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 사용의 현실과 처리 문제
姜信沆 / 성균관대 교수·국어학
1. 우리 겨레가 漢字語를 많이 쓰게 된 背景
이 세상에서 다른 문화와의 교섭 없이 완전히 고립되어 독자적으로 발달되어 온 문화의 예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어와의 교섭 없이 완전히 고립되어 수백 년 또한 수천 년 동안 독자적으로 발달되어 온 언어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외래어는 어느 언어에나 존재한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언어 체계가 다른 언어로부터 언어 단위(주로 명사)를 차용하는 환경이나 조건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征服 등에 의하여,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어떤 언어 위에, 이질적인 언어가 새롭게 완전히 덮어 씌워지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原住民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복자의 언어가 被征服 地域 안의 公用語로 사용되어, 원주민들은 부득이 二重 言語生活(bilingualism)을 영위하게 된다. 이 결과, 원주민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정복자의 언어를 상당한 양의 언어 단위를 차용하게 된다.
다음은, 高度의 문화를 가진 언어가, 문화 수준이 낮은 언어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개 문화 수준이 낮은 쪽이, 수준이 높은 문화 쪽을 동경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문화적인 수준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언어끼리의 교섭에서 자연스럽게 주고받게 되는 차용이다.
우리 겨레는 三國 時代 初期 이래로, 이웃하고 있는 漢人들의 文化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고 지내 왔다.
언어생활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 겨레는 漢人으로부터 漢子와 漢文을 借用하여 表記 生活에 利用해 왔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중기 경까지 계속되었다. 애당초에는 우선 漢字가 지닌 音과 釋(訓)이라고 하는 두 가지 性格을 利用하여 固有語의 人名·地名·官名·詩歌 등을 記錄하였다.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서 漢字·漢文의 素養을 지닌 사람들이 늘어나고, 특히 신라 景德王代(서기 757年 무렵)에, 人名·地名·官名 等을 漢語식으로 바꾸고, 또 958年(고려 제4대 光宗代)부터 漢詩·漢文에 의한 科擧가 실시된 以來로, 위에서 설명한 漢字音訓 借用 表記 方式은 차츰 퇴색되어 버려, 이를 계기로 하여 固有語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口頭語와 漢字·漢文을 가지고 文章語를 따로 쓰는 二重 言語生活이 오랜 歲月에 걸쳐 계속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겨레는 이와 같은 二重 言語生活을 千 年 이상 영위해 오는 사이에, 고유어를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하였다. 그 대신 漢語로부터 수많은 어휘를 끊임없이 借用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국어에서는, 전체 어휘 수의 절반 이상을 漢語系의 어휘인 漢字語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현대 국어에서, 漢字語를 많이 쓰게 된 배경에는, 우리 겨레가 開化期 以後에, 西歐語系 外來語를 받아들이는 방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른 언어로부터 언어 단위(주로 명사)를 차용할 때에는, 되도록 외국어의 語形이나 原音을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와 외국어를 자기네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을 쓴다. 후자의 경우, 이런 방식을 意譯이라고도 하고, 譯語 또는 飜譯語라고도 하는데, 개화기 이후 우리 겨레는 서구어계 외래어를 漢字語로 번역해서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漢字語들은, 우리 겨레가 직접 번역한 것보다 우리보다 앞서서 번역한 漢語나 日本語로부터 다시 借用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런 방법이 현대 국어에 漢字語 語彙를 增加시키는 또 하나의 큰 要因이 되어 왔다.
또 국어의 차용어는 대부분 명사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원어가 명사일 경우에는 그대로 차용하고, 원어가 명사가 아닌 경우에도 대개 국어의 명사로 변형시켜서 차용해 왔다. 만일에 이들을 용언으로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접미사 '-하다'를 붙여서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한자어는, 명사로 쓰일 수 있는 동시에 '-하다'만 붙이면 용언으로도 쓰일 수 있어서, 실지 언어생활에서는 더 많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 例 | 向上 | 鑑賞 | 競技 |
| 向上하다 | 鑑賞하다 | 競技하다. |
以上과 같이 우리 겨레는 三國 時代부터 漢語·漢文과 접촉을 갖게 되고 특히 우리의 고유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조하기 이전에는,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漢字·漢文만이 유일한 표기 수단이었으므로, 우리 겨레가 漢語와 漢文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매우 큰 것이었으며, 국어의 기초 어휘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걸쳐서 漢語系 어휘, 즉 漢字語가 침투하여 들어왔었다. 이러한 결과 가족 사이의 呼稱을 비롯하여 날마다 쓰는 數詞 등은 말 할 것도 없고, 動植物名, 魚貝類 등 具體的인 것으로부터, 希望, 和合과 같은 抽象的인 개념은 모두 漢字語로 表現하며 지내왔다. 이와 동시에 漢字를 이용하여 우리나라에서 만든, '査頓' '人君' '閣氏'와 같은 한자어도 쓰이게 되어, 한자어는 증가 일로를 걸어온 것이다.
불교 문화로부터 어휘를 차용할 때에도, 불교의 經典을 기록하였다는 梵語나 팔리(pali)語로부터 直接 차용한 것이 아니라, 中國人들이 漢譯한 것을 다시 借用한 일이 많았으므로, 자연히 한자어는 더욱 많이 쓰이는 결과를 가져 왔었다. 이런 방식은, 서구어계의 어휘를 차용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쓰이어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朝鮮 時代에도 中國을 거쳐서 들어온 二重 借用語로, '耶蘇, 天主, 千里鏡, 幾何, 自鳴鐘, 永吉利, 歐羅巴' 등과 같은 어휘를 使用했었다.
19세기 중기 이후에도 이런 方式은 그대로 유지되어서, 中國이나 日本에서 漢字語로 意譯하거나 音譯한 것을, 다시 借用한 어휘들이 많이 쓰이었다.
| 英語 | Opium | 漢語 | 雅片 |
| 英語 | gas | 漢語 | 瓦斯 |
| 英語 | steam-boat | 漢語 | 火輪船, 汽船 |
| 其他 | 哲學, 物理, 經濟學, 化學......(이들은 日本에서 만든 것) | ||
이 밖에도, 日本語를 日本人들이 漢字로 맞추어서 表記하고, 다시 이것을 日語로 訓讀하고 있는 어휘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나라 식으로 音讀하여 마치 漢字語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이러한 어휘들은, 우리 겨레가 강제적으로 日本語라는 外國語를 公用語로 수 10년 동안 사용하며 지내 왔던 데서 나온 결과지만, 8·15광복 이후에도 아직도 日語에서 사용하고 있는 新製 漢字語가 流入되고 있다.
2. 漢字語 使用의 實態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여러 가지 背景과 要因에 의하여 오늘날 우리 겨레는, 日常用語를 비롯하여 學術 用語, 商業 用語, 建築 用語, 軍事 用語, 農事 用語, 漁業 用語, 醫·藥界 用語, 其他 실로 여러 가지 分野에서 漢字語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겠으나, 사전에 수록된 어휘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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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전(한글 학회,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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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대사전(이희승 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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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음에 漢字語가 실지의 言語生活에서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하는 면을 몇 가지 資料를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1) 小說
소설에서는 가장 순수한 口頭語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黃哲暎;어둠의 자식들 (1980.7.30. 초판, 1981.9.10. 개정판 2刷)과 金洪信:人間市場(어두운 무대④) (1982.10.20. 초판)의 한자어를 보기로 하겠다.
이 두 작품은 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庶民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계층의 생활을 素材로 하였으며, 地文이나 引用文(對話文)이 다같이 순수한 口頭語(俗語, 卑語 포함)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漢字語가 뜻밖에 많이 쓰이고 있다.
(2) 日刊紙
| 고유어 | 한자어 | 외래어(외국어) | 기타 | 계 | |
| 총 수 | 370 | 1,392(수사 포함) | 107 | 10 | 1,145 |
| 비 율 | 19.79% | 74.44% | 5.72% | 0.5% | 100% |
| 고유어 | 한자어(수사 포함) | 외래어(외국어) | 기타 | 계 | |
| 총 수 | 592 | 1,100 | 100 | 29 | 1,821 |
| 비 율 | 33% | 60% | 6% | 1% | 100% |
중앙일보 1면 보다 한자어의 비율이 적으나, 역시 한자어가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漢字語 處理에 대한 努力
1.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배경 아래에서, 우리 겨레가 한자어를 많이 쓰게 되고, 日語系 漢字語까지도 널리 쓰이게 되자, 국어 정책이나 국어에 관심이 있는 人士들은, 8·15광복 이후부터 한자어의 처리에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때에 무엇보다도 時急하게 해결해야 될 과제로 등장한 것이 日語系, 漢字語의 處理였다. 그러나 이 무렵에 더 크나큰 과제로 등장한 것이, 開化期부터 국가적인 정책 과제로 남겨져 있는 表記 手段에 관한 것이었다. 1443년에 우리의 固有 文字인 한글이 창제되었는 데도, 공식적인 표기 생활은 여전히 漢文이었고, 漢文을 번역한 책들이나 詩歌 등은 한글과 漢字를 섞어서 쓰는 이른바 國漢文 混用體로 쓰이었으며, 소설 같은 文學 作品만이 순수한 한글로 쓰이어 왔었다. 그리하여 개화기를 맞이하자 한글을 애용하자는 운동이 고조되어 마침내 국가에서도 한글을 주로 쓰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1910년의 亡國으로 이 문제는 제대로 시행을 볼 수 없었다.
8·15 광복 이후 또 다시 국어·국문 애용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져서 漢字 대신에 한글을 쓰자는 운동이 널리 벌어졌으나, 정작 漢字語를 줄이자는 운동 면은 소홀하게 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도 8·15 광복 직후 문교 행정의 편수 분야를 책임 맡았던 부서를 중심으로 해서, 30여 년 동안 일본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오는 사이에 저절로 쓰이지 않게 된 우리말을 되살려 쓰고, 한 편으로는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써 온 漢字語 대신에 고유어를 널리 쓰자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1948년의 정부 수립 후에도 '우리말 도로 찾기'(1948. 문교부)운동으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결과, 여러 분야에 걸쳐서 일본어와 한자어 대신에 우리말이 새로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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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漢字語의 경우에도 日本語式 漢字語를 버리고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사용해 오던 어로 바꿔 쓰려는 노력이 기울여졌다.
| 日語式 漢字語 | 우리 漢字語 |
| 小賣 | 散賣 |
| 切手 | 郵票 |
| 取締 | 團束 |
| 申込 | 申請 |
| 取調 | 間柖 |
잊어버린 고유어를 되살려 쓰자는, 인위적이며 의도적인 운동으로 만들어진 어휘들 가운데에는 긴 생명력을 갖게 된 것도 있고, '날틀(飛行機)' '배꽃 큰아가씨 배움집(梨花女子大學校)' '아내 무섬쟁이(恐妻家)'와 같은 낯설고 한자어를 우리말로 直譯한 것과 같이 느껴지는 어휘를 일반 대중이 외면한 것도 있었다. 이것은 동기는 좋았으나 造語 방식이 일반 대중의 慣用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연스러이 발달된 어휘들이 있다. 이런 어휘들은, 어떤 특정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일반 대중들의 慣用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서, 語感을 고려하여 새로운 漢字語로 바꿔 치기 한 것도 있다.
| 在來의 한자어 | 새 한자어 |
| 便所 | 化粧室 |
| 食母 | 家政婦 |
| 職工 | 工員 |
| (女)車掌 | 案內孃 |
| 運轉手 | 技士 |
1958년 후반기부터 1980년대 초반기에 걸쳐서, 한자어 대신에 '우리말 바로 쓰기'운동 등에 앞장서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는 분야는 방송 언어로 보인다. 이 분야에서는, 순수한 우리말을 바탕으로 하여 방송 언어를 일상적인 구두어에 가깝게 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 漢字語 | 우리말 |
| 上昇勢 | 오름세 |
| 下落勢 | 내림세 |
| 上廻하다 | 웃돌다 |
| 刮目할 만한 | 눈부신 |
| 逮捕하다 | 붙잡다 |
| 驚愕 | 놀라움 |
| 剔抉하다 | 도려내다 |
| 桎梏 | 멍에 |
신문 용어도 꽤 우리말을 많이 쓰고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현실은 다음과 같다.
1988年 8月 30日字 동아일보 사회면의 기사를 보면, 人名과 地名 以外에는 모두 한글로 썼는데, 띄어쓰기까지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기사에서는, 고유어로 '처음, 치닫다, 따라, 이날, 들어가다'만이 쓰이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助詞·語尾와 결합된 漢字語들이다. 이 가운데에는 '노조원, 파업, 노동쟁의, 자정'등과 같이 전문성을 띠고 있거나, 수백 년 동안 우리 고유어와 마찬가지로 쓰이어서 우리말로 바꾸기가 힘든 단어들도 있으나, '퇴진→물러섬·그만둠, 타결→풀리다·좋게 매듭짓다'와 같이 바꿔 쓸 수 있는 단어도 있다.
이 밖에도 이 기사 가운데에는
4. 앞으로의 과제
지금까지 설명해 온 바와 같이, 우리 겨레가 한자와 한문을 써 온 역사는 길다. 漢宇는 우수한 造語力을 가지고 있고, 고유어로써는 나타내기 힘든 抽象的인 개념을 표현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국어 어휘의 상당한 분량을 한자어가 차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자어는 略語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매우 편리한 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새로운 개념이나 새 기구명을 표시할 때에는, 고유어보다도 한자어로 표현되는 경향이 강하다. 또 完全 雇傭豫算, 形態 分析, 産業 民主主義, 酵素, 등과 같은 학술 용어·전문 분야 언어를 다 고유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현실 아래에서도 순수한 우리말을 갈고 닦아서 아름답게 발전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무엇보다도 우리말을 더 많이 골라서 쓰려고 한다면, 어색한 인위적인 새 말이나 어떤 특정인이 만든 말을 대중에게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은 이런 말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 번째로 새로운 개념이나 외래어를 받아들일 때에, 반드시 2자형 한자어로 바꿀 필요가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을 가지고는, 약어를 만들기 힘들고자 하지만, 근래에 이르러 대중들은 '물냉(물+냉면)' '낙곱(낚지+곱창 전골)' '맛징어(맛있다+오징어=양념으로 가공한 오징어)' '새로나(새로+나오다=새로 생긴)' '토토즐(토요일+토요일은 즐거워=텔레비전 프로 이름)'과 같은 약어를 만들어 널리 쓰고 있다. 또한 '出口'가 '나가는 곳'이 되었듯이,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2 음절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새롭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개념은, 알맞은 우리말로 받아들이려고 힘써야 될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내'라고 해도 될 것을 꼭 '美川'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한자어가 늘어만 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지명이나 행정 단위 이름을 꼭 한자어로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다. 신라 경덕왕 때, 한자어식으로 지명을 고친 이후로 줄곧 지명은 한자어로 이름짓는 것이 전통이 되어 왔으나, 새롭게 설정되는 행정 구역은 '갈대 구' '숲마을 동'과 같이 이름을 지어도 행정상 하나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일본어식 한자어도 하루 속히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 '非常口, 受付, 貸切, 切上, 明渡, 請負' 등 일본어식 한자어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가장 경계해야 될 일은,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서 쓸 생각은 않고, 꼭 直譯하려고 하는 造語 方式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원인의 하나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어색한 행정 용어도 우리말로 쓸 필요가 있다.
'미리 살핌' '빨리 없애기'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病虫害豫察' '早期撲滅'이라고 해야 될 까닭이 없다.
시대는 날로 변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서 우리말도 시간이 흘러 갈수록 새롭게 바뀌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만 보더라도 8·15 직후보다는 훨씬 漢文套의 문장이 줄어들고, 우리들의 일상 회화에 가깝게 변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한자어의 사용도 '아버지, 어머니'보다 '嚴親, 慈親'이라고 해야만 더 정중하고 권위가 있어 보이던 언어 습관으로부터 차츰 벗어 나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 세대는 'thinking'을 반드시 '思惟·思考'라고 하지 않고 '생각'이라고 받아들여도 뜻을 파악하는 데 아무런 차이도 못 느끼게 될 만큼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순수한 우리말을 더 많이 쓰는 언어생활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