계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대략 10세기 초로부터 16세기 말에 걸친 시기의 국어를 중세 국어, 그 이전과 이후의 국어를 각각 고대 국어와 근대 국어라 한다. 10세기 초는 신라의 멸망과 함께 고려가 건국된 시기이고, 16세기와 17세기의 교체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때이다.(1) 오늘의 국어를 가리키는 현대 국어는, 국어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근대 국어의 최근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국어에 대하여는 다시 전기와 후기의 두 단계를 두기도 하는 데, 여기서 후기라고 하면 대략 15세기와 16세기의 약 200년간을 뜻하게 된다. 위에서 본 '월인석보'의 예문은 바로 이 후기 중세 국어의 초기 자료가 되는 셈이다.
국어사의 각 단계에 있어서 우리 선인들이 사용한 경어의 옛 모습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오늘의 경어법이 이루어지게 된 과정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라는 것이 이 글에 맡겨진 임무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지면을 거의 후기 중세어의 경어법을 말하는 데에 써야 할 것 같다. 문법사의 다른 주제들도 대체로 비슷한 사정이겠으나, 특히 경어법의 경우, 그 윤곽이나마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것은 이 후기 중세어의 것에 한한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거의 이 시기의 것에 집중되어 왔던 것이다. 고대어나 전기 중세어에 대한 연구가 적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을 머금은 채 이루어진 것들이고, 근대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아직 최근의 일이다. 이제부터 후기 중세 국어를 가리킬 때는 단지 중세어라 부르기로 한다.
Ⅱ
중세어의 경어법에는 흔히 '-시-'와 '--,' 그리고 '--'로 대표되는 세 가지의 하위 범주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용언의 활용 어미로,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 또는 서술격 조사 '이다'의 '이-' 뒤에 연결되어, 그 용언의 경어형을 형성하였다.(2) 하나의 용언에 둘 이상이 연결되기도 하였는데, 그런 경우에는 먼저 '--'이 오고, 다음은 '-시-,' 그리고 '--'는 마지막이었다. 이 세 어미의 기능은, 문제의 인물이 가지는 문장과의 관련에 있어서, 서로 엄격히 구별되었다. 따라서 둘 이상이 연결된 경우라 하더라도 혼동의 우려는 없다.
(2)의 밑줄 친 부분에는 '--'과 '-시-'의 두 어미가 들어 있는데, 이들은 각각 목적어인 '여래(如來),' 주어인 '마야 부인(摩耶夫人)'과 관련되어 있다. (3)에서는, '-시-'는 주어 '마야 부인'을, 그리고 '--'는 이 문장의 청자(聽者)인 '세존(世尊)'을 향하고 있다. (4)의 '-시-'와 '--'는 모두 '대왕(大王)'을 향하고 있으나, 이것이 곧 이 둘 사이의 혼동이나 중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은 문두(文頭)의 호격어 (呼格語)와 마찬가지로 '대왕'을 지시할 생략된 주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여기서의 '-시-'와 '--'는 각각 주어로서의 '대왕'과 청자로서의 '대왕'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5)에는 세 어미가 모두 보이는데, 여기서도 '--'은 목적어인 '여래'와, '-시-'는 주어인 '마야 부인'과, 그리고 '--'는 청자인 '세존'과 관련되고 있다. '여래'와 '세존'이 실제로는 동일인이라 하더라도 이 문장에서의 역할은 전혀 다른 것이다.
동사와 형용사 및 서술격 조사 '이다'를 포함하여, 중세어의 거의 모든 용언은 위 세 어미로 형성되는 경어형을 가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들을 흔히 문법적 경어라 부른다. 고대어나 전기 중세어 역시 이 세 범주를 가졌던 것 같다. 향가에 보이는 '腸, 白, 音' 등이, 아직 독법(讀法)이 확정된 것은 아니나, 각각 '-시-, --, --' 또는 그 소급형(遡及形)을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특히 '白'은 동사 '-'의 석독자(釋讀字)로도 쓰였던 것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의 어원을 '-'의 문법화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직 그 진위(眞僞)를 판가름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나, 국어 경어법의 발생을 밝히는 일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단, 이 '-'은 근대어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 역시 지금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우리만큼 커다란 변화를 입었다. 중세어로 한정해서 말한다 하더라도, 세 범주의 문법적 경어에 대한 위의 설명에는 아직 보완되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이를 위하여는 다음 Ⅲ, Ⅳ, Ⅴ의 세 장(章)을 할애하고, 여기서는 잠시 그에 속하지 않는 경어들 쪽으로 눈을 돌려 보기로 하자.
현대어에는 그 자체로서 경어적인 용법을 가지는 단어들이 상당수 있다. 이른바 어휘적 경어에 속하는 것들이다. '계시다(있다), 주무시다(자다), 잡수시다(먹다), 자시다(먹다)' 등은 괄호 속의 평어(平語)들과는 어기(語基)가 다르나, 어간(語幹)의 일부로 '시'를 가지고 있고, 기능적으로도 '-시-'의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의 '계-, 주무-, 잡수-, 자-' 역시 국어사의 어느 단계에는 독자적인 어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중세어 자료를 보면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은 오히려 적었던 것 같다. '계시다'의 소급형인 '겨시다(이시다, 잇다)'와 '자시다'의 소급형인 '좌시다(먹다)'는 있었으나, '자다'에 대하여는 '주무시다'에 해당하는 경어가 없었고 '-시-'를 가진 '자시다'가 사용되었다. 현대어의 '모시다(데리다), 드리다(주다), 뵙다(보다), 여쭙다(말하다)' 등은 괄호 속의 평어들과 어기도 다르고 '--'에 해당하는 부분을 추출해 낼 수 없는 것도 있으나, 기능적으로는 중세어의 '--'의 범주와 동일하게 다루어진다. 그리고 이들에 대하여는 중세어에서 소급형을 찾을 수 있다. '엳다, 뵈다, 드리다, 뫼다' 등. 이 밖에도, 오늘날에는 이미 쓰이지 않게 된 '받다, 다' 등이 각각 '받다, 니르다'와 대립하여 경어적으로 쓰였다.
현대어의 '진지(밥), 말씀(말), 치아(이), 생신(생일)' 등의 명사들도 괄호 속의 평어들과 대립하는 어휘적 경어들이다. 단, 이들에 의하여 표현되는 경의는 그 지시 대상 자체를 향하기보다는 그와 관련된 어떤 인물을 향하는 것으로, 이른바 간접 존대에 쓰인다. 그러나 중세어에는 이 간접 존대의 명사가 많지 않았다. '밥'에 대한 '진지, 뫼'의 예가 16세기 말에 보일 뿐이다. '말'에 대한 '말'이 있기는 하였으나, 이들이 경어적으로 대립한 것 같지는 않다. '나랏말미'(훈민정음 언해)와 '세존ㅅ말'(월인석보 1:1)에서처럼 우리의 예상과는 반대로 쓰인 경우도 있다. '치아(이)'의 경우처럼 고유어보다는 한자어 쪽이, 그리고 '생신(생일)'의 경우처럼 일상적인 한자어보다는 생소한 한자어 쪽이 경어적인 뉘앙스를 띠기 시작한 것은 국어사에서 보면 극히 최근의 일에 속한다. 다음은 1832년 추사(秋史)가 그의 부인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구절인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생일을 '생신'으로 말하고 있다.
인물을 가리키는 명사 가운데도 경어적으로 쓰이는 것이 있었다. 단, 접미사 '-님'에 의한 존칭 명사의 형성은 중세어에서도 확인되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고, '형님'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고유어로 한정되었다. 따라서 중세어에서는 동일한 명사가 '-님'과 같은 절차 없이도 존칭과 평칭의 양쪽으로 쓰이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월인석보'의 본문 속에는 오늘로 치면 내각주(內脚註)라 할 주석문이 여기저기 들어 있는데, 다음 (7)도 그러한 주석문의 예이다.
이것은 '폐하(陛下)'가 '황제(皇帝)'를 지시하는 데에 쓰이는 존칭 명사임을 설명한 것이나, '다'가 가지는 경어적 기능의 본질적 특성 하나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예이다. 존귀한 황제가 좌정하고 있는 '버'(뜰의 계단)의 위를 바로 쳐다보는 것은 무엄한 일이니 마땅히 머리를 조아려 그 아래를 대하는 것이 신하된 자의 도리라는 것인데, 현대어의 다음 예문에서 밑줄 친 '사랑'이 '할아버님'이나 '아버님'을 대신하여 집안의 가장을 지시하게 되는 것과 같은 발상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한 명사를 존칭으로 다루는 것은, 문법의 어느 층위에서건, 그것이 형태적으로 평칭과 대립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중세어에는 명사가 평칭이 아닌 존칭으로 쓰였음을 드러내는 표지로, 평칭의 '의'에 대립하는 존칭 속격(屬格)의 'ㅅ'과, 평칭의 '아'에 대립하는 존칭 호격(呼格)의 '하'가 있었다.
여격(與格)의 평칭 '의게'와 존칭 ''의 대립은 속격에서의 대립에 기초한 것이었다. 존칭 호격의 '하'는 근대 국어 이후에 소멸하였는데, 그 결과, 평칭 명사와 형태적으로 구별되지 못하는 존칭 명사는 더 이상 호격어로 쓰일 수 없게 된다. 단, '-님'에 의하여 평칭과 구별되는 존칭 명사는 호격 조사 없이도 호격어가 될 수 있다. 위 (11가)의 '大王하'를 이 글의 서두에서 '임금님'으로 번역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대명사의 경어에서도 중세어에는 현대어와 다른 점이 있었다. 예컨대, 재귀사로 쓰인 평칭의 '저'와 존칭의 '갸'는 그 경어적 대립이 매우 뚜렷하였다. 이 '갸'는 근대어에 들어서면서 '당신'으로 대치된 것 같다. 또 하나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일인칭 대명사로 현대어의 '저'에 해당하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손윗사람 앞에서도 자신을 '나'라고 하였다. 이는 근대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가 일인칭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에 대하여는 아직 보고된 바가 없으나, 이것이 일반화된 것은 아마도 지난 19세기 말을 크게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할 것이다.(3)
Ⅲ
문장의 수준에서 경어를 기술할 때에는 우선 그에 관련된 인물을 네 부류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 그리고 주체(主體)와 객체(客體)가 그것이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것은 문제의 인물이 가지는 문장과의 관계이다. 화자와 청자에 대하여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나, 주체와 객체를 위하여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다. 개념 자체의 불투명함도 있고, 연구자들 사이의 불일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체는 문장의 주어가 지시하는 인물을, 객체는 그 밖의 성분이 지시하는 인물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 두기로 하자.
앞에서 말한 중세어의 문법적 경어들 가운데, '-시-'의 범주는 현대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즉, 화자보다 주체가 상위일 때에 쓰였다. 여기서 상위란 신분 또는 항렬이 높거나 나이가 많음을 뜻하나, 이 객관적인 상하 관계가 절대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화자에 따라 상하 관계의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이를 역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위의 두 대화는 모두 Ⅰ에서 말한 안락국 설화의 장면에서 인용한 것으로, 광유성인(光有聖人)은 석가모니의 전신(前身)이고, 사라수왕(沙羅樹王)과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은 각각 아미타불과 문수보살의 전신이다. 이 설화 속에서도 성인의 신분은 왕보다 높고 비구는 가장 낮은 것으로 되어 있다. (15나)에는 '-시-'가 없고 (15라)에는 있는 것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월인석보'의 집필자들(화자)을 기준으로 하면, 성인과 왕은 상위자이고 비구는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15가, 16가)에는 '-시-'가 있지만 (15다, 16다)에는 없다. 그런데 (16나, 라)에서 왕과 중은 서로를 존대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객관적인 상하 관계를 무시한 것은 물론 왕 쪽이다.
주체라는 말을 쓸 때는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이를 주어가 지시하는 인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 때의 주어와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 온 주어의 개념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둘 이상의 주어가 상정되는 이른바 이중 주어문의 경우에 그러한데, 이때의 '-시-'는 그 첫 번째 주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향하는 것이 보통이다. 먼저 현대 국어의 예를 보자.
위 (17, 18)은 모두 피동사의 문장이고, '김 선생님'이 그 주어이다. 두 경우 모두, 그에 해당하는 능동사문에서라면 목적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7)만이 서술어에 '-시-'를 가지고 있다. (18)에 '-시-'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김 선생님'이 존대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님'의 존재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18)이 문면(文面)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또 하나의 주어를 가진 이중 주어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19가)가 그것이다. 이 (19가)를 (19나)와 비교해 보면, '-시-'의 쓰임을 결정하는 것은 문두(文頭)의 주어 쪽임을 알 수 있다. '-시-'가 향하는 대상이 표면상의 주어와 맞지 않는 경우는 이와 같은 이중 주어문일 때가 많다. 이번에는 중세어의 예를 보자.
(20가, 나)는 문면의 주어가 속격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같고, 그 속격 성분이 지시하는 인물은 모두 존대의 대상이나, '-시-'는 (20가)에만 보인다. 그리고 (21가, 나)는 문면의 주어가 관형절의 수식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같고, 그 절 속의 주어가 지시하는 인물들 역시 모두 존대의 대상이나, '-시-'는 (21가)에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위의 (17~19)에서와 같은 설명 방법이 적용될 수 있다. 즉, (20가, 21가)에 대하여는 문제의 성분을 또 하나의 주어로 하는 이중 주어의 구조가 상정될 수 있으나, (20나, 21나)는 그러한 구조의 상정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 위의 (15라) 역시 그러한 이중 주어문의 예였다.
현대어에는 존칭의 주격(主格)으로 '께서'가 있어 이것이 '-시-'와 호응하는 것이 일반인데, 중세어의 주격에는 존칭과 평칭의 구분이 없었다. 그리하여 '-시-' 범주의 문장에도 '이'가 쓰였다. '께서'의 출현은 근대어 단계에 와서의 일로 여겨진다. 17세기 초의 자료로 추정되는 '첩해신어'(간행은 1676년)에 보인다. 이 '께서'는 Ⅱ에서 말한 여격의 ''와 '에서, 로서' 등에서 보는 '서'의 결합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요즈음에는 잘 쓰이지 않는 것이지만 '께옵서'의 소급형이라 할 '겨셔, 겨오셔'가 있는데, 이 역시 근대어의 자료에 나타난다.
Ⅳ
'--'의 범주는 중세어의 경어법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 온 주제이다. 지금은 없는 범주라는 점이 오히려 관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나, 그만큼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다행히 Ⅱ에서 말한 '모시다, 드리다, 뵙다, 여쭙다' 등, 이 '--'의 범주와 동렬에 서는 어휘적 경어들이 있어, 이것이 연구의 방향을 바로잡아 나가는 데에 기여한 면도 또한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쓰이기 위한 기본 조건은 주체보다 객체가 상위일 때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체에 대하여는 이미 말한 바 있으나, 객체를 위하여는 아직 부연이 필요하다. 앞에서 우리는 이를, 잠시 주어 이외의 문장 성분이 지시하는 인물로 이해하기로 한 바 있다. '--'이 쓰인 예들을 최대한 포괄하기 위한 조처였으나, 이로써 충분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분명히 '--'이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상위의 객체를 지시할 만한 성분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는 점이다. 전후 문맥을 통하여 생략된 성분을 복원하는 것은 물론, 문면에 드러나지 않은 수식어를 보완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25,26)에서 '보-, 묻-'의 객체가 되는 것은 목적어 및 여격어(與格語)로 지시된 '대왕(大王), 문수(文殊)'이고, 이들은 각각 그 주체인 '비구(比丘), 금색녀(金色女)'보다 상위의 인물들이다. 이와 같이, '--'의 쓰임에 관련된 객체는 목적어나 여격어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27)에서는 '아바님'이 목적어를 수식하는 자리에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이 쓰였다. (28)에는 '듣-, 좃-'의 객체가 나타나 있지 않으나, 각각 '대왕의 말, 대왕'을 지시할 목적어가 생략된 문장이다. 그러나 (29~3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의 쓰임에 관련되는 객체는 반드시 목적어나 여격어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이 쓰인 절(節) 속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31)은 "대왕으로부터 채녀(婇女)로 삼을 여인을 빌러 대왕의 궁전인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니, 여기서 '비-, 오-'의 '--'과 관련된 상위의 객체는 모두 종속절 속의 '대왕'이다.
용언이 뜻하는 동작이나 상태를 주체의 것이라 할 때, 여기서 객체가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를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극의 한 장면에 비교해 보기로 하자. 주체는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이고 객체는 그 밖의 인물들이다. 이 장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주체의 움직임이지만, 그렇다고 객체들의 거동이 전혀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역시 주체의 동작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체가 한 객체를 구타한다고 치자. 객체는 지금 주체를 향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도망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을 수도 있다. 주체의 연인일 수도 있고, 이를 가로채려는 연적일 수도 있다. 무대 위에는 때리는 자와 맞는 자 둘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객체가 그의 구타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주체의 때리는 동작이 조금씩 그 양상을 달리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객체들 가운데 주체보다 상위인 인물이 있다면, 그 역시 주체의 동작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체는, 자신의 행위가 그 상위의 객체를 향한 것일 때는 두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그러한 객체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동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황제를 바로 부르지 못하여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조아려 '버아래 '는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속도는 늦추고 음성은 낮추는 정도의 예절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예의 바른 주체라면, 지금의 무대에는 그가 없다 하더라도, 그와 관계된 행위에 대하여는 삼가는 태도를 취하는 법이다. 중세어의 '-'은 바로 이 삼가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4)
객체가 주체보다 상위라는 것은 '--'이 쓰이기 위하여 필요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조건은 못 된다. 화자 자신이 객체일 경우에 '--'이 쓰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나, 그 객체보다 화자가 상위일 때 역시 '--'은 쓰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32가, 나)는 모두 석가모니의 전신이었던 인욕태자(忍辱太子)의 일을 말한 것으로, 객체인 태자가 주체인 대신보다는 상위이다. 그러나 (32가)에는 '--'이 보이지 않는데, 석가가 자신의 일을 말한 것이기 때문이 다. 동일한 일을 세종(世宗, 집필자)이 말한 (32나)에는 '--'이 들어 있다. (33)은 객체(관세음보살)가 주체 아난, 위제희)보다는 높으나 화자(부처)보다는 낮은 경우인데, 이런 경우에도 '--'은 쓰이지 않았다.
'--'의 범주가 문법적 경어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 것은 아마도 중세어와 근대어의 교체기 또는 그 이전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그 과정은 아직 잘 밝혀져 있지 못하다. 16세기 초의 문헌으로 추정되는 '번역박통사'까지만 해도 엄격히 지켜지던 '--' 사용 조건이 17세기 초의 자료인 '첩해신어'에 오면 갑자기 변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 사이의 변화를 보여 줄 만한 자료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이, 상위의 객체를 향한 주체의 삼가는 동작이 아니라, 상위의 청자에 대한 화자 자신의 공손한 진술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다.(5) 다음 예문에서 그러한 변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34)에서는 주체가 청자이고 객체가 화자이며, (35)에서는 주체(청자)보다 상위인 객체가 상정될 수 없고, (36)에서는 주체(동래 부사)가 객체(화자의 무리)보다 상위이므로, 모두 '--' 본래의 사용 조건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35, 36)에서의 '--'의 위치는 '-시-'는 물론 '-었-'보다 뒤로 밀려나 있는데, 이는 '--'이 이후의 변화에서 형태적으로도 '--'의 범주에 합류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Ⅴ
'--'의 범주는 화자보다 청자가 상위일 때 쓰여, 화자의 말을 공손한 것이 되게 하였다. 이것이 '-시-'나 '-'의 범주와 다른 점은 항상 주절의 서술어로만 쓰였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문장에 한 번만 쓰일 수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의 위치는 문장 종결 어미의 바로 앞이었다. 중세어에서는 이 '--'와 종결 어미의 구분이 분명하였다.
위 (37~41)은 각각 서술, 판정 의문, 설명 의문, 청유, 명령의 문장 종결 형식들을 화자보다 청자가 상위인 경우(가)와 그렇지 않은 경우(나)로 나누어 본 것이다. 현대어의 예를 좇아 (37가~41가)를 '쇼tu'체, 그리고 (37나~41나)를 '라'체라 부른다. 명령과 청유의 경우를 제외하면, '쇼셔'체와 '라'체는 모두 밑줄 친 부분이 '--'의 있고 없음에 의하여 대립하고 있다. (40)의 청유문에서는 '라'체가 '-져'로 되어 있어 사정이 다르나 '쇼셔'체에는 역시 '--'가 들어 있다. 단, (41)의 명령에는 '-쇼셔'와 '-라'에 공통점이 없을뿐더러 '쇼셔'체에도 '--'가 없으므로 이 범주에서는 예외적인 존재이다. 명령문에서는 행위의 주체가 청자와 일치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에 '-시-'가 들어 있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하나 그 이상의 것에 대하여는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현대어에 있어서의 청자에 대한 경어로는 흔히 '합쇼체, 하오체, 하게체, 해라체' 등의 등급을 나누고 여기에 다시 '해요'체와 '반말'체를 두기도 하는데, 중세어는 등급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실제 용례(用例)가 많지는 않지만,(6) '쇼셔'체와 '라'체 사이에 들 만한 것으로 '-다(서술), -ㅅ가(의문), -어쎠(명령)'의 '야쎠'체가 있었다.
위 대화의 호미(護彌)와 수달(須達)은 사돈이 될 두 대신(大臣)으로, 서로에게 같은 등급의 경어를 사용하고 있다. (42나)의 '닛가'와 (42다)의 '듣더시닛가'에 같은 '-ㅅ가'가 쓰인 것이 이를 말해 준다. (42다)에 2인칭의 '그듸'가 쓰인 것을 보면 이 '야쎠'체는 대체로 현대어의 '오'체에 해당되는 것 같다. '라'체에서라면 2인칭으로는 '너'가 쓰였을 것이고 '쇼셔'체에서라면 청자를 2인칭 대명사로 지시하지는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42나)의 '닛가'에는 '-시-'가 없고, (42다)의 '듣더시닛가'에만 있는데, 이는 현대어의 '하게'체나 '하오'체가 '어서 오(시)게, 어디 가(시)오?'에서와 같이 '-시-'를 가질 수도 안 가질 수도 있음과 유사하다.
이 '야쎠'체까지를 포함할 때, 우리는 중세어의 문장 종결 형식으로 공손의 세 등급을 가지는, 그런 대로 가지런한 체계를 그려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등급의 체계와 위에서 말한 현대어의 그것 사이에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여기서 반말체와 '해요'체를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7) '합쇼'체와 '쇼셔'체 사이에는 상당한 형태적 차이가 있고, '하오'체나 '하게'체 어느 쪽도 '야쎠'체로부터의 발달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로부터 우리는 공손의 등급을 포함한 문장 종결 형식의 전면적인 개편이 근대어의 단계에서 이루어졌을 것임을 짐작하게 되는데, 그 첫 모습을 '첩해신어'에서 찾을 수 있다.
위의 예들은 '라'체를 제외한 네 등급의 문장 종결 형식을 서술(가), 의문(나), 명령(다), 청유(라)의 네 범주로 나누어 본 것이다. 이를 대충 훑어보면 (43, 44)는 모두 '--'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45, 46)과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그 본래의 기능을 잃고 청자에 대한 공손을 나타내게 되었다 함은 앞에서 말한 바이거니와, 위 (43, 44)는 주절의 서술어에 쓰인 '--'이 이미 '--'의 범주에 합류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45)는 중세어의 '쇼셔'체에서 ''의 ''이 소실된 결과이나, (46)은 중세어에서는 거의 볼 수 없던 문장 종결 방식이다. 어느 사이에 '야쎠'체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청유형의 예가 보이지 않으나, (44라)를 고려하면, '새'또는 '하' 정도의 어형이 채워질 가능성이 있다.
현대어의 '합쇼'체와 '하게'체는 (43)과 (46)이 각각 (44) 및 (45)와의 경쟁에서 이긴 결과로 여겨진다. (44)과 (46) 역시 일부에서는 최근까지도 쓰여 왔으나 요즈음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단, (46)의 서술형과 명령형을 보면 '하게'체와 '하오'체에 해당하는 등급이 아직 분화되기 이전의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서술형의 '-'는 '쇼체'의 '-이다'로부터 '-이다'가 잘려 나간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명령의 '-소'는 중세어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이다. 의문의 '-가'는 중세어의 '눈에 보논가 너기쇼셔'(월인천강지곡 2)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른바 간접 의문으로부터의 형성일 것으로 추정되나, 현대어에서 이와 함께 쓰이는 '-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46)으로부터 현대어의 '하게'체와 '하오'체가 분화된 시기나 과정 역시 아직 밝혀지지 못하고 있으나, '--'이 가장 그럴듯한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즉 '-이다' 또는 '-' 등에는 '--' 이하가 잘려 나간 채 종결 형식으로 굳어졌으리라는 것이다. 다음은 19세기 초에 쓰여졌다는 추사(秋史)의 편지문에서 인용한 것인데, '-'이 서술·의문·명령의 문장 종결 형식으로 쓰이고 있다.
Ⅵ
연구자의 입장에서 경어법을 기술하는 데에는 두 가지 측면의 구별이 있게 된다. 하나는 실제 언어 사용의 장면에서 화자로 하여금 평어 대신 경어를 사용하게 하는 사회적 규범이나 심리적 요인을 다루는 화용적(話用的) 측면이고, 또 하나는 평어와 경어의 구조적 차이를 다루는 문법적 측면이다.
물론, 이 두 측면의 구별은 기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상의 필요에서 오는 것으로, 어느 한 측면만의 연구로써 만족할 만한 성과가 약속되는 것은 아니다. 화용적 요구를 떠나서 문법이 그 체계 속에 경어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문법이 제공하는 구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사용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글에서의 기술은 지나치게 문법적인 측면에 기운 것이었다.
이 글을 마치면서 특히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화자의 경어 사용에 미치는 청자 쪽으로부터의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면의 제약도 있었고,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얻어진 성과의 한계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나마도 충분히 소화해 내지 못한 필자 자신의 역량 부족에 가장 큰 이유가 있었음을 자인한다. 흔히들 현대에 와서 청자 중심의 경어법이 화자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오히려 그 반대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필자는 이에 대하여도 아직 자신의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왔어요."라고 말하던 것이 "아버지 오셨어요."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묻는 말이 "아비 왔느냐?"에서 "아버지 오셨니?"로 바뀌는 경향도 있다. 중세어에도 유사한 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48나)의 화자는 주체(왕)보다 상위인 청자(성인) 앞에서 '-시-'를 썼으니 화자 중심이겠고, (49나)에서는 주체(성인)보다 낮은 객체(왕)에게 '--'을 썼으니 이는 객체가 가지는 청자로서의 입장을 고려한 때문일 것이다.
국어 경어법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하나 든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의 범주의 소멸일 것이다.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청자 중심으로의 발달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현대어에 있어서의 복잡하기만 한 공손의 등급이 이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쓰는 언어에서 공손의 등급이 놀라우리만큼 단순해지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첨단을 가는 화자라면 반말체와 '해요'체만으로 상대하지 못할 청자는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잠시 '말씀드리다, 인사드리다, 연락드리다, 사과드리다, 부탁드리다' 등에서 보는 '드리다'의 문법화를 생각해 보자. 아직은 주로 '-하다'계의 한자어에 한정된 현상이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의 예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현상들이 혹시 우리가 중세어에서 보던 균형 잡힌 세 범주 체계로의 복귀를 위한 전주곡은 아닐는지 ― 이는 필자만의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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