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敬語法의 일반적 특징
1. 序言
언어란 것이 기본적으로 특징적인 사회적 현상의 하나지만, 언어 현상 중에서도 對人關係를 기본적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위 敬語法은 그러한 특성이 더욱 강하다. 특히 국어의 경우는 우리 전통 사회가 보여 온 인간관계의 한 측면을 가장 잘 반영하면서 경어법이 크게 발달되어 왔다. 경어법은 그 근원적인 社會性으로 해서 어떤 언어 현상보다도 더 狀況 또는 文脈과 깊이 접맥되어 있다. 어떠한 문장, 어떠한 표현도 경어법에서 이탈할 수 없으며, 경어법이 동반되고 있는 限, 어떤 표현도 발화 상황이나 문맥과 絶緣될 수 없다. 따라서 경어법이라는 현상은 문법보다는 문법 外的인 특성이 강하여, 이에 대한 전체적인 규명은 문법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종합에서만 가능하다는 것도 경어법의 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경어법이란 어떤 대상 인물에 대한 尊待와 非尊待의 형태를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언어에 반영되는데, 어떤 것은 문법적인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실현되기도 한다. 국어 경어법은 語尾나 助詞와 같은 문법 형태에 의해서 실현되기도 하고, 존대 또는 비존대를 나타내는 특정의 어휘에 의해서 실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존대 또는 비존대의 방법 중에서 主體 待遇法, 聽者 待遇法 및 客體 待遇法이 근간을 이룬다.
경어법 논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어법의 사회적 변이 현상이다. 경어법은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지 않은 변화를 겪는다. 현재 세대 간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통시적 변화와 크게 관련된다. 특히 나이가 적은 세대로 갈수록 경어법의 엄격성이 완화되어 가는 것도 현대 경어법이 보여 주는 특징의 하나이다. 그 밖에 경어법은 방언적 차이가 심하며 가정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현상들은 필자를 달리한 별도의 논의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질 것이기에 본고에서는 이 문제를 따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국어 경어법의 전면적인 연구도 이루어지지 못한 단계에서는, 그 일반적 특징이란 것도 실제 규정하기가 용이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되고 이해되어 온 범위 내에서 매우 포괄적으로 몇 가지 현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미리 밝혀 두고자 하는 것은 용어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경어법, 존대법, 존비법, 대우법 등 다양한 용어를 써 오고 있는데, 대우법 이외의 이 용어로는 관련 현상을 논의하는 데 제약이 많다. 그것은 논의의 진행에 따라 저절로 밝혀지리라 믿지만, 우선 '대우'라는 기본적인 개념을 '경어'나 '경어법'으로 대신할 수 없음에서도 그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 이에 필자는 이 용어를 대우법으로 대신해서 쓰기로 한다.
2. 待遇와 待遇法
2.1 待遇
인간은 社會性을 본질로 하고 있는데, 인간 상호 간의 의사와 정감의 소통을 한 특질로 하는 이 社會性은
다른 동물의 세계와 달리 언어 媒體를 기초로 하고 있다. 언어는 내적으로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외적으로 인간 상호 간의 교섭을 이상화하는 수단인 것이다. 즉 언어는 인간 상호 간의 고차원적 교섭을 가능케 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중핵적인 매체인 만큼, 이러한 언어에는 상호 교섭을 본질로 하는 인간의 사회성이 반영되게 마련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성은 언어를 매체로 하면서 그 자신 언어 속에 수용된다. 우리가 여기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待遇 문제는 바로 언어가 수용하고 있는 사회성의 일면일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대우라고 하는 현상은, 좀 포괄적으로 말하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하여 가지는 존대 또는 비존대의 심리적 태도의 言語化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話者 側이 다른 대상 인물에 대하여 가지는 심리적 태도의 言語化로서, 이 심리적 태도는 쌍방 간의 사회적 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심리적 태도란 오히려 '사회―심리적 태도'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하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언어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결국 대우법이 하나의 상징적 수단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위에서와 같이 '사회―심리적 태도'라고 말할 때 얼마간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러한 태도가 내면적인 실제적 대우 의도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화자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실제로는 존대 의도가 없지만, 어떤 요인의 작용으로 인해서 적어도 언어상으로는 존대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心的으로는 존대 의도를 가지면서도 언어상으로는 존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言語化된 대우는 그 내용 또는 배경을 고려할 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대우 의도와 일치되는 대우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대우 의도와 일치되지 않는 대우 표현이다. 그러나, 본고에서와 같이 언어 문제에 초점을 두고 대우 현상을 고려하는 경우에는 내면적인 대우 의도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언어화된 대우 표현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대우 현상의 언어화는 본질적으로 어느 언어, 어떤 표현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즉 모든 언어 표현은 일반적으로는 待遇性을 수반하게 되는데 특히 국어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특징적이다. 대우성이 완전히 배제된 표현이란, 獨白과 같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어떠한 형태의 언어 표현이든 대체로 거기엔 대우성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 독백이란 것도 화자 자신과 화자 자신 사이의 교섭이라고 보면, 대우성의 수반이란 점에서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대우와 관련한 사회성은 기본적으로 話者를 핵으로 하는 사회성이다. 즉 화자를 중심으로 하는 話者―聽者, 話者―第三者의 사회적 관계이다. 물론 청자와 삼자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대우와 관련되지만, 이는 역시 화자를 전제로 한 청자와의 관련성 문제다. 이처럼 사회성을 기초로 한 대우는 화자가 자신을 포함한 쌍방에 대한 대상의 點檢과 確認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대상의 확인은 항상 상대적이다. 화자와 대상과의 관계성에 기초해서만이 점검 및 확인 작업은 수행된다. 화자가 자신과 관련된 영역 안에서 대상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 그 대상에 대한 화자 자신의 대우의 태도 또는 대우의 내용을 결정하게 된다.
대상을 확인하고 대우를 결정하는 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작용한다. 하나는 화자와 다른 대상 사이의 縱的인 位階 관계(power-dimension)요, 다른 하나는 橫的 親疏 관계(solidarity dimension)이다. 종적 위계란 것은 사회생활에서의 일반적인 上下 관계로서, 가령 연령이나 사회적인 지위, 혈연적인 위계와 같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높낮이의 개념이며, 횡적 친소란 쌍방 간에 인간적으로 얼마나 가까운가 하는 정감적 개념이다. 결국 두 가지의 기준은 화자를 중심으로 한 다른 대상과의 縱的 橫的 距離 槪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관계의 성립은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상호 독자적이다. 위의 두 가지 기준 또는 그러한 기준에 관련된 제 요인의 내용이나 성격이란 것이 언어 사회의 차이에 따라 전혀 그 認識의 基準과 인식 내용을 달리한다. 상이한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혈연 또는 민족 개념의 동일 언어 사회에서도 시대에 따라 다르고, 같은 시대에도 지역, 계층 또는 직종, 가문 등 여러 가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두 가지 기준은 상호 제약성이 별로 없어서 친소에 관계없이 종적으로 위계가 성립되며, 위계에 관계없이 친소가 형성될 수 있다.
대우의 성립은 화자와 청자, 화자와 三者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聽者와 三者와의 관계도 매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즉 청자에 대한 화자의 대우 결정에는 第三者와 聽者와의 관계가 고려되기도 하며, 제삼자에 대한 대우 결정에 있어서는 해당 三者와 청자와의 관계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령 제삼자가 청자의 아버지일 경우, 청자가 고려되어 그 三者가 존대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화자가 존대하는 三者와 관계되는 사람이 청자가 될 경우, 이것은 청자에 대한 대우 결정에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청자가 화자의 선생님의 아들일 경우와 청자가 친구의 아들일 경우, 청자에 대한 화자의 대우는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대우를 결정하는 데 있어 화자와 제삼자 또는 청자와 제삼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도 크게 작용한다. 가령 제삼자가 화자나 청자와 함께 자리를 같이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대우 표현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한 예로 대화 현장을 완전히 벗어나 있을 때는 존대되지 않을 대상이 현장에 있음으로 해서 존대받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대우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外的 要因들이다. 더 본질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화자의 待遇 意圖다. 言語化한 대우는 화자의 내면적인 실제 대우 의도와 상치될 수 있음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대우의 언어화에 작용하는 본질적인 요인은 화자의 내면적 대우 의도다. 아무리 외적 객관적 요인들이 '존대' 판정을 내리게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객관적 판단일 뿐, 언어화에 대한 최종적인 주관적 판단은 화자의 대우 의도에 따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본 존대 대상이 존대되지 않을 수도 있고, 외형적인 非尊待 對象이 존대로 실현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화자의 대우 결정은 전적으로 화자의 대우 의도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화자가 아무리 하대하고 싶어도 존대해야 할 경우가 있는가 하면, 존대하고 싶어도 하대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대우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인은 외적 요인이나 내면적 대우 의도의 어느 하나만이 아니요, 결국 양자의 복합이라고 하겠지만, 대우의 언어화라는 최종적인 다른 측면을 고려하면, 그 기본적 요인은 결국 화자의 '대우 표현 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은 대우의 내용 문제다. 대우의 근본 내용은 존대와 비존대로 나타나는데, 비존대는 下待를 포함하지만, 반대로 하대가 비존대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비존대가 그대로 모두 하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우상으로 분명히 하대가 존재하며, 국어의 청자 대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존대, 하대의 구별은 물론, 이 존대, 하대에 다시 下位 등급이 실현되기도 한다.
결국 대우란 것은 존대하거나 존대하지 않는 것의 양면성을 본질로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존대란 말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존대 표현을 하는 것이 존대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언어 형식상의 문제일 뿐, 존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는 존대라는 것이 화자가 어떤 대상에 대한 優位性 또는 上位性을 긍정하는 것이지만, 존대가 항상 화자에 대비한, 또는 화자가 생각한 대상 인물의 우위성이나 상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甲이라는 화자가 乙이라는 청자에 대하여 존대어를 썼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청자가 화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우위성이나 상위성의 기준이 흔히 화자 자신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화자가 아닌 일반적 가치일 수도 있다. 교장 선생이 국민학생을 상대해서 존대어를 쓸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인격에 대한 인정의 격식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것은 절대성을 가진다. 이와 같이 존대의 기준은 화자와의 상대적 기준이 고려되기도 하고, 화자와 관계없이 대상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고려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함께 고려할 때, 존대라고 하는 것은 화자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화자에 대비한 우위성 또는 보편적 기본 인격에 대한 긍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자와 대상이라고 하는 상대적인 개념에서 이해될 수 있듯이, 존대라고 하는 것은 화자의 겸양, 공손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존대와 겸양은 상반적이면서 같은 목표에 귀결되는 것이어서, 대상 하나에 대한 異稱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존대는 이에 수반하는 주요한 형식적 특성을 가진다. 그것은 곧 존대라고 하는 것이 그 특성상 상대방을 禮遇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대는 대체로 格式性을 띠게 된다. 비존대와 하대는 상대적으로 격식성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격식성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2.2 待遇法의 話用論的 특성
言語 自體가 사회적 현상이요, 社會性을 전제로 하게 되지만, 언어 현상 중에서도 대우법만큼 사회성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것이 별로 없다. 대우라는 用語에서 우리는 이미 대인 관계라고 하는 언어 본질적 사회성을 전제하게 된다. 따라서 언어가 보편적 의미에서 文脈 또는 話脈이라고 하는 背後 狀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不定한 상태로 애매성의 眞空的 意味 속에 표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대우법의 경우도 동일하다. 대우의 상황은 곧바로 發話 狀況과 일치하는 것으로, 前者는 후자에 포괄되게 마련이다. 결국 언어상의 대우도 상황과 유리될 때, 그 애매성으로 하여 허공에 부유하게 된다. 어떤 發話도 文脈 依存的인 것과 마찬가지로 대우도 항상 문맥 의존적이다. 따라서 어떤 발화도, 그것이 문장이든 문장의 일부이든 待遇性을 수반하므로, 문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中立化할 수 없다. 적어도 국어의 경우, 待遇의 중립화란 다만 문장의 非文化를 의미하게 될 뿐이다.
발화의 화맥, 또는 문장의 문맥을 구성하는 데 잡다한 요인이 작용하듯이, 대우의 문맥을 구성하는 데도 여러 가지 요인이 수반된다. 특히 화자, 청자, 제삼자의 등장인물과 관련한 社會的 心理的 現象 등을 포함해서, 기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국어 대우법이 부분적으로는 文法性을 가진다고는 해도, 다른 문법 범주, 예를 들면 時制나 叙法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은 엄격한 규칙성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이것은 대우법의 그 본질적 성격에 연유하는 當爲的 歸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우법'이란 용어에서 '法'이라는 것이 '문법'의 '法'과는 그 성격에서 차이를 가진다. 後者의 경우 그 '法'은 매우 또는 비교적 엄격성을 수반하게 되고, 그런 만큼 형식화가 가능하지만, 前者의 경우 그 '法'은 훨씬 엄격성이 떨어지고, 융통성을 가지며, 그런 만큼 객관화 또는 형식화가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法'에 엄격한 규칙성과 객관성을 부여하고자 할 때에는, 대우법은 자연 문법의 영역에서 점점 이탈하게 된다.
물론 문법 현상이라고 하여 모두 엄격하고 객관적인 것만은 아니나, 대우법에서 그러한 文法性을 찾고자 할 때에는 쉽게 어떤 한계에 당면하게 된다. 한 예로 '-시-'로 표현되는 대우 현상의 일면을 보기로 하자.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의 화자가 전혀 未知의 지나가는 노인을 두고 위와 같이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두 문장은 문법적으로 완벽하다. 동일 화자가 동일한 상황에서 (1a), (1b) 어느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대우를 판단하는 주체가 다르기는 해도 '-시-'의 유무를 달리할 만큼 객관적 주관적 요인 또는 기준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話者가 同一人일 경우 두 가지로 달리 표현할 만한 객관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시-'의 사용은 객관화하고 형식화하기 곤란하다. 이것은 단적으로 '-시-'의 사용 또는 실현이 엄격성을 가지지 않음을 입증해 준다. 다음의 예문을 추가해 보기로 한다.
(2a, b) 문장에서 '이분'과 '그 사람' 그리고, '-시-'의 유무 차이는 發話 場面의 차이, 구체적으로 말해서 (2a)에서는 제삼자인 '이분'이 발화 현장에 있는 반면, (2b)에서는 제삼자인 동일 인물이 발화 현장에 없는 점뿐이다. 여기서 '-시-'의 실현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은 文法 外的 現象이다. 다시 말해서 '-시-'의 有無를 순전히 문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리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1a), (1b)의 '-시-' 문제가 어쩌면 대우 인식, 인품 등 話者 內的인 요인과 더 많이 연관된다면, (2a), (2b)의 '-시-' 문제는 話者 外的인 요인과 더 많이 결부되고 있어, '-시-'의 문제가 문법론보다는 화용론 등 여타 영역에 더 많이 자리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시-'의 실현을 순수 문법적 현상으로 수용하는 데 일단 의문을 가지게 해 주는 것이다. 비단 부분적인 '-시-'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국어 대우 현상은 '-시-'에서처럼 흔히 문법론과 화용론을 한집으로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청자 대우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3. 待遇의 制約
대우는 앞서 살펴본 대로, 화자는 縱的인 位階 관계나 橫的인 親疏 관계를 고려하여 대상 인물에 대한 존대, 비존대 및 존대 비존대의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도 어디까지나 기본적이고 원리적인 것이어서, 늘 이러한 기준대로 대우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준 또는 이러한 기준의 적용에는 또 항상 어떤 條件 또는 制約이 수반되고 있다.
국어 대우법에서 가장 上位에 있는 제약은 上位 聽者 制約이다. 이 제약은 모든 형태의 존대법 전체에 적용되는 가장 광범하고 가장 강력한 제약이다. 이것은 대우 관련 인물들 가운데에서 청자가 가장 상위의 존대 대상일 때에는, 다른 어떤 인물도 존대될 수 없는 제약이다. 간단히 말하면, 청자가 最上位일 때에는 그 밖의 누구도 존대될 수 없는 제약이다. 待遇上 이러한 청자와 同位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여기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 즉, 청자와 同位의 대상은 청자와 마찬가지로 존대될 수 있다.
요즘 청소년층에서 (3a)와 같은 존대 표현이 쓰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바른 대우법이 못 된다. 여기에서 대우와 관련된 화자, 청자, 삼자(아버지) 중에서 청자인 할아버지가 최상위이기 때문에, 화자는 비록 자기 아버지이더라도 존대하지 못한다. 어떤 문벌 있는 집안에서는 요즘까지도 (3c)가 쓰이는 것을 본다.
대우상 '선생님'이 '할아버지'와 同位에 가깝게 생각되어 (4a)가 쓰일 수도 있지만, 그 선생님의 연령 등에 따라서는 (4b)가 쓰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위 청자 제약은 젊은 세대로 올수록 점점 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우 제약은 場面 制約 또는 現場 制約이다. 이것은 (4)에서도 볼 수 있다. 선생님이 발화 현장에 있는 때에는 존대되어도, 발화 현장 밖에 있을 때에는 존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음도 이러한 예다.
(5a)처럼 '김 선생님'이 청자인 경우에는 '-시-'가 어느 정도 허용되는 데 비해, (5b)와 같이 청자가 아닌 경우에는 거의 非文이 되든가, 설혹 非文이 안 되더라도 그 文法性 또는 許容度는 크게 떨어진다. (4), (5) 등에서 보는 대우 제약은 일종의 장면 제약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요즘 학생들이 선생 面前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公席이나 여러 사람 앞에서는 자기 선생에 대해 깍듯한 존대를 하지만, 私的인 장소 또는 소수의 가까운 동료들끼리 모인 장소에서는 같은 선생에 대해서도 존대는커녕, 하대하는 경우도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제약은 言語的 制約이다.
위에서와 같이 서술어와 부정어 또는 두 개의 서술어 등이 인접할 때, 모두 다 '-시-'를 선택할 수 있지만, 흔히 하나만 선택된다. 가까이에서 중복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이유가 언어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格式性의 制約을 들 수 있겠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리 존대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화자, 청자 사이에 인간적인 유대가 두터운 경우에는 존대 대신 비존대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가까운 사이에 位階性과 격식성을 완화함으로써, 情感的인 親和를 표현 또는 확인하는 것이라 하겠다.
2.4 待遇의 機能
우리는 앞서 대우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과 기준을 살펴보았다. 포괄적으로 보아 종적 위계와 횡적 친소 관계가 대우를 결정하는 기준이었고, 이러한 기준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함을 보았다. 따라서 이를 바꾸어 생각하면 대우 표현을 통해서, 이러한 종적 위계와 횡적 친소가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대우 표현 또는 대우법은 화자와 청자, 또는 화자와 제삼자 간의 縱的인 位階 관계를 표현한다. 위계 관계란 기본적으로 上下 槪念이므로, 대우 표현에 의해서 화자와 다른 대상 인물 사이의 上下位 관계가 표현된다. 이러한 현상은 상하 위계가 엄격한 사회 또는 집단일수록 더욱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군인 사회는 그 전형적인 한 예일 것이며, 직급상 계층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집단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종적 위계는 사회적 지위만이 아니다. 연령상의 상하 관계, 혈연상 항렬의 상하 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이러한 위계가 대우 표현에 의해서 표출된다.
다음으로 대우 표현은 쌍방 간의 親疏 關係를 나타낸다. 이것은 객관적 사회적인 것이라기보다도 주관적이고 정감적인 것이다. 친분이 두터운 관계일수록 격식성이 적은 대우 표현을 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친분이 두터울수록 높낮이 표현은 아래로 향하게 된다. 물론 친하다고 해서 격식성의 대우 표현이 안 쓰이는 것도 아니며, 最上位의 대우 표현을 쓴다고 해서 친분이 반드시 두텁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살펴보자.
위에서 (10a)만 보면 화자 청자 사이의 上下 관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좀 달리 (10a, b)를 두 사람 사이의 대화로 보면, 이 둘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화에서 (10a) 화자가 (10b) 화자보다 더 격식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10b)보다는 (10a)가 친분성이 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10a)와 (10c)의 대화를 가정해 보자. (10a, b)의 대화에서보다 훨씬 더 확연한 위계 관계가 드러나고, 아울러 격식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훨씬 친근감이 떨어진다.
대우 표현은 위에 말한 위계 관계나 친소 관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화자의 人品과 敎養을 드러낸다. 대우 표현 이전에 말이라는 것 자체가 話者의 인품과 깊이 관련됨은 예로부터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바이다. 따라서 대우 표현이 사람의 인품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언어 및 대우라고 하는 현상이 본질적으로 對人 關係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 데다가, 대우법은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상 인물에 대한 존대, 비존대를 言語化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화자의 內面性이 더 현실적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대우법이 매우 복잡하고 특징적인 방식으로 체계화된 국어의 경우에는, 이러한 측면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상에서 대우법 또는 대우 표현의 기능으로 세 가지를 지적하였는데,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대우 표현의 기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첫 번째 기능으로 縱的 位階의 표현을 들었다. 그러나 대우법은 이러한 위계의 표현에 머물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한 주요 속성인 位階性의 유지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위계성과 대우법은 순환적인 것이어서, 현실 사회의 위계성이 언어화되고, 이것이 다시 사회의 위계성을 확인시키고 또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사정은 대우법의 두 번째 기능으로 지적한 橫的 親疏 관계의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사람들 사이의 친소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常存하게 마련이고, 이것은 언어 및 대우법을 통해서 표출되는데, 이처럼 言語化된 대우법은 다시 기존의 친소 관계를 확인시켜 주고 나아가 이를 유지시켜 줌으로써, 앞서 본 바와 같은 순환성을 여기에서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을 종합해 본다면 결국 대우법은 일차적으로 화자의 인품과 교양을 드러내면서, 인간 사회의 한 질서를 言語化하여 표출하고, 二次的으로는 이 과정을 통해서 그 질서를 확인하고 유지 내지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3. 국어 대우법의 체계
3.1. 대우 표현의 방법
국어에서 대우법을 표현하는 것은 대체로 다음 두 가지 방법에 의존한다. 하나는 語彙的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文法的인 방법이다. 여기에서 문법적이라고 함은 좀 넓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그 문제점은 앞에서 부분적으로 지적된 바다.
어휘적인 방법은 존대와 비존대, 또는 존대와 하대의 어휘를 별도로 가지고 있는 경우다.
| (11) | 존대 | 비존대 | 하대 |
| 진지 | 밥 | 연세 | |
| 나이 | 형님 | 형 | |
| 잡수시다 | 먹다 | 처먹다 | |
| 돌아가(시)다 | 죽다 | 뒈지다 |
어휘적인 방법에서 파생 접미사 '-님'에 의한 존대어의 형성은 매우 생산적이다. 같은 어휘적인 방법이면서도 이들과는 성격을 달리해서 존대와 비존대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 (12) | 존대 | 비존대 |
| 드리다 | 주다 | |
| 여쭈다 | 말하다 | |
| 모시다 | 데리다 |
이들은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존대―비존대'라기보다는 '겸양―비겸양'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목표나 결과에 있어서 이 둘은 일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우 표현의 非語彙的 방법인 문법적 방법은 의존적인 문법 형태에 의한 방법이 중심이 되는데, 여기에서도 두 가지 구분이 가능하다. 하나는 비존대의 '가', '에게'에 대응되는 '께서', '께' 등 格助詞에 의해서 존대를 표현하는 방법과, 보조 조사 '요'에 의해서 존대를 나타내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시-' '-습-' 등 先語末 語尾나 '-오, -어, -어라' 등 終結 語尾에 의한 방법으로, 이는 국어 대우 표현의 주종을 이루는 방법이다.
어휘적인 대우법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널리 쓰여 온 것은 呼稱과 관련된 어휘들이다. 호칭이란 대체로 어떤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행위를 의미하고, 이러한 경우에 쓰이는 말을 呼稱語라 한다. 그러나 사람을 부를 때 쓰이는 말만을 한정하여 호칭어라 함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령 '선생님, 형님, 아저씨' 등 많은 어휘들이 단순히 부르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인물을 지칭하는 경우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13a)에서는 '형님'이 부르는 말인 반면, (13b)에서는 부르는 말이 아니고 단순히 지칭하는 말인데, 이 둘은 모두 호칭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호칭어란 待遇와 관련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특정 관계에 따라 대상 인물을 부르거나 지칭하는 데 쓰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국어는 예로부터 이러한 호칭의 대우법이 발달되어 온 것이 큰 특징의 하나다. 같은 대상도 話者 側에서의 호칭과 聽者 側을 고려한 호칭이 다른 경우도 많으니, '아버지'도 청자의 아버지는 '春府丈'이지만, 화자 자신의 아버지는 '家親'이 되는 것은 그 한 예다. 현대어로 오면서 호칭이 많이 단순화되고, 이에 따라 호칭어도 상당히 쇠퇴하였지만, 다양한 호칭어의 사용은 여전히 대우법의 주요한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3.2. 主體 待遇
主體란 문법적인 주어로 실현된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주체 대우란 주체에 대한 화자의 존대 또는 비존대를 의미하며, 이를 표현하는 것은 선어말 어미 '-시-'의 유무에 의한다.
주체 존대는 매우 광범하게 쓰이고 있지만, 그 쓰임이 반드시 규칙적이거나 체계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화자가 다른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같은 화자가 같은 대상에 대하여 말할 경우에도 '-시-'의 선택은 화자의 恣意性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법의 강요를 받지 않는 점은 주체 존대가 그렇게 文法 支配的인 현상이 못 된다는 것을 예견하게 한다.
그런데 '-시-'의 사용은 이러한 문제에 머물지 않고,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용법을 보여 준다.
이러한 자료들에 접하면 '-시-'의 용법이 단순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크시다'의 主體는 '눈'이지만 존대되는 것은 '할아버지'인 것이다. 흔히 간접 존대라고 했던 이 존대는 文叙述語 複合文―所謂 重主語文―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이는 上位 主語(上位 主體)인 '할아버지'를 존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역시 주체 존대라 할 수 있다. 이를 主題 尊待라 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우선 주제의 개념을 규정하는 것도 큰 문제려니와 동일한 文法 形態(-시-)가 전혀 다른 성분인 주어(주체)와 주제를 존대한다고 하는 것도 수용되기 곤란하다.
다음과 같은 文에 쓰인 '-시-'는 더욱 특수하다.
(17a)는 그대로 重主語文일 수도 있고, (17b)에서 여격 '에게'가 생략된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17b)에 있다. (17b)에서는 존대 대상이 되는 主體를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與格 尊待란 말도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가 주어, 주제어, 여격어 등을 존대한다고 할 수는 없다. 단순히 표면 현상에 따라 命名한 것 외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17b)에서 존대된 것은 분명히 '김 선생님'인 만큼, 우리는 (17c)와 같은 기저구조를 상징할 수 있다. 즉 (17b)는 (17c)와 같은 구조에서 존대 대상인 上位 主體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러한 유형의 문장도 주체 존대로 일관성 있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아무튼 현대로 오면서 '-시-'의 용법은 매우 다양화되어 이에 대한 체계적 기술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3.3. 聽者 待遇
청자 대우란 청자에 대한 화자의 존대 또는 비존대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語尾와 補助 助詞 '요'에 의하여 실현되며, 주체 대우나 뒤에 언급할 객체 대우와 달리 대우에 등급이 구분됨이 특징적인 현상이다.
위 예문들에서 쉽게 이해되듯이, 같은 명령문이라고 하더라도 종결형에 의해서 표현되는 청자 대우는 네 개의 等級이 확인된다. 이처럼 文의 종결형에 의해서 실현되는 청자 대우의 등분을 話階라 한다. 그리하여 위와 같은 화계를 위로부터 아주높임, 예사 높임, 예사 낮춤, 아주낮춤이라 하는데, 이들을 어미에 따라 하십쇼체, 하오체, 하게체, 해라체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들을 도표화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22) | 평서형 | 의문형 | 명령형 | |
| 아주높임 | -(스)ㅂ니다 | -(스)ㅂ니까 | -십시오 | |
| 예사 높임 | -오(↘) | -오(↗) | -오(↓) | |
| 예사 낮춤 | -네 | -나 | -게 | |
| 아주낮춤 | -(느)ㄴ다 | -니 | -어라 |
위에서 다른 종결형이 하나의 종결 어미 형태에 의해서 실현됨에 비하여, 아주높임의 형태들은 선어말 어미와 종결 어미의 복합 형태로 실현됨이 특징적이라 하겠다. 위의 네 가지 등분 중에서 하오체와 하게체는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다. 우선 이 두 화계는 모든 사람에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연령상 장년층 이상에서만 사용 가능한 제한적 화계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하오체가 높임이라고는 하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쓸 수가 없고, 다만 동년배 또는 화자보다 아래 되는 사람을 다소 존대해서 말할 때만 사용 가능하다. 그리고 하오체, 하게체는 현대로 오면서 장년층 이상에서도 사용 빈도가 점점 감소돼 가는 경향을 보이는 점 또한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청자 대우에는 위의 네 등분 외에 또 다른 두 등분의 화계 체계가 있다.
(23a)는 非尊待 또는 下待의 반말로서, 종결 어미 '-어'로 실현되었고, (23b)는 이 반말 종결형에 '요'가 결합되어 청자에 대한 존대를 표현한다. 이처럼 '요'는 모든 반말형에 규칙적으로 결합될 수 있음이 매우 특징적이다. 반말 어미로는 '-어' 외에도 '-지, -군, -네, -을까, -거든, -는걸, -다나' 등 많은 수에 이르는데, 이들에 의한 종결형에는 모두 '요' 결합이 가능하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여 '요' 존대형을 반말 높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는 종결형에만 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요'를 배제시킬 때 남는 것은 종결형도 아니요 文도 아니며, 다만 文의 일부일 뿐으로, 앞서 본 반말과 다름없는 비존대 또는 하대 표현이 된다. (2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종결형으로 나타나는 반말을 형태적 반말이라 하고, (24)에서 보는 것과 같이, 文의 기능을 수행하는 文의 일부로 실현되는 반말을 통사적 반말이라 하여 양자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면 앞의 네 등분 화계와 이제 본 두 등분 화계와의 관련성은 무엇인가? 반말은 낮춤의 두 등분, 즉 예사 낮춤, 아주낮춤의 두 등분을 포괄해서 낮춤 일반에 통용되는 두루낮춤임에 반하여, 반말 높임은 아주높임과 예사 높임의 구분 없이 모든 높임 일반에 통용될 수 있는 두루높임으로 쓰임이 특징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청자 대우의 화계 체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 높임 | 아주높임(하십쇼체) | 두루높임(해요체) | 예사 높임(하오체) |
| 낮춤 | 예사 낮춤(하게체) | 두루낮춤(해체) | 아주낮춤(해라체) |
화계와 관련하여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는 격식성의 문제다. 화계에 따라 格式性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네 화계 체계에서는 격식성이 두드러지고, 두 화계 체계에서는 非格式性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화계의 등분이 많을수록 화계의 엄격성이 강하고, 이에 따라 격식성이 두드러지는 반면, 화계의 수가 적을수록 화계는 엄격성이 약해지고, 이에 따라 격식성도 약화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격식성이 화계의 수에만 의존되는 것은 아니다. 이 외에도 對話者 사이의 縱的, 橫的 관계 등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격식성이 조정되는 것이다.
3.4. 客體 待遇
국어 대우법 중에는 이미 언급했던 바와 같이 文法 形態가 아닌 어휘에 의해서 존대 또는 비존대가 표현되는 대우법이 있다. 그중에서도 몇몇의 동사는 이에 호응되는 특정 성분의 인물에 대하여 존대, 비존대를 나타내고 있다.
위 예문에서 '드려라'는 與格語 '할아버지'에 대한 존대를 표현하는 동사로서, 비존대의 '주어라'와 대조되며, '모시고'는 목적어 '이분'을 존대하면서 비존대의 '데리고'와 대조를 보인다. 이처럼 존대―비존 대로 대응되는 동사들의 목적어나, 여격어 성분의 인물을 待遇法上 客體라 하고, 이에 대한 존대 및 비존대를 客體 待遇라 한다. 이러한 동사로는 이 밖에도 '여쭈다―말하다,' '뵙다―보다' 등 몇몇이 더 있으나 그 수는 매우 소수에 제한되어 있다.
객체 존대는 객체에 대한 화자의 존대를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한두 가지 조건이 따른다. 객체는 물론 화자의 존대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주체의 존대 대상이 되어야 객체 존대는 성립된다.
객체가 화자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28a)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은, 객체가 주체인 '할아버지'의 존대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하는 말이라면 위 문장은 성립될 수 없다. '철수'가 아이일 때 가정에서 쓰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상대로 한 것으로, 교육적 의도와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객체가 주체의 존대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화자의 의도에 따라서는 객체 존대가 성립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주체 '나쁜 놈들'이 객체 '아버지'를 해치려고 잡아가는 경우라면, 객체에 대한 주체의 존대 의도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은 성립된다. 그것은 명령문 등에서와 같이 화자의 의도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문장의 경우다. 그렇지 않은 경우 다음의 평서문에서 보듯 이러한 객체 존대는 성립될 수 없다.
(30)의 상황이라면 (31)의 객체 존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대우법이 기본적으로 화자의 의도에 의존되므로, 객체 대우에서도 화자의 의도에 따라 대우의 양상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화자의 의도가 작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동일한 객체라도 화자의 의도에 따라 존대, 비존대 어느 것도 선택이 가능하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객체 존대는 객체에 대한 화자의 의도가 중심이 되는 것이며, 主體는 경우에 따라 이에 대한 부대적 조건을 형성할 뿐, 객체 존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4. 結語
언어는 사회를 수용하고, 대우법은 이를 대표한다. 그리하여, 문법을 벗어난 인간의 언어생활이 불가능하듯, 우리 사회에서 대우법을 벗어난 언어생활 또한 불가능하다. 이처럼 국어 대우법은 우리 사회 현실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이에 따라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대우법이 순수 문법적인 성격보다는 話用論的 性格이 더 두드러진 것이 중요한 특징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自然'이라고 하는 객관 세계의 모든 대상들이 그렇듯이, 인간 사회의 제 문제 또한 늘 선명히 분절되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분석 체계화하는 것 또한 획일성을 가지기 곤란하다. 대우법은 그 복잡성이나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이나 기술 또는 체계화 역시 객관성을 얻기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대우법은 그 나름대로 문법성과 아울러 체계성을 보여 주고 있는바, 主體 待遇, 聽者 待遇, 客體 待遇 등은 그 대표적인 현상들로서 우리 대우법의 골격을 이룬다.
사회의 변천과 이에 따른 意識의 변천은 대우법에도 많은 변천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변천의 결과는 특히 世代 間의 차이를 가져왔고, 대우법 사용의 다양화를 초래하여 그 記述 또는 體系化를 어렵게 한다.
국어 대우법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청자 대우법에 4화계 체계와 2화계 체계가 있어 二元的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4화계 체계는 하오체와 하게체의 쇠퇴로 하여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2화계 체계로 보완되고 있다. 특히 우리말은 어떤 형태의 표현이든 특정의 화계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즉 어떤 표현도 화계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우리 대우법에서 또 다른 하나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主體 待遇이다. '-시-'로 나타나는 대우는 주체에 대한 존대인데, 이러한 主體의 성격은 매우 다양하여, 그 체계화가 용이하지 않다.
우리 대우법에서는 존대와 비존대 또는 하대를 나타내는 일군의 별도의 어휘가 있는 것이 특징인데, '드리다―주다,' '뵙다―보다' 등 몇 쌍의 동사는 객체에 대한 화자의 존대를 나타낸다.
우리 국어에는 사람 사이의 특정 관계에 따라 命名되는 호칭어가 발달되어 있는 것도 주요한 특징의 하나다. 이러한 현상도 여타 대우법과 마찬가지로 縱的, 橫的 인간관계를 언어에 반영하는 것인데, 이 경우는 특히 血緣 間의 관계가 반영된 것이 주류를 이룬다.
현대 국어에 나타나는 대우법의 주요한 경향은 簡素化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존대 대상에 흔히 존대 형태 호응시키지 않는 존대의 완화 현상을 보는데, 이것은 일종의 간소화의 결과다. 대우법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대의 제약은 最上位 聽者 制約인데, 이것도 완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역시 간소화의 방향과 일치되는 현상이다. 특히 복잡한 호칭어가 쇠퇴하는 단순화 현상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하오체, 하게체의 쇠퇴, 格式體의 감소 등 話階와 관련된 현상도 그러하다. 縱橫으로 엄격했던 인간관계가 완화된 현대 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우법은 기본적으로 화자의 의도에 기초하고 있지만, 最上位 聽者 制約이나 객체 존대의 경우 객체가 主體의 존대 대상이 되어야 하는 제약 또는 조건 등이 점차 완화되는 경향을 보여 주는데, 이는 화자의 의도가 다른 제약을 적게 받는 것을 의미하여, 결국 화자의 의도를 강화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현상도 앞서 말한 대우의 간소화 경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현대 사회의 특징 및 현대 대우법에 나타나는 제 현상을 고려할 때, 우리 대우법은 사회의 변천에 기인하는 民主, 平等 및 互惠, 便宜 등 사회 의식의 발전과 일반화에 따라 엄격성이 완화되고 더욱 간소화의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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