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勳 鍾 / 전 건대 교수, 고전 문학
○ 김장 배추는
딴다.
보통학교 시절, 김장밭 사 놓은 데를 따라가 본 적이 있다. 현장엔 어렵게 사는 아낙네들이 줄지어 서 있다가 그런다.
"배추는 저희가 따 드리겠어요."
분명히 뽑는 일인데 딴다고 하다니....... 어린 마음에 신기하게 들렸다. 그런데 작업하는 걸 보니 사실로 딴다. 배추 포기를 감싸 안아서 눕히며 칼로 밑둥을 끊으니까, 뚝하고 잘리면서 나둥그러진다. 그것을 한 아줌마가 뒤쫓아가며 집어서 겉의 궂은 잎을 모두 제끼고 고갱이 하얀 통을 여남은 포기씩 몰아 쌓는다. 그러면 짐수레를 끌고 온 아저씨가 안아다 싣고, 또 다른 아낙들은 창칼로 들고 다니며 찔러서 배추 꼬리를 캐낸다. 흙이 덩이로 달려 나온 것을 솜씨 좋게 칼로 내훑으니까, 잔뿌리까지 깎이며 꼬랑이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게 꼬랑지 보잘 것
없다고 하듯이 호배추 꼬랑이는 별것 아니지만, 그 때 세우 심던 조선 배추는 꼬리도 푸짐하여 겨우내 국도 끓여 먹고 또 양식 보탬도 되었다.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군!"
같이 간 어른 한 분은 그렇게 말하며 감탄하였다.
손이 맞는다, 손발이
맞는다는 일이 잘 협조돼 나가는 것을 말한다.
배가 맞았다 하면 나쁜 일을 꾸미는데 뜻이 맞은 사이를 말하고, 연애하여 결혼한 사람더러는
눈이 맞아서
산다고들 하였다. 그러니까 연애는 여러 말 필요 없이 첫번 눈길이 마주치면서 이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짐을 다
꾸려――베짤 때 씨실을 감는
꾸리는 이와 같은 계통말이다――싣고 나니까 우리가 갖고 간 바구니에 꼬랑이를 가득 담아서 얹어 주었다. 밭에는 따지 않고 남겨 둔 배추 포기가 심심치 않게 서 있고, 몇몇 어린이는 열심히 배추 꼬리를 캐 모은다. 남겨 놓은 배추는 불합격품이라 그것을 재라 했는데, 찌꺼기라는 뜻의 涬자의 음을 딴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쓸모없는 사람을
재깜어리니
째말이니 하는데 같은 말이다. 배추를
밭떼기로 사는 사람이라면 그런거 따지지 않고 노임(勞賃)삼아 좀 넉넉히 남겨 주고 오는 것이 그 당시 인심이었다.
놀부 심보 부리는 얘기는 흥부전에 익살스럽게 나오건만, 김장밭에 모래 끼얹는 것은 등장 않는다. 그것은 배추가 중국에서 개량되어 통이 앉는 품종이 수입된 것이 오래지 않아, 흥부전을 판소리로 즐겨 듣던 시절에는 아직 우리 땅에 없었기 때문이다. 배추를 뽑지 않고 따는 것도 통김치를 담글 거리에 모래흙이 들어가는 것을 꺼려서 생긴 일이다.
창칼은 창(槍)같이 찔러서 캠대로도 쓸 수 있는 칼이라, 봄날 들나물할 때 캐고 다듬고 하는 소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날 저녁 집에서는 전등 줄을 끌어다 추녀 끝에 달고, 여럿이 달려들어 배추를
저렸다. 부피를 적게 만드는 것이
줄이는 것이고,
졸이다는 더 적게 하는 것이며, 더 갈 데 없이 되면
쫄아
붙는다가 된다.
뻣뻣하던 배추의 물기를 빼어 힘없이 만든다 하여 배추를 죽인다고도 하는데,
적다,
작다와 같은 계통 말이요, 작게 만드는 일이
짜개다,
쪼개다고, 쪼개서 먹는 것이
조개며, 그 껍질
조개피(皮)는
조가비로 변신하였다.
이튿날 하학(下學)해 돌아오니 배추를 씻어서 쌓고들 있는데, 그 깨끗하고 훤칠하기라니....... 사람이 히멀겋게 잘 생겼으면
씻은 배추 줄거리
같다고 하는데, 이걸 두고 이른 말이다.
씻어 놓고 보아 밋밋하기야 무 같은 것이 있으랴마는 이것은 사정이 다르다.
무 밑둥 같은
놈이라면 생김새가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나 일가붙이 하나도 걸릴 데 없는 외로운 신세라는 뜻이 된다. 몇 대째 독자로 무 밑둥 같던 사람이, 이번엔 아들마저 없이 아주 고단(孤單)한 신세가 되면, 주위에선 그런다.
성(姓)떠 짊어졌군(성이란 조상에게서 이어받아 자자손손이 전해 주는 것인데, 그것을 짊어지고 저승엘 가면, 그건 절손(絶孫)이 되는 것이라,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한 말로 여겨왔다.)
○ 게 눈 감추듯 한다.
그 당시 서울의 명물로 새벽마다 공동 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집집이 배달해 주는 직업이 있었는데, 달 계산으로 하는 대가 외에 한 집씩 돌려가며 끼니를 제공하는 제도였다. 워낙 중노동이라 놀랄 정도로 식사를 잘해서, 하나 안 남기고 싹 쓸어 먹으면
물장수 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게 통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끔찍이 아껴 모아 자손들을 최고 학부까지 공부시켜서 이 역시 화제가 되었다.
또 성씨 밑에 소사(召史)라고 붙여 쓴 문패를 단 집이 심심치 않게 있었는데, 召史는 이두문(吏讀文)으로 조이다 읽고, 과부로 혼자 사는 할머니라는 뜻이다. 서울 태생인 그들은 내재봉소라고 삯바느질이나 학생들 하숙으로 생계를 삼았는데,
하숙을 친다, 학생을
친다고 하였으니 가축을 치는 거나 같은 표현이다. 자연 밥이고 반찬이고 꼭 먹을 만큼만을 차려 내기 때문에, 한창 자랄 나이의 학생들은 상을 받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우고, 주인 할머니는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했다고 감탄하였다.
게란 놈은 눈이 자루 끝에 달려 있어서, 그것을 세워 둘러보다가도 위험이 닥치면 살짝 눕혀서 감춘다. 수북하게 담은 밥이 그렇게 자취를 감췄다고 하니 정말로 그럴싸한 표현이다.
눈에 대해선 단어도 많다.
눈길을 끈다, 눈꼴사납다. 미움을 사면
눈총을 맞는다. 웃으려면 눈이 꼬부라지기 때문에 꼴 우스운 일을 당하면
눈허리가 시다, 눈매가 곱다, 눈망울 굴리는 것이 곱지 않은 사람은
눈이 부리부리하다, 눈살을 찌푸린다. 가엾은 것을 보면
눈시울을 적신다――시울은 굽혔다 폈다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입술도 본래 이름은
입시울, 쇠도 녹여 부어서 쓰는 것은 물쇠―무쇠, 굽혔다 폈다하게 탄력(彈力)있는 강철(鋼鐵)은
시우쇠라고 그런다.
서로 좋아 살면서도 정실(正室)로 들어갈 수 없는 처지의 여인더러는, 왜 남의
눈의 가시 노릇을 하느냐고들 비난하였다. 눈에 흙먼지가 들어가도 죽겠는데, 본부인 처지로 볼 때 눈에 가시가 박힌 것 같은 존재, 그것이 첩(妾)의 신세다.
○ 냄새도 가지가지
장맛이 좋지 않으면 학생칠 생념도 못하겠지만, 시골서 농사지으며
놉을
사든지
품앗이를 하여도 일군이 가려 들지 않는 집이 있었다. 가정에서는 장맛이 변하면 살림이 기울 징조라며 질색하였고, 그래서 장맛은 하늘이 안다고도 하였다. 장맛이 고리면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맛이 안 난다.
고린내는 고려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얘기하는 이가 있기에 한 마디 하였다. 질척질척한 데서 나는 내가
지린내, 그러기에 무를 먹어 보아 물기가 너무 많으면
지리다 하고, 굴적굴적한 데서 나는 냄새는
구린내, 그것이 규모가 작아서 골작골작하면
고린내, 부스럼에서 고렇게 나는 것이
고름, 발고린내도 항상 땀에 젖어 습기찬 사람에게서 세우 난다. 마른 고기에서 나는 것은
비린내, 그러기에 너무 몹시 여위었으면
비린내가 나게 말랐다 하고, 옛날 얘기에 곧잘 나오는
비루 먹은
당나귀는 확실한 병명은 모르나 비쩍 마르는 병-비루-에 걸린 나귀를 말한다. 생선 비린내나 피비린내는 거기서 파생해 비위(脾胃)에 거슬리는 냄새라는 것이 원래 뜻이다. 불에 익혀 누렇게 변하는 것이
눋는 것이고, 거기서 나는 냄새가
누린내다. 본시 담백(淡白)한 것을 좋아하는 천성에다, 불교의 영향마저 입은 우리 민족은 짐승의 고기를 익혀서 나는 냄새를 역겨워 했다. 그러다 보니 툭하면 권세나 내세워 잘난 체로 기분을 상케 하는 상내더러는
누린내가 난다, 누린 짓을
한다고 그런다. 또 맑은 물밖에 세제(洗劑)라곤 없던 시절, 한번 손에 묻은 역한 냄새는 좀처럼 가셔지지 않았다. 그래서 비린내가 안 가시듯 추근추근 따라다니는 상대는
비릿비릿하다 하고, 또 그것으로 통용된다.
지금도 음식을 잘 차렸으면
소담(素淡)하다고들 하는데 글자대로라면 동물성의 누리고 비린 것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것이라야 맞는다. 그것은 고려조 불교가 성행하였을 때, 종교 행사 끝에는 의례히 소담하게 잘 차린 식사를 제공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무엇이든 장기간 반성 없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반드시 폐단이 생기게 마련이라,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문적으로 수련하는 이판승(理判僧)과 실제 사무직을 담당하는 사판승(事判僧) 사이에는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한 판 붙어 보자고 할 때는
이판 사판 한 번 해
보자고 벼르는 말로 통용되게까지 된 것이다.
조그마한 권력을 갖고 상습적으로 부당하게 갈취(喝取)하는 것을
등쳐 먹는 데 이골이
났다고 하는데, 내용을 알고 보면 입에 담기조차 더러운 말이다.
"저놈이 저렇게 큰 고기점을 삼켰지. 그걸 혼자 먹어?"
엎어 놓고 등을 두드리면 웨익웨익 토해 내놓는다. 그것을 주어 먹는 것이 등쳐서 먹는 것이다. 더구나
이골이
났다고 하는 것은, 하 여러 번 되풀이해 이력(履歷)이 쌓여서 요령 곧 곬이 생겼다는 것이니, 인생도 그쯤 되면 마지막이다.
○ 몸의 부위를 놓고
흔히 번거로운 일을 대했을 때
골치 아프다, 골머리를
앓는다고 하는데, 꼭 아파서만 그러는 것이 아닌 때가 많다.
뼈저리게 느꼈다, 각골난망(刻骨難忘)――뼈에 새겨 잊지 못한다,
명심(銘心)하겠습니다 등등 뼈와 새기는 것을 두고 하는 말도 가지가지다.
뼈골이 빠지게 일해서 남 좋은 일하였다. 낭비벽(浪費癖)이 있는 여자더러는
남편의 등골을 뽑아 먹는다 하고 남에게 원한이 사무치게 했을 때는
복장을 찧는다,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지독한 압력을 가할 때는
목을 조인다. 일이 잘 풀리질 않으면
속을 썩인다, 애를 먹는다, 애간장을 녹인다――애는 창자의 옛말이다.
무서운 일을 당했을 때는
등골이 오싹하다, 소름이 끼친다. 사실을 그대로 말할 때도 있고, 그렇게 말해야 실감이 나겠어서 그러는 때도 있다.
코 떼었네, 코가 납작해졌다, 콧대를 꺾어
놓아야겠다고 하기에 정말 병신을 만들려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자존심을 주저앉힌다는 얘기었다.
콧김이
세다고 하면 영향력이 강하다는 소리고,
콧대가 세다 하면 자신의 주장이 세다는 얘기다,
코 큰 재상(宰相)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의 윗사람 노릇하려면 코부터 잘 생겨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입이 가볍다,
무겁다도 재미있지만
귀가 여리다――남의 말을 솔깃해서 잘 듣는다.
눈이 무디다――잘 못 본다. 또는 눈물이 안 난다 등등 표현도 흥미를 끈다. 구이사촌지학(口耳四寸之學)이라고, 들어 새겨서 충분히 제것이 되지 않은 것을 나불나불 잘난체 지껄여 대는 것을 보면
구역(口逆)이 난다――메식메식해져 토할 것 같다는 얘기다.――입과 귀 사이는 옛날 자로 네 치밖에 안 된다.
분해서 푸우푸우하는 사람 보고
코가
벌름벌름한다고 하기에 자세히 보았더니 사실로 그래서 감탄하였다.
콧방귀를 뀐다, 코웃음을
친다는 상대방을 얕잡아 우습게 여기는 행동이다.
눈웃음을
친다고 하면 얼굴의 다른 부위는 다 가만 있는데 눈귀만 살짝 웃어 보이는 깜찍한 동작이다. 웃을 적마다 볼에 생기는
보조개와 함께 사람의 마음을 당긴다.
그러한 남의 부인을 칭찬하여
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매(魅)자의 본래 뜻은 홀린다는 것이다, 도깨비에게 홀리듯 넋이 빠지는 것을 의미하니 새겨 알고는 못할 말이다. 영어의 "아이 러브 유"(I love you)는 "나는 너에게 홀렸다"로 새기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그 표현이 조금 미안하면 "나는 그대에게 반했노라." 데면데면하고 메떨어진 고백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역사는 오래지만, '~하다'로 활용해 쓰인 것은 최근 들어서의 일이다.
덜미를 친다, 시골 말로
마빡을 친다 하면 크게 깨닫고 어이없어 감탄하는 말이요, 사실로 그러한 행동을 하여 보이는 이도 있다.
덜미를 짚는다, 넘겨 짚는다 하면 상대의 의표(意表)를 질러 말문이 막히게 하는 행동으로, 범죄 수사에도 곧잘 활용되었고, 진퇴(進退)가 꼭 막히어 고개를 떨구고 승복(承服)하면
고패를
떨궜다고 하는데, 고패는 달목이라는 뜻으로 물건에도 두루 쓰이는 말이다.
꼭두잡이를 시킨다 하면 죄인을 잡아 압령(押領)하는 자세인데, 저고리 뒤깃을 훔켜잡고 등을 밀어서 가는 것을 사실로 본 적이 있다.
오금을
박는다는 것은 맥 놓고 서 있는 사람을 소리 없이 등 뒤로 돌아가 양손을 펴서 무릎 뒤―오금―를 콕 지르는 것을 말하는데, 이 때 보통 탈삭 주저앉으며 놀란다. 그래서 상대방 말의 허점(虛點)을 지적할 때 이 말을 적용한다.
오금을 못 편다 하면 겁에 질려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행동이다.
하 몹시 웃기면
배꼽이
빠진다고 하는데 사실로 그렇다면 큰일날 소리다, 웃다웃다 그만
배창자가
꼿꼿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실지로도 그러해서 솔직한 표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