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름의 로마자 표기에 관하여
서정수 / 한양 대학교 교수, 국어학
이 글은 현재 일반으로 쓰이고 있는 한국 인명의 로마자 표기 실태를 알아보고 그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점을 찾아보는 데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데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로마자 표기법으로 알려진 것이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은 1984년 1월 13일자로 문교부가 제정 고시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다. 그런데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성명의 표기 방식은 각양각색이어서 이 표기법 규정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떻든 그 실태를 살펴보고 어떤 개선점이 있을지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언론 매체, 학술 논문, 연감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인명의 로마자 표기 실태를 조사 분석하였다. 코리아 헤럴드, 코리아 타임스 등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기 현상을 수집 조사 분류하였으며, 각 학술 논문의 목차 등에 나타난 인명의 로마자 표기법을 또한 수집 분류하였다. 아울러 각종 연감 가운데 인명을 로마자로 표기한 것을 토대로 보완 수집 분석하도록 하였다(이 작업은 주로 정남숙(한양대 대학원 국문과)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 현행 로마자 표기법과 인명 표기의 실태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문교부가 서울 올림픽 대회를 대비키 위하여 1984년 1월에 제정 공고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1959년에 문교부에서 공고한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이 있었으며, 한편 외국 기관 등에서는 1939년에 제정된 "McCune-Reischauer 표기법"이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이전의 표기법이 실제 외국 발음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있었기에 현행 표기법이 마련되어 공고된 것이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하 "현행 표기법" 또는 "표준 표기법"이라 약칭함)은 기본적으로 국어의 표준 발음에 따라 적는 표음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곧 로마자의 일반음을 가지고 국어 발음을 되도록이면 가깝게 나타내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 표기법은 국어의 음운 체계 등을 고려한 음운 위주의 표기법과는 색다른 바가 있다. 이는 외국인 특히 영미인들의 해독 편의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 표기법의 요점을 먼저 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인명 표기의 실태를 살피기로 한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요점>
| (1) |
모음 |
| ㄱ. 단모음: |
ᅡ |
ᅥ |
ᅩ |
ᅮ |
ᅳ |
ᅵ |
ᅢ |
ᅦ |
ᅬ |
|
| |
a |
ŏ |
o |
u |
ŭ |
i |
ae |
e |
oe |
|
| ㄴ. 중모음: |
ᅣ |
ᅧ |
ᅭ |
ᅲ |
ᅤ |
ᅨ |
ᅴ |
ᅪ |
ᅯ |
ᅫ |
ᅰ |
ᅱ |
| |
ya |
yŏ |
yo |
yu |
yae |
ye |
ŭi |
wa |
wŏ |
wae |
we |
wi |
| (2) |
자음 |
| ㄱ. 파열음: |
ㄱ |
ㄲ |
ㅋ |
ㄷ |
ㄸ |
ㅌ |
ㅂ |
ㅃ |
ㅍ |
| |
k, g |
kk |
k' |
t, d |
tt |
t' |
p, b |
pp |
p' |
| ㄴ. 파찰음: |
ㅈ |
ㅉ |
ㅊ |
| |
ch, j |
tch |
ch' |
| ㄷ. 마찰음: |
ㅅ |
ㅆ |
ㅎ |
| |
s, sh |
ss |
h |
| ㄹ. 비음: |
ㅁ |
ㄴ |
ㅇ |
| |
m |
n |
ng |
| ㅁ. 유음: |
ㄹ |
| |
r, |
l |
붙임 1. "ㄱ, ㄷ, ㅂ, ㅈ"은 유성음 사이에서만 "g, d, b, j"로 적는다.
2. "ㅅ"은 "시"의 경우만 "sh"로 적는다.
3. "ㄹ"은 모음 앞에서는 "r"로, 그 밖에는 "l"로 적는다.
다만, 인쇄나 타자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의미의 혼동을 초래하지 않는 경우, ŭ,
yŏ, ŭi등의 반달표(⌣)와 k', t', p', ch' 등의 어깨점(')을 생략할 수 있다.
이제 이상에 약술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국어의 인명 표기에 얼마만큼 적용되고 있는지 살피기로 한다. 논의의 편의상 성씨의 표기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 성씨만으로도 인명 표기의 실태를 알아보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태 분석에서는 편의상 성씨의 가나다라순에 따라 수집한 자료를 나열하여 쉽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ㄱ"과 관련된 "강 씨", "고 씨" 등에서 "ㅎ" 줄의 "하 씨," "황 씨" 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성씨별로 차례로 배열한 표를 제시하였다.
- (가) "ㄱ"과 관련된 주요 성씨는 "강, 견, 계, 고, 공, 곽, 구, 권, 금, 길, 김" 씨 등이 있다. 이들의 로마자 표기의 예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다만 < > 안의 설명에서 "표준"은 국어 로마자 표기법에 맞은 것을 가리키며 "다수"는 그중 많이 쓰임을, "비슷"은 사용 빈도가 비슷함을 나타낸다. 또한 *표를 한 것은 현행 표기법이 안 쓰이는 경우를 표시한다.
| 강: Kang, Kahng, Gang |
|
| 견: Kyen, Kyon |
|
| 계: Kye |
<=표준, 다수> |
| 고: Koh, Ko |
<양자 비슷;Ko=표준> |
| 공: Kong |
<=표준:다수> |
| 곽: Kwak, Kwack |
|
| 구: Koo, Goo, Ku |
|
| 권: Kwon, Kwun, Gwon |
|
| 금: Keum |
<다수;*Kŭm=표준:안 쓰임> |
| 기: Ki |
<=표준:대다수> |
| 길: Gil, Kil, Kheel |
<3자 비슷;Kil=표준> |
| 김: Kim, Gim |
|
- (나) "ㄴ"과 관련된 성씨는 "나 씨," "남 씨" 그리고 "노씨"가 주된 것이다.
| 나: Na, La, Rha, Nha, Rah, Nah |
|
| 남: Nam, Nahm |
|
| 노: Ro, Loh, Noh, Roh, Lho, Row |
<6은 비슷;*No=표준:거의 안 쓰임> |
- (다) "ㄷ"과 관련된 성씨는 "도 씨," "동 씨"가 있다.
| 도: Toh, Dho, Do |
<3자 비슷;*To=표준:잘 안 쓰임> |
| 동: Dong, Tong |
|
- (라) 원음이 "ㄹ"인 성씨에는 "라 씨"와 "류 씨"가 있다.
| 라: Ra |
<=표준:다수> |
| 류: Ryu, Yoo, Lew, Yu, You |
|
- (마) "ㅁ"과 관련된 성씨로는 "마, 맹, 명, 모, 목, 문, 민" 씨 등이 있다.
| 마: Mah, Ma |
|
| 맹: Maeng |
<=표준:다수> |
| 명: Myung |
|
| 모: Mo |
<=표준, 다수> |
| 목: Mok |
<=표준, 다수> |
| 문: Moon, Mun |
|
| 민: Min, Minn |
<2자 비슷;Min=표준> |
- (바) "ㅂ"으로 시작되는 성씨에는 "박, 반, 방, 배, 백, 변, 부" 씨 등이 있다.
| 박: Park, Pak, Bark, Bak, Bag |
|
| 반: Ban, Van |
<2자 비슷;*Pan=표준:잘 안 쓰임> |
| 방: Bang, Pang |
<2자 비슷;Pang=표준> |
| 배: Bae, Pai, Pae |
|
| 백: Paik, Baik, Paek, Baek, Pack, Back |
|
| 변: Byun, Pyun |
<2자 비슷;*Pyŏn=표준:잘 안 쓰임> |
| 부: Boo |
|
- (사) "ㅅ"으로 시작되는 성씨는 "사공, 사, 서, 석, 선, 선우, 설, 성, 소, 손, 송, 신, 심" 씨 등이 있다.
| 사: Sah |
|
| 사공:Sakong, Sagong |
<2자 비슷;Sagong=표준> |
| 서: Suh, Seo, Shuh, Seu, Suhr, Seoh |
|
| 석: Suk, Sok |
|
| 선: Sun |
<대다수;*Sŏn=표준:안 쓰임> |
| 선우: Sunwoo |
<대다수;*Sŏnu=표준:안 나타남> |
| 설: Sul, Seol |
<2자 비슷;*Sŏl=표준:안 쓰임> |
| 성: Sung, Seong, Seng, Song, Suong |
|
| 소: So, Soh |
<2자 비슷;So=표준> |
| 손: Son, Sohn, Shon |
<3자 비슷;Son=표준> |
| 송: Song, Sohng |
<2자 비슷;Song=표준> |
| 신: Shin, Synn, Sin, Sheen |
|
| 심: Shim, Sym |
|
- (아) "ㅇ"로 시작되는 성씨는 "안, 양, 어, 엄, 여, 연, 염, 예, 오, 옥, 왕, 우, 원, 유, 육, 윤, 은, 이, 임" 씨 등이다.
| 안: Ahn, Ann, An |
|
| 양: Yang |
<=표준:대다수> |
| 어: Ouh, Eo |
<2자 비슷;*Ŏ=표준:안 쓰임> |
| 엄: Um, Eum |
<2자 비슷;*Ŏm=표준:안 쓰임> |
| 여: Yeo, Yoh, Yoe, Yuh |
|
| 연: Yon, Yun |
<2자 비슷;*Yŏn=표준:잘 안 쓰임> |
| 염: Yum, Yeom |
<2자 비슷;*Yŏm=표준:안 쓰임> |
| 예: Ye |
<=표준:대다수> |
| 오: Oh, O, Auh |
|
| 옥: Ok, Ock |
<2자 비슷;Ok=표준> |
| 왕: Wang |
<=표준:대다수> |
| 우: Woo |
<대다수; *U=표준:안 쓰임> |
| 원: Won, Wohn, Wone |
<3자 비슷;Wŏn=표준:안 쓰임> |
| 유: Yu, Yoo, Ryu, You, Ryoo, Lyu, Yuh, Lyou, Riu, Lew, Rew |
|
| 육: Yook, Yuk |
<2자 비슷;Yuk=표준> |
| 윤: Yoon, Yun, Youn, Uun |
<4자 비슷;Yun=표준> |
| 은: Eun |
<대다수;Ŭn=표준:안 나타남> |
| 이: Lee, Rhee, Yi, Rhi, Li, I, Rhie, Ri, Yie, Le, Ryee, Lhee, Ree, Iee |
|
| 임: Yim, Lim, Im, Rim, Rm |
<5자 비슷;Im=표준> |
- (자) "ㅈ"으로 시작되는 성씨로는 "장, 전, 정, 제, 조, 주, 지, 진" 씨 등이 있다.
| 장: Chang, Jang, Jahng |
|
| 전: Chun, Jeon, Jun, Jon, Cheun, Jhon, Chean, Chon, Juhn, Jeun, Jaen 등 |
|
| 정: Chung, Jung, Jeong, Chyung, Jheong, Chong, Cheong, Choung, Zong, Jeng, Zung |
|
| 제: Jae |
<다수;*Che=표준:잘 안 쓰임> |
| 조: Cho, Jo, Zo, Choue, Joh, Jow, Chough |
|
| 주: Choo, Joo, Chou, Chu |
<4자 비슷;Chu=표준> |
| 지: Ji, Chi, Jee |
<3자 비슷;Chi=표준> |
| 진: Chin, Jin, Jhin |
<3자 쓰임;Chin=표준> |
- (차) "ㅊ"으로 시작하는 성씨는 "차, 채, 천, 최, 추" 씨 등이다.
| 차: Cha |
<대다수;Ch'a=표준;거의 안 쓰임> |
| 채: Chae, Chai, Czae |
<3자 비슷;*Ch'ae=표준:거의 안 쓰임> |
| 천: Cheon, Chun, Chon |
<3자 비슷;*Chŏn=표준:안 쓰임> |
| 최: Choi, Choe, Chey, Chai, Choy, Chae, Chwae |
<*Ch'oe=표준:안 쓰임> |
| 추: Chu |
<다수;*Ch'u=표준:안 쓰임> |
- (타) "ㅌ"이 관련된 성씨는 "탁, 태"씨가 있다.
| 탁: Tark, Tak |
<비슷;*T'ak=표준:안 쓰임> |
| 태: The |
<*T'ae=표준:잘 안 쓰임> |
- (파) "ㅍ"이 들어가는 성씨는 "팽, 표, 피" 씨 등이 있다.
| 팽: Paeng |
<*P'aeng=표준:안 쓰임> |
| 표: Pyo |
<*P'yo=표준:잘 안 쓰임> |
| 피: Pee |
<*P'i=표준:잘 안 쓰임> |
- (하) "ㅎ"으로 시작되는 성씨는 "하, 한, 함, 허, 현, 홍, 황" 씨 등이다.
| 하: Ha |
<=표준:대다수> |
| 한: Han, Hahn |
<2자 비슷;Han=표준> |
| 함: Ham, Hahm |
<2자 비슷;Ham=표준> |
| 허: Huh, Heo, Heu, Hu |
|
| 현: Hyun, Heun |
|
| 홍: Hong |
<=표준:대다수> |
| 황: Hwang, Whang, Huang |
<3자 비슷;Hwang=표준> |
이상에서 살펴 본 인명의 로마자 표기 실태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과 관련하여 분석해 보기로 한다. 위에서 예든 성씨는 모두 90가지가 되는데 이제 그것을 다음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분석한다.
- (1) 현행 표기법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경우: 12개 성씨 약 13%
계, 공, 기, 라, 맹, 모, 목, 양, 예, 왕, 하, 홍
- (2) 현행 표기법이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 13개 성씨 약 15%
강, 곽, 권, 김, 나, 남, 류, 마, 신, 심, 유, 장, 조
- (3) 현행 표기법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경우: 19개 성씨 약 21%
고, 길, 민, 방, 사공, 소, 손, 송, 옥, 원, 육, 윤, 임, 주, 지, 진, 한, 함, 황
- (4) 현행 표기법이 소수를 차지하는 경우: 12개 성씨 약 13%
견, 구, 동, 문, 박, 배, 백, 석, 안, 연, 오, 이
- (5) 현행 표기법이 안 쓰이는 경우: 34개 성씨 약 38%
금, 노, 도, 명, 반, 변, 부, 사, 서, 선, 선우, 설, 성, 어, 엄, 여, 염, 우, 은, 전, 정, 제, 차, 채, 천, 최, 추, 탁, 태, 팽, 표, 피, 허, 현
이상의 분석 결과를 놓고 볼 때, 현행 로마자 표기법이 상당수 또는 그 이상이 쓰이는 경우는 (1)-(3)의 경우로서 약 49%이며, 반대로 현행 표기법이 소수 또는 전혀 안 쓰이는 경우는 약 51%에 해당한다. 이는 현행 표기법이 비교적 잘 쓰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체로 50 대 50이 됨을 의미한다.
◆ 현행 국어 로마자 표기법의 문제점
이상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성씨의 표기에서 약 절반 정도가 현행 표기법에 어긋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이 표기법이 성씨 표기에서는 별다른 구실을 하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사실상 이 성씨 표기에서는 이전의 "한글 로마자 표기법"(1959년 공포)이 시행되던 때와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고 할 만하다. 이제 이 표기법이 성씨 표기 등에 별로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점에 관하여 따져 보고자 한다.
첫째로, 현행 표기법이 잘 안 지켜진 경우는 자음 표기에서 대부분 거센 소리 "ㅋ, ㅌ, ㅍ, ㅊ"를 이른바 어깨점(')을 가지고 나타낸다는 부분이다. 곧 거센 소리를 "k', t', p', ch'" 등으로 표기한다는 규정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기법은 우선 번거로운 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일반 언중이 그 사용법에 익숙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또한 이 표기법이 안 지켜지는 큰 이유는 뒤늦게 공표된 것이므로 이미 정착된 인명 표기에 쓰일 수가 없었던 점이다. 곧 현재 쓰이고 있는 인명 표기는 대부분 1948년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현행 표기법이 발표되었다고 해서 이미 정착된 관용 표기법을 함부로 바꿀 수가 없는 실정인 것이다.
둘째로, 현행 표기법이 안 지켜지고 있는 또 다른 경우는 모음에서 "어"와 "으" 등을 종래에 "eo"나 "eu"로 표기하던 것을 각기 "Ŏ"와 "Ŭ"로 나타낸다고 한 점이다. 이처럼 반달표(˘)표를 붙여서 나타내는 방식은 미국 기관 등에서 일찍부터 써 오던 "McCune-Reischauer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당시 문교부 등 각 기관에서 올림픽을 대비해서 외국 사람 위주로 표기법을 제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서 이 방식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가외 기호인 반달표(˘)를 붙인다는 번거로움이 있고 또 종래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위에서 보듯이 인명 표기에 거의 외면당하고 있다.
셋째로, 현행 표기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의 어깨점(')과 반달표(˘)를 인쇄나 타자상의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 생략을 허용한 규정이다. 이 규정이 적용될 경우에 'ᅩ'와 'ᅥ,' 'ᅮ'와 'ᅳ' 등의 표기는 구분이 안되며, 또 거센 소리와 여린 소리의 구분이 사라지고 만다. 의미의 혼동이 없을 경우에 한정된다고 단서를 붙이고는 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므로 타자 등에서는 으레 그런 기호를 쓰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규정이 적용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이름 표기가 사뭇 달리 읽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특수 기호를 안 쓰게 되면, "소"씨와 "서"씨 등의 구분이 안되고 "오상운"과 "어상은"은 똑같은 표기가 되고 만다. 이런 혼동을 예상할 때 현행 표기법으로 이름을 적고자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넷째로, 현행 표기법이 표음 위주로 적는 점도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ㄱ, ㄷ, ㅂ, ㅈ" 등은 환경에 따라 무성음 "k, t, p, ch"와 유성음 "g, d, b, j" 등으로 두 가지 표기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일반 언중은 이런 음성학적 지식이 없으므로 일일이 가려 쓰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점도 이 표기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힐 수 있다.
◆ 몇 가지 대안
무릇 로마자 표기법은 어떤 방식으로 제정이 되든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음운 체계상으로 현격히 다른 두 어음을 일 대 일로 대응시키는 일은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로마자라고 하는 것이 여러 나라에서 쓰이고 있어서 각 나라말에 따라 그 발음법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어느 나라 말에서의 소리값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로마자의 기본음은 상당한 공통성을 보이고 있으므로 그것을 우선 바탕으로 삼고 우리 어음을 적는 데 가장 근접한 것을 택하는 방식은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로마자 표기법은 이런 근사치 방식에서 최선의 것을 짜내도록 힘써야만 할 것이다.
첫째로, 표기법의 대원칙은 (1) 우리말 음운 체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2) 외국인이 우리말을 쉽사리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행 로마자 표기법은 (2)의 목표만을 지나치게 따른 면이 있다. 한편, 이전의 "한글 로마자 표기법"은 (1)만을 위주로 한 폐단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이 표기법의 개선을 위해서는 양자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로, 현행 표기법에서 채택한 특수 기호 어깨점(')이나 반달표(˘) 따위는 하루빨리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러한 특수 기호를 사용한 표기법은 특히 인명 표기의 경우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 기관 등에서 사용한 전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일부 특수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외국인 일반에게는 그런 표기가 널리 통용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가령, 아무 예비 지식이 없는 외국인이
"ŏ"나 "ŭ"를 각기 "ᅥ," "ᅳ"로 읽어 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그런 기호의 독법을 미리 익히지 않고는 기대한 우리의 소리를 구분하여 발음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자음의 경우에 어깨점(')을 거센 소리를 내는 기호로 알고 활용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문제이다. 이것도 미리 익히지 않고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더구나 이 기회는 영어 등에서 쓰는 "소리 생략 부호(I've)," "소유격 표시(book's)" 등으로 쓰이고 있으므로 혼선만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이들은 소리 기호로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타자나 인쇄에 부담만 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특수 기회는 하루빨리 청산하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셋째로 인명의 로마자 표기에서는 관례와 본인의 개성 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융통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름을 지을 때 각기 전통이나 가풍을 고려하여 고유한 표기 방식의 이름을 짓듯이 로마자 표기에도 그런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외국 낱말과 혼동될 염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그런 융통성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안"씨의 경우에 "An"이라고 한다든지 "노" 씨를 "No"로 한다면 현행 표기법에는 맞지만 각기 영어 단어 등과 혼동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에 "Ahn," "Noh" 와 같이 표시하는 관례가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따라서 인명 표기에서는 그동안의 사례를 널리 수집하여 검토하고 분석하여 일리가 있는 관용 표기 방식은 그대로 인정하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앞으로 인명 표기를 비롯한 로마자 표기법을 보완할 때는 이상과 같은 문제점과 개선점을 고려하고 외국인 학자 및 관계자 등을 포함한 각계 각층의 의견을 널리 수렴하고 상당 기간의 유예를 두어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한다고 본다.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일부 외국인들만의 편의를 위해서 백년대계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