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응답

 
물음 '破廉恥, 沒廉恥'를 '파렴치, 몰염치'로 적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앞으로는 문교부가 고시한 한글 맞춤법 제11항[붙임 4]에 의해 둘 다 두음 법칙에 따라 '파염치, 몰염치'로 적게 되는 것인지요? 표기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서울 관악구 남형동 윤민석)

문교부가 지난 1월에 고시한 한글 맞춤법의 제11항은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에 관한 것인데, [붙임 4]에서는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ㄴ' 또는 'ㄹ' 소리도 나더라도 두음 법칙에 따라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熱力學'이 [열력학](→[열려칵])으로 발음되지만 '열력학'으로 적지 않고 '열역학'으로 적도록 한 것인데, 이것은 '역학'이 독립되어 쓰이는 말이므로 그 표기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표기와 발음이 불일치하게 됩니다만, 맞춤법과 함께 고시된 표준어 규정의 표준 발음법 제29항에 나와 있듯이 'ㄴ' 소리('ㄹ' 받침 뒤에서는 'ㄹ' 소리)가 첨가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破廉恥'도 독립되어 쓰이는 '염치'에 '파-'가 붙은 것인 한 '파염치'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열역학'의 경우와는 다음과 같이 사정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破廉恥'의 발음이 [파ː염치]라면 당연히 '파염치'로 적어야 할 것이 결과적으로 [붙임 4]에서 규정한 바에 부합하게 됩니다만, 발음이 [파ː렴치]라면 '파렴치'로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파염치'라는 표기로는 [파ː렴치]라는 발음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붙임 4]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ㄴ' 또는 'ㄹ' 소리로 나더라도"라고 한 것은, 그 'ㄴ' 또는 'ㄹ' 소리가 표준 발음법의 '음의 첨가'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까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셔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破廉恥'의 표기 문제는 사실은 맞춤법의 문제가 아니라 표준어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들을 보면 '파렴치'로 올려 있기도 하고 '파염치'로 올려 있기도 하여 사전에 따라 다릅니다만 '파렴치'가 우세한 듯하며 요즈음은 현실 발음도 [파ː렴치]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의 표준어 사정에서도 이러한 현실이 고려되리라고 생각됩니다.
    '沒廉恥'는 사전에 따라 발음이 [몰렴치]로도,
    [모렴치]로도 표시되어 있으나 표기만은 '몰염치'로 잘 통일되어 있습니다. 사실, 위의 두 가지 발음 중 어느 쪽을 표준으로 삼든지 표기는 그대로 '몰염치'로서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표기대로 [모렴치]로 읽을 수도 있고, 'ㄹ' 소리를 첨가하여 [몰렴치]로 발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몰염치'는 [붙임 4]에서 규정한 바에 꼭 부합되는 예가 되겠습니다.
    앞에서 다룬 '파렴치'와 같은 예들을 몇 가지 더 들어 보자면 '수-류탄'(手榴彈), '과-린산'(過燐酸), '아-린산'(亞燐酸) 따위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음으로 끝난 접두사가 붙은 말들로서 '파렴치'와 마찬가지로 발음대로 적는 예들입니다. 국어사전들에는 '수류탄'이 보통 '수류-탄'으로 분석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발음이 [수유탄]이 아니라 [수류탄]인 데 끌린 결과로 보아지며, '유탄'(榴彈), '총-유탄(銃榴彈)을 고려할 때, 그리고 그 말의 유래를 생각할 때 '수-류탄'으로 분석됨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염치':'몰염치':파렴치'의 관계와 '유탄':'총유탄':'수류탄'의 관계가 똑같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예로 '微粒子'와 '素粒子'를 들 수 있겠습니다. 국어사전들에는 '미립-자', '소립-자'로 또는 '미-입자', '소-입자'로 실려 있어서 실제의 발음보다는 분석 결과에 맞추어 표기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실 발음은 [미립자], [소립자]가 절대 우세하므로 전자의 표기가 채택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분석도 꼭 전자가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파렴치' 따위의 예들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앞에서 예로 든 '과린산'과 '아린산'은 요즈음 관련 학계에서는 학계에서 정한 화합물의 명명법 체계에 따라 '과인산'과 '아인산'으로 부른다는 것을 덧붙여 둡니다. 국어사전 중에도 이미 그렇게 올려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표준어 사정 작업에서도 이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음 한글 맞춤법 제12항 [붙임 1]에 단어의 첫머리 이외의 경우에 본음대로 적는 예로서 '가정란(家庭欄)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과 '난'으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보아 '가정난'으로 적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비고란'도 마찬가지로 '비고난'이 될 수는 없는지요?
(경기 성남시 은행동 박익수)

'난'(欄)이 독립되어서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가정난, 비고난'으로 적는 것도 이치에 맞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올려놓은 국어사전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글 맞춤법(문교부 고시)에서 '가정란, 비고란' 따위로 적도록 한 데에는 표기의 결정 이상의 뜻이 담겨 있다 하겠습니다. 즉, '家庭欄'은 어떻게 적건 발음이 달라지지 않습니다만, '備考欄'의 경우는 표기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비고란'으로 적도록 함은 곧 [비ː고란]을 표준으로 삼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비고란, 가정란'과 같은 예로서 '거래량, 생산량, 임진란, 원자로, 소각로' 따위를 더 들 수 있습니다. '양'(量), '난'(亂), '노'(爐)가 독립되어 쓰이기도 하는 것들입니다만, 이와 같은 한 음절짜리 한자어는 다른 한자어 뒤에 붙으면 접미사처럼 다루어 본음대로 적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 앞의 두 물음에서 살펴본 두음 법칙에 관한 맞춤법 규정들의 세 가지의 다른 경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파렴치, 수류탄'과 같이 발음대로 적을 수밖에 없는 단어들에 대해서는 두음 법칙에 관한 규정이 구속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둘째, '열역학, 신여성'과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발음에 대하여 두 가지의 표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두음 법칙에 관한 규정에 따라 표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비고란, 문예란'과 같은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도록 함으로써 본음대로의 발음이 표준으로 선택되는 결과가 됩니다.

물음 문교부의 한글 맞춤법 제13항에서는 "한 단어 안에서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부분은 같은 글자로 적는다."라고 하여 '딱딱, 씩씩'과 같은 말들과 함께 '연연불망'(戀戀不忘), '유유상종'(類類相從), '누누이'(屢屢~)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烈烈하다, 凜凜하다'도 앞으로는 이 규정에 따라 '열열하다, 늠늠하다'로 적어야 하는지요?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정춘식)

'연연불망, 유유상종, 누누이'로 적도록 한 것은 발음이 그렇게 익어 있기 때문인데, 전부터 그렇게 적어 오던 것들입니다. 본음을 살려 '연련불망, 유류상종, 누루이'로 적고서는 [연ː연~](→[여ː년~], [유ː유~], [누ː누~]의 발음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발음대로 적을 수밖에 없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로는 '누누중총'(纍纍衆塚), '요요하다'(寥寥~) 따위를 더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같은 한자가 겹쳐 있지만 '역력하다'(歷歷~)는 발음이 [역역~](→[여격~])이 아니라 [역력~](→[영녁~])이기 때문에 뒤의 '歷'은 본음대로 적어야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烈烈하다'도 발음이 [열열~](→[여렬~])이 아닌 이상 '열렬~'로 적어야 합니다. 이러한 예들로는 '약락하다'(略略~), '엽렵하다(獵獵~), '영령쇄쇄'(零零瑣瑣), '인린하다'(燐燐~) 따위가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제13항의 규정은 같은 한자가 겹치는 경우 언제나 같은 글자로 적도록 한 것은 아닙니다.
    '凜凜하다'는 발음이 [늠늠~]으로서 같은 음절이 겹쳐 나지만 '늠름~'으로 적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음절의 [ㄴ]은 'ㄹ'이 앞의 'ㅁ' 받침에 동화된 결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두음 법칙이 관련되거나 ('열역학' 따위), 발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의논, 누누이' 따위), 그리고 모음이나 'ㄴ' 받침 뒤의 '렬, 를'의 경우가 아니면 본음대로 적는 것이 원칙임을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또한, 둘째 음절의 [ㄴ]이 예외 없는 규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데 굳이 '누누이'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의 한 예로 다룰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예들로는 '낙락하다'(落落~), '낭랑하다'(琅琅~), '녹록하다'(碌碌~) 따위를 더 들 수 있습니다.

물음 '納涼'을 '납양'이라고 읽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涼'의 본음이 '량'이므로 '납량'이 옳은 것이 아닌지요?
(인천 북구 산곡동 김종철)

두음 법칙이 적용될 경우가 아닌데도 두음 법칙이 적용될 때의 소리로 익은 한자어들이 없지도 않으므로, 만약 '納涼'을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나뱡]으로만 발음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것이 표준으로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며 표기도 그에 따라 '납양'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모든 국어사전들에 '납량'으로 실려 있으며, 아래와 같은 이유로 앞으로도 '납양'이 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모음 또는 'ㄴ' 받침 뒤에서 '렬, 률'이 '열, 율'로 되는 규칙적인 현상에 의한 '전율, 진열' 따위의 경우나, '연연불망', '실연'(失戀)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의 'ㄹ'이 받침 뒤에서 떨어지는 예를 찾기 어렵습니다. 또한, 받침의 [ㅁ]과 [냐, 녀, 녜] 따위의 연결이 특별히 어려운 발음도 아니어서 '함량, 담력, 답례, 급료' 따위와 같이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히려, '금융, 검열, 정열'과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받침 뒤에 '야, 여, 요' 따위가 이어질 때 'ㄴ'소리가 첨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나뱡]은 단순히 '涼'의 본음을 잘못 안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되며, '납량'[남냥]으로 읽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고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