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국어 순화]

우리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이강로 / 단국대 교수

국어 순화는 정신 순화라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신 사회는 말로써 수렴되고 말로써 생산하기 때문이다. 순화라는 말은 오염되고 더러워진 것을 본디의 순수한 상태로 환원시킨다는 뜻이다. 즉 순화라는 말의 밑바탕에는 여러 잡것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러면 우리말을 순화하자는 데는 그만큼 국어가 오염되고,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배달말은 한자 말이나 일본 말과는 달리, 어휘 면에서나 음운 면, 문법 면에서 우리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순수한 우리말이 있으면서도 이것을 기록할 글자가 없었다. 이러한 문자적 공백기에 정치적, 문화적으로 상당히 발달된 중국 문화가 한자에 업히어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순수한 토박이말을 개먹어 들어갔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기록으로 남기려면 한자를 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므로 자연히 한문 그대로 사용하여 우리말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한자의 뜻이나 음(音)을 빌어 우리말을 나타내기도 하는 기간이 오래 됨에 따라 순수한 토박이말은 차차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말갓말갓하다'는 말이 '耿耿하다'로 '하놀이다'란 말이 '戱弄하다'로 '오누이'가 '男妹'로 '메'가 '山'으로 ...이렇게 수많은 순수한 토박이말이 한자 말로 대치되면서, 배달말의 정신 사회가 한자 말을 쓰는 중국식 정신 사회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사적 변환을 부추긴 것이 바로 지식 계급이었다. 여기에서 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하여 한자를 많이 쓰는 사회일수록 훌륭하고 드높으며, 토박이말을 많이 쓰는 사회일수록 낮고 천하게 생각하는 사조가 우리 사회에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한자 말이 토박이말 이상으로 수적으로도 많고 안하무인격으로 권위를 휘두르고 있다. 그것은 곧 정신 면에서 제 정신을 잃고, 한자어라는 외국 정신에 도취되어 제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실지로 우리나라의 지식 계층에서는 그나마 노루 꼬리만 한 한자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자를 쓰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니고 한자어를 몇 마디 지껄여야만 유식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불행하게도 일본에 강점 당한 뒤로는 일본 말이 판을 치다 물러났다. 그러나 일본 말을 지껄여야 유식한 체하는 못된 사상이 퍼지기 시작하여 아예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 데도 일본 말 그대로를 쓰고 있다. '맑은 장국'이라는 고유한 말을 몇 천 년을 써 내려왔는 데도, '지리'(チリ)라야 알아듣고, '붕장어'라는 버젓한 우리말 대신에 '아나고'(アナコ)가 판을 친다. 한마디로 말하여 이 나라 겨레가 제 정신이 있는지 의심할 정도이고, 일본 사람 몸뚱이에 한국 옷만 걸친 것이 아닌가 착각하기 쉽다.
    그러면 이러한 그릇된 생각, 일그러진 정신 상태를 바로잡는 처방은 무엇일까? 이것은 한 마디로 제 것을 소중하게 아는 정신을 길러야 한다. 말 한마디가 그 말에 그치지 않고 그 한 끝이 전류(電流)를 통하여 정신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인식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 중에서도 국어 순화를 몸소 실천하고 연구하여야 할 사람들이 바로 지성인이고, 그 중에서도 언론인, 방송인, 교육자들과 같이 일반에게 영향력을 끼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몸소 실천하여야 하고, 우리말의 소중한 것을 뼛속 깊이 느끼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몇 해 전 실지로 있은 일이다. 어느 고위 정치가의 한 분이 깔방석을 '자부돈'(座布도)이라고 말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들었다. 또 한글 기념식에서 '한글 반포'를 '송포'라고 잘못 읽은 사례도 있었다. 이런 것을 말 한 마디의 잘못으로 넘겨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런 표현의 안쪽에는 국어에 무관심하거나 등한시하는 정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지배하는 한 우리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
    국어를 순화하는 가장 똑똑하고 바른 길은 지식인들이 내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의 정신적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정신만이 민족 자주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요, 국어를 아름답게 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