稱呼의 말과 인사의 말에 對하여
우리말에는 남을 稱呼할 때에 쓰는, 姓 아래에 붙이는 稱呼의 말이 매우 많다. 무슨 생원, 무슨 서방, 무슨 첨지, 무슨 도령, 무슨 총각, 무슨 선생, 무슨 공, 무슨 군......等 階級, 老少, 冠童을 따라 이와 같이 칭호하는 말이 많기 때문에 남을 칭호할 때에 상대자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그에 적당한 것을 골라 쓰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日語가 갑자기 세력을 얻게 되자, '상'이란 日語가 盛히 유행되었으니, 그 까닭은 일반 민중이 강포한 압박 아래에 민족적 자존심을 잃은 것도 한 원인이겠지마는 그보다도 이 말 자체가 尊卑, 親不親을 가리지 않고 두루 쓸 수 있는 편리性을 가진 까닭이다.
이제 時局一轉, 민중의 민족적 자존심이 蔚發하여 이 말을 버리려고 애써도 이와 같은 두루 쓰기에 편리한 말을 찾지 못하여 고심하는 눈치가 많이 보인다. 벌써부터 뜻 있는 인사 사이에는 이를 근심하여 적당한 말을 찾아 쓰게 하려고 애써 온 것이다. 그래서 일부 인사 사이에는 尊稱語 '님'이란 말을 姓 아래에 붙이는 稱呼말로 定하여 '김 님, 박 님' 이렇게 실행하여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본디 普通 名詞인 地位 名詞 아래에만 쓰이는 말인 까닭에 그 쓰는 본보기를 갑자기 고치어 固有 名詞인 姓 아래에 붙이어 쓰니까, 일반이 이상스럽게만 생각하고 잘 따르지 않는다. 이왕 쓰던 一定한 본보기가 있는 말을 달리 쓰기는, 쓰지 않던 새 말을 쓰기보다 도리어 어려우니 이것은 '상'이란 日語가 농촌 무식 계급에까지 빠르고 쉽게 보급된 것을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새 말을 짓는다 하여도 그 말을 일반이 얼른 인정하여 따를 리도 없을 것인즉, 우리는 현금 일반적으로 쓰이는 본보기가 박이지 않은 이에 적합한 옛말을 찾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우리 옛말 가운데에서 '선'이라는 말이 두루 쓰는 稱呼에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선'이란 말은 道義로 宗旨를 삼던 옛날 우리 仙敎徒를 칭호하던 말이니, '皂衣先人'이니 '國仙'이니 '四仙'이니 하던 그 '선'이다. 당시 '선'은 그 志操가 高潔하므로 漢字로 이를 적을 때에 音義가 다 근사한 '仙'字를 借用하였고, 그 德行이 善하므로 中國人은 이것을 적을 때에 音義가 또한 근사한'善'字를 借用하여 '槿域善人'이라 기록하고, 또는 意譯하여 '君子'라 일컬으니 '東方有君子不死之國'이라 한 것이 곧 그것이다.
말이 좀 딴 길로 나가나, 우리 國號 '朝鮮'에 對하여 잠깐 말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檀君 時代 國號를 後世 史家들이 朝鮮이다 이르지마는 실상 당시 國號는 '朝鮮'이 아니고, '桓'이다. 그러면 '朝鮮'이라는 이름은 어찌 되어 생긴 것인가? 당시 國都에는 '早衣先人'곧 '선비'('선비'의 뜻은 뒤에 말함.)이신 '檀君'을 中心으로 무수한 '선'의 무리가 살고 있으므로 周圍 人民이 이를 讚美하여 '죄다 선'이라는 뜻으로 '죄선나라'라고 일컬은 것이다. 지금도 七八十된 무식한 女人은 거의 다 '조선'이라 말하지 않고 '죄선'이라고 말한다. 이 '죄선나라'를 中國 사람은 '君子國'이라고 意譯한 것이다.
이 '선'이란 말은 高麗 때까지도 그대로 써 내려왔으니, 鷄林類事 麗言考에'士曰進'이라 한 것이 곧 그것이다. 李朝에 와서는 이 '선'아래에 宗의 뜻을 가진 '비'(三國史記에 '居漆夫¿', '異斯夫¿'....이런 기록이 있으니 '夫'는 卽 '비'니 '주비', '아비'의 '비'도 다 '宗'이란 뜻)라는 말을 더하여 '선비'라고 써 왔으니 이것은 '선' 中에도 가장 장한 이를 稱呼하는 말을 여느 '선'이란 말과 混同한 잘못이다. 그리고 이것을 '碩士'라고 漢譯하여 '金碩士, 李碩士......' 이렇게 이제까지 써 온다. 나는 이런 연유로 이 '선'이란 말을 다시 찾아서 姓 또는 姓名 아래에 붙이는 稱呼의 말로 定하여, 어른이나 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에게나 두루 쓰기를 주장하고 싶다.
또 우리말에는 다른 나라와 같은 形式化한 인사의 말이 없다. 때를 따라 경우를 따라 거기 맞는 인사를 하는 것이 그저 어떤 形式化한 인사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眞實味가 있어서 合理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양이 풍부한 이에게나 할 말이요, 일반으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니, 그것은 칭호의 말과 같이 상대자나 경우를 따라 거기에 맞는 인사의 말을 얼른 찾아내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농촌에서는 때 아닌 때에 '밥 먹었느냐?'는 인사의 말을 흔히 들을 수가 있다. 인사하는 이도 물론 번연히 적당하지 않은 인사의 말인 줄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있으면 어째 무엇에 틀리기나 한 것 같아서 마지못하여 하는 한 형식적 인사다. 이로 미루어 보면 形式化한 인사의 말이 필요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형식적 인사의 말에 대하여서도 어떠한 말을 썼으면 좋겠느냐고 하는 의논이 조선어 학회원 사이에 가끔 일어났었다. 어떤 이는 '안녕히'란 말이 좋다고 주장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그 뜻이 분명하게 特定되어 두루 쓰는 형식적 인사의 말로는 적당하지 않다. 이를테면 손아랫사람에게나 또는 손위 어른이라도 고대 뵌 이웃 어른에게는 쓸 수 없는 따위다. 그러므로 상대자나 때와 경우를 가리지 않고 두루 쓰려면 말뜻이 막연하여 귀에 대면 귀고리요, 코에 대면 코고리란 격으로 어떤 경우에나 들어맞는 말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인사의 말과 전연 인연이 없는 말을 쓰자고 하면 異論이 많아서 잘 쓰일 可能性이 없다.
나는 여기 쓰일 말로 '한결같이'라는 말을 생각하였다. 편지 문안에 '기체후
한결같이 안녕하시고 ......' 하는 그 '한결같이'를 이름이다. 이 말은 그 뜻이 막연하여 만날 때에는 '한결같이 안녕하십니까?', '한결같이 편안한가?', '한결같이 잘 있느냐?'는 뜻으로 쓸 수 있고, 헤질 때에는 '한결같이 안녕히 계십시오.', '한결같이 잘 있게', '한결같이 잘 있거라.'는 뜻으로 두루 쓸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한결같이'라는 말을 형식적 인사의 말로 定하여, 어른이나, 아이나, 누구에게나, 또는 아침이나, 저녁이나, 만날 때나, 헤질 때나, 어느 때나 두루 쓰자고 주장하고자 한다. 위에 말한 稱呼의 말과 함께 이에 留意하시는 이 및 일반 동포의 한번 생각하여 보심을 바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말의 보급을 위하여 노래를 지은 것이 있으므로, 붙이어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