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어의 음운 현상
Ⅰ
88서울 올림피아드를 전후해서 구체적으로 일기 시작한 中·蘇를 비롯한 東歐圈 국가들과의 교류는 光復 후의 큰 변화라 하겠다. 그런데도 오직 北韓만은 이러한 국제적 추세인 개방 정책을 외면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며칠 전 外信은, KAL기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가 완화된다 했고, 이어서 11월 2일에는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국제 전략 연구소와 북한의 사회과학원이 학술 교류 협정을 체결, 6개월마다 왕래하면서 정례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소식에 접하면서, 어찌해서 동족끼리의 학술 교류는 늦어지는가 하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이번 북한의 문화어에 대한 검토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글은 극히 제한된 자료만을 가지고 문화어의 음운 현상에 관하여 우리의 표준어와 대비해서 두드러지게 다른 몇 가지를 검토함으로써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에 一助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씌어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표기에 관하여는 다른 분의 글이 있으므로, 이 글은 제목대로 음운 현상만을 다루어야 할 것이나, 그것이 표기와 관련되는 부분은 부득이 표기 문제까지 언급돼 있으므로 이 점 양해를 바란다.
Ⅱ
음운 현상을 다룸에 있어서 무엇보다 음운 체계를 언급해야 할 것이나, 이에 대하여 남북의 용어는 좀 다르지만 구체적인 차이는 없다.
모음에서 단모음 10개, 이중 모음 11개, 자음 19개를 설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단모음 중에서 'ᅬ, ᅱ'를 남한에서는 표준 발음법 제4항 붙임에서 이중 모음으로 발음할 수 있다고 했는데, 북한의 표준발음법 제3항에서는 《ᅱ》를 어떤 환경에서나 홑모음(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것이 다르다.
이 밖에 음절 말 위치에서 변별적인 받침은 일곱 개 쓰인다든지 하는 것은 같다. 그리하여 두드러진 차이가 아닌 것은 줄이기로 한다.
1. 두음 법칙
이는 가끔 歸順人士의 기자 회견 같은 데서 들어서 일반에도 익히 알려져 있는 것인데, 문화어에는 두음 법칙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이에 관한 규정을 대비해 보기로 한다.
* 이 맞춤법과 다음에 인용하는 표준어 규정은 1988년 1월 문교부가 고시하여 1989년 3월부터 시행키로 된 개정안을 따른 것이다.
남한 | 북한 | |||||||||||||||||||||||||||||||||||||||||||||||||||||||||||||||||||||||
맞춤법* 제3장 제5절 제10항: 한자음 '녀, 뇨, 뉴, 니'가 단어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법칙에 따라 '여, 요, 유, 이'로 적는다.(ᄀ을 취하고, ᄂ을 버림.)
[붙임 3] 둘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고유명사를 붙여 쓰는 경우에도 붙임 2에 준하여 적는다.
(ᄀ을 취하고, ᄂ을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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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규범집 맞춤법 제7장 제26항: 한자어는 음절마다 한자어의 현대소리에 따라서 적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표준발음법 제2장 단어 첫머리의 발음 제5항: 《ᄅ》은 모든 모음 앞에서 [ᄅ]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자음 《렬》, 《률》과 관련된 발음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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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대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에 해당되는 어휘는 모두 漢字語이며 [r]이나 [n]으로 시작되는 외래어가 관련된다. 여기서 후자의 외래어 표기는 다를 것이 없으나, 전자의 한자 표기에 대하여 그 차이를 좀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平安 方言의 한자음과 아울러 적이 본다.
남한 | 북한 | 평안 방언* | |
螺旋形 | 나선형 | 라선형 | 나선형 |
羅針盤 | 나침반 | 라침반 | 나침판 |
糧穀 | 양곡 | 량곡 | 낭곡 |
旅客機 | 여객기 | 려객기 | 너객기 |
歷史 | 역사 | 력사 | 넉사 |
陸橋 | 육교 | 륙교 | 눅교 |
理念 | 이념 | 리념 | 니넘 |
來日 | 내일 | 래일 | 내일 |
例年 | 예년 | 례년 | 네넌 |
女傑 | 여걸 | 녀걸 | 너걸 |
念願 | 염원 | 념원 | 넘원 |
泥土 | 이토 | 니토 | 니토 |
이상으로 보아 문화어가 평양 중심의 말이 기반이 되긴 했으나, 평안 방언이 그대로 쓰인 것은 아니며, 그들 나름의 언어 정책에 따라 漢子 語彙의 발음을 人爲的으로 改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저 東國韻式 漢字音의 개신을 생각케 하는 일면이 있다.
남한의 표기는 언어 현실을 그대로 표기에 반영한 데 비해서, 북한은 일률적으로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음운 변동을 원칙적으로 인정치 않고 특히 語頭에서 표기대로 발음할 것을 규범으로 하고 있다. 이는 평안 방언과도 관련이 없는 것임을 위의 대조로 쉬 알 수 있을 것이다. 語頭 환경 이외는 대체로 같은 발음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남북의 차이는 앞으로 통일의 그날에 대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다. 이에 대한 필자의 私見은 다음과 같다.
곧 表記와 發音을 二元的으로 갈라 보자는 것이다. 生成 音韻論에서의 基底形과 같은 것을 표기로 삼고, 이에 두음 법칙이란 음운 규칙의 적용을 거쳐서 表面形 음성 표시[발음]가 유도되어 나오는 것으로 한다. 그러면 표기는 語頭나 語中을 막론하고 [r-], [n-]을 그대로 적용하고, 발음은 환경에 따라 달리 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북한의 일반 言衆의 발음이 과연 그 규범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현재 평안 방언에서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강압적인 독재로 언어 현상마저도 지배자의 명령으로 바뀌어 버린 것인지 이런 등등이다.
2. ᄃ·ᄐ 구개음화
이는 북한에서 고유어 용어 '입천장소리되기'를 쓰고 있는데, 평안 방언하면 단적으로 餘他 方言과 비교해서 ᄃ·ᄐ의 구개음화를 수용하지 않은 것 한 가지만으로도 구별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화어는 남한의 구개음화 규정이나 같으며 발음도 역시 같은 것이다. 이에 관련되는 조항을 다음에 대비해 보인다.
남한 | 북한 |
표준 발음법 제5장 제17항: 받침 'ᄃ, ᄐ(ㄾ)'이 조사나 접미사의
모음 'ᅵ'와 결합되는 경우에는, [ᄌ, ᄎ]으로 바꾸어서 뒤 음절 첫소리로 옮겨 발음한다.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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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발음법 제7장 제23항: 받침 《ᄃ, ᄐ, ㄾ》 뒤에 토나 접미사인 《이》가 올 때 받침 《ᄃ, ᄐ》은 그 《이》와 어울려 각각 [지, 치]로 발음한다.
맞춤법 제6장 제20항: 자음으로 시작한 접미사가 어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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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덧붙일 것은, 앞서도 지적한 것처럼 平安 方言은 40년대까지도 구개음화를 몰랐었는데, 이와 관련되는 어휘에 관한 언급은 없다. 결국 이 또한 남한의 표준어와 같이 구개음화한 것을 문화어로 삼았음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북한의 사전 표제어가 보여 주는 대로다.
<보기> | 남한 | 북한 | 평안 방언 | 전기(電氣) | 좋다 | 중병(重病) |
지다[落] | 천지(天地) | 체면(體面) | 치다[打] | 전기 | 좋다 | |
중병 | 지다 | 천지 | 체면 | 치다 | 던기 | |
돟다 | 둥병 | 디다 | 턴디 | 테면 | 티다 |
3. 모음 동화
1) 모음조화
이에 관련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
남한 | 북한 |
맞춤법 제4장 제2절 제16항: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ᅡ, ᅩ'일 때에는 어미를 '―아'로 적고, 그 밖의 모음일 때에는 '―어'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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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제2장 제11항: 어간이 《아, 어, 여》 또는 《았, 었, 였》과 어울릴적에는 그 어간의 모음의 성질에 따라 각각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적는다.
그러나 어간의 끝음절에 받침이 있을 경우에는 《어, 었》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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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비교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남한에서는 모음조화에서 양성 모음으로 'ᅡ, ᅩ'를 북한에서는 'ᅡ, ᅣ, ᅩ'를 들었으나, 실제 활용에서는 마찬가지다. 곧 남한에서 '얇다'는 '얇아, 얇았다'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에서는 어간의 모음을 'ᅡᅳ, ᅩᅳ' 'ᅥᅳ, ᅮᅳ' 등 자세하게 밝혀 놓았으나, 이것 역시 활용은 남한에서도 마찬가지니 별다른 차이가 없으나, 다만 북한의 3항 '기여, 개여...'와 같이 적는 것이 다른데, 이는 다음 ᅵ모음 순행 동화에서 언급할 것이다.
2) ᅵ모음 순행 동화
먼저 관련 조항을 대비해 보인다.
남 한 | 북 한 |
표준어 규정 제5장 제22장: 다음과 같은 용언의 의미는 [어]로 발음함을 원칙으로 하되, [여]로 발음함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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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제2장 제11항: 3) <앞에 인용한 대목임.> |
위의 비교로 보아서 북한은 ᅵ모음 순행 동화를 완전히 표기에 반영하여 맞춤법에서 규정한 데 비해서, 남한은 표준어 규정의 표준 발음법에서 다루어 표기는 동화되지 않는 것으로 하고, 단지 발음만 허용한 것이 다르다. 결국 북한의 것은 발음에 가까운 표기라면, 남한은 표기의 보수적인 면이 더 짙은 셈이나, 음운의 변동으로 본다면 남북한이 다를 것이 없게 된다.
3) ᅵ모음 역행 동화
이에 관한 남북한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남한 | 북한 | ||||||||||||||||||||||||||||||||||||||||||||
표준어 사정 원칙 제2장 제9항: 'ᅵ' 역행동화 현상에 의한 발음은 원칙적으로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아니하되, 다만 다음 단어들은 그러한 동화가 적용된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ᄀ을 표준어로 삼고, ᄂ을 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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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발음법 제7장 제30항: 《ᅡ, ᅥ, ᅩ, ᅮ》가 그 뒤의 음절에 있는 《ᅵ》의 영향을 입어 [ᅢ, ᅦ, ᅬ, ᅱ]로 각각 변하는것은 바른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문화어로 결정되여 맞춤법에서 이미 고정된것은 여기에서 문제로 삼지 않는다.)
앞모음되기 강냉이, 뭉테기 ᅡ, ᅥ가 앞모음 ᅢ, ᅦ로 된것은 뒤에 있는 《ᅵ》의 영향을 입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말에서는 뒤에 모음 ᅵ나 ¡*가 오는 경우에도 앞모음으로 되지 않는것이 규범으로 되여있다. 따라서 앞모음으로 이미 되여버린것은 력사적인 변화현상이라고 말할수 있다. |
남북한 모두 원칙적으로 'ᅵ모음 역행 동화'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는 같다. 그러나 이들의 실지 발음은 동화된 것으로 나는 것 또한 거의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예외를 얼마만큼 인정하느냐? 또한 통시적인 변천의 기준이 문제되어 이를 반영한 단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남한의 규정에 언급된 단어를 북한의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시골내기, 냄비, 동댕이치다, 아지랭이, 멋쟁이, 소금쟁이, 담쟁이덩굴'은 남북이 같고, '미쟁이'는 다르며, '유기장이, 골목쟁이, 발목쟁이'는 표제어로 나와 있지 않았다.
4. 사이시옷
이는 남북한이 표기에 있어서는 두드러지게 다른 것의 하나이지만, 실제 발음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본다. 다음에 관련된 규정을 대비한다.
남한 | 북한 |
맞춤법 제4장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1. 순 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표준 발음법 제6장 |
맞춤법 제4장 제18항: 종전에 써오던 사이표(')는 발음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없앤다. 표준발음법 제8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32항: 합성어(또는 접두사와 어근이 어울린 단어)의 첫 형태부가 모음으로 끝나고 둘째 형태부가 《이, 야, 여, 요, 유》로 시작될 때는 그사이에서 [ᄂ ᄂ]를 덧내여 발음한다. 례: 바다일-[바단닐] 대잎-[댄닢] 수여우-[순녀우] 제33항: 앞 어근이 모음으로 끝나고 뒤 어근이 순한소리*나 유향자음으로 시작한 합성어에서는 그 두 어근 사이에서 받침소리 [ᄃ]를 덧내는것처럼 발음한다. 례: 배전-[밷전→밷짼] 배머리-[밷머리→밴머리] 가위밥-[가윋밥→가윋빱] 제34항: 합성어의 앞 어근이 유향자음으로 끝나고 뒤 어근의 첫소리가 순한 소리일때는 그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한다. 례: 그믐달-[그믐딸] 손등-[손뜽] 표준발음법 제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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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한소리'는 우리의 平音[예사소리]에 해당된다.
이상으로 보아 남한에서는 사이시옷은 조건부로 표기에 반영된 데 비해서, 북한에서는 1966년 6월 '조선말규범집'이 나오기 전에는 사이표[']를 써서 '배'전'처럼 적던 것을 그 이후 일체 쓰지 않기로 하고, 다만 표준 발음에서 위와 같이 사잇소리 발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발음에 있어서는 남북한이 거의 같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표준 발음법 제28항에 언급된 내용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자어의 경우, 남한에서는 보기에 든 6개 단어 외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으므로, 이것이 북한에 비하면 다르나, 발음은 같으며, 이 밖의 한자어는 발음과 표기가 모두 같다.
다만 북한의 발음법 제43항은 접미사적 용법의 한자 '~科, 課, ~法' 등 일곱자에 대해 된소리 발음으로 규정한 바, 이 중에는 남한보다 된소리의 변동을 일률적으로 또는 더 인정한 것이 있어서 그네들의 발음이 더 거센 느낌을 준다고 하겠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적'의 경우, 어근의 끝소리가 유성음일 때는 그대로 '架空的'[가공적]과 같이 예사소리로, 그 끝소리가 무성음일 때는 '合法的'[합법쩍]과 같이 된소리로 내는 경향이 있는데, 북한은 2음절 이상으로 된 어근의 끝소리가 유성 자음일 때는 [적]으로 발음하는 경우와 [쩍]으로 발음하는 예외(혁명적[형명쩍], 협동적[협동적]) 정도가 있고, 거의 [쩍]으로 발음하는 것 등이다.
Ⅲ.
이상 문화어의 음운 현상을 남한과 대비해서 비교적 차이가 나는 몇 가지를 살펴보았거니와,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음운 현상에서 제일 큰 문제는 두음 법칙으로 귀착되게 된다. 이에 대한 것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앞으로 본격적인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 참고 문헌
金敏洙(1985), 北韓의 國語 硏究, <資科> 1, 조선말 규범집, 高麗大 出版部.
신현숙(1988), 《로동신문》을 통해서 본 북한의 언어 현상, 한글 200호.
국어 연구소(1988), 맞춤법 해설.
___________(1988), 표준어 규정 해설.
과학, 백과사전출판사(1979), 조선문화어문법.
____________________(1981), 현대조선말사전(상·하) (제2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