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어와 말다듬기

심재기 / 서울대 교수·국어학

1. 머리말
    1.1. 최근에 이르러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고자 하는 염원이 더욱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가려면 그 동안 남북 분단으로 가려져 있던 북한의 언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북한 사람들은 언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는 세 차례에 걸친 남북 분단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는 8·15 광복과 더불어 나타난 38선에 의해 국토가 분단된 것이요, 두 번째는 1948년 남한과 북한이 각각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국가가 분단된 것이요, 세 번째는 1950년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드디어는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는 원수 사이가 되어 버려 민족이 분단된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세 차례에 걸쳐 도막난 우리 민족은 40여 년 간 아픈 상처를 쓰다듬으며 어떻게 하든지 통일의 기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나 멀지 않은 장래에 그날이 올 것만은 분명하므로 우리는 그때에 대비하여 부단히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다지는 작업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러한 작업 가운데 하나가 북한의 실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요, 그 일에는 북한의 언어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북한의 언어, 그중에서도 "문화어와 말다듬기"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두 가지 주변 문제를 지적하기로 하자. 이것이 북한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방편이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1.2. 우선 북한에서 간행한 책을 펼치면 우리가 예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사실 두 가지에 접한다. 첫 번째는 어떤 분야의 책이나 다 예외는 아니지만 특히 언어 관계 책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많은 현상인데, 책의 중간중간에 고딕체로 인쇄된 부분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 부분은 대체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라는 구절 다음에 나타난다. 근자에 이르러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라는 구절이 앞의 것을 대신하여 적히기도 한다. 진실로 흥미로운 것은 언어 문제에 관한 한, 상당히 세부적인 문제에까지 교시와 지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 놀라운 사실은 문단 나누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하나의 문장이 끝나면 대개 줄을 바꾸어 새 문장이 시작된다. 문단 구분이 제대로 된 책에 익숙한 사람들은 북한의 책을 처음 대할 때, 문장이 끝나면 거의 예외 없이 줄이 바뀌는 통에 글의 맥락을 잡아 읽어 나가는 데 얼마간 혼란을 느끼게 될 것이다.
    1.3. 다음으로 알아야 할 예비 사항은 북한의 어문 정책이 1945년 이후 어떤 변천을 하여 왔는가를 개괄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1945년 해방 직후에 북한의 문맹은 약 230만에 달하였다. 그래서 1947년 12월부터 1948년 3월까지는 '문맹퇴치 돌격운동기간'이라 하여 한글 교육을 광범위하게 실시하였으며 1948년부터는 한글 전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49년 초에 이르러 문맹 퇴치가 일단 완수되었다고 보고 한자 사용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문맹 퇴치, 한글 전용, 한자 사용 폐지 이 세 가지 사건은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에 일어난 북한 어문 정책의 기본 특질로 주목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사건은 그 뒤를 이은 어문 정책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1946년 5월에는 조선어 학회가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새 맞춤법'을 쓰도록 하였으나 1954년 9월에 '조선어 철자법'을 새로이 제정하여 공포하였다. 8장 56항으로 되어 있는 이 철자법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1) 字母의 수를 子音 19개, 母音 21개로 하여 40개로 정한 것. ᄁ, ᄄ, ᄈ, ᄊ, ᄍ, ᅢ, ᅤ, ᅦ, ᅬ, ᅱ, ᅪ, ᅯ, ᅫ, ᅰ 등을 독립 자모로 취급하여 차례를 규정함으로써 사전이나 모든 색인에서 자모의 배열 순서가 달라지게 되었다.
2) 락원(樂園), 량심(良心) 등의 표기를 부활시켜 국어의 두음 법칙을 없애 버렸다.
3) '하였다'에서 '여'로 적는 것처럼 '되였다', '비였다', '개였다' 등으로 발음에 따른 표기를 확대하였다.
4) 준히읗(다정ᄒ다, 례ᄒ건대)을 원칙으로 쓰기로 하고 사이시옷 대신에 부호 , 를 적기로 하였다(기'발, 일'군, 리'과(理科)). 이 중에서 마지막 항목인 준히읗과 사이시옷 대신의 부호 '만 1996년에 제정된 '조선말 규범집'에서 폐기되고 그 외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맞춤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1954년 이래 북한과 남한은 서로 다른 체제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1964년과 1966년의 두 번에 걸친 김일성 담화문이다. 1964년의 담화는 해방 이후 계속하여 온 어문 정책을 회고하고 좀 더 적극적인 시책을 펴기 위한 기초 작업의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한다면 1966년의 담화문은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선언하여 어문 정책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이었다. 바로 이 선언에서 이른바 "문화어와 말다듬기"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 두 개의 담화문 내용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2. 어문 정책을 밝힌 담화문
    2.1. 첫 번째 담화문
    1964년 1월 3일, 김일성은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문제'라는 제목의 담화문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를 거론하였다. 하나는 문자 개혁 문제이고 또 하나는 조선어의 우수성을 확보하는 문제이었다.
    문자 개혁 문제는 북한에서 진작부터 논의되어 오던 풀어쓰기에 관한 김일성의 견해를 천명한 것이었다. 한동안 활발하게 풀어쓰기 문자 체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김두봉을 숙청한 후로 잠잠하였었는데 그에 관한 김일성의 단호한 공식 견해가 이 담화문에서 밝혀진다. 그 요점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문자 개혁이 부당한 첫째 이유는 민족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분단된 남조선의 문자 생활을 고려하지 않았다.
2. 문자 개혁이 부당한 둘째 이유는 과학과 문화의 발전에 큰 지장을 준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 문자 개혁이 부당한 셋째 이유는 국제적인 추세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제화(공산주의 국제화)를 모색하더라도 민족적인 것을 살린 뒤에 서서히 해야 하는데 이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조선어의 우수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어휘 문제, 표기 문제, 정책 문제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하고 있다. 어휘 문제는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고유어만 쓰고 한자어는 제한 사용하며 더 나아가 한자어를 없애고 우리말로 고쳐 말하는 문제를 강조하고 또 한자어 이외의 외래어에 대하여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자는 주장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이것은 66년의 담화문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심화된다). 표기 문제는 漢字를 일정한 시기까지만 잠정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 數字를 萬단위 기준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 띄어쓰기는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는 것 등을 언급하였다. 끝으로 우리말을 정리하기 위하여서는 철저한 조사 연구와 강한 통제를 통하여 사상적으로 무장한 사회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의 강화와 사전 고치기까지도 주장하였다.

2.2. 두 번째 담화문
    1966년 5월 14일 김일성은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데 대하여'라는 담화문을 발표한다. 이 담화문은 이른바 김일성 주체사상이 언어의 측면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 담화문이 발표된 때를 시발점으로 하여 북한과 남한은 언어상의 이질성이 더욱 심화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문화어'와 '말다듬기'의 이론적 배경은 바로 이 담화문에 소급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나라는 정치·경제·문화의 교류로 외래 요소가 많이 들어왔다. 언어도 서양의 외래어, 중국어 한자어, 일본어가 많이 쓰인다. 특히 남한의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는 심각하여 민족적 특성을 상실할 위험에 놓여 있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북한에서만이라도 한자어와 외래어를 고유한 우리말로 고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외래어는 국어사정위원회에서 제대에 새 말을 만들어 보급해야 하고 한자어를 고칠 때에는 그대로 두고 사용할 것, 뜻폭이 같지 않은 것은 조심해서 고쳐 나갈 것, 단어들의 결합 관계도 고려하여 고쳐 나갈 것 등을 유념해야 한다.
2. 문화어를 설정하여 북한의 언어를 민족 특성이 살아 있는 언어로 발전시켜야 한다.
3. 말다듬기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실천 사항을 통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가) 말다듬기의 재료를 신문 같은 곳에 실어 대중의 평가를 받도록 한다.
나) 서둘지 말고 오랜 동안에 걸쳐 하나하나 차분히 해 나가야 한다.
다) 교육 기관, 언론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진행시킨다. 신문사, 방송국은 草案을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학교에는 교과서를 인쇄하여 보급한다.
라) 옛날 책 번역에 힘쓰되 한자어는 안 쓰도록 해야 한다. 옛날 전설이나 소설 등 문 학 작품의 번역도 해 두어야 한다.
마) 한자어는 가급적 쓰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학생들에게 필요한 한자는 가르쳐야 한 다.
4. 글자 개혁 준비는 서서히 진행하여야 한다. 한편 띄어쓰기도 좀 더 잘 고치도록 하고 '조선말 규범집'은 우선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

위와 같은 내용의 66년 담화문은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언어 정책을 이끌어 온 이론적 지주의 구실을 하고 있다.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보면 흥미롭게도 몇 가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장래에 통일된 민족 국가를 염원한다고 하면서 '문화어'라고 하는 북한만의 표준어를 제정하여 남북한간의 언어적 이질성을 조장하려 한다는 점이다. 남한의 언어가 외래어와 한자어가 난무하는 잡탕말이기 때문에 남한의 표준어를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것이 문화어를 설정하는 이유라고 하지만, 그것은 서울말을 표준어의 바탕으로 하는 남한의 표준어를 정치적·사상적으로 따를 수 없음을 표현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둘째는 한글 전용, 가로쓰기 전용 등 남한에서는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書法體裁까지 규정하여 남한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면서 漢字 교육은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남한에서 漢字를 사용하고 있는 한 북한에서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漢字 교육의 이유인데 사실에 있어서는 한글 전용을 수십 년 강행한 결과가 어문 생활에 지장을 가져왔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0여 년 간 그토록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문화어' 확립과 '말다듬기'에 정열을 쏟고 있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을 듯 싶다.
    '주체사상'이란 이름 아래 시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업 가운데서 문화어와 말다듬기는 겉보기에 정치나 이념의 문제를 떠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사업을 통하여 북한 주민들의 정신 세계를 지속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利點을 지나쳐 버릴 수 없다. 더구나 이것은 특별히 돈이 드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적·경제적 불만을 말다듬기라는 민족 주체성 찾기 사업에 대치시킴으로써 해소시켜 보자는 底意가 없는지 깊이 검토해 볼 문제라고 생각된다.

3. 문화어와 말다듬기
    3.1. 문화어
    나라의 체제를 갖추고 남한과의 경쟁적 대치 상태에서 무언가 독자성을 확립하자면 서울말을 바탕으로 하는 종래의 표준어 곧 남한의 표준어로부터 독립된 다른 공용어를 가져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문화어 설정의 기본 발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장래에 민족 통일을 도모하여 하나의 표준어를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민족적 대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모든 척도, 모든 기준이 김일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 사회에서 언어라고 해서 예외가 없는 것이고 보면 결국 문화어라는 것은 김일성이 사용하는 언어를 바탕으로 한다고 간단하게 이해할 수도 있다. 66년 담화문에는 문화어 설정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 말을 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터를 잘 닦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혁명의 참모부가 있고,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방면에 걸치는 우리 혁명의 전반적 전략과 전술이 세워지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을 중심지로 하고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언어의 민족적 특성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표준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리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우리가 혁명의 수도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발전시킨 우리 말을 표준어라고 하는 것보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면 북한에서는 어떤 것을 문화어라고 생각하는가? 다음은 '조선어학개론'에 언급된 문화어 해설 부분이다.     "문화어와 방언은 서로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호상 작용하고, 호상 영향을 주고 있다. 문화어는 방언 가운데서 쓸모있는 전형적인 언어적 요소들을 섭취하여 자체를 풍부화시키며 또한 방언 속에 침투하여 불필요한 방언들을 밀어내기도 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지역적 방언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점차로 제거되어간다.
    근로자들은 문화어를 소유하게 되고 문화어는 전체 인민의 공동의 소유물로 된다.
    문화어 어휘란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인민적 토대에서 세워진 고도로 규범화된 어휘이다. 정확성, 통속성, 표현성의 점에서 그리고 민족적 특성을 높이 발양시키고 그것을 현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는 점에서 문화어 어휘는 교제의 수단, 사상교환의 수단으로서의 전형이며 세련된 어휘수단으로 된다."

이렇게 정의되고 해설된 문화어 어휘는 결국 방언과의 대비 속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는데, '나락'에 대하여 '벼', '나조'에 대하여 '저녁', '당추'에 대하여 '고추'를 각각 문화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한의 처지에서 보면 북한에서 일반화하였으나 남한에서는 생소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문화어의 범위에 드는 것일 수밖에 없으니, 결국은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가 '문화어'라는 이름 아래 더욱 가속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밑줄 친 부분에 유의할 것).

◎ 이 가사를 종합적으로 볼 때, 그 우점은 무엇보다도 후렴구가 본절의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지며 가사가 요구하는 사상적 내용을 부각시켜 주는 역할을 훌륭히 놀고 있다는 것이다.
◎ 파악있게 다듬었다.
◎ 다듬어 쓸 수 있는 대안으로 각각 복무하게 된다.
◎ 주체적인 립장이 아닌만큼 접수될 수 없었으며,
◎ 단어만들기감으로 리용할 때 망탕 쓰지 않았다.
◎ 정리대상이 옳게 규정되어야 어휘정리 전반을 편향없이 정확히 진행할 수 있다.
◎ 학술용어를 만드는 데서 절실한 문제로 나선다.
◎ 결국은 민족을 갈라놓는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 당이 옳은 방향만 내세우면 대중은 인차 그것을 따라옵니다.

이상으로 북한 서적에서 임의로 뽑은 몇 대목은 북한의 언어가 어휘 면에서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우점(優點), 파악(把握), 복무(服務), 접수(接受), 편향(偏向), 후과(後果)' 등은 한자어를 줄인다는 목적에 위반되는 듯하며 '망탕, 인차' 같은 부사어는 남한 사람들로서는 방언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북한어 문화어 보급 정책의 일환으로 '문화어학습'이라는 얄팍한 잡지를 간행한다. 과학, 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서 계간으로 발행되는 이 잡지는 표지를 포함하여 60여 면의 소책자로 1988년 가을 호가 통권 154호에 이르렀다. 편집 체재는 거의 고정적으로 짜여지는데 1부 논설, 2부 창작, 3부 교육, 4부 일상생활, 5부 우리말 지식, 6부 고정 칼럼 등 여섯 단위로 나뉘는 것이 보통이다. 내용은 초·중등 학교의 교육용으로 보면 좋을 수준의 글들이다. 그중에서도 고유어를 발굴하여 어휘력을 증대시키고 어려운 말을 해설하여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의 기사가 주목된다. '어휘수첩'이란 고정란에 소개된 어휘 무리를 옮겨 적어 본다.

○ 눈과 관련한 말 몇 가지
눈가루, 눈갈기, 눈구름, 눈녹이, 눈바다, 눈발, 눈밭, 눈보라, 눈봉우리, 눈비, 눈석이, 눈송이, 눈꽃, 가랑눈, 밤눈, 봄눈, 상고대, 진눈까비, 첫눈, 함박눈, 싸락눈
○ 웃음을 가르는 말과 표현 몇 가지
간드러진 웃음, 너스레웃음, 너털웃음, 눈웃음, 덩단웃음, 명랑한 웃음, 빗웃음, 살기웃음, 선웃음, 소웃음, 자랑찬 웃음, 징그러운 웃음, 천진한 웃음, 코웃음, 함박웃음, 호걸웃음, 호탕한 웃음, 흐뭇한 웃음, 행복한 웃음, 희떠운 웃음, 깔깔웃음, 쓴웃음, 억지웃음, 인자한 웃음
○ 바람을 나타내는 말 몇 가지
가을바람, 갈마바람, 갈바람, 강바람, 건들바람, 겨울바람, 고추바람, 골바람, 높새, 눈바람, 늦바람, 돌개바람, 들바람, 된마, 된바람, 된새, 뒤바람, 마파람, 맞바람, 바다바람, 밤바람, 봄바람, 비바람, 산바람, 살바람, 서리바람, 선들바람, 소소리바람, 실바람, 새바람, 새벽바람, 색바람, 재넘이, 철바람, 칼바람, 하늬바람, 회오리바람, 꽃바람, 앞바람, 여름바람

이렇게 낱말을 늘어놓고 읽힘으로써 과연 어휘력이 증대될 것인가도 의심스럽고 또 이것들이 사전에 올린 정당한 어휘인가도 의심스럽다. '우리말 지식'부에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오"라는 고정란에는 대체로 어휘의 의미 또는 통사적 선택 제약 관계를 묻는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1987년 봄 호에는 18개의 물음이 있었는데 그중 절반을 순서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지팡막대>와 <지팽이>, <개화장>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2. <배웅하다>와 <배웅을 나오다>는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쓰이였습니까?
3. <눈치>, <코치>의 뜻의 차이에 대하여 알려 주십시오.
4. <떡심이 풀리다>에서 <떡심>은 무슨 뜻으로 씌였습니까?
5. <일손에 신바람을 일으키다>, <딴전을 보다>에서 <신바람>, <딴전>은 무슨 뜻을 가진 말입니까?
6. <왼심을 쓰다>에서 <왼심>의 뜻을 풀어 주십시오.
7. <마가을>과 <늦가을>, <저미다>와 <에이다>, <파란곡절>과 <우여곡절>, <창격전>과 <육박전>, <려객선>과 <유람선> 등은 뜻이 어떻게 다릅니까?
8. <규률>은 <균율>로 발음합니까? 아니면 <규율>로 발음합니까?
9. <장대비>와 <채찍비>는 어떻게 다릅니까?

그리고 1987년 여름 호에는 '國是, Wall 街, computer, 六月, 原書, 規律, 窮餘之策, 莫逆하다와 莫然하다, 三尺童子, 鐵瓮城, 勳章, 白衣同胞, 破竹之勢, 寤寐' 등 외래어와 漢字語의 쓰임과 의미를 묻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한글 전용의 餘波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어학습'의 논설문에는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여 문화어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글이 실린다. 언제나 비슷비슷한 내용이므로 아무 것이나 집히는 대로 뽑아 인용해 보기로 한다. 1986년 2호(여름 호)에서 강창조라는 필자는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밝히신 평양말이 표준이 되고 중심이 되여야 한다는 사상은 사회주의적민족어건설의 합법칙적 요구를 반영한 혁명적 사상"이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합법칙성을 사상성, 대표성, 역사성의 세 가지 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 끝 부분에서 對南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남한의 서울말은 한자 말과 외래어를 빼버리면 우리말로는 토밖에 남지 않는 형편이며, 구조적 요소가 온통 외국말의 말마디들로 뒤바뀜으로써 노동자, 농민들은 듣고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이 서울말에 넘쳐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서울말은 미제가 강요한 민족어말살정책이 빚어낸 남조선의 썪어빠진 언어생활과 언어모습을 집중적으로 반영하는 퇴화된 말이다."라고 마무리를 짓고 있다.
    이러한 논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꾸며대기도 한다. 다음은 1986년 1호(봄 호)에 '악명높은 매국역적'이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이다.

"<마더 오가네 달라.>, 이게 무슨 소린지 알아?
<마더 오가네 달라.>?
응.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어머니, 돈 달라.>는 소린데......"

남한에서는 "어머니 돈 주세요."를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허망하게 날조한 글을 대하면 북한의 언어 정책이 어떤 의도로 추진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서 문화어가 남한의 표준어와 그렇게 많은 차이점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이라 하겠다.

3.2. 말다듬기
    북한의 말다듬기는 우리말의 우수성을 살리고 부족한 점을 보충해 나간다는 명분으로 실시하는 일종의 언어 혁명이다. 이러한 작업은 한자 사용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한글 전용을 실시한 1949년 초부터 이미 그 싹이 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출판물이 한글로만 간행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쉽게 어떠한 내용의 글도 읽을 수 있게 되기는 하였으나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글자만 한글로 바뀌었을 뿐 전통적·관습적으로 통용되던 한자어는 그대로 사용되었으므로 특정한 문맥 속에서라고 하더라도 알아듣기 어려운 낱말들이 있는가 하면 동음이의어에 의한 혼동 같은 것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자어를 고유한 우리말로 쉽게 풀어놓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말다듬기는 겨우 한글을 뜯어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에게도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 있는 기술 용어 같은 것을 쉽게 알아듣게 하기 위하여 고유어로 풀어 말하도록 만드는 언어의 平準化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는 이른바 민족 주체성의 확립이라는 '주체사상'의 기치 아래 정치·사회 운동으로 추진됨으로써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64년 언어 정책에 관한 김일성의 첫 번째 담화문이 발표된 때로부터 8년이 지난 1972년에 이르러서는 이미 약 5만 개에 달하는 한자어 및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놓고 있다. 1964년에 말다듬기 사업을 착수하면서 그 실효성이 의심되자 1966년에 김일성의 두 번째 담화문이 발표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마도 그 후로는 이 작업이 그야말로 온 나라가 통틀어 들끓으며 힘 쏟는 사업으로 추진되어 왔을 것이다. 1966년 6월 이래 內閣 직속으로는 國語査定委員會를 두고, 社會科學院 國語査定指導處와 言語學硏究所 산하에 있는 18개 專門用語分科委員會들은 각기 해당 부분의 用語들에 대한 말다듬기 연구 토론을 벌인다. 그 내용은 매주 2, 3회에 걸쳐 신문 지상에 싣고 이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과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고유어로 평준화하는 북한의 국어 淨化 운동은 온 나라가 총력을 기울이는 정신문화 활동이다. 언어에 혁명성을 부여하고 언어를 도구로 삼아 백성들을 정신적으로 묶음으로써 정치적·사상적으로 교화하고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북한 위정자들의 의도가 짐작된다.
    그러면 이러한 말다듬기는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말다듬기의 대상
    어떤 어휘를 정리할 것인가가 정해져야만 그것을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어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눔으로써 시작된다. 첫째 부류는 반드시 정리해야 할 어휘이고, 둘째 부류는 눌러 두고 쓸 어휘이다.
    반드시 정리해야 할 어휘는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검토된다.

1) 고유어와 동의 관계에 있는 한자어와 외래어
2)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
3)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어휘

우리말에는 고유어와 한자어가 동의 관계를 보이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뽕밭'과 '桑田', '돌다리'와 '石橋', '송곳이'와 '犬齒', '남새'와 '菜蔬', '갈퀴'와 '레이크 rake', '갈치'와 '刀魚', '타이르다'와 '說諭하다', '하물며'와 '又況'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二重 構造로 존재하는 어휘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고유어 쪽을 계속 사용하고 한자어나 외래어를 버리자고 하는 것은 말다듬기의 일차적인 추진 방향이다.
    그리고 같은 뜻의 고유어가 없는 한자 말임에도 불구하고 '복아(複芽)', '아접도(芽接刀)', '기비(基肥)', '작규기(作畦機)', '발사(拔絲)', '조사(粗沙)' 같이 몹시 어렵고 까다로운 말은 쉬운 고유어로 만들어 쓸지언정 과감하게 버리자는 것이 또한 말다듬기에서 추구하는 목적의 하나이다. 이런 부류에 드는 낱말을 더 들자면 '지고병(枝枯病; 가지 마르는 병)', '돈복(頓服; 한 번에 먹음)', '연구기(燕口期; 입이 제비 주둥이처럼 벌리는 시기)', '구사(舊射; 활쏘기를 오래 한 사람)', '권매(權賣; 다시 무를 수 있도록 림시로 파는 일)' 등이다.
    한편 지난날의 낡은 사회가 만들어낸 반동적이고 뒤떨어진 사상을 반영하는 낱말,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적 자부심을 손상시키는 낱말도 정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낱말로는 '만세교(萬歲橋)', '반룡산(盤龍山)', '본정(本町)' 같은 지명을 들고 있다. 조선 왕조 시대의 봉건성과 일제의 냄새를 씻어내자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속하는 어휘는 계속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첫 번째는 토착화한 한자 말이다. '천지', '천상', '십상'과 같은 어휘를 우선 손꼽는다. '천지'는 '하늘과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무척 많은 상태, 가득 차 있는 상태'의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며, '천상'은 원래 '천생(天生)'의 말소리가 변한 것으로, '타고나서부터 천연스럽게 가진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이고, '십상'은 '십성(十成)'이라는 낱말의 말소리가 변한 것으로 '마침맞게'의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한자 말로서의 모양을 갖추고는 있으나 그것이 한자 말로는 거의 인식할 수 없게 된 것들이다. '수염', '비단', '약', '양말', '별안간', '여전하다', '골몰하다' 등과 같은 단어들이다.
    두 번째로 계속 사용할 어휘는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어휘이다. 예컨대 '필림', '텔레비죤', '아그레망', '로케트', '프로그람' 등과 같은 어휘이다. 또한 음악 용어 '피아니씨모', '알레그로', '메조포르테', '메조피아노' 같은 것은 악보에 기록되면서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것인 만큼 달리 다듬을 필요가 없다.
    끝으로 말다듬기에서 보류되는 어휘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어휘의 외래적인 성격으로 보아 마땅히 다듬어져야 하지만 당장 좋은 대안이 없을 경우 잠정적으로 놓아두는 어휘를 말한다. 여기에는 '아이스크림'을 예로 들 수 있다. 처음에는 적당한 우리말이 없어서 그대로 두었다가 '얼음보숭이'로 다듬어졌다. '가축(家蓄)'의 경우도 상당 기간 그대로 두었다가 '집짐승'으로 바꾸었다.
    둘째, 말다듬기의 작업 원칙
    어떤 낱말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하여 말다듬기의 대상으로 선정되면 새로운 말, 곧 다듬은 말로 바뀌게 된다. 이때에 다듬은 말이 지녀야 할 속성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다음의 네 가지 항목을 손꼽는다.

1) 실머리가 잘 잡힐 것
2) 의미가 뚜렷하고 알기 쉬울 것
3) 고유어의 단어만들기 규칙에 맞을 것
4) 말소리의 배합이 순탄할 것

낱말만들기에서 실머리란 이름지어 부르려는 사물 현상의 여러 특성 가운데서 그 이름을 짓는 계기가 되는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검어'라는 물고기는 주둥이가 칼모양으로 생겼으므로 '칼고기'라 하였다. "석탄이 몰켜서 무데기로 묻혀 있는 곳"을 '탄포케트'라고 하였었는데 그것을 '탄주머니'로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먼저 낱말의 번역이 되었으나 그 대상의 두드러진 특성을 낱말 만드는 실머리로 삼은 예이다. 물론 본래말과 일치시키지 않고 다른 실머리로 새 낱말을 만든 예도 얼마든지 있다. '포충망'을 '후리채', '도한(盜汗)'을 '식은땀', '락화생'을 '땅콩'이라 바꾸었으며 '픽숀'을 '꾸밈수', '핀트'를 '맞춤점'으로 바꾸었다. 의미가 뚜렷하고 알기 쉽게 하기 위하여는 본래말의 뜻과 일치시키는 경우도 있고 일치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계란'을 '닭알', '영아(嬰兒)'를 '간난애기'로 다듬은 것은 본래말과 뜻이 일치한 경우이고, 한자 말 '음성, 어성, 언성, 어음'은 모두 '말소리'로, 한자 말 '발로되다, 탄로되다, 로출되다'는 모두 '드러나다'로 바꾸었는데 이것은 본래말의 뜻폭이 다르지만 다듬은 말이 그 뜻을 모두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바꿀 수도 있었다고 한다. '에이치형주'는 '애(ᅢ)형태'로 바꾸어 민족적 특성을 반영시켰고, '탈색'은 '색날기'로 바꾸어 우리말의 맛을 살렸다고 한다. '졈프슛'은 '뛰며넣기'로, '싸이드스텝'은 '옆으로옮기기'로 바꾸었다. '분만'을 '몸풀이'로, '임신부복'을 '허리넓은옷'으로 바꾼 것은 우아한 표현을 살렸다는 점에서 문화성을 높인 것이라고 해설한다.
    단어만들기에 쓰이는 감은 고유어 어근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우리말이나 다름없이 된 한자어나 외래어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말다듬기에 이용된 고유어 어근 재료에 '內, 內部'를 '안, 아낙, 안쪽, 속', '前'을 '앞, 앞쪽, 앞면', '體'를 '몸, 몸통', '速'을 '빨리, 빠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하여 '速讀'은 '빨리읽기', '速動'은 '빠른운동'이 되었고 '전면유도장치'는 '앞쪽길잡이장치', '전각'은 '앞다리'로 고쳐졌다. 우리말답게 고치려는 노력 때문에 본래말에서 같은 뜻의 한자 말이 각기 다르게 다듬어진 경우도 있다. '防寒'은 '추위막이', '防寒帽'는 '겨울모자', '防寒靴'는 '털신'으로 바뀐 것이 그 좋은 예다. 또한 우리말답다는 것은 우리말이 지닌 문법적인 특성이 드러난다는 것도 뜻하는 것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격조사나 어미가 다듬은 말에 자연스럽게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船側渡'는 '배턱에서 넘기기'로, '廢水'는 '버릴물'로, '變化記號'는 '소리바꿈표'로, '別行잡기'는 '줄바꾸기'로, '受發하다'는 '받고보내다'로, '待期上下車作業'은 '기다려싣고부리기'로, '細斷'은 '잘게썰기'로 바뀌었다.
    말소리의 배합이 순탄해야 한다는 조건에는 다듬은 낱말이 간결하고 발음이 부드러우며 다른 낱말과 구별이 잘 되어야 한다는 세 가지 세부 항목을 손꼽는다. 다듬은 말이 그 전의 말보다 음절 수가 길어지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그리하여 의학 용어 '슬개하피하낭(膝蓋下皮下囊)'은 '무릎뼈-아래살-가죽밑주머니' 등과 같이 세 토막으로 끊어 발음하도록 하였다. '로대(露臺)'를 '밖대'라 하지 않고 '바깥대'라 다듬과 '착공기(鑿孔機)'를 '구멍뜷개'라 하지 않고 '구멍뚜르개'라 다듬은 것은 발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조처이었다. 그리고 '려과지(濾過池)'를 '거름못'이라 하면 달리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에 '거르는 못'으로 다듬어 다른 낱말과 쉽게 구별이 되도록 배려하였다.

3.3. 이름짓기
    말다듬기 작업과 병행하여 북한에서 추진하는 일에는 어린이 이름, 고장 이름, 품종 이름을 민족어 발전의 방향에 맞추어 정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 역시 66년 담화문에 강령적 교시가 있고부터 본격적으로 착수된 작업이다.
    새로 태어난 어린이의 이름은 부모의 기대와 염원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부모들의 새 시대를 향한 꿈이 나타나도록 지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충성, 충실, 충심, 충신, 충복' 등은 당에 대한 충실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은정, 은혜, 은덕, 영광' 같은 이름은 수령님이나 지도자 동지의 자애로운 품속을 그리워하고 고마워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자로 말 만들기를 회피하여야 하는 원칙이 당과 수령에 관계되는 것일 때에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솔, 솔이, 별, 보람, 참, 한길, 범, 억척' 같은 이름은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는 씩씩한 기상에 연결시켜 좋은 이름감으로 추천하고 있다. '봄, 봄이, 봄순, 봄숙, 봄철' 같은 것은 태어난 게절과 연관지은 이름으로, '한모, 두모, 세모, 한돌, 두돌, 세돌, 한쇠, 두쇠, 석쇠' 같은 것은 한 형제 끼리 차레를 밝힌 이름으로 쓰일 것을 권면한다. '꽃순, 별순, 금단, 은단, 달메, 솔메, 샘내, 꽃내' 같은 것은 여자의 이름감으로, '별남, 강남, 한길, 두길' 같은 것은 남자의 이름감으로 예시되고 있다. 이들 이름감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고유어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전통적인 두 음절 이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항렬 의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남한에서 자연스럽게 번지고 있는 한글 이름이 훨씬 다양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고장 이름도 낡은 시대, 낡은 사회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되는 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미에 특별히 관심을 둘 필요는 없으며 생활에 지장을 가져올 정도로 한꺼번에 많이 바꾸면 안 된다는 점을 유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노루메기, 매지허리, 도투이마, 황소이마' 같은 동물 이름을 딴 것, '보습이마, 살푸레, 단지우물, 시루메' 같은 도구 이름을 딴 지명이 새 시대의 사상 감정에 맞지 않는 것이라 하여 고쳐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오히려 민족적 전통을 없애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 반면에 '락원군, 만풍리, 문화리, 혁신리, 산업동, 김정숙군, 김책시, 룡진로동자구' 같은 지명이 생겼는데, 이런 고장 이름을 주체사상화 위업을 나타낸 좋은 이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품종 이름은 고유 명사적인 특성과 학술 용어적인 특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르게 조화시켜 만들 것을 주장한다. 대개 일본 식민지 시대의 일본식 품종 이름에서 벗어나자는 의도로 새 품종 이름을 개발하였다. 벼 품종 이름의 경우를 보면 종래의 '륙우 132호'를 '강원 1호'로, '중생은방주'를 '평남종'으로, '대야중도'를 '함북 1호'로, '진경조생'을 '함북 3호'로 바꾸었다. 사과 품종에서는 '욱'을 '구월'로, '홍옥'을 '황주'로, '축'을 '송화'로, '인도'를 '덕성'으로, '국광'을 '북청'으로 바꾸었다. 닭 품종 이름에는 '흰닭', '검은닭', 토끼 품종 이름에는 '검은토끼', '자산토끼' 같은 새 이름이 생겼다. 자동차나 기계류의 품종 이름감으로 추천하는 것에 '승리, 자주, 건설, 백두산, 풍년, 충성, 전진, 비둘기' 같은 낱말이 있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한마디로 촌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3.4. 학술 용어
    말다듬기 작업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분야가 학술 용어의 다듬기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학술 용어는 그 특수성, 전문성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술 용어는 1) 정밀성, 2) 명확성, 3) 체계성, 4)간결성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가령 '높은산지대'라는 용어의 경우 지리학에서는 '해발 2000미터 이상의 높이를 가진 산지대'를 뜻하는 것이고, 농학에서는 '해발 1000미터 이상의 높이를 가진 산지대'를 뜻하는데, 일반적인 용어로는 막연히 '지대가 높고 산이 많은 곳'을 가리킨다. '옮겨심기'라는 용어도 그것이 의학에서 쓰느냐, 생물학에서 쓰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이러한 제한 의미를 전제로 하는 것이 학술 용어이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다듬을 때에는 실머리 잡기에서부터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 모든 조건을 유의하여 다듬어 놓은 낱말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본래말 다듬은 말
제동봉(전기체신) 제동막대
제동지관(기계) 제동가지관
재생직(상품) 재생천
재생식열교환기(림학) 재생식열바꿈장치
련속상(기계) 련속모습
련속류(수리) 련속흐름

이들 예에서는 '제동, 재생, 련속' 같은 한자어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를 고유어로 바꾸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본 원칙을 정밀성이니 명확성이니 하고 설정해 놓아도 결과에 있어서는 일부의 한자어를 고유어로 풀이해 놓는 정도에 머문 것이 많다. 다음 예는 조금 더 많은 부분이 다듬어지고 있다.

본래말 다듬은 말
재생모(농학) 되살이풀
재생아(농학) 되살이눈
수직순환(화학공업) 세로돌기
수직절단(금속) 세로자르기
련속충격(금속) 이어치기
련속바가지(기계) 줄바가지

그런가 하면 용어의 끝부분이 '性, 率, 部, 度, 形'과 같은 한자 접미사일 경우에는 그것을 그대로 두고 그 앞부분을 알기 쉬운 고유어로 고치고 있다.

본래말 다듬은 말
내화성(건설) 불견딜성
연성(자연) 늘음성
지조률(림학) 가지률
굴절률(자연) 꺽임률
두부(경공업) 머리부
둔부(생물) 엉뎅이부
정백도(경공업) 쓸음도
탁도(건설) 흐림도
폐각형(사회) 닫긴형
개방형(전기체신) 열린형

체계를 맞추기 위해서는 다듬은 말의 음절 수를 일정하게 한다든지 낱말의 구조를 일정한 틀에 맞춘다든지 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가령 상품 용어 '상견'을 '좋은고치'로 고쳤다면 '중견'은 '보통고치', '하견'은 '나쁜고치'로 음절 수를 맞추며, '상회전'을 '우로돌기'로 고쳤다면 '하회전'은 '아래로돌기', '축회전'은 '옆으로돌기'로 다듬어 {-로}라는 토가 일정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따위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본래말에 들어 있는 일부의 내용을 과감하게 잘라내 버리고 간결하게 다듬는 수도 있다. 즉 '목삭밥(木削-)'을 그냥 '나무밥'으로 다듬고 '조립모래(粗粒-)'를 그냥 '굵은모래'로 다듬은 것들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학술 용어의 다듬기도 한자어를 부분적으로 고유어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른바 학술 용어라는 범주 안에서 다루는 용어들이 학술이라기보다는 기술(技術) 분야라고 보아야 할 것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기능공들에게 기술 습득을 쉽게 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한 용어의 말다듬기가 요구되었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18개 용어분과위원회의 명칭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1. 醫藥學用語分科委員會
2. 金屬用語分科委員會
3. 生物學用語分科委員會
4. 農學用語分科委員會
5. 自然科學用語分科委員會
6. 建設水利用語分科委員會
7. 電氣遞信用語分科委員會
8. 機械用語分科委員會
9. 輕工業用語分科委員會
10. 商品이름用語分科委員會
11. 文學藝術用語分科委員會
12. 社會科學用語分科委員會
13. 體育用語分科委員會
14. 水産海洋用語分科委員會
15. 運輸用語分科委員會
16. 地質鑛業用語分科委員會
17. 林學用語分科委員會
18. 一船語用語分科委員會

4. 맺음말
    이상으로 1964년에 기본 방향이 제시되고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한 북한의 문화어와 말다듬기 운동이 그 동안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문맹 퇴치, 한자 사용 폐지, 한글 전용으로 이어지는 1949년 초의 언어 현실과 정책이 고유어에 기반을 둔 말다듬기를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1966년부터 거국적인 정치·사회·문화 운동으로 추진한 문화어 수립 및 말다듬기 운동을 낳게 하였다. 그러나 말다듬기 운동과 병행하여 한자 교육을 부활한 것으로 보아서 그렇게 획일적으로 한자를 폐지한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가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말다듬기 운동이 지닌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유어 어휘에 활력을 주어 왕성한 조어 능력을 갖게 한다든가, 뜻을 이해하기 힘든 한자어보다는 알아듣기 쉽고 정확한 뜻 전달이 가능한 고유어로도 학술 용어를 삼을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분명히 말다듬기 운동이 거둔 훌륭한 성과라고 하겠다. 그러나 어떤 사회·문화 현상에나 모두 적용되는 것이거니와 이 운동이 체제 구축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면서 하루 아침에 없어져 버릴 수도 있는 낱말이 만들어져 남북한 사이의 언어의 이질화를 부채질한다는 것은 이 말다듬기 운동이 민족적 차원에서 볼 때 분명 어두운 일면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에 우리는 孟子 公孫書에 나오는 宋나라 사람의 알묘조장(揠苗助長)의 故事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自然이고 人間이고 言語고 사람의 손이 지나치게 가해지면 내버려두느니만 못한 것이 萬古의 眞理이다.
    우리는 지금 남한의 言語 政策이 미온적이며 소극적임을 불평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양식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멀리 내다보며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國語 醇化 운동을 매우 건전하고 착실하게 추진시키고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안 하는 것 같기도 하며, 또 무질서하고 무기력하게 보이지만 끊임없이 국민들 속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자연 발생적으로 퍼져나간다는 점에서 북한의 정치 권력형 기획, 통제에 의한 운동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 어느 것이 생명력 있는 운동인가는 삼척동자라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남북한이 통일이 되어서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차원의 말다듬기가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아니 가질 수 없다.

5. 참고 문헌
·우리 측 자료
金敏洙(1985), 北韓의 國語 硏究, 高麗 大學校 出版部.
金禧淑(1984), 北韓 言語 政策 硏究, 語文 論叢 제3집, 淸州大 國文科.
極東 問題 硏究所(1973), 北韓 言語 政策 資科集.
中央 情報部(1973), 北韓 '말다듬기' 資科集.
·북한 측 자료
공업출판사(편)(1979), 우리말 어휘 및 표현,
박상훈 외(1986), 우리나라에서의 어휘 정리, 사회과학출판사.
박수영(1985), 민족어를 발전시킨 경험, 사회과학출판사.
사회과학원, 엄병섭(편)(1970), 항일무장투쟁기, 김일성동지의 언어사상과 그 빛나는 구현, 사회과학출판사.
사회과학원, 문화어학습편집부(편)(1975), 조선로동당창건 30돐기념, 주체사상에 기초한 언어리론, 사회과학출판사.
사회과학원, 리익선(편)(1974), 단어만들기연구, 사회과학출판사.
사회과학출판사(편)(1973), 조선로동당 정책사.
어문도서편집부(편)(1975), 언어학론문집, 사회과학출판사.
최정후(1983), 조선어학개론,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문화어학습, 1986년~1988년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