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어를 이렇게 배웠다]

나는 한국말을 이렇게 배우기 시작했다.

Lutz Drescher(도여수) / 선교사

'나는 한국말을 이렇게 배웠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제목은 조금 적당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말은 서양 사람들에게 아랍권의 언어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배운다 할지라도 언제든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한국말을 잘 못한다. 한국말을 못한다는 예를 들자면 수없이 많지만, 한 예를 소개하자면, 작년 추운 겨울날 '대전'에 갈 일이 생겼다. 버스를 항상 이용하지만 그때는 그 전날 밤에 눈이 많이 와서 처음으로 기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매표구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마침내 기차표를 사고 나서, 기차에 세 시간여 동안 몸을 싣고 바깥 풍경을 구경한 다음에 역에 도착했다. 나가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전' 역이 아닌 것 같았다. 역사 위의 표지판을 보니, '대천'이었다. '대전행' 열차를 타야 하는데 잘못 탄 것이었다. 아직도 'ᄌ'과 'ᄎ'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예를 통하여 '배웠다'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렇게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1. 말을 못하면 힘들다
    87년 2월 추운 어느 날 한국에 왔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 외에는 한마디도 몰랐다. 글씨조차도 못 읽었다. 원래 시골이나 조그마한 도시에서 살아 온 나에게는 서울처럼 큰 도시에서 살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남산에 구경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한 골목에서 길을 잃어 버렸다. 서울역에 가려고 했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Seoul Station'이라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 보았지만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기차 소리를 흉내냈지만 그 또한 알아듣지 못했다. 기차 소리조차도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독일 말로는 '즈즈즈, 즈즈즈'라고 하지만, 한국말로는 '칙칙폭폭'이라고 한다. 또 다른 날에 서울을 구경하다가 화장실이 아주 급했는데 'Toilet'라는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큰일날 뻔한 적도 있었다. 이런 일로 인하여 한국말을 빨리 배워야 하겠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런 일상적인 경험들보다는 보다 더 깊은 동기가 있다.

2. 결사적으로 배우겠다는 각오
    내가 한국에 온 것은 한 5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노동자와 빈민을 위해 조그마한 교회에서 선교 활동과 사회 봉사 활동을 할 계획이 있어서였다. 이런 일을 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꼭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서 일정한 기술을 배워야 하지만, 나에게는 바로 말하는 것이 '일하는 수단'이다. 일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정말로 이해하려고 하면 그 나라의 말을 배워야만이 이해할 수가 있다. 어느 민족의 말을 배우는 것은 그 민족을 사랑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결사 반대'라는 구호(slogan)를 쓰는 것처럼, 나는 한국말을 배우는 것에 대해 '결사 배우겠다'라는 자세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친구들이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하다가 포기하는 것을 봤다. 그들에겐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자기 일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국말을 취미로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사적인 마음을 먹어야만이 배울 수 있다.

3. 글씨가 좋다.
    한국에 온 다음에 '연세 한국어 학당'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거기서 3월 말에 학기가 시작됐다. 조금이라도 빨리 배우려고 우선 'CTRC'에서 매주 3번씩 있는 2시간씩의 수업을 받았다. 그때엔 문맹이었던 나는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 글씨는 정말로 독창적(geniale)인 글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서구에서 쓰는 라틴(Latin)글씨보다 더 쉽고 논리적인 글자다. 그래도 복잡한 점도 없지 않다. '신라'는 원래 표기상으로 'SINLA'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silla]로 읽어야 될까요? 또 '종로'도 표기상으로 'CHONGRO'인데 어째서 [chongno]로 발음해야 할까? 골치가 아팠다. 그래도 배워야만 했다.

4. 지하철에서도 연습
    글자를 학교 'CTRC'에서 배웠지만, 지하철을 탈 때마다 연습을 했다. 영어로 된 지하철 지도를 보면서 지하철 출입문 위에 있는 한글로 된 지도를 읽곤 했다. 그 후에 전철과 버스를 탈 때마다 단어 카드를 가지고 단어들과 유형(pattern), 그리고 한자도 외웠다. 지금은 신문을 읽으면서 계속 배우고 있다. 한마디로 하면, 지하철 안에서 수백 시간 공부를 했다.

5. 연세 한국어 학당
    3월 말에 연대에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동사 어간(Verbs tämme)+지만'이라는 유형을 배울 때이다. "한국말은 어렵지만 재미있습니다." 정말 그렇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연대에서 첫째 시간에 복습과 유형 연습을 했고, 둘째 시간에 조금 연습을 계속하고 랩(lab)에 갔다. 셋째 시간엔 읽기 연습하고, 넷째 시간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활동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은 '단어 게임'이었다. 유형 연습할 때 선생님들이 말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스스로 문장을 만드는 것은 훨씬 더 효과적이고 재미있었다.

6. 한국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원래 나는 다른 독일 사람들과 같이 살다가 학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하숙집으로 옮겼다. 독일 사람들과 같이 살면 한국말을 배우기가 더 힘들다. 왜냐하면 집에서 계속 자기 나라말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도 (노)총각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결혼했더라면 한국말을 못 배웠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만이 한국말을 배울 수 있다. 그동안 돌아가신 독일 대사관의 통역자로 계셨던 슈미트(Schmidt)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김치 먹으면서 한국말을 배울 수 있다." 아직도 한국말에 있어서 부족한 이유는 아마 김치를 충분히 많이 못 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튼 학교에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아침과 저녁으로 하숙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더 많이 배웠다. 어느 유형이든지 약 300번 정도 연습해야만이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숙집에서 자연스럽게 연습을 할 수가 있었다.

7. 학교 밖에서 흥미롭게 배웠다
    처음에 한국말이 서툴렀을 때 식당에 가서 '생선'을 시키려고 하는데, 그만 '선생 주세요!' 했다가 사람들이 모두 웃는 바람에 창피해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말을 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것은 말을 잘 배우기 위한 '제1원칙'인 것 같다. '부끄러워하지 마라'는 원칙이다. 말이 서툴러도 해야만이 더 잘하게 되는 것이다. 말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말을 들을 기회도 놓치지 마라.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도 AFKN을 듣지 않고 한국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배웠던 것 같다. 나에겐 또 한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었는데, 종교 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성경책을 암송할 정도로 잘 안다. 한국어 학당에 다닌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현대 번역 '영·한 성경책'을 샀다. 지금까지 4년 동안 매일 아침에 몇 구절을 한국말로 읽어 왔는데 나도 모르게 많이 배웠다. 한국 생활의 초기에 경험했던 것을 또 하나 언급할까 한다. 녹음테이프와 함께 나오는 동화책들이 있다. 이런 책들을 몇 권 샀다. 처음에 그림을 보고, 천천히 글씨를 읽어 봤다. 그다음 녹음테이프만 들었다. 마침내 테이프를 들으면서 소리 내어 읽어 봤다. 이렇게 함으로써 말뿐만 아니라 동화들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나라말이든지 배우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흥미 있게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8. 쉬어 가면서 배웠다
    9개월 동안 연대에서 3급까지 공부하다가 완전히 지쳐 버렸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배워서 어지러울 정도였다. 좀 다른 분위기 속에 조금 더 배우고 쉬려고 했다. 지금은 서강대에 있는 그때에는 'Korea Herald'에 있던 어학당에서 좀 더 공부하기로 했다. 4급에 들어갔다가 너무 쉬웠다. 5급 과정의 학생들이 없었기 때문에 6급 과정에 들어갔다. 그래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루 3시간만 수업하고 중간 학기 말 시험이 없었기에 부담 없이 소위 쉬어 가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9. 실습을 통하여
    그 후에 2개월 동안 큰 교회에서 실습을 했다. 목사님의 설교를 그때는 알아듣지 못하는 실력이었지만, 천천히 쉽게 말하는 전도사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는 사전 보지 않고 설명해 달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13개월 된 그때에 처음으로 설교를 해 봤다. 교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는지 의심이 가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하루 종일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노력했을 때 정말 피곤했다. 그래서 가끔 몇 시간만 교회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서 개인적으로 한국말 공부를 계속했다.
    이제는 한자도 배우기 시작했다. 한자도 재미있게 배워야 한다. 우선 'Korean with Chinese Character'(R. Rucci)라는 책을 가지고 공부했다. 나무 밑에 쉬는 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 그림을 통하여 휴(休) 자를 배웠다. 그 후에 'Pictorial Sino-Korean Character' (흥미 한자 학습) (Rev. Jacob Chang Ui-Kim 씀)이라는 책을 공부를 했다. 음은 같지만 글자의 의미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상'이라는 글자는 22가지의 의미가 있다.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傷(다칠 상), 想(생각할 상)과 上(위 상)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900자의 한자밖에 못 배웠지만, 또는 이제는 많은 글자를 잊어 버렸지만, 한자를 어느 정도 알아야만이 낱말의 의미를 알아맞힐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 '폭우'라는 낱말을 들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니까 '폭력'에 나오는 폭'暴'과 비 우'雨'자라고 알아맞힐 수가 있었다.
    그 후에 여름부터 다시 한 번 9개월 동안 연대 한국어 학당을 다녔다. 그때도 배우느라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초기처럼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싫증날 때도 있고 죽을 때까지 못 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수를 하게 될 때면, 실망을 한 적도 많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한자말에서 배운 '失敗는 成功의 어머니'라는 교훈을 생각했다. 그래서 좌절하지 않고 계속 배울 수 있었다. 1,450시간의 수업, 그리고 1,500시간의 숙제와 개인 공부, 또 수백 시간 동안 전철 탈 때나 기다릴 때마다의 단어 암기와 유형 연습, 이런 과정이 있은 다음 1989년 3월 연대 한국어 학당을 졸업했다.
    그 후부터 진짜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 빈민 지역의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교사 교육하면서, 무엇보다도 매 주일 성경 공부와 설교를 하면서 계속 배우고 있다. 또한 고대 대학원에 다니는, 독문학을 전공하는 허금회 씨가, 이제까지 수많은 설교문을 고쳐 주고, 물론 이 글을 고쳐줄 때 많이 배우게 된다. 어느 정도로 말할 수는 있지만 아직도 틀리는 것이 많다.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들자면 '야(Ja)'라는 것이 독일 말로는 그냥 '예'라는 뜻이다. 생각날 때나, 그냥 습관적으로 독일 사람들은 '야'라는 말을 많이 쓴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가끔 목사님을 보고 '야, 목사님'이라는 말을 한다. 큰 실수인지는 알지만 아직도 못 고치고 있다. 다행히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고 너그럽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늘 양해해 주신다. 아직도 틀린 것이 많다. 그래서 늘 시작한다는 셈 치고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어를 계속 배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