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어를 이렇게 배웠다]

그런데 말이죠

Marie-Jo Wustinberghs(백 마리조) / 한국 외국어 대학교 불어과 교수

말, 언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생활에 너무도 가까운 것이니까 제가 한국말을 배웠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면 21년 동안 제가 한국에 살아온 것을 떠올리며 생각하게 됩니다. 70년 8월 25일 한국에 도착했을 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읽지도, 쓰지도 못했고 말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젓가락도 사용할 줄 몰랐고 요에서 잠자는 것도 익숙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대화는 미소였습니다. 그 미소로부터 안집 할머니와 같이 깊은 애정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소가 좋아도 말도 할 줄 알아야 하니까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은 서대문에 있던 명도원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을지로 2가에 살았기 때문에 날마다 걸어서 학원에 다녔습니다. 한국말을 배우기 전에 거리에서 왜 자꾸 사람들이 저의 이름을 쓰는지 놀랐습니다. 계속해서 '마리조,' '마리조,' 해서 뒤돌아보고 옆을 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음에 '그렇단 말이야,' '그런데 말이죠,' 무슨 뜻인지 알게 되어서는 많이 웃었습니다. 이제 저를 부르더라도 '마리조'에 '선생님'이나, '아줌마'를 붙이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아요.
    한국말을 배울 때, 날마다 여섯 시간씩 공부했습니다. 학생들은 미국 인하고 유럽 인이었습니다. 책은 명도원 책으로 따라가며 했으니까 한국어를 잘 따라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저는 한국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말도 많이 하고 살면서 배워서 재미도 있었고 빠른 효과를 느끼고 있어서 신이 많이 났어요. 그런데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불어를 가르쳐야 해서 숙제를 제대로 못해서 공부하고 싶은 만큼 못했습니다. 특별히 한자 학습 시간이 있었는데 잘 외우지 못해서 지금은 아쉽습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는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기 살면서 외우는 방법은 자꾸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봅니다. 함께 자취했던 친구들과 같이 한국말 쓰고, 시장도 봐야 했으니까요. 친구들은 시장 보러 저를 보냈습니다. 물건 사러 가는 길에 '콩나물,' '콩나물.......' 외우면서 가는데 이상하게 가게에 도착하면 갑자기 말을 잊어버리고 "이것 주세요." 말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연습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친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때 일 층 안집에 5~7살짜리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녀오면 아이들이 저의 방에 와서 제가 배웠던 것을 이야기 다시 해서 들려주면 아이들은 열심히 듣고 고쳐 주고 저는 창피함도 없이 부담 없이 말해서 특별히 혜련이 덕분에 좋은 복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말이 이상해서 특별히 반말, 존댓말 때문에 제가 처음 배울 때는 존댓말만 배웠으니까, 아이들한테도 그러나 그들이 사랑 속에 받아들이니까 웃지도 놀리지도 않아 저에게 많은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같이 사는 친구들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처음엔 존댓말 제대로 사용할 줄 몰라서 실수를 더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날 피곤해서 집에 있었는데 제가 이젠 '주무시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웃음이 나서 왕도 자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 안 했다고 하며 들려주어 사회 제도 말하는 제도 관계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언어마다 이런 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말은 어느 말보다도 그런 차이점에 자세히 표시한다고 봅니다.
    제가 존댓말 먼저 배워서 실수했지만 그 반면에 아주 잘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표시에 대해 의식하고 존댓말을 잘 사용하는 편입니다. 한국 어른들이 제 언어 사용에 칭찬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외우기가 어렵고 발음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자음의 구별 아직도 문제 있습니다. 예를 들면 ᄐ·····ᄁ.......
    그런데 제가 이제 와서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후회하는 것이 학원에 다닐 때, 2학년 때의 선생님이 저의 발음을 더 자세히 고쳐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의 전공이 음성학과 음운론이니까, 그런 면에서 더 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한국어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어휘'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발음이 잘못하더라도 앞뒤 내용을 들으면 사람들이 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서야 저에게 제일 큰 문제가 어휘라는 걸 새삼 또 느낍니다. 옛날에 한문을 잘 외우지 못한 이유와 문학책이나, 잡지를 많이 읽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외국어 많이 알지 못하지만 제가 배웠던 말 중에서 한국어가 제일 확실한 말이라고 봅니다. 정확한 말이 있어서 좋은 점이 있습니다만 외국인에게는 배우는 것이 오래 걸립니다. 솔직히 힘들고, 가끔 답답합니다. 제가 한국에 오래 살고, 2년을 공부했어도 또 그 후에 몇 년 동안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제대로 다 알아듣지 못합니다. 한국어의 정확한 말에 대해서 불어와의 구별의 예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불어에서 '일하러 간다.' '일하고 온다' 쓰지만 한국말은 '출퇴근한다'이런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물론 말마다 차이점이 많지만, 이런 면에서 한국어의 특징이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예를 하나 더 들면, 제가 보통 때 우리 학교 교수님들과 이야기할 때 사로 알아듣기가 아주 쉬는 데, 왜 갑자기 '교수회'에서는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보통 사람의 말,' '박사의 말,' 큰 차이입니다. 이것이 용어와 같은 문제가 아닐까 봅니다. 외국어를 한국어에서 같이 쓸 때, 사람들이 새로운 물건이나 입장이 바뀌면 새로운 단어가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가 봐요. 예를 들면 제가 몇 년 전에 한국어를 쓰고 싶어서 닭집에 가서 '칼' 하나만 주라고 부탁했더니 종업원이 제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칼' 한국말 아닙니까? 한참 설명한 후에 종업원이 '아, 나이프'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왜 영어를 써야 했는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부엌에서만 옛날부터 쓰던 도구 '칼'이고 최근엔 나이프가 되고, 밥상이 식탁이 되고, 불어에서는 '칼'이란 말 하나밖에 없고, 구별해야 되면 '부엌칼'하고 '식탁 칼'이라고 합니다. 이렇듯이 한국어에서 한 단어만 쓰면서 표시하고 싶은 것인지, 한국말로 새로운 단어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인지 확실한 이유는 모릅니다.
    말 뒤에는 철학 바탕이 있어서 저는 계속해서 한국말을 배우면서 한국 사상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와서 말도 배우고, 한국 풍습도 배우고, 저의 사고방식이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는 제가 얻었던 두 가지의 말과 문화를 한없이 조화시키는 것만 남아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