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 해설
柳穆相 / 中央大 교수·국어학
1. 머리말
정부는 1988년 1월 19일 문교부 고시 제88-1호로 '한글 맞춤법'을 확정 고시하였다. 그리고 이 '한글 맞춤법'을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이 고시의 부칙으로 명기하였으매 앞으로 10개월 뒤부터는 고쳐진 새 '한글 맞춤법'에 따라 우리말을 적도록 되어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 우리가 우리말 표기의 준규로 삼고 있는 것은 민간 어문 연구 단체이던 한글 학회(당시는 조선어 학회)가 1933년에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다. 당시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정부나 또는 내각 고시의 표기법 안이 나올 수 없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비록 민간 학술 단체라고는 하나, 민족의 예지를 모아, 실로 긴 세월에 걸쳐 많은 인사들이 참여하여 다듬고 다시 다듬어 낸 '맞춤법 통일안'은 우리 민족의 기념비적인 큰 업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말의 성질을 잘 살린 이 '맞춤법 통일안'으로 하여 흐트러진 표기를 바로잡고 우리말을 수습하는데 이바지한 공은 참으로 크다. 이 안은 그동안 몇 차례의 수정과 개정을 거치기는 하였으나 '불비한 점'을 보완하고 보충하는 작업이 원숙하게 수행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여기서 한글 학회의 '학회'로서의 연구 기능이나 활동에 대하여 또는 '맞춤법 통일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나 그 보완 작업의 허술하였음을 탓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현행의 우리 표기법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바탕으로 하였으되 문교부가 부분적으로 덧붙인 '보충 안'에 기대어 운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하나로의 '종합'을 요구하게 된 배경이라 할 것이다. 새로운 맞춤법이 요구된 또 하나의 주요한 이유는 건국과 동시에 종래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정부가 그대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정부 차원의 맞춤법으로 확정했어야 마땅한 것이었는데 이제까지 미루어 왔던 것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제2차 대전 얼마 뒤 내각 고시(內閣 告示)로 현재의 정서법(正書法)을 확정한 것을 참고적으로 회상할 수 있다. 이제 늦게나마 정부(政府)가 국가 차원의 새 맞춤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때문에 온 국민이 이 법을 준수해야 할 것이며, 시행하는 가운데 발견되는 불합리한 것이나 모순된 것은 수시로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무릇 어떤 것이든 개정이나 수정에는 반드시 찬반(贊反)의 양론이 대립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발전 과정이며 민주적인 절차일 수도 있다 하겠다. 항간에서는 새 맞춤법이 실용에 옮겨지면 혼란이 일어날듯 왁자하게 떠벌리는 이들이 없지 않으나 실상을 살펴보면 종래의 '맞춤법 통일안'을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정비한 것으로 달라진 폭이 지극히 좁다. 당초에 우리말의 구조에 맞게 짜여졌을 뿐더러 반세기 이상을 습용(襲用)해 온 맞춤법이기 때문에 대폭으로 고칠 까닭도 없거니와, 고쳐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이 일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 분들의 공통된 견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고시된 맞춤법을 보기까지에는 장장 17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어찌 보면 시간과 노력의 낭비, 경제적 손실 운운으로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속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 학회 많은 인사들의 관여를 거쳐 민주적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민족(異民族)의 지배 아래서 자생자활의 한 길〔방도〕로 우리말과 글을 살리고 가꾸자는 숭고한 뜻의 결정(結晶)이었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한글 맞춤법'으로 정부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것은 격상(格上)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며 기쁘게 생각할 일이다. 온 국민의 보살핌 속에서 이 법이 준수되고 준용되기를 바라면서 고쳐지거나 보태어진 부분에 대하여 간단히 해설을 하고자 하는 바이다.
2. 개정 내용
1) 불필요한 규정의 정리
종래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가운데 제33항, 제34항, 제35항, 제38항, 제40항, 제41항, 제45항, 제46항 등 죽은 규정을 없애어 정리하였다. 이들은 1930년대의 한자음(漢字音) 개신(改新)에 따른 한자말 표기의 방법을 규정한 것들로서 오늘날 불필요한 규정들이기 때문에 이들 규정들을 삭제한 것이다.
따라 '少年'을 '쇼년'이 아닌 '소년'으로, '汽車'를 '긔차'가 아닌 '기차'로 적어야 한다는 따위의 사문화(死文化)한 규정은 말끔히 정리되었다.
2) 미비점 보완
(1) 이제까지 우리말 사전의 올림말의 차례가 사전에 따라 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같은 학회에서 발행한 사전까지 그 차례잡기에 있어 달리 나타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이러한 것은 결코 문명한 나라의 모습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펴낸 사전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발행되는 사전의 어휘 배열은 똑같게 될 것이다. 새 맞춤법에서는 사전에 올릴 적의 자모 순서를 정하여 놓았다. (제4항 붙임 2)
(2) 종래의 '통일안'에 두음 법칙에 관한 규정이 있었다(통 : 제42항, 제43항, 제44항). 그러나 접두사처럼 쓰이는 글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도 두음 법칙의 지배를 받도록 규정하였다. (제10항 붙임 2, 제11항 붙임 4, 제12항 붙임 2) 이러한 규정에 따라, '신여성'(新女性), '연이율'(年利率), '내내월(來來月)' 따위로 적게 되었다. 이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단어의 두음(頭音)은 아니지만 두음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접사(接辭)로 해서 단어의 본디 모습이 깨뜨려지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앞으로 '死六臣', '沒廉恥','破廉恥' 등의 한글 표기도 통일될 것이다.
(3) 접미사처럼 쓰이는 한자(漢字)는 본음대로 적기로 하였다. (제12항 붙임 1)
종래 '가정란 : 가정난', '태자릉 : 태자능' 등이 엇갈리게 표기되었으나 앞의 것으로 통일되었다. 보는 이에 따라 '난'(欄)이나 '능'(陵) 자체를 단어로 볼 수도 있겠으나, 완전 자립 명사로 보기 어렵고 또한 표기의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통일시킨 것이다. 형태 분석으로 보면 '太子陵'은 '태자-릉'이나 '東九陵'은 '동-구릉'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서삼릉'(西三陵)과 '동구릉'(東九陵)은 같은 구성형을 지니고 있다. '經濟欄'과 '經濟難'을 '경제란', '경제난'으로 적음으로써 같은 표기에서 오는 혼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한자음 '렬, 률'은 단어의 첫 머리가 아니더라도 '열, 율'로 적는다. (제11항 붙임 1 다만) 이것은 문교부의 '보충 안'을 받아들인 규정이다. 따라서 '계열(系列)', '선열'(先烈), '원주율'(圓周率), '누진율'(累進率)처럼 표기하게 된다.
(5) 된소리로 나는 접미사는 된소리로 적기로 하였다. (제54항) 따라서 '일꾼, 빛깔, 객쩍다...' 따위로 적어 '일군 : 일꾼', '빛갈 : 빛깔', '객적다 : 객쩍다'와 같은 표기의 혼란을 막게 하였다.
(6) 겹쳐 나는 소리는 같은 글자로 적게 하였다. (제13항) 우리말의 말소리 규칙에 따르면〔ㄱ〕〔ㄷ〕〔ㅂ〕과 같은 끝소리에 다시 〔ㄱ〕〔ㄷ〕〔ㅂ〕과 같은 첫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지는 첫소리는 〔ㄲ〕〔ㄸ〕〔ㅃ〕로 발음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짭잘하다'로 표기해도 그 발음이〔짭짤하다〕인 것은 음리상(音理上) 당연하다. 이런 까닭에 '먹고', '듣더니', '듣자니' 따위의 표기에는 종전처럼 원칙이 지켜지나,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날 때는 같은 글자로 적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쌕쌕', 쓱싹쓱싹, 유유상종, 누누히, 놀놀하다, 씁쓸하다,...따위로 표기하게 된다.
3) 현실에 맞추어 고친 사항
(1) 본뜻에서 멀어진 복합 동사의 앞말은 어간과 어미로 구별하여 적지 아니한다. (제15항 붙임 1(2)) 우리말에는 두 개의 용언이 어울려 새로운 용언을 이루는 경우가 아주 보편적이다. 예컨대 '돋다+나다'가 '돋아나다'로 '접다+들다'가 '접어들다'로 발전됨과 같다. 용언과 용언의 결합은 보통 어미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른바 제1부사형 어미 '-아(-어)'에 의하여 묶어지는 것이 예사이다. 그런데 '드러나다', '사라지다', '쓰러지다'와 같은 말은 뜻으로 보아 두 낱말이 합쳐진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형태소를 밝히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짊어지다'에 견주어 '걸머지다'로 적은 선례(先例)가 이것을 보강하고 있다.
(2) 종결형 어미 '-오'는 '요'로 소리나더라도 '-오'로 적고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요'는 '이요'로 적는다. (제15항 붙임 3)
처럼 적게 된다. '이'아래서 '오'가〔요〕로 발음되는 것은 음리(音理)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다'('아니다'포함)의 활용형 '이오'('아니오'포함)의 표기를 이원화(二元化)한 것은 표기상의 혼동을 덜기 위한 것이다.
(3) '가깝다·괴롭다·새롭다'의 활용형 '가까와·괴로와·새로와'를 '가까워·괴로워·새로워'로 적도록 하였다. (제18항 6)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모음조화의 규칙을 깨뜨리는 일이라 하여 논란의 꼬투리가 되었던 대목의 하나이다. 이처럼 활용상의 변칙(불규칙)을 인정한다면 '앉아서, 앉아라,...'도 '앉어서, 앉어라...'로 해야 할 게 아니냐 하는 반론도 나왔다. 분명히 뿌리 깊은 모음조화 현상이 깨뜨려진 활용례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언어 규칙에 대한 위반으로까지 몰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맞춤법 제1장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의 총칙 규정에 따랐을 뿐이다. 맞춤법을 이렇게 정한 것이 아니라 사정된 '표준어'에 따라 그 어형(語形)의 변화를 인정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변칙의 인정은 앞으로 어휘(語彙) 하나하나에 대한 개별 심사를 거쳐 결정될 성질의 것이라 여겨진다.
(4) 부사에 '-이'가 붙어서 다시 부사가 되는 경우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 (제25항 붙임 2) 종래 '더우기', '일찌기'로 적어 오던 것을 '더욱이', '일찍이'로 적기로 하였다. 엄격한 의미에서 '더우기 : 더욱', '일찌기 : 일찍'은 사전의 풀이에 상관없이 온전히 같은 뜻을 지닌 단어는 아니다. 그러나 어원(語源)으로 보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우기'에서 '더욱'이 형성되거나 '일찌기'에서 '일찍'이 형성되었다고 보기보다는 '더욱-이', '일찍-이'가 합리적이다. 축약(縮約)에 의하여 의미 변화를 가져온 예는 더러 있다. 예컨대 '같잖다'의 부의(副意)에서 그런 예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한자 '尤', '早'의 새김이 '더욱', '일찍'인 것을 참고하여 보면 '더욱-이', '일찍-이'의 형성 과정이 정당한 것으로 짐작된다.
(5) 한자어에서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였다. 다만 두 음절로 된 다음 6개 한자어에 한하여 허용하였다. (제30항 3)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가 그것이다. 우선 '사이시옷'의 어의(語義)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이시옷'의 한자어는 '間音'으로서 글자 그대로 '間音ㅅ'이다. 간음(間音)은 앞의 말이 한자어인 경우 비음절(非音節)인 낱자로 두 말 사이에 놓였고, 개음절로 끝나는 고유어인 경우 윗글자의 받침 자리에 놓아 썼던 것이다. '15세기에도 이미 토박이말과 한자 말을 구별하지 않고 일어났던, 강력한 언어 현상...사이시옷 적기를 차별 없이 적용하는 일이 불가피합니다.'라 하여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에 맞추어 고유어, 한자어 할 것 없이 광범하게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곧 한자어 6개 어휘에만 적용시키는 것이 폐적이요 언어학의 이치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사이시옷'의 쓰인 내력(內歷)을 보면 본디 단어에 쓰였다기보다는 어구(語句)에서 사용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한자(漢字)에는 받침으로 쓰인 예가 없었던 것이다. 자형(字形)으로 보아도 한자에 한글 받침을 붙이는 꼴이 되어 말이 안 되는 표기이다. '셋방'을 우리말의 음리 현상(音理 現象)에 따라 발음하면〔셋빵〕이 되어야 하나 사이시옷은 받침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세빵]으로 발음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理科'를 '잇과'로 적자고 하는 것은 바로〔읻꽈〕로 발음하자는 말과 같은 것이다. '理科'의 바른 발음은〔이꽈〕이다. 이런 까닭들로 해서 고유어나 한자어를 구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이시옷은 우리 고유어나 한자어라 할지라도 준고유어(準固有語)로 바뀐 말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표기상의 혼란을 막는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물론 발음 기호를 따로 달지 않은 말이 편리하고 좋은 표기임에 틀림없지만 모든 어휘가 다 표음주의를 취할 수 없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사이시옷을 붙이는 말들은 어휘 중심으로 낱낱의 심의를 거쳐 증감되어야 할 것이다. 두루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사이시옷'이 표기상의 혼란을 크게 한 한 원인이었음을 덧붙여 둔다.
(6) 준말 적기에 있어, '-지-않'을 '-잖-', '-하지-않-(- ㅎ지-않-'을 '-찮-'으로 적기로 하였다. (제39항)
이에 대하여 'ㅣ+ㅏ,ㅣ+ㅓ,ㅣ+ㅗ'가 겹쳐서 'ㅑ,ㅕ,ㅛ'되는 음리(音理)를 벗어난 불합리한 규정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뿐더러 이 규정을 살리려면 '가지어, 만지어'를 '가져, 만져'가 아닌 '가저, 만저'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의 개정은 단지 발음상의 편이에 따른 편의주의(便宜主義) 표기의 개정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지 않다'의 부정(否定)의 뜻을 지닌 어구(語句)가 축약에 의하여 어화(語化)한 많은 어휘를 가지고 있다.
등 수십 개에 달하는 낱말들이 이를 실증하고 있다. 이들도 음의 결합으로 보면 당연히
로 표기되어야 할 것이나 그렇게 적지 아니한 까닭은 어미인 '-지'와 어간인 '않-'이 축약될 이론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단모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곧 실사(實辭)인 어간과 허사(虛辭)인 어미와의 축약은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나 그 역(逆)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제39항에는
(본말) | (준말) |
그렇지 않은 | 그렇잖은 |
변변하지 않다 | 변변찮다 |
를 내걸었으나 (본말)쪽은 어구(語句)인데 반하여 (준말)쪽은 축약형이긴 하나 낱말로 다루어져야 할 성격의 것이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처럼 '변변찮-'이 어간성(語幹性)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말 용언의 어간(語幹) 그 자체가 축약으로 형성된 복모음(復母音)은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간은 어의(語義) 형성부인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에 있어 어간 형성에 '쟈, 져, 죠, ... 챠, 쳐, 쵸,... 따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 차,...'로 적게 되었으며, 이렇게 적는 배경은 바로 종래 바른 표기로 받아들이고 있던 '같잖다, 귀찮다'와 같은 표기례에 근거하고 있다 하겠다.
(7) 비성절음(非成節音)인 자음의 독립적인 표기를 않기로 하였다. (40항) 종래의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의 준말 표기로
로 원칙을 삼았다(통일안 제56항). 그런데 이번에 음절 구성의 힘이 없는 'ㅎ'을 독립적으로 쓰는 것이 우리말 표기의 큰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말은 음절 표음주의 표기법이다.)
처럼 적게 되었다. 따라서 '생각하건대'의 준말은 '생각컨대'로 적게 된다. 용언의 대표 어미를 '-다'로 잡고 있는 터에, '하다'의 준 꼴로 '-타'를 세운 것이 생소하고 또한 원칙적으로 불변부(不變部)인 어간과 가변부(可變部)인 어미를 유착시켜 활용형의 기조를 흔드는 것같이 보기도 하나, 주로 한자성(漢字性) 어근에 붙어 용언화(用言化)시키는 '-하다'의 준말에서만 인정되는 규정으로 보면 된다.
(8)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죄다 '-히'로 적기로 하였다. (제15항) '깨끗이, 반듯이'처럼 분명히'-이'로 끝나는 것은 '-이'로 적되, '솔직히, 쓸쓸히'처럼 '-히'나 '-이'로도 발음되어 혼동의 여지가 있는 말은 '-히'로 통일하도록 규정하였다. '가만히, 무단히, 각별히, 섭섭히, 조용히, 고요히...' 따위는 발음하기에 따라〔ㅎ〕묵음(黙音)이 되더라도 '-히'로 적어야 하는 것이다.
(9) 의문(疑問)을 나타내는 말끝 이외의 경우에 어미를 적는데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제53항) 현재 혼동 표기의 예로 '-ㄹ걸 : ㄹ껄', '-ㄹ수록 : ㄹ쑤록', '-ㄹ지라도 : -ㄹ찌라도' 등을 들 수 있는데 앞의 것을 취하고 뒤의 것을 버리기로 하였다. 다만 '-(스)ㅂ니까, -(으)리까, -(으)ㄹ쏘냐, -(으)ㄹ까, ...'처럼 의문을 나타내는 어미에서만 된소리를 인정한 것이다.
(10) 보조 용언을 본용언에 붙여 씀을 허용하였다. (제47항) 허용 규정으로 한 것은 제2항의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총칙에 대하여 벗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동사에는 '걸어-가다, 돌이-오다,...'와 같은 복합 동사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붙여 쓰면 한 단어요, 띄어 쓰면 두 단어가 되어 쓰는 이에 따라 붙여 쓰기도 하고 띄어쓰기도 하는 형편이어서 혼란을 빚어 왔다. 이리하여 적당히 붙여 씀을 허용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를 예시하여 띄어쓰기의 효(效)를 죽이는 일이라 하나 허용 규정은 어디까지나 허용이니까 적절히 조정할 수 있다. 실제 위에 든 예시는 글 뜻으로 보아
로 기식 단위(氣息 單位)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주어'는 '말해','도와'에 대하여 보조적이며, '버렸다'는 '말해주어'에 대하여, 그리고 '보십시오'는 '도와주어'에 대하여 보조적인 자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는 어디까지나 독해나 이해를 돕기 위한 편법일 뿐이며 융통성 있게 운용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듯하다, 만하다, 법하다, 성싶다, 척하다'따위는 보조 용언으로서의 자질(資質) 그 자체에도 문제가 있으나 언어 사용자의 편에서 볼 때 붙여 씀을 허용하는 쪽이 원칙으로 될 전망이다.
(11) 성(姓)과 이름, 성과 호를 붙여 쓰기로 하였다. (제48항) 성명(姓名)이 하나의 명사인 것처럼 성과 이름을 하나의 단위가 되는 고유 명사로 본 것이다. 성(姓) 없는 이름이 없는 것처럼, 이름 또한 성(姓)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姓)으로만 부르거나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은 약칭(略稱)으로 준말〔略語〕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성명은 보통 세 글자로서 '姓一字, 名二字'인데, 이따금 두 글자 성과 외글자 이름을 가진 이가 있어 혼동의 여지가 있을 경우 '황보 일'(皇甫 一)처럼 띄어 씀을 허용하였다.
(12)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로서 복합형인 것은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게 허용하였다. (제49항) 예컨대 '한국대학교 사범대학'과 같은 표기이다. 띄어 놓은 자리에 아포스트로피(apostrophe)가 인정되면 그 자리가 띄게 되는 자리로 보면 된다. 이 밖에 전문 용어나 학술 용어도 붙여 쓸 수 있게 허용하였다. 복합 개념(複合 槪念)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중거리탄도유도탄'과 같은 표기례를 들 수 있다.
(13) 뜻의 구별이 분명하지 못한데도 다르게 적던 표기는 한 가지로 통일하였다. (제55항) 종래의 '마춤옷'을 '맞춤옷'으로 적게 되었다. '마춤옷'의 본뜻이 '주문하여 만든 옷'이라기보다 '몸에 맞추어 만든 옷'이기에 굳이 '마춤옷'으로 적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 '입을 맞추다'나 '옷을 맞추다'는 같은 표기로 된다. 종래의 '안성 마춤'도 '안성 맞춤'으로 적게 된다.
(14) 문장 부호를 유(類)와 종(種)으로 나누고 그 이름과 사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부록) 예컨대 ( .)를 '마침'(종지부)로 한 것은 영어의 '피리어드'(period)를 번역한 말인데, 마침표에는 물음표나 느낌표도 있기 때문에 온점( .), 고리점( 。)으로 이름하였다. 문장 부호는 문장을 쓸 때 쓰이는 보조 기호이기 때문에 문장과 무관한 불필요한 것들은 삭제하였다.
3. 맺음말
위에서 대충 이번에 정부가 고시한 '한글 맞춤법'을 종래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견주어 보태거나 없애거나 고치거나 한 부분에 대하여 어설프게 해설을 하였다. 학리적(學理的)으로 해설하려면 맞춤법의 전문(全文)을 장(章), 절(節), 항(項)의 차례에 따라 하나하나 검토하고 이에 관계되는 많은 표기상의 용례를 들어 보이고 아울러 그러한 규정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상론(詳論)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 주어진 지면상의 제약으로 처음부터 논란이 되었던 항목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제시한데 불과하다. 한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의 조문도 해석상 오해의 소지를 지녀 논란이 되는 터에 이 '한글 맞춤법'에 어찌 표현상의 소루함이 없겠는가. 앞으로 두고두고 규정 문장이 손질되어 가다듬어져야 할 것은 물론이고 내용의 검토도 아울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일은 우리 민족의 삶과 더불어 영원히 이어질 과제라 여겨진다. 어찌 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여기 저기 부분적으로 수렴되어 '作舍道傍'의 격이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맞춤법'이 결코 일부에서 말하듯 '편파적인 소수 학자의 시안'이 아님은 이 법이 성안되기까지의 온 과정을 훑어보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끝으로 사견(私見)을 좀 붙인다면 첫째 한자의 음 표기에 쓰이는 '몌, 폐, 혜' 등은 비록 음성학적으로 훈련된 사람으로서 발음을 못할 바 아니나, 우리 고유어에 쓰이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우리 어음(語音)에 맞게 개신(改新)하여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말본'에서 이른바 보조 용언이라 하여 낱말로 세운 '듯하다, 만하다, 법하다,...' 등은 이들이 관형형(冠形形)과 호응을 이루는 통어상(統語上)의 조건과 어근(語根)이 없는 단어라는 점에서 단어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듯'을 놓고 보더라도 '가듯, 갈 듯, 가는 듯, 간 듯...'처럼, 어미 내지는 접미사처럼 쓰이는 형태소를 어두(語頭)의 어근(語根)으로 삼아 어구성(語構成)을 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이들은 발음상으로도 절대 앞에 놓인 용언과 개방 연접(開放 連接)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어미군(語尾群)에 분류될 성질의 것들이다. 어찌 이것뿐이랴. 앞으로 실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모자라는 것은 기워서 우리 어문(語文)을 가꾸는 훌륭한 '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특정한 학회가 공들여 낳아 알뜰히 기른 귀한 아들을 남에게 빼앗긴 듯이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편협한 생각이다. 큰 힘을 지닌 나라가 맡아 튼튼하게 기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 참고 : 새 맞춤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글과 책들
한글 학회, 한글 맞춤법 통일안
문교부, 한글 맞춤법(문교부 고시 제88-1호, 1988.1.19)
안태양, 한글 맞춤법·표준어 규정 고찰(말과 글, 34, 1988 봄 號, 韓國 校閱 記者會)
丁濬燮, 한글 맞춤법 개정 배경과 운용 방향( 〃 )
이민우, 바른말 사전(塔 出版社, 1988)
이은정, 한글 맞춤법·표준어 해설(大提閣, 1988)
국어 연구소, 한글 맞춤법 해설,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