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어사전을 펴 보는가!
얼마 전에 어느 대학원 국어학 전공 학생들에게 사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 마지막으로 국어사전을 뒤적여 본 적이 언제냐고 물었다. 거의 스무 명이나 되는 학생 중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국어사전을 펴 본 기억이 감감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무슨 사전이라도 최근에 참고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중 상당한 숫자가 영어 사전은 자주 본다고 했다. 몇 사람은 영어 사전을 그 자리에 가지고 있기도 했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바로 내가 기대했던 대로였다. 우리나라의 어느 학생 집단에게 물어도 꼭 같은 답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국어학 전공 학생이라고 유독 국어사전을 애용해야 할 고된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어학 교수도, 국어 교사도 학생들과 다 함께 국어사전은 거의 펴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 사전은 부지런히 뒤적여야 국어학 교수, (교사?), 학생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사실 무슨 공부를 한대도 영어 사전은 필수 도구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영어 선생님인 나야말로 영어 사전 없었다가는 당장 밥줄이 끊길 사람이다. 한두 권으로는 모자라 열댓 권이나 가지고 있다. 욕심 같아서는 괜찮다 싶은 영어 사전은 모두 갖고 싶기도 하다. 이것은 영어 선생이라면 대개 다 갖고 있는 심보이니 유별날 것도 없다.
그런데 영어로 밥 먹고사는 사람이 무슨 연고로 국어학 전공 학생들의 국어사전 사용 빈도(貧度?)를 힐난하는 듯한 소리를 하느냐고 따질 분이 많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변명을 해야겠다. 나는 최근에 국어사전을 자주 뒤적이는 사람이 되었음을 우선 고백하는 바이다. 방금도 위에서 '심보'란 낱말을 쓰면서 '심뽀'라고 했다가 미심쩍어서 사전을 찾아보고 고쳤다. 또 '힐난'은 '힐란'은 아닐는지 사전에서 확인했으며, 생전 처음 '흰소리'란 낱말을 써 보려다가 '흰소리'는 '희떱게 지껄이는 말'이라고 사전이 알려 주어 다시 '희떱다'를 찾아보니 '속은 텅텅 비었어도 겉은 호화롭다'로 되어 있어 내가 뜻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 그냥 '소리'로 적고 말았다.
영어 책 읽고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긴 하지만 글은 거의 언제나 우리말로 쓴다. 우리글 읽는 분량도 아마 영어보다 많을 것이다. 이것 역시 모든 영어 선생은 물론이고 영어로 된 책 읽고 가르치는 경제학, 정치학, 물리학, 철학, 국어학 선생에게 공통된 사실일 것이다. 모두들 영어 사전을 빈번히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은 별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점에서 내가 좀 다르다고 어쭙잖게 자부해도 될 듯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국어사전을 뒤적이기 시작한 것은 썩 오래 된 것이 아니다. 몇 해 전에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쓰인 모든 낱말의 용례 사전을 만들면서 내가 모르면서도 아는 것으로 치부하고 지나쳤던 낱말들을 안 알아볼 수 없어서 본격적으로 사전을 뒤적였고, 또 정확한 띄어쓰기를 알아야 낱말들을 구별할 수 있겠기에 사전에서 확인을 해야 했다. 비록 얇은 시집이었으나 우리말 책 한 권 전부를 국어사전에 의지해서 자세히 읽은 첫 경험이었다. 그 결과 나는 '사람같이'에서는 '사람'과 '같이'를 붙여 쓰고 '사람 같은'에서는 '사람'과 '같은'을 띄어 써야 한다는 기본 지식을 비로소 얻게 되었고, 우리말 사전에는 '기룹다' 같은 낱말이 올라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요즘에는 우리말 성경을 비교적 자세히 읽고 있는데, 거의 100년 동안 한국의 최대 '베스트 셀러'이며 최다 독자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이 그 심오한 말씀의 뜻은 내어 놓고 그 낱말과 문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글깨나 한다는 내가 허덕이고 있다. 모를 낱말이 그리도 많다. 순 한글로 적혀 있는 궁창, 식물, 독처, 열납, 유리, 창상, 해괴, 방주, 기식, 접족, 흠향(穹蒼, 食物, 獨處, 悅納, 遊離, 創傷, 悖壞, 方舟, 氣息, 接足, 歆饗)같은 한자 낱말들은 (이것들은 모두 창세기 앞 부분에 나오는 것들이다.) 한자로 써 준대로 요새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은 말들이다. 지금 내 책상에 놓인 국어사전을 보니 위의 열한 낱말 중에서 세 낱말은 나와 있지 않다. 더욱이 '깟씨,' '물두멍,' '말폭,' '늣'같은 순 우리말로 보이는 낱말들도 대개 사전에 안 올라 있다. 일천만이나 된다는 한국의 기독교도 전부가 사전을 뒤적이며 성경을 읽기는 만무할 터이나 성경 해설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목사와 사제들이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일도 드물 것이다. 그 분들은 국어사전보다는 대개 영어 성경과 대조해 보고 영어 성경에 나오는 해당 낱말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말 성경 읽기에도 국어사전보다 영어 사전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나 자신도 그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 독자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지나치고 말 것이다. 나 자신도 대개는 그런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이다.'몰라도 돼!'라는 어구가 한참 유행한 적이 있는데, 우리글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있어도 우리는 대개 '몰라도 돼!'하고 지나치곤 하는 버릇이 깊이 들어 있다. 그런 버릇이 깊이 들어 있어서 이제는 '몰라도 돼!'가 아니라 '모를 것 없어.'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사실상, 남의 말 듣다가, 남의 글 읽다가, 모를 낱말이 나올 적마다 사전을 뒤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괴팍한 사람일시 분명하다. 오히려 우리는 모를 낱말이 나오더라도 앞뒤를 연결시켜 뜻을 짐작하고 지나가라. 그래야 글 읽기 실력이 늘어난다고 가르치는 판이다. 독서법의 제일 큰 요령은 읽지 않고 건너뛸 데를 금방 알아차리는 것인데 모를 낱말쯤 건너뛰기는 쉽고도 쉬운 일이며 또한 약은 짓이기도 하다. 이런 독서법은 기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것이 아니라 굉장한 사전들이 계속 편찬 발간되고 있는 서양에서 개발한 것이다. 얼핏 보면 이율배반 자가당착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속독법과 아울러 사전 꼼꼼히 찾아보게 하는 독서법도 가르치는 모양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영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국 가정에서 거의 모두 비치하고 있는 책은 성경, 사전, 요리책이다. 최근으로 올수록 사전이 성경을 능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 성경이 있는 집이 꼭 많을 것이나, 사전은 없는 집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모든 가정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전은 '국어사전'이 아니라 '영어 사전'일 것이 틀림없다. 집안에 중학교를 다녔거나 다니는 사람이 없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할 터인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반드시 구비할 것은 새 가방, 새 교과서들과 더불어 영어 사전인 것이다. 영어 사전 없이 중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밥숟가락 없이 밥상머리에 앉는 거나 같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영어 사전과의 지겨운 관계는 영어 선생을 안 하더라도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영어의 현실적 중요성 때문이다. 이 사정은 아마 공통의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가정에 영어 사전과 아울러 국어사전이 함께 비치되어 있는 경우가 무척 적을 것이라는 짐작이 쉽게 가능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 경우를 돌아보아도 그렇다. 내가 처음 뒤적인 사전은 물론 영어 사전이었고, 국어사전은 훨씬 뒤에야 만져 보았다. 1950년대 초, 중학 시절에 우리 형제는 문세영 지은 국어사전을 처음 보았다. 그러나 영어 사전은 영어 교과서 예습 복습할 때 반드시 찾아봐야 했지만, 국어사전은 국어 교과서 예습 복습 때 별로 사용한 것 같지 않다. 소년기의 호기심에 따라 인체의 몇 곳을 가리키는 낱말들을 남몰래 찾아보고 상소리들을 찾아보았지만, 소설책 읽다가 어려운 낱말이 나와서 찾아본 기억은 도시 없다. 그 후에 '큰 사전'과 작은 사전들도 구입했지만 국어사전의 실제 용도는 막연하였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어려운 낱말들은 모두 참고서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고 상소리 찾아보는 것은 어렸을 때 한두 번으로 족하다.
나이가 좀 들어서 나도 글을 쓰느라고 하게 되었는데, 처음 쓴 글이 이른바 논문이라고 하는 것이어서 유식하게 굴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분별한 관념에서, 유식한 논문에는 반드시 한자를 많이 써야 한다고 믿고, 주로 읽기만 하던 한자를 글에 그려 넣기 시작했다. 좀 어려운 한자는 어쩔 수 없이 국어사전에서 베껴 넣어야 했다. 국어사전은 나에게 한자의 '꼴본'이 되어 주는 것으로 비로소 실제적 용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경험하는 바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어사전을 한자 '꼴본'으로 이용해야 하는 처지를 나는 정확히 27살 먹는 해에 벗어났다. 그때부터 논문이든 무슨 글이든 한자 섞어 쓰기를 그만둔 까닭이다. (이 말은 내가 국어사전을 한자 꼴본으로는 전혀 사용치 않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며―이 글 쓰면서도 몇 개의 글자꼴을 국어사전에서 베껴 그렸다―한문책까지 마다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이 아직도 주로 글자 꼴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확인했다. 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사실일 터이지만 5년 전에 한국어 사전 편찬을 발의하면서 거의 200여 명의 동료 교수들을 방문하여 국어사전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국어사전을 최근에 사용한 것은 한자꼴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고 실토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나이가 좀 지긋한 분들이 그랬고, 젊은 분들과 이공 계통에 있는 분들은 논문에서 힘든 한자를 별로 쓰지 않기 때문에 글자꼴 찾아볼 필요가 없어서 국어사전을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어쩌다 사용한다면 한자 때문이었고 어려운 낱말 때문에 찾는다는 이는 정말 거의 없었다.
이런 형편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이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사전이라 하면 영어 사전이기보다는 자기 나라말 사전을 먼저 떠올릴 것이라고 나는 좀 더 강력한 이유를 가지고 짐작한다. 좋은 사전을 계속 경쟁적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그들의 책상에는 반드시 자기 나라말 사전이 놓여 있고 상당히 손때가 묻어 있을 것이라고 또한 짐작이 간다. 일부는 내가 확인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도 글자꼴 확인은 사전의 가장 중요한 용도의 하나이다. 이른바 '스펠링'을 바로 쓰기 위해 그들은 부단히 사전을 뒤적이는데, 우리나라 교수나, 회사와 관공서의 문서 작성자가 한자꼴 이외에 우리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확인하려고 사전을 뒤적이는 예가 정말 얼마나 될까? 그들은 또한 발음을 정확히 하려고 사전을 뒤지는 버릇이 들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발음은 각자 자유 의사에 내맡겨져 있다. 그들에게는 낱말 알아 맞추기 같은 놀이가 많아서 사전 뒤적이는 것이 일종의 놀이처럼 되어 있는데, 우리는 안 그렇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이 어떤 경로로 해서 우리 낱말을 익히고 맞춤법을 대략 배우고 띄어쓰기를 이럭저럭 해 내는지 놀랍기 그지없는 사실이다. 무슨 표준이 없이 이럭저럭 익혀 그럭저럭 서로 소통하고 지나는 판이다. 낱말의 뜻을 좀 삐딱하게 써도 그러려니 해 주고, 발음과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웬만큼 틀려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만큼, 우리는 우리의 말과 글의 사용에 대하여 세상에 유례가 없이 매우 아량이 크다.
그러나 실상은 큰일날 형편이다. 요즘 정보화 사회란 말이 크게 유행하는 터인데, 오늘의 수준에 맞는 정보란 정확해야 하고, 정확성은 기계화의 의하여 입증된다. 정보의 핵심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말인데, 자연 상태의 말이야말로 극도로 변화무쌍, 다양 다색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기준과 표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 말이야말로 가장 미세한 표준, 현재의 기계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세밀한 표준에 의해서 지배된다.
국어사전은 글자꼴 모음이거나 낱말의 대강 뜻이나 엉성한 문법 정보의 모음이 아니어야 한다. 실상 우리들이 국어사전을 들쳐보지 않는 큰 이유의 하나는 한자꼴 이외에 그것이 제공하는 정보가 매우, 아주 매우 불충분하고 또 많은 경우 틀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올라 있는 낱말들은 실제로 쓸모가 없고 정작 알아보고픈 낱말은 안 올라 있기가 일쑤라는 것이 내가 만난 교수들의 공통된 불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하여서도 못난 현행 사전을 부단히 뒤져야 글 쓰는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맞춤법이 개정이 되어서 현행 사전은 모두 버려야 할 판이지만) 아마 고교, 대학 입시에 (그리고 신문사 입사 시험에)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제를 반드시 포함시키면 한국인의 국어사전 기피증이 많이 가실 것이다. 교육부와 문화부에서 심각히 고려할 일이다. 국어사전 편찬과 동시에 할 일은 국어에 관한 모든 정보를 사전에서 찾아내는 버릇을 모든 국민에게 심어 주는 국민 교육인 것이다 '국어 사랑 나라 사랑'이란 표어를 도처에서 읽으며 낯뜨겁지 않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