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일반론
서양 사람들이 쓴 번역론을 읽노라면 으레 “번역자는 반역자”(Traduttore tradittore)라는 오랜 이탈리아의 경구를 만나게 된다. ‘번역자’라는 뜻을 가진 ‘트라두토레’가 ‘반역자’라는 뜻을 가진 ‘트라디토레’와 홀소리 하나만 틀리고 발음이 같아서 멋진 경구 노릇을 하는데, 희한하게도 우리말에서도 ‘번역’과 ‘반역’은 홀소리 하나만 다를 뿐인 데다가 이탈리아 말보다 훨씬 짧아서 더 멋진 경구가 될 수 있다. 다만 번역에 관한 논의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멋진 경구가 자주 인용되지는 않는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경구는, 번역은 원문을 잘못 해석하든가 원문에 치욕을 돌리는 못난 해석을 하기 마련이라는 뜻으로서, 이 경구에는 상당히 긴 역사가 있다. 문자에 의한 지식의 전달이 극히 제한되었던 오랜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유럽인들이 문자 문화 운동을 활발히 벌이기 시작한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르네상스 시대이다.
체계적 지식은 아무 데서나 마음만 먹으면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 창출된 지식을 옮겨 오는 것으로써 한 지역, 한 시대의 지식 문화는 시작되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온갖 지식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을 때 유럽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창출되어 쌓여 있던 고대 헬라와 로마의 지식을 재발굴하였다. 그런데 고대 헬라 어(그리스 어)와 라틴 어(로마 어)를 제대로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당시 이탈리아 어로 옮겨 놓은 문헌들에는 틀린 데가 무수하였다.
지식 획득의 열의에 침착한 반성의 태도가 가해진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였다. 이 시대에는 고대어에 대한 학습이 훨씬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되어 학자들(그들은 ‘휴머니스트’, 즉 인문학자라고 했다)은 그들의 선배와 동시대인의 잘못된 번역을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한없이 숭모하는 고전들을 틀리게 번역한 것을 고전들에 대한 ‘반역’ 행위라고 매도했다. 그러면서 자기들 스스로 모범적이라 자부하는 번역을 내놓았다. 그러나 학자들의 모범적이라는 번역에도 틀린 데가 있었고 틀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원문의 힘과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 것이 많아서 자기네들끼리 서로 반역자라는 욕설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 사이에서 번역이라는 이름의 반역을 아예 회피하고 원문에 대한 자세한 주석과 해설을 붙이는 데에 정성을 쏟는 것으로 그치는 경향이 짙어 갔다.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어 오늘날 서양의 어문학 연구 방법으로 굳은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 문헌 연구자들 즉 휴머니스트들이 오늘날의 어문학 교수들의 선조가 되며, 이들의 연구 방법도 선조들의 것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중요한 고전 문헌에 대한 정확한 주석과 해설을 위주로 하면서 ‘반역’이 되기 쉬운
‘번역’에는 쉽게 손을 대지 않으려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요즈음의 외국 어문학 교수들은 어려운 고전의 번역을 가끔은 하지만 주로 고전에 대한 해설과 해석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양의 관행뿐만 아니라 동양의 오랜 전통과도 관계가 깊다. 중국의 학자는 ‘사서삼경’ 같은 고대 중국어로 쓰인 고전을 근세의 일반 중국어로 옮기지 않고 오직 주석과 해석과 해설에만 힘썼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난 학자들이 유교의 경전이나 불경을 ‘언문’으로 옮기는 일을 한 예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다만 서양과는 달리 번역이 반역이 될까봐 겁이 나서였다기보다는 고전을 읽고픈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여 직접 읽어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고 생각된다.
번역은 고급 정보의 공유 방법의 한 가지인데, 이를 거부한 것은 소수의 자격 획득자끼리만 정보를 독점하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정보의 독과점 현상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현상으로서, 이를 타파하려는 노력도 또한 대다수의 사회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린 백성’과의 정보 공유를 위하여 우수한 수단인 한글을 정보 독과점 집단(임금과 사대부) 스스로 창안하였지만 초장기의 실험 단계를 제외하고는 한글을 정보 가치가 높은 외국의 중요 문헌의 번역에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 한국의 사대부 식자층은 귀중한 경전들이 언문이라는 비천한 옷을 입고 나다니게 하는 것을 최고의 대역죄로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의 경전과 고전을 직접 읽을 줄
알게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약 2천 년간의 정규 교육의 전부였다. 한글은 중국 문헌에다 토를 달아 읽는 데 쓰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느껴야 하는 형편이었다. 실상 한글 창제의 의도가 한문에 토를 달아 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오늘날의 어느 국어학자의 견해도 없지 않다. 즉 “孟子ㅣ 見梁惠王하신대”에서처럼 “ㅣ, 하신대”의 네 글자로 토를 달아 읽기를 돕는 데 쓰라고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견해였지만, 사대부에게는 한글 용도가 고작 그쯤이었던 것이 사실이고, “맹자가 양나라의 혜왕을 만났다”라고 번역해 인쇄해서 많은 ‘어린 백성’에게 읽힐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말은 위대한 경전을 번역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도구로 연마되지 못한 채 19세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번역은 단지 외국어 실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습득하기가 꽤 까다로운 기술임에 틀림없다. 기술이 진정으로 생산성을 얻으려면 요샛말로 ‘기술 축적’이 이루어진 다음이라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한국 문화5000년간 19세기 말까지 그 기술 축적을 하지 않았다. 한글 창제 시에 시작되었던 ‘두시언해’와 같은 번역 작업이 계속되었더라면 19세기 말까지는 우리는 남부럽지 않게 번역 기술을 축적해 놓아서 갑자기 밀려들어 오는 외국 문헌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번역도 우리 손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서양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의 목적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경전 번역 기술이 전혀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에서 서양인들이 기독교의 성경과 찬미가와 ‘천로역정’ 같은 종교 문학을 번역하였는데, 이 작업에 한국인들도 참여하였지만 그것은 그들이 서양 고전어 원전이나 영어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런 문헌의 일본어, 한문 번역을 읽을 수 있어서였다. (1)
서양 문화 수입에 있어서 일본에 대한 의존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번역을 경전에 대한 반역으로, 또한 지식 계층의 정보 독점주의에 대한 반역으로 믿은 우리나라 문화사의 특수한 역사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20세기 초부터 한국인의 일본 유학이 본격화되어 현대 학문의 습득의 통로가 열렸지만, 서양 문헌에의 접근은 거의 반드시 일본어 번역을 통하여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반역’에 지나지 않은 ‘번역’이 많았을 터이지만, 그런 못난 번역이라도 자꾸 계속하면 기술 축적이 된다(일반적으로 일본의 기술 축적이란 서양 기술의 거듭된 ‘번역’의 결과이다). 그래서 우리는 19세기 말에 시작될 뻔했던 번역 기술의 축적을 금방 다시 차단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어는 우리말과 거의 같아서 일본 한자어는 그대로 옮기면 되고 토씨와 끝바꿈만 바꾸면 저절로 우리말이 된다고 믿어 버린 일본어 세대의 한국 지식인과 그들의 충실한 후배들은 서양 문헌에의 접근은 물론이고 서양 문헌 번역조차 일본어에 의존함으로써 우리말은 치유될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서양 개념들의 번역인 ‘이름씨’가 ‘명사’가 되고 ‘움직씨’가 ‘동사’가 되었는가 하면, 서양 예술의 명작들인 ‘잃어버린 낙원’이 ‘실락원’(즐거움을 잃어버린 낙원?)으로 ‘빨강과 깜장’이 ‘적과 흑’으로, ‘거룩한 희극’이 ‘신곡’(귀신의 노래?)으로 ‘요술 피리’가 ‘마적’(말탄 도둑 떼?)로, ‘동백 부인’이 ‘춘희’(봄 처녀?)로 ‘불모지’가 ‘황무지’(잡초가 무성한 땅? 본래 뜻은 아무 풀도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임)가 되었다. 더더구나 영한사전을 비롯한 외국어 사전들이 일본에서 만든 외국어 사전들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므로 한국인의 외국어 학습은 일본어식으로 굳어지는 수밖에 없다. 외국어 문법서들도 일본인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 대부분이다. 옛날에는 한문에 토를 달아 읽기 위해 한글이 쓰이더니 20세기에는 일본식 한자어의 우리말 발음 표기와 역시 토 달기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인들이 사전에서 영어의 ‘맨’을 ‘人間’이라고 옮겨 놓은 것을 우리는 ‘인간’이라고 발음만 바꾸어 놓았는데, 우리말에서 1920년대만 해도 ‘人間’은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세상’이란 뜻이었다.
더욱 심각하게도 “그 소년은 그의 어머니에 의하여 음식을 먹이웠었다” 같은 망측스런 괴물이 번역뿐 아니라 보통 글투에도 버젓이 섞이게 된 것은 일본식 ‘직역주의’ 외국어 교육의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내 아이, 계집애가 소년, 소녀가 된 것은 낱말 차원의 왜곡(倭曲?)이지만 ‘…에 의하여 ’‘먹이우다’ ‘…었었다’ 같은 통사론적 왜곡은 한층 더 심각한 병통인데 그것은 일본식 문법 교육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외국어 문장의 문법적 분석을 강조하는 교육은 ‘직역주의’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런 교육 방법은 일본인이 우리에게 남겨 준 가장 끈질긴 유산이 되어 있다(직역은 번역이라는 이름의 반역 중 가장 흔한 형태이다). 그래서 외국어 시간에 “해석은 되는데 뜻은 모르겠습니다”고 털어놓는 학생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 일본인들이 만든 학교용 외국어 문법 규칙(영어에 있어서 이른바 문장 5형식 같은 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낱말을 바꾸어 넣고 보니 뜻 모를 괴상한 낱말 줄기가 생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 교사는 문법 규칙을 정확히 적용한 학생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로 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생긴 버릇이 고질화되어서 뜻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경우에도 문법 규칙을 정확히 적용하였다는 표시를 남기지 않으면 틀린 번역이라고 오해를 받을까봐 되도록 직역에 가까운 글투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한국의 외국어 교사, 교수는 다들 그런 버릇이 조금씩 들어 있고 학생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한다.
일본식의 직역주의 번역투가 우리나라에 정착된 것은 아마 1950년대 후반에 당시의 대형 출판사들이 거의 동시에 전 20권, 전 30권 등 일본의 전집류를 흉내내어 세계 문학 전집, 세계 사상 전집 등을 낼 때였을 것이다. 당시의 외국 어문학, 특히 영어 영문학 교수 중에서 한 권이라도 번역을 맡지 않은 이는 드물었다. 그들을 전적으로 돕기 위하여 동원된 대학원 학생도 적지 않았다. 필자도 학생 시절에 한 러시아의 명작의 일부를 영어판에서 번역하여 주고 얼마간의 용돈을 받았고, 전임 강사 시절에는 에스파냐의 최고 명작을 역시 영어판에서 번역하고 제법 유식한 해설까지 붙여 넘겨주고 원고료의 절반을 나누어 받은 가벼운 ‘반역’의 전과가 있다. 당시의 외국 어문학 교수들은 서양 문학을 번역함에 있어 대대적으로 일본어판을 참고했다는 소문이 있는바, 한국에서 번역의 시대를 연 큰 공적을 인정하는 동시에 오늘날의 ‘번역투’를 정착시킨 책임도 그들에게 돌리는 수밖에 없다.
영어→일어→한국어 같은 중역은 물론 반역의 하나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번역 초창기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반역이다. 문제는 당시의 대부분의 외국 어문학 교수, 강사들과 교사들은 국민학교, 중학교, 대학 공부를 식민지식 일본어로 하였고 서양 문화에 대한 지식도 거의 일본어를 통하여 얻었으므로 일본식 직역주의 번역투를 별로 거리낌 없이 쓰기 쉬웠다는 사실이다. 그게 곧 유식한 우리말투라고까지 믿었을 것이다. 우리 고유의 어감에 맞는 말투는 오히려 들어 보지 못했기 쉽다. 그 전집류를 탐독한 한글 세대(필자는 이 세대의 맨 앞줄에 속한다)도 어쩔 수 없이 그 일본식 번역투를 익히게 되었다.
번역 출판이 활기를 띠기 직전 필자가 대학 초년생이었을 때 30대의 한 젊은 영문학 교수가 유명한 현대 미국 소설을 일본어판과는 관계없이 직접 영어판에서 옮겼다. 당시 일간 신문 문화면에서 그 사실을 대서특필하면서 우리나라 번역 문화도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고 칭찬했는데, 우리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소설가 ㅂ선생이 그 책을 보고는 그런 억지 문장투성이를 신문에서 칭찬하다니 가소롭다고 하였다. 필자도 그 책을 사다 읽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잘 읽어지지가 않았다. 그 문장들은 우리가 고등학교나 대학 교양 영어 시간에 내용은 잘 모르면서 문법 규칙에 따라 억지로 직역해 놓던 것과 아주 닮아 있었다. 그 번역자는 나중에 한국의 저명한 교수로 입신하였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일본 국어에 의한 직역주의 영어 교육에 젖어 있어 영어는 잘 알아도 순 한국식 국어 문장으로 재생산하는 일에는 무척 서툴렀다. 그는 국어 문장을 쓰는 훈련을 전해 받은 바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의 제자들은 그러한 직역주의 번역투를 배워 익히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였던지! 그러는 동안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우리말투에다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강요하였던지! 그래서 우리는 독립된 국가가 되었어도 지난 40년간의 외국어 교육은 우리의 번역 기술을 축적시키는 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19세기 말에도 끊기고 20세기 중엽에도 되찾지 못한 기술의 하나가 번역술인 것이다. 우리같이 일본어 세대의 제자들인 한글 제1세대뿐 아니라 우리의 후배들인 한글 2,3세대들에게 번역투는 오히려 이국적 향기를 풍기는 멋마저 있는 듯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텔레비전에서 수입 외국 영화를 보면 낱말도 아주 한국투는 아닌 데다가 그것들의 연결도 외국어 시간에 습득한 ‘해석투’로 들린다. 외국어 원문을 ‘해석’해 놓으니까 자연히 길어져서 서양 배우들이 입 한 번 벙긋하는 사이에 우리 성우들은 우리말 낱말을 여남은 개씩 뱉어 내는 떠벌이 노릇을 하느라고 고생이 심하다. 노인들은 무슨 소린지 몰라 아예 외면하지만 국민학교 아동들까지도 척척 알아듣게 되었으니 우리말투의 세대 차이는 엄청나다.
필자는 언젠가 ‘번역투’를 신문의 칼럼에서 문제 삼은 적이 있다. 한 유능한 젊은 학자가 번역한 책을 사다 읽으려다가 도저히 읽을 수 없어서 그가 능숙한 필치로 쓴 그 책에 대한 해설만 읽고 말았다. 그는 번역투와 보통 한국어를 철저히 구별하고 있었다. 그의 번역투는 서양 중세의 라틴 어 문장 구조를 흉내낸 듯 ‘…있어서, …함으로써의, …로부터, …있어, …으로서’ 같은 까다로운 연결 토씨와 끝바꿈으로 숨가쁘게 어휘를 연이어 놓은 것이었다. 소괄호, 중괄호, 대괄호로 첩첩이 둘러싸인 다항식 문제를 풀 듯 차근차근 풀어 보면 대강의 뜻은 짐작이 갔지만 너무 힘겨워 읽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해설은 유창하게 쓴 것을 보면 그는 번역투를 일부러 써서 이국적인 맛을 보이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는 한글 세대인 그가 일본식 직역주의를 철저한 영어 교사 덕분에 체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스스로 번역 기술을 발견시키지 못한 탓이겠다.
앞에서 좀 길게 번역이 왜 반역이 될 수 있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역사적 사정으로 인하여 모르는 사이에 반역이 되기 쉬운지를 말했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무척 다른 아픈 역사적 이유로 하여 선의의 번역까지도 뜻하지 아니하게 우리말에 대한 반역이 될 가능성을 적어도 유의는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번역 일반론을 말할 때 이점을 빼놓기는 어렵다. 특히 외국 문헌의 번역이 날로 왕성해 가는 오늘날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반역적인 요소를 내포하더라도 번역은 필요하다. 실제로 번역의 불가능함을 곧이곧대로 믿고 모든 번역물을 배격하는 사람은 없다. 국역 성경이나 영역 성경을 반역의 기록이라고 거부하고 굳이 고대 히브리어나 헬라 어 원전을 찾아 읽는 이는 없다. 16세기의 에스파냐 말을 몰라도 국역판으로 ‘돈키호테’를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으며 상당한 정도까지는 그에 관한 학술적 연구도 가능하다.
서양의 번역론 서두에서 “번역은 반역”이라는 경구가 인용되는 이유는 번역을 반대하기
위하여라기 보다는 번역의 필요성, 그 엄청난 효용에 비해서 반역적 성격은 무시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자면 영국의 저명한 번역가인 류는 “이탈리아의 경구인, 번역자는 반역자라는 말은 그 간결함과 기지 이외에는 살 만한 데가 없다”고 선언했고,(2) 비교 문학자 알베르 게라르는 “이탈리아의 격언인, 번역자는 반역자라는 말은 피해자의 과장일 뿐이다”고 선언했다. (3)
옛날에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에 닿을 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는데 신이 그들의 말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 버리니까 사람들은 의사가 안 통하여 하던 일을 내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유명한 바벨탑 이야기이다. 이 성경의 설화는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 좌절되는 양상을 비유한 것이다. 언어가 서로 다름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인간 노력의 좌절에 대한 비유도 된다. 통역의 필요함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인류 문화의 건설은 말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저주(?)를 타고난 사람들 사이에 통역(즉 번역)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따라서 번역은 반역이 아니라 불가결한 협조이다.
번역에 대하여 얼마쯤 이론적인 이해도 필요하다. 번역은 사람의 언어 행위의 하나인 만큼 번역의 이론은 언어학의 한 분야가 될 것이다. 필자는 언어학은 알지 못하지만 번역이라는 실천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번역 이론에 대하여 나름대로 조금 알아본 바가 있다. (4)
언어 이론으로서의 번역론에서의 번역은 반역이라는 격언이 성립되지 않는다. 번역론은 언어는 그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은 서로 매우 다르나 심층 구조에 있어서는 서로 매우 흡사하다는 전제하에 성립된다. 사물, 사건, 추상, 관련 등은 어떤 언어에 있어서나 말의 뜻의 구성 요소들이 된다. 어느 언어에나 바위(사물)가 있고 바위를 옮길(사건) 수 있고, 옮기기가 힘들고(추상성), 바위 옆에(관계) 사람이 설 수 있다. 물론 각 언어 사이에 1대 1의 대응 관계가 있다는 말은 아니나,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는 촘스키 같은 언어학자는 깊이 파들어 가면 갈수록 언어들은 서로 닮아 가고, 이른바 보편 문법주의라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언어(이른바 ‘자연 언어’. 모스 부호나 에스페란토 같은 인공적 언어와 구별된다)들이 공통적인 심층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그 구조로부터 무한한 숫자의 서로 다른 표면 구조가 생성된다는 이 이론이 바로 번역 이론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생성, 변화의 언어 이론에 따르자면 근원적인 심층 구조에서는 언어 사이의 차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번역의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심층 구조에서 표현을 향하여 변형이 생기는 순간부터 두 언어는 서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심층 구조에 가까울수록 두 언어 사이는 번역이 쉬워지고, 표면 구조에 가까울수록 번역은 어려워질 것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이 이론은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살든지 근본에 있어 서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보편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주의에 따르면 사람의 모든 인지적 경험은 어느 언어로든지 결국은 전달할 수 있다. 사람의 인지적 경험을 가능케 하는 신경 조직은 민족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까다로운 원자핵 이론이라도 에스키모 말로도 또는 아프리카의 부시먼의 언어로도 결국은 전달될 수가 있는 것이다. 적당한 낱말이 없을 때에는 외국어를 사용하든가, 새말을 지어내든가, 말의 뜻을 조금 변형시키든가, 우회적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하든가 해서 부족을 메울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문명은 세계 도처에 전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역의 문제는 가능, 불가능 문제가 아니라 어려움의 정도의 문제인 것이다. 번역의 어려움은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심층 구조와 표면 구조의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번역을 행하느냐 하는 문제는 보편적인 문제에 속한다. 특수한 문제로는 언어 자체에 관련된 것과 문화(생활 양식)에 관련된 것이 있다.
번역은 단순히 표면 구조(표면에 나타난 그대로의 상태)에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순전히 사전에 의하여 말 바꾸어 넣기, 즉 철저한 직역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추상적인 심층 구조에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심층 구조에서는 언어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심층과 표면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어느 수준이 적합한 번역의 지점이 되는지를 점찍기는 어렵지만 얼마쯤 경험이 있는 번역자는 그 지점을 대략 어림잡을 수 있다. 그 지점을 이론가들은 ‘번역 가능한 핵’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좀 멋을 부려서 쓴 글을 번역할 때에, 의미는 문장 수준에서 분석하고, 멋(이른바 ‘스타일’)은 전체 글 덩어리(이른바 텍스트) 수준에서 분석한다. 한 글 덩어리(텍스트)에서 ‘멋’을 제거하면 번역 가능한 핵들이 남는다. 이 핵들을 원하는 언어로 옮기고, 다시 적절한 멋을 가하여 한 덩어리의 번역문을 만드는 것이다. 한 언어의 멋은 다른 언어로 그대로 옮길 수 없으므로 그 다른 언어에서 그에 맞먹는 멋을 빌려 와야 한다. 예를 들자면 서양 시에서 장모음, 단모음이 서로 어울려 빚는 리듬의 멋을 우리말의 운문으로 옮긴다면 우리의 고유한 리듬인 4·4조의 멋으로 대치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한 뜻의 번역에는 문장 단위의 의미 분석이 필요하다. 번역 가능한 핵으로 분석해 보면, 네 가지의 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네 가지란, 1)사물들, 2)사건들, 3)추상(사물, 사건들의 성질), 4)관계 들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사물이란 연필, 종이, 불, 하늘 따위이고, 사건이란 먹다, 쓰다, 자다, 뛰다 따위이고, 추상이란 크다, 밝다, 답답하다 따위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과, 많다, 적다 따위의 숱을 나타내는 것과, 매우, 지극히 따위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과, 지금, 여기, 저기, 가끔, 자주 따위의 시간·공간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관계란 우리말에서는 ‘…의’ ‘과’ ‘…에서’ ‘…로써’ 같은 토씨로 나타내는 것이다. 한 글 덩어리를 문장 단위로 나누어 놓고 볼 때 이 네 가지 범주가 서로 어울려 있음을 알 수 있고, 바로 그 네 범주가 번역 가능한 핵을 이루는 것이다.
어느 나라 말이든지 그 네 범주가 있기 마련이므로 번역은 적어도 그 범주들을 가려낼 수 있는 수준에서는 언제나 가능한 것으로 본다. “나는 저 식당에서 맛있는 곰탕을 사 먹었다”에서 ‘나, 식당, 곰탕’은 사물이고 ‘사 먹었다’는 사건이고, ‘저, 맛있는’은 각각 공간, 성질을 나타내는 추상이며, ‘…는, …에서, …을’은 범주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것들에 해당되는 범주들이 영어, 중국어, 라틴 어, 부시먼 어에도 있다고 믿어진다. 기본적인 번역은 그런 범주들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번역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말 사이에 벌어지는데, 반드시 그 두 말을 다 아는 사람(요즈음은 특수한 경우에는 기계가 사람 흉내를 낸다고도 한다)이 필요하다. 두 언어를 알고 있는 상태를 2언어 사용, 그런 사람을 2언어 사용자(바이링궐리즘, 바이링궐리스트)라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모두 2언어 사용자들이다. 2언어 사용자로서 번역에 가장 적합한 이는 아마 2개 언어를 꼭 같이 정확히 사용하는 사람일 것이나, 실제로는 그런 사람은 드물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한국인 외국어 교사들은 예외 없이 그들이 가르치는 외국어보다 우리말에 훨씬 더 능숙하다. 이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외국어로부터 한국어로의 번역은 주로 그들이 한다. 비슷한 현상을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영어를 날 때부터 배워 늘 사용하는 영국인이 나중에 배운 불어 실력으로 불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 번역하고자 하는 말(즉 외국어)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되도록 우리말을 외국어에 가깝게 억지로 가지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즉 외국어의 표면 구조에 근접한 수준에서 그대로 옮기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서 거론된 ‘직역주의’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 문장 전체를 번역을 위한 의미 분석의 최소 단위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개별 낱말을 번역의 단위로 삼고 다만 어순만을 억지로 우리말처럼 꾸민 결과이다. 이러한 경향이 한국의 외국어 교육의 특징임을 위에서 지적하였다.
반대로 외국어의 독특한 구조를 지나치게 무시하고 완전한 우리말 표현에만 치우치면 그것은 번역이기보다는 외국어 원문의 해설이 되기 쉽다. 해설은 내용의 이해를 쉽게 하지만 원문의 본래의 의도를 왜곡할 수도 있고, 원문의 멋을 암시할 수가 없다. 또한 해설은 유식한 사람이 무식한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인 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도 있다.
대체로 외국어를 자국어로 번역한 것이 자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한 것보다 읽힘새가 좋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한국인이 영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영국인이 영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거나 한국인이 한국어 책을 영어로 번역한 것보다 읽기가 좋다는 것이다. 한국의 한 영문학자가 번역한 셰익스피어가, 그가 영어로 번역한 ‘춘향전’보다 더 잘 되기 쉽다는 말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국위 선양을 위하여 한국 문학 작품을 영어, 불어 등으로 번역하는 일을 정부 당국에서 주도하고 있는데, 그 일은 한국인 외국 어문학자가 맡아서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 한국인 영문학 교수가 영어로 번역한 ‘춘향전’은 같은 영어 교수가 읽어 봐도 도저히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가 없다. 어느 미국인이 그 번역을 비판하자 번역자인 그 교수는 미국인에게 교정을 받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반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번역으로 둔갑하지는 못했다. 한국어를 잘한다고 자부하는 영국인이 한국인 독자를 위하여 셰익스피어를 번역해 주기 어렵듯이, 영어를 잘한다고 자신하는 한국인이 영미의 독자를 위하여 ‘춘향전’, ‘구운몽’을 번역해 주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번역이란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밖의 것을 들여오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 문헌의 외국어 번역은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이 맡아서 할 일인 것이다. 문예 진흥원에서 한국 문학 번역 사업에 처음에는 주로 한국인을 동원했었는데 최근 차차 시정되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일본 작가 가와바다의 작품을 미국인 일본 문학 교수 사이덴스틱커가 영어로 잘 번역하여 노벨상까지 받게 한 것이지, 일본인 영문학자가 영어로 번역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이 번역의 한 큰 원칙으로 되어 있다. 한국 문헌이 외국어로 많이 잘 번역되게 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중에서 한국어, 한국 문화를 연구할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 국가 사업으로 할 일이다.
말의 표현 구조를 다듬는 일, 즉 ‘멋‘을 내는 일(그것이 글의 ’맛‘을 내는 일도 된다)은 실상 제 나라 말을 쓸 때에만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러한 멋과 맛이 매우 중요한 글이 서정시, 특히 현대의 세련된 서정시인데, 멋과 맛은 원문 것을 그대로 옮길 수 없다고 해서 번역은 반역이라는 경구를 들먹이곤 한다.(5) 그러한 글의 멋과 맛을 전달하려면 비슷한 정도의 감흥을 줄 수 있는 대치물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2언어 사용자라고 해서 다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번역은 오랜 훈련이 필요한 기술임을 앞에서도 강조했다. 그런데 번역의 기술은 외국어 사전과 문법서를 다 따로 외운다고 해서 얻어지지는 않는다. 반드시 외국의 문화를 상당한 수준까지는 알아야 하고, 또한 자국의 문화와의 비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2언어 사용 능력에 대하여 2문화 지식이 필요하다. 번역가의 양성은 단순히 어학 훈련에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 풍속, 사상 등 문화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한다. “해석은 하겠는데 뜻은 모르겠습니다”는 고백도 외국 문화에 대한 무식과 관계가 깊다. 그래서 영문학 작품은 전문적 영어 문법 교사보다는 영문학 전공자가 더 잘 번역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영문학 전공자는 영국 정치 사상서를 소설처럼 쉽게 번역하지는 못한다. 그가 습득한 문화와는 상당히 다른 문화가 개입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런 경우에도 번역은 반역이 될 수 있다. 언어에 관한 한 모를 것이 없더라도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은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적 지식에 더하여 번역 소개할 가치 여부에 대한 판단력 역시 꼭 필요하다. 외국 독자들에게는 아무리 가치가 있는 글이라도 오늘의 한국 독자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외국 문화뿐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요즈음 쏟아져 나오는 번역물 중에는 과연 번역할 가치가 있는지를 신중히 판단하지 않고 번역부터 하고 봤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독자가 극히 적을, 독자가 있더라도 원문으로 읽었을, 어려운 책을 번역한 예도 있는데, 번역자의 양심적 노력이 너무나 아깝다. 번역은 자신의 외국어 실력 발휘가 목적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가치 있는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번역 이론은 언어학적 고찰의 범위를 벗어나 비교 문화론적 논의로 넘어간다. 비교 문화론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한 영역으로서 우리가 여기서 이 이상 더 이야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