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우셔라, 우리 정신의 심층을 더듬어

李勳鍾 / 전 건대 교수·고전 문학

◇ 고맙습니다.
    "아이구 오래간만이올시다. 댁내 다 안녕하시고 아기들 잘 놀고요? 아이고 참 내 정신 좀 보게 어른 두 분 다 근력 좋으시구요? ----뒤늦게나마 인사에 넣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예! 덕분에 그저...."
    "고맙습니다."
    이때의 '고맙습니다'는 결코 영어의 댕큐(Thank you)는 아니다. 모처럼 애써 묻는 말에 대답해 주어 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하는 뜻은 아닐 거니까.
    "거 아무개가 그렇게 부지런히 양심 바르게 살아 보려고 애쓰더니 요새 평이 훤하게 피었다는구만요!"
    "그래요? 아이 고마우셔라."
    이거 역시도 고마움의 상대는 어느 누구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간 이상의 어떤 위대한 힘에 대해 외경(畏敬)의 표시로 한 말인 것이다. 나는 이 말의 원형을 '업습니다'로 보고 싶다. '실없다' '철없다'했을 때는 사실로 '실속이 없고' '철이 덜 들었다'는 애기가 되지만 '상없이 굴지 마라' '시름없이 앉아 있다' 할 때는 없는 것이 아니라 상스럽고 시름겹다는 내용이 된다. 그러니까 음의 장단(長短)은 조금 달라졌어도  곧 신령님 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고 하는 감사의 독백(獨白)이요. hallelujah나 똑같이 찬미의 탄사인 것이다.

◇ 특히 심한 서울의 속기(俗忌)
    taboo를 흔히 금기(禁忌)라고 번역하는데, 서울서는 종래 '속기'라는 말을 주로 써 왔다.
    구태여 '속'자를 얹어 말하는 것은, 점잖은 사람은 그런데 구애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내포돼 있다.
    38선을 넘어 온 친구 하나가, 서울 인심 사나운데 정이 떨어졌다면서, 물 한모금 달라는 데도 주지 않더라기에 나는 되물었다.
    "밤이었던게지?"
    "예! 어두운 뒤였어요"
    "밤에는 물이나 불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서울의 상식이야. 습속이 달라 그렇지, 인심이 사납긴..."
    내 고장의 야박한 인심을 변호하면서도 속으로 웃었다.
    오래 병고에 시달려 오던 사람에게 물었다.
    "좀 어떠셔요?"
    그는 자못 숙연한 얼굴을 지으면서 손을 저어 말을 막았다.
    "묻지 마셔요."
    번연히 쾌차했는 데도 말은 앓는다. 사실대로 '많이 나았습니다'하면, 듣는 것이 있다는 관념이다. 엄마에게 업혀 봄나들이 나온 어린이의 고 오동통한 볼을 꼭꼭 찔러 보며
    "어쩌면 요렇게 밉게 생겼니?"
    하는 것을 전에는 흔히 보았다.
    남의 아기를 왜 밉다고 하노? 솔직하게 예쁘다면 될 것을.... 집의 끝의 아들이 어려서 무척 영양이 좋
    았다. 한번은 놀러 온 교수 한 분이 안아서 둥둥이를 쳐 보고는
    "아이 무겁다. 꼭 우리집 다섯 살 먹은 아이만이나 하이, 손목 굵기도 아유 나보다 굵어...."
    집의 사람 표정을 훔쳐 보았더니 사뭇 울상이다. -그런 소린 하는 법이 아닌 것을 ...신식 공부했다는 이들은 저렇다니까 -하는 식이다.
    "언니 저만치 가. 좁아 죽겠어."
    "아유 우리집 식구 많다. 하나 둘 셋 넷...."
    "아이구 배불러라."
    이런 소린 모조리 할머니께 꾸지람 듣기 알맞은 표현들이다. 이불 하나를 서넛이 덮기가 예사이던 때,
    좁다고 하면..., 식구가 많다면...,배가 부르다면, 이것을 다 듣는 이가 있어서 거기에 알맞은 보응(報應)을
    내려 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남의 아기를 예쁘다면 예쁘지 않게 해줄 수도 있고, 무겁다면 가볍게
    해 줄는지 뉘 아느냐? 이것이 우리 고유 관념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 비아이다 비나이다
    선배 한 분이 회갑 때 수상집(隨想集)을 보내왔는데, '나의 인생관'이란 항목이 있기에 봤더니 몇 가지 신조(信條)를 열거한 끝에 '끊임없이 기도하라'하는 것이 있어서 나는 생각하였다. 新--빌기 禱--빌도 그러면 비는 것은 무엇인가? (시국이 혼돈했을 때 어느 종교계서는 나 자신을 비우라고 외쳐댔다. 비는 것을 텅 비우는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그러면 비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빗자루로 실컷 두들겨 맞고 울음을 삼키면서 울먹이는 아이를 보고, 다시 매를 들어 어르면서 다짐을 받는다.
    "또 그럴래? 안 그럴래? 말해라 말해."
    곁에서 아랫방 아줌마가 부추긴다.
    "임마! 더 맞지 말고 어서 빌어라, 빌어."
    여기서는 사과(謝過)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빌어먹을 놈!"
    하면, '한술 줍쇼'하고 빌어서 얻어 먹는 거지 얘기라, 乞--빌걸이 해당된다.
    위에 이미 언급했지만 종교계 일각에서는 '나 자신을 비우라'고 설교하였다. 이럴 때는 空--빌공자가 적용된다.
    흥선 대원군이 까닭 없이 몸이 찌뿌드하여 기분이 좋지 않은데, 천하장안(天河張安)의 옛날 건달 친구들이 정보를 가져왔다.
    "민중전이 장님 이모를 시켜서 대감 돌아가시라고 저주(詛呪)를 하고 있다합니다."
    "그 놈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오너라."
    보이지 않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끌려온 봉사를, 뜻뜻한 방에 좋은 이부자리 주어 편하게 모시고 술밥 극진히 대접하여, 며칠을 지낸 뒤 한 마디 문초도 없이 놓아 주었다.
    "너 흥선 대감께 잡혀 갔더라며 ? 그래 무얼 어떻게 물으시데?"
    장님이 솔직하게 대접받은 그대로를 사뢰었더니
    "조놈! 그동안에 단단히 매수 당했고나."
    실눈을 흘려 뜨며 고개를 가로 저으니, 이 가엾은 목숨은 하루 아침 이슬로 사라져 갔다. 그런데
    "아차차, 요놈의 늙은이한테 속았구나."
    손 안 대고 코 푼다더니 뒷짐지고 코푸는 식으로, 자기 손 안 대고 중전의 손을 빌려서 죽인 것이다. 이
    때의 빌자는 借--빌차자에 해당된다.
    그러면 위의 저주란 대체 무엇인가?
    종교란 쉽게 말해 이런 도식이 적용되는데, 못된 짓은 다하면서 복받기를 빈다면 왼쪽 끝이 될 것이고, 제 힘만 믿고 방자(放恣)하게 군다면 이것은 오른쪽 테 밖으로 벗어난 꼴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차분하게 사는 많은 사람은 이 테두리 안에서 오락가락하면서 지낸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학생은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어머니는 또 어머니대로 밤중마다 정화수(井華水) 떠 놓고 치성(致誠)을 드리고..., 그러면 힘을 주고 복을 내려 영광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왼쪽 테두리 밖의 세상, 사람의 뼈를 묻고, 화상을 차려 놓아 활로 쏘아 상대방을 죽게 만든다. 이것은 신의 힘을 빌기보다 신을 부려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이라는 밑받침이 결여된 이런 행위는 미신(迷信)의 부류에 드는 것이요, 흔히 예방한다 방예한다 하는 것이 그것이다.

◇ 도섭스러워라
    번갯불이 번쩍번쩍 하더니 하늘 끝에서 끝까지 우루룽거리며 천둥(天動) 소리가 요란스레 울려퍼지니까, 어린이가 엄마 품을 파고 들면서 그런다.
    "하느님이 이노옴 하는 거지? 엄마"
    항상 벌받을라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라, 많은 속기가 여기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그런 거 아랑곳 않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멋대로 노는 이를 경계하는 말에 '도섭스럽다'는 단어가 있다. 선배 한 분은 이것을 倒攝이라고 표기해 설명하고 있다. 하늘의 섭리(攝理)를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벌 받아야 옳을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한자로 된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것은 고사(姑捨)하고, 우리나라 권위 있는 사전에 이렇게 풀이되고 있다.
    "도섭스럽다--수선스럽고, 능청맞게 변덕을 부리는 태도가 있다. 도:섭-스레."
    태도가 있다는 것도 모를 표현이지만, 도대체가 비슷하지도 않은 해설이다.
    "아유! 도섭스러워라!"
    이와 궤를 같이 하는 말에 '사위스럽다'는 단어가 있다.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동궁 뜰에 움집을 파고 하늘로 구멍을 내어 빛을 받고 그 안에 살았다고 하니까 모두들 '사위스럽다'고 하였다.
    물건 하나하나마다 정령(精靈)이 있다고 믿는 것을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하는데, 귀신도 가지가 지다. 무척이나 째지게 가난한 한 총각이, 산고대가 하얗게 내린 새벽길을 가는데, 고개 마루 돌무더기 서낭당에 색 상자가 하나 놓여 있기에 열어 보니, 색깔도 고운 노랑 저고리 다홍 치마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길로 가던 길을 그만 두고,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위해 모셨다. 그리고 지성으로 섬겼더니 장사가 잘 되어 돈도 모이고 얘기쟁이 말마따나 살림이 불 일어나듯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얘기를 듣고 '사위스럽다'고 하였다. 필연코 처녀로 죽은 '손각시' 귀신이 하 탈을 일으키니까 갖다 내버린 것일건데, 손각시는 처녀로 죽은 원혼이라 위
    해 주면 무척 도와 주지만, 토라지면 큰 일을 저지른다고 하니 사위스러울밖에. 사전에도 설명하기를
    "미신적으로 마음에 꺼림칙하다, 사위-스레"
    하였으니 이번 설명은 비슷하다.

◇ 뜬 것
    고향 친구 하나가 밭 귀퉁이 도랑 가에 원두막을 지을 제 거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겹쳐 딴 기둥 셋을 세워서 꾸몄더니 튼튼하기가 십상이라 내가 그랬다.
    "집을 지을 때, 기둥 세울 자리마다 나무를 심어 십 년이고 그 이상 잘 키워서, 똑같은 높이로 목을 싹 자르고, 거기다 도리 보를 걸쳐서 지붕을 얹었으면 멋있겠네."
    그래 모두들 웃고, 어떤 이는 어떻게 그리 오래 기다리겠느냐고 하는데, 노인 한 분이 입에 물었던 장죽을 쭉 뽑으면서 그런다.
    "그거 안 하는 짓이여! 나무도 생명이 있는 것인데 그게 죽은 것이여? 아니면 산 것이여? 죽도 살도 못하는 억울한 생명, 그것이 탈을 일으키는 거다. 부부 해로하여 아들 낳고 딸 낳아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살만큼 살고 제 명에 죽었어 봐, 그게 탈낼 건덕지가 있어야 말이지.
    아직도 살 날이 멀쩡하게 남았는데 비명에 간 놈, 그것이 원한을 지닌 채 공기 중을 떠돌 제 그것을 '뜬 거'라고 하는 거니, 약간한 병탈 나는 것은 거 모두 뜬 것들이 다니면서 심청노는 것이여."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넋두리, 죽은 사람 영혼을 다시 불러다 평생에 못다 한 말 속 시원하게 다 말하고, 아무 미련 없이 고이 떠나라, 이것이 지노귀 긋이다. 그래서 배뱅이굿은 건달의 술값 벌이가 톡톡히 된 것이다.

◇ 힘을 비는 이야기
    내가 비는 것을 빌자<借>로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고유의 수련법에 차력(借力)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대충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가 수차(水借), 물도 많이 먹고, 특히 한밤중 야경수-약수터에서 깊은 밤에 먹는 물인데 사전에도 없으니 무슨 글자라야 맞는지는 모른다.-를 마시고 냉수 마찰이나 냉수욕을 끈질기게 하는, 일종의 건강법이라 할 초보 단계요, 의지만 있으면 웬만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다음이 약차(藥借), 특수한 약을 먹어서 원력을 돋구는 방식이다. 유명한 김좌진 장군은 이 법으로 구리가루를 많이 자셔서 뼈를 굳혔다고 하는데, 같이 자란 분의 얘기를 들으면 대충 30인분의 힘은 충분히 되었더라고 한다.
    끝으로, 힘뜨는 것이 신차(神借), 기도의 결과로 신의 힘을 빌어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자칫 잘못하여 장력(壯力)이 약한 데다 이 법을 쓰면, 도중에 미쳐 버린다는 위험하고도 힘드는 수련법이다.
    필자 젊어서 겨울철 야순을 돌다가 집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그날 낮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길반이나 되게 우뚝 섰는 것을 보고 놀라며 말며, 들고 있던 목검으로 내리쳤는데 어깨서부터 엇비슷이 단 칼에 동강이 났다. 다시 꼬나 들고 힘을 다해 찍어 봤으나 한치도 안 들어가서 혼자 웃었다. 신차의 수련을 쌓은 사람이라면 아무 때고 이 정도 힘은 필요할 때마다 낼 수 있는 것인데.... 만해 한용운(韓龍雲)은 이 신차로 수십 명이 못 당할 힘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김유신(金庾信) 장군이 어린 나이로 산 중 동굴에 들어가 수련했을 때 얼마나 열성을 다했던지, 17세에는 검술에 달통해 화랑이 되었다. 이어 큰 뜻을 품고 백제와 고구려를 도모할 양으로, 자신의 낭도 중에서 백석(白石)을 심복으로 삼아 데리고 길을 떠났는데, 고개 마루에서 쉬다가 여자 두 사람과 동행이 되고 이튿날 다시 한 여인을 사귀어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잠깐 얘기할 게 있으니 만나자기에 숲속으로 들어갔더니 이변이 일어났다. 아가씨들은 일시에 세 여신으로 화해 본형을 나타내며
    "우리는 내림(奈林), 혈례(穴禮), 골화(骨化) 세 곳의 호국신(護國神)이다. 지금 적국의 사람이 그대를 유인해 가는 데도 깨닫지 못하기로 일러 주는 것이니라."
    그만 놀래어 숲을 나와 백석을 타일러 데리고 돌아오는 길로 꽁꽁 묶어서 매어 달았다.
    "바른대로 말하라. 네놈은 누구냐?" 이럴 때 모질게 다뤘다고 뭐라 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의 실토로 고구려의 첩자임을 알아내어 처형하고, 차례차례 대사업을 성취해 나아간 것이다.
    얼마나 철저히 빌었기에 호국신도 감동해 힘을 빌려 주었을까? 그래 정성을 쏟아 비는 것은 힘을 빌려 주는 것과 같은 단어로 통용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빌 적에는 자연 손을 모으게 마련이요 모으는
    동작을 되풀이하자니 손을 비비대 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