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풀어쓰기 운동

김정수 / 한양대 부교수·국어학

1. 한글 풀어쓰기 운동의 내력
    국어학과 국어 규범의 기본 개념과 국어 운동의 목표로서 주요한 것들이 거의 다 그러하듯이 한글 풀어쓰기 운동도 한힌샘 주시경(1876~1914) 스승에게서 비롯했다. 다음은 한힌샘이 <국문 연구안>(1908.12.16)에서 한글 풀어쓰기를 주창한 처음 논술로서 오늘날에도 그대로 옳다고 생각된다.

"綴字法은 字母 字를 各各 橫書면 正當지라 然나 訓民正音 例를 依여 以來에 行用는 已熟의 法을 從 것이요 다만 要緊이 有 境遇에는 各字를 橫書 或 縱書도 不可 바가 未有다 이다"

여기서 "훈민정음 예를 의여 이래에 행용는 이숙의 법"은 물론 한글을 '세로 모아쓰기'이며 "자모 자를 각각 횡서기"와 "각자를 횡서 혹 종서기"는 '낱 글자를 풀어서 가로쓰기 또는 세로쓰기'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풀어쓰기를 "요긴이 유 경우"에 한한다는 말은 한힌샘이 모아쓰기를 풀어쓰기로 완전히 바꾸는 글자의 혁명을 의도한 것은 아니며 글자 생활의 보숫성을 충분히 존중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주창에 이어 주시경(1909) 님은 한글 풀어쓰기의 시안을 내기 시작해서 국어 강습소의 수료증과 도장 등에서 실천해 보였다(이기문 1976).
    천도교의 배경에서 "원종(元宗)"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종교를 일으키고 조선의 독립과 사회 개량을 위한 공동체 운동에 헌신하다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순교한 소래 김중건(1889~1933) 님도 한힌샘과 거의 같은 시대에 그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이 한글 풀어쓰기를 창안했던 사실이 제자들을 통해서 어렵사리 알려지게 되었다(김지용 1969, 김석득 1976, 이평림 등 1976). 소래는 국어 문법도 기술했다고 하나 그 자취가 남지 않았고, 한힌샘처럼 실용주의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한글이 단군 때부터 있어 온 것이라는 생각과 자기 나름의 종교로부터 배태된 아주 특이한 한글 풀어쓰기를 만들고 제자들로 이루어 진 공동체에서 실천했다(1)
    한힌샘의 한글 풀어쓰기 운동은 그 제자인 최현배(1922) 님에게 가장 충실하게 계승되었으며(김민수 1973:262,267), 그의 주도적인 활동을 통해서 조선어 학회는 1936년 11월 28일의 임시 총회에서 한글 풀어쓰기의 임시안을 정하고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의 찾아보기를 이 임시안대로 인쇄했으며, 학술 기관지인 <한글>(1938:52~58,62호)에 고정란을 두어 보급 활동을 한 일이 있었고, 지금까지 <한글>의 속 표지마다 "한글"이란 이름을 풀어쓰기로 적고 있다. 지금은 학회 안에 한글 풀어쓰기 연구 모임이 조직되어 풀어쓰기를 성취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힌샘의 또 다른 제자인 김두봉(1922) 님도 독자적인 방안을 내고 북한에 가서 한글 풀어쓰기 운동을 언어 정책의 항구적인 과제로 확립시키는 수훈을 세웠다(김인수 1972,1985/89:135~137, 장봉선 1989:208).
    이들을 이어 리필수(1923), 권덕규(1923), 박용만(1927;김석득 1980)2),(2) 김석곤(1932), 김병호(1938), 심상설(1938), 심일(1938), 도덩보(1946, 1959), 조병희(1946, 1989), 장봉선(1946~), 김진억(1948), 장태익(1953/57), 주요한(1954), 신면식(1962), 윤덕중(1969, 1986), 양제칠(1974), 위성인(숭님)(1974, 1984) 님들, 김정수(1982) 등이 한글 풀어쓰기 방안을 다양하게 내어 놓고 있다. 이만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효와 종류의 방안이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2. 한글 풀어쓰기 방안의 종류
    2.1. 글자 모양 따른 분류

2.1.1. 보수형
    한글을 원형대로 또는 원형에 아주 가깝게 살려 쓰는 풀어쓰기는 다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장봉선(1946~) 님의 이른바 "반 풀어쓰기"로서 "ㅗ, ㅛ, ㅜ, ㅠ, ㅡ" 따위는 원형대로 두고 받침만 풀어쓰기로 적어서 읽기가 쉽게 하려 하는 것이다. 다음 보기는 <그림 1> 이현복(1984:45~52) 님이 실행한 것이다. 거리의 간판 같은 데에서도 이런 반 풀어쓰기를 이따금 볼 수 있다.

둘째는 한글 낱자를 생긴 대로 곧추 풀어쓰기로서 주시경(1908) 님의 최초의 시안으로<그림 2> 비롯해서, 김두봉(1922) 님의 인쇄체, 권덕규(1923), 동광사(1926), 조선어 학회(1936)<그림 3>, 김병호(1938), 조병희(1946) 님의 인쇄체, 도덩보(1946, 1959)<그림 4>, 양제칠(1974)<그림 5>님들의 방안으로 나타난 것이다.
    셋째는 김정수(1982)의 "기울여 풀어쓰기"<그림 6>와 위성인(1984)님의 "비껴쓰기"로서<그림 7> 한글 낱자를 왼쪽으로 기울여 풀어씀으로써 모아쓰기에 가까운 모양을 내어 읽기에도 쉽도록 배려한 것이다. 비껴 쓰기는 근본적으로 기울여 풀어쓰기와 같으면서도 멋을 내느라고 원형에서 조금 멀어져 있다.

2.1.2. 개신형
    한글의 원형을 크게 벗어나는 풀어쓰기로서, 이런 것은 다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한글을 크게 변형하거나 로마자 및 시릴자의 모양을 뒤섞어 만든 종류로서, 김중건(1913?;염형석 1969?)<그림 8>, <대 한인 정교보>(1914)의 필기체<그림 9>, 최현배(1922, 1926, 1947)<그림 10>, 김두봉(1922) 님의 필기체<그림 11>, 리필수(1923), 박용만(1927)<그림 12>, 김석곤(1932), 심상설(1938), 심일(1938), 조병희(1946) 님의 필기체, 윤덕중(1969, 1986), 위숭님(성인)(1974)<그림 13> 님들의 방안들이다.
    둘째는 한글을 아예 떠나 로마자만으로 풀어쓰기를 실행하자는 주요한(1954), 장태익(1957) 님들의 방안이다(김민수 1973: 296~298). 한글을 풀어쓸 바에는 차라리 로마자로 대용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내세우는 분들은 이 밖에도 적지 않다(안병희 1985: 118~119). 이것은 로마자 적기로서 한글이 전산화하기 전부터 전산기에 실행되었었고, 국제적인 무역 통신문, 공항의 출입국자 명단, 은행의 신용 카드 등에서는 지금도 실행되고 있는 만큼, 방안의 단계를 넘어서 이미 실현된 한글의 대용 수단이다.

2.2. 맞춤법 따른 분류
    풀어쓰기에서 일어나는 맞춤법의 문제는 크게 나누어 세 가지, 곧 (1) 초성을 적는 이응 "ㅇ"이 소릿값이 없는 것으로 보고 아주 없앨 것인가, 문법 조건에 따라 더러 없앨 것인가, 그런대로 존재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3) 온전히 살릴 것인가 하는 것과, (2) 여러 가지 겹글자들(ㄲ, ㄸ, ㅃ, ㅆ, ㅉ ; ㄳ, ㄵ, ㄶ,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ㅄ ; ㅐ, ㅒ, ㅔ,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을 낱자로 묶어 쓸 것인가, 더러 풀어쓸 것인가,

모조리 풀어쓸 것인가 하는 것과, (3) 겹소리 홑글자들(ㅑ, ㅕ, ㅛ, ㅠ)을 그대로 둘 것인가, 홑소리 따라 "ㅑ⇒ㅣ+ㅏ, ㅕ⇒ㅣ+ㅓ, ㅛ⇒ㅣ+ㅗ, ㅠ⇒ㅣ+ㅜ"로 분해해서 적을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풀어쓰는 글자의 수효가 갖가지로 달라지게 된다.

2.2.1. 보수형
    현행의 한글 맞춤법을 조금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따르자는 풀어쓰기는 장봉선(1946~) 님과 김정수(1982)의 방안이다. 글자 모양이 모아쓰기와 가까운 덕분에 이렇게 할 수가 있거니와, 또 잠정적인 전략으로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낯설어서 언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풀어쓰기의 실현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2.2.2. 개신형
    위의 두 가지를 뺀 나머지는 다 현행 맞춤법과 무관하게 완전히 새로운 맞춤법을 세우자는 풀어쓰기들이다. 그 가운데도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양제칠(1974), 위성인(1984) 님들의 방안은 초성의 이응 "ㅇ"을 살린다는 점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편이고, 그 나머지는 또한 서로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해도 모두 다 겹글자들을 풀어쓰고, 심지어 조병희(1989) 님의 경우는 음소 중심으로 겹소리 홑글자들(ㅑ, ㅕ, ㅛ, ㅠ)마저 분해해 쓰자는 점에서 맞춤법을 크게 혁신하자는 방안들이다. 김중건(1913?;염형석 1969?) 님의 풀어쓰기는 위의 어떤 부류에도 들지 않는 초탈한 것이다.

2.3. 한글 풀어쓰기 방안의 바람직한 유형
    말이나 글이나 만인의 오래고도 오랜 공유물이기 때문에 어딘가 빠지고 이지러진 데가 있어도 여간해서는 고치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에 변함없는 진실이다. 이것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개혁 운동은 거의 다 실패한다. 언중의 현실을 중시하면 하는 만큼 그 개혁 운동의 실패율은 낮아질 수 있다. 세계에 짝이 없이 훌륭한 한글도 어질고 슬기로운 임금의 권위를 입고 나왔건만 오늘날 이 만큼이나마 한겨레의 일상 생활에 활용되고 큰 자랑거리가 되기까지는 50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어제 훈민정음"이라는 창제 당초의 권위와 영광은 꿈결처럼 잃어버린 채 그 오래고 중한 억압과 천대를 당하다가 순전히 제 힘만으로 이기고 우뚝해진 것이 한글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손댈 데 없이 완벽한 것인 줄로만 아는 한글을 어느 미미한 개인들의 사사로운 방안으로 크게 개혁하거나 감히 대신하기를 꿈꾸겠는가? 풀어쓰기 자체만도 과격한 개혁이라 어느 세월에 언중에게 받아들여질런지 알 수 없는 것인데, 그 글자 모양에 겉멋까지 부리고 게다가 맞춤법까지 함께 혁신하자 하는 개신형들은 언어 일반의 보수성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모르는 몽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한 종류의 방안은 도리어 언중의 혐오감과 냉대나 사서 받으며 풀어쓰기 운동 자체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을 명심하면서 되도록 한글의 원형을 아끼는 보수형을 지향하고, 또한 한힌샘의 겸손한 말대로 "요긴 유 경우"에 한해서나마 우리가 언제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먼저 냉정히 따져 보고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명분 위에 뿌리를 깊이 박고 거북이 걸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한글 풀어쓰기의 쓸모
    풀어쓰기 운동의 선각자들이 내세운바 모아쓰기의 주요한 장애들 가운데 대개는 전산 기술의 발달 덕분에 해소되었다. 기계식 타자기는 개인용 전산기의 글틀(자동 편집기)과 전자식 타자기에 밀려 이미 생산이 중단돼서 고물 시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형편이고, 재래식의 활자 인쇄소도 전산 사식기에 밀려 하나씩 둘씩 문을 닫을 지경이니까, 글자 생활의 기계화라는 단순한 명분으로는 풀어쓰기를 내세우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 사실은 언중의 일상적인 글자 생활에서는 풀어쓰기가 쓸모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면 이제 풀어쓰기 운동은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3.1. 미국식 전산기의 백분 활용을 위해서
    현대 문명에서 전산기는 사람의 두뇌에 버금가는 기능을 발휘하며 부분적으로는 사람의 손과 발을 대신하고 있다. 두뇌의 주요 기능이 셈과 말이라고 볼진대, 전산기가 숫자를 다루는 기능은 이제 두뇌로는 도저히 겨룰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 되었고, 다만 언어 기능만은 말을 갓 배우는 아기만도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 언어의 자동 번역 정도를 제한된 범위와 수준에서 실행하고 있는 줄로 안다. 전산기가 이러한 두 가지 주요 기능을 발휘할 때 그 속에서 쓰이는 기초 도구는 아라비아 숫자 10&개와 로마자 26개 곧 36개의 글자에 "+, -, *, /" 등의 셈표를 비롯한 특수 기호 28개, 모두 64개에 불과한 기호 체계이다. 전산기가 미국에서 발명되게 한 밑바탕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와 같이 적은 수의 글자만으로 족히 글자 생활을 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전산기의 기호 체계는 영어 사회를 떠나 어떤 다른 언어 사회에 들어가더라도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같은 로마자에 딴 글자 몇 가지씩을 보태고 빼어 가며 쓰는 프랑스 말이나 독일 말을 쓰는 곳에 들어가더라도 전산기의 64개의 기호 체계는 바꾸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사람들도 영어로 된 전산 언어를 그냥 쓰고 있다. 프랑스 말이나 독일 말은 그래도 그 글자나 언어의 유형이 영어와 가장 가까운 만큼 미국식 전산기를 자기네 말로 동화시키기가 비교적 쉬울 것이다. 그러나 로마자 아닌 것을 쓰는 인구어족 이외의 언어 사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정은 현대인의 운명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제 설령 영어가 그 세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영어의 적은 글자 덕분에 발명될 수 있었던 전산기의 그 세계적인 패권은 조만간 어떤 도전도 받게 될 것 같지 않다. 영어 언중 이외의 인류가 이 미국식 전산기의 편의를 내던지게 할 만큼 더 나은 기계를 신속히 발명해 낼 수만 있다면 모르지만, 전산기에 맞추어 제 글을 변형하는 것은 신에 발을 맞추는 일이라고 아무리 비판해 보았자, 그것은 허공을 치는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남의 신이나마 신을 고쳐서든 발을 졸여서든 신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형편이다.
    26개에 불과한 로마자로 못 할 일이 없다시피 되어 있는 미국식 전산기와 그에 맞게 개발된 각종의 소프트웨어를 백분 활용하려면, 여기에 이식되는 다른 언어의 글자 체계도 간결하면 할수록 유리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로마자만 쓰는 전산기와 그 소프트웨어는 로케트와 같이 우주 공간을 날아갈 때, 한글 모아쓰기의 짐을 진 전산기와 그 소프트웨어는 아마 짐을 잔뜩 실은 화물차와 같이 땅을 기어가야 하는 것으로나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대비적인 상황은 영구적인 숙명이지, 기술의 발전을 따라 개선되거나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전산학자와 전산 기술자들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들 있다. 한글 풀어쓰기는 바로 이런 숙명적인 짐을 간단하게 벗겨 주는 유일한 지름길임에도 불구하고 전산계에서는 현실적인 업무에 매인 탓인지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 로마자 전산기의 내부로 깊이 파고들어 그 모든 기능을 남김 없이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로마자의 수에 가까운 수효로 한글의 수효가 줄어들수록 좋다. 이 점에서 로마자보다 더 적은 24자까지 줄어들 수 있는 한글 풀어쓰기는 절대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500여 년 전에 나온 한글일지라도 풀어쓰일 때는 그 비할 데 없는 능력을 초현대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3.2. 한말[韓語]의 정밀한 연구를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한 7년 전만 해도 개인용 전산기에서 한글을 다루는 일은 불가능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글은 말할 것도 없고 한자도 수천 자씩이나 게다가 여러 가지 외국 글자까지 섞어서 자유롭게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이만하면 됐지 않으냐 한다면, 그것은 전산기를 웃길 소리다. 전산기를 이만한 수준에서 이용하고 말자는 것이 지난해에 정부가 제정한 정보 교환용 한글 표준 부호이다(김정수 1988).
    전산기의 편의로운 기능들을 조금 알고 나면 전산기로 편지나 쓰고 원고나 적어 주고받는 데 만족할 수가 없다. 글자의 처리라는 방면에서 전산기가 발휘하는 기본 기능은 기억하기, 찾아내기, 배열하기 등이다. 글틀은 이 가운데 첫째 기능에 주로 의존하면서 그 다음 기능들을 보조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산기의 특기는 둘째와 셋째 기능이다. 현행의 한글 모아쓰기 체제에서는 이 두 기능이 음절의 한계를 넘기 어렵다. 글틀에서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나, 정밀한 언어 분석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음절 이하 곧 초성 중성 종성과 개별 음소까지 분해되어 따라 다루어지지 않으면 정밀 분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 곧 언어의 정밀 분석이라는 학술 영역에 풀어쓰기의 요긴한 쓸모가 남아 있는 셈이다. 학술적인 연구 자료에는 정부의 표준이라는 제약이 있을 수 없다. 표준적인 언어 자료만을 골자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현대 말이라는 시대적인 제약도 있을 수 없다. 지금 쓰이지 않는 옛 글자라고 배제해서는 연구가 원만하게 될 수 없다. 크게 양보해서 '현대의 표준말'이라는 범위 안에서 모아쓰는 한글의 자료에도 전산기의 기능은 채 발휘되지 못하는 터이니, 이 범위를 벗어나는 자료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갑갑한 한글 모아쓰기의 굴레를 벗어나는 쉬운 길이 바로 풀어쓰기이다. 한글은 마침 26개의 로마자보다도 더 적은 (1) 24자(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또는 (2) 홑홀소리 겹글자 둘(ㅐ, ㅔ)을 더한 26자로까지 줄여 풀어씀으로써 전산기의 모든 기능들을 유감 없이 발휘하게 할 수 있다(그 사례: 박현철 1987, 변종홍 1988). 이 두 글자는 로마자 26자의 글쇠판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세 겹글자인 "ㅙ, ㅞ"들을 입력하기 쉽게 하기 위한 배려에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언어학적인 분석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 여기에 우선 순위를 따라 (3) 홑닿소리 겹글자 다섯(ㄲ, ㄸ, ㅃ, ㅆ, ㅉ)을 보태면 31자가 된다. 이 다섯 글자가 보태어지면 현대문의 모든 초성 글자가 단일하게 되기 때문에 음절의 기계적인 분석이 가능해져서 초-종성을 구별하는 음절 자동 분석 장치(automata)를 쓸 수 있게 된다. 초-종성의 구별이 없는 닿소리 글자 한 벌과 중성 한 벌의 두 벌 글자 체계만으로 입력하고도 모아쓰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장치이다. 한글 기울여 풀어쓰기의 경우에는 읽기를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바꿔 말하면 초성 중성 종성의 삼성까지만 풀어쓰기 위해서 (4) 겹소리 겹글자 스물(ㄳ, ㄵ, ㄶ,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ㅄ ; ㅒ, ㅖ ; ㅘ, ㅙ, ㅚ, ㅝ, ㅞ, ㅟ, ㅢ)을 보태어도 현대 말에 쓸 만한 글자는 고작 51자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위에 옛 글 자료를 위해서 최소한도로 (5) 홑글자 여섯(ㅱ, ㅸ, ㅿ, ㆆ, ㆁ, ; ㆍ)을 보태면 모두 57자가 된다. 요컨대 최소한으로 (1), (3), (5)번을 더한 37개 또는 (1)~(5)번을 모두 더한 57개의 글자 체계만 가지면 모든 한글 자료는 시대의 제약이 없이 전산기의 모든 기능을 활용해서 쉽고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셈이다.

3.3. 언어 의식의 계발을 위해서
    한글은 오늘날 음절 단위로 모아쓰기만 하기 때문에 음절 경계를 알아보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테면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줄 끝에서 낱말을 다 쓸 수 없어서 토막을 내고 붙임표 "-"를 붙일 때 어디서 끊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거나 서툴게 잘못 끊는 일이 많은 것을 보면, 이런 어려움이 전혀 없는 한글 모아쓰기의 장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은 애당초 음절 단위로 모아쓰도록만 규정된 것이 아니다. 아주 융통성 있게 모아쓰기와 풀어쓰기를 병행하도록 규정되었고, 이대로 오래도록 실행되다가 차츰차츰 모아쓰기로 치우쳐 왔을 따름이다. <훈민정음>(1446) 해례 합자해의 "孔子ㅣ 魯ㅅ 사"이란 예문이 그러한 규정을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사"은 모아쓰기요, "ㅣ, ㅅ"은 영락없는 풀어쓰기인 것이다. 이와 같은 표기법은 당초에는 비록 한자 뒤에서 불가피하게 허용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비ㅅ발, ㅅ모로, 하ㅅ" 등에서처럼 한글 사이에도 흔히 실행될 만큼 보편화했고, 조선어 학회가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을 제정하기까지는 아무런 제약 없이 혼란스러울 만큼 자유롭게 실행되었었다. 이처럼 부분적인 풀어쓰기의 관습이 "뒤ㅅ간, 들ㅅ것, 채ㅅ열"등의 "사이 ㅅ"과 "다정ㅎ다, 부지런ㅎ다" 등의 "사이ㅎ"으로 남아서 맞춤법 개정의 시비가 있을 적마다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심한 갈등을 일으켜 온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들 한글 모아쓰기의 준거로 여기고 있는 <훈민정음>(1446) 머리의 "凡字必合而成音"이란 서술은 통념처럼 음절 단위로 모아쓰라는 표기법 규정(이기문 1963: 63~64)이라기보다는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라는 언해문의 표현 그대로 음절 구성의 음운학적인 이치를 말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껏 물러서서 설령 통념이 옳다고 치더라도 예외 없이 모아쓰기만을 인정하고 풀어쓰기를 금지하는 규정은 결코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모아쓰기를 주로 하는 글 가운데 쌀의 뉘처럼 풀어쓰인 글자를 기피하는 방향으로 흘러 온 것이 단순하고 쉬운 것만 따르는 변천의 추세였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사잇소리는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실존하는 것인데, 이를 표기법에서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그 실존에 대한 인식마저 흐리게 한 것은 분명히 중성 중심의 모아쓰기였다는 말이다. 한글이 당초부터 전면적으로 풀어쓰였다면 이런 요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모아쓰기라는 표기법이 언중의 언어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또한 풀어쓰기를 삼킴으로써 한글의 표현 기능을 위축시켜 왔음을 뜻한다.
    옛글에서는 음절 경계가 표기법에 고정되지 않았다. "업스례다"(월석 2:5)와 "어섀라, 어라"(시용향악보, 사모곡), ""(석보 6:34)과 ""(내훈-초 1:6), "닷가"(월석 2:25)와 "다"(석보 13:20) 등의 "ㅂ, ㅅ"이 음절 경계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은 모아쓰기로 굳어진 오늘의 맞춤법에 비추어 볼 때나 혼란스러운 것이지, 당대 사람에게도 그러했을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풀어쓰기를 섞어 쓰는 시대였기에 이러한 표기법의 융통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좁쌀"을 "조ㅂ쌀"로 적지 못하는 것은 모아쓰기의 획일적인 관습에 고착된 탓이다. 이 낱말의 "ㅂ"을 "조"와 "쌀"을 '합성시키는 요소'(최현배 1937/&71:681~682)로 또는 '괜히 덧나는 것'(허웅 1981:71~72)으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것은 공시 언어학의 명분으로 합리화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 바로 한글 모아쓰기에 안목이 굳고 의식이 무디어진 탓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풀어쓰기 체제에서 "ㅈㅗㅂ싸ㄹ"로 적힌 것이라면 이것을 통시적인 사실과도 부합하게 "ㅈㅗ"와 "ㅂ싸ㄹ"로 분석하고, "ㅂ싸ㄹ"을 "싸ㄹ"의 변이 형태로 여기고 처리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따라서 이 사례가 공시태와 통시태를 구별하게 하는 표본적인 사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문법 의식이 좀 더 엄정하기만 했더라도, 모아쓰기인 채 "좁쌀"을 풀어쓰기에서와 다름없이 "조"와 "ㅂ쌀"로 분석하고 "ㅂ쌀"을 "쌀"의 변이 형태로 여기고 처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아쓰기에 수용되지 않은 부분을 다른 부분과 동질적인 것으로 여기지 못하는, 모아쓰기에 사로잡힌 언어 의식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깊이, 높이, 넓이"의 "-이"가 낱말을 만드는 힘이 있는 형태소 곧 뒷가지(접미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키"(신장)에 들어 있는 똑같은 형태소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뜻이 있는 말 같지만, "-ㅣ"는 뜻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낚시"를 "낚ㅅ-"와 "-ㅣ"로 가르지 못하고 "낚-"과 "-시"로 갈라내어 어렵게 설명하는 것도(허웅 1981: 65~67) 같은 경우가 아닐까 한다. "크다. 크지"에서는 형태소 곧 뿌리(어근) "크-"를 분석할 줄 알면서 "키, 커서, 커야"에서는 같은 형태소 "ㅋ-"를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이 언어학을 배운 사람 가운데도 적지 않다. "크-"는 '크다'는 뜻이 있는 것 같지만, "ㅋ-"야 음소에 불과한 것이지 어째 뜻있는 형태소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들은 다 영어 "books, pens, boxes"의 "-s,-es"를 복수 접미사인 줄 알 만한 사람들이다. "-이"와 "-ㅣ"를 로마자나 국제 음성 기호로 바꾸어 놓고 보라! 어떻게 달리 보이는가? 하나는 뜻있는 말로, 하나는 뜻 없는 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구별할 수 있는가? "ㅋ-"의 표현 기능이 "-s"만 못해서 형태소로 인정할 수 없는가?
    모아쓰기야말로 한국 사람의 언어 의식을 이렇게 좁은 틀에 가두어 둔화시키고 왜곡시켜 왔다. 뜻있는 말의 단위와 뜻 없는 소리의 단위가 서로 다른 차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어의 이중 분절성이라는 특성으로 잘 밝혀진 이치인데, 음절 이하로는 말을 분석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각적인 요인으로 한글 모아쓰기가 작용해 왔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대개 형태소의 경계가 음절의 경계라야 되는 줄로 아는, 또는 말의 단위가 적어도 시각적으로 음절을 이루어야 되는 줄로 아는 착각에 빠지게 된 것 같다. 바꿔 말하면 현행 국가 표준 전산 부호의 음절 완성형처럼 우리들의 언어 의식도 음절 완성형으로 꽤 굳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문(1963:64) 님이 이른 대로 한글이 "음소와 음절에 이중적인 대응 관계"를 맺은 데 따른 교착 상태요 그 필연의 귀결인 만큼, "언어의 선조성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문자" 곧 풀어쓰기의 우월성을 확인하게 하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모아쓰기의 굴레에서 한국 사람들의 언어 의식을 해방하고 음절 이하의 언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순조로이 보게 하기 위해서도 풀어쓰기는 필요하다. 모아쓰기를 전면적으로 갈마들이지는 못할지라도 모아 쓰기 때문에 잘못 보던 현실을 바로 보게 하고 모아쓰기라는 표기법이 언어 의식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나아가 언어 변천의 음성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언어의 교육이라는, 제한된 용도의 표기 수단으로라도 풀어쓰기는 절실한 당면 과제라고 생각된다.

3.4. 한말의 자율적인 발달을 위해서
    한글 모아쓰기의 다른 장점은 음절 글자이기도 한 한자와 섞어 쓰기에 시각적으로 편리하고 잘 어울린다는 점일 것이다. 순전한 음절 글자인 가나가 한문 또는 한자의 보조 글자처럼 쓰이는 일과 한자 말의 영향을 한말 못지 않게 받았을 만주 말이나 몽고 말의 풀어쓰기만 하는 음소 글자에 한자가 전혀 섞여 쓰이지 않는 사실이 이 점을 방증한다. 이러저러한 한글 모아쓰기가 한글의 양보할 수 없는 특성이오 장점이라고 내세우면서, 풀어쓰기가 한글을 왜곡하느니, 그 본질을 파괴하느니, 하면서 풀어쓰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한글과 한말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고 피상적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한글이 귀한 것이거니와, 한말은 더욱 중하다. 글은 혹 바꾸는 일이 있어도 말은 바꾸는 민족이 없지 않은가? 실은 한글을 한자와 섞어 쓰기에 편리하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글을 한자에 종속시키고, 따라서 한자 말이 한말을 전면적으로 침식하도록 넓은 길을 닦아 주고, 한겨레의 언어 의식이 중국 말의 음절 유형과 한자 말에 정복되기 쉽도록 만든 틀이 한글의 모아쓰기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글자의 문제에 앞서서 정치적-문화적인 열세와 독립 자존의 의지가 박약했던 민족 정기의 문제가 더 크고 깊은 것이었을 터이지만, 이익섭(1985) 님이 지적한 대로 모아쓰기가 한 음절로 된 형태소를 밝혀 적기에 특히 유리하다는 것은 바로 단음절 언어인 중국 말을 들여오기에 다른 주변 민족들의 풀어쓰기 글자보다 모아쓰기 한글이 특히 유리하게 되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말의 순수성과 자율성은 한글 모아쓰기에 크게 희생되어 왔다. 이것은 한말의 역사를 모르면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다.
    15세기에 그 많고 다양했던 초성의 닿소리떼(consonant clusters: ㅳ, ㅄ, ㅴ, ㅵ, ㅶ, ㅷ ; ㅺ, ㅼ, ㅽ 따위)들이 점점 단순화하다가 18세기 초엽에 이르러 모조리 홀닿소리로 변하게 된 데는(허웅 1985:471~478, 506~508) 삼성 체제 곧 중성 중심의 모아쓰기에 그 깊은 요인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말하면 모아쓰기는 한글을 한자에 종속시키면서 한말의 음절 유형이 한자 말의 음절 유형에 가깝도록 극도로 단순하게 바뀌는 과정에 한 몫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위에 지적한 것처럼 글자가 언어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함으로써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앞으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선 로마자 같은 풀어쓰기 글자를 쓰는 언어들에서 같은 조건에 놓인 닿소리떼가 한말에서처럼 300년 미만 동안에 홑닿소리로 완전히 변해 버린 사례가 있는지 찾아 대조해 볼 만하다.
    이와 같이 한글과 한말을 한자와 한자 말에 종속시켜 그 막중한 힘에 눌리고 찌들게 한 한 가지 요인이 모아쓰기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한글과 한말의 자율적인 발달 곧 언어적인 독립을 바라볼진대, 한글 풀어쓰기는 조만간 실현할 수는 없을지라도 언제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민족적인 숙원 사업으로 삼아 추구해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3.5. 글씨의 다채로운 개발을 위해서
    미술계에서는 지금 세상이 언어 전달의 시대에서 영상 전달의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글자 문제에 국한한다면, 글자의 구실이 언어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다채로운 글씨를 통해서 복합적인 상징성과 정서적인 묘미까지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체의 상표나 선전문들이 일정한 유형의 글씨로 통일되어 일정한 느낌을 전하려 하는 일(corporate identy program)은 글자를 이와 같이 복합적인 상징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로마자는 오랜 세월을 두고 지궁스럽게 닦이고 다듬어진 결과 2000가지가 넘는 글씨가 있어서 경우에 따라 반드시 골라 써야 된다고 한다. 이것은 나가는 장소에 따라 일정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사회의 관습과 비슷하다. 로마자의 글씨가 이처럼 다양하게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글자의 수가 52개에 불과하고 그 모양도 간결한 덕분이다
    그런데 한글의 사정은 어떤가? 모아쓰는 한글의 개수는 적어도 1600이상이고, 낱자의 모양도 로마자에 비기면 훨씬 복잡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주로 보게 되는 글자의 크기는 8~9포인트 정도의 활자 크기인데 이런 크기로 모아쓰는 한글 낱자 1600개 이상을 다채롭게 만드는 일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획이 복잡한 것은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가 되기 쉽고, 그 많은 글자를 일정한 유형으로 통일시켜 다듬으려니 힘에 겹다는 것이다. 풀어쓰기는 미술계의 이런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소해 줄 것이다(김홍련 1987). 수십 개에 불과한 글자로 이미 다채롭게 발달한 로마자의 본만 떠도 쉽게 글씨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4. 한글 풀어쓰기 운동의 장래
    로마자는 지금 세계의 태반을 정복하고, 기세 좋게 한글 문화권마저 위압하고 있다. 로마자의 장점은 그 광대한 통용 범위와 전산화의 편리함에 있을 뿐이오, 한글의 치밀한 조직성과 간결성 그리고 풍부한 표음 능력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한자 문화의 비좁고 어두운 감옥으로부터 드넓고 밝은 누리로 한국 문화를 해방해 준 이 한글, 한겨레의 과학적인 창의력을 마음껏 자랑하게 하고 또한 한껏 계발하게 하는 이 한글이 단지 그 모아쓰기라는 굴레 때문에 오늘날 미국에서 발생한 전산기 문명에 적응하지 못해서 로마자에 압도되고 침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풀어쓰기 때문에 모아쓰기가 손해를 볼 염려는 없다. 모아쓰기는 그대로 보전되어 나갈 것이 분명하다. 500년 이상의 두꺼운 역사가 한글 모아쓰기의 장래를 튼튼하게 밀어 주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 끝이라도 다쳤다가는 무슨 동티가 날 것처럼 모아쓰기를 위할 필요는 없다. 특정한 모아쓰기 방식을 옹호하면서 한편으로는 풀어쓰기 반대 운동까지 열심히 하는 이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4) 모아쓰기와 풀어쓰기는 결코 불구대천의 상극이 아니다. 모아쓰기의 장점은 장점대로 알고 누리면서, 한편으로 그 미흡한 점을 깨닫고 보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풀어쓰기인 줄 알면 그만이다. 세심하게 갖추어 입은 정장이라야 되는 자리가 따로 있고, 알몸을 드러내는 수영복이라도 필요한 곳이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 같아도 한글 모아쓰기의 모자란 점을 한 구석에서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풀어쓰기인 것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한겨레의 언어 의식이 음절에 묶이게 하고 한자 말이 한말을 침식하고 정복하기 쉽게 한 근본 원인은 한글 모아쓰기에 있다. 그러므로, 초성-중성-종성의 묶음이 아니라 낱글자의 단위로 말을 분석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풀어쓰기를 보조적인 표기법으로 이용해서 음소와 형태소에 대한 감각을 기르고 한말을 한말답게 분석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럼으로써 특히 한자 말의 심대한 영향에 눌려 죽거나 굳어 버린 한말의 조어법을 활성화시켜서 어휘 체계가 한결 풍부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모아쓰기의 한계 안에서는 전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희망이 없고, 오로지 풀어쓰기만이 이바지할 수 있는 영역이다.
    풀어쓰기가 이처럼 아쉬운 표기법이긴 하지만, 그 장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풀어쓰기 운동의 선각자들이 내세운 명분이 전산기의 발달로 이미 대부분 해소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하게 여기는 언중의 의식 때문에도 풀어쓰기의 장래는 초창기보다 한층 더 어둡게 보인다. 그래도 풀어쓰기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미국식 전산기만으로는, 아니 어떤 파천황의 한국식 전산기가 발명된다 해도 전산기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모아쓰기의 심각한 폐단과 결점들을 지적해 보았다. 한두 사람씩이라도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다 보면 세대를 이어 한글 풀어쓰기 운동을 발전시켜 가리라는 전망만은 확실하게 가질 수가 있다. 이 정도의 기대는 80년 남짓하게 꾸준히 이어 온 풀어쓰기 운동의 역사가 보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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