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文字 改革

최 영 애 / 연세대 교수·중국어학

1. 실 마 리
    가깝고도 멀었던 이웃 나라 中華 人民 共和國이 개방 정책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접근은 상호간의 경제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에 따르는 인간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교류도 서서히 뒤따를 전망이어서 중국과 관련 있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찍부터 한껏 낭만적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최근 몇 년 교류의 물꼬가 터지는 바람에 다수의 경제인들과 소수 학자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바로는 중국 거리 곳곳에 붙어 있는 상점 간판이나 건물 이름 현수막·표어 등에 적혀 있는 한자가 모두 이상한 형태로 되어 있어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몰라 아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게 이런 여행담을 얘기해 준 사람들이 대부분 한글 세대가 아닌, 한자라면 중국음으로 읽지는 못해도 보면 뜻은 훤히 알 수 있는 세대이다.
    중국에서는 지금 우리가 빌어서 우리 언어의 일부로 쓰고 있는 한자 자체를 대폭 간단하게 고쳐서 만든 간체자(簡體字)를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여행객들이 이러한 언어 소통(문자를 통한)의 벽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2. 한자의 형성 과정
    인류가 언어를 창조하여 구사해 온 이래 이 언어는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변하고 변해갈 것이다. 언어의 표현 수단인 문자도 언어가 있은 연후에 새로 만들어지기도 사멸되기도 하며, 의도적으로 비의도적으로, 제도 속에서 혹은 제도 밖에서 끊임없이 고쳐지며 운용되어 가는 과정에서 인류 문화를 축적해 가고 있는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이지만, 문자의 형성 과정은 "約定俗成"이란 말 한 마디로 집약된다. 이 말은 전국 말엽 孔孟의 유가 사상을 이어받아 법가 탄생의 기초를 닦은 쉰쯔(筍子)가 한 말로 "사람들이 약속하여 그것이 정해지고, 그것을 계속 써서 익숙하게 되면 그것이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풀 수 있는데, 이 문장 속의 "그것"을 "文字"로 대체하면 더욱 쉽게 이해될 것이다.(1)
    중국 문자 즉 한자의 기원은 B.C.4000년 仰韶 文化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4년 가을부터 1957년 여름 사이에 시안(西安)근교에 있는 빤풔(半坡)마을(仰韶 文化 유적지)에서 발굴한 수많은 도기 그릇과 도기 파편들 가운데 113조각에서 22개의 기호를 발견했다. 중국 고문자학자들은 현재까지 발굴된 자료 중에서 이 기호 자료를 중국 문자의 最古의 예로 보고 있으므로 한자의 역사를 6,000년으로 추정하는 것이다.(2) 그러나 근거 자료들이 단편적이고 확고한 증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한자의 기원 연대 추정은 일반화되기에는 아직 이르다.(3) 그래서 한자 자형 변화의 역사를 서술할 때 항상 제일 오래된 형태로 지칭하는 것이 곧 殷대 말기에 역대 왕들이 점을 치기 위해 龜甲·獸骨에 새긴 문자, 바로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의 甲骨文이다.(4)
    갑골문보다 시기가 좀 빠른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청동기 문자(金文)는 대개 굵은 선(肥筆)으로 구성된 데 반하여 갑골 문자는 가는 선(瘦筆) 중심의 간략한 형태로 간화된 것이다.(5) 우리는 한자체의 변화를 보통 甲骨文(殷) → 金文(周) → 大篆(전국 시대 秦) → 小篆(秦) → 隷書(漢) → 楷書(魏晋 이후)로 공식화해서 말하는데, 이러한 한자체의 변화 과정이 바로 한자의 간화 과정과 일치한다고 흔히들 말한다.(6) 다시 말해서 한자의 역사는 간화의 역사라는 것이다. 여기서 간화라 함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필획수의 감소를 의미한다고 보지만, 자형의 규격화·고정화도 아울러 포함한다. 그런데 이러한 간화라는 변천 방향과는 반대로 획수의 증가라는 번화(繁化) 현상도 동시에 나타나는데 이는 초기에 자형이 고정되지 않은 갑골문 같은 한자 형태에서 대칭이나 균형을 취하는 방향에로의 번화로서, 자형의 인지나 서사(書寫)에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변화된다는 그 목적에 있어서는 간화와 동일하며, 한자체의 변화에 있어서 간화 현상에는 미치지 못하는 이차적인 현상일 뿐이다.(7)
    각 시대의 대표적인 자서(字書)에 수록된 한자의 수량을 보면, '說文解字'(100년) 9,353자, '玉篇'(534년) 22,726자, '廣韻'(1008년) 26,194자, '集韻'(1039년) 53,525자, '康熙字典'(1716년) 47,043자, 그리고 현재 한자 수는 거의 6만 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한자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현상은 대개 사회 문화의 다양화에 보조를 맞추어 풍부해져 가는 언어 현상으로 풀이된다.(8) 정확한 이해나 공능의 갑골문은 아직 필획수나 자형이 고정되지 않아 여러 가지 이체들이 나온다. 小篆까지 와야 어느 정도 자형이 간화되고 획수가 고정된다. 한자는 이와 같은 변화를 거쳐 지금처럼 네모 반듯반듯한 "方埤字"가 된 것이다.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원래 있던 글자와 뜻은 기본적으로 같으나 자형이 다른 새 글자가 생겨 병존한다든가(一:壹), 多音字나 多義字가 분화되어 둘 이상의 글자로 되는 경우도 있고 (莫:暮, 風:瘋), 새로운 수요에 의하여 새로 만든 글자가 탄생하기도 한다(甭, 咖啡, 她). 바꾸어 말하면, 古今字·異體字·俗體字의 누적에다 변을 덧붙여 새로 만든 글자까지 합세하여 계속 쌓여가니 한자의 수가 이렇게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고금을 막론하고 실제 언어 문자 생활에서는 글자 수가 증가 일변도만은 아니고 역으로 감소되는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형태가 비슷한 두 개의 동음자나 동의자의 자형을 하나로 병합한다든가(冑·¿→冑, 賣·¿→賣), 간단한 동음자로 복잡한 글자를 대체한다든가(纔→才, 동시에 필획수의 간화를 가져온다.)하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글자 수가 감소된다.
    현재 한자가 6만 자에 달한다고는 해도 시중이 나와있는 일반 자전들의 수록자를 살펴보면 7천 자에서 1만 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또한 漢 초에 관리가 되려면 한자 9천 자를 알아야 된다는 옛 문헌('漢書;藝文志')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예나 지금이나 만 자 정도가 識者의 識者 상한선이 아닌가 생각된다.(9) 이 만 자 중에서 상용자는 3,4천 자이다.(10) 그러므로 중국의 문자 개혁은 이 3,4천 개의 상용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 중국 역사에 있어서 문자 개혁의 의미와 구조
    한자체의 변천 역사에서 점진적이고 자연적인 변천은 제외시키고, 급진적이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전반적인 변혁을 시도하여 성공한 사례를 꼽는다면, 중국 역사상 두 차례의 대대적인 문자 개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개혁을 주도한 두 인물은 바로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秦의 始皇帝, 그리고 금세기 中原 대륙을 석권한 마오 쩌똥(毛澤東)이다.
    秦始皇이 전국 시대의 6국을 통일한 후 외친 구호가 "車同軌, 書同文字"(수레바퀴 간격 규격 통일, 문자 통일)(11)이었다. 그 당시 전국 6국에서는 秦국과는 다른 문자체들을 쓰고 있었는데, 始皇은 쉰쯔의 제자로 천하 통일 과업의 주역 노릇을 한 법가 재상 리 쓰(李斯)에게 명하여 秦에서 쓰고 있던 大篆체를 小篆으로 개혁시키고, 이 개혁된 秦篆(小篆을 가리킴)에 맞지 않는 타 문자체(6국의 문자)는 모두 폐지시켜 버렸던 것이다.
    마오는 1940년 "문자는 반드시 일정한 조건하에서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치고,(12) 1951년에는 "문자 개혁은 세계 각국의 문자와 같은 표음 문자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단서를 첨부했다.(13) 마오 주석의 문자 개혁 지시에 따라 이듬해(1952) 2월 5일 中國文字改革硏究委員會가 정식 발족되어 본격적인 문자 개혁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같은 해 7월 이러한 작업의 연구장이며 실천장으로서의 중국 언어학 전문 월간 잡지 '中國語文'이 이 문자개혁연구위원회와 中國科學院語言硏究所 공동 발행으로 탄생하였으므로 이 잡지를 통하여 문자 개혁 당시의 상세한 과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기원전 3세기 말의 大篆→小篆과 20세기 중반의 繁體字→簡體字가 변화 패턴의 유비 관계를 이룸을 알 수 있다.(14)
    이들 연구 위원들은 마오의 지시에 따라 중국의 문자 개혁은 "한자를 완전히 폐지하고 표음 문자화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처음부터 설정해 놓고 그 이상의 실현 과정 속에서의 첫 단계로서 한자 簡化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라는 이상향을 궁극적 목표로 세워 놓고 공산주의 사회 투쟁을 진행시켜 나아가는 것과 똑같은 패턴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중국의 간체자는 어디까지나 한자 전면 폐지를 위한 한자 감소 정책의 산물일 뿐이다. 이 점은 문자 개혁 작업에 참여한 모든 학자들이 누누이 강조해 마지않던 바이다.(15)
    중국의 문자 개혁은 엄밀히 말해서 한자 간화(획수·자수의 감소), 표준화(한자 수량 확정·인쇄 자체 통일·음의 통일·배열 순서의 통일), 표음화(한자음 표기 기호 <漢語꧞音方案>을 1958년 공포) 작업을 포괄하며, 중국어의 규범화(베이징 말을 기초로 하여 표준어 "普通話"를 제정하고 보급)작업도 함께 진행해 왔다.

4. 中華 人民 共和國에서의 漢字 簡化 作業
    이 글에서는 중국 문자 개혁의 핵심이 되는 한자 간화 문제만 다루기로 한다. 간화 작업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52년 관계 기관의 성립에 이어 1954년 12월에는 기관의 성격을 단순한 연구 기관에서 실행 기관을 겸임하는 것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中國文字改革硏究委員會가 中國文字改革委員會로 개명된다. 문자개혁위원회는 연구위원회에서 2년간 해온 작업 결과를 몇 차례 정리·수정하여 1955년 1월 798자를 간화하고 400개의 異體字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漢字簡化方案草案>를 발표, 전국에 의견 청취 작업을 실시하였고 동시에 부분적으로 단계적으로 시험 실시도 하였다.(16) 다시 수정을 거쳐 1956년 1월 國務院에서 정식 공포한 것이 바로 지금 중국에서 쓰고 있는 간체자의 본 모습을 담은 <漢字簡化方案>이다. 이 방안은 3개의 표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이미 신문 잡지에서 시험 사용된 230자(<漢字簡化第一表>)와 285자(<漢字簡化第二表>)를 합한 515개의 간체자와 54개의 간체변(<漢字偏旁簡化表>)이 실려 있다. 1월 28일 공포, 2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전국의 출판 인쇄에 이 간체자들을 일률적으로 통용하게 하고, 기존의 번체자는 고문헌을 영인하거나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일체 사용 금지시켰다. 그 후 8년간의 사용 실태에 기초하여 1964년 3월 문자개혁위원회에서 펴낸 <簡化字總表>에는 모두 2,238자가 수록되었는데, 이것은 모두 <漢字簡化方案>의 간체변을 기초로 하여 조정하고 유추해 가는 방법으로 얻은 간체자들이니, 이 56년도의 <漢字簡化方案>을 재정리한 것에 불과하며, 새로운 간체자가 새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간체자 작업 이외로도 1955년 12월 문자개혁위원회에서는 또 <第一批異體字整理表>를 공포했는데, 여기에는 2자에서 6자까지 되는 810개의 이체자組에서 속자와 簡字를 따른다는 원칙을 가지고 810개의 正字를 뽑고 그 나머지 1,055개의 이체자를 폐지한 것을 실었다. 이어서 56년에서 64년까지 벽자로 된 중국 지명 30여 개를 동음상용자로 고치는 등 작업을 해 왔으니, 모두 합쳐서 1,100자 정도가 중국 한자에서 감소된 셈이다.(17)
    또한 한자음 표기법 <漢語拼音方案>을 55년부터 57년까지 문자개혁위원회에서 연구 제정하여 1958년에 공포하였다. 1965년에는 <印刷通用漢字字形表>를 공포, 필획의 배열 순서를 정하고 인쇄 자형을 宋朝體로 통일 규범화시키고, 1985년 國家語言文字工作委員會(중국문자개혁위원회의 後身)에서 56년부터 연구해 온 <普通話異讀詞番音表>를 공포하여 음을 규범화시켰다. 이와 같이 문자 개혁은 앞서 말한 대로 간화뿐 아니라 표준화, 표음화의 여러 면에서 진행되었다.
    1964년 <簡化字總表>가 나온 이후로도 계속 간화 작업을 진행시키다가 악명 높은 저 문화 대혁명(1966~77, 문화 혁명은 중국 문화를 한참 후퇴시킨 운동이었다고 평가된다)의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은 작업이 정지되었다('中國語文' 잡지도 1966~1977년 사이는 정간되었다가 1978년부터 복간되어 격월간지로 출간되고 있다). 문자개혁위원회에서는 1977년에 <第二次漢字簡化方案草案>을 발표하여 의견 청취를 했고, 문혁 기간에 사회에서 날조된 간체자들을 폐지시켰다. 이어 80년에 수정위원회를 발족하여 초안의 수정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결국은 공포되지 못한 채 현안으로 질질 끌어왔다. 그러다가 1985년 12월 國務院에서 새 시대의 언어 문자 연구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다는 명분하에 中國文字改革委員會를 國家語言文字工作委員會로 그 명칭을 바꾸었으며, 이 기관에서는 중국어 규범화 작업을 잘 진행시켜 普通話를 적극 보급시키는 일과 현행 한자를 연구 정리하여 그 표준을 제정하고 <漢語拼音方案>을 보급시키는 데 있어서 문제점들을 연구 해결하고 또한 한자의 정보 처리 문제 등 응용 연구 작업을 수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렇게 기구의 명칭을 바꾸고 작업 범위를 확대시킨 것은 바로 "문자 개혁" 문제에서는 일보 후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6년 1월 6일부터 13일까지 國家敎育委員會와 國家語言文字工作委員會(문자개혁위원회의 후신) 공동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全國語言文字工作會議의 주제는 지난 30년간의 언어 문자 개혁 작업의 "회고 및 총결산"이었다. '中國語文'에 실린 회의 내용 기록에 의거하면, 이 회의에서 "二簡"(<第二次漢字簡化方案草案>의 축약어, 그러면 자연히 56년도의 <漢字簡化方案>은 "一簡"이 된다) 문제를 이렇게 마냥 질질 끌고만 갈 수는 없으며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며, 한자의 표음 문자화 문제는 사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아직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거론도 않는 것이 좋다는 약간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토의 내용이 도대체 이 두 가지 작업을 계속 진행시켜 나간다는 것인지 아니면 깨끗이 중단한다는 것인지 결의 사항이 없기 때문에 애매모호하기 그지없으나 우리는 이 회의의 폐막식사의 연설 내용에서 두 작업의 귀추가 확실해짐을 알 수 있다. 中共中央政治局委員 書記處書記인 후 챠오무(胡喬木)는 이 회의의 마지막 폐막식사에서, "건국 초기(50년대)에는 역사 발전과 당시 사회의 수요에 의해 문자 개혁을 대대적으로 실시했고 또 그만큼 좋은 성과를 얻었으나,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바로 이 성과를 충분히 소화하고 공고히 발전시키는 것이다"라고 못을 박아 "二簡"과 "拼音化"(표음화)라는 초기 문자 개혁의 "제2단계"와 "목표" 작업의 중지를 선언하는 것으로 30년간의 중국 문자 개혁 운동을 총결산하고 회의의 막을 내렸다.(18)
    이제 여기서 우리가 중국의 간체자를 논의함에 있어서 자연히 "一簡"으로 그 범위가 좁혀지게 된다. 즉 1956년에 나온 <漢字簡化方案>이 논의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간화 작업의 동기와 원칙·방법·내용·한자의 장래 문제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5. 簡化의 기준과 방법
    표면적으로 나타난 간화의 동기는 바로 세종이 훈민정음에서 어린 백성들이 중국 문자는 배우기 힘드니 모두 쉽게 배우고 사용하기 편리한 새 글자를 창제한다고 그 동기를 밝혔듯이, 중국 인민 대중이 기존의 한자(번체자)는 복잡하여 배우고 쓰기 힘들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문자로 개혁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 인민 계급이 문자를 장악하고 나아가서 문화를 장악하여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 나간다는 것이다.
    문자 개혁에 참여한 학자들은 한자의 결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19) 한자는 표음 문자가 아니므로 문자와 구어(음)가 분리되고, 글자 수가 많고, 구조가 복잡하고, 한 글자에 음이 여럿이고, 같은 글자라도 이체가 많은 등, 결점투성이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배우기도 힘들고 사용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비합리적인 문자로서는 과학 기술을 습득하여 현대 문화를 제고시키기 어렵다. 그러므로 보다 이상적인 표음 문자로 개혁을 해야 되는데, 단시일 내에 이러한 개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우선 간화를 해야 한다고, 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들은 간화의 대원칙을 "約定俗成, 穩步前進" 두 마디로 정하고 작업해 나갔다. "約定俗成"이란 가능한 한 전부터 통행하여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기존의 간체자 즉 속자들을 선정하여 간체자로 제정하자는 것이고, "穩步前進"이란 간체자들을 모두 단번에 개정하여 단번에 실시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제정하고 실시한다는 방침을 말한다.(20)

<漢字簡化方案>의 간화 방법은 대략 다음의 7가지로 분류된다 :
1. 古字채용:從从 衆众 禮礼 無无 氣气 處¿
2. 草書체를 楷書화함:
專¿ 東¿ 樂¿ 當¿ 買¿ 湯¿ 農¿ 孫¿
3. 필획을 간단히 줄임:
魚¿ 單¿ 變¿ 沖冲 勞¿ 莊庄 燭烛 傷¿
4. 간단한 부호로 번체자 일부를 대신함:
觀¿ 戲¿ 鄧¿ 區¿ 歲¿ 羅¿ 劉¿ 齊¿
5. 글자의 일부만 취함:
習¿ 縣¿ 務¿ 霧¿ 條¿ 廣广 醫医 蟲虫 飛¿ 聲¿
6. 동음자로 대체함:
幾几 後后 繫系 嚮向 築筑 穀谷 義¿ 纔才
7. 聲旁을 간단한 동음자로 고침:(21)
鍾¿ 遼¿ 遷¿ 郵¿ 燈灯 階¿ 運¿ 遠¿ 猶¿ 藝¿(22)

위의 7가지 방법은 모두 기존 속자의 형성 과정을 분석해서 얻은 것이다. 또한 필요시에는 이러한 방법에 따라 새로 간체자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문자개혁위원회에서는 "約定俗成"이라는 대원칙하에 "述而不作"(있던 것을 기술해도 창작은 하지 않는다)이라는 콩쯔의 말을 소원칙으로 하여 꼭 필요할 때 (복잡한 글자인데 俗字가 없는 경우:鑿→¿) 외에는 가능한 한 새로 造字는 안 한다는 방향으로 간화 작업을 해나간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新造字도 적지 않다. <漢字簡化第一表>에 실린 230자는 주로 옛부터 전해오던 간화자이며 <第二表>의 285자는 주로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새로 만들어진 글자이다.
    신조자는 대부분 동음자로 대체하거나(6번), 聲旁을 간단한 동음자로 바꾸는 (7번)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바로 전통 문자학의 六書 중 假借(6번)이며 形聲(7번)이다.(23) 假借라는 것은 본래 자신의 글자가 없던 말에 새로 글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기존 글자 중에서 동음자를 갖다 쓰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來"자는 본래 곡식 중의 "밀"을 가리키는 글자였다(갑골문:¿, 밀이 늘어진 모습). 그런데 "오다"라는 뜻의 말이 글자가 없어 동음자인 이 "來"를 빌어다가 같이 썼다(후에 오히려 "밀"이 "來"를 내주고 "麥"으로 분화되어 나갔다). 이러한 假借의 방법은 한자의 수를 줄이고 배우기도 쉽게 하지만, 그 반면 이러한 방법을 지나치게 많이 적용하여 한 글자로 너무 많은 말을 나타내게 되면 의미의 혼동이 오게 되는 폐단이 있다. 문자 개혁 초기에는 일본처럼 상용자를 2천 자 뽑아 그 외의 모든 글자를 이 2천 개의 상용자로 동음 대체하자든가, 현대 표준어의 음절이 400여 개이므로 이 음절들의 해당 한자를 찾아서 그 한자로 기타 모든 한자를 동음 대체하자는 등 극단적인 제안까지 등장했다(문자 개혁 멤버에게서 나온 제안은 아니지만). 일례를 들면, 向(xiang)이라는 한 글자로 向相像象橡項卷...등 수많은 글자를 대신하여 한시 바삐 표음 문자화 방향으로 내닫자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간단한 글자를 스무여 개 골라서 로마자 필기의 모양을 본뜬 표음 문자화 작업까지 시도하였다(月¡æ¢¯...). 또한 동음 대체의 문제는 아니나 문자 개혁에 대한 재미있는 제안을 하나 들어 보자. 중국의 동북방 편벽한 遼西성에 있는 한 시골 소학교 여선생이 "女"변이 붙은 좋지 않은 뜻을 가진 글자 16개를 골라서, 이 글자들을 일부는 철폐하고 일부는 다른 변으로 바꾸어(¿→폐지, 娼→¿, 姦→¿ 媚¡æ¢¯...), 남녀 불평등 사상을 문자에서부터 싹 쓸어 없애자고 역설하였다. 이와 같이 당시 난무했던 갖가지 기안들은 창조로 가는 혼돈길이리라.
    形聲이라는 것은 앞서 주(21)에서도 언급했듯이 形旁(변:뜻을 나타내는 부분)와 聲旁(음을 나타내는 부분)이 합쳐 이루어진 글자인데, 사실은 한자의 대부분이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자의 형성 역사에서 초기에 만들어진 소수의 象形字(日, 月)나 指事字(一, 上) 같은 것을 제외한 후대의 신조자들은 대개 모두 이 형성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형성자라는 것이다. 전체 한자에서 형성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갑골문에는 27%, '說文解字' 81%, 현재는 90% 이상으로 본다. 서양 과학 기술 용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의 신조자는 완전히 형성자이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형성자가 늘어날 것이다. 형성 방법으로 만든 간체자 역시 형성자에 속한다. 문자학의 대가 탕 란(唐蘭)은 "한자의 표음 문자화"라는 문자 개혁의 목표에는 극구 반대했으나 (그래서 사계의 최고 권위자이면서도 문자 개혁 작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나 보다), 이러한 형성 방법에 의한 "新形聲字"론을 문자 개혁안으로 제시하였다.(24) 형성자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이 한자는 결코 표의 문자가 아니고 표음 문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문자 개혁 과정 중에서 글씨 쓸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횡서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당국의 권장 사항이나, 아래위로 겹친 자형은 폐지하고 옆으로 겹친 자형을 정자로 선정한 異體字 정리 기준(峰·峯→峰, 群·羣→群, 碁··棋→棋)이나 모두 표음화라는 문자 개혁 방향으로 잘 나타내 주는 예들이다.
    이렇게 제정된 간체자가 30년간 사용되는 과정에서 "倉頡造字"(黃帝의 사관이었던 창 지에가 새와 동물의 족적을 보고 처음 문자를 만들었다는 전설)가 무색할 정도로 여기 저기서 너도 나도 마구 간체자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예를 들면 山西省 太原시의 한 극장에서 인쇄한 극장표에 "迚守秩序, 請勿喧¿"(질서를 지키고, 떠들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迚"은 "遵"대신 쓴 글자인데, 太原의 음으로는 中과 尊이 같은 음이기 때문에 간화의 방법(7번)에 딱 들어맞는 훌륭한 간체자로 보인다. 그러나 北京 표준음으로는 음이 서로 다른(zhong과 zun) 엉뚱한 亂造字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문화 대혁명 기간에 특히 심하였고, 두 글자 이상의 낱말을 한 글자로 간화한 亂造字도 부지기수로 나타났다(問題→¿, 辨證法→¿ 帝國主義→¿). 이러한 亂造字들은 간화 원칙에 맞지 않고 국부적이고 조잡하기 때문에 표준 간체자로 채용될 수 없다. "二簡"의 간화 내용에 새로 만든 글자들이 많아 익숙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중단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나 마찬가지이다.

6. 簡化의 평가와 전망
    "一簡"의 간체자는 이에 비해 대부분 오랫동안 사용되어 오던 글자를 기본으로 했으므로 사람들이 일단 이들에 익숙하기 때문에 비교적 거부감이 적어 시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현재 모든 인쇄물에서 이 간체자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대부분 간체자로 인해 중국의 식자율이 높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25)
    그러나 개혁 초기부터 일부에서는(대만에서는 대다수) 간체자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았다. 그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타당성이 있는 이유들을 세부화하여 간체자를 비판하였으나, 역시 "전통 문화의 말살"(서도 예술도 포함)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세간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간체자는 정치 상황의 특수한 변동이 없는 한 중국 문자로 확고히 자리잡아 가리라고 생각한다.(26)
    현재 중국 정부에서 혁신보다는 온건·보수로 방향을 돌려 문자 개혁 작업을 일단 마무리 지은 이 시점에서 중국의 학자들은 전처럼 한자의 결점을 열심히 들추어내기보다는, 표의 문자이며 方塊字(네모 반듯한 글자, 한자의 별명)인 한자의 장점을 밝히는 데 관심을 쏟아 넣고 있다. 이제 그들은 한자의 평가 기준은 서구 표음 문자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 다각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중국 내에 수많은, 달라도 한참 다른 방언들이 장구한 세월을 같이 존속해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언어(외국어)로 갈라지지 않고 방언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한자가 시공을 초월한 공통어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한자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현 정치 사회 상황 속에서 중국은 앞으로 문자 개혁보다는 보다 실용적인 전산화·전문 용어 번역 등등 과학 기술과 한자의 접합 문제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 작업을 진행시켜 나가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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