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 교육이 필요한 국어의 혼란


김 상 준 / KBS 한국회 연구회 간사, 아나운서

1. 머리에
    우리말 표준어의 조건이 '서울의 중류 사회에서 쓰는 말'에서 '서울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로 바뀐다. 그래서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교양이란 말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갖춘 인격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그래서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인격을 덜 갖춘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 표준어를 쓰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크게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교양 있는 사람,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자처하려면 표준어를 익혀서 사용해야 한다.
    또한 표준어와 비표준어를 나누는 구분도 단순히 지역 방언의 구분에만 매달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니까 표준어를 쓰고 있으며, 그래서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표준어의 조건이 되는 '교양'은 국어에 대한 소양(素養)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국어에 대한 소양도 없으면서 나는 서울 출신이니까 교양 있는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것은 또한 국어 교육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필요 없다는 오해에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실공히 표준어를 사용하는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는 표준적인 어휘, 표준적인 발음, 표준적인 억양을 갖춰야 한다.
    발음만 하더라도 남도 방언의 특징인 모음에서 '―[]'나 'ᅥ[Λ, Ə:]'의 발음 구분, 'ᅢ[ε]'나 'ᅦ[e]'의 차이뿐만 아니라 자음의 발음도 표준.비표준에 많은 차이가 있다. 'ㄱ'만 하더라도 무성음 'ㄱ[ġ]'와 유성음 'ㄱ[g]'가 다르며, 'ㄴ'은 잇몸에서 나는 'ㄴ[n]'와 입천장에서 나는 'ㄴ[ɲ]'가 다르고, 'ㄹ'은 설측음으로 잇몸에서 나는 'ㄹ[l]'와, 입천장에서 나는 'ㄹ[]', 탄설음(彈舌音)인 'ㄹ[l,r]'가 다르다.
    이 글에서는 명백한 지역 방언이 아니면서 표준어 사용자들도 틀리기 쉬운 자음의 발음 몇 개를 예를 들어 발음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이제 우리말 교육도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 의무 교육인 국민학교 과정에서는 현행대로 국어를 교육하더라도 중학교에 들어가면 영어를 필수로 배우기 때문에 국제 음성 기호인 IPA 발음 표시를 곁들여 국어 발음 교육을 해야 한다.
    음성 언어 교육을 받지 않은 지도 교사에게서 입시 위주의 국어 교육만 받은 학생들은 '어머니'의 발음이 [ΛmΛni]가 아니라 [ΛmΛɲi]이며, '삼송리'의 발음이 [samsoŋri]나 [samsoŋni]가 아니라 [samsoŋɲi]라는 것을 쉽게 알기 어렵다.
    이제는 지역 방언의 비표준어뿐만 아니라 언어의 질이 낮은 비표준어도 정화해야 한다.

2. 질이 낮은 자음 동화
    우리말에 있어서 음절의 끝자음이 그 뒤에 오는 자음과 만날 때,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닮아서 그와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로 바뀌기도 하고, 양쪽이 서로 닮아서 두 소리가 다 바뀌기도 하는 것을 자음 동화라고 한다.
    자음 동화 중에서 표준어로 인정된 것은 파열음이 비음(콧소리) 앞에서 그것을 닮아 비음이 되는 비음화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것은 필수적 동화 혹은 절대적 동화라고 규정하며 이와 반대되는 비표준 자음 동화는 수의적 동화라고 한다.
    수의적 동화의 예를 들어 보면, 'ㄴ, ㄷ'이 'ㄱ, ㅁ, ㅂ'과 만나거나 'ㅁ, ㅂ'이 'ㄱ'과 만나면 뒤의 자음에 끌려서 소리내는 자리가 같아지는 것이다.
    수의적 동화로서 잘못 된 자음 동화는 혀<舌>가 게으르거나 입술<脣>이 게을러서 만들어진 잘못된 발음이다. 혀가 게으르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면 혀의 수직 운동(垂直 運動)이 둔화됨을 일컬으며, 입술이 게으르다는 것은 입술의 개폐 운동(開閉 運動)이 둔화됨을 일컫는다.

가. 혀의 수직 운동이 둔화된 자음 동화
1) 'ㄴ'이 'ㄱ, ㅁ, ㅂ'과 만나면 뒤의 자음에 끌려서 소리내는 자리가 비슷해지면서 혀의 수직 운동이 둔화된다.
    한국→항국, 신문→심문, 헌법→험법

이 경우 혀의 수직 운동은 '한, 신, 헌'을 발음할 때 혀가 입천장의 윗잇몸에 붙은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ㄴ'을 혀끝소리 <舌端音>라고 하는데 혀가 입천장으로 올라가는 수직 운동을 하지 않고 거의 정지된 상태에 머물러, '한'이 '항'으로, '신'이 '심'으로, '헌'이 '험'으로 변하는 잘못된 자음 동화 현상을 나타낸다.

2) 'ㄷ'이 'ㄱ, ㅁ, ㅂ'과 만나면 뒤의 자음에 끌려서 혀의 수직 운동이 둔화된다.
    벗기다→벋기다→벅기다
    옷매무새→옫매무새→온매무새→옴매무새
    꽃밭→꼳밭→꼽밭

위의 1)과 마찬가지로 혀끝소리<舌端音>를 발음하기 위해서는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수직 운동을 해야 하는데 거의 정지 상태가 되거나 모음에 따라서 혀가 앞<前舌>이나 뒤<後舌>로 움직이는 수평 운동<水平 運動>만 하는 잘못된 자음 동화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진다면 혀가 모음의 종류에 따라 전후로 움직이면서, 높은모음<高母音>이냐 낮은모음<低母音>이냐에 따라 상하로 약간씩 움직이지만 윗잇몸에 붙는 적극적인 운동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질이 낮은 발음으로 규정해야 한다.
    실용 문법을 교육하는 학교 문법에서는 막연하게 어떤 것은 표준 자음 동화이고 어떤 것은 비표준 자음 동화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혀의 움직임을 스스로 느끼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벋'과 '벅', '옫'과 '옴', '온'과 '옴', '꼳'과 '꼽'을 발음할 때 혀의 위치를 정확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나. 입술의 개폐 운동이 둔화된 자음 동화
1) 'ㅁ'이 'ㄱ'과 만나면 뒤의 자음에 끌려서 소리내는 자리가 'ㄱ'과 비슷해지면서 입술이 개폐 운동이 둔화된다.
    감기→강기, 참고→창고, 모심기→모싱기→모싱끼, 함께→항께

'감기'를 발음할 때는 반드시 입술의 개폐 운동이 필요하다. '가'에서는 벌렸다가 'ㅁ'을 발음하면서 닫은 뒤에 '기'를 발음할 때 다시 벌려야 하는데, 'ㅁ'을 발음하지 않고 '강'이라고만 발음하면 입술이 계속 열린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잘못된 자음 동화가 된다.

2) 'ㅂ'이 'ㄱ'과 만나면 역시 'ㄱ' 비슷한 위치에서 소리가 나며 입술의 개폐 운동이 없어진다.
    밥그릇→박그릇, 앞가지→압가지→악가지, 숲길→숩길→숙길, 보리밟기→보리밥기→보리박기, 십구→식구, 보고 싶구나→보고 식구나

'밥그릇'을 발음할 때는 반드시 입술의 개폐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입술이 게으르거나 소리<音>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발음 훈련이 없으면 '박그릇'으로 발음할 수밖에 없다.
    '밥'을 발음할 때는 입술을 닫았다가 '그릇'을 발음할 때 벌려야 제 소리가 난다. 그러나 '박그릇'은 입술을 다시 닫지 않아도 발음할 수 있기 때문에 '밥그릇'과는 전혀 다른 소리이다.

발음 교육은 음운 원칙만 가지고는 효과적인 성과를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조음 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3. 'ㄹ'탈락 형태의 질낮은 발음
    'ㄹ'발음이 잘되지 않는 유아 언어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태이다. 성인들이 이 발음을 잘못하면 혀 짧은 소리가 난다.
    유아 언어를 들어 보면 ㄹ[l]이 모음 형태의 반자음[j]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물[mul→무이[muj]
불[ul]→부이[uj]
발[al]→바이[aj]

이상은 단음절의 말이지만 두 음절 이상의 말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갈면[ġalmjΛn]→가이면[ġajmjΛn]
날고[nalgo]→나이고[najgo]
팔지[phali]→파이지[phaji]

발음 훈련에 의해서 극복할 수 있는 발음이지만 잘못된 발음의 진단과 처방, 치료에 국어 교육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인들도 발음 장해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ㄹ'탈락 용언의 어미 활용이 틀리는 것도 발음 훈련이나 발음 교육을 해야 할 교육 기관 쪽에 책임이 있다. 갈다, 날다, 달다, 말다, 살다, 팔다 등의 용언은 어간의 'ㄹ'이 'ㄱ, ㅂ, ㅅ' 앞에서 탈락된다.
    이 원칙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갈다→가니, 갑니다, 가시오
날다→나니, 납니다, 나시오
달다→다니, 답니다, 다시오
말다→마니, 맙니다, 마시오
살다→사니, 삽니다, 사시오
팔다→파니, 팝니다, 파시오

그러나 일상 언어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갈다'와 '날다'의 잘못된 활용형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갈다→갈으니, 갈읍니다, 갈으시오, (밭을) 갈으고 (싶다), (밭을) 갈으면, (밭을) 갈읍니다.
날다→날으니, 날읍니다, 날으시오, (하늘을) 날으고 (싶다), (하늘을) 날으면, (하늘을) 날읍니다.

우리말의 음운 관리가 철저하지 못해서 일어난 혼란이다.
    어른들이 "하늘을 날으면 시원하겠다."와 같은 말을 쓰면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밥을 먹으고 싶다'고 말했을 때 핀잔을 줄 수 있을지 반성해야 한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희들은 바담 풍(바람 풍이 아님) 해야 한다."
    발음 교육이 있어서 만은 위와 같은 우스갯말이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국어 교육 현실이다. 국어 교사가 '바담 풍'이라고 하면 학생들도 '바담 풍'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발음 교육의 특징이다.

4. "르"어간 말음 용언의 질 낮은 발음
    가르다, 나르다, 다르다 등이 갈르다, 날르다, 달르다 등으로 변하는 잘못은 우리말 발음 교육의 시급함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잘못된 말은 '르'불규칙 용언의 전체적인 현상이다.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에 예를 들어 본다.

가르다, 거르다, 고르다, 구르다, 그르다, 끄르다, 기르다, 나르다, 누르다, 다르다, 두르다, 마르다, 모르다, 무르다, 바르다, 빠르다, 벼르다, 부르다, 어르다, 오르다, 으르다, 이르다, 자르다, 짜르다, 조르다, 지르다, 찌르다, 흐르다.

이상의 '르'불규칙 용언은 어미 '어/아'를 만났을 때 어간에 'ㄹ'이 하나 덧생긴다. 그래서 '가르다'는 '갈라', '거르다'는 '걸러', '고르다'는 '골라'로 활용한다. 이렇게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붙으면 별문제가 없으나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붙으면 비표준 발음이 되고 만다. '가르다'에 어미 '다, 게, 고, 지'가 이어지면 '가르다, 가르게, 가르고, 가르지'로 어간에 변화가 없어야 하는데 일상 언어에서는 '갈르다, 갈르게, 갈르고, 갈르지'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몇 개만 예를 들어 본다.
가르다→ 가르게, 가르고, 가르지(○)
갈르게, 갈르고, 갈르지(×)
나르다→ 나르게, 나르고, 나르지(○)
날르게, 날르고, 날르지(×)
다르다→ 다르게, 다르고, 다르지(○)
달르게, 달르고, 달르지(×)
마르다→ 마르게, 마르고, 마르지(○)
말르게, 말르고, 말르지(×)
자르다→ 자르게, 자르고, 자르지(○)
잘르게, 잘르고, 잘르지(×)
빠르다→ 빠르게, 빠르고, 빠르지(○)
빨르게, 빨르고, 빨르지(×)

'르'불규칙 용언의 공통적인 특징은 '게으르다' 등을 빼면 거의 모두 세 음절이며, 첫 음절은 '벼르다'를 빼면 거의 모두 단모음이고, '르' 다음에 자음을 만나면 그대로 자음이 이어져야 하는데도 불필요한 'ㄹ'을 첨가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렇게 'ㄹ'을 첨가하는 잘못은 탄설음인 ㄹ[r]을 회피하고 설측음 ㄹ[l]을 선호하는 방언 형태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규칙 용언인 '따르다, 치르다, 다다르다' 등은 원칙에 맞게 활용한다.

따르다→따르게, 따르고, 따르지
치르다→치르게, 치르고, 치르지
다다르다→다다르게, 다다르고, 다다르지

이상의 '르'어간 말음을 가진 용언의 혼란은 시급하게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또한 '르'를 포함한 'ㄹ'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들르다'와 '들리다'의 차이가 모호해지는 현상이나, '벌이다'와 '벌리다'가 혼란을 일으키는 현상도 철저한 발음 교육을 통해 시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