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식 구문

 

황찬호 / 서울대 명예 교수.영어 영문학

국어 속에 서구 외래어가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사용되는 현실은 모든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이고, 따라서 그 문제점들이 다각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어 사용 실태는 외래어 단어 몇 개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구문에까지 영향을 미쳐 우리 국어 본래의 구문이 손상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외국어식 구문은 석.박사 논문, 젊은 기자들의 보도문, 젊은 학자들의 연구 논문, 심지어는 소설에서까지 무수히 찾아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구문들도 비문법적인 것은 안되지만 어떤 것은 우리말 표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공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말이란 바뀌는 법이고 문법도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필자가 평소 큰 관심을 기울이던 것으로 마침 편집자의 요청이 있어 몇 가지 문법 사항을 중심으로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1. 피동태(Passivization)
    신소설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李人稙의 '血의 淚'(1906)에 나타난 주어와 그 주어에 호응하는 서술어와의 관계 중 피동형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화가..................풀어졌다.
염라대왕은.........박혔으며
부인이...............잡혀가는데
치마 자락이.........끌려서
부인은...............질렸더라
말문이 ............열렸더라

또 같은 신소설의 '釋天明月'(작자 미상, 1919)의 경우 피동태 호응은 다음과 같다.

윗목에 놓인 자개 삼층 장
산 벼락을 맞으
마음이 조금 풀리어
제가 팔려서 오다니요
금의 옥식에 파묻힐 터이니
기생으로 팔려오
누구에게 들킬까

이 두 권의 신소설을 두고 볼 때 물론 그 소재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주어를 어떤 것으로 삼느냐 하는 우리 발상법의 한 유형을 여기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소설 전집을 다 읽어도 "기상으로 팔려간다", "도둑맞는다", "빼앗긴다", "......당하다" 등 극히 제한된 몇몇 상용적인 피동형 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말의 경우 주어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생략되는 주어의 대부분은 사람이거나 유정물 명사(animate noun) 또는 앞에서 언급되었던 topic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전래의 발상법이 외국어의 영향을 받아 급격하게 변했고 또 계속해서 변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①......라고 보도한 신문
②......라고 보도된 신문
③......라고 보도되어진 신문
④......라고 보도되어져 있는 신문
⑤......라고 보도되어져 있었던 신문

위의 다섯 문장이 문법적으로는 통용된다 하더라도 ③, ④, ⑤에는 뭔가 이질적인 저항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전형적인 어법은 ①일 것이지만 요사이는 ②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 사람 중에는 ③, ④ 정도는 예사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또,

"이 같은 이념들 그 동안 파키스탄에 직접 간접으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소련.인도.중공 그리고 구종주국인 영국 등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주목거리다."

위의 글이 보다 한국적인 발상에서 나온 글이라면 '이 같은 이념들'이 문두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고 "그 동안 파키스탄에......영국 등이 이 같은 이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정도로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이 조선일보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이 같은 이념들이 그 동안 파키스탄에 직접 간접으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소련.인도.중공 그리고 구종주국인 영국 등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되고 있다."(坤)

또, "......경제 사정이 크게 호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식의 우리의 발상 유형이 (坤)평자의 글에서는 "......경제 사정이 크게 호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로 된다.

"방글라데시 신정부는 또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신앙과 자유를 인정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위에 나온 동사들 '받아들인다, 주목한다, 기대한다, 생각한다, 분석한다'의 행위자(agent)는 우리 식으로는 사람이지 그 대상이 되는 명사절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말의 어순은 '동사+목적'이 아니고 '목적+동사'이기 때문에 목적이 복잡하고 긴 명사절로 될 때에는 글을 마무리하는 동사의 voice가 자칫하면 논리적이 못 되기 쉽다. 영어의 경우에는,

It is thought that......, It is reported that......
It is analized that......, It is admitted that......
It is believed that......, It is well known that......
It is observed that......, It is recognized that......
It is pointed out that......, It was found that......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주어와 동사의 voice의 논리성이 명확하다. 이 voice의 논리성이 우리말에 도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에는 별로 안 쓰던 피동형이 영어 표현에 유발되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예문들은 영어 영문학회지, 신문, 석.박사 논문 등에서 뽑아 본 것이다.

① 여자의 변하기 쉬운 속성은 "A Set Ring Sent"에서도 'brittle' 'break'란 속성을 나타내는 일상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② 둘이 하나가 될 때 그 완전성을 회복하게 되고 육체의 합일뿐만이 아니라 영육의 일치까지 포함되어 더욱 완벽해진다.
③ 이리하여 true love는 marriage가 아닌 adultery의 전제하에서 시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④ Jane Austen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Shakespeare와 같이 모든 장애물을 물리치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경우로 묘사된다.
⑤ 이렇게 어렵게 지고 온 과거의 짐이 매력적인 구혼이나 비단 옷, 보석, 새로운 이름에 의해서 내던져 버려질 수는 없는 것이다.
⑥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소년이 유태인들에 의해 무고히 살해당하자......
⑦ Wilson, Fortunato 등은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경우이다.
⑧ 과거의 시간에 너무나 집착하여 그것에 의해서 멸망되고 마는 가장 대표적 인물이 되는 불행을 겪는다.
⑨ 여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억압과 감금에 억눌려진 자아를 완숙한 자아로......
⑩ 2기니를 여성에게 1기니를 남성에게 보내기로 결정함으로 구체화된다.

위의 예들은 어딘가 우리 관용 어법과는 이질적인 표현들이다. 특히 '......에 의해 + 피동'은 'be+p.p+by~'의 영어 구문에서 온 것이 확실하다. 피동형 표현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의 어법을 그만큼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것이기에 한편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패턴에만 따르면 어떤 표현이든지 정당화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복남이가 순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때'를 피동으로 '순자의 얼굴이 복남이에 의해 빤히 쳐다보일 때'라고 표현해도 그것이 우리말이 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topic, statement의 관계를 고려하여 topic선정을 잘 해야 우리글다운 것이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피동화의 새로운 경향은 외국 문학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가 韓戊淑의 작품 '月彙'와 '感情 있는 深淵'에서 몇 개 뽑아 보자.

① 정화수는 어느 초여름 달무리 지는 밤에 달무리 하는 달을 어리곤 거두어져 버렸다.
② 그런 남편과 더불어 홍 여사의 인생도 묻혀져 버렸던 것이다.
③ 홍 여사는 금순이에게는 그것이 당장 박살을 당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늘 생각키는 그 넌짓한 눈흘김을 쑥 한번 던지고 안방 미닫이를 둑 열었다.
④ 굴욕감과 적개심 같은 것이 가셔지며 있었던 것이다.
⑤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
⑥ 멋들어진 서명이 갈겨져 있을 뿐......
⑦ 착취로만 생각키는 것이다.
⑧ 마음이 거세져 있었다.
⑨ 숨겨 주세요, 놓쳐 주세요, 빨리, 빨리.

①의 '거두어져 버렸다'는 지금까지는 대개 '거두어 버렸다'로 능동으로 써 오던 것이고 ②의 '묻혀져 버렸다'는 대개 '묻혀 버렸다'로 써 온 것인데 피동이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해서 피동 표지인 '져'가 또 첨가된 것이 아닌가 싶다. ③과 ⑦의 '생각키는'은 '생각하다'의 피동인데 철자는 '생각히다'로 될 것인데 발음 나오는 대로 일부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만일 '생각히다'의 피동이 성립된다면 영어의 be+killed의 해석을 '죽음을 당하다'니 '피살되었다'니 하지 말고 '죽혔다' 또는 '죽혀졌다'로 간단히 처리해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요는 그 문법이 관용되느냐 안 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④의 '가셔지며 있었다'는 영문법의 '수동형 과거 진행형'에 해당되는 것인데 '......며 있었다'는 이상하다 '노래하며 있었다', '걸으며 있었다', '먹히며 있었다'는 '노래하고 있었다', '먹히고 있었다'가 자연스럽듯이 이것도 '가셔지고 있었다'가 좋지 않을까. ⑤, ⑥의 '채워져 있는'이나 '갈겨져 있는'은 극히 정상적인 피동형이지만 ②의 경우처럼 '묻히다'가 이미 수동인데 '져'가 또 붙는 경우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먹혔다'를 '먹혀졌다'로, '도둑이 잡혔다'를 '잡혀졌다'로. '팔린 물건'을 '팔려진 물건'으로 쓴다면 약간의 저항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⑨의 '놓쳐 주세요'는 '놓아주세요'가 아니라 '나를 놓치게 해 주세요'의 뜻인 것은 알겠는데 과연 이런 어법이 성립할는지 의심스럽다. 다만 위의 예들을 보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별로 안 쓰던 피동형을 문법 논리에 맞추어 쓰려는 새로운 조어 의욕이 강하다는 점이다. 단정할 근거는 좀 약하지만 이것이 외국어 구문에서 자극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의 관용 어법이 무시되더라도 그것이 절실한 필요에서 나온 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아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말은 변하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영어 구문을 직역한 것 같은 생소한 표현은 피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그는 친구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그는 친구한테 죽었다.", "그는 친구의 손에 죽었다.", "그는 친구 때문에 죽었다."로 하는 것이 훨씬 우리말답다. 영어의 by를 무조건 '......의해'로 해석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2. 명사화(Nominalization)
    영어에는 원래의 명사 외에 learning, speaking, walking 등 동사에 -ing를 붙여서 명사화한다. 이것을 동명사(Gerund)라고 한다.
    To be kind is the best way to get a friend의 to be와 같이 부정사(Infinitive)를 써서 명사화하는 법이 있고 또 하나는 that......로 명사절을 만드는 법이 있다. 동명사는 우리말로 옮길 때 대부분 '배우기', '말하기', '걷기' 등 '......기'로 하고 부정사는 '정직한 것'과 같이 '......것'으로 옳기고, beautiful-beauty와 같이 형용사와 명사의 대비 때 명사는 '아름다운 것', '아름다움'으로, possible-possibility의 경우는 '가능한 '-'가능함' 등으로 옮긴다. 이 '......것'과 '......함'이 우리글에서 과용, 남용 또는 오용되고 있다.

① 심한 연민과 비참함에 빠져......
② 함부로 약속을 하지 말 것을 충고한다.
③ 그는 드디어 Geotgeana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였다.
④ 궁극적으로 선한 효과를 찾으려 함에 있어서 ......
⑤ 사후에 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신의 보상이 있음을 생각하라고 권한다.
⑥ 남성 지배가 남성의 우수성과 혼동되어서는 안될 것을 다음과 같이 경고 한다.
⑦그런 여성을 찾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인내해야 함을 일반화시키고 있다.
⑧다시 말하자면 그녀가 순례의 목표점인 성숙과 독립, Rochester와의 진정한 동등함에 도달할 때까지 ......
⑨Rochester가 특히 여성들에게 속임수를 쓴 것 이면에는 그만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거나 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위의 예들을 살펴보면 ①은 앞에 온 명사 '연민'과 어조가 맞지 않는다.
    차라리 '연민과 비참에 빠져'가 좋다. ②의 '약속을 하지 말 것을'은 '약속을 하지 말라고'로 해야 되고, ③의 '결혼할 것을 결심하였다'는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가 옳고, ④의 '찾으려 함에 있어서'는 '찾으려는 데 있어서'로 고쳐야겠다. ⑤는 그대로 넘어 갈 수도 있지만 '보상이 있다는 것을'이 보다 자연스러울 것 같고, ⑥은 '......안 된다고 다음과 같이'가 옳다. ⑦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로, '인내해야 함을'은 '인내해야 된다는 것을'로, ⑧은 '동등'으로, ⑨는 '쓴 이면에는'으로 고쳐야 한다. 이런 오류들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영어의 Noun Infinitive와 Noun Clause를 번역하던 버릇이 그대로 습성화되어 우리말에 끼여든 것인데 이런 오용이 뜻밖으로 많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3. 시제(時制)-특히 과거 완료(過去 完了)
    신소설의 시제를 살펴보면 과거는 '......하더라'라고 회상 시제를 쓰고 있다.

죽어라하면 죽고 살라하면 살게 되었더라.
수작이 어우러지더라.
간신히 예를 마쳤더라.

그리고 대화가 아닌 설명문은 대부분이 현재로 되어 있다.

......하더니 칠성이를 불러 분부를 한다.
큰 소리를 천장같이 뽑아 낸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시제 구분이 명확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이 春園을 비롯한 근대 소설 작가들에게서는 시제의 논리성이 확립된 것 같지만 과거 완료만은 그렇지도 않다.
    과거 시제를 가장 의식한 것이 金東仁이고 과거 완료 시제를 가장 의식한 것이 廉相涉이었던 것 같다. 그의 '標本室의 청개구리'에서만도 과거 완료를 무려 26번 쓰고 있다. 당시의 작가들뿐만이 아니라 최근의 작가들까지 다 합쳐도 과거 완료를 廉씨만큼 쓴 사람이 없다.

응! ......일본말도 제법 하는데 ......
이전에는 그래도 미남자였었는데. 하하하
    영업과 화류 이외에는 가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의 부친도 의외에 자식이 총명한 것은 기뻐할 줄 알았었다. 더구나 자기의 무식함을 한탄하니 만큼 자식의 교육은 투전짱 다음쯤으로 생각하였다.
그가 처음 감시의 비상선을 끊고 나올 때는 맑은 정신이 들어서 그리하였는지 하여간 자기의 고향을 영원히 이별할 작정으로 나섰었다. 위선 시가를 떠나 촌리로 별장 이전의 상지(祥地)를 복(卜)하려고 이 산 저 산으로 헤매었다. 가가호호로 돌아다니며 연명을 하여 가며 오륙일만에 평양 부근까지 갔었다. 그러나 평양이 가까와 오는 데에 정신이 난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뒤돌아보지 않고 남포로 향하였다.
-標本室의 청개구리-

위의 예에서 '미남자였었는데'는 시제의 논리로 보면 과거 완료를 쓸 이유가 없다. 따라서 '미남자였는데 '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다음 '......기뻐할 줄 알았었다.'와 '......생각하였다' 사이에 시제가 달라져야 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 다음 '......헤매었다'와 '......갔었다'와 '......향하였다'의 일련의 시제 중에서 유독 '갔었다'만이 과거 완료가 되어야 하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 위의 '알았었다', '나섰었다', '갔었다'는 '알았다', '나섰다', '갔다'로 해서 시제 변동에 따르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갑자기 작가에 따라서는 그대로 과거 시제를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柳周鉉의 '張氏一家'에서 예를 들어 본다.

군대라는 조직체는 자기의 당연한 목적을 위해서 퍽 편리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오늘날까지 떠나지를 못했었다.
    여러 가지로 계산한 끝에 뒤가 깨끗할 수 있는 상대라고 인정했었기 때문에 그를 택한 것이었다.

앞 문장의 경우 '오늘날까지'라는 부사구가 있음에도 '못했었다'는 좀 이상하다. 다음, '인정했었기 때문에'는 시제로는 맞지만 '인정했기'가 보다 관용적이다.
    尹金渡 '얼굴', '들菊花'에는 과거 완료가 한 번도 안 나온다. 씨의 "그쪽 코스를 밟아서라도 갈 수밖에 없다고 급히 올라 탔던 것이다."의 '탔던 것이다'는 '탔었다', '탔던 것이었다', '탄 것이었다' 중 어느 것과도 환치될 수 있다. 이처럼 과거 완료는 우리 관용법에서는 과거와 맞바꿀 수 있는, 말하자면 자유 변이(自由 變異 free variation) 시제라고 할 수 있다.
    康信哉, 孫昌涉, 朴淵禧, 孫素熙 등의 글에는 과거 완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근자 신문 기사 등을 보면 시제 논리상 과거 완료를 써야 할 것 같을 때는 의식적으로 쓰는 경향이 많다.

① 돈이 든 봉투를 이멜다 여사로부터 받았다고 말했었다. 증거를 위해 그가 받은 약 500페소의 돈과 봉투를 모두 은행 금고에 넣었었다.
② 관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준 흔적이 있는 등 상인들에 얹혀 살고 있다는 폐단을 정부에 보고했었다.
③ 우리 국가 원수가 소련 관리를 만난 것도 舊韓末 高宗 이후 80여 년 만에 처음이다. 舊韓末의 러시아 공판은 1904년 철수했었다.
④ 학생들은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쯤 黃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 책상, 의자 등 집기를 들어냈었다.
⑤ 중국에서 사신이 오갈 때마다 王世子가 文武有官과 官中의 女妓들을 거느리고 나갔었다고 한다. 칙사 대접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⑥ 국내외의 운동과 조직도 全無했었다. '......고' 부탁하였었다.
⑦이주 성공한 '勞動同胞' 수는 겨우 35명에 불과하였었다.
⑧月刊 '自由韓國-대한 사람 대한으로' 등을 발행했었는데 ......
⑨'......을 거부하였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을 이야기함을 회피하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라고 문의하였었는데......

위의 예문을 보아 신문에서도 과거 완료를 얼마나 의식하고 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③과 ④는 이야기하는 시간의 기준이 현재인 만큼 굳이 과거 완료를 써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⑥, ⑦, ⑧은 그 전문이 있어야 논술 시간의 기준을 알 수 있었지만 과거 시제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 같고, ⑨의 '......거부하였었다'는 지나친 시제 의식 같다. '......거부하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가 보다 자연스럽다.
    이 과거 완료라는 시제가 우리 문법에 없는 것은 아니다. 崔鉉培는 완료시와 진행 완료시와 해서 '먹었었다', '먹고 있었었다'를 예시하고 있고, 李熙昇은 진행형은 없이 大過法라 해서 '먹었었다'를 예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제를 전적으로 외국어에서 도입한 외래 구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도 고찰해 보았듯이 과거 완료는 과거와 거의 자유 변이로 씌어져 왔기 때문에 아직도 사용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관용상의 거부감을 주는 것도 있다.

4. 대명사 - 특히 인칭 대명사
    李海朝의 신소설 '花의 血'에 나오는 인칭 대명사의 제3인칭 '그'는 모두 관형사적 용법으로 '그 꽃', '그 여자', '그 고을' 등이고 대화에서 화자 표시를 할 때에는,

(이) 이 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
(그자) 잠시 피신을 하실 밖에 다른 상책이 없읍니다.

에서와 같이 '그자'로 되어 있다. 복수의 경우는 '그네'를 썼다.

자고 이래로 창기 출신에도 충··열 세 가지 행실로 유방백세한 인물이 하나 둘뿐이 아닌즉 너는 그네만 못할 것이 있느냐?

위와 같이 '그'가 주격으로 쓰인 것은 보이지 않는다. 春園의 '사랑'에는 주격으로 쓴 '그'가 가끔 보인다.

그의 스포츠맨다운 체격을 보아도 알거니와 그는 여간해서 ......

다음 예를 보면.

안빈은 말 없이 고개를 흔든다.
"왜 그러시우? "
옥남은 짜증내는 양을 보인다.
"아냐, 간호부로는 너무 아름답고 ......"
"왜 석순옥이가 곁에 있으면 ......"
옥남은 남편을 바라보고 웃는다.
"마음이 흔들리면 어떻게요? " 안빈도 웃는다.
"......"
"......"
안빈은 숭늉을 마시고 밥숟갈을 놓는다.

와 같이 가급적 대명사를 안 쓰고 고유 명사를 반복해서 쓴다.
    金東仁의 '金姸實傳'의 대화는 다음 식으로 이어진다.

"그러기에 일즉 왔디오."
독 있는 눈초리와 독 있는 말투였다.
어머니가 벌컥 성을 냈다.
"요놈의 엠나이 말대답질?"
"물어 보는 것 대답 안 할까?"
흉 한번 코웃음치고 연실이는 방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위의 대화로 보아 金東仁은 春園과 달리 화자가 누구인지 추측이 가는 경우에는 가급적 표시를 하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廉相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春園은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다녔고 橫步는 게이오 대학 문과, 金東仁은 메이지 학원 중퇴다. 세 사람이 다 영어 내지 일본어로 번역된 외국 문학 작품을 탐독했을 것이고 따라서 대화마다 나오는 He said "......", "......" said she, They said that......의 인칭 대명사에는 익숙해 있었을 텐데 그것들을 우리말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은 것은 인칭 대명사에 적이 이질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He에 해당하는 '그'는 있었어도 She '그녀'는 쓰이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던 것 같다. 한때 이 She를 '그 여자', '그녀', '厥女'로 하자고 논란이 많다가 '그녀'로 확정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You는 여전히 문젯거리다. '당신, 너, 그대, 자네, 선생님, 어르신네, 노형' 등등 상황에 따라 한도 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또 우리말에서는 언급하지 않아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에는 주어를 생략해 버리지만 영어는 명령문 외에는 꼬박 넣는다. 이런 영향을 받아 번역문 아닌 우리말에서도 대명사의 사용 빈도가 급격히 늘어 가고 있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용하면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의심의 전설들은 칭찬의 신화와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 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싫도록 들었을 때 당신은 당신의 방향과 태도를 잃어 버리고 당신이 정말 누구인가를 공포에 잠겨 보게 된다.
-讀書新聞(1971)-

문제는 이 글이 번역한 글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얼마나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가? 이 내용은 우리말식인 발상으로도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
    이런 대명사의 도입은 이미 '開闢'(1920)에도 많이 나타난다.

兄弟들이어, 汝의 一生은 저 時計의 時針과 가티 間斷 없이 그 行路를 反覆하리라. 그 때마다 汝의 悲와 喜, 汝의 友와 敵, 汝의 모든 希望과 絶望 其他 모든 事物의 同排列을 發見하리라.
    사람은 超越할 或物이다. (something to overcome)
    사람의 所有한 力 그것이다. (power or ability,itself)

5. 상용 표현
    어느 언어나 표현하려는 내용에 따라 거기에 해당하는 표현이 나오게 마련이라 이제 언급하는 표현들이 과연 외국어에서 온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영어의 상용적인 표현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 같은 것이 매우 많다. 신문기사가 그렇고 석·박사들의 논문이 그렇다. 너무도 자주 접해서 그런지 지금은 별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런 상용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 같다.

......라는 미국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했다고 관측했다.
......로 관측되고 있다.
......라고 주장했다.
......라고 말한 것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같은 것이라고 이곳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을 뜻한다.
......를 강요한다.
주장했다는 내용이 성명서에 없는 데 관심을 보였다.
이 번 성명의 대만 조항은 ......이 공존 정신과 관련된다.
-조선일보-

이 위기감은 벨로우의 전기적 요소를 그 기조로 한 채 그의 작가 정신의 전부를 지배한다.

-김병철 교수-
미시시피강에로의 방랑
외계에로의 굳센 의욕
무의식으로의 몰입
월세계에의 도달
그것에의 단골이 얼마인지 모른다.
권위에의 도전
조직 집단에의 순응성
思考의 門으로서의 지나간 영예의 보람
양국은 지금 각기 그 나름의 국제화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나무 아래에 왕관을 쓴 왕과 사랑의 여왕으로서 앉아 있고

위의 예 중 '외계에로의'는 '외계로의'로, 또 '그것에의 단골'은 '그것의 단골'로, '국제화에의 노력'은 '국제화의 노력'으로, '여왕으로서'는 '여왕으로'가 우리 어법에 맞아 자연스러울 것 같다.

6. 결어
    지금까지 몇 가지 항목에 걸쳐 외래 구문 내지는 외래 구문의 영향을 받은 구문 또는 표현 같은 것을 수집해서 검토해 보았다. 외래 구문은 우리말의 순수성을 깨는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새로운 조어의 가능성 또는 표현의 다양성을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면도 많다. 따라서 우리는 이 외래 구문에 대해 편협한 쇼비니즘도 버려야 하겠지만 콤플렉스도 버려야 할 것이다. 본인이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학생들의 석사 논문, 박사 논문 심사 때 그들의 글에 대한 저항감을 크게 느껴서 그런 것들을 고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