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도 살뜰한 우리말을]

李勳鍾 / 전 건대 교수. 고전 문학

◆ 괴기와 대리
    가을철 들어 남녀 교원끼리 어울려 야외로 놀러 간 일이 있다. 나무로 교각을 짜서 줄지어 세우고, 장목을 걸쳐 놓은 위로 뗏장을 떠다 엎어 놓아 통로를 만든 다리를 건너는데, 냇물에 고기떼가 우글우글 한다.
    장난기 있는 남자 선생 하나가 그걸 보고 외쳤다.
    "야! 저 괴기 좀 봐라."
    동조자가 하나만 있어도 들어가 움키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나이 찬 처녀들이 그걸 듣고 그냥 넘기지 않는다.
    "아무리 촌 양반이기로 고기면 고기지 괴기가 뭐여요?"
    그랬더니 총각 선생은 자존심이 꺾이는지 군색한 변명이다.
    "돼지고기 쇠고기는 고기고, 물에서 노는 것은 괴기라고 하는 거예요."
    모두는 또 한번 깔깔거리고 나서 그런다.
    "그런 건 저 이 선생님께 여쭤 보세요."
    어차피 장난의 말이라 나는 유들유들하게 빈정거렸다.
    "그건 ○선생 말씀이 맞아요. 우리가 걸어 다니는 건 다리고, 이렇게 건너가고 있는 것은 대리라고 하듯이..."
    궁지에 몰린 남자 선생은 벌컥 결을 내며
    "누굴 봐 주시는 거요? "
    여럿이는 또 한번 떠들고 그날 행락(行樂)은 재미있었다.
    ※어차피의 원래 모습은 어차어피(於此於彼)-이러나 저러나
    옛날에는 큰 내에 다리를 가을에 놓았다가 여름 들기 전 뜯어서 쌓았다. 장마가 지면 영락없이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리를 놓든지 하는 공익 사업은, 고삿반이라고 유랑 연예인을 불러 한바탕 놀이판을 벌여서 기부금을 거뒀다. 집집에서 형세껏 낸 곡물로는 부비 쓰고 사당패들 수고비 주고 남겨서, 그 것으로 다리를 놓는 것이다. 놀이패는 동네 잘 되기를 빌어 주기 때문에 고삿반이고 ...
    도랑-돌창, 개울, 시내, 내.... 작은 흐름은 정도에 따라 명칭도 각각인데, 서울에만은 개천(開川)이라는 말이 있다. 사면 산에서 모래가 흘러내려 청계천 바닥이 복사(覆沙)로 덮이면, 역군을 풀어 쳐내서 흐름을 터 줬기 때문이다. 그래 청계천 4가 하류 양쪽으로 꽤 높은 모래 둔덕이 근자까지도 연이어 있었다.

◆ 면장님
    알아야 면장을 본다는 말도 있지만, 어떤 분은 그런다. "박(朴)씨하고 석(石.音)씨 하고는 면장을 하면 성이 바뀐다."고. 방(方) 면장, 성(成) 면장 그러니까 ....
    지금 생물학 용어에는 문젯거리가 많다. 독(禿)수리가 뭔지도 모르는 무리들이 대머리 독수리라고들 하는데, 禿자 자체가 대머리졌다는 뜻인 것을 ....
    전나무라는 상록수는 훤칠하기가 잣나무 비슷하다. 잣나무 열매가 잣이듯이 이 나무의 열매는 젓인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북나무도 그렇다. 장난의 말로 "방귀 뀌었다 뽕나무"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북나무에만 달리는 오배자(五倍子)를 산지에서 붕이라고 하는 것쯤 이제라도 알았으면, 교과서에서 서슴없이 고쳐야 하는 건데 ....
    "곤가가 권(權)가 보듯 한다."고 말한 이가 있어서 웃었다. "소 닭 보듯 한다" "소 양반 보듯 한다" "내 알게 뭐냐."하는 뜻이다. 우리 고장에서는 쐐기, 태기 형제가 있어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호적의 이름은 분명히 송학(松鶴), 태학(太學)인데, 같이 나무하러 다니는 친구들끼리 제멋대로 부른 것이다. 백선(伯善)이라는 친구는 동네 안에서 백쇠-빽쇠로 통하였다. 본래 발음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편한 대로 쓰다보면 이렇게 달라진다. 한자음의 긔···츼가 도리 없이 기···치가 되어 버리듯이.
    한국말을 곧잘 하는 일본인 동창을 만났더니 "한국말에는 글자대로 읽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고 힘들어 한다. 우리는 말을 먼저 배우고 글자를 익혀 별 문제가 아닌데, 글자부터 익히는 저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위에 예로 든 역행 동화(逆行 同化)나, 자음 접변(子音 接變) 등 조금은 신경 써서 지도해야 할 것이다.

◆ 재주는 곰이 넘고
    효자(孝子)를 소자, 형님을 성님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호남 지방에서는 소주(燒酒)를 효주라 하고, 때문에를 꼭 따문에라고 점잖게(?)말하는 이도 있다. 하기야 세종 때 맹글다가 지금 만들다가 되긴 했지만 .... 김치의 어원이 과연 침채(沈蔡)였다면 구개음화의 탕개가 풀리어 되돌아간 것이다.
    형용(形容)을 이런 식으로 발음하다 보면 시늉이 된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더 심하다.
    "어때? 심평이 좀 피었나? "
    심평의 원형은 형편(形便)이다. 원세개(袁世凱)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설치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떨구고 갔다. 대국(大國)이라는 말도 저들이 자칭한 것이다. 그전에도 지금도 중국이지, 본래 없던 말이다.
    카타르(Catarre)라는 침출물(浸出物)을 수반한 점막(粘膜)의 염증(炎症)이 있다. 이것을 한자로 加答兒라 쓴다. 兒는 아르라고 혀끝을 굴려 권설음(捲舌音)으로 발음해 많은 명사들이 이를 따른다.
    항아리는 저들의 缸兒고 광주리도 筐兒가 굳어진 말이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너무한다고 하는 이가 있기에 나는 주워 섬겼다.
    멍석은 망석(網席), 망태기는 망탁(網橐), 송아지의 허리통을 덮어 주는 덕석은 독석(犢席), 포대기는 포단(布團)에서 왔으며, 풀떼기는 불탁(不托)-불탁은 저들의 국수인 데 풀어진 것만 봤던지, 사람이 헤식어 아무 짝에도 못 쓸 위인더러는 "코풀데기 같다"고 하는데, 무면불탁(無麵不托)이라면 건더기가 없어 국수랄 수도 없는 물건이라는 뜻이 된다.
    兒자를 붙여 저들은 저희 자신을 쭝구오르(中國兒)라고 하였다. 그것이 무척 귀설게 들렸는지 우리나라 사람은 그것을 짱골래로 받아들었고 일본 사람들도 혀 짧은 발음이나마 짱꼬로라고 얕잡아 불렀다.
    저들은 그들 말마따나 대국의 위세를 등에 업어 시퍼런 호두루마기에 긴 댕기 꼬랑이를 늘이고, 꼭 요강 뚜껑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서 , 온 국토를 누비며 속임수 놀음을 벌였으니 소위 말하는 야바위판이 그것이다.
    조명이 났다하면 별명이 생겼다는 얘긴데, 사전에서 들은 嘲名을 갖다 맞춰 얕잡아 부르는 호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綽-넉넉할 작, 餘裕綽綽에 나오는-의 저들 발음이 쨔오다. 수호지(水湖志) 같은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협객(俠客)-자신들이 말하는 호걸-들은 저마다 작호(爵號)-별명-을 가지고 있다. 흑선풍(黑旋風-검은 돌개바람) 이규(李逵), 낭리백조(浪裏白鳥-물 위에서 오리처럼 노는) 장순(張順), 몰우전(沒羽箭)-돌팔매를 잘 쳐서 화살이 일없는) 장청(張靑)같이 말이다. 이들의 이 별명을 달리 적으면 짜오밍(綽名) 곧 조명이 된다.

◆ 눈깔은 퉁방울 같고
    우리 문학에서는 미인을 가리켜 구체적으로 어떻다고 표현한 데가 없다. 하는 수없이 비미인의 제1인자로 등장하는 뺑떡 어멈의 묘사에서 역으로 짚어보는 길밖에....
    "눈깔은 퉁방울 같고, 코는 주먹만 하고, 입술은 썰어 담으면 세 사발이나 되겠고 ..."
    예쁜 것이 미학상의 기준이라면 육감적이어서 욕심(慾心)이 나는 상대는 탐(貪)스러운 것인데, 아무리 십 년 홀아비라도 이 꼴을 보다면 정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퉁이 구리 동(銅)자의 중국 발음이다. 놋되 가운데 방짜유기를 최고로 치는데, 협잡물이 많아 광도 안 나고 때려도 맑은 소리가 안 나는 것을 우리는 퉁쇠라고 한다. 퉁노구(銅盧口)는 휴대용의 구리솥이고 퉁요강·피요강, 피는 질이 낮은 구리인데 혹 만주계의 말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퉁이 최고 지위를 차지하는 분야가 있다. 한 고을의 원(員)이 선정를 베풀고 떠나게 되면, 그의 훌륭했음을 널리 알리는 방법이 여러 층 있다.
    몰려와서 삼문을 가로막고 못 떠나게 하는 것이 원류(願留), 몇 번을 탄원해도 '어명(御命)이니 어쩔 수 없노라'고 기어이 떠나게 되면 선비들이 웃옷을 벗어서 길바닥에 줄지어 펴고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렇게야 할 수 있느냐고 도로 들어갔다가, 야밤(야반-夜半) 도주하듯이 지경을 빠져나오는 것이 하나, 그의 덕을 찬양하는 백성들이 돈을 거두어, 큰 일산(日傘)에 주렁주렁 오색 천으로 장식을 돌려 달고 거기다 돈 낸 사람 이름을 연명해 써서 바쳐 드는데, 사람 수가 많아서 만인산(萬人傘)이다. 이것을 가지고 상경하여 가장 번잡한 남대문에서 종로를 거쳐 동대문까지를 뻗쳐 들고 농악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며칠을 내왕해 풍을 친 끝에 그 댁 대문 앞에 갖다 세우고 또 한바탕 두드리게 되면 명예가 그지없어, 조상이 받는 만인산을 가보로 전하는 가문이 곧잘 있다.
    다른 하나는 비석(碑石)을 세우는 일이다. 여기다 이런 글을 새겨 이렇게 세우겠습니다 하고, 우선 나무로 모조품 목비(木碑)를 만들에 길가에 꽂아 당자에게 보이면, 내가 뭐 한 일이 있느냐고 그것을 뽑아 행차 끝에 싣고 올라와야 낯이 섰으니, 그 뒤 예정했던 자리에 석비(石碑)가 서지 않았다면 그런 낯 뜨거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각 고을 중심가에는 으레 옛날 선정한 이들의 비가 섰는데, 새긴 글을 보면 거사비(去思碑), 선정비(善政碑), 뭘 못 잊겠다는 것인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최고로 높은 것이 애민선정(愛民善政) 영세불망비, 더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타루비(墮淚碑), 물론 백성들의 성금으로 세우는 것인데, 집집이서 숟가락, 종지, 밥그릇 등 놋그릇을 내놓아 그것을 녹여서 세운 것이 퉁비, 이것이야말로 서민층의 정성이 서린 비 중의 비이겠는데 ......
    남한산성은 옛날의 광주(廣州) 읍내다. 선정비가 줄지어 선 끝으로 거북 대좌가 비신도 없이 쓸쓸하게 놓인 것이 하나 있는데, 필자가 어려서 본 기억으로는 이렇다.
    "府尹南陽洪公泰潤愛民善政永世不忘碑"
    그런데 그것도 쇠붙이라고 일제 말 거두어 갔다. 쇠란 쇠는 다 먹는 송도(松都) 말년의 불가살이 (不可殺爾)가 있었다니 그것마저도 놓치지 않은 것이다.

◆ 자(子)자의 정체
    중국어는 본시 단음절어이다. 그러니까 글자로 써도 한 글자가 하나의 뜻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그 많은 삼라만상 모두에 글자를 배정할 수는 없어, 두 자 단어가 만들어지면서 이것이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저들은 한 글자 단어에 곧잘 老자를 얹어서 쓴다. 호랑이는 虎자 하나로 족하건만 라오후(老虎), 사람 이름도 김가 성 가진 사람이면 라오찐(老金), 왕씨일 때는 라오왕(老王)하는 식이다. 장개석 총통은 주변의 사람을 누구든지 老자를 붙여 불렀건만, 유독 김구(金九) 선생께만은 언제나 찐셴셩(金先生)이라고 경칭을 썼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물건 이름에는 밑에 子자를 붙여서 쓴다. 판자(板子), 탁자(卓子), 액자(額子), 의자(椅子), 무슨 여자 이름들 같다. 그런데 이 子자가 현대 중국에서 '즈'로 발음된다. 이것이 우리 귀에는 지로 들렸던 모양이다. 장지(障子), 종지(種子-간장 종지, 꿀 종지), 단지(團子-수수팥단지), 널빤지......
    아궁지, 꼬랑지는 이게 아니다. 충북 일부에서는 "먼저 가라."는 말을 "머녀 가셔유." 그런다. ᄂᄅᄆㆁ의 유성음을 힘주어 연결하면 이가 곧잘 '지'로 소리난다. 올감이-올감지, 아궁이-아궁지, 꼬랑이-꼬랑지. 경기도 광주에 곤지암(昆池岩)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거기엔 지명이 유래가 되는 괭이바위가 있다. 괭이의 옛말 고니-곤이가 곤지로 바뀐 것이다.
    민속 행사 가운데 산대(山臺) 놀이를 놀 줄 아는 이들은 예외 없이 산듸라고 말을 한다. 사자를 나타내는 산예(狻猊)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
    새끼손가락의 대는 어미손가락이 되겠는데 엄지손가락, 역시 음의 변화다. 겨레라는 말은 광복 후 되살아난 단어 중의 하나지만, 전에 들은 예로는 종의 결지라는 말이 있다. 짓눌려 지내던 남의 노예들의 족속이라는 뜻이다. 이것도 ᄅ받침 아래서 지로 발음된 현상이다.

◆ 행세가 개차반
    세상에 알려진 명성에 비해, 너무 처신 떨어지는 짓을 하고 다니면 하던 욕인데, 차반이란 무엇일까? 중국어로 밥 먹는 것을 츠판(吃飯) 그것이 변해서 차반이니까, 개나 먹는 것, 그 더러운 것이 개차반이다.
    범의 차반이라는 것도 있다. 호랑이가 짐승을 잡으면 엄청 먹는다. 백두산 얘기를 쓴 기록에 보면 한끼에 16관(60㎏)을 먹더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푸짐한 고기를 남겨 둔 채 며칠을 잔다고 한다. 그래 다른 자질구레한 짐승들이 몰려와 뜯어먹어도 본체 만체, 역시 산중의 왕다운 처신이라고 ....... 그래 먹을 땐 무척 먹고 며칠씩 굶는 알 수 없는 살림을 하는 사람, 그들의 식량을 범의 차반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요새는 재봉틀이 보급되어 그까짓 누비옷쯤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옛날에 손으로 한 땀 한 땀 떠서 꿰매던 시절에는 정말 고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것의 원형이 衲衣(衲-누더기 납, 누더기, 본래 발음은 누옵), 중이나 입는 헌털뱅이 누더기 뜻이다. 그래 중들은 스스로를 천납(踐衲)이라고 칭하였다.
    중들도 겨울철 추위를 이기려면 솜을 두어 입어야겠는데, 뜯개서답해 줄 안식구가 따로 없다. 그래서 통째로도 빨 수 있게 지어낸 솜옷이 누비옷이다. 그래 인기 있는 스님은 신도들이 손 공력 들여 한 땀 한 땀 누벼서 지어다 바치는 그 옷을 걸치고 지내는 청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누비옷의 누비가 동사로 활용하여 명동의 밤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실없는 친구도 생기게 된 것이다.
    한번은 함경도 갑산(甲山) 지방 분을 만나 여러 가지를 들었는데, '그 지방에서 김치를 햄새라 한다던데 사실이냐?'고 하였더니, 김치뿐 아니라 반찬 전반을 그리 부르노라고 하여 실망하였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김치가 침채(沈菜)에서 연유한 단어라면 본래의 우리말 이름은 무엇이던가?

딜(질)가마 조히 싯고 바회 아래 물 기러
쥭 게 고 저리지이 어내니
세상에 이 두 마시야 이 알가 노라.

김광욱(金光煜)의 작품으로 전하는 시조다. 여기 나오는 저리지의 지이는 짠지이, 젓국지이, 싱건지이 하는 것이요, 가을에 송이를 따서 간장으로 지이를 담그는 가정도 있기에 여겨보았다. 그랬더니 漬자의 발음이 지이(前知切, 疾智切)인 것을 알고는, 그것으로 낯이 깎이는 것도 아니건만 또 한번 실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