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국어사전 편찬에 대한 고찰
1. 머리말
우리가 어떤 대상의 언어 연구를 위해서는 현장 조사와 문헌 조사를 아울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장 조사가 불가능할 경우 문헌 조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언어 사실의 가장 잘 집약된 문헌은 사전이다.
국어 분단 40여 년에 북한의 언어를 살펴보는 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남과 북이 서로 오갈 수 없고, 서로의 말과 글을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없는 처지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한된 자료에 기대어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 북한의 국어사전(이하 '사전'이라 함.)을 통한 한 고찰이 이 글에 주어진 과제이다. 곧 북한의 사전 편찬 상황과 성격 및 제재 등을 살펴보면서 그 언어 사실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 북한의 사전 편찬 상황
북한의 국어사전들이라면 우선 분단 이후 북한에서 펴낸 '일반 뜻풀이(주석) 사전', 방언·속담·한자 말·동의어·맞춤법 등의 '갈래별 사전', 외국어와의 '대역 사전'들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넓게는 북한어와 관련된 북한 밖의 지역에서 공동 편찬 등으로 나온 사전들도 아울러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중국의 180만 동포 사회에서 펴낸 각종 모국말 사전 들은 포함시킬 수 없을 것 같다. 비록 그 모국말 규범이나 어휘들이 북한어의 영향권에 있기는 하나 모두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또 독자적인 조사, 연구에 의해 편찬된 별도의 교포 사회 언어 사전으로 보아야 하겠기 때문이다.(1)
그러면 그동안의 북한 사전 또는 북한어 관계 사전들의 목록을 연대별로 간략히 살펴 두기로 한다. 그런데 이 사전들은 그 출판 연대로 보면, 북한의 언어 규범 변동에 따라, 다음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일반 뜻풀이 사전
이 사전이 북한에서 처음으로 펴낸 뜻풀이 사전인 듯하다. 분단 이후 그들이 "대중적인 조선어 표준어 사전"으로 서둘러 낸 것이다. 서울 중심의 표준말을 일부 수정한 외에는 대체로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사전은 1957년 가을에 편찬하기 시작하여 1962년 11월에 펴낸, 북한 국어사전 가운데 가장 어휘가 많은 것이다. 앞의 《소사전》보다 규모가 크고 상세한 주석 사전의 필요에 따라 편찬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사전은 한글 학회의 《큰사전》(1957.10.9.)을 바탕으로 편찬한 것으로 보이는 종합적인 국어사전이다. (단, 사람 이름, 땅 이름은 싣지 않았음). 특히 해방 이후 그 사회에 나타난 새 낱말들이나 표현, 의미들을 널리 반영하였는데, 새 낱말들이란 북한의 정치 용어 및 전문 기술 용어들이다.
한편, 《큰사전》에 미처 다루지 못한 근대 국문학 작품 속의 어휘들(이를테면, 벽초의 '임거정' 등)도 꽤 거두어 실은 자취가 보인다.
이 사전은 북한의 첫 개정 맞춤법인 "조선어 철자법"(1954)에 따른 사전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사전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면 1966년부터는 그 맞춤법이 다시 "조선말규범집"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전에는 어원란에 한자, 로마자, 러시아 글자(뀌릴 문자)를 밝혀 썼다. 그러나 이후 사전부터는 어원란이 없이 한글만으로 편찬되고 있다.
이 사전은 소사전으로서 이른바 김일성의 1964년 1월 3일 교시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가지 문제"와 1966년 5월 14일 교시 "조선어의 민족적특성을 옳게 살려나갈데 대하여"에 따라 새로운 원칙에서 만든 "문화어주석사전"임을 머리말 서두에 밝혔다.
어원란을 없애고 순 한글만으로 편찬하였으며(이후 사전은 다 그러함.) 다시 고친 그 맞춤법 "조선말규범집"에 따라 펴내어진 첫 사전으로 보인다. 그리고 관계 낱말에 김일성 어록이 굵은 글씨로 인용되기 시작한 사전이다.
이 사전은 앞의 소사전 《현대조선말사전》을 더욱 보충하고 다듬어 "문화어"를 폭넓게 실은 새 사전이라 하였다. 편찬 내용과 체재 역시 앞의 사전과 같은데, 다만 어휘가 좀 늘었고 보기글 인용에 김일성 어록이 더 많아졌다.
이 사전은 김일성 탄생 70돌을 맞이하기 위해 "충성의 로력적 선물로 마련한" 것이라고 하는, 가장 최근 것으로 보이는 중사전 규모 사전이다.
편찬 성격으로 "주체사상"의 구현을 내세웠고, 또 "당중앙은 사전의 올림말 원칙으로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도 구체적인 지도를 주었다."고 함으로써, 앞의 사전들이 다 그러했듯이 그 정치와 사상성의 어휘, 의미, 표현 들을 우선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편찬 내용이나 체재로 보아서는 1962년의 《조선말 사전》의 바탕에서 이후 20년 간의 달라진 언어 현실인 "문화어" 중심으로 탈바꿈된 사전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 두 사전은 북한의 언어 모습이나 뜻풀이 사전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데 대표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한편, 이 《현대》(제2판)에서는 처음으로 편찬자들의 명단이 밝혀지고 있다.
[2] 갈래별 사전
물론 백과사전이나 전문 학술 용어의 해설 사전이 아니고, 일반 언어 사전류로서 각 분야의 사전들을 가리킨다.
이 사전은 김일성 교시(1966.5.14) 다섯 돌을 기념하여 낸 것이라고 한다.
올림말은 《현대조선말사전》(1969)과 《조선말 사전》(1962)에서 가려 뽑고 얼마간 더 보태어 엮은 것으로, 자모 배열에 따라 싣고, 뜻풀이와 간단한 예문, 예구를 보인 사전이다.
북한 지역 밖에서 낸 사전의 하나이다.
작은 규모의 대상 부류별 뜻사전과 동의어사전을 묶은 것이라 한다(위 두 가지 사전은 '문화어학습'(1984.1) 18쪽, '리기원'의 글에서).
2단 499면, 두 편 한 책(제1편: 방언에 대응하는 문화어, 제2편: 문화어에 대응하는 방언).
저자는 우리나라 방언을 크게 세 가지 "층"으로 나누었다. 1. 방언군, 2. 방언, 3. 소방언.
다시 이 층들을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한편, 저자는 이 사전 머리말에서, 그 동안 평안, 함경, 강원 방언 가운데 3,100여 개를 문화어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단일화가 보장되고 있다. ...문화어가 널리 침투보급됨에 따라 방언은 더는 늘어날 수 없으며 점차 줄어들어 나중에는 없어지게 된다."고 하여, 오로지 한 가지 말 문화어만을 쓰게 된다는 획일성과 규범적인 언어 통제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3] 대역 사전
여기서는 그동안(분단 이후) 우리와는 국교가 없는 소련 등지에서 나온, 국어(북한어)와의 대역 사전들까지도 되도록 그 목록이나마 모아 보기로 한다. (이 자료는 핀란드 헬싱키 대학 교수 고송무 님에 힘입은 바가 많다).
[4] 그 밖: 출판 예정 사전들
이 사전은 한자 말 뜻풀이 사전으로서, "오늘날 적극적으로 쓰이는 한자 말"을 중심으로 하고, 고전을 이해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게 편찬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단 '~하다' 파생말은 뜻풀이 없이 형태만 보였다고 한다.
한자는 갖은자인 "옹근글자" 외에 속자, 약자도 두루 밝히고, 뜻풀이에는 지금의 말뜻과 함께 "시초적인 뜻, 지난날의 낡은 뜻, 유래적인 뜻"을 간결하게 하고, 예구 형식의 사용례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은 이 한자말사전은 "현대문화어규범사전의 성격을 띠지 않는다."고 하였다. 곧 오늘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쓸 것을 전제로 하거나 써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난날과 오늘날의 자료나 출판물에 쓰인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편찬 자료 가운데는 남한 출판물도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 한자 8,000자를 획순에 따라 자모순으로 배열, 글자마다 음과 새김을 달았고, 약자에 대한 "옹근글자" 대조표를 보여 옥편 대신으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2)
이는 북한에서 1966년 이후 "문화어" 중심의 한글 전용 사전을 편찬해 온 뒤로 보게 되는 한자말 사전으로서 주목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1962년의 《조선말 사전》 뒤로 국어사전에서 낡은 말이라 하여 많이 없애 온 묵은 한자 말과 지금 널리 쓰이는 한자 말 등을 거두어 따로 엮은 사전으로 보인다.
이 사전이 나오면, 앞에서 본 1954년 《체코말-조선말》 1957년의 《웽그리아말-조선말》 사전에 이어 또 하나의 동유럽권 대역 사전이 될 것이다.
이상으로 분단 이후 40여 년의 북한의 국어사전 편찬 상황을 목록 중심으로 개관해 보았다(그 모두를 챙겨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 이러한 사전들의 실질적 면이 그 내용이나 체재 등에 대하여는 다음 장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사전의 규모나 편찬 경향 등의 일반적인 면을 살펴 두기로 하겠다.
우선 뜻풀이 사전의 경우, 소사전 아니면 중사전 규모가 대부분이었다. 소사전은 올림말 (3) 수로 보아 5만 이하, 중사전은 10만 안팎의 것으로 가름해 본 것이다. 그중 규모가 가장 컸던 1962년의 《조선말 사전》도 18만여 말 수의 것으로, 이른바 큰(대) 사전에 이르지 못했다. 이것은 그 "사전 간행을 끝내면서"(1962.11.1.)의 글에서 대사전 편찬에 대한 생각을 밝혔던 점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갈래별 사전으로서 앞에 보인 맞춤법 사전, 속담 사전, 방언 사전, 의성 의태어 사전들 밖에 옛말 사전이나 외래어 사전, 문법 사전 등의 편찬은 어떠한지, 필자는 아직 그 목록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옛말의 경우, 북한 사전에 다루어진 것은 1962년의 《조선말 사전》뿐이었다. 이는 66년 이후 "문화어" 중심의 한글 전용 사전을 편찬해 오면서, 이른바 낡은 한자 말과 옛말들은 그 실요성(정치·사상 교양면)에 벗어난다는 점에서 다루어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어사전이 어제와 오늘의 겨레말을 두루 거두어 간직하는 것이 아니고, 그 현실의 정책과 사상 교양적 기준에서 쓸 말만 다루는 태도였다고 하겠다.
이러한 결과의 하나가 앞에서 본, 곧 나오게 될 한자 말 사전의 편찬이었을 것이다. 사전의 기능은 현실적인 규범 언어에만 국한될 수 없다. 한겨레의 언어 유산은 오히려 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르긴 하되, 옛말 사전의 편찬이나 보완에도 손대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본다.
대역 사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주로 국교 대상인 소련, 중국, 동유럽 및 나라의 말과 일본 말과의 대역들이었는데, 영어를 비롯한 서유럽 언어와의 대역에도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그동안의 자취를 모르긴 하지만 이를테면 '과학 영어 용법 사전'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주요 사전 편찬은 그 언어 정책에 따라 대부분 당 산하 기관인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등에서 이루어져 왔다. 뜻풀이 사전의 경우는 대부분(모두?) 그렇게 이루어졌고, 대역 사전 가운데도 《조로대사전》(1976)이나 《조중사전》(나올 예정) 같은 큰 규모의 것은 소련 또는 중공의 연구 기관과 공동 편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곧 나올 《한자말사전》도 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서 편찬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전들(특히 66년 이후)의 편찬은 역시 수령의 교시와 당의 지도에 따른 것이고, (4) 또한 그 자체가 언어 정책의 한 반영이었다. 따라서 철저한 언어 규범화에 따른 획일적인 사전 편찬의 한 전형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사전에서도 개인 숭배 사상을 먼저 드러내고 있음을 빼어 놓을 수 없는 일이다.
3. 사전 편찬의 성격과 체재
어떤 사전의 내용을 알아보려면 편찬의 성격과 그 짜임새(체재)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어 사전의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뜻풀이 사전이 그 대상으로 된다.
필자는 앞에서 모아 본 북한 사전 목록 가운데서 대표적일 만한 뜻풀이 사전 두 가지를 밝힌 바 있다. 《조선말 사전》(1962)과 《현대조선말사전》(제2판, 1981)이었다. 이 두 사전은 나온 시기로 보면 20년의 간격이 있고, 북한의 어문 정책으로 보아서는 두 시대를 대표하는 사전이다. 곧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가름할 수 있다.
| 《조선말, 1962》 | 《현대 2판, 1981》 |
| 18만여 어휘. 현대 조선어 표준어 중심. 조선어 철자법(1954) 시대. 조선어 문법(1960~63) 바탕. |
13만여 어휘. 문화어 중심. 조선말규범집(1966) 시대. 조선문화어문법(1979) 바탕 |
특히, 조선말 사전은 전날 한글 학회의 《큰사전》(1957)을 바탕으로 편찬되고, 이후 북한 사전 편찬의 모체가 된 사전이라 하겠다.
그러면 이 두 사전을 비교해 가면서 그 편찬의 성격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이는 바로 북한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언어에서도 정치성, 사상성, 당성이 우선적임을 말하는 것이고, 또 그 말을 담는 사전 편찬에도 그러한 성격이 철저하게 반영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바탕에서 편찬된 사전의 내용과 짜임새는 어떠한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올림말의 범위'를 알아보는 일이다. 일반 국어사전으로서, "현대 조선어 표준어"(1962), 또는 "문화어"(1981) 중심의 각 단어, 공고한 단어 결합, (5) 성구, 속담들을 싣고 있다. 대개의 고유 명사들은 다루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위의 두 사전은 올림말 수에서 차이가 나듯이, 그 범위에서도 차이나는 것이 없지 않다. 이는 곧 20년의 간격을 두고 편찬된 두 사전의 성격이나 내용이 달라졌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 《1962》 | 《1981》 |
| ·한자 말, 옛 제도 말 등의 역사어들도 꽤 수록. ·일부 고어, 방언들도 수록. ·해방 이후 남한에서 쓰인 단어로서 북한 출판물에 나오는 것들도 일부 수록. ·사회 정치 용어는 물론, 전문 기술용어도 주석 사전의 범위를 넘어 비교적 많이 수록. ·특히 19세기 말의 언문 일치운동 시기로부터 당시 '60년까지의 현대 조선어 어휘 구성 상태를 비교적 상세히 보이기 위해 힘씀. 전문 용어로서 '군사'는 표시하고, '정치'는 표시하지 않았음. |
·널리 쓰이는 것으로만 가려서 올림.(올린 한자 말은 다듬은 말을 쓰도록 이끌어 줌). ·고어는 다루지 않고, 일부 사투리만 올림. ·남한과 그 밖의 지역들에서 쓰이는 일부 어휘들도 올림. (보기) '갑호경계령, 공업단지, 교차승인, 구악일소, 국군, 국민총생산량, 군납. ...' ·수령의 불후의 고전적로작과 당문헌에 나오는 말마디, 사상교양자료들과 혁명적문예작품들, 각급학교의 교과서들과 대중과학도서들에 나오는 말마디들을 풍부하게 올림. 과학기술용어는 지난날의 사전보다 폭넓게 올림. '군사, 정치' 모두 전문 용어로서 표시하지 않았음. ·고유어 단어라도 북한 사람들과 인연이 없게 되었거나 문화어와 대립되는 요소들은 안 올림. ·전래의 성구 속담 외에 수령이 썼다는 "명언"도 올림. (보기) '강냉이는 밭곡식의 왕이다. 쌀은 사회주의다.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 |
이 밖에 용어들의 갈래나 외래어 및 인용 문헌들의 서로 다른 목록들도 보일 수 있겠으나 줄이기로 한다.
그러면 몇몇 보기를 통해 그 짜임새를 살펴 나가도록 하겠다.
위 보기에서 나타나듯 기본 체재로서는 별로 다른 것이 없다. 곧 <올림말―발음―어원―품사―뜻풀이―보기글―(참고말)> 차례로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하나하나를 비교해 보면 서로 차이나는 것도 없지 않다.
우선, '긴소리' 표지가 앞의 《1962》 사전 올림말 '세포'에는 있고, 나중《1981》사전에는 없다. 북한 사전에서의 긴소리 표지는 《1962》 사전 뒤로는 없어졌다. 물론 그 "규범집" 표준발음법 1항에는 "모음들이 일정한 자리에서 각각 길고 낮은 소리와 짧고 높은 소리의 차이가 있는것은 있는대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다.
《1962》에는 주로 긴소리가 뚜렷한 각 형태소의 첫 음절 중심으로 나타내었는데, 그나마 이후 사전에서 그 표지를 없애게 된 까닭은 모를 일이다.
그동안 국어사전들에서 이 긴소리 표시를 두루 제대로 보인 사전은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 곧 다음과 같이 그 기준들이 모호하다.
한편 긴소리 표시 자리로서도 오늘날까지 그저 올림말에다 해 오고 있으나, 이는 발음란에다 보여 우리말에서도 맞춤법과 구분시켜 발음에 대한 이해를 높였어야 했을 것이다.
다시 위의 두 사전에서, 앞의 《1962》 올림말 '분렬[-열]'에는 '발음' 표시가 있고, 《1981》 올림말에는 없어졌다. 이는 그간 북한에서의 표준발음법의 변화라 하겠다. 곧 그 "규범집"(1966) 표준발음법 제35항(8)에 준하게 된 현상으로 보인다.
북한 사전에서의 발음 표시는 맞춤법 형태와 차이나는 발음의 경우를 두루 보여 왔다. 따라서 보편적 현상인, '닿소리이어바뀜'이나 '거센소리되기' 등도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는 '어원란'의 한자가 있고 없고 차이이다. 앞의 사전 목록 해제에서 본대로 《1962》사전 뒤로는 한자, 로마자 등의 어원을 일절 밝히지 않고, 한글로만 사전을 편찬해 오고 있다. 다만 서양 외래어인 경우, 나라 표시 없이 풀이란에 (들어온 말)이라는 표지만 보일 뿐이다.
북한의 '문법 형태'로서 사전 올림말에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다. [ ] 안의 것은 《문화어문법규범》(1971) 이전의 술어이다.
한편, 올림말의 벗어난 끝바꿈 형태는 "어음 교체"(1966) 또는 "소리바꿈"(1981)이라 하여, 올림말 옆에 그 대표적 형태를 ( ) 속에 보이는 식으로 일관하였다. (보기 : 곱다(고우니, 고와)[형]...). 이는 《문세영》(1938)에서 이미 써 온 방식이기도 하다.
두 사전은 '뜻풀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포'의 풀이를 보면 《1962》에서는 생물학적인 뜻갈래가 첫째 뜻이고, 《1981》에서는 이 뜻갈래가 맨 나중으로 밀려났다. 대신 첫째 풀이란에 김일성 어록을 먼저 인용하고, 그 아래에 인용 어록에서 따온 풀이를 하고 있다.
이는, 한 올림말에 여러 뜻갈래가 있을 경우, "정치 사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앞에 놓는 원칙(9)과 수령이 "개념이나 본질 또는 어휘적뜻을 정식화하여" 준 것은 그 교시를 정중히 모시고 그에 기초한다(10)는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이 같은 인용 시 뜻풀이는 1969년의 《현대조선말사전》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일반 뜻풀이 형식으로서는 기본적인 뜻에서 파생적인 뜻으로 열거하되, 기본 뜻갈래 ①, ②, ¨é......와 "의미적 색체" 또는 "뜻빛갈"(11)이라 하여 속뜻갈래(표지:1) ), 그리고 "뜻의 묶음"이나 "문법적 부류"가 다른 때 큰갈래를 Ⅰ, Ⅱ, ¥²...으로 지어 세 차원 풀이 방식을 썼다. (보기로서, '밝다'를 참고하기 바람.)
문법적으로 다른 기능이 있더라도 대체로 한 형태 올림말에서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름씨와 매인이름씨(주로 단위말. 보기: 간, 알, ...), 일부 이름씨와 씨가지(보기: 공, 무, 유, 과, 짓, ...), 일부 이름씨와 어찌씨(보기: 모두, 잘못, ...), 또는 입음꼴과 하임꼴, 제·남·도움 움직씨, 일부 움직씨와 그림씨 들을 한 올림말에서 다루고 있다(보기는 생략함.)
그리고 각 풀이는 언어 사전으로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회, 정치 용어나 전문 술어는 소백과사전식으로 길게 설명하고 있다.
끝으로 두 사전은 '~하다, ~되다' 파생말(움직씨) 처리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1962》에서는 풀이 없이 기본 올림말 자리에 배열하여 어근적인 말을 참고하도록 하였고, 《1981》에서는 어근적인 말의 풀이 뒤에 파생 낱말 형태만을 보였다(위 보기의 '분렬하다, 분렬되다'의 경우임.). 그러나 두 사전은 그 어근적인 낱말이 자립적이든 비자립적이든 '~하다' 그림씨인 경우는 일일이 기본 올림말 자리에 '~하다' 그림씨로 올려 풀이를 하고 있다.
이는 파생 낱말의 수가 많고 번진 뜻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으로, 《문세영》(1938)에서부터 어근적인 낱말 풀이 뒤에 '~하다[자, 타, 형]' 형태만 제시해 오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1962》에서 '~되다'까지, 또 《문화어사전》(1973)에서는 '~시키다'를 추가하여 보여 왔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른 글로 미루기로 한다.(12)
이상으로 북한 사전의 짜임새를 각 요소별로 살펴보았다. 이 밖의 두 사전에서 같은 올림말의 서로 다른 형태 잡기라든지 서로 차이나게 기술된 의미 분석 또는 보기글 등을 더 살펴볼 수 있겠으나 줄이기로 한다.
4. 마무리
분단 40여 년에 걸친 북한의 국어사전 편찬 상황과 그 모습들을 총괄적으로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북한의 언어 정책이란 그 표준말인 "문화어"의 규범화에 있다고 하겠다. 어휘, 문법, 표현 등 모든 사실에 규범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사전 편찬도 그 언어 규범화의 한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북한의 언어 정책과 세월의 경과는 분단 직후 그나마 유지되던 한겨레로서의 언어 전통이 점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사전의 기능 또한 혁명 교양과 발전을 위한 문헌으로서 더욱 그 자리를 굳혀 왔다.
그러나 근간으로 알려지는 《한자말사전》편찬 소개글 같은 데서 볼 수 있듯이, 현실 언어의 규범화 이면에는 전통 언어에 대한 완전한 외면은 불가능했음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옛말 사전 같은 편찬에도 더욱 손대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본다. 사전 편찬이란 현실적으로 쓸 말만 규범화하여 다루는 일이 아니고, 언어의 역사성과 언어의 본 모습을 기술하여 간직해 가야 하는, 정치 사업 아닌 문화 사업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북한 사전의 내용이나 체재에서, 대개의 고유 명사를 처음부터 배제한 것과, 기본 낱말의 뜻풀이들에 나타난 성과, 자세한 발음 표시, 말다듬기에 따른 다듬은 말의 반영 등은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림말의 형태 분석을 하지 않은 점, 긴소리 표지를 없앤 점, 외래어의 어원을 아주 없앤 점, 《1962》사전 뒤로 보기 인용문으로서 한 통치자의 어록이나 정치 사상 교양의 글, 또는 혁명 문예물 중심으로 엮어진 점은 퇴보라 아니 할 수 없다. 뜻풀이에서도 보편성(일반성)보다도 정치성이나 사상성 또는 수령의 교시적인 뜻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점 등은 언어 기술에서조차 정치성과 개인 숭배를 떨치지 못하는 북한 사회의 불합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순수한 언어 사전의 면에서 비자립어 다루기는 서로가 다 미흡하다 하겠다.
이제, 나라 통일과 한겨레 국어의 통일을 생각해 볼 때, 언젠가는 남북의 언어를 함께 다루어야 할 사전 편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맞춤법, 표준말, 문법 등의 통일이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또 한겨레 말 사전 편찬에는 남북의 언어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우리 교포들이 간직하고 있는 모국말들도 아울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 남북의 언어학자들과 사전 편찬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먼저, 한겨레 문화 바탕으로서의 바른 국어 의식을 가다듬고, 전날 어려웠던 역사 속에서도 선인들이 이룩했던 국어 통일의 노력과 사전 편찬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