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호칭에 대하여

정 양 완 / 정문연 교수, 한문학

Ⅰ. 머리말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런데 사회를 이룩하는 기본적인 단위는 가정이며, 가정이란 바로 부부에서 비롯된다. 한 남자 남편과 한 여자 아내가 어울려 한 가정을 이룬 뒤 아들딸이 생기고, 그 아들딸이 다시 짝지어 새 가정을 이루게 되면, 시아버지·시어머니·며느리·장인·장모·사위·시누이·올케·시동생·동서·시아주버니·시동생·처남·매부·처형·처제 등등 친족 간에 얽힌 많은 어휘, 특히 어떤 명칭과 그것을 부를 때의 호칭이라는 게 생기게 된다. 명칭과 호칭은 다소 달라지는 수가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엮어 나가는 사회란 또한 시대적인 영향을 받게 마련이므로, 친족 간의 호칭 또한 그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 요즘 새롭게 쓰여지고 있는 몇몇 예들과, 전통적인 친족 간의 호칭─부부에서 비롯되어, 부자(父子)·조손(祖孫) 그리고 인척 관계에 이르는 ─에 대하여 일별하고 바람직한 호칭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부부간의 호칭
    "이 세상에서 가장 정답고 허물없는 사이가 부부간인데, 반말이면 어떻고 해라면 어떠냐"고 하는 축도 꽤 있다. 그러나 사실인즉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사이가 바로 부부간이다. 허물없는 것이 자칫 지나치다 보면 함부로 하게 되고, 그것이 좀더 지나치면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까지 하여 맹랑한 일이 벌어지는 수도 있으니, 적어도 기본적인 예절은 지켜야 할 것이다. 예절이란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상대방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인 것이다.

ㄱ.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여보」「나 좀 봐」「돌쇠 엄마」
「자기」「미스 김」「영자야」「야!」

등등 허구많다. 「돌쇠 엄마」하는 것도 귀찮아 숫제 「돌아!」혹은 어린애 이름도 빼어버리고「엄마」하기가 일쑤라, 어느덧 아내를 부르는 호칭은 「엄마」라는 말로 탈바꿈하여 버렸다. 자식을 기준으로 자식의 어미로 불리던 호칭이 바로 자기의 어미인 것처럼 「엄마」로 부르고 마니 배우의 촌수를 따른 것인가? 「부부」란 말보단「내외」란 말을 전에는 더 흔히 썼으며 서울말에서 「엄마」란 아버지의 작은 마누라, 어머니의 시앗을 뜻했었다.
    한편 남편이 남에게 아내를 지칭할 때에도 실로 가지가지다.

「제 처가」「제 아내가」「안에서」「돌쇠 엄마가」「우리 미스 김이」「영자가」「우리 마누라가」「우리 예폔네가」「우리 망구가」「엄마가」

등등 나이에 따라, 또는 살아온 환경에 따라 가지각색이지만 젊은이와 늙은이의 호칭이 또한 현저하게 다르다.「마누라」니 「예폔네」니 「망구」니 「할멈」이니는 다 늙은이의 말씨다. 이 중에서 노소 없이 해서 무방한 것은「안에서」이지만, 젊은 축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고 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에「여보」아니면 「여보 마누라」라 부르는 게 고작이었고, 반말이나 해라는 없었다. 자기의 귀한 아내를「야!」하며 마구 부르는 것은 그야말로 좀「야하다」고 생각한다.
    어른 앞에서「얘가」「걔(그애)가」하기도 하지만 역시 「제 처가」「안에서」「돌쇠 어미가」라 하는 게 좋고, 어린애 앞에서야 「너의 어머니가」「너의 엄마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너의 어머니가」「너의 엄마가」「너의 어멈이」는 다 어감이 다르다. 서울말에서는「어멈」이나「아범」은 존칭이 아니라 하대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안동 방언에서 「어멤」·「아벰」이 존칭인 것과는 딴판이다.

ㄴ.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여보」「자기」「나 좀 봐요」「이봐요」「돌쇠 아빠」「아저씨」「오빠」「미스터 김」「바위씨」「바위야」「야!」

동기동창이 너무 허물없이 지내서, 마침내는 「야!」까지 부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저씨」니 「오빠」니 「미스터 김」이니는 연애 시절의 호칭을 그대로 고치기 쑥스러워 그냥 내리 부르고 있는 경우일 것이다.
    아무리 자기끼리야 기고만장한 호칭을 사용한다 해도 어른 앞에서는 좀 달라진다. 「돌쇠 아비가」「돌쇠 아빠가」숫제「아빠가」 혹은「그이가」라고 한다. 「그 애가」「저 애가」「이 얘가」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어른 앞이지만 좀 어색하다. 친정 식구 앞에서는 「김 서방이」「박 서방이」하는 것이 예사다. 남 앞에서는「사랑에서」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 말은 요즘 젊은 층에서는 거의 도태되어 가고 있다.

Ⅲ. 시댁 식구와 며느리 사이의 호칭

ㄱ. 시부모가 며느리를 부를 때
「얘야」「어미야」「돌쇠 어미야」「돌쇠 어멈아」「돌쇠 엄마야」「아가」「새댁아」

새로 온 새댁에게는「새댁아」·「새댁」·「아가」·「새아가」·「며늘아」 등 여러 가지 호칭이 가능하다. 아기를 낳은 뒤에야「돌쇠 어미야」「돌쇠 엄마야」도 무방할 것이다. 안동 방언과는 달라서 서울서는「돌쇠 어멈아」하면 하대이지 점잖은 호칭이 못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ㄴ. 며느리가 시부모를 부를 때

물론「아버님」「어머님」이다. 요즘 어떤 화목한(?) 집안에서는「시아빠」「시엄마」라고도 한다지만, 자기 친부모를 부를 때와는 달리 꼭「아버님」「어머님」이다.
    그리고, 자기 친정의 부모를 지칭할 때는「아버님」「어머님」이 아니라 「저의 밭어버이」「안어버이」라 하여 겸양하였었다.
    또 남의 부모를 지칭할 때 한자투로 쓰는 것만이 대접인 줄 알고「자당님」「춘부장 어른」하여 어머니와 아버지를 대접하는 것은 좋은데, 우리말에 버젓하게「아버님」,「어머님」이 있으니 굳이 한자어를 쓸 필요는 없다. 게다가 멀쩡히 살아 계신 남의 아버님을「자네 선친께서도 안녕하신가」식으로 하여 공경이 망발이 되는 수도 있으니, 똑똑히 하는 우리말의 존댓말을 쓰는 것이 가장 옳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기꺼이 쓰진 않더라도 남의 어머님을 일컬어「자네 대부인께서」「대방에서도」하는 수가 있으니 알아들을 수는 있어야 할 것이다. 당황하여「제 처는 잘 있습니다만은」식으로 대답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ㄷ. 시아주버니·시동생·시누이·동서·올케 사이

딸이 시집가서 남의 며느리가 되면「오라버니」「언니」 등 친정에서의 익숙하던 호칭 대신, 새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낯선 호칭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친정에서의「오빠」항렬의 남성을,「시아주버니」「서방님」이란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
    「여보세요 큰 미스터 김」할 수는 없고「돌쇠 큰 아빠」라고 맞대어 놓고 부르기도 어렵다. 시아주버니를 맞대어 놓고 불러야 할 경우가 물론 흔치는 않다.

시아주버니도 동생의 댁인 계수에게「야!」할 순 없고,「미스 김」할 수도 물론 없다. 아무리 손아래라 해도「돌쇠 어멈」할 수는 절대로 없다. 「계수씨」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시동생에게도

「미스터 김」「삼촌!」「셋째!」「얘!」

등 별별 호칭이 많다. 예전이나 지금 이나 마찬가지로 가장 점잖은 호칭은 역시「도령님」이다. 예전 같으면 사돈마님까지도 며느리의 어린 동생에게도 반드시「도령님」「작은 아씨」를 꼭 붙여서 불렀던 것이다.
    「도령님」이 장가든 뒤에는 물론「서방님」이라 불러야 한다.「작은아씨」는 결혼하기 전이나 한 뒤에나 변함이 없다. 시동생은 형수를「새아주머니」라 부른다.
    시누이에게는 어리거나 늙거나 다「작은 아씨」다. 명칭인「고모」를 호칭으로도 쓰고 있으나,「미스김」이니「셋째니」「야」는 점잖지 못하다. 「고모」는 명칭이오, 호칭이 되면 역시 「아주머니」다. 이모, 고모 외숙모는 호칭이 되면 다「아주머니」다. 요즘「아주머니」를 축약하여 「아줌마」라고도 하지만,「아줌마」는 아이들의 응석 어린 귀여운 어감이 가뭇도 없이「아주머니」할 나이의 사람에게 하대의 뜻을 품고 부르는 호칭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른들은 아니 철든 사람은「아주머니」해야지 하대의 뜻으로 얄밉게「아줌마」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친정에서의 여형제 같은 것이 시집에서는 동서 간이다. 친동서 간인 경우에는「여보게」「자네」「새댁」그러다가 아이를 낳은 뒤에는「돌쇠 엄마」라 불러 무방할 것이다. 손아래 동서가 부를 때는「형님」이다. 촌수가 있는 경우에는 손아래 동서를 부를 때에도「아우님」이라고 부른다.
    손아래 시누이가 손위 올케를 부를 때는「올케」가 아니라「새 언니」다. 요즘은 명칭으로 마구 호칭을 삼아 부르지만 명칭과 호칭은 다른 수가 있다. 손위 시누이는 올케를「여보게」「자네」「아우님」「돌쇠 엄마」정도로 부르는 게 무난할 것이다. 아무리 손위라 해도「야!」「돌쇠 어멈」「영자야」「얘」는 좀 지나친 투다. 시누이 남편에게는「서방님」이 두루 쓰이는 호칭이다.

Ⅳ. 형제·남매간의 호칭

ㄱ. 남자 형제끼리·여자 형제끼리

동생이 형을 부를 때 요즘은 두루「형」하지만,「언니」라 불렀다. 여형제간에서 아우가 손위 형을「언니」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방에 따라서는 다르기 때문에「남자가 무슨 언니냐?」고 전에도 웃는 사람이 있었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손위 형제에게는 남녀 없이「언니」였다. 만약「형님」하면 적어도 촌수가 있고 거리감이 있는 사이다. 친형제의 경우 남녀는 차이가 없다. 손윗사람은 아우에게 보통「얘」다. 그러나 좀 나이든 뒤에는 예우해서 여동생보고「김집」「잇집」이라 불러 준다.

ㄴ. 남매간의 호칭
    손아래 누이동생이 손위 오라버니를 부를 때는

「오라버니」「오빠」「큰 오빠」「작은 오빠」

어른 앞에서「오라비」를 지칭할 때는「오라비가」,「저의 오빠가」,혹시 연세가 많은 경우에는「돌쇠 큰 외숙이」정도면 괜찮을 것이다.「저의 오라버님께서」는 좀 곤란하다.
    손아래 남동생이 누이를 부를 때도
    「누나!」「누이!」「누님!」인데,「누나!」는 어릴 때의 정감이 그대로 배인 투라면「누이」나「누님」은 점잖은 투다.
    누이를 통해서 생긴 관계가 또한 처남 매부다.
    손아래 매부인 경우 처남이
    「여보게」「자네」「돌쇠 아빠」
    해도 무관하지만,「미스터 김」하면 친근감은 덜하다.
    손위 매부인 경우에는 처남이
    「매부」「형」「형님」
    이지 역시「미스터 김」은 좀 서먹서먹할 때이다.
    아내를 통해서 맺어지는 남자 동서 간에도 그 항렬에 따라.
    「형님」「김 서방」
    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처제·처형에 대해서도「미스 김」이니「얘」니 하는 것은 좀 품위 없고,「작은 이모」「큰 이모」하여 명칭으로 그대로 호칭 삼기도 하지만「처제씨」「처형 어른」하여 높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은「큰 이모」「작은 이모」가 그만 호칭으로 굳어지고 있다.
    처제가 형부를 부를 때도 예전엔 거의 그 기회가 없었지만 요즘은 사돈집 드나들기를 자주 하고 딴 살림을 할 경우 만만한 처제·처형이 줄곧 일을 돌보아 주다보니 남매같이 허물없어질 정도이기 때문에「형부」하고 부르기 일쑤이다. 처형인 경우 동생 남편을 부를 때「김 서방」「박 서방」을 두루「서방님」이라 높이는 게 보통이다. 물론「돌쇠 아빠」정도도 무난하다. 요즘은 성 아래 직함을 붙여「김 박사」「김 사장」이라 하여 「박사님」「사장님」이라 하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리 처형이라도 동생 남편에게「돌쇠 아범」이라 하는 투는 좀 점잖지 못하니 삼가야 할 것이다.

Ⅴ.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
    「할아버지」「할머니」가 친손이 조부모를 부르는 호칭이다. 손자며느리인 경우에는 물론「할아버님」「할머님」이다. 그리고 손자·손녀가 할아버지께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는
    「할아버지! 아비가 문안 여쭈래요」「할머니, 이거 어미가 만들었어요. 잡숴보십사고 보내드리는 거래요.」
    해야 하는데, 이것이
    「할아버지, 아버님께서 문안드리래셨어요」
    하는 식으로 되면 망발이다.
    그리고「할아버지 한 가지 사뢸 말씀이 있어요.」하거나「한 가지 여쭐 말씀이 있어요」해야지「할아버지 한 가지 부탁할 말이 있는데요.」는 온당치 못하다.

Ⅵ. 사돈 사이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는 뭐니뭐니 해도 사돈 사이다.「여보, 사돈!」하는 드라마를 본 일이 있거니와 안사돈이 밭사돈을 부를 때야 없겠지만, 밭사돈끼리 나이의 차이가 지면 젊은 측에게
    「여보게, 사돈 영감」「김 선생」
    할 수 있겠으나, 나이의 차이를 막론하고 사돈 사이는「사장 어른」하고 우선 조심하는 게 옳을 것이다.
    안사돈에 대해서도「사돈마님」하는 게 원칙이다. 아무리 가깝고 허물없다 해도 사돈 도령을
    「얘야」「돌쇠야」
    하는 일은 예전엔 상상도 못할 망측한 호칭이었다. 나이가 아주 어릴 때라도「도령」했지,「얘」「쟤」는 못했었다. 사돈 사이는 존경이 늘 깔려 있어야 한다. 요즘식으로「김 박사」「박 사장」하더라도 반드시 경우는 잃지 말아야 한다.
    며느리가 생기면 한 집에선 또 사위가 생기기 마련이다. 처갓집 출입이 잦다 보니 요즘 와서는 장인·장모를 「아버지」「어머니」
    라 하여 친부모와 장인·장모의 구별이 없어졌다. 그러니 장인은 바로「아버지」가 되고,「너의 아빠, 너의 엄마」가 숫제「아빠」「엄마」로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예전에는 제 혈육이 아니면 쉽사리「아버지」「어머니」를 붙이지 않았다.「수양 어머니」인 경우에나 「어머니」라 했을까 그 외에는 친어머니만이「어머니」였다. 요새 어떤 가게에 가면 숫제
    「어머님, 이 이불이 최고예요」
    한다. 보도 듣도 못한 남이 물건을 팔기 위해 이러는 것을 보면, 장인·장모를 친부모같이 일컫는 것이 그럴 듯한 이야기 같기도 하나,
    「장인어른」「장모님」
    이 나을 것이다.「빙장 어른」「빙모님」은 이새 쓰기에는 좀 낡은 말투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아버님」·「어머님」하는 예로 버긴다면 장인·장모를「아버님」·「어머님」해서 해로울 것 없겠으나, 언어의 민주화는 덜 되어서 그런지, 또는 반죽 좋게 넙죽 「아버님」·「어머님」을 불러대지 못하는 것이 서울 사람의 열적음인지도 하긴 모르겠다.
    또 사돈에 대해서
    「얘, 너의 어르신네 안녕하시냐?」
    「사장 어른 안녕하시더냐?」
    라고 물어야지
    「너의 아빠」「너의 엄마」
    라고 함부로 불러대기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요즘 흔히 택호를 붙여
    「얘! 명륜동댁에서도 안녕들 하시냐?」     식으로 묻기도 한다. 또 어린이 이름을 붙여     「돌쇠 외조부께서도 안녕하시냐?」
    「돌쇠 외할머님께서도 안녕하시냐?」
등으로도 흔히들 쓰고 있다.「댁내 두루 안녕하시더냐?」하는 편이「너의 집 아무 일 없던?」보다 야 훈훈하지 않은가?

Ⅶ. 맺는말
    친족 호칭은 이 사회의 여러 직장인들의 다른 어떤 호칭보다도 친근미가 있고 버릇없을 만큼 허물없다. 그것은 혈연으로 맺어지는 사이임에서 오는 친근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정함과 무례함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공손하고 점잖으면서도 정감이 깃든 호칭들을 가려 써야 한다. 아무리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천하고 야한 말씨를 곧 친근미의 표출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긴 철저한 가족 계획에 따르면 언니나 누나나 오빠 동생이나 누이동생도 없을 판이니 육촌은 물론 사촌도 있기 어렵고, 고모니 이모도 없게 될 모양이니, 친족 호칭에 대하여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없을 터이지만, 지금 당장 언어생활에서 아주 다 무시하고 내버려두어서도 안되겠기에 몇 마디 비교하여 적어 보았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은 친족 관계도 존경과 사랑을 바탕에 두면 서로 얼고 녹게 되고, 그 사이에 주고받게 될 호칭 또한 점잖으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고상한 말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들의 관계를 고귀하게 부드럽게 하고 나아가서는 다음 세대에 대한 말없는 가르침이 되어 자라나는 세대에게도 새로운 시대상에 맞추어 보충하고 가꾸며 보다 더 품위 있는 말씨로 순화시켜 전해 주게 될 것이다.
    아무리 아내가 사랑스럽더라도 남의 앞에서는
    「야 요것아」 「요 못난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해도 시아버지를
    「시아빠」
    라고 한다든가, 사위 사랑은 장모라니까 대뜸 장모더러
    「엄마」
    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문제가 아닐는지?
    그리고 남의 어엿한 부인이요 남의 대부인인데
    「여봐 아줌마」
    하는, 하대를 품은 호칭은 부디 삼갔으면 한다. 어린애가 응석 넘치게 악의 없이 부르는「아줌마」이외에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라야 정다운 호칭을 부를 수 있고 그래야 이 사회가 보다 더 밝고 정다워질 것이다. *
宇宙自然의 理로 地球가 成하매 其面이 水陸으로 分하고 陸面은 江海山岳沙漠으로 名區域을 界하고 人種도 此를 隨하여 區區不同하며 그 言語도 各異하니 此는 天이 其域을 各設하여 一境의 地에 一種의 人을 産하고 一種의 人에 一種의 言을 發하게 함이라 是以로 天이 命한 性을 從하여 其域에 其種이 居하기 宜하며 其種이 其言을 言하기 適하여 天然의 社會로 國家를 成하여 獨立이 各定하니 其域은 獨立의 基요 其種은 獨立의 軆요 其言은 獨立의 性이라 此性이 無하면 軆가 有하여도 其軆가 아니요 基가 有하여도 其基가 안이니 其國家의 盛衰도 言語의 盛衰에 在하고 國家의 存否도 言語의 存否에 在한지라 是以로 古今天下列國이 各各 自國의 言語를 尊崇하며 其言을 記하여 其文을 各制함이 다 此를 爲함이라 周時經, 「國語 文法」(1910) 序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