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에 나타난 국어의 모습
김정우/국어 연구소 연구원·국어학
Ⅰ. 문제의 제기
“그것은 분명 윤리학의 모든 질문을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매력을 끈다; 거기엔 포기나 희생을 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 반대인 것이다! 우리에겐 평화와 풍요로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될 과학과 기술이 있으며, 우리는 단지 어리석거나 불합리하게 우리 자신의 살을 잘라 들어가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빈곤하고 불만족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고 또 마땅히 그들에게도 황금알을 낳아 줄 거위를 성급히 타도하거나 살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해야 된다. 그리고 부유한 자에게는 그들이 현명하게 가끔씩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더욱 부유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전하면 되는 것이다.”
위의 글은 E.F.Schmacher의 ‘Small is Beautiful’을 번역한 책(‘작은 것이 아름답다’,1980, 출판사 명과 번역자는 밝히지 않겠음)의 일부(pp.19~20)이다. 번역의 대상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번역의 목표가 동일한 정보(information invariante)의 전달에 있다는 일반론
(1) 을 받아들인다면, 번역의 결과물은 그 자체로 번역된 언어(target language)의 내면적 질서에 순응하여 읽는 사람의 의미 파악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위의 번역문은 국어의 일반 화자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논지 전개에 앞서 이들 문제를 열거해 봄으로써 본고에서 다룰 내용의 윤곽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윤리학의 모든 질문을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매력을 끈다; 거기엔 포기나 희생을 할 필요가 없다.’
이 부분은 문장 부호(;)를 전후로 해서 인과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영어의 문장 부호를 그대로 번역문에 가져다 썼기 때문에 국어의 독자는 읽으면서 이러한 문맥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금방 알아차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 즉 윤리학이 던지는 포기나 희생이라는 명제를 그것이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매력을 끈다는 뜻이므로, 이 문장 부호를 인과 표현의 접속어로 바꾸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그 아래에 나오는 ‘···과학과 기술이 있으며, 우리는 단지 어리석거나······’의 부분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도 쉼표(,) 다음에 결과를 나타내는 접속어를
집어넣어야 할 것이다.
둘째, ‘······평화와 풍요로의 길을 ······’
여기서 ‘~로의’라는 표현은 영어 원문의 전치사구(~<way> to~)를 명사화시킨 것인데, 이처럼 무리한 명사화보다는 전치사(to)에 담긴 의미를 살려서 ‘~에 이르는’이나 ‘~로 가는’ 정도로 풀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셋째, ‘우리는 단지 어리석거나······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단지’에 호응하는 말이 문장에 나타나지 않은 관계로 전체의 문맥이 모호하게 되어 버렸다. 이것은 영어 원문의 한정어(‘only’)가 수식하는 범위(scope)를 정확히 밝혀 주지 않아서 생겨난 문제이다. ‘단지’를 살린다면 ‘행동’ 다음에 한정사(delimiter)
(2)
‘만’을 첨가하는 것이 좋고, 아니면 서술어에 ‘만’을 덧붙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넷째, ‘불만족한 사람들에게는 ······’
이 부분에서는 형용사 ‘불만족한’이 거슬린다. 이 단어는 사전에도 없을 뿐더러, 그 뜻도 얼른 파악되지 않는다. 문맥상 ‘불만을 품고 있는’ 정도의 뜻이므로 ‘불만스러운’이나 ‘불만을 가진’ 등의 표현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어 단어와 국어 단어의 정확한 의미 내지 용법의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생겨난 문제이다.
다섯째, ‘빈곤하고 불만족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고 또······그들에게도 황금알을 ······’
이 부분에서는 ‘그들’이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이것은 영어와 국어에서 각각 재귀화의 적용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이다. 즉 ‘그들에게도’를 ‘자신들에게도’로 바꾸어 그 앞의 ‘빈곤하고 ······사람들’을 가리킴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전해야 한다.’
이 부분은 무엇을 전하는지, 또 무엇이 혹은 누가 전하는지 분명치 않다. 영어 원문에서 주어를 파악하여 적절한 위치에 넣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일곱째, ‘빈곤하고 불만족한 사람에게는 ······부유한 자에게는’
이 부분에서는 대등한 자격으로 접속되는 두 어구가 하나는 복수로 하나는 단수로 나타나서 독자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소위 문장 작법상 평행성이 지키지지 않은 예이다.
여덟째,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있기 때문에
’
이 부분은 ‘왜냐하면’과 ‘때문에’가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의미 파악에 부담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을 생략하는 편이 간결하고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흔히 번역문 투라고 불리는 전이어로 축자적 대응 번역에서 생겨난 잉여적인 표현이다. 굳이 직역을 고수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책의 성격상) 이런 표현은 많지 않을수록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3)
위에서 열거한 번역문의 문제점을 그 발생 경위에 따라서 분류한다면, 대략 다음의 세 유형으로 묶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영어 원문 파악의 오류이고, 그 둘은 영어와 국어 구조의 차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고, 그 셋은 국어 자체의 잘못된 사용이다. 그렇지만 이들 세 유형은 명확한 한계를 갖는다기보다 어느 정도 서로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본고에서는 원문에 대한 반역자의 어학적 능력이 문제되는 첫 번째 부류를 일단 논외로 하고, 나머지 두 부류를 대상으로 한다.
필자가 가진 어학적 배경의 한계로 그 원문(source language)은 영어에 국한시키고, 대상 자료도 극단을 피해서 일반 교양물 내지 가벼운 대중 소설 정도를 택하기로 했다.(4)
Ⅱ. 본문
  1. 인칭 대명사의 남용
 국어의 구문에서는 특별한 오해가 생기지 않는 범위에서 문장의 주어를 수의적으로 생략할 수 있다. 특히 주어가 명사 아닌 대명사일 때는 이런 현상이 빈번히 일어난다. 물론 주어 이외의 위치에서도 대명사는 생략되는 일이 많다. 아래의 예문에 쓰인 대명사의 용법을 보면 정상적인 국어의 문장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5)
이처럼 필요 이상으로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현상은 영어 원문의 축자 번역에서 비롯된다. 영어는 문장 구조상 주어가 필수적이어서, 서술어가 필수적인 국어와 좋은 대조를 보인다.(6) 소위 비인칭 주어라는 것만 생각해 봐도 영어에서 주어가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예문을 보면 번역문에 인칭 대명사가 얼마나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7)
혹시 이렇게 인칭 대명사를 전부 옮겨 주는 것이 문맥의 혼란을 방지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국어 화자의 직관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생각할 문제이다. 위와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읽기를 자주 중단시켜서 내용의 전개를 이어 주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1인칭과 2인칭 사이의 대화문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는 것이 국어에서 일반적이다. 다음을 비교해 보자.
아마도 (4'')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번역문에서는 이러한 대화문의 주어가 거의 그대로 나타나서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한편 재귀 대명사도 번역문에서 문제가 되는 영역이다. 재귀 대명사는 사실상 영어 문법 현상의 설명에 적합한 술어라고 할 수 있다. 즉, 타동사 구문에서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선행사와 재귀 대명사가 되면서 동사가 나타내는 행위가 행위자 자신에게 되돌아옴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 재귀화 현상은 영어에서 철저히 절(clause) 경계 안에 묶이게 되므로 동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어와 목적어의 동일 지시성(co-reference)을 가리키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국어의 재귀화는 문장 안에서뿐 아니라 문장의 단위를 넘어서는 담화(discourse)의 차원에서도 그 기능이 수행될 수 있다.(8) 국어와 영어 재귀화의 이러한 차이 때문에 번역문이 부자연스러운 국어가 되는 일이 흔히 생긴다. 아래의 예들이 그러하다.
2. 주격과 주제격의 혼란
국어의 조사 가운데서 그 용법이 가장 애매한 것이 {-은 /-는}이다. 특히 이것이 주어의 자리에 나타날 때는 주격 조사 {-이/-가}와 분명히 다른 용법을 가지면서도 서로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9)
{-이/-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쓰인다.
1.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서 볼 때 어떤 새로운 정보가 도입될 경우에 쓴다.
2. 날씨나 자연 현상을 이야기할 때 쓰인다.
3. 화제 다음에 나타나는 문장의 주어에 붙어서 쓰인다.
4. 문장의 문법적인 주어가 정보의 초점일 때 쓰인다.
한편 {-은 /-는}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쓰인다.
1. 문맥에 한 번 이상 나온 것을 이야기할 때 쓰인다.
2. 화자와 청자 사이에 서로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할 때 쓰인다. 이때의 주제는 생략이 가능하다.
3. 총칭적(generic) 명사구 결합되어 쓰인다.
주제가 나오는 문장에서는 초점이 서술부에 놓이게 되므로, 주어에 초점이 놓이는 문장과 구별된다. 이러한 양자의 차이는 대체로 영어의 정관사와 부정관사 사이의 차이와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영어의 정관사(definite article)는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정해진 어떤 것(따라서 기지의 정보)을 언급할 때 사용되고, 부정관사(indefinite article)는 정해지지 않는 것(따라서 새로운 정보)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그러니까 국어의 {-이/-가}는 영어의 부정관사에, 국어의 {-은 /-는}은 영어의 정관사에 각각 대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예문을 보자.
문제는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너무 {-은 /-는}을 많이 쓴다는 데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번역문의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컨대 ‘I am a boy’라는 원문이 주어지면, 앞뒤 문맥을 고려함이 없이 거의 기계적으로 ‘나는 소년이다.’라는 번역문이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대학 1년생들에게 간단한 영문을 제시해 주고 그것을 우리말로 옮겨 보도록 과제를 부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이 {-은 /-는}과 {-이/-가}의 용법을 주목해 보았다. 결과는 대상 학생 150명 가운데서 기대했던 용법을 사용한 것이 단 한 명뿐이었다. 이쯤 되면 이것은 비단 번역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어 사용상의 심각한 혼란이 아닐 수 없다. 그 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 부분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과학의 세기를 이야기하면서 뉴턴과 스펜서와 러셀의 전통에 이은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되어 있다. 즉 문장에 처음으로 나오는 새로운 정보로서, 이러한 사정은 앞에 쓰인 부사어(‘then’)로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밑줄 친 부분에는 주격토 {-이}가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아래의 예문을 보자.
이 부분은 이어지는 단락 전체가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새로운 정보이더라도 방점 부분에 {-은}을 써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3. 접속어와 문장 부호의 처리
국어와 영어는 접속 표현을 담당하는 문법 범주가 각기 다르다. 전자에서는 활용 어미가 접속 기능을 담당하고, 후자에서는 접속사라는 독립된 품사 범주가 그 기능을 담당한다. 그리하여 영어 원문의 접속사를 국어로 옮기게 되면 잉여적인 표현이 되어 오히려 문맥의 이해에 지장을 준다. 예컨대 조건을 나타내는 영어 표현(‘if’)을 ‘만일····한다면’ 식으로 옮기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이러한 번역문은 물론 자연스럽지 못한 국어의 문장이다. 아래의 예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이 얼마나 깊이 번역문에 침투해 있는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접속 표현과 관련된 것으로 문장 부호의 문제가 또 있다. 영어에는 국어에 많이 쓰이지 않는 문장 부호(세미콜론과 콜론)가 있는데, 이것들은 경우에 따라서 접속어의 역할을 하는 수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당연히 별도의 접속어가 나타나지 않는데, 국어로 옮기면서 문장 부호를 그대로 옮긴다거나 생략해 버린다거나 하면 문맥이 대단히 불투명해진다. 다음의 예를 보자. (10)
위의 예문은 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와 둘째 문장,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 문장의 연결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 즉 19세기를 통해서 사회 과학의 한 분야로 발전해 온 역사학 덕분에 과학적 방법론이 인간 현상의 연구에까지 적용되었다는 내용이므로 첫째 문장은 둘째 문장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 문장도 나중 문장이 앞 문장의 예시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결 관계가 번역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아서 각 문장이 서로 독립된 것처럼 보여서 전체 내용의 유기적 구성을 해치고 있다. 그런데 영어 원문을 보면 이 연결 부분에 문장 부호가 들어 있다.
위의 밑줄 친 (ㄱ), (ㄴ)이 각기 적절한 접속 표현으로 나타나야 한다. 즉 (ㄱ)은 결과를 나타내는 ‘그리하여’ 정도가 무난하고, (ㄴ)은 ‘그런 의미에서’나 ‘그 한 예로’ 정도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둘째 문장에 ‘이르렀다’는 과정의 결과 표시 동사가 쓰인 이유가 분명해지고, 넷째와 다섯째 문장에서도 ‘메카니즘’이라는 용어와 ‘사회정학’이라는 제목의 연관성이 살아날 수 있다.
한편 삽입구에 쓰이는 문장 부호(- -)도 국어로 넘어올 때는 가능한 한 그 역할에 따라서 풀어 주는 것이 좋다. 즉 수식의 역할이면 수식구로, 예시의 역할이면 예시구 등으로 풀어 주는 것이다. 아래의 예를 보자.
여기에 쓰인 삽입구의 성격은 설명 내지 구체화이므로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 있다.
여기에 쓰인 삽입구의 성격은 넓은 의미의 수식이다.
4. 화법 수용의 혼란
영어의 직접 화법과 간접 화법은 각각 국어의 직접 인용문과 간접 인용문으로 수용된다. 직접 인용문은 인용 부호(“ ”)가 들어가고 그 다음에 인용문을 만드는 형태소 ‘라고’가 첨가된다. 그리고 간접 인용문은 인용 부호가 없고 인용 부분의 끝에 형태소 ‘고’가 첨가된다. 그런데 번역문에서는 이러한 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래의 예를 보자.
이것은 위의 방점 부분을 ‘라고’로 바꾸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음처럼 문장 부호와 함께 문장 속에 녹아 들어가 있는 인용문은 번역문에서 적절히 처리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아래에 간접 인용문으로 옮겨 본다.
5. 품사의 대응 문제
번역문의 품사 범주는 원문의 품사 범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은 우리가 한문 원문을 국어로 옮길 때 흔히 겪는 현상이다. 영어와 국어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발견된다. 영어에서는 표현의 강도를 조정하기 위하여 같은 의미를 함축한 단어를 다양한 품사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국어로 옮길 때 이것을 잘 파악해서 적절한 품사 범주로 옮겨 주어야 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12)
(33)과 (34)의 방점 부분을 품사 범주를 조정해서 바꿔 써 본다.
이와 관련된 문제로서 지나친 명사문의 남용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앞서 첫 머리에서도 살펴본 바 있는데, 일본어의 영양도 큰 것으로 보인다. (13) 아래의 예문을 보자.
위의 방점은 문맥에 맞게 풀어 주어야 한다.
6. 경어법 사용의 혼란
국어의 문장에는 영어에 없는 경어법 체계가 발달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문장의 주어에 존칭의 대상이 나타나면 서술어의 어미에 존칭을 나타내는 형태소 {-시-}가 이에 호응하게 된다. 그 밖에도 주어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서술어의 어미가 다양하게 변화한다. 이것은 문장에 관련된 인물들 사이의 상호 관계 파악에 상당히 유용한 역할을 하는데, 번역문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일이 많다. 아래의 예문을 보자.
(39)에서는 {해요}체 어미가 대명사 ‘너’와 맞지 않고, (40)에서는 앞은 {해요}체 어미이고 뒤는 {-해}체 어미여서 맞지 않고 있다. (41)은 화자에 따라 적격성 여부의 판단이 다른데, 친구 사이라도 형식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가능하고 보다 친밀한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어색해 보인다.
7. 적절한 어휘 선택의 문제
동일한 함의를 갖는 단어의 경우라도 각기 다른 분야에 쓰일 때는 그 분야의 독특한 역사·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조금씩 변형된 모습을 취하게 된다. 예컨대 영어의 ‘reaction’이 물리학에 쓰일 때는 ‘반작용’이라고 옮겨지지만, 역사학에 쓰일 때는 ‘반동’이라고 옮겨지는 따위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단어의 올바른 번역어는 항상 문맥속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일례로 아래의 단어들은 보통 서너 가지씩의 의미를 갖는다. (예는 ‘역사’의 pp.136~139에서 뽑은 것임)
(49)~(54)를 (49'~54')처럼 옮기지 않고 (cf)처럼 직역을 해 놓으면 지극히 어색한 문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1음절 한자어의 문제가 있다. 특히 이것은 추상 명사를 번역할 때 생기는 문제이다. 아래의 문장이 그러한 예이다.
(55) 순간, 그 얼굴에서는 냉혹한 빛이 사라지고 철같은 엄격한 것으로 변하여 어느새 무자비할 만큼 자책의
념
앞에 글자를 보충해서 ‘상념’이나 ‘사념’ 정도로 만들어 주어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성경의 국역 과정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15)
8. 시제의 혼란
국어와 영어는 시제 체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국어는 현재와 과거만이 비교적 뚜렷이 대립을 보일 뿐이지만, 영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원 체계 아래에 각기 완료와 진행 및 완료 진행 시제가 있기 때문에 정연한 12시제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국어 번역문에서는 영어 원문의 다양한 시제를 시간 부사 등을 적절히 사용하여 반영해 주어야 한다. 국어 번역문에서는 특히 어색하게 눈에 뜨이는 것이 이른바 대과거의 표현인데, 동일한 문장 안에서 과거와 대립하지 않는 이상 과거형의 어미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9. 문장 길이의 조정
이것은 앞의 논의와는 성격이 다른 기술적인 문제이지만, 번역문의 논의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므로 여기에 간단히 언급한다. Ⅱ-3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어에는 문장 부호의 사용이 국어보다 잦으므로 문장의 길이도 자연히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국어 번역문에서는 이를 적절한 길이로 잘라서 옮기는 것이 좋다. 아래의 예문을 검토해 보자.
10. 기타
이 밖에도 영어의 수동태에 이끌린 이중 피동형의 빈번한 사용이라든가, 영어의 사물 주어 구문을 그대로 옮겨 놓는 따위의 문제들이 있지만 익히 잘 알려진 것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번역문도 국어의 일부인 만큼 현행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Ⅲ. 맺음말
국어 번역문도 원문의 내용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국어의 모습을 보여야 이상 적이다. 본고는 이러한 전제 아래서 몇 권의 번역서를 택해서 그것이 번역문이기에 나타났음직한 문제들을 유형별로 검토해 보고 그 경위를 유추해 보았다. 이러한 문제들은 물론 번역의 기교를 넘어서서 올바른 국어 사용이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외국어의 문투에서 벗어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국어 순화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어의 ‘cricket’을 국어로 ‘귀뚜라미’로 옮겨 놓는 것은 함축된 이미지의 파악에 실패한 번역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어에서는 ‘명랑한’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국어에서는 ‘쓸쓸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여기까지는 다루지 않았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번역자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영어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만큼, 그에 맞는 국어 문장의 구사력을 갖춘 번역자의 역할이 기대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하겠다.
참고 문헌
강희성(1987), 현대 번역 이론 연구, 사대 논문집 15, 부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