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들의 正體는?

 

李 勳 鍾 / 전 건국대 교수·고전 문학

◆ 파리 목숨인 줄 아나?
    유명한 오성부원군 이항복(李恒福)에 얽힌 얘기가 있다. 곧 사약(賜藥)이 내릴 거라는 데도 식사를 여느 때와 같이 한다.
    "상감의 윤허(允許)가 떨어지기까지엔 적어도 넉달은 걸릴 것인데......."
    이것이 그의 변(辯)이다. 흔히 죄인을 툭하면 목 쳐 죽였는 줄 아는 모양이나 당치 않은 얘기다. 파리 목숨도 아닌데.......
    조물주가 가끔 잘못 만든 것은 청을 들어 시정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제일 첫 번째 것이 개의 소망이다. 그때까지 솥<鼎>은 발이 넷이고 개는 셋밖에 없었더란다. 그래 주인도 따라다니랴 사냥도 하랴 바쁘게 뛰어야겠으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되는 솥의 발 하나를 떼어서 저에게 주십시사 하고 청한 것이다. 듣고 보니 과연은 옳은 말이라, 소원대로 해 주었다. 그래 지금도 귀한 어른이 주신 발에 오줌이 튈까 보아 그 다리를 들고 눈다고 하는 것이다.
    다음은 사람이 제소한 것인데. 참새가 소중한 곡식을 먹어서 축을 내니 요놈을 좀 어떻게 해 주십소사 하는 것이다. 조물주가 검토해 보니 여름철 벌레를 잡아먹어 농사를 도와 제비와 맞먹는 공이 있으니 혹한 벌은 줄 수 없고......그래 종아리를 때려서 내려 보냈다. 그 뒤로 참새는 종아리 맞던 때 버릇으로 두 발을 모아 강중강중 뛰는데, 만약 참새가 걷는 것을 본 이가 있다면, 당대에 만석 추수할 것이라고 한다.
    세 번째가 파리, 이것 역시 사람이 호소한 것인데, 조물주가 보니 열 가지에 단 한 가지도 이로울 것이 없어 인간의 말이 맞다. 그래 보는 족족 죽이라고 영을 내렸다. 파리도 그 켯속을 잘 아는지라 앉으면 열심히 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우십소사, 앞발로 빌고 뒷발로 빌고.......

◆ 뱃속에 의송(議訟) 들었다
    겉으로 못난 척 하면서 의뭉한 짓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의뭉의 원음은 음흉(陰凶), 별로 기분 좋은 어휘는 못 된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 원님에게 호소하고 싶어도, 씨족 관념이 세던 시절, 양반이 드센 고장에서는 통하질 않는다. 그래 한 다리 건너 순찰 나온 감사또에게 호소하는 것이 의송이다. 어찌 보면 요사이 투서질하는 것만큼이나 비겁한 짓일지 모르나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암행어사가 알았음 좋겠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보다 더한 것이 격쟁(擊錚), 임금님이 거동하실 때 행렬 앞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농악대에서 치는 징을 꽝꽝 두드려대는 호소법이다. 물론 웬 소란이냐는 우의 물으심이 있고, 이어 조사 선처하라는 분부가 내린다.
    역대로 여러 임금이 광화문 문루 같은 데 신문고(申聞鼓)를 걸어 놓아 백성들에게 직소(直訴)의 길을 열어 주었는데, 그 북을 치면 즉시 국사법을 다루는 의금부(義禁府)에 수용이 된다. 무어 죄를 졌대서가 아니라, 억울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상대가 있을 것이고, 사건이 이쯤 터진다면 상대방도 결사적으로 훼방하러 나설 것이라, 신고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리했던 것이다.

◆ 호두각(虎頭閣)
    그런데 국사범을 다루어 역적을 가려내는 의금부는 건물 구조부터가 달랐다. 원채에서 T자형으로 지붕을 꺾어 내어 지붕 용마루 끝이 정면으로 온다. 워낙 무서운 관청인 데다가 집 형태까지 이렇게 생겨서, 호두각이라 하여 사람 잡아먹는 형국이라고, 무척 재미있는 구성이건만 일반 건축에서는 그렇게 짓는 것을 몹시 꺼렸다.

◆ 노송(路訟)과 욕바위
    호소하는 데도 가장 애교 있는 것이 노송(路訟)이다. 지나가는 타 고을 원님 행차를 막고, 이 고장에서는 텃세가 세어 옳은 판결을 못 받겠으니, 이것 좀 해결해 주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갈 길이 제아무리 바쁘더라도 그것을 풀어 주고야 떠났다니 인정미 있는 얘기다.
    원주(原州)와 문막(文幕) 사이 양평(楊平)으로 통하는 구길에 안창(安昌)이라는 곳이 있고, 거기 솔밭 사이로 바위 하나가 오똑하게 쳐다보이는데 그것이 욕바위다. 강원 감사로 내려왔거나 원주 목사로 근무하면서 못된 짓을 많이 했든지, 노송 하나 옳게 처리하지 못한 작자가 거기를 지날 때, 그 위에서 실컷 욕해 주었다는 곳이다. 관장이 화가 나서 잡으러 보내면 앞으로는 절벽이지만 뒤는 편편하게 산으로 이어져 있어 내뛰면 그만이고, 아랫사람들도 무에 신명이 나서 쫓을 것인가? 그래 안심하고 욕이나마 실컷 해서 보냈다니,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후련해서였을 것이다.

◆ 早見表라니
    피난 중 지방에서 중학교 교감을 하고 있었을 때 얘기다. 학기 말이면 학생들의 성적을 내야 하고, 총점이 나왔으면 평균점을 내야겠는데, 전란 중 일이라 교무 수첩도 없어서 거기 부록으로 붙어 있을 산출표도 없었다. 나는 성적 전표 용지를 가져다 놓고 순식간에 그것을 만들어 냈다. 34학점으로 내야겠으면 50배한 1,700에서 34의 반인 17을 뺀 1,683점으로 50점 기준을 삼고, 매번 34점씩 수판으로 보태 놓으면서 51점, 52점 써 올라가는 것이다.
    수학 선생이 수업을 마치고 나와 그것을 보고 놀라운 듯이 말했다.
    "어떻게 조견표를 그리 쉽사리 만드셨어유?"
    나는 유들유들하게 그를 놀렸다.
    "선생은 수학 실력은 몰라도 국어는 낙제요."
    "예!?"
    "조견표가 뭐야? 한자로 써 놓고 글자를 풀이해 봐."
    일본인은 빠른 것도 하야이고 이른 것도 하야이다. 그러니까 100m를 10초 안에 달리는 것이 '하야이'라면 아침 일찍 만나서 하는 인사도 '오하요오 고자이마쓰'다. 그래 앞의 것은 速, 나중 것은 早라야 되겠는데, 재빨리 산출해 낼 수 있대서 '하야미효'가 쓰기 쉬운 '早見表'로 둔갑한 것이다.
    "새벽 일찍이 보라는 얘긴가, 早見表가 뭐람?"
    그랬더니 그 선생이 또 말려들었다.
    "그러면 速見表라면 되겠네요."
    "빨리 못 보는 사람은 어떡할 거야? 먼저 말에 구애(拘碍) 말고 새로 한 번 지어 보지."
    그리하여 내 책상 곁에 모였던 여럿이는 산출표, 환산표 하는 단어를 들추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지금도 아직 早見表가 각처에서 눈에 띄는데 징그러워서라도 빨리 추방하시라.

◆ 호랑이재의 변성명
    서울역 뒤에서 마포구로 넘어가는 목에 봉래동(蓬萊洞)이라는 구역이 있다. 아현동(阿峴洞)이 아직 애오개라고 하여 누누중총(累累重塚)으로 뒤덮여 있었을 무렵, 이 후미진 고개 이름이 호랑이재였었다.
    일본인들이 우리 고유의 동(洞)자를 외면하고, 저희들 지역에 마찌니 쵸오니 하는 일본식 이름을 멋대로 붙였던 시절, 이 인근을 주택지로 개발하면서 붙인 이름이 본래의 [호랑이째]에 가깝게 호오라이쬬오다. 그러다가 내 땅을 되찾으면서 보기조차 역겨운 町자를 洞으로 고치니 봉래동이 됐다.―이것은 필자 어렸을 때 집의 사랑에서 들은 얘기요,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대만에 유하고 있을 때 맨 남단의 항구 고웅(高雄―그 곳 발음으로 카오슝)을 다카오라고 말하는 이가 있어서 일본어를 그리 쓰느냐고 물었더니 그 곳 노인층이 그런다.
    본래 이름은 따카오, 알맞은 글자가 없어 打拘라 써 왔던 것인데 개를 때려잡다니 징그럽다고, 거기 맞게 일본식으로 갖다 맞춘 것이 高雄이었다는 얘기다. 그래 원주민들이 본래 이름으로 그냥 부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 도깨비시장
    내가 학생 시절 만주를 여행했을 때 일본어로 도로보오이찌바라고 하는 데를 둘러보았다. '이찌바'는 시장(市場)이고 '도로보오'는 도둑놈이다. 일인들이 물건을 도둑맞고 나와 보면 대개는 거기 나와 있더라고 하여 붙인 매우 명예롭지 못한 이름이다.
    이 얘기를 어느 좌석에서 했더니 그 중의 한 분이 그런다.
    "도떼기시장은 뭔데?"
    "'집어 왔다'가 일본 말로 '돗떼기라' 아닌가베. 그거 도로보나 같은 소리야. 아마 거기에 눈을 떴던 모양이지. 요새는 도깨비시장으로 둔갑을 한 거야."
    사실 도깨비시장엘 가 보면 별의별 것이 다 있어 도깨비라는 말의 실감이 난다. 창피한 유래를 벗어 버렸으니 우선 후련하다.
    인쇄업계에서 오프셋 인쇄 원판으로 쓰는 아연(亞鉛―징크(zink))판은 손자국이 나면 그냥 인쇄돼 나오기 때문에, 도안이나 글씨를 써넣는 화공들은 오른쪽 팔을 양쪽으로 발 달린 나무판을 걸치고 그 위에다 오른쪽 팔을 올려놓아 작업을 한다. 그것을 본래 생김새를 따라 우마라고 하였으니, 광복 후도 말이라 했을 것 같지만 얘기가 다르다. 지금 업계에서는 당나귀라고 해야 통한다. 일어 어원을 피하려는 일종의 오기(傲氣)에서다.

◆ 접시와 사라
    한 번은 거리를 지나자니까 사기 접시를 쌓아 놓고 외쳐 파는 이가 있는데,
    "나는 공대말은 한 줄을 모르니더, 사라 사라."
    하고 익살을 떠는 이가 있어서 웃었다.
    "여보시우, 거 사라는 일본말 아니요?"
    "죄송하니더. 그렇지만 그래야 통하는 걸 어이합니꺼? 조그만 건 접시고 큰 것은 사라라하지 않습니껴?"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얼굴이 넓적한 사람더러 '왜쟁반만하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 본래의 쟁반은 조그맣다. 식사 도중에 숭늉 대접을 받쳐 올리듯이, 그릇 하나를 올려놓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다란 상을 고정해 놓아 두고 음식을 날라다 늘어놓는 방식이 들어오면서, 한꺼번에 여러 그릇을 받쳐서 들고 오는 넓적한 쟁반은 전에 못 보던 것이라 왜쟁반이다.('오봉'이라고들 하는데, 업자 연합회에서라도 종업원들 교육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교자상은 전에 없던 것이다. 어느 잔치고 음식은 으레 한 상씩 따로 따로 받게 마련이던 것인데, 산중이나 물가에 있는 정자(亭子)에서 놀이 모임을 갖든지 하면, 거창하게 그럴 수 없어 갸자(架子)틀이라고 꼭 가마 바탕 같은 데다 여러 사람 분을 한데 모아 차려, 앞뒤에서 멜빵으로 사람이 메어서 운반하였다. 그것을 커다란 상에 한몫에 내려놓아 쭉 둘러앉아서 같이 먹는 형식을, 무어라 이름할 수 없어 갸자상이라 하던 것이 어느 결에 변형돼 교자상, 앞서의 갸쟈틀도 보통 교자틀이라고 하였다. 요새 와서 교자상을 한자로 交坐床이라고 쓰는 데도 있는데, 뒤섞여 앉아 먹으니까 비슷하기는 하나 원형은 아니다.

◆ 냄비와 갑게수리
    그런데 일상에서 쓰는 냄비가 일본 말이라면 화내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형이 나배인 것을 어쩌랴? 그러면 그보다 먼저 이름은? 그것은 쟁개비. 조금 생소하지만 무쇠로 만든 그릇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또 문갑(文匣)처럼 거실 머리맡에 놓고 쓰는 나무궤(櫃)가 있는데, 서랍이 여럿 달리고 일일이 잠그거나, 뚜껑을 달아 몰아 덮어서 자물쇠로 걸어 잠그게 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을 돈놀이하던 중인 계층의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도 있는데, 이 갑게수리의 유래가 가께스즈리<懸硯>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 떡 값 시비(是非)
    어느 현직 고관이 와이로를 먹었다가 쇠고랑을 차고 나서 한 말이 있다.
    "몇 푼 안 되는 돈이기에 떡값으로 알고......"
    공사 입찰(入札)에 있어서는 가장 손쉽고 흔한 부정이 담합(談合)이다.
    "이번엔 내가 좀 해야겠으니 양보해 주게."
    그리하여 1,500만원이면 적절할 공사를 모두 1,600이상으로 써 넣게 하고 혼자만 제 값을 써내서 공사를 딴다. 그런데 공짜가 어디 있나? 모두들 손을 내미니 얼마만큼씩을 나눠 주어야 무사(?)하다. 그러자니 응찰자가 많아 경합(競合)이 세면 금액이 2,000으로 뛰고, 3,000도 된다. 감독청에 앉아서 번연히 알면서 묵인해 주면 으레 또 얼마간의 상납이 있다. 이 바치는 돈 나눠 주는 푼돈이 떡값인데 유래는 이렇다.
    談合의 일본 발음은 당고오, 당고는 團子―수수팥단지하는 고물 묻힌 동그란 떡―다. 그래서 떡값이 됐다니 비약도 이쯤 되면 일품이다.
    나는 새들 사이에는 연중 행사가 있는데, 곱게 울기를 내기하는 명창 대회다. 심사 위원으로 나이 많은 부엉이가 뽑혔는데 왜가리가 찾아 왔다.
    눈도 어두우신데―부엉이는 밝은 데서는 물체를 보지 못한다. 힘들게 사냥 다니실 것 없이 제가 하루 두 마리씩 개구리를 잡아다 드릴께 앉아서 받아 잡숫기나 하세요."
    그거 미상불 괜찮은 일이라고 편하게 며칠을 보냈는데, 정작 명창 경연 대회 날짜가 돌아왔다. 금년에도 우승 후보로 꾀꼬리가 단상에 올랐는데 한 곡조 멋들어지게 굴려 넘어가는데
    "땡! 그거 노래라고, 방정맞아 어디 쓰겠니?"
    도중하차로 고개를 떨구고 연단을 내려갔는데, 다음이 왜가리 차례다. 그 듣기 싫은 탁성으로
    "꽤액 꽤액 꽥!"
    "딩 동 댕! 거 남자답고 씩씩해 조오타."
    그래서 영예의 명창으로 왜가리가 뽑혔는데, 날마다 개구리 두 마리씩 갖다 바친 대가라 해서 蛙二鷺라고 한다는 것이 한창 혼란하던 시절에 생겨난 비꼬아서 만든 어원이었다. 그러나 와이로는 회뢰(賄賂)의 일본식 발음이다. 하야까시가 일본 말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앞서 와이로나 범죄 용어의 스리―슬쩍 스친다는 일본 말―니 네다바이니 사꾸라니 하는 좋지 않은 부류의 말들은 일본 말 그대로 쓰는 것이 오히려 낫다. 우리 같은 점잖은 나라에서 그런 짓은 애초에 없던 것이니까.
    범죄인들이 저희들만의 은어(隱語)를 만들 제는 흔히 발음을 거꾸로 놓는다. 그래 종자(種子)를 뜻하는 다네가 네다로 변했고, 바이는 매죄(買罪)의 買의 그들 발음이다. '종자를 팔아 한탕 친다.'는 것이 네다바이의 원형이다.
    또 악덕 상인들이 말고기를 썰어서 소고기에 섞어 파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빛이 붉어서 벚꽃을 뜻하는 사꾸라다. 그래 본색을 숨기고 반대편 단체에 숨어든 요원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 테라를 뗀다
    노름판에서, 매 판마다 딴 사람에게서 얼마씩의 돈을 거두며 '테라를 뗀다.'고 하는데, 테라라면 일본 말로 절<寺刹>을 뜻한다. 이것은 임진왜란 뒤 일본의 도꾸가와<德川> 정권이 절간에서 하는 도박(賭博)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고 절간은 또 그들에게서 판돈을 거둬 경비로 쓴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정도 경범죄는 터주는 것이 오히려 치안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 대포 한 잔 하세
    친한 친구끼리 저녁 때 만나면 흔히 하는 인사다. 그런데 화투는 일본서 들어온 것이라 꺼림칙하지만, 그것으로 치는 육백이라는 놀이에서, 술잔을 그린 짝과 벚꽃이 활짝 핀 것을 맞추면 잇빠이(一杯, 한 잔), 공산명월이라고 둥근 달이 떠 있는 것과 합쳐도 한 잔인데, 이 두 가지가 겹치면 타이호오(大砲)라 하여 최고점을 주었다. 그것이 고빼기 큰 잔이라는 뜻으로 이 땅에 정착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