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외국인을 위한 교육 기관]

터키에서의 한국어 교육

최한우 / 앙카라 국립 대학교 동양어문학과 교수

1. 머리말
    공식명이 '튀르키예' 공화국(Türkiye Cumhuriyeti)인 터키(Turkey)는, 4~5백여 년 동안 중동 전 지역과 동구 유럽, 북부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거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튀르크 오스만(오토만) 제국이 무너지면서 1923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세워졌다. 아시아 대륙의 아나톨리아 반도와 유럽의 트라키아 지방을 영토로 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교량적 위치에 처해 있는 터키는 인구 약 6,500만의 자유 민주 체제를 가진 현대 국가이다. 터키는 인구의 99%가 모슬렘이며 중동과 접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중동 국가들과는 다르게 세속주의 법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 의회 등 대부분의 유럽 국제 기구의 회원국일 뿐만 아니라 나토(NATO) 가맹국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친 서방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유럽 공동체(EC) 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터키에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종합 상사의 지사가 설치되어 있으며, 몇 회사의 합작 혹은 단독 생산 공장까지 설립되는 등, 최근에 들어서 한국과 터키의 경제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금성, 삼성, 대우의 전자 제품들이 어느 제품보다 많이 팔리고 있으며, 최근에 현대 자동차의 시판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며 인구는 3백5십만이다. 과거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서 '세계의 서울'로 알려진 콘스탄티노플은 15세기 초에 튀르크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후 '이스탄불'이라 불리며, 현재 터키의 최대 도시로서 인구는 약 8백만이다.
    터키인은 터키 공화국에 사는 튀르크 족을 말하며, 원래 튀르크(Türk) 족은 이미 AD 5~6세기 전에 우리나라에 돌궐족(突厥族)으로 알려졌었다.
    튀르크 족은 중국 북부 지역에 AD 6~7세기에 돌궐 제국을 건설했으며, 8~9세기에는 위구르(Uygur) 제국을 세웠다. 후에 서남아시아 지역을 근간으로 셀주크(Selchuk) 제국을 세웠고, 몽고족과 함께 튀르크-몽고 연합 제국을 이룩했으며, 튀르크-몽고 연합 제국이 무너지면서 아나톨리아 반도(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오스만(Osman) 제국을 건설하여 수 세기 동안 유라시아 전역을 무대로 세계 역사 속에서 그의 용맹을 널리 떨친 활발한 민족이다. 특히, 튀르크 족(돌궐족)과 우리 민족과의 역사적 유대 관계 는 깊다. AD 6세기 중반에 수나라가 그 영역의 확장을 꾀하여 고구려에 침입하였을 때, 고구려와 돌궐 제국이 연합하여 수나라 군대를 몰아내었으며, 최근 6.25 동란 때에 터키 군대가 유엔군으로 와서 우리나라를 도와 용맹히 싸웠던 것이다.
    튀르크 족은 현재 유라시아의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살고 있다. 소련 내의 우즈베크 공화국, 카자흐 공화국, 키르기스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투르크멘 공화국 등은 튀르크 족의 공화국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이외에 타타르 공화국, 바슈키르트 공화국, 투바 공화국, 추바슈 공화국과 같은 다수의 튀르크 족 자치 공화국 혹은 자치구들이 있다. 소련 내의 튀르크 족 인구는 소련 인구의 약 22%로 추정된다. 튀르크 족은 중국 서부 이역에도 약 천만 명의 인구가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이란 등 서남아시아 중동에도 수많은 튀르크 족이 살고 있다. 이란의 서부 지역에는 약 7백만 명의 아제리 튀르크 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구 유럽의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지에도 수백만 명의 튀르크 족이 있으며, 그리스 북부 지방에는 약 35만 명의 튀르크 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30년 내에 터키 공화국에서 유럽으로 취업을 위해 이주한 튀르크 족만 해도 약 250만 명을 헤아린다. 독일에만도 약 150만 명의 튀르크 족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와 같이, 튀르크 족은 중국으로부터 영국까지 전 유라시아에 넓게 퍼져 살고 있는데 전체 인구는 약 2억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소련 정세의 변화와 함께, 소련 내의 튀르크 족 공화국들의 분리 운동의 움직임은 그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튀르크 어는 언어학적으로 몽골 어, 만주-퉁구스 어, 한국어와 함께 알타이 어에 속하며, 따라서 문장 구조와 형태 면에서 우리말과 유사한 점이 많다. 어순(語順)이 한국어와 동일할 뿐만 아니라, 격 조사 면에서 유사한 형태가 많으며, 의미론적인 면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이 많다. 몽골어나 만주-퉁구스 어와는 달리, 터키 공화국에서는 라틴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 언어들 중 가장 배우기 쉬운 말이 터키 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터키 공화국의 인구의 약 80%가 튀르크(Türt) 족이고, 약 18%가 퀴르트(Kurt) 족이고 극히 소수 민족으로 에르메니 인, 그리스 인, 수리아니 인, 유대 인 등이 있다. 공식 언어는 유일하게 튀르크 어(Türkçe)로서, 공화국 창립 이래로 퀴르트 어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해 왔었는데 중동 전쟁 이후 정세 변화에 따라 지난 3월부터 퀴르트 어 사용을 -사적으로(私的) 대화와 음악에 한해서 - 법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3월 말 소련 타타르 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열린 제2차(소련 내) 튀르크 민족 대표 회의에서 소련 내의 튀르크 족 공화국의 문자로 시릴 문자 사용을 중단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터키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다소 변형된 라틴 문자를 사용키로 결정한 것은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튀르크 어의 단일 문자화라는 면에서 주목되고 있다.

2. 앙카라 국립 대학교에 한국학과 설립
    2.1. 한국학과 설립 추진
    1986년 이래로 필자가 매년 수 차례에 걸쳐 앙카라 대학교 문과 대학의 국문학과, 중국어과 등 교수들을 만나, 한국학과 설립 문제를 거론했었다. 당시 필자가 터키에 한국학과 설립의 중요성으로 제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1973년에 이미 한국 서울 소재 한국 외국어 대학교에 터키 어과가 설립되었다. 따라서, 1982년 한국과 터키 양국 간에 문화 협정이 체결되었으므로, 상호 문화 교류 정책에 따라 수도 앙카라에 한국어과의 설립은 정책적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둘째, 언어적으로 한국어와 튀르크 어는 알타이 어족에 속하며, 한국과 터키는 문화적으로 같은 문화권인 알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국가들로서 동일한 혹은 유사한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바라보면서, 고대 아시아 대륙 문화의 주도 세력이 었던 '알타이 문화권'에 관한 연구가 한국과 터키 학계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알타이 문화권 연구의 촉진을 위해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알타이 문화권 연구를 위한 보조 학문인 역사학과, 튀르크 국문학과, 중국학과, 고고학과 인류학과 등의 활동이 활발한 앙카라 대학교 문과 대학에 한국학과를 세우는 것이 합당하다. 셋째, 최근 들어 한국과 터키 양국 간에 무역 관계가 증진되고 있고, 몇몇 한국의 종합 상사의 지사들이 터키에 설치되었으며, 이미 두 개의 전자 회사 합작 공장이 설립되어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회사들의 진출이 기대된다.
    필자가 매년 수 차례에 걸쳐 만난 앙카라 대학교 교수들은 한국학과의 설립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나, 정책 관계자들은 정치 문화적으로는 장애 요소가 없으나, 한국과 터키 양국 간의 교역이 더 증진되어야 한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당시 터키 경제가 부진하였던 까닭에 정책 지원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88년 말에 이르러, 관계자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이러한 태도 변화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은, 터키 경제의 급속한 발전도 있겠지만 서울 올림픽이었다. 서울 올림픽을 통해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가 부상되면서 당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주저 없이 한국학과 설립을 승낙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86년 이후로 많은 한국 기업체가 터키에 진출한 것도 그 요인이 될 수 있겠다.
    결국, 앙카라 국립 대학교의 독립 학과로서, 앙카라 문과 대학의 풀라트 오트칸, 무스타파 잔폴라트, 도안 악산, 최한우 등 창립 멤버 교수들의 준비와 당시 앙카라 주재 장명하 대사의 적극적인 협조에 의해서 한국학과가 1989년 2월 문과 대학에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2.2. 앙카라 대학교 문과 대학
    앙카라 국립 대학교는 수도 앙카라에 소재하며, 단과 대학별로 캠퍼스가 따로 분리되어 있다. 한국학과가 속해 있는 문과 대학의 학생 수는 약 5,000명이며, 문과 대학 내에 약 20개의 외국학과(외국어학과)와 37개의 인문학과가 있다. 동양학과로는 1934년에 중국학과가 문과 대학 창립과 동시에 세워졌으며, 1987년 일본학과가 설립되었고 2년 후에 한국학과가 설립되었다. 이외에 동양학과로서 인도학과, 아랍학과, 이란학과, 파키스탄(우르두)학과 등이 있다.
    국학과는 첫해에 실험 과정으로 7명의 학생을 뽑았으며, 2차 연도에는 13명으로 학생 수를 늘렸다. 올해부터는 매년 20명의 학생을 정규적으로 선발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학생 수는 20명이다. 이번 10월 새 학기에는 약 40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터키 내에서의 외국어 상황과 한국어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
    어느 한 나라에서 외국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 외국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국가의 국제 사회에서의 정치 경제 문화적 영향권이 어느 정도인가, 또는 한 언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와 국어로 사용하는 나라 혹은 나라들 간의 상호 교류가 어느 정도 긴밀한가 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면에서 터키도 예외는 아니다.

3.1. 프랑스 어
    터키에서 근대적 의미의 외국어 교육은 17~18세기 오스만 제국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했던 외국어는 프랑스 어였다. 물론 그때 유럽에서 프랑스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이 컸지만, 그보다는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 간의 문화 교류의 긴밀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소위 엘리트들이 프랑스에 유학했었는데, 프랑스 어를 모르는 지식인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류 사회에서 외국어로서 프랑스 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것이다. 수많은 프랑스 문학 작품이 오스만 튀르크 어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상류 사회에서는 의상까지도 프랑스풍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 결과 현대 터키에는 많은 프랑스 어 차용어들이 있다. 아직도 많은 일반 국민들이 '감사하다'는 뜻을 프랑스 어 '메르시'로 표현한다.

3.2. 독일어
    오스만 제국 말기에 군대를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과 독일의 관계는 급속도로 증진되었다. 덕분에 제1차 세계 대전에 같은 동맹국으로 참전했고 독일의 패망과 더불어 거대한 오스만 제국도 무너졌지만, 이때부터 오스만 제국에 프랑스 어의 경쟁적 언어로서 독일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일어가 프랑스 어를 밀어붙이고 터키에서 가장 비중이 큰 외국어로 등장한 것은 1960년도이다. 동맹국으로 함께 싸웠던 혈맹 관계의 정은 끈끈하여, 독일이 두 번씩이나 '세계의 적'으로 등장하였지만 터키와 독일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60년도에 들어서 독일이 재건되면서 광부, 청소부 등으로 일할 외국인 노동자들을 필요로 할 때에, 독일 정부가 제일 먼저 문의한 나라가 터키였다. 덕분에 80년도까지 약 2백만 명의 터키인 노동자가 독일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터키 상류층뿐 아니라 하류층에까지 독일어가 넓게 유행하게 되었다. 최근 독일의 통일과 함께 영어에 밀린 독일어의 비중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지만, 독일어를 하는 인구가 너무 많은 까닭에 직업을 구하는 조건으로는 별로 우대되지 않고 있다.

3.3. 영어 혹은 미국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영어 혹은 미국어가 세계에서 외국어로서 차지하는 비중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다른 제3세계에 비해서 터키에서는 영어의 영향권이 서서히 형성되는 것 같다. 최근 70년도에 이르러 영어가 독일어를 누르고 제1외국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 어의 비중은 아직도 거의 거의 같다. 현재 터키에는 각 도시마다 적어도 1개 이상의 영어, 독일어, 프랑스 어로 교육하는 중고등학교가 있으나, 국제 사회에서 영어의 비중이 증대되면서 독일어, 프랑스 어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영어로 교육하는 종합 대학이 이스탄불에 1개교, 앙카라에 2개교가 있다.

3.4. 일본어
    80년도에 들어서면서 일본어가 새로운 세력으로 형성되고 있다. 급기야, 1987년에 앙카라 대학교에 일본어과가 설립되고, 1989년에 이스탄불에 소재하며 영어로 강의하는 보스포로스 대학교에 일본어과가 생겼다. 경제 대국으로 위치를 굳힌 일본의 영향으로 무역계에서의 일본어 비중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3.5. 한국어
    한국어는 한국학과의 설립과 함께, 최근에 터키 일반인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에 한국의 기업들이 진출하면서 구직을 위한 희소가치로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제한적인 숫자이고, 오히려 올림픽 이후로 한국의 역사, 문화, 경제 등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대학의 젊은 학자들 간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튀르크 국문학과와 역사학과의 젊은 학자 혹은 학도들이 알타이 언어 혹은 알타이 문화권 비교 연구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 하나 제한적 여건 때문에 어려워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 터키 내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한국학과 학생들에게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소련의 정세 변화에 따라, 만주 지방에서부터 동구 전역에 흩어져 있는 2억의 튀르크 족의 민족의식이 증대되면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튀르크 민족의 역사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고, 소련 내 튀르크 족 공화국들과 터키 간의 모종의 경제 블록 형성이 구상되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터키의 관심이 아시아 대륙으로 옮겨지면서, 공동 문화권인 한국학 연구와 한국어 교육의 비중은 앞으로 점차적으로 증대되리라 본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나라가 터키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 북방의 '알타이 문화권'에 진출하기 위해서, 한국 내에 소위 '튀르크학'의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정책이 구상되어야 하리라 본다.

4. 교육 과정과 교수 진용
    4.1. 교육 과정
    2년 전 과 설립과 함께, 과장인 풀라트 오트칸 교수와 필자가 교육 과정 편성 작업과 교재 선정 준비 작업을 했었으며, 이 작업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곳 터키인에게 가장 적합하며, 효율적인 교육 과정이 정착되겠지만, 현재 한국어과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영어 등 제2외국어와 교양 과목은 제외했음).

1학년: 필수: 문법, 강독, 회화, 언어 실습, 한글 쓰기, 한국 역사 문화 입문
선택: 중국 역사 문화, 일본 역사 문화
2학년: 필수: 문법, 강독, 회화, 언어 실습, 작문, 한자, 한국 역사 문화
선택: 중국 한문 쓰기, 중국 역사 문화, 일본 역사 문화
석사·박사 과정(현재는 중국어 일본어과 학생들 대상임.) 필수: 한국어

한국학과, 중국학과, 일본학과 등 극동 학과가 몇몇 과목을 공통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즉, 한국학과 학생들이 선택으로 중국학과와 일본학과의 몇 과목을 선택하여 듣고 있으며, 중국학과와 일본학과 학생들도 한국학과의 몇 과목을 선택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제3,4학년 프로그램은 재조정 준비할 예정인데, 한국어 관계 과목 이외에, 한국 현대 역사, 한국 근대 정치, 한국 경제, 한국 문학, 시사 등을 필수 과목으로 추가 할 생각이다.

4.2. 교수 진용
    터키인 교수로는, 중국학 학자이자 전 중국학과 과장이며, 1987년 문과 대학에 일본어과를 창립하여 일본어학과 과장 겸 한국학과 과장으로 있는 풀라트 오트칸 교수가 유일하며, 한국인 교수들이 4명 있다. 이제 학과가 생긴 지 겨우 2년밖에 안 되었는데 교수가 5명이나 되다니 하면서 간혹 우리나라 대학 실정을 아는 한국 사람들이 의아해 하곤 한다. 터키에서는 학과를 세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교수가 시작부터 4명이 임용되어야 한다. 한 학년 정원이 20명인데, 일본학과 2명의 외국인 교수와 5명의 현지인 교수를 비롯, 7명의 교수가 있으며, 중국어과도 1명의 외국인 교수, 6명의 현지인 교수가 있다. 한국인 교수 중 1명은 교육부의 지원으로 파견된다. 현재 한국인 교수들로는 국문학 전공 1명(교육부 파견)과 알타이 언어학 전공인 필자, 그리고 튀르크 언어학과 박사 과정에 있는 1명의 강사와 언어학과 박사 과정에서 현대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는 1명의 강사가 있다.

5. 교재 및 사전
    5.1. 교재
    그동안, 문교부와 학술 진흥 재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과 설립과 함께 비디오와 텔레비전이 준비되었으 며, 한국학 연구에 필요한 서적 종류가 대부분 완비되었다. 현재로는 이러한 자료가 주로 교수진의 강의를 위한 연구자료로 사용되고 있지만 내년쯤에는 3학년 학생들이 점차로 이러한 자료들을 사용할 정도의 언어 수준이 되리라 기대된다. 연구 자료와 함께 최근에 학술 진흥 재단에서 초중등학교 교재들을 보내왔다. 초등 교과서들은 학생들이 참고 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법, 회화, 강독 등 한국어 관계 서적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서적들을 사용해 왔다. 강독을 위해 서울 대학교 어학 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문법서로서 연세 대학교 발행 '한국어 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언어 실습은 서울대에서 준비한 '한국어'의 녹음테이프를 사용하고 있으며, 회화는 자체 준비하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자는 졸업까지 3천 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수준으로 목표를 두고 준비시키고 있다.
    역사의 문화는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수준의 정도로 하되, 고대 역사와 사회 문화는 한국과 고대 튀르크 족과의 밀접한 관계 등을 고려하여 알타이 문화권의 비교 연구 차원에서 대학 혹은 그 이상의 수준으로 깊게 다루고 있다.

5.2. 사전
    한국학과 설립과 함께 교재 준비 과제의 하나로 한국어-터키어 사전 준비를 착수했었다. 영어를 모든 학생에게 필수로 가르치는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과는 달리, 이곳 터키의 중고교의 외국어 교육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생들의 선호와 관계없이 학생들에게 추첨을 통해서 영어, 독어, 불어 중 하나를 필수로 선택하게 되어 있어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영어, 독어, 불어 중 한 외국어만을 안다. 완전히 영어, 독어, 프랑스 어 등 외국어로 교육을 실시하는 중고교 과정 콜레주 출신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외국어 실력이 빈약해서, 한-터 사전 편찬이 긴급한 과제가 되었었다.
    약 2년 동안의 작업 끝에, 지난 3월 한국어-터키어 사전 집필이 끝났다. 사전 집필은 필자와 김효정 교수가 함께 책임 작업했으며, 한국학과 과장 플라트 오트칸 교수, 앙카라 대학교 문과 튀르크 어 문학과 교수이며 한국학과 창설 멤버인 무스타파 잔폴라트 교수, 하제테페 대학교 튀르크 어 문학과 강사 에미네 제일란 등이 도왔다.
    사전은 컴퓨터로 집필되었는데, 약 만오천 어휘의 작은 사전이다. 한국어에 관심 있는 터키의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단어의 발음을 표기했으며,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위해 중세 중국어 차용어임을 명시하기 위해 한자를 첨가했다. 과거에 람스테트 등 서구 학자들이 알타이 언어들을 비교 연구하면서 순수 우리말과 한자를 구별하지 못해 정확지 못한 용례들을 제시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앞으로 3~4년 내에 이 사전의 어휘를 약 4~5만 자로 늘려 재출판할 예정이다. 이 때에는 단어의 발음은 삭제하고, 동사의 활용 형태를 표기하며 숙어와 사용 용례를 가능한 한 많이 제시할 생각이다. 터키어-한국어 소사전은 외국어 대학교 터키어과 서재만 교수에 의해 집필되어 최근에 출판되었다.

5.3.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서' 사용의 문제점
    국내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외국인을 위한 문법서들은 일단 '외국인'을 서구인 즉 인구어 사용자들이라는 전제 하에 집필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외국인을 위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사실상, 일차적 단계로서 지금까지는 대체로 일본을 제외하고는 주로 구미에서의 한국학 발전을 위해 연구와 정책적 지원이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외국인을 위한 문법서들이 어떻게 하면 서구인에게 한국어를 쉽게 체계적으로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연구되고 집필된 것이다.
    그러나, 튀르크 어처럼 인구어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우리말과 같은 계통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술된 문법서가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는 혼란만 가져오게 한다. 한국어의 문장의 구조 특히 수식구조는 인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은 부분으로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잘 설명되어야 하지만, 튀르크 어 사용자에게는 극히 쉽게 이해된다. 또한 한국말을 배우는 서구인들에게 극히 어렵게 느껴지는 동사의 활용 어미도 튀르크 어 사용자들에게는 쉽게 소화될 수 있는 부분이다.
    국내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영어로 설명된 많은 책들이 발간되었다. 그러나, 터키인에게 한국어 문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용할 만한 책은 전혀 없다. 그래도 이중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임호빈 외)'이 '대학 교재'로 사용할 만한 것이어서, 앙카라 대학교에서 아쉬운 대로 이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인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수정되어야 할 수많은 부분이 있다.
    지면상 한 가지 예를 들면,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임호빈 외)' 65~68쪽에 여격(Dative)과 처격(Locative)을 다루고 있다. 여격 조사 '-에, -에게/-한테, -께' 등에 대해서, (1) 사람이나 동물에는 '-에게' 또는 '-한테'가 쓰이며, 그 이외에는 '-에'가 쓰인다. (2) "'-께'는 '-에게/-한테'에 비하여 존칭의 뜻을 갖는다."라고 설명하면서, 조사 '-에'가 여격 외에 여러 가지로 쓰이는 예를 제시하고 있다. 이 문법서에서 다섯 가지 예외적인 경우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들은 다음과 같다. (1) 동작의 이동을 뜻하는 동사와 어울릴 때, 이동의 도착점을 나타낸다. (2) 이동의 뜻이 없는 동사가 서술어이고, 장소를 나타내는 명사에 쓰이면 공간적 위치의 범위를 표시한다. (3) 시간을 나타내며, 시간적인 범위를 나타낸다. (4) 서술어의 동작에 대한 원인을 나타낸다. (5) 숫자 뒤 같은 곳에 쓰여 가치 판단의 기준적 단위를 나타낸다.
    튀르크 어에서는 격 조사의 형태와 개념이 분명하다. 위의 사항 중에서, (1)의 예로서 제시한 "나는 학교에 갑니다." 등 예로 제시한 문장들 모두가 튀르크 어에서는 여격의 기본개념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여격 외의 경우'가 아니라 여격으로 취급되어야 하며, (3)의 경우는 처격으로 취급해야 한다. (2)의 예로 제시한 다섯 개 문장들 중에서 "저는 내일 집에 있겠습니다."와 "부모님은 제 고향에 계세요."는 '-에'가 처격으로 "철수는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와 "그 옷은 내 몸에 꼭 맞아요." 그리고 "이 약은 신경통에 좋습니다." 등의 문장에서의 '-에'는 여격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4)의 경우는 튀르크 어에서도 예외적인 쓰임이며, (5)의 경우'-에' 격 조사가 "그것을 얼마에 사셨어요?"와 "이 물건은 한 개에 천 원입니다."에서는 여격으로, "일주일에 닷새 일해요." "한 달에 한 번 출장갑니다." "이 시계는 하루에 1분씩 틀려요." 등에서는 처격으로 쓰인 것이다.
    임호빈 외의 문법서에서 처격(Locativi) '-에서,''-에게서/-한테서'의 쓰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장소를 나타내는 명사에 '에서'가 쓰여, 서술어의 동작이 일어난 장소를 나타낸다. (2) 사람이나 동물을 뜻하는 명사에는 '-에게서/-한테서'가 쓰이는데, 이들은 서로 교체될 수 있다. (1)의 예로 제시한 문장들 중에서 "어디에서 일하십니까?" "한국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길에서 친구를 만났어요." 등에서는 처격으로, "시장에서 바지를 샀습니다."에서는 격 조사 '-에서'가 탈격으로 사용된 경우이다. (2)의 예로 제시한 문장 중에서 "나는 어머니에게서 그 말을 들었어요." "친구에게서 초대를 받았어요." "영자에게서 그 책을 빌리겠습니다." "선배에게서 영어를 배워요." "개한테서 냄새가 나요." 등의 문장에서 '-에게서/-한테서'는 모두 탈격(Ablative)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에서'가 공간적 또는 시간적인 출발점을 나타내는 경우의 예로 제시한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학교에서 몇 시에 집에 갑니까?" "열에서 일곱을 빼면 셋이 됩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가져왔어요." "저는 아침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등의 문장에서 '-에서'는 모두 탈격으로 쓰였다.
    결론적으로, 격의 개념과 구별이 확실한 튀르크 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 격 조사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일반적으로 한국어 문법서에서 무시하고 있는 '탈격'을 설정해야 하며, 분명한 격의 개념에 따라 격 조사가 재분류되어야 한다. 필자가 튀르크 어와 비교하여 새로이 분류한 한국어 격 조사 중에서 여격, 처격, 탈격은 다음과 같다.

1) 여격 조사: -게, -에게/-한테
(1) -에: 사람이나 동물 이외의 경우
예) 영희가 꽃에 물을 주고 있어요.
(2) -에게/-한테: 사람이나 동물을 뜻하는 명사 다음에
예) 누가 친구한테 선물을 보냅니까?
(3) -께: 존칭의 뜻을 위해서
예) 선생님께 여쭈어 보세요.
2) 처격 조사: -에서, -에게/-한테, -에
(1) -에서: 사람이나 동물 이외의 경우
예) 가게에서 무엇을 했어요?
(2) -에게/-한테: 사람이나 동물을 뜻하는 명사 다음에
예) 그 책은 철수에게 있어요.
(3) -에: 사람이나 동물을 뜻하지 않는 명사 다음에 '있다/없다'와 '살다,''머물다,''남다' 등과 같은 자동사와 함께
예) 나는 앙카라에 삽니다.
3) 탈격 조사: -에서, -에게서/-한테서
(1) -에서: 사람이나 동물 이외의 경우
예) 가게에서 사과를 샀어요.
(2) -에게서/-한테서: 사람이나 동물을 뜻하는 명사 다음에
예) 어머니에게서 그 말을 들었어요.

위와 같이, 만약에 상기 문법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다면 배우는 학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오게 할 것이며, 교수가 가르친 내용을 학생들 자신들이 다시 연구해서 자기들의 문법적 논리에 따라 재정리해야만 하는 이중적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수가 한국어 자료만 제공했을 뿐이지 한국어 문법을 강의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6. 가능한 한 현지어를 잘 아는 한국인 교수가 필요
    따라서 터키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가 항상 명심할 것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어와 튀르크 어는 알타이 어에 속하는 언어들로서 문법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인이 어느 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튀르크 어를 배우기가 쉬운 것처럼, 터키 인이 한국어를 배우기가 어느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튀르크 어를 깊게 모르는 한국인 교수가 튀르크 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에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리어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가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튀르크 어를 모르는 한국인 교수가 터키 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서구인을 위해 저술된 한국어 문법서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국내의 중고교에서 사용하는 국어 문법서를 교재로 사용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본다.

7. 결론
    지난날, 한국어와 유사하게 여겨지는 일본어 사용자들에게 한국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노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어를 아는 많은 한국인 학자가 있고, 한국어를 아는 일본인 학자가 적지 않았던 까닭에 그리 어렵지 않게 방법론이 연구 정착되고 많은 자료 교재 등도 준비되었다. 그러나, 한국어와 튀르크 어가 서로 놀라울 정도로 가까우면서도 터키 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튀르크 어를 아는 학자들이 다소 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하는 학자는 극히 적다는 점과 한국어를 아는 터키 인 학자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터키인에게 효과적이며 창조적으로 한국어를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 것이며 시행착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터키 공화국의 튀르크 인, 곧 터키 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자료 교재 등이 준비되고 방법론이 연구 정착된다면, 이러한 업적이 앞으로 카자흐 공화국, 우즈베크 공화국, 키르기스 공화국, 투르크멘 공화국, 타타르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소련 내의 튀르크 족 공화국들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몽고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터키에서의 한국어 교육이 장차 알타이 문화권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될 것임을 생각하고, 이 일을 한두 학자의 노력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전문 학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연구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요즈음, 북방 정책이 많이 언급되지만 정치적 경제적인 착상일 뿐 먼저 앞서야 할 문화적인 차원의 정책은 무시되는 것 같다. 아시아 대륙의 실질적 주인이 알타이 문화권임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알타이 문화권의 주체로서 우리는 한국어를 기본적으로 한 한국학을 동일 문화권에 널리 보급시키는 것과 상호 비교 연구를 통해 동일 문화권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일은, 일시적이며 상황과 이해에 따라 변화하는 정치적 경제적인 요인보다 장기적인 이해를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한국 내의 외국인을 위한 교육 연구 기관과 해외 한국학 지원 관계 기관들이 우리나라와 동일 문화권인 유라시아 대륙의 '알타이 문화권'의 한국학 보급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