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모음’의 심의 경위와 해설
金周弼/국어 연구소 연구원 ·국어학
1. ‘표준어 모음’의 성격
문화부에서는 국어 연구소에서 조사 및 검토를 하고, 문화부의 국어 심의회 한글 분과 위원회에서 심의 ·확정한 약 1,400개 정도의 고유어 어휘와 그 관련 단어를 모은 ‘표준어 모음’을 9월 14일에 문화부 공고 제36호로 발표하였다. 이 ‘표준어 모음’은 ‘표준어 규정’ (문교부 고시 제88-2호)에 사전 간에 혼란을 보이는 고유어 단어들을 심의함으로써 이미 발간되어 시판 중인 각종 국어사전 및 출판물 간에 일어나는 어휘 형태나 발음의 혼란을 막아 언어생활의 표준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추진된 사업의 결과이다.
‘표준어 규정’이 발표되어 표준어를 사정할 수 있는 일반 원칙은 세워졌으나, 그것만 표준어 사정이 완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표준어 여부가 문제되는 단어가 있을 때에 그 단어에 대한 표준어 심의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일반 원칙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단어의 형태나 발음이 문제될 때 ‘표준어 규정’에 있는 일반 원칙의 어느 조항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36년의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토대로 하여 광복 후에 간행된 ‘큰사전’ 이래 많은 규범적인 사전이 간행되었다. 그 사전들은 표준어를 표제어로 내세우는 규범적인 사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전들의 표제어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나타난다. 이렇게 사전 간에 차이를 보이는 단어들은 언어생활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이런 예들을 찾아내어 하나하나 심의하는 일은 ‘표준어 규정’이 발표되고 난 뒤에 가장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이상의 취지에서 국어사전 가운데 널리 이용되고 있는 새 한글 사전과 국어 대사전에서 표준어로 제시한 단어가 일치하지 않은 표제어를 대상으로 ‘표준어 규정’을 적용해 가며 심의한 결과 모은 것이 ‘표준어 모음’ 이다. 따라서 ‘표준어 모음’의 ‘표준어 규정’을 보완하는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2. 심의 대상 어휘의 수집과 심의 경위
국어의 표준어 사정 작업은 규범적인 사전의 편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조선어 학회에서 이루어졌던 표준어 사정 작업이 사전의 표제어 단위(때로는 단어이면서 때로는 형태소) 위주로 진행되었던 것도 그러한 사실을 말해 주며, 그 작업의 결과인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나온 1936년부터 사전 편찬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던 것도 또한 그러한 사실을 말해 준다. 이러한 표준어 사정 작업과 사전 편찬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국어사전은 표준어를 표제어로 제시하게 됨으로써 그 표제어들에 차이가 보이지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즉 어떤 사전에서는 표준어로 제시한 표제어가 다른 사전에서는 비표준어로 처리된 경우가 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같은 의미를 가지는 단어가 그 음성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가진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전 간의 차이는 발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전에서는 장음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으로 제시된 단어가 또 어떤 사전에서는 장음 표시가 없으며, 어떤 사전은 경음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으로 제시된 단어가 또 어떤 사전에서는 경음 표시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국어 생활에 불편과 혼란을 자져오기 때문에 표준이 되는 형태와 발음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국어 연구소에서는 ‘표준어 모음’에 포함될 표준어 심의 대상 어휘는 사전의 표제어를 비교 · 검토하여 추출하기로 하였다. 사전은 작업의 편의상, 널리 이용되어 온 새 한글 사전(한글 학회 간행, 1965/1986년 판)과 국어 대사전(민중 서림 간행, 1982년 판)으로 하였다.1)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표준어 모음’은 새 한글 사전과 국어 대사전에서 표준어로 제시한 표제어의 어형이나 발음형이 일치하지 않는 단어들 가운데에서 고유어와, 사전에서 그 고유어에 관련지어 놓은 단어를 대상으로 하여 표준어(또는 표준 발음) 여부를 심의한 결과이다. 따라서 한자어나 외래어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두 사전에서 상충되는 고유어에 관련되는 한자어는 ‘관련 단어’로서 포함되기도 하였다. 신조어, 전문 용어, 맞춤법이 문제되는 말은 두 사전에서 상충되더라도 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두 사전에서 차이를 보이는 전문 용어 가운데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동식물 용어는 심의 대상에 포함하였다.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된 말(한자어가 ‘ -하다’ 와 결합된 말은 대상에서 제외함)이나 한자어의 변한 말은 심의 대상에 포함하였으나,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된 단어라도 한자어의 발음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표준 발음의 심의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준 위에서 추출된 사전 표제어들은 심의될 내용에 따라 ‘어휘 선택’과 ‘발음 ’으로 나누어 심의할 수 있게 하였다. 어휘 선택이 문제되는 표제어들은 ‘표제어 규정 제1부 표준어 사정 원칙 ’의 세부 조항을 적용하여 심의될 단어들의 부류이고, 발음이 문제되는 표제어들은 ‘표준어 규정 제2부 표준 발음법’에 심의될 단어들의 부류이다. 추출한 자료를 이렇게 분류하여 심의함으로써 ‘표준어 모음’은 다음과 같이 ‘어휘 선택’ 부분과 ‘발음’ 부분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 1)‘표준어 사정 원칙’에 따라 심의될 부분 ······· 어휘 선택
- 2)‘표준 발음법’에 따라 심의될 부분 ······ 발음(장단, 경음)
‘발음’ 부분은 ‘표준어 규정을 표준 발음법 제3장 음의 길이’ 에 따라 심의되어야 할 단어와 제6장 ‘경음화’에 따라 심의되어야 할 단어로 나누어 각각 ‘장단’ 부분과 ‘경음’ 부분으로 분류하였으며, 합성어나 파생어에서 ‘ㄴ’ 첨가나 사이시옷의 개재 여부가 문제되는, 다시 말해 ‘음의 첨가’가 문제되는 단어들은 편의상 ‘경음’부분에 포함시켰다.
국어 연구소에서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자료를 추출하여 분류한 다음 ‘어휘 선택’ 부분은 이상억 교수(서울대), 박갑수 교수(서울대)에게, 그리고 ‘발음’ 부분은 이병근 교수(서울대)에게 심의를 의뢰하였으며, 그 심의를 국어 연구소의 담당 연구원과 함께 수차례의 회의를 통해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3인의 검토 위원과 국어 연구소 소장(당시 이기문 교수, 서울대)으로 구성된 표준어 소위원회의 회의(3회)를 통해 논의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동해 이루어진 심의 결과는 다시 국어 연구소 표준어 소위원회 위원 4인과 이응백 교수(서울대 명예 교수), 김민수 교수(고려대), 김석득 교수(연세대), 정준섭 편수관(문교부) 등으로 구성된 표준어 심의 위원회의 회의(2회)에서 검토하여 국어 연구소안을 마련하였다. 그 후 문화부에서 어문 정책을 주관하게 되면서 국어 연구소안을 재심해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국어 연구소(현 소장 안병희 교수, 서울대)에서는 다시 표준어 심의 위원회를 열어 보완 ·심의함으로써 국어 연구소안을 확정하였다.
이 국어 연구소안은 김민수 교수, 김석득 교수, 김승곤 교수(건국대), 안병희 교수, 유목상 교수(중앙대), 이규항 아나운서(한국 방송 공사), 이병근 교수, 이기문 교수, 이승욱 교수(서강대), 허웅 교수(한글 학회 이사장) 등 11인으로 구성된 문화부 국어 심의회 한글 분과 위원회의 회의에 부의하여 제3차의 토의를 거쳐 심의 · 확정함으로써 ‘표준어 모음’을 공표하게 된 것이다.
3. ‘표준어 모음’ 해설
‘표준어 모음’은 ‘표준어 규정’에 대한 보완 작업의 결과이기 때문에 ‘표준어 모음’에 포함된 단어들은 심의하는 과정에서 적용한 기준은 ‘표준어 규정’을 따랐다 추출한 자료들을 ‘표준어 규정’의 어느 규정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심의했는지를 ‘표준어 모음’의 체제에 따라 여러 ‘어휘 선택’ 부분과 ‘발음’ 부분으로 나누어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어휘 선택
‘어휘 선택’이 문제되는 단어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취한 기본적인 태도는 “언어생활의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어휘는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즉 같은 의미를 가지는 단어로서 유사한 음성형을 가지는 여러 형태들에 대해서는 하나의 어형을 표준어로 인정함으로써 혼란을 막되, 그렇지 않은 형태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두 인정하는 쪽으로 심의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발음의 변화로 인해 유발된 유사한 형태들에 대해서는 언어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단수 표준어를 인정하고, 다른 기원을 가지면서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여러 형태들에 대해서는 국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그 각각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표준어 심의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복수 표준어의 예2)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복수 표준어에 대해서는 ‘표준어 규정 제1부 표준어 사정 원칙’ 의 제26항, 제19항, 제18항, 제16항에서 그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제26항은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내용으로, 국어 어휘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다른 기원을 가지면서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들은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태도에 부합되는 규정이라 할 수 있다. ‘ 표준어 규정’ 제26항을 적용하여 여러 형태를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 각시/새색시, 간밤/지난밤, 값나다/금나다, 거름발/거름기(-氣), 군기침/헛기침, 남자답다/사내답다, 덮개/뚜껑, 둬둬/드레드레, 땅덩어리/땅덩이, 뚱뚱이/뚱뚱보, 몰매/뭇매, 배냇니/젖니, 사거리(四-)/네거리, 색깔/빛깔, 소낙비/소나기, 앞마당/앞뜰, 여린뼈/물렁뼈, 오라범댁/올케, 초벌/애벌, 훗날/뒷날
위의 예들에서 새 한글 사전과 국어 대사전 가운데 한 사전은 빗금(/) 앞의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하여 뒤의 단어와 함께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였으나, 다른 한 사전에서는 비표준어로 처리하면서 그 단어의 표준어로 빗금 뒤의 단어를 제시하고 있는 예들이다. 다시 말해서 한 사전에서는 빗금 뒤의 단어만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며, 다른 한 사전에서는 두 단어 모두를 인정하고 있는 경우인데 국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빗금 앞의 단어도 표준어로 인정함으로써 복수 표준어가 된 예들이다.
그러나 발음이 유사하더라도 제19항과 같이 “ 어감의 차이를 나타내는 단어 또는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이 다 같이 널리 쓰이는 경우에는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 는 제19항도 또한 국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한다는 취지에 부합되는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라 어감의 차이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한 예들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 더미씌우다/다미씌우다, 뜨문뜨문/드문드문, 밴덕/뱐덕, 살긋하다/샐긋하다, 쌍소리/상소리, 아련하다/오련하다, 아유/아이구, 아지직/오지직(아지작), 알금삼삼/알금솜솜, 어유/어이구, 어화둥둥/어허둥둥, 자욱하다/자욱하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빗금 앞의 단어들이다. 빗금 뒤의 단어들은 두 사전에서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빗금 앞의 단어는 한 사전에서는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지만, 다른 한 사전에서는 비표준어로 처리하면서 빗금 뒤의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이번 심의에서 어감의 차이를 가지는 복수 표준어를 인정한 것이다.
‘표준어 규정’ 제18항도 복수 표준어를 인정한 부분이다. ‘네/예, 쇠-/소-, 괴다/고이다, 꾀다/꼬이다, 쐬다/쏘이다, 죄다/조이다, 쬐다/쪼이다’와 같이 몇 개의 어휘에 대해 복수 표준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유형으로 새로 추가된 것은 없다. 단지 두 사전에서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가 어긋나는 ‘괴임’과 ‘괴임새’에 대해서는 이미 ‘표준어 규정’에 표준어로 제시되어 있는 ‘굄/고임’과 ‘굄새/고임새’가 있으므로 비표준어로 처리하였다. 마찬가지로 ‘네/예’ 가 인정되고 있어 거의 쓰이지 않는 ‘녜’는 비표준어로 처리하였다.
한편 ‘표준어 규정’ 제16항 “준말과 본말이 다 같이 널리 쓰이면서 준말의 효용이 뚜렷이 인정되는 것은 두 가지를 다 표준어로 삼는다.”3)는 원칙도 국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폭넓게 수용하였다.
- 가래질꾼/가래꾼, 고운대/곤대, 골짝/골짜기, 나방이/나방, 눈쌈/눈싸움, 돈지갑/지갑, 돋보기안경/돋보기, 동강이/동강, 모군꾼/모군, 복어/복, 석이버섯/석이, 우표딱지/우표, 움막집/움막, 중바랑/바랑, 찔레/찔레나무
물론 ‘표준어 규정’ 제14항(준말이 널리 쓰이고 본말이 잘 쓰이지 않는 경우에는 준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에 따른 것( × 복생선/복, 복어, × 지딱총/딱총)도 있고, 제15항(준말이 쓰이고 있더라도 본말이 널리 쓰이고 있으면 본말을 표준어로 삼는다)에 따른 것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제16항에 여러 준말과 본말의 관계에 있는 말들은 인정하는 쪽으로 심의하였던 것이다. ( ×표를 한 단어가 비표준어로 처리된 것이다. 이하 같음).
사전에서 같은 뜻을 가지는 것으로 관련지어 놓은 단어가 다른 형태소들의 결합형이라 하여 모두 복수 표준어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제25항의 규정에 따라 거의 쓰이지 않거나, 방언의 인상을 강하게 주는 단어는 비표준어로 처리된 경우도 있다.
- × 간해/지난해, × 개지/강아지, × 곰탕/곰팡이, × 곱수머리/곱슬머리, × 덧구두/덧신, × 바람꾼/바람둥이, × 배챗괘기/배추속대, × 솔개미/솔개, × 시초잡다/시작하다, × 아랫동강이/종아리, × 키장다리/키다리, × 형제주인어멈/쌍동중매
이렇게 단수 표준어를 인정한 경우가 그 기원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예들은 발음의 변화에 의해 생기는 경우이다. 다시 말하면, 같은 기원을 가지는 말이면서 발음의 변화 때문에 약간의 차이를 가진 음성형일 경우에는 대부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느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제17항에서처럼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 ”는 원칙에 따라야 할 단어들도 있다.
- × 기지랑물/지지랑물, × 꼬끼댁/꼬꼬댁, × 꼬치/고추, × 꼬치/고치, × 맵쌀/멥쌀, × 먀련/매련, × 밉둥스럽다/밉살스럽다, × 샛까맣다/새까맣다, × 아웃/가웃, × 오그랑족박/오그랑쪽박, × 음살/엄살, × 우멍하다/의뭉하다, × 자/재, × 저지난달/지지난달, × 지지콜콜/시시콜콜히, × 험집/흠집(欠-)
‘표준어 규정’ 제9항의 “‘ ㅣ’역행 동화 현상에 의한 발음은 원칙적으로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한 부분도 언어의 혼란을 막기 위해 발음의 변화에 기인하는 어형들에 대해서 단수 표준어를 인정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추출된 예는 그리 많지가 않다. ‘아기, 아비’는 두 사전에서 모두 인정하면서 그 각각에 ‘ㅣ’ 모음 역행 동화가 적용된 ‘애기’와 ‘애비’에 대해서는 한 사전은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나, 다른 한 사전에서는 비표준어로 처리하고 있는데 ‘표준어 규정’ 제9항을 적용하여 비표준어로 처리하였다.
4)
‘표준어 규정’ 제8항의 “양성 모음이 음성 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다음 단어(깡충깡충, -둥이, 오뚝이 등)는 음성 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라 제8항에 제시되지 않은 의성어나 의태어는 기존의 모음조화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하였다. 양성 모음 다음에 양성 모음이 오는 형태와 음성 모음이 오는 형태, 예를 들어 ‘다리가 길다’는 뜻으로 ‘깡총하다’와 ‘깡충하다’를 어감의 차이를 가지는 말로 모두 인정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발음의 변화 상태에 있는 어휘를 모두 기계적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면서 유형화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기 때문에 ‘표준어 규정’의 제8항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예외의 폭을 줄이고자 하였다.
- × 깡충하다5)/깡총하다, × 담쑥6)/담쏙, ×오돌오돌7)/오들오들, × 우둘우둘8)/우들우들, × 해발쭉하다/해발쪽하다, × 호로로9)/호르르, × 호루루10>/호로로
한편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던 ‘-장이/-쟁이’의 경우에도 ‘표준어 규정’에 따라 심의하였다. 즉 제9항의 붙임2의 “기술자에게는 ‘-장이’, 그 외에는 ‘ -쟁이’가 붙는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원칙을 그대로 따르되, 기술자, 좀 더 구체적으로 ‘匠人’이란 뜻이 살아 있는 말은 ‘ -장이’ 로, 그 외에는 ‘-쟁이’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匠人’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는 다음 단어들은 ‘-장이’를 버리고 ‘-쟁이’를 표준어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 × 꾀장이/꾀쟁이, × 난봉장이/난봉쟁이, × 무식장이/무식쟁이, × 마술장이/마술쟁이, × 요술장이/요술쟁이, × 야발장이/야발쟁이
어원과 관련하여 발음의 변화로 인해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단어들에 대해서는 제5항의 “어원에서 멀어진 형태로 굳어져서 널리 쓰이는 것은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 는 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이 심의하였으나,
- 기겁하다/× 기급하다(氣急-), 내숭/× 내흉(內凶), 내숭스레/× 내흉스레(內凶-)
제5항 ‘다만’의 “어원적으로 더 가까운 형태가 쓰이고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조항에 부합되는 것으로 심의된 다음과 같은 단어들도 있다.
- × 상재/상좌(上座), × 상청/상창(上唱), × 옘집/여염집(閭閻-), × 수무/수모(手母), × 채숭아/채송화(菜松花), × 팩성/퍅성(팩성)
지금까지 설명한 예들은 대부분이 두 사전에서 빗금 뒤의 단어는 인정하면서 빗금 앞의 단어에 대해 한 사전에서는 표준어로 인정하고 다른 한 사전에서는 빗금 뒤의 단어로 대치되어야 할 비표준어로 처리하고 있는 예들이었다. 따라서 표준어 심의의 주 대상이 되었던 것은 빗금 앞의 단어였으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빗금 뒤의 단어를 비표준어로 처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미 고시된 ‘표준어 규정’의 예시어에 따라 바뀌어야 할 단어나, 거의 쓰이지 않거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단어는 다음과 같이 빗금 뒤의 단어도 비표준어로 처리한 경우가 있다.
- 기겁하다/× 기급하다(氣急-), 기꼭지(旗-)/ ×기대강이(旗-), 심술퉁이(心術-)/ × 심술통이(心術-), 자두나무/ × 오얏나무, × 웃알/ × 위알(→ 윗알)
그런데 두 사전에서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를 서로 다르게 제시한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 사전에서는 ‘간장족박’을 다른 한 사전에서는 ‘간장쪽박’을 제시한 경우에는 복수 표준어를 인정하게 되면 국어 어휘를 풍부하게 하기보다 국어를 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대부분이 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의 표준형을 인정해야 할 성격의 단어들이었다(() 속의 숫자는 ‘표준어 규정 제1장 표준어 사정 원칙’의 항 번호임).
- × 겉껍더기/겉껍데기(09), × 게꼬리/게꽁지(25), × 물앵도(-櫻挑)/물앵두(05), × 벙태기/벙테기(17), × 별미적다(別味-)/별미쩍다(別味-)(17), × 부레끊다/부레끓다(25), × 새치롬하다/새치름하다(17), × 속껍더기/속껍데기(09), × 쇠버&즘/쇠버짐(17), 아래알/ × 아랫알(17), 쿵더쿵/ × 쿵덕쿵(17)
그런데 지금까지 비표준어로 처리한 단어가 다의어일 경우에는 특히 주의를 필요로 한다. 사전에서 혼란을 보이고 있는 다의어 단어를 이번 심의에서 비표준어로 처리했다고 해서 그 단어를 완전히 국어의 어휘 체계에서 제외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가령 ‘알심’이라는 단어의 경우, 사전에서는 “ㄱ) 은근한 동정심, ㄴ) 속에 있는 힘, ㄷ) (식물) 고갱이”로 주석이 되어 있는 다의어이다. 이 의미들 중에 ㄱ)과 ㄴ)의 뜻에 다해서는 새 한글 사전과 국어 대사전이 동일하지만, ㄷ)의 뜻으로는 차이를 보인다. 즉 한 사전에서는 ㄷ)의 뜻으로 인정하였지만, 다른 한 사전에서는 ㄷ)의 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의 결과는 ㄱ)과 ㄴ)의 뜻으로는 ‘알심’을 인정하지만 “ㄷ) 고갱이” 의 뜻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의어인 어떤 단어를 비표준어로 처리했을 경우, 그 단어에 관련지어 놓은 단어(즉 ‘알심’의 경우에는 ‘고갱이’)의 뜻으로만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나머지의 뜻으로는 여전히 국어의 어휘 체계 내에는 남아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다의어를 비표준어로 인정했을 경우에는 그 단어에 관련지어 놓은 단어의 뜻으로만 사용할 수 없으며 -그 뜻으로 사용하려고 할 경우에는 관련지어 놓은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 나머지의 뜻으로는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전문 용어의 경우에는 이번 심의에서는 그 대상으로 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동식물의 경우에는 전문 용어와 일상용어 사이에 않은 차이가 드러나서 심의 대상에 포함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두 사전에서 서로 어긋나는 동식물 용어를 추출하여 전문가(식물: 정영훈 서울대 명예 교수, 동물: 김훈수 서울대 명예 교수)에게 의뢰하여 전문 용어로서 심의를 받은 후,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동식물 용어를 일상용어로서 심의하였다. 가령 ‘왕벌, 호박벌, 말벌’과 같은 말들은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으나 사전에서의 상태는 각각 다르다. 즉 한 사전에서는 ‘왕벌, 말벌’ 을 , 곤충류 벌목 꿀벌과의 학명 Bombus ignitus인 생물체를 지칭하는 ‘호박벌’의 한 별칭으로 인정하였으나 , 또 한 사전에서는 ‘왕벌’은 비표준어로 처리한 반면 ‘말벌’은 ‘호박벌’과 함께 쓰도록 함으로써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식물 용어를 두 사전에서 추출하여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전문 용어로서는 ‘호박벌’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왕벌, 말벌’ 을 국어의 어휘 체계에서 버릴 수는 없으므로 전문 용어로 ‘호박벌’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별도로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큰 벌’이라는 의미로 ‘말벌’과 ‘왕벌’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동식물 용어의 심의 결과를 몇몇 보이면 다음과 같다.
- 갈잎나무/떡갈나무11) 갯버들/땅버들12) 들오리/물오리13) 왕매미/말매미14) 제비꽃/오랑캐꽃15) 쭈꾸미/꼴뚜기16)
2) 발음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준어는 1936년에 조선어 학회에 사정 · 공표한 ‘(사정한)조선어 표준말 모음’ 에 직접적으로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는 ‘표준 발음법’에 관한 규정이 없고 ‘표준어 규정’에 와서 ‘표준 발음법’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짐으로써 발음형에 대한 준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휘 선택의 경우에서처럼 ‘표준 발음법’에 관한 일반 원칙이 정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되는 단어의 표준 발음을 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발음이 문제되는 단어의 표준형을 정하려면 서울의 현실 발음을 토대로 하되 ‘표준 발음법’의 어느 규정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해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발음’ 부분도 새 한글 사전과 국어 대사전에서 그 발음형이 일치하지 않는 단어들을 심의한 결과를 모은 것이다.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의 ‘음의 길이’에 해당하는 ‘장단’ 부분과 ‘경음화’나 ‘음의 첨가’에 해당하는 ‘경음’ 부분을 ‘표준 발음법’에 따라 심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장단
장단, 즉 음의 길이에 관한 발음 규정은 ‘표준어 규정’의 ‘제2부 표준 발음법’ 제3장 제6항, 제7항에 명시되어 있다.
먼저 제6항에서 “모음의 장단을 구별하여 발음하되, 단어의 첫음절에서만 긴소리가 나타나는 것을 원칙으로 할 때“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제2음절 이하에서의 장단은 문제되지 않는다. 즉 ‘눈보라[눈:보라], 말씨[말:씨], 밤나무[밤:나무], 많다[만:타], 멀리[멀:리], 벌리다[벌:리다]’에서와 같이 단어의 제1음절에서만 장음을 인정하고 그 이하의 음절에서는 모두 단음으로 발음함을 원칙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첫눈[천눈], 참말[참-말], 쌍동밤[쌍동밤], 수많이[수:마니], 눈멀다[눈멀다], 떠벌리다[떠벌리다]’ 등에서처럼 제1음절에서 길었던 ‘눈[눈:], 말[말:], 밤[밤:]’이나, ‘많다[만:타], 멀리[멀:리], 벌리다[벌:리다]’ 의 ‘[만:-], [멀:-], [벌:-]’ 등이 합성어나 파생어를 이루어 제2음절 이하의 위치가 되면 짧게 발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음의 길이가 문제되는 단어는 제1음절이 그 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제6항의 뒷부분에서는 “다만, 합성어의 경우에는 둘째 음절 이하에서도 분명한 긴소리를 인정한다” 고 하면서 ‘반신반의[반:신 바:늬/반:신 바:니], 재삼재사[재:삼 재:사]’를 들어 놓고 있다. 이 예들은 ‘반신-반의, 지삼-재사’ 처럼 두 단어와 같이 어느 정도로는 끊어서 발음할 수 있는 첩어의 성격을 지니는 경우이다. 앞에서 살펴본 ‘수많이’[수:마니]와 같은 일반적인 합성어에서는 ‘많다’ [만:타]의 제1음절에서 장음으로 실현되는 [만:-]이 제2음절의 위치가 되면서 단음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이)많다’의 경우, 두 단어로 인식할 때에는 [말: 만:타]로 발음함이 원칙이나 한 단어로 인식할 때에는 (표기상으로는 붙여 쓴다.) [말:만타]로 짧게 발음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17)
이러한 기준 위에서 이번 심의에서는 ‘건너대다[건:너대다], 골라내다[골라내다], 본데없다[본데업따], 진배없이[진배업씨]’ 등과 같이 제3음절에 있는 ‘대-, 내-, 없-’ 등도 그 앞의 성분을 각각의 단어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그 모두를 하나의 단어로 인식한다면 짧게 발음하는 것으로 심의하였다.
제1음절의 발음의 심의를 하는 데에는 먼저 사전에서 동일한 요소를 가지는 단어들이 어떻게 발음되느냐를 중시하여 통일시키는 방향으로 하되, 서울 토박이 화자의 발음과 ‘한국어 표준 발음 사전’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간행, 1984년)의 발음을 참고로 하였다. 심의 결과를 몇몇 보이면 다음과 같다.
- * 장음으로 심의된 것
- 갈:묻이, 건:넛방, 걸:터앉다, 골:라잡다, 관:두다, 내:친걸음, 달:라다, 땔:감, 모:기, 숨:소리, 아:무렇게, 언:제, 엉:덩이, 온:종일, 유:난히, 해:
- *단음으로 심의된 것
- 거랑꾼, 관자놀이, 굴렁쇠, 길, 노랑, 노름, 대야, 때꾼하다, 마투리, 밀범벅, 보조개, 쉬슬다, 애바르다, 우수리, 장아찌, 지나가다, 지난달, 피리, 해망쩍다
정의적(情意的, emotive)인 장음은 어휘의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며 강조하기 위한 화자의 주관적인 태도가 반영된 발음이므로 표준 발음법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가령, 단음으로 실현되는 것으로 심의된 ‘그리(그곳으로), 대견하다, 지난달’ 등의 제1음절의 발음에 대해서도 특별히 그 의미를 강조하는 경우에는 길게 발음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긴 발음은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므로 이런 부류에 포함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기도 어렵고 얼마만큼 강조할 때 어느 정도로 길게 발음해야 할지 그 기준을 세우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단어들은 이번 심의에서 단음을 원칙으로 한 것이다. 화자의 주관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정의적인 발음은 특히 의성어나 의태어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이러한 의성어, 의태어도 단음을 원칙으로 심의하였다. 몇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 가불가불, 거붓거붓, 깩깩, 깰깰, 꿀꿀, 꿍꿍, 덜덜, 들들, 떠죽떠죽, 뱅뱅, 부라부라, 뿡, 뿡뿡, 쓱싹쓱싹, 왝왝, 왱왱, 윙윙, 짝짝, 쭐쭐, 찍찍, 찔찔
색채 형용사도 정의적인 장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 부류이다. 색채 형용사의 경우에도 의성어, 의태어에서처럼 단음을 원칙으로 하였다(예: 노랑, 벌겅 등). 그러나 ‘-앟/엏-’이 결합된 색채 형용사(또는 그에 준하는 형용사)는 ‘-앟/엏-’ 이 결합됨으로써 그 의미가 강조되어 전반적으로 장음으로 실현되기 때문에 장음을 표준 발음으로 하였다. ‘-앟/엏-’ 이 결합된 색채 형용사(또는 그에 준하는 형용사)의 심의 결과를 몇몇 보이면 다음과 같다.
- 가:맣다, 가:매지다, 까:맣다, 뇌:랗다, 누:렇다, 누:레지다, 뉘:렇다, 말:갛다, 멀:겋다, 멀:게지다, 벌:겋다, 보:얗다, 보:얘지다, 뿌:옇다, 파:랗다, 파:래지다, 퍼:레지다, 하:얗다, 허:옇다, 허:예지다
2] 경음
‘표준 발음법’의 제6장 ‘경음화’의 제23항, 제24항, 제25항(제26항은 한자어에 적용되는 규칙임), 제27항은 그 각각에 명시된 조건만 맞으면 그러한 경음화 현상이 언제나 일어나기 때문에, 즉 항상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이기 때문에 단어를 개별적으로 심의할 것이 아니다.. 개별적으로 심의해야 할 것은 제28항이다.
제28항에는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휴지가 성립되는) 합성어의 경우에는 뒤 단어의 첫소리 ‘ㄱ, ㄷ, ㅂ, ㅅ, ㅈ’ 을 된소리로 발음한다”라고 하면서 ‘문고리[문꼬리], 길가[길까], 그믐달[그믐딸], 등불[등뿔]’ 등을 예로 들어 놓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제28항에서 다루고 있는 받침 ‘ㄴ, ㄹ, ㅁ, ㅇ’ 다음에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즉 휴지가 성립되는) 합성어가 어떤 단어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합성어의 ㄴ, ㄹ, ㅁ, ㅇ 다음에 오는 말(형태소)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 있는 단어의 발음이 문제되면 그 표준 발음형을 단어마다 개별적으로 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전에서는 이러한 환경에 있는 단어의 발음 표시에 있어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경음’부분의 심의는 이러 환경에 있는 단어의 발음 표시에 있어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경음’ 부분의 심의는 이러한 환경에 있으면서 사전에서 일치를 보이지 않는 이러한 단어의 발음의 심의에 초점이 모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단어의 발음을 심의한 결과를 몇몇 보이면 다음과 같다.
- * 경음으로 심의된 것
- 가슴살[-쌀], 겨울잠[-짬], 날다람쥐[-따-], 농:지거리[-찌-], 솎음국[-꾹], 웃음소리[-쏘-], 집안사람[-싸-], 흠:집[-찝]
- * 평음으로 심의된 것
- 가을보리, 들:국화, 등배운동, 몸서리, 물거품, 밤:송이, 신기다, 안심, 외통수, 주름상자, 쭈그렁밤송이
한편, 모음으로 끝나는 말과 ‘ㄱ, ㄷ, ㅂ, ㅅ, ㅈ’으로 시작하는 말로 시작되는 합성에 있어서도 경음화 여부가 문제된다. 이런 환경에서도 뒤의 ‘ㄱ, ㄷ, ㅂ, ㅅ, ㅈ’ 이 경음으로 실현될 수도 있고 평음으로 실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음으로 실현되는 것으로 심의된 경우에는 합성어의 앞 말에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어 ‘표준 발음법’의 제30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몇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 구둣주걱, 미친갯병(-病), 바닷말, 바닷장어(-長魚), 쉿소리, 수돗물(水道-), 배뱅잇굿, 주삿바늘(注射-), 진딧물, 콧노래
- * 평음으로 심의된 것: 수레바퀴, 차바퀴
“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앞 단어나 접두사의 끝이 자음이고 뒤 단어나 접미사의 첫 음절이 ‘이, 야, 여, 요, 유’인 경우에는 ‘ㄴ’ 소리를 첨가하여 [니, 냐, 녀, 뇨,뉴]로 발음한다”는 제29항의 경우에도 문제되는 단어가 있으면 개별적인 검토를 요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제29항의 “다만, 다음과 같은 단어에서는 ‘ㄴ(ㄹ)’ 소리를 첨가하여 발음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6. 25[유기오], 3. 1절[사밀쩔], 송별연[송벼련]’ 등의 단어를 제시하고 있어서, 사전에서 ‘ㄴ’ 첨가가 문제되는 단어의 발음을 제29항의 원칙에 따라서 ‘ㄴ’이 첨가된 발음으로 해야 할지 ‘다만’에 따라 ‘ㄴ’ 소리를 첨가하지 않은 발음으로 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심의에서 ‘ㄴ’이 첨가된 발음으로 심의된 것도 있고(사삿일[-닐], 깔유리[-류-] 등), ‘ㄴ’이 첨가되지 않은 것으로 심의된 것 (첫인사[처딘사], 첫인상[처딘상] 등)도 있다.
‘표준 발음법’의 ‘음의 첨가’에서 두 가지 발음형을 모두 폭넓게 수용했던 부분이 있는데, “어떤 말들은 ‘ㄴ’ 소리를 첨가하여 발음하되, 표기대로 발음할 수 있다”는 부분(표준 발음법 제29항의 ‘다만’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가령 ‘야금야금’과 같은 단어는 [야금냐금]도 되고 [야그먀금]도 된다는 것이다. 이번 심의에서는 한자어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하였기 때문에 첩어적 성격을 띠는 의성어나 의태어가 그러한 환경을 가지는 고유어에 한정하여 이 규정을 적용하였다. 몇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 야기죽야기죽[야기증냐기죽/야기주갸기죽], 야슬야슬[야슬랴슬/야스랴슬], 얄기죽얄기죽[얄기중냘기죽/얄기주걀기죽], 유들유들[유들류들/유드류들]
4. 맺는말
언어는 공간(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표준어에 대한 인식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표준어 심의 자체도 어렵고, 심의된 결과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이견을 가질 수 있다. 언어의 이러한 다양성의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면 개인이나 집단의 다양한 언어, 다시 말해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언어에 대해 하나의 정지된 상황을 설정하여 표준의 틀을 만들고 또한 만들어진 그 틀에 따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의 통일된 공동체를 위해서는 그 다양성만을 고집할 수 없다. 어떤 집단, 어떤 사회에 있어서 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양보와 희생이 요구되며 그러한 사정은 표준어를 정하고, 정해진 표준어를 받아들여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조금씩만 양보하고 희생한다면 우리는 그 대가(代價)로 언어의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결과로서 확인할 수 있는 언어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이 사회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데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언어는 사고의 표상이요, 의식의 외양이기 때문에 표준어를 잘 다듬어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진작시켜 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 누구나가 표준어를 정확히 익혀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정해진 표준어를 알기 쉽게 해설하여 널리 보급하는 일도 중요하다. 문화부에서는 한글 기계화의 일환으로 개발 중에 있는 스펠링 체크(spelling check) 프로그램에 이미 고시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은 물론이고, 이 ‘표준어 모음’도 입력시켜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국어 연구소에서는 이 ‘표준어 모음’의 내용을 일반 언어생활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표준어 모음’의 해설집을 내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발맞추어 신문, 잡지, 방송 등의 언론 매체에서는 물론, 각급 학교에서도 정해진 표준어를 사용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표준어 규정’이 공표되어 일반 원칙이 정해지고 이번에 다시 ‘표준어 모음’이 공표됨으로써 누누이 지적되어 왔던 문제성이 있는 고유어에 대한 검토는 일단락 지은 셈이 된다. 그렇다고 국어의 표준화 사업이 완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표준어 규정’에 따라 검토되어야 할 단어도 전반적으로 검토되지 못한 채 남아 있으며 문화와 생활 공간의 변천에 따른 어휘의 의미나 형태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어 어휘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나,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국어와 외래어의 표준화 작업도 단시일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부에서는 앞으로도 표준어 사정 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정한 결과를 매년 발표함으로써 출판사를 포함한 일반 국민에게 미칠 수도 있을 불편과 혼란을 덜기 위해 발표만은 상당 기간 유보할 방침이라고 한다. 표준어 작업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 그 결과가 모두 수록된 ‘표준 국어사전’이 나옴으로써 국어의 표준화 사업은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