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의 순화 운동·일본]

일본의 국어 순화 정책

 

강인선 / 서울대 강사·언어학

자국어를 순화하려는 노력은 일단 국어의 표현과 이해에 무리가 생겨서 그것이 사회 문제가 될 때 나타나는 것이므로 음성 언어와 표기 언어 양면에 걸친다. 크게 보아 표준어와 방언(방언 교정), 문자(한자 문제, 정서법), 외래어 등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일본은 비교적 느슨한 순화 정책을 갖고 있다.

(1) 표준어 교육
    역사적으로 헤이안 시대(9세기~11세기)에 이미 문학 작품에서 지방 말을 쓰는 이를 조롱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듯이 교토 말이 중앙어로 지방어와 차이가 생긴 이래, 에도 시대(17세기~19세기중엽)에 전국이 대소번국(봉건 영주국)으로 나뉜 결과 각 지역마다 독특한 언어 체계와 방언(방언 구획 대략 4군 14개 방언)이 생겨났다. 서로 다른 지방 출신의 사람이 만나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고 한다. 근대 사회로의 요구가 국가 의식 민족 의식에 의해서 고취되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표준어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으며 1910년대에는 "방언 박멸론"에 입각해서 지나친 방언 교정법이 시행되기도 하였으나,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해서 일본어의 해외 진출 때문에 국어의 순화와 말하기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전후 1948년의 학교 교육법에서도 국어과의 표준어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표준어 교육 구어 지도는 음운, 악센트, 인토네이션, 어휘, 어법의 부문에 걸쳐 행하고 있는데, 매우 분석적이며 철저히 대조적인 방법을 써서 교육하고 있다.
    각 지역의 지도안은 그간에 축적된 각 방언의 조사와 연구 성과에 의한 것이다.(1)
    이러한 교육의 결과, 한 보고에 의하면 표준어(공통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다음의 세 요인-1. 학력 2. 부모의 출신지 3. 본인의 생육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표준어 교육은 그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2) 물론 국어 교사의 자질 문제, 방송 매체에서의 언어 사용 문제(NHK를 제외하고는 표준어 사용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가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방언 사용자는 거의 사라져서 기록 보존에 힘쓰고 있는 형편이다.

(2) 문자 문제
    문자 문제는 1) 한자 폐지 2) 한자 제한 3) 정서법(가나즈카이) 4) 토달기(오쿠리가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성격상 가나즈카이는 별개이고 나머지는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19세기 말 1866년 마에시마(前島 密)가 장군 도쿠가와(德川慶喜)에게 "漢字御廢止之儀"를 올려, 한자를 폐지하고 가나를 써서 문어와 국어를 일치시킬 것을 건의한 것을 비롯하여, 메이지유신(1868) 후 한자 폐지론이 활발해져서 1883년에는 가나 전용론자들 제 단체를 연합한 "かなのくわい"가 결성되어 뒷날(1920) "カナモヅカイ"가 설립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한편으로 로마자론도 활발해서 "羅馬字會" 등의 단체도 결성되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3)
    한자 제한은, 康熙字典에 실린 4만여의 한자는 일본의 일상적 사용에는 3천~5천이면 되고 더구나 비슷한 기능을 하는 한자의 구별을 없애고 일본어로서 친숙하지 않은 한자 사용을 피하면 더욱 적은 수의 한자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로 문장어 교육 및 보급, 문서의 간편화, 인쇄 사무기기의 능률화를 위해 각계의 요청에 따라서, 전후 민주화 시기에 맞추어 "當用漢字"의 제정(1946년)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신문, 잡지, 실업계 등 능률 중심의 사회로부터의 요구가 시류에 힘입어 관의 적극적 개입으로 결실된 것이다.
    그 경위를 간추려 보면 1872년 문부경 오오키(大木喬任)가 한자 제한을 목적으로 新選字書를 편집시킨 것을 필두로 한자 제한이 나오다가 1887년 郵便報知가 한자 제한 3천 자 발표 실시, 1919년 문부성 보통학무국 편 한자 정리 안 간행, 1921년 東京, 大版 17개 신문사 "漢字制限に付全國新聞社に御協議" 발표, 1923년 임시 국어 조사회 상용 한자표 발표(총 1962자 약자 154자 포함) 신문 잡지 인쇄 관계자 "한자 제한 기성회" 성립, 유력 신문사들 "9월 1일부터 한자 제한 실행"이라는 공동 선언 발표(다만 관동 대지진으로 실행 불능), 1931년 임시 국어 조사회 1923년 발표의 수정 1856자 발표(147자 삭제, 45자 추가), 1935년 斯文會 상용 한자 3584자 제정, 1938년 야마모토(山本有三) 소설 후기 "國語に對する-つの意見"에서 후리가나(독음 달기) 폐지, 쉬운 말 쓰기 등을 주장, 1942년 國語 審議會 "標準 漢字表"(상용 한자 1134자, 준상용 한자 1320자, 특별 한자 74자) 결정, 문부성은 반대를 겁내 상용, 특별의 구별을 없애 2669자로 공표, 1946년 요미우리(讀買) 신문 한자 제한 실시, 國語 審議會 총회 "當用漢字表"(1850자) "現代かなづかい"결정, 정부가 공표, 중요 신문사들 "現代かなづかい" "當用漢字"채택하기에 이른다. 이어서 "當用漢字音訓表"와 의무 교육용 "當用漢字別表"(881자, 소위 교육 한자) "當用漢字字體表" "人名用漢字別表" 등이 國語 審議會에서 결정되고 정부에 의해 공포되었다. 이때 호적법 시행 규칙도 일부 개정됨. 이 한자표는 "법령, 공용 문서, 신문, 잡지 및 일반 사회에서 사용할 한자의 범위를 보인 것"으로 "국민 생활에 한자 제한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도록" 선택된 것이므로, 법령, 공용문, 검정 교과서 등의 표기는 이에 근거하도록 되어 있어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신문도 當用漢字를 사용하였고, 그 시행의 범위는 넓었다. 그러나 전문 용어도 이 표를 기준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사용상의 주의는 미묘한 美的 表象이나 미세한 전문적 개념의 표현까지도 능률적 개혁에 쫓기어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는 학자들의 맹렬한 공격과 심지어 헌법에 명기된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4) 그 결과 1966년 문부대신이 국어 심의회에 "國語施策の改善の具体策について"를 자문하게 되어, 1973년에 실행 제한 규제를 약화한 "當用漢字音訓表"를 거쳐, 1981년 국어 심의회는 국립 국어 연구소 기타의 조사 자료를 검토하여 한자의 자종, 자체, 음훈 어례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常用漢字表"(1945자)를 답신하여 정부가 고시, 이전의 고시는 폐기하였다. 호적법 시행 규칙도 일부 개정되어 사람 이름은 상용 한자표, 별표 제2(166자), 가타카나 또는 히라가나로 적을 수 있게 되었다.(5)
    이와 같이 "當用漢字表"에서 "常用漢字表"로 바뀌었으나, 기본적인 한자 제한의 정신은 이어지고 있어, 다만 고유 명사 표기를 제외한 일반 사회 생활에서 쓰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용의 강도를 약화시켰을 뿐이다. 1946년의 "當用漢字表"에 따라 한자 제한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이는 현대 일본어와 한국어의 한자 어휘의 차이를 가져오게 했다.

1) 한자어의 경우
① 같은 뜻의 한자로 바꾼다.
ⅰ) 동일字源 또는 正速同字;廻轉→回轉, 管絃樂→管弦樂, 註文→注文
ⅱ) 음이 통하는 것;火焰→火炎, 挌鬪→格鬪, 稀薄→希薄, 史蹟→事跡
ⅲ) 같거나 비슷한 의미자 차용;慰藉料→慰謝料, 漁撈→漁勞
ⅳ) 단순히 음만 차용;一挺→一丁, 裝釘·裝幀→裝丁, 庖丁→包丁
② 다른 낱말로 바꾼다.
ⅰ) 當用漢字나 가나 표기 고유어로 ;含嗽→らがい, 旱魃→ひでり, 夭折→若死に, 播種→たねまき
ⅱ) 當用漢字로 쓸 수 있는 한자어로 ;安堵→安心, 活翰→大部, 宿痾→持病, 隘路→難關·障害
ⅲ) 當用漢字로 쓸 수 있는 새로운 한자어로 ;瀆職→汚職, 嫌疑→容疑, 全貌→全容
ⅳ) 관용 어구는 그 의미를 바꿔 말하거나, 다른 표현으로 ;一連托生→道連れ·共同責任, 無辜の民→罪なき民·善良な民, 人口に膾炙する→ひろく知れわたる
ⅴ) 가타카나로 쓰는 외래어로 ;問諜→スパイ, 閃光→スパ-ク, 範疇→カテゴリ─, 揷話→エピソ─ド, 三稜鏡→プリズム(단, "常用漢字表"에서는 揷話를 쓸 수 있게 됨)
③ 가나로 쓴다.(6)
埃拶→あいさつ, 機嬚→きげん, 贅澤→ぜいたく, 賄賂→わいろ, 味增→みそ, 贔屓→ひいき, 曖味→あいまい, 斡旋→あつせん
2) 고유어의 경우
① 일부 또는 전부를 가나로 쓴다.
果物→くだもの, 揷話→さし繪, 俤→おもかげ, 本棚→本だな, 綴り方→つづり方, 腥い→なまぐさい, 頃→ころ, 筈 →けず, 衿→えり貰う→もらう
② 다른 한자로 바꾸어 쓴다.
俤→面影, 腥い→生臭い, 云う→言う, 廻す→回す, 想う→思う, 哀しい→悲しい
    이 가운데 특히 주의를 끄는 항목은 1)의 ②로, 어휘 표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ⅴ) 외래어로 쓰기는 현재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외래어 범람의 주요 동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3) 외래어 문제
    한자어를 제외한 외래어의 표기는 역사적으로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 로마자의 네 종류가 있었다. 16세기 말 천주교 관계 자료에 "賀羅左, 世主子", "ヲベチ", "きりしたん" 표기가, 17세기에는 주로 한자, 히라가나 표기가 많으나 19세기가 되면서 한자와 가타카나 표기가 많아졌다.
    덧붙여, 한자에 붙이는 후리가나(독음 달기)는 1946년에 폐지되었다가 1981년에는 허용되었다.
    소위 메이지 시대에는 한자 표기가 줄어들고 (型錄-캐털로그, 俱樂部-클럽 정도) 히라가나는 특이한 기분을 내는 데 쓰이고 문학 작품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문헌에서 가타카나로 쓴 것이 많아 외래어 표기는 가타카나만 쓰게 되었다. 로마자 표기도 이 시대부터 늘어나서 PTA, DDT, BG, PR, LP 등이 쓰였다.(7)
    이후 전쟁 기간의 영어 사용 금지가 있었지만 전쟁 후의 유엔군 진주, 올림픽 이후의 서구화한 사회 구조적 변화에 따라 외래어 유입은 급격히 늘어났다. 사전에 등록된 어휘를 보면 "言海"(1889)에서 1.4% (어휘 39,103)이던 것이 "例解國語辭典"(1956)에서는 3.5%(총 어휘 40,393)로 늘어났고 잠정적으로 계산하여 "例解新國語辭典"(1984)에서는 10%가 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취한 태도는 없고, 다만 표기에 관한 1926년 임시 국어 조사회가 마련한 "外國語の寫し方"발표, 국어심 의회의 "外國語の書き方"(1954)가 있을 뿐이다. 원어음을 중시한 표기 방법과 일본어화한 평이한 표기 방법 가운데, 후자의 것을 따르고 있으나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자 제한에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적법하게 길을 열어 놓고 그 시기에 급격한 서구화가 이루어지면서, 한자어로 번역 수용하는 힘이 약화된 틈을 타 쏟아진 외래어는 완화된 한자 사용 제한에도 불구하고 가속력이 붙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어가 남아날까 하는 일부 식자층의 우려도 있지만(8) 각종 신문, 광고는 가타카나투성이이다.
    사전의 표제어로 올라 있으면서 일상어로 쓰이는 어휘 가운데 한국인에게 익숙지 않은 예를 일부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アイス(アイスコ-ヒ↔ホット, アイススケ-ト) 얼음(냉커피↔더운, 스케이트) アイデア(アイデアマソ) 생각, 아이디어(기발한 사람?) アイドル(アイドル歌手) 인기인(인기 가수) アクロバット 곡예 アットホ-ム 가정적 アップ(レバルアップ,ップする) 상승(수준 향상, 돋보이게 하다) アトランダム (무작위) アドリブ 즉흥(연주, 대사) アラカルト 일품 요리 アべレ-ヅ(アべレ-ジする) 평균(평균하다) アンシ-カ 전천후(경기장)......

대개 우리에게 낯선 문화적 전문어이고, 영어 또는 프랑스 어를 명사로 받아들여 술어화한 것들이다. sabotage에서 サボる(태업하다)를, double에서 ダブる(겹치다)를 만들고, 축약형 アナ〈 announcer プロ〈 profession-al プチブル〈 petit bourgeois バイト〈 Arbeit를 쓰는 일본적 수용을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일본어는 자유 방임하에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의 각축장이 되고 있으며, 표기에도 어떠한 제약이 없다.
    사람들의 생활양식, 사고방식이 바뀌면서 언어생활도 바뀔 것이다. 다양하여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듯한 현재 일본의 언어생활을 잘 보여 주는 한 은행 광고를 들어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9) 사용 가능한 문자가 모두 등장하였다.

夢に, スイッチ ON

ホ─ナスは, 夢をカタチにする暮らしのスイッチです.
こんどのボ─ナスで, 計劃をスタ─トさせましよう.夢の實現のためにき
くたくわえる貯蓄プランは當士がおてつだいします.

■ 참고 문헌
국립 국어 연구소 편 國語 年鑑(1970 이후 ~)
국립 국어 연구소 보고
국어학회 편(1982) 國語學 大辭典, 東京當出版
이노우에(1984) 私家版 井上ひさし, 日本語文法, 新潮文庫
오오노(1979) 大野普, 對談 日本語を考える, 中公文庫
오카, 도키에다 감수(1962) 岡一男, 時技誠記監修, 國語 國文學 資料 圖解 大辭典, 전국 교육 도서 주식회사
츠키시마(1969) 築島裕, 國語學, 東京 大學 出版部
하야시 외(1984) 林四郞 外, 例解新國語辭典, 三省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