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 변화의 양상과 그 배경
宋敏/국민대 교수•국어학
1. 머리말
현대 국어의 어휘 체계는 대체로 두 번에 걸친 시대적 전환점을 계기로 그때그때의 사회적 배경에 따라 갖가지 변화를 겪어 왔다. 그 첫 번째는 갑오경장(1894)이었고, 그 두 번째는 조국 광복(1945)이었다. 여기서는 이들 두 전환점을 배경으로하여 일어나게 된 국어 어휘 체계의 변화 양상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2. 갑오경장 이후
좀더 구체적으로 볼 때 이 시대는 한일합병(1910) 이전과 그 이후 두 시기로 나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어 어휘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그러한 시기 구분이 필연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 시대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국어 어휘 체계에 대한 일본어의 대폭적인 간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간섭은 갑오경장을 계기로 본격화하여 한일합병을 거치면서 그 정도가 양적으로 점차 확대일로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이처럼 한일합병 이전과 그 이후는 국어 어휘 체계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일합병이라는 시대적 전환점으로 특별히 시대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어 어휘 체계에 약간이나마 가시적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는 갑오경장보다 조금 앞선다. 구체적으로는 한일수호조약(1876)이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일본에 건너간 조선조의 지식인들은 일본어에 범람하는 신문명 어휘에 접하게 된다.
신문명 어휘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 어휘였다. 여기에는 대체로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중국 고전에 나타나는 어휘를 새로운 의미로 전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번역 차용 방식으로 신조된 것이다. ‘文明, 自由, 文學, 自然 ’과 같은 한자어는 전자에 속하지만, ‘大統領, 日曜日, 演說, 哲學, 美術, 葉書, 進化論, 生存競爭, 適者生存’과 같은 한자어는 후자에 속하는 유형이다.
신문명 어휘 가운데에는 서양 제어로부터의 번역 차용이 아닌 일본의 자체적 신조어도 많았다. 문물 제도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일본에서 만들어진 ‘勅任, 奏任, 判任, 大臣, 總裁, 總務, 庶務, 主事’와 같은 한자어가 이 유형에 속한다.
이상과 같은 어휘가 본격적으로 국어에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更張官制(1894)를 통해서였다. 특히 관직이나 제도 관계의 명칭은 그 상당 부분이 일본어 어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렇게 수용된 일본어 어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술, 교육, 법률, 군사,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의 국어 어휘 체계에 갖가지 개신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러한 어휘 체계의 변화 양상은 크게 보아 의미 변화와 어형 변화로 구분될 수 있다.
(1) 의미 변화
일본어의 간섭은 전통적 한자어에 의미 개신을 불러왔다. 가령, 게일의 ‘韓英字典’(1897)에 등록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어휘들은 전통적 의미를 유지하고 있었다.
- 도셔 圖書 A private seal or stamp-as that bearing one's name. See 투셔(680 右)
- 발명다 發明 To make clear; to prove(391 右)
- 발표다 發表 To come out as pustules-in small-pox. See 발반다(392 左)
- 발다 發行 To set out; to depart; to start. See 발졍다(390 右)
- 방송다 放送 To pardon and set free (388 右)
- 산업 産業 Possessions; calling; trade; real estate; landed property. See 셰간(515 右)
- 샤회 社會 Sacrificial festivals. See 동회(527 右)
- 산다 生産 To bear a child. See 슌만다(539 右)
- 식픔 食品 Appetite; taste. See 식셩(578 右)
- 신인 新人 A bride or bridegroom. See 신부(582 左)
- 실 室內 Your wife. See 실가(589 右)
- 연 自然 Of itself; naturally so; self-existent; of course. See 졀노(728 右)
- 즁심 中心 Mind; heart. See 즁졍(790 左)
- 창업다 創業 To found a dynasty. See 국다(796 右)
이들 어휘의 전통적 의미는 위의 어석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현대 국어와는 전혀 달랐다. 일본식 의미의 수용으로 이들 어휘의 의미는 오늘날처럼 바뀌고 말았다. 이들 어휘에 일어난 의미 변화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圖書 藏書印>서적
- 發明 해명>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냄
- 發表 천연두 자국이 들어남>공표함
- 發行 출발>책을 펴냄
- 放送 석방>전파로 소리나 그림을 내보냄
- 産業 소유물, 재산>물자를 생산하는 일
- 社會 祭禮儀式 공동체>인간의 조직 집단
- 生産 出産>물자를 만들어 냄
- 食品 식성, 입맛>먹을거리
- 新人 신랑, 신부>연예계의 새 얼굴
- 室內 남의 아내>방안
- 自然 저절로>천연 현상
- 中心 마음속>사물의 한가운데
- 創業 국가를 일으킴>사업을 일으킴
여기에 예시된 사례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어의 수용은 수많은 어휘의 전통적 의미에 개선을 가져온 바 있다.
(2) 어형 변화
일본어의 간섭은 전통적 어휘의 어형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가령 奧山仙三(1929), ‘語法會話 朝鮮語大成’(京城, 日韓書房)의 부록에는 일본식 한자어와 국어식 한자어의 차이가 부문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그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괄호 속에 묶어 둔 것이 전통적 국어 한자어에 속한다.
- 人事 : 家族(食口) 兄弟(同氣) 夫婦(內外) 學者(文章) 保證人(保人) 美人(一&色) 外出(出入) 引繼(傳掌) 訴訟(呈訴, 呈狀) 同伴(作伴) 更迭(改差) 融通(變通)
- 性行 : 嫌惡(大忌) 氣分(氣運) 自白(吐說) 贅言(客說, 客談) 見聞(聞見) 企圖(生意)
- 身體 : 熱病(運氣) 胃病(滯症) 天然痘(疫疾) 盲人(判數) 處方書(方文) 變死(誤死) 全滅(沒死)
- 衣食 : 化粧(丹粧) 穀物(穀食) 食前(空心) 食欲(口味) 煙草(南草)
- 建築 : 民家(閭閻) 貸家(貰家) 別莊(亭子) 露店(假家) 客室(舍廊) 階段(層臺) 請負(都給) 使所(厠間)
- 器具 : 椅子(交椅) 懷中時計(時表) 分針(刻針) 望遠鏡(千里鏡) 天幕(帳幕) 拳銃(六穴砲) 彈丸(鐵丸)
- 慶吊 : 慶賀(致賀) 香典(賻儀) 出産(生産) 三週忌(大祥, 大朞) 一週忌(小祥, 小朞)
- 交際 : 交際(相從, 交接) 訪問(尋訪) 不和(圭角, 永炭) 通知(通寄, 奇別) 奉迎(祇迎) 奉送(祇送) 出迎(迎接) 送別(餞送,餞別) 約束(言約, 相約) 延期(退定)
- 職業 : 職業(生涯) 仲買(居間) 醫者(醫員) 農夫(農군) 小作人(作人) 料理人(熟手) 人夫(役夫) 工事(役事) 石工(石手匠) 兵士(兵丁)
- 經濟 : 市場(場) 行商(褓負商) 見本(看色) 小賣(散賣) 競賣(公拍) 組合(都中) 紙幣(紙錢, 紙貨) 現金(直錢) 口錢(口文) 利息(邊利) 利益(利文) 元利(本邊) 高利(重邊) 低利(輕邊) 下宿料(食債, 食價) 株券(股票, 股本票) 船賃(船價) 旅費(路需, 路資) 爲替(換錢) 租稅(結錢, 稅納) 費用(浮費, 所費) 元金(本錢, 本金) 原價(本金, 本價) 差引(相計, 計除) 支拂(支撥, 出給) 販賣(放賣)
- 天文地理 : 地震(地動) 貯水池(洑) 堤防(防築) 溫泉(溫井) 墓地(山所) 庭園(東山) 下水(水道) 境內(局內) 地方(外方) 上陸(下陸) 果實(實果)
- 文書 : 書籍(冊, 書冊) 表紙(冊衣) 送狀(物目) 證書(手標, 手記) 活字(鑄字)
- 時 : 昨年(上年) 日曜日(空日) 土曜日(半空日) 正午(午正) 午前(上午) 午後(下午) 將來(來頭) 近日(日間) 瞬間(瞥眼間)
- 기타 : 惡魔(雜鬼) 曲馬(馬上技) 賭博(雜技) 等級(等分) 大槪(居半) 假令(設或, 設使) 內容(裏許, 內坪) 失敗(狼狽) 境遇(至境) 調査(相考) 確實(的實, 分明) 取調(査實) 途中(中路, 路上) 妨害(毁妨) 硏究(窮究) 接受(與受)
더러는 미심스러운 항목도 없지 않으나 이상과 같은 자료는 적어도 전통적 국어 한자 어휘가 일본어식 한자어로 적지 않게 대치되었음을 알려 준다. 러한 어형 변화는 일본어의 간섭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현대 국어의 어휘 체계는 중국어 어형과 달라진 것이 많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왼쪽에 국어식 한자어, 오른쪽에 중국어 어형을 제시해 둔다.
첫째, 한자 형태소의 결합이 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
- 感銘 銘感
- 苦痛 痛苦
- 短縮 縮短
- 賣買 買賣
- 紹介 介紹
- 施設 設施
- 運搬 搬運
- 運命 命運
- 制限 限制
- 平和 和平
둘째, 국어가 중국어보다 압축된 어형을 보이는 경우.
- 都心 都市中心
- 名作 有名的著作
- 不信 不守信用, 不相信
- 要因 主要原因
- 特徵 特別指定
셋째, 국어와 중국어의 어형이 서로 다른 경우.
- 家屋 房屋
- 看板 招牌
- 看護 護理
- 勘當 廢嫡
- 共學 同校
- 歸國 回國
- 勤勞 服務, 工作
- 急行 快車, 急性地赶到
- 寄付 捐錢, 捐助, 捐贈
- 氣分 情緖, 精神, 心情
- 亂暴 粗暴, 野蠻
- 大金 巨款
- 大統領 總統
- 大學院 大學硏究所
- 同級生 同班同學
- 同封 附在內信
- 萬年筆 自來水筆
- 滿點 滿分, 滿好
- 募金 募捐
- 沒頭 埋頭
- 無關心 沒關心
- 無禮 不恭敬, 沒有禮貌
- 無意味 沒有意味
- 未熟 沒熟, 不熟練
- 密接 密切
- 事務所 辦公室, 辦事處
- 寫本 抄本
- 社說 報紙社論
- 社長 董事長, 總經理
- 寫眞 相片
- 司會 主持會議, 司儀
- 三面記事 社會新聞, 第三版消息
- 上京 晋京
- 相談 商量
- 宣敎師 傳敎師
- 洗濯 洗衣服
- 素朴 樸素
- 速達 快信
- 殺到 蜂擁而來
- 水泳 遊泳
- 遂行 執行, 達到
- 順位 位次
- 食器 餐具
- 食事 飯, 飯食
- 食卓 飯卓
- 食後 飯後
- 新規 新來, 從新
- 新聞社 報社
- 新婦 新娘
- 野球 捧球
- 餘裕 浮餘
- 年賀狀 賀年片
- 映畵 電影, 影片
- 屋上 屋頭
- 料金 費
- 牛乳 牛奶
- 運轉手 司機
- 月給 薪水, 月薪
- 義理 人情, 情面, 情分, 面子
- 利點 優點, 長處
- 自動車 汽車
- 自慢 自誇, 自滿
- 自轉車 自行車
- 自宅 家, 本宅
- 貯金 存款
- 貯蓄 儲蓄
- 適切 恰當
- 弟子 學生, 問生, 徒弟, 學徒
- 早朝 淸早, 淸晨, 早晨
- 卒業 畢業
- 注文 訂貨, 叫
- 主催 主辦
- 遲刻 遲到
- 支店 分行
- 車掌 列車長(기차의 경우), 售票員(버스의 경우)
- 淸書 謄淸
- 滯在 逗留
- 追放 驅逐, 出境
- 寢臺 床, 床鋪
- 退院 出院
- 編成 編造, 編制
- 爆彈 炸彈
- 下宿 公寓
- 玄關 房門口
- 歡談 暢談
- 會社 公司
- 後輩 晩輩, 後班生
- 休講 停課
- 興味 興趣
이상의 어느 경우로 보나 국어식 한자 어휘는 중국어보다 일본어 쪽에 훨씬 가깝다. 물론 여기에 예시되지는 않았지만 국어 한자 어휘는 중국어 쪽에 가까운 경우도 적지 않다. 전통적인 국어 한자 어휘의 대부분은 중국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대 국어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한자 어휘의 대부분은 일본어와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 국어의 한자 어휘는 체계는 그만큼 일본어의 간섭을 겪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현대 국어의 어휘 체계는 이미 이 시대에 근대 국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3. 조국 광복 이후
이 시대는 대체로 70년대 이전과 그 이후로 다시 구분될 수 있다. 한국이 후기 산업 사회로 접어든 시기가 대략 1970년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후기 산업 사회화는 국어의 어휘 체계에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엄청나고도 급속한 변화를 불러일으켰으며, 그러한 변화는 좀 더 다른 차원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주변의 일상 문화나 생활양식은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이 바뀌어 왔다. 이에 따라 전통적 구식 생활문화 어휘의 상당 부분은 날로 퇴조하고 있는 반면, 신식 생활문화 어휘나 첨단 문화성 전문 어휘는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그 동안은 한자 한문 교육의 부재 시대였다. 그 결과 한자어에 대한 일반인의 의미 분석 능력이 날로 약화되고 있다. 여기다가 대중 매체가 크게 발달함에 따라 어휘 체계의 지역성과 계층성이 자꾸 무너지고 있다. 각종 구어성 어휘가 날로 그 기반을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전시대의 유물이었던 일본어의 간섭은 아직도 국어 어휘 체계의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여기서는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차원에서 국어 어휘 체계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훑어보기로 한다.
(1) 전통적 생활문화 어휘의 퇴조
급격한 생활문화의 변화는 국어 어휘 체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많은 생활문화 어휘가 퇴조의 물결에 휩쓸려 폐어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의식주와 관련된 어휘에 가장 잘 나타나고 있지만, 그 밖에도 생활 도구, 민속놀이, 토속 신앙, 농어업 관련 어휘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그 일부를 정리해 본다.
- 의생활 : 고부탕이, 깜지기, 도투마리, 무두질, 설피창이, 실보무라지, 푸서, 피륙(이상 길쌈과 옷감 관계), 강풀치다, 고두저고리, 곱솔, 길목버선, 난든벌, 다대, 다로기, 도랑치마, 동옷, 뚜께버선, 무지기, 밀골무, 바늘겨레, 배래기, 볼끼, 사뜨다, 수눅, 아얌, 옹구바지, 쟁치마, 징거매다, 차렵, 타래버선, 핫퉁이(이상 바느질과 옷손질 관계), 개귀쌈지, 거미발, 겹사라지, 고불통, 까치부채, 동고리, 떨새, 몽글리다, 사라지, 어루쇠, 첩지, 희매하다(이상 맵시와 신변 용구 관계), 꺽두기, 노파리, 다로기, 도갱이, 멱신, 배악비, 사갈, 우너리, 재리, 조라기, 총갱기(이상 신발 관계)
- 식생활 : 강피, 거란지, 겨반지기, 고거리, 곤자소니, 골마지, 굴통이, 꽃소금, 나깨, 녹쌀, 또라젓, 무거리, 미절, 불치, 비웃, 심쌀, 오사리, 자래, 제깃물, 희아리(이상 식품 관계), 거섭, 구메밥, 당수, 되지기, 매나니, 물수랄, 밀푸러기, 섞박지, 수볶이, 알고명, 왁저지, 외보도리, 저냐, 칼싹두기(이상 음식물 관계), 거멀접이, 노티, 부꾸미, 엿자박, 주악, 중배끼, 회오리밤(이상 기호 식품 관계), 강밥, 두리기, 볼가심, 세뚜리, 양냥이, 초련, 퇴물림(이상 식사 관계), 겅그레, 구기, 귀때, 도드미, 동방구리, 두멍, 바라기, 방구리, 버치, 볼씨, 부디기, 오둠지, 이남박, 전두리, 족자리, 짚주저리, 치룽(이상 식생활 도구 관계)
- 주생활 : 고미집, 까대기, 달개집, 얼럭집, 울대, 죽담(이상 주거 관계), 개자리, 고미, 군새, 기스락, 도내기, 떠릿보, 머름, 미세기, 발비, 방보라, 보꾹, 보아지, 부출, 사개, 살강, 서돌, 안고지기, 어리, 조자리, 찰쇠, 초막이(이상 집 구조물 관계), 개잘량, 귀불, 등메, 잇비, 타래쇠(이상 가정 집기 관계), 그례질, 땀질, 매기, 모막이, 미레질, 비계, 섭새기다, 소마걷이, 쇠시리, 엇치량, 쪽매, 콩댐(이상 건축 작업 관계), 건지, 군두쇠, 까뀌, 끈치톱, 동가리톱, 들살, 모끼, 바곳, 지모끼, 탕개, 푼끌(이상 공구 관계)
이상에 예시된 어휘들은 박용수(1989), ‘우리말 갈래사전’(한길사)에 뜻풀이와 함께 실려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 어휘는 일상생활에서 활용되는 일이 거의 없다. 말하자면 폐어에 가까운 것들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생활 어휘가 퇴조의 물결을 타고 국어 어휘 체계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생활문화의 변화에서 말미암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어휘 퇴조는 형태론적으로 단일어보다는 합성어나 파생어에서, 동사형보다는 명사형에서 더욱 쉽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어휘 변화 전체에 걸치는 하나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첨단 문화성 전문 어휘의 확산
오늘날의 세계적 첨단 문화는 교통이나 통신 외에도 출판술의 발달에 힘입어 그날그날 지구의 골골샅샅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첨단 문화성 전문 어휘 또한 빠르게 전파된다. 이러한 전문 어휘들은 각 언어의 어휘 체계에 널리 수용될 수밖에 없다. 국어의 어휘 체계도 여기서 예외일 리가 없다.
이러한 첨단 문화 어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문제, 군사, 과학 기술, 법률, 스포츠에 걸쳐 날로 증가한다. 자연히 이들 어휘에는 시사성, 외래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어 그 어형 또한 번역 차용, 직접 차용, 약어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서는 동아일보사(1990), ‘현대시사용어사전’(1990 최신판)을 통하여 그 윤곽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 정치 관계 : 거국일치내각, 거부권, 계급투쟁, 국가모독죄, 국가보안법, 국정감사, 긴급조치, 다당제, 면책특권, 문화대혁명, 보안처분, 비동맹주의, 비례대표제, 비핵지대, 서울의 봄, 성역, 수정자본주의, 安家, 軟禁, 緣坐制, 외교특권, 원외투쟁, 인민재판, 정치깡패, 주체사상, 지방자치, 청문회, 통치권, 평생동지, 평화선
- 경제 관계 : 가계소득, 개발이익, 개발제한구역, 건폐율, 경상수지, 경영정보시스팀, 경제성장률, 경제특구, 경질유, 계통출하, 고정환율제, 공업센서스, 공업소유권, 공정거래법, 공한지세, 과세특례, 관세환급, 구상무역, 구제금융, 국민생활지표, 국민총생산, 국세조사, 국제수지, 그린벨트, 근로소득세, 금융실명제, 금융채권, 금전신탁, 기관투자가, 기능올림픽, 기술이전, 기준지가고시제, 긴급통화, 내부자거래, 노하우, 녹색혁명, 농어민후계자, 다국적기업, 덤핑관세, 데드라인, 데이터뱅크, 독립채산제, 로열티, 매출원가, 매판자본, 목적세, 무상증자, 무역외수지, 물가지수, 물질특허, 바이오산업, 반덤핑법, 뱅크론, 벤처캐피틀, 변동환율제, 보세구역, 복합영농, 부가가치, 부머랭효과, 분리과세, 불공정거래행위, 비과세소득, 비디오산업, 상장법인, 생계비, 先物市場, 先行指標, 세액공제, 소비성향, 소비자금융, 소비자물가지수, 소비조합, 소프트산업, 손익분기점, 수출신용장, 신종기업어음, 신흥공업국, 엔高, 온라인예금제, 우루과이라운드, 원천과세, 은행지로제, 財테크, 재형저축, 전략산업, 제로성장, 제2금융권, 조세부담율, 종합보험, 종합상사, 종합소득세, 중개무역, 증권파동, 지하경제, 借款, 총통화, 큰 손, 클레임, 토지공개념, 특별소비세, 특별회계, 프리미엄, 플랜트수출, 하이테크산업, 하이퍼마킷, 한국공업규격, 핫머니, 현물시장, 홈뱅킹
- 사회 관계 : 가라오케, 경로우대제, 고3병, 광화학스모그, 교수재임용제, 국토건설단, 근로기준법, 난수표, 노동귀족, 노동3권, 대기오염, 대마초, 대자보, 디스코, 람보현상, 마리화나, 마피아, 모니터, 모자보건법, 미나마타병, 부당노동행위, 불고지죄, 불심검문, 산성비, 산업폐기물, 오피스텔, 월요병, 위장취업자, 유니섹스, 이타이이타이병, 정보화사회, 제3자개입금지, 제8학군증후군, 졸업정원제, 직업병, 집단히스테리, 카드뮴중독, 컴퓨터범죄, 테크노스트레스, 헤로인, 히로뽕
- 문화 관계 : 감정이입, 개그, 개방대학, 공영방송, 기네스북, 뉴미디어, 다중방송, 대동놀이, 레이아웃, 마당놀이, 무크, 무형문화재, 미래학, 바이오리듬, 부조리, 불확실성의 시대, 블루필름, 삼림욕, 성숙사회, 스턴트맨, 심포지엄, 싱크탱크, 씻김굿, 아마추어무선, 아스팔트문학, 앵커, 여성학, 인간문화재, 정신극기훈련, 제3의 물결, 주문식단제, 카피라이터, 컨트리음악, 컴퓨토피아, 콘더미니엄, 패키지여행, 평생교육, 프리랜서, 해방신학, 황금분할
- 국제 문제 관계 : 개발차관, 고등판무관, 口上書, 국제운전면허증, 난민, 냉전, 도미노이론, 보트피플, 블랙파워, 오일달러, 오일쇼크, 외인부대, 인터폴, 적군파, 제3세계, 춘투, 페레스트로이카, 핵우산
- 군사 관계 : 공격위성, 다핵탄두미사일, 마지노선, 우주전쟁, 전략폭격, 집단안전보장, 화학무기
- 과학 기술 관계 : 가시광선, 고분자화합물, 골수이식, 관성항법장치, 광디스크, 광섬유, 광통신, 기상위성, 기억소자, 농축우라늄, 뇌사, 뉴세라믹스, 다이오드, 단말장치, 데이터통신, 도핑, 디지틀, 레이저, 메트로닉스, 모듈, 무중력상태, 바이오일렉트로닉스, 반도체, 블랙박스, 블랙홀, 산성비, 산업디자인, 산업용로봇, 소프트웨어, 시험관아기, 식물인간, 아나로그, 안락사, 열대야, 오피스오토메이션, 우주기지, 워드프로세서, 유전자공학, 음성정보서비스, 인간공학, 인공수정, 인터페론, 전자총, 직접회로, 체외수정, 컴퓨터그래픽스, 컴퓨터바이러스, 콜레스테롤, 타임캡슐, 파라볼라안테나, 파이렉스, 팩시밀리, 퍼스널컴퓨터, 하드웨어, 하이브리드재료, 하이비전, 핵겨울, 홈쇼핑, 항체
- 법률 관계 : 가석방, 가처분, 감정유치공증인, 구인장, 근저당, 묵비권, 미필적 고의, 사면, 알권리, 알리바이, 이의신청, 인격권, 임의동행, 저항권, 정식재판, 즉결심판, 청원권, 친고죄, 확신범
- 스포츠 관계 : 게이트볼, 그랜드슬램, 드래프트시스팀, 랩타임, 매치포인트, 서핑, 스쿠버다이빙, 시간차공격, 에어로빅스, 엔트리, 유니버시아드, 카누, 카약, 테니스엘보, 토너먼트, 행글라이더
여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시대의 첨단 문화성 전문 어휘의 거의 전부는 한결같이 한자어나 외래어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이 유형의 전문 어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걸핏하면 약어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예 영문자에 의한 약어로만 통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첨단성 전문 어휘의 확산은 국어 어휘 체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우선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부담이 필요하다. 한자어나 외래어가 흔히 한글 문자로 표기되기 때문에 그 부담은 더욱 무거워진다.
오늘날은 특별한 전문가에게만 이들 어휘가 필요한 시대는 아니다. 정치는 좀 제쳐 둔다고 할지라도 경제나 사회, 문화나 과학 기술, 법률이나 스포츠 이 모든 분야가 각자의 일상생활에 직결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이들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가기도 힘들다. 여기에 의미도 불투명한 전문 어휘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나온다. 이러한 현실은 평상인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전문 어휘를 국어로 전용할 때에는 이 점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3) 한자어 의미의 불투명화
일찍부터 ‘妻家집, 驛前앞, 海邊가’식 혼종어가 실제로 국어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지만, 이들 어형들은 모두 잉여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뜻이 겹친다. ‘妻家, 驛前, 海邊’의 ‘家, 前, 邊’은 각기 ‘집, 앞, 가’를 뜻하는 한자 형태소인데도 여기에 다시 같은 말을 겹쳐 놓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시 ‘餘暇시간, 懸案문제’와 같은 어형이 쓰이고 있지만, 그 뜻으로 볼 때 이들도 각기 ‘여가, 현안’으로 충분한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도 ‘처가집, 현안 문제’처럼 형태론적 구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넓은 광장, 따뜻한 온정, 떨어지는 낙엽, 밝은 명월’식 명사구나 ‘결실을 맺다, 과정을 거치다, 소득을 얻다, 순찰을 돌다, 시범을 보이다, 집무를 보다, 출동을 나가다, 피해를 입다‘식 동사구처럼 그 층위가 통사론적 구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마침 米昇右(1986), ‘잘못 전해지고 있는 것들’(汎友社)에 그러한 사례가 많이 모아져 있으므로 그 일부를 여기에 옮겨 보기로 한다.
가까운 측근, 같은 동포, 결연을 맺는다, 계속 이어지다, 공감을 느낀다, 구전으로 전해지다, 남은 여생, 내재해 있다, 더러운 오물, 마지막 종점, 무수히 많은, 밀고 나아가는 추진력, 부드럽고 유연한, 사랑하는 애인, 수확을 거두다, 어려운 난관, 여백이 남다, 유산을 남겨 주다,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잔재가 남다, 전래되어 오는, 지나가는 통행인, 포로로 잡히다, 향락을 즐기다, 회의를 품는다
이러한 현실은 한자어의 의미가 날로 불투명해져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역전’은 ‘기차 정거장 앞’을 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심히 ‘역전’을 ‘기차 정거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다시 ‘앞’을 붙여 ‘역전앞’을 만든다. 그래야만 그 뜻이 투명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든 한자어는 그 한 글자 한 글자에 뜻이 담겨 있다. 이를 분석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역전앞’은 분명히 어색한 표현임을 곧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한자어의 의미에 대한 분석적 능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역전’보다는 오히려 ‘역전앞’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역전’의 뜻이 그만큼 불투명해졌음을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역전’의 의미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기차 정거장 앞’이 ‘기차 정거장’쯤으로 변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모든 한자어에는 비슷한 의미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 변화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자 교육은 아직도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한자를 많이 쓰자거나 표기에까지 한자를 꼭 이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국어의 어휘 체계에 들어와 있는 한자어를 정확히 써먹기 위해서라도 한자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4) 구어성 어휘의 범람
오늘날의 사회는 대중 매체의 천국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이어 나타난 오디오·비디오 장비, 더욱 불어난 신문과 잡지, 여기서 매일처럼 쏟아져 나오는 오락성 프로그램이나 상업 광고는 엄청난 정보를 전국에 뿌리고 있다. 그 때문에 얼마전까지는 특정 지역이나 일부 계층에서만 쓰여 온 구어성 어휘들이 빠른 속도로 전국에 확산되고 있다. 갖가지 비속어, 은어, 방언, 외래어가 거림낌 없이 국어 어휘 체계에 범람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실상은 한국 국어 교육 연구회(1976), ‘國語 醇化의 方案과 實踐 資料’(世運 文化社)에 잘 모아져 있다. 여기서는 이 자료를 통하여 국어 어휘 체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구어성 어휘의 실상을 극히 일부나마 더듬어 보기로 한다.
- 갈비씨(바싹 마른 사람), 까지다(약아빠지다), 깡다구(배짱), 꺼지다(없어지다), 꼬시다(유혹하다), 날리다(잃다), 바지저고리(바보, 시골사람), 왕초(두목), 찍히다(들통나다, 남에게 안 좋게 보이다), 짜다(인색하다), 토끼다(도망가다), 갈기다(때리다), 뿔따구(화), 개소리(잔소리, 듣기 싫은 소리), 깨지다(얻어맞다, 돈을 잃다), 거지발싸개(더럽다), 걸리다(붙들리다, 들통나다), 검은 손(범죄인), 저기압(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 끄나풀(정보원), 씹다(헐뜯다), 골로 가다(죽다, 실패하다), 꼬나보다(노려보다), 꼬불치다(숨겨 두다, 감춰 두다), 꼽사리끼다(끼어들다), 꿀리다(힘이 달리다), 급행료(뇌물), 기어오르다(대들다), 김새다(어떤 일이 잘 안 되다), 나발불다(소문내다), 새발의 피(보잘 것 없는 존재), 쪽팔리다(난처해지다, 부끄러움을 느끼다), 눈깔나오다(힘들다, 바쁘다), 때빼고 광내다(멋내다), 땡땡이 치다(빠져나가다), 똥줄타다(힘들다), 구절순(뚱뚱한 여자), 박호순(못생긴 여자), 귀싸대기(뺨), 금갔다(망쳤다), 날날이 방구(욕), 따라지(처령한 신세), 묵사발(심히 얻어맞음), 바람맞다(약속에 어긋나다), 비행기 태우다(과분하게 칭찬하다), 싹이 노랗다(희망이 없다), 삼삼하다(좋다), 쌔비다(훔치다), 쎈스가 형광등(둔하다), 소식이 깡통(아무것도 모르다), 스타일 구기다(망신당하다), 아구창(입), 엉기다(일이 잘 안 풀리다)
괄호 속의 뜻풀이는 원문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그때그때 고쳐 놓았다. 하여튼 이러한 구어성 어휘는 지금 우리 사회의 도처에 흘러넘친다. 이를 자랑스럽게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5) 일본어의 간섭 부활
광복 이후 한동안은 일본어 잔재에 대한 저항감 때문에 일본어가 새로 국어에 수용되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러나 한자어만은 언제나 예외였다. 더구나 최근에는 일본식 서양어에, 심지어는 일본어가 섞인 혼종어도 국어 속에 끼어들고 있다. 이 일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한자어 : 脚線美, 缺食兒童, 缺陷車, 高速道路, 高水敷地, 公害, 過剩保護, 交通戰爭, 冷戰, 落下傘候補(또는 人事), 耐久消費財, 團地(아파트 단지, 공업 단지), 大河小說, 猛烈女性, 文化財(인간문화재), 反體制, 白書, 別冊, 付加價値, 分讓(아파트 분양), 不快指數, 事件記者, 四半世紀, 斜陽族(사양 산업, 아베크족, 장발족, 히피족, 제비족), 三冠王, 三面記事, 生産性, 署中人事狀, 成人病, 聖火(올림픽 성화), 首都圈, 視聽率, 施行錯誤, 試驗管아기, 案內孃, 安樂死, 壓力團體, 女性上位時代, 連呼(구호를 연호하다), 獵奇的 事件, 虞犯地帶, 원高現狀, 月賦, 有望株, 人災, 日照權, 殘業, 장마前線, 低開發國, 赤線地帶, 定年退職, 情報化社會, 終着驛, 地下鐵, 集中豪雨, 蒸發(사람이 증발하다), 靑書, 總會꾼, 推理小說, 春鬪, 探鳥會, 宅配制度, 特需(올림픽 특수), 八等身(일본어에서는 본래 八頭身), 暴走族, 核家族, 嫌煙權, 豪華版
- 서양어·기타: 고로께(croquette), 레저붐, 러브호텔, 리모콘(remote control), 슈크림(chou cream), 에키스(인삼 에키스,생약 에키스), 터키탕, 포르노(pornography), 하이테크(high technique), 히로뽕(phil- opon), 財테크(財務, 財政 technique), 가라오케(空 orchestra), 오방떡(大判떡)
이상은 모두가 일본식 어형이 새로 국어에 간섭을 일으킨 사례들이다. 이처럼 일본어는 아직도 국어에 지속적으로 간섭을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국어 어휘 체계는 적지 않은 혼란에 빠져 들고 있다.
특히 일본어를 통해서 들어오는 서양 외래어에는 많은 문제점이 서려 있다. ‘고로께’는 영어식으로 ‘크로케트’나 불어식으로 ‘끄로께뜨’쯤 되는 말이다. ‘슈크림’은 완전한 일본식 조어에 속한다. 불어라면 chou à la crème이어야 하고 영어라면 cream puff이어야 뜻이 통하기 때문이다. ‘에키스’는 덕천막부시대의 일본 학자들이 네덜란드 어 extract(精髓)의 첫 음절만을 따낸 말이다. ‘포르노’나 ‘히로뽕’은 완전한 일본식 발음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이러한 어형들이 국어 어휘 체계에 끼여들어 오는 일은 결코 반가운 현실이 아니다.
4. 맺는말
지금까지 우리는 현대 국어 어휘 체계에 나타난 변화 양상과 그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국어의 어휘 변화는 광복 이전과 그 이후가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곧 광복 이전의 어휘 변화는 단순히 의미 변화와 어형 변화로 구분되지만, 광복 이후 지금까지의 어휘 변화는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구분될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광복 이후, 특히 70년대 이후의 변화 양상일 것이다. 이때부터의 어휘 변화는 한결같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생활 어휘는 소멸되어 가고 있으며, 첨단 문화성 전문 어휘는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자어에 대한 의미 분석 능력은 날로 떨어져 많은 한자어의 의미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거기다가 바람직하지 않은 갖가지 구어성 어휘들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으며, 일본어의 간섭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다가는 국어의 어휘 체계가 한자어나 외래어로 메워지고 말 염려도 있다. 이러한 결과에 반가움을 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어 어휘 체계의 변화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더욱 더 기대된다.
참고 문헌
Gale, J.S.(1897), 韓英字典, A Korean-English Dictionary, Yokohama, Shanghai, Hongkong and Singapore, Kelly & Walsh, Limited.
國語 敎育 硏究會(1976), 國語 醇化의 方案과 實踐 資料, 世運 文化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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