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言語生活 一面
Ⅰ. 呼稱에 대하여
1.아리송해진 호칭
자식 친구들이 가끔 와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수가 있다.
"요새 어머님도 안녕하시죠? "
"응, 응, 잘있어. "
얼떨결에 대답은 하고 말았지만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라니? "
누구를 가리켜서 하는 말일까? 내가 '얘'를 양자로 맞아들인 일이 없으나 '우리 집사람'을 뜻했을 까닭도 없고, '우리 어미님'을 모르는 '아이'니 설마 우리 어머님을 가리킨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 흔해 빠진 '사모님'을 버리고, 이제는 '친구 어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
일부 사람들은 자기 '장모' 보고도 '어머니'라고 하는 이가 있는 현실이므로 사위라면 혹시 모를까, 내가 왜 '얘'한테서 '얘'의 '어머니' 安否 인사를 들어야 하는지 얼떨떨하기만 하였다.
아무리 자기의 '자기'(남편) 이름까지 마구 부르게 된 요즈음이지만, 아직도 엄연히 살아있는 것은 시댁의 규모와 가족 사이의 呼稱일 것이다.
그런데 새며느리에게는 좀처럼 전통적인 호칭이 입에 배지가 않는 것이다.
"야! 미스터 김, 가서 수박 좀 사 와! "
누구더러 소리를 지르는가 했더니 어렵고도 어려워해야 될 '도련님'을 마구 부려 먹으며 하는 소리였다.
때는 바야흐로 열여섯 살짜리 女中 3년생이, 열두 살짜리 코흘리개 신랑한테 시집가야 될 시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미스터 김'은 좀 지나친 듯 싶었다.
그러나 요새는 '자기'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마주 보아서도 안 될 '妻弟씨'더러,
"숙자 생일이 내일 모렌데 내가 무얼 사 주면 좋을까? "
하면서 맞대 놓고 '숙자'라고 하고 있으니, 피차 피장파장이 되고 말았다. '도련님'은 성인이 되어 장가를 들게 되면 '서방님'이 되고, '자기'의 '형'은 '시아주버님'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전의 이야기고, 오늘날 '새댁'들의 입에서는 이 호칭도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삼촌', 아니면 '큰아빠'로 둘러대어 우물우물 그 자리만 넘기면 된다.
'언니'도 서울 지방 사람들은, 형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사이에, 남자 형제끼리는 '형'만 쓰게 되고, '언니'는 여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말이 사회적인 습관이라면, 가족 호칭(친족 호칭)도 습관일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가족 호칭은 집집마다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어서, '아저씨'라고 할 것을 '아제'라고 하는 집안이 있고, 경북 안동 지방처럼 마을 단위로 가족 호칭 체계가 달랐던 경우도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규정하기가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 기어다니고 있어도, '작은아씨는 '어디까지나 '작은아씨'지, 태어나지도 않은 애의 '고모'는 결코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모든 것을 봉건적인 것의 잔재로 돌리나, 庚戍國恥 이후 시대가 어수선하여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특히 8. 15이후에는 각 지방 사람이 뒤섞여 살게 되면서,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전에는 그래도 집집마다 연세 많은 어른들이 계셔서 가르치셨는데, 요새는 '늙은이들 잔소리'가 없어져서 이렇게 된 것일까?
2. 아버님, 아빠
우리네 언어 습관으로는 죽은 이에 대해서 一格을 높여서 대우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령 아무리 말을 함부로 하고 지내던 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작고하였을 때에는
"형께서 먼저 가시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
라고 공대하며 흐느낀다.
집안의 어른에 대해서도 생시에는 '아버지'라고 부르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아버님'하고 높인다. 시부모(媤父母)에 대해서는, 생시에도 '님'을 붙여서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동 방언에서도, 친정부모는 '아배', '어매'가 되고 시부모는 '아맴', '어맴'이 된다. 그런데, 근자에는 살아 계신 자기 아버지를 死者로 모시는 이들이 많아 졌다.
"시골에 계신 우리 先親께서 말씀하시는데......"
라고 학생들이 말하는 것은 아직 우리네 언어 습관을 잘 몰라서 생존해 계신 아버지를 돌아가신 아버지(先親)로 대접해 드린다고 하더라도, 어엿한 어른들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눈다고 하는 방송국 등에서도 아버지가 사자 대접을 받는다.
아들: "아버님, 어서 드십시오. "
아버지: "그래그래, 아범도 빨리 먹어라. "
따지고 보면 '아범'이란 말도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나이 많은 하인'을 대접해서 부르는 호칭이었다(국어사전에는 달리 설명이 나와 있으나 순 서울 토박이의 증언에 의함. 그리고 자기집에서는 평시에도 꼭 아버님, 어머님, 오라버님이라고 한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옆에 앉아 있던 며느리 말이 더 가관이다.
"여보 아빠, 당신 그러다간 늦겠어요, 어서 드세요. "
다정하고 다복한 가정이라 그런지 몰라도 시아버님 앞에서 며느리가 '지아비'보고 감히 큰 소리로 '여보, 아빠, 당신'하게 되었으니, 시대의 변천과 함께 우리의 언어생활도 자꾸 변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 충청도 사람들은 내외 사이에 호칭이 없었다. 대개 우물우물, 소리 내어 부르지 않더라도 눈과 마음으로 통하여 말을 나누었다. 혹시 떨어져 있는 '사랑'을 부를 때에는 대개 애들 이름을 크게 외친다. 그러면 '사랑'도 눈치채고 다가오는 게 습관이었다. 더군다나 시부모 앞에서 여봐란 듯이 '여보, 당신'하는 일이 없었다. 이러던 것이 요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딜 가나 '남편'이 '아버지' 대접을 받아 '아빠'가 되고 말았다(이것도 일격을 높인 것인가?).
게다가 '아빠'로 대접하게 되어서 그런지 시부모 앞에서 '아빠'를 존대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시어머니: "애비는 아직 안 왔니? "
며느리: "네, 아빠가 오늘 좀 늦으신댔어요. "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며느리 귀여운 맛에 하나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된 세상이다.
이와 같이 '지아비'를 '아빠'로 격상시켜 부르는 것도 문제지만, 근자 일부 젊은 부부들이 상대편의 이름을 마구 불러대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심지어,
"요새 순희 걔가 아파서 내가 죽을 지경이에요."
라고 하는 젊은 신랑까지 있으니.
몇 달 전에 주례를 섰던 이는, 내가 주례사에서 이렇게 타이르지는 않았는데......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가다간 어떤 집처럼 '대디', '매미'하고 불러대어, 영문 모르는 이가 "그 집엔 웬 '돼지'와 '매미'가 함께 살지? "하게도 될 것이다.
3. '先生'이란 呼稱
내가 '누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大學 構內 賣店의 아가씨는, 내가 들어서자마자 꼭
"니 야오 섬머? "(너 뭐가 필요하니?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몇 해 전 臺北에서 겪은 일인데, '선생님, 교수님, 아저씨' 등으로 불리던 우리네 言語 習慣으로 볼 때에는, 15~16세의 소녀한테 '니'(너 또는 당신) 소리를 들으면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 근래의 우리말에는, '선생'이라는 呼稱이 너무 헤프게 쓰이고 있다. 운전기사도 선생님, 수사관도 선생님, 달구지꾼도 선생님, 스승도 선생님, 제자도 '선생님'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8.15 光復 後 閉鏁 社會로부터 開放 社會로 변하고, 급격한 社會 變動과 함께 사람들끼리의 接觸 關係가 많아졌는 데도, 呼稱 관계 우리말이 이에 副應할 만큼 발달하지 못한 데서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朝鮮 王朝 時代에는 아무에게나 '先生'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學德이 극히 높은 어른 이외에는 좀처럼 '先生'이라는 호칭을 듣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요새는 어디를 가나 '先生'이다.
그러나 아무리 '先生'이 大流行이라고 하더라도 스승이 제자더러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어색하게 보인다. 설령 敎職에 종사하고 있어서, '先生'이라는 직함이 분명한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제자더러'先生'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妄發처럼 느껴진다. 어떤 모임이나 편지에서는, 상대편의 직함을 존중하여 성 밑에 '선생'을 써도 어색하지 않지만, 私的으로 만났을 때 呼稱 문제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사전에는 '친구 사이나 손아랫사람을 부를 때에 성이나 이름 밑에 붙이어 부르는 말'이라고 해서 '군'을 들고 있고, '사람의 姓이나 이름 밑에 붙이어 존대의 뜻을 표시하는 말'이라고 해서 '씨'를 들고 있으나, 오늘날 우리네 언어 습관으로는, 사회적 지위가 당당한 '손아랫사람'더러 '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거북하고, '씨'라고 부르는 것도 愛人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꼭 술집이나 여관집 종업원을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경우 현명한 방법을 마련했다. 영어의 '미스터'에 해당하는 말로 '先生'을, '미스'(때로는 미세스까지)에 해당하는 말로 '小姐'를, 그리고 나이가 든 여성을 위해서는 '女士'를 마련하여, 상대편의 직함을 모를 경우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제자더러 '先生'이라고 하더라도 '미스터'의 뜻이 되어 어색함이 없는 듯하다.
말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맡겨야 하고, 大衆이 널리 쓰는 말을 늘 바탕으로 한다고 하지만, 대중이 쓸 말을 갖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이를 위하여 쓸 수 있는 말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근래 여자 대학생들이, 상급 학년의 남학생들은 보고 '형'이라 부르고, 남학생들은 거꾸로 하급 학년의 여학생들을, 이름을 가지고 마구 불러대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갖게 되는 것이다.
하기야 요새 남녀 대학생들의 對話는, 유치원 園兒들처럼 다정해져서, 상대편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부르고, 상호간의 呼稱도 '너' 아니면 '니'니까 상대편과의 관계에 따라 어떤 呼稱을 쓸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겠으나, 이럴수록 더욱 적절한 呼稱의 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4.父主前上白是
8.15 광복이 바로 復古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건만, 다시 갓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 중학교를 다니다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리고 書堂 공부를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이에 따라 국어 생활도 전통적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남의 집을 찾아갔을 때에는, 대문 밖에 서서
"이리 오너라!" 하고 중학생이 큰소리를 치기도 했었다.
편지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해서 중학교 국어와 漢文 시간에, '父主前上白是'(부주전상사리)
'氣體候一向萬康하옵시고 宅內諸主諸節이 두루 均安하옵신지 伏慕區區로소이다.'
라는 格式만 열심히 배우다 보니까, 정작 하숙비가 떨어져서 돈 부쳐 달라는 내용은 빼 먹기가 일쑤였다.
어른들의 諱字도 함부로 부르거나 써서는 안 된다고 해서 어른들의 이름을 남에게 말할 때에는, 이를테면'규(主) 字, 진(鎭) 字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하고, 집에 편지할 때도 어른들 이름 대신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本第入納'이라고 쓰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요새 관공서나 某女大에서 보내 오는 공문과 신문의 수신자란에는 밑도 끝도 없이 '강신항'이라고만 써 보내는 수가 있고, 심지어 자식놈들까지 제 아비한테 '강신항'이라고만 써 보내는 일이 있다. 호적부상에 분명히 '강신항'이라고 쓰여 있으니까 그대로 써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받는 쪽은 왜 그런지 서운하다. 관공서에서도 '씨'쯤 붙여도 좋을 것이고, 자식놈들도 '父主前上白是'나 '本第入納'이라고는 못할 망정, '아무개 아버님' 쯤으로 써도 되련만, '강신항'이라고 내뱉는다.
옛날에는 대개 父母님들께서 代를 이어 살아 오던 고향집에 계셨으므로, '本第入納'이면 다 통했을 것이지만, 요새는 아버지가 동쪽에, 어머니가 서쪽에 계신 경우도 많아서 이런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객지에서 公職 生活을 하고 계신 부모라면 '홍길동 出張所長님', '한복순 保姆님'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볼일로 객지에 계신 부모님이 라든지, 적당한 직함을 안 가진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겉봉을 어떻게 쓸지 몰라 제 부모님 이름을 함부로 내뱉게 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수신&인의 이름 쓰는 文句가 문제다. 자기 아버지더러 '아무개씨'하기도 멋쩍고, 자기 어머니더러 '아무개 女士'라고 하는 것도 어색해 보인다. 요새는 보편화되어 아무 이름 아래에나 '貴下'라고 써대는데, 이것은 公文이 아닌 다음에야 福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고, 그냥 '.....님'만으로 끝나 버리는 것도 좀 서운해 보인다. 중국어 같으면 직함 밑에다 또 '收啓 道啓 釣啓 大啓 台啓' 등을 붙인 것을 보아서, 상대편이 受信人을 얼마만큼 존중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우리의 국어 생활에서는 '座下 下鑑 人兄 碩右' 등을 붙이는 연습이 잘 안 되어서 그런지 아무한테나 '귀하'를 쓰고 마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친구에게 하는 편지에서, 겉봉에다가 주소와 이름 석자만 쓰고, 이름 밑에 '님, 형, 언니' 등을 안 쓰는 것은 습관이 안되어서 그런 것 같은데, 손아랫에게 편지할 때에도 격식을 잘 몰라 겉봉 쓰기나 呼稱 때문에 고생을 하는 일이 많다.
注油所를 경영하는 왕년의 제자더러 '大雅'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고, 비록 敎職에 종사하고 있을 망정 20년 年下者더러 '아무개 先生'이라고 하는 것은 목에 걸린다. 편지 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비단 편지 겉봉에 쓰는 격식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논문 한 편 책 한 권을 찍어서 다른 분들께 기증할 때의 고충도 마찬가지다. 쉬운 말로 '아무개 형께 드림', '선생님께 올림' 식으로 하면 무난하겠으나 재래식으로 격식을 차린다면 어른께 惠存이라고 해야 될지, '下鑑'이라고 해야 될지, 머뭇거리게 되는 수가 많다. 논문을 드릴 때에는 대개 '斧正', 叱正'이라고 쓰는 데 이 역시 어느 정도의 어른까지 이런 말들이 통용되는지 잘 몰라서 머뭇거리게 된다.
어떤 10여 년 후배는, 언제나 '洪弟吉童'이라고 써서, 자기 편지나 책을 郵送해 주는 일이 있다. '弟'는 平交間이나 後輩에게 자기를 낮추느라고 자기 이름 위에 붙이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후배가 자기 이름 위에 '弟'를 써서 '나'를 대접(? )해 줄 때마다 좀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편지 격식은 까다로운 언어생활의 하나다. 衆知를 모아서 새 기준을 세워 갔으면 좋겠다.
5. '걔가......'
신혼여행에서 갓 돌아온 신랑은 주위 사람들에게 연방 '걔' 얘기만 늘어놓고 있다.
"글쎄 아주머니, 걔가 차멀미를 해서 혼났어요! "
"큰누나! 걔가 말이에요. ......"
듣다듣다 못한 그 어머니가 한 말씀하신다.
"얘! 걔가 뭐냐. "
"그러면 뭐라고 해요? 걔보고 걔라고 하지."
"아이 애두! '제 처가'라고 하든지 달리 부르려무나."
"아이 참! 엄마두. "
장가를 갔으니까 이제 분명히 '엄마'를 찾을 '아이'는 아니지, 어엿한 어른이지. 그런데 그 '새 어른'의 말씀에도 一理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약혼 전, 사궐 때부터 마구 이름을 불러댔었고 좀 가까워진 다음부터는
"요것이......"
"왜 이래? "
해 가며 소꿉동무처럼 정답게 말을 주고받았으니, 이제 '식'을 올렸다고 갑작스러이 존경할 마음이 샘솟아서
"제 처가......"
어떻구 하게 될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어른들 앞에서까지
"하니! 이거 드세요! "
"진지 잡수셨우? "
해 가며 저희들끼리만이 제일인 듯이 '눈꼴 시게' 구는 것도 좀 지나친 일일 게고(원래 어른 앞에서는 저희들끼리 공대말을 안 쓰게 돼 있단다. ), 너무나도 '바깥어른'을 神格化해 가지고 찾아온 손님에게 말 끝마다,
"우리 선생님이......"
"우리 집 양반이......"
하는 것도 지나친 일일 것이다.
그러나 相互 尊重하는 정신이 缺如되어 '걔'를 연발하고 있는 것도 좀 생각해 볼 문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것이 부부 사이라는데, 그렇게 마구 불러대서야.......
물론 오늘날 우리들의 대화에서 부부간의 呼稱이 가장 발달을 못 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집 선생님'도 튀어나온 것이겠지만, 우리가 처지를 바꾸어서 '집사람' 얘기를 남에게 할 때에도 곤란은 마찬가지다. 특히 전화를 통하여 남에게 무슨 말을 전할 때, 짐작으로 가만히 넘어가 주면 좋으련만 앙칼진 목소리로 다그쳐 되물을 때에는 더 대답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Ⅱ. 공대말의 混亂
1. 계장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이제 너나 나나 다 同格이 되어서 젊은이들은 제3인칭 비칭인 '저'라는 말을 거의 잊어 버려 아무에게나 '내가', '나는'하는 판이니까, 새삼스러이 경어니 공대말이니 하고 있는 것이 우스운 생각도 들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이것이 여간 속을 썩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울화가 터진 계원은 전화를 걸어 왔다.
"제가 과장님보고, 계장님 얘기를 할 때 '아까 계장님께서 그랬습니다.'라고 했더니 화를 내지 않아요. "
"왜요? "
"자기 앞에서 '계장님'이라고 했다고요. 어느 쪽이 맞습니까? "
"글쎄요. 일본 사람들은 딴 사람 보고 자기 집안 어른 얘기를 할 때에도 꼭 낮추어서 '우리 아버지가 했지요.', '우리 모친이 그랬지요.' 하면서 공대말을 안 쓰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되도록 높여서 '우리 家親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가친은 경칭은 아니다). '라고 하니까 과장 앞에서 '계장님'해도 별로 나쁘지 않겠지요. "
"정말이요? 그런데 선생은 누구십니까? 그래야 제가 과장님께 증인을 내세울 수 있으니까요"
이거 야단났다. 별로 자신도 없는 소리를 한 데다가 세상 사람들은 大家 말씀 아니면 믿지를 않는데 나는 中家는 커니와 小家도 못 되니,
"저 ......저......아무갭니다. "
"아무개요? "
대가가 아니어서 자못 실망했다는 투다. 그러나 나대로의 도리도 있어서 즉시 일흔쯤 되신 어른께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지금 세상에 그런 거 따져서 무엇하나! 막된 세상인데 계장님이라고 해도 좋을 거야."
라고 하셔서 자못 용기를 얻었으나 이 얘기를 들은 딴 분들은 그렇게 찬성하시는 편이 아니었다.
"과장님을 높이 받들기 위해서는 그 앞에서 계장을 높여는 안 되지. "
아직도 이게 옳은 공대말의 사용법이어서 상대편보다 낮은 분 얘기를 할 때에는 상대편보다 높여서는 안 된단다. 그러니 小家 얘기를 듣고 과장님과 맞선 계원님께 죄송 천만일 수밖에.
그렇긴 하지만 육국 일등병은
"참모총장 각하! 인사참소가 먼저 밥을 먹었습니다."
라고 해야 하나? (이건 좀 지나친 예지만)
하긴 아직도 일부 집안에서 어른들께 제 배우자(配偶者)얘기를 할 때
"애비가 그랬어요! "
"네, 에미가 먹었습니다. "
라고 하는 관습이 있으니까 '계장이 그랬습니다.'가 맞는 것이겠지.
2. 주례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만사가 뒤죽박죽이 된 판이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겠지만, 민주주의라니까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오만불손(傲慢不遜)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삼 천만을 맞대 놓고 연설할 때 '나 아무개는'이라느니 '내가 보니까'어떻다느니 하는 것도 지금 세상으로서도 겸손한 태도라고는 말할 수 없다. 專制 君主 시대였던 옛날에도 왕은 과인(寡人)이라고 겸허하고, 가뭄이 계속되면 왕이 不德한 탓이라고 祈雨祭를 지내며 근신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렇게도 거만한 분들이 어떤 경우에는 쓸데없는 곳에서 공대말을 쓰기를 좋아한다.
"다음에는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
주례님을 높이는 것인지 그 말씀을 높이는 것인지, 어떻든 모두 빚나가고 있다. '주례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정도면 족할 것인데.
이런 풍조는 한 때 크게 유행하였던 '師母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주머니라고 하면 될 것을 上士 부인도 사모님, 대위 부인도 사모님, 하다 못해 친구 부인도 사모님이 되어 버려서, 말이 천해지고 헤퍼지니까 진짜 사모님을 부르기에는 송구스럽게 되고 말았다. 이런 지경이니까 자기 형을 남보고 얘기할 때
"우리 伯氏가......"
라고도 하고, 제 이(齒)가 아픈 것을
"치아가 아파서 죽겠어요. "
라고까지 하니 시골의 우스운 말마따나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셔서......"
라고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할까.
《편집자 주: 이 글은 '여원'(1968.2월 호)과 '월간 조선'(1983년 연재)에 게재된 글 중에서 뽑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