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應 百 / 서울大 敎授, 國語學
일 시 | 1987. 7. 22.(수) 오후 7시 30분~9시 |
장 소 | 동보성 국실 |
목 적 | 혼란된 언어 예절의 현실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함. |
사 회 | 金敏洙 (고려대 교수, 국어학) |
참석자 | 李應百 (서울대 교수, 국어학) 車柱環 (단국대 교수, 중문학) 洪承五 (서울대 교수, 불문학) 鄭良婉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교수, 한문학) |
언어 예절의 현실은 어떠한가?
司 會: 요즈음 언어생활이 매우 문란해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가지고 좌담회를 진행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예절을 숭상하고 물론 言語 禮節도 잘 지켜왔는데, 그 사이 여러 격변하는 시대를 겪다 보니, 특히 8.15해방, 6.25사변을 겪으면서 여러 면에서 예절이 허물어지고, 특히 言語 禮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예절 바른 언어생활을 할 수 있겠는지, 이 문제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먼저 言語 禮節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시작해 주십시오.
李應百:요즘 아이들이 '댁'이란 말을 잘 쓸 줄을 모릅니다. '진지 잡수십시오'를 '식사하십시오'로 쓰는 것도 일반적입니다. 언어 예절에서 공손한 말씨, 경어도 잘 모르고, 어느 때는 상대방을 존경해서 쓴다는 것이 자기 尊待가 되기도 합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곤란합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라디오나 TV 등 放送 媒體가 영향을 미치는데 거기에서 이상한 말을 흘려 아이들이 그것을 모방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언어 예절이 시정되어 정착되려면 상당히 意圖的으로 고쳐야 할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현재대로 그냥 나간다면 점점 더 문란해질 것입니다.
司 會:鄭 선생님께서 한말씀 해 주십시오.
鄭良婉:그전에는 여자들이 말을 해도 조용조용하고 번잡, 수다하지 않아 실수도 적었고 손짓·몸짓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 자체도 옛날에는 완곡하였지 직설적이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진지 잡수세요'하지 않고 '식사하십시오'로 한다고 하셨는데 예전에 저희들은 아버지께 진지를 드릴 때 '진지 잡수세요'하지 못하고 '진지상 잡숴 왔습니다'로, 말하자면 명령형을 쓰지 못했습니다.
車柱環 : 예절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인간은 사회 성원이라는 인식이 몸에 배어 겸손하고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 바람직한 언어생활의 교육법과 그 내용이 준비되어 있는가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
司 會:車 선생님께서 동양의 언어라는 측면에서 어떠한지 중국을 중심으로 말씀하여 주십시오.
車柱環:예절 바른 언어생활을 하자면 여기서 깊이 생각할 것은 복고적으로 과거가 좋았으니 과거로 돌아가자는 단순한 사고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專制主義 사회에서 이루어진 예절이기 때문에 오늘날은 어떤 면에서는 역겹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진보와 질서의 조정을 잘하는 것이 사회 발전의 기본이란 말을 하듯이 과거의 좋은 예절을 질서라 한다면 거기에만 의존하지 말고 진보적인 면에서 잘 조정하여 사회 발전에 어울리는 예절 바른 언어생활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중국의 경우를 얘기하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대만과 대륙이 나누어져 있는데, 대만에서는 보수성이 강해서 繁文縟禮로 기울어져 불필요한 말을 많이 보태서 엮어 나가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대륙에서는 사회주의적 방향에서 너무 지나치게 진보되어 경어 같은 표현이나 상대방을 의식하는 태도 같은 것이 감소되어서 보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언어생활과는 대조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하고 얘기하는 것이나 친구하고 얘기하는 것이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또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조정을 가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司 會:洪 선생님께서 서양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洪承五:저는 프랑스 문학과 관련지어 프랑스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양에선 옛날에는 사회 계급 차가 뚜렷해 왕실, 귀족, 평민, 천민 등의 사회 계층에 따라 쓰는 말씨가 다르고 그 차이에서 오는 경어법이 달랐지만 평등 사상이 일반화되고부터 최근에 와서는 사회 간의 격차에 따르는 경어의 차이는 점점 없어져 갑니다.
지금은 대원칙이라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되 너무 비굴하지 않게 자연스런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사회는 사회 교육, 가정은 가정교육을 통해서 예절에 대한 기본 교육을 철저히 시켜, 예절 지키는 것이 생활화되어 태도·말씨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에게 반드시 공대를 하고,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동을 할 때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어른과 같이 있는 장소에서 실수를 해 트림·딸꾹질을 하면 반드시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를 하는 것 같이 예절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면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 나가는 쪽으로 언어생활 지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예절의 혼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司 會:말씀을 듣고 보니 언어 예절에 대해서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가 됩니다. 물론 오랜 傳統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 전통을 오늘날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꼭 그렇게 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시대에 맞게 전통적인 의식, 전통적인 정신을 잘 살려서 문란해진 현재보다 더 나은 언어 예절로 가꾸어 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李應百:그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부터 언어 예절이 문란했겠느냐 하는 문제를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先人들의 文獻 기록을 통해 보면 言語生活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보면, 말을 할 때 목소리는 조용조용하게 내야 한다, 거세게 내도 안 된다, 너무 들리지 않게 해도 안 된다, 시끄럽게 떠들어도 안 된다 등등을 조선조 말 峿堂 李象秀란 이가 그의 文集에서 주장했습니다. 栗谷도 말은 마땅히 간결하면서 무게 있게 할 것이요, 너무 시끄럽게 해도 안 된다는 것을 擊蒙要訣에 썼습니다. 속도 면에서도 順菴 安鼎福은 宋나라 程子의 말을 인용해서 '말을 너무 빨리 해도 안 된다, 마음이 안정된 사람이라야 말을 천천히 하고, 안정이 안된 사람은 빨리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말할 때의 태도에서도 몸을 흔든다든지 팔다리를 달달 까분다든지 그런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해 놓았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전 사람들은 그들의 文集에 목소리, 말의 내용, 태도 등에 걸쳐서 언급이 안된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잘못하니까 그렇게 주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으나 다른 면에서 보면 그만큼 존중했으니까 강조하면서 신경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만히 보면 傳統있는 집안의 말씨는 역시 다릅니다. 그것은 곧 선인의 말씨가 상당히 정중하고 말 하나라도 골라 했다는 것을 傍證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선인들은 말을 가려서 정중히 했는데 근자에 日帝 抵抗期, 6·25사변 등을 거치는 동안에 아주 거칠어졌습니다.
司 會:다른 분도 계속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車柱環:교육을 한다는 처지에서 생각할 때 예절 바른 언어생활을 지도하는 敎本이 준비되어 있느냐를 반성해야 합니다. 유치원에서도 자기 소개나 인사하는 언어를 훈련시킬 때에 자신 있는 준비가 잘 되어 있느냐를 적절히 반성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교육 방법에서도 유치원, 국민학교, 중·고등학교에서 말하는 법 곧 話法을 가르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것 같지만 중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얘기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성적에 반영될 정도로 가르칩니다. 가장 바람직한 언어생활의 교육법과 그 내용이 준비되어 있는가를 이제 우리도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司 會:말씀을 듣고 보니 예절 중의 하나인 언어의 예절 바른 생활은 엄격한 가정교육, 계획적인 학교 교육이 합쳐져야 비로소 가능하리라고
金敏洙 : 언어 예절의 전통을 오늘날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시대에 맞게 전통적인 정신을 잘 살려 보다 더 나은 언어 예절로 가꾸어 나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언어의 예절 바른 생활은 엄격한 가정교육과 계획적인 학교 교육이 합쳐져야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교육이 과연 존재하는가? 학교 교육에서도 제도적으로 언어 예절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洪承五: 金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현실로 보아 점차 사회 구조가 바뀌어 가고 있고 대가족 제도에서 核家族 제도로 옮겨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이미 겪은 歐美諸國에서도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학교 교육과 병행해 학교 교육의 단점을 보완하는 면에서 가정 예절 교육을 실시해 왔고 또 상당히 그것이 성공한 전례가 있음을 보아서 우리도 아무리 사회 제도가 바뀐다 해도 가정에서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옛날의 선조들이 해오시던 올바른 예절 교육을 되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司 會:어떻게 해야 예절 바른 언어생활을 할 것인가 하는 방법 문제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鄭 선생님 한 말씀 해 주십시오.
鄭良婉:저희 집에서는 어린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대개 존대말을 조금씩 가르치게 되는데 이 때 부모가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썼습니다. 예를 들어 '아가 이거 잡수세요'하는 식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모르고'-세요'만 붙이면 되는 줄 알고 '아버지, 밥 먹으세요'라고 할 때 저희가 '할머니 진지 잡수세요' '아가도 진지 잡수세요'하는 식으로 해서 말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또, 아이들에게도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집의 아이들이 외출해서 돌아보면 집에서 나가서 돌아올 때까지 過程을 얘기하라고 하기도 하는데, 저희가 쌍둥이를 두었는데, 큰애가 먼저 말을 하면 작은애는 저도 똑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의 아버지가 야단을 치고 네가 형과 다르게 생겼으니 생각하는 것도 다를 테니 한번 얘기를 해보라면 역시 조금씩은 다릅니다. 요즈음 유치원 아이들은 선거도 하고, 의사 발표를 할 기회도 많고 해서인지 말도 잘하더군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언어 예절에 대한 마음가짐이 중요해
司 會:언어 예절을 제대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행위에 앞서 그 마음가짐인 精神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精神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되는데, 먼저 이 문제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李應百:정신 면에서 이전 사람도 언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했습니다. 중국의 周易大傳에서 '言行은 군자의 樞機다, 樞機의 發함이 榮辱의 主가 된다'고 한 것처럼 언어가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大學 章句序를 보면 어린이가 小學에 들어오면 '灑掃應對 進退之節'을 익히게 해야 한다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아주 소중하다고 봅니다. 물 뿌리고 쓸고 어른이 부르시면 대답을 분명히 하고, 어른 앞에 나아갔다 물러설 때에 공손하게 행동하는 것 등이 그 속에 모두 담겨 있는데, 응대를 분명히 한다 하는 것, 그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核家族化된 가정에서 부모가 전통적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그 子女를 잘 가르칠지 몰라도, 그 자신이 언어 예절을 모를 때는 그 자녀는 배울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곤란하게 되는 게 아니냐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언어에 대한 정신 상태가 가정에서 전혀 안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뢰다'란 말을 10살 미만에 배웠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이가 자기 어르신네 심부름을 와서 '家親께서 이렇게 사뢰라 하셨습니다.' 하는 것을 듣고, 좋게 생각이 돼서 그 후 계속 그렇게 써 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집안이 아니라 다른 데서라도 좋은 말을 들으면 배울 수 있겠는데 우린 전체적으로 보아 그런 분위기는 깨진 것 같습니다. 정신적인 면, 제도적인 면에서 이것이 강조돼야 하리라 봅니다.
司 會:지금 '君子之樞機'란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은 분명히 서양의 로고스 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희랍어 Logos는 본래 인간의 언어라는 뜻이었는데, 哲學에서는 이것을 우주의 理性的 법칙으로 보고 神學에서는 사람이 되어 말한 주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Logos란 것은 정신적인 사상, 심리적인 언어 능력이나 理性을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로 보지 않고, 그 인간의 精神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역시 언어가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車柱環:예절이란 것은 社會成員으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즉, 社會成員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잘 터득하고 있어야 합니다. 社會成員이라면 사회가 잘 움직여 나가도록 해야 할텐데, 장애를 가져오는 언어생활을 하게 된다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 정도의 깨달음은 쉽게 다 지닐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대부분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사회에 봉사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겸손하게 처신해서 사회에 장애 요소를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올바른 언어생활이 되리라 봅니다. 남에게 실례했을 때 미안하다는 얘기가 그리고 남에게 신세를 졌을 때는 고맙다는 인사가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을 보면 우리가 보통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우리보다 수준이 높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좋고 훌륭한 사회로 발전하자는 의미에서 얘기해 보는 것입니다.
李應百:우리는 社會化가 잘 안돼 있습니다. 가령 엘리베이터를 탈 때 영미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도 '하이'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쳐다만 봅니다. 옆의 사람을 툭 치거나 발을 밟고서도 시치미를 떼는데, 외국 사람들은 부딪치거나 혹 스치려고만 해도 우리의 죄송합니다,
洪承五 : 서양에서는 어릴 때부터 사회·가정교육을 철저히 시켜 예절 바른 태도·말씨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습니다. 교육할 때도 '이렇게 하라'는 식으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쉬운 동요를 만들어 그것을 늘 부르게 하고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합니다. |
미안합니다에 해당하는 '익스 큐즈 미'를 습관적으로 연발합니다. 우리는 언어생활의 사회적 습관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가정, 학교에서 訓練을 시켜야 합니다. 인사는 순간적 반사적으로 해야지 한참 생각한 뒤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등의 인사가 자연스럽게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洪承五:서양에서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잘 시킵니다. 우리의 유치원을 보면 예절 교육도 시키지만 그것보다는 어린이에게 무리가 될 듯이 보이는 미술·음악 등의 소질 개발에 관한 特技 指導에만 힘쓰는데 서양에서는 그것보다 사회에 나가서 이웃과 사는 데 불편, 충돌 없이 어떻게 화목하게 사는가 하는 기본 교육을 철저히 시켜 주고 그 다음에 개인의 기능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에게 사람을 만났을 때는 인사를 해라, 누구에게 실례를 했을 때는 이렇게 해라 하는 식으로 말로만 10번 일러주는 것보다는 어른들이 머리를 짜서 쉬운 동요를 만들어 예를 들어 "누구를 만났을 때는 '안녕하세요', 누구에게 무엇을 달라고 할 때는 '미안합니다'" 같은 노래를 늘 부르게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머리를 배게 하는, 일종의 세뇌 교육처럼 기본 교육을 철저하게 합니다. 그렇게 기본 교육을 철저하게 해 나가니까 나이 들어 반사적으로 실제 상황에서 말이 나오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李應百:이번에 개정된 제5차 교육 과정에서 국민학교, 중학교의 국어를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로 3分해서 교과서를 따로 만들고 시간도 따로 정했습니다. 말하기·듣기의 교과서가 편찬되고 시간이 따로 정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 국어 교육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광복 후 美軍政 시대는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마련한 敎授 要目에 의해서 국어 교육을 했고, 그 다음엔 1955년에 가서야 대한민국 정부로서 제1차 교육 과정을 만들었는데, 그 속에 읽기 중심에서 音聲 言語도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었으나 종래의 타성에 따라 읽기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현행 제4차 교육 과정까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번에는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시간을 따로 정해서 국민학교에서는 매 학년 7시간 중 2시간을 말하기·듣기에, 3시간을 읽기에, 2시간은 쓰기에 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교과서도 개발하고 시간도 책정하였으니 이를 통해 言語 禮節을 습관화시킬 수도 있고, 다각적인 훈련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사말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써야
司 會:지금까지 제도적인 방법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이제부터는 더 구체적인 실제의 예를 가지고 말씀해 주십시오.
車柱環:우선 사람을 만나서 하는 인사가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長上, 同輩, 手下에 따라 달라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정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통 '안녕하십니까?' 정도고 '어디 가십니까?'도 많이 쓰는데, 남이 어디 가는가를 묻는 것이 첫인사로서 잘 어울리지 않게 느껴집니다. 지도하는 위치에 계신 분들이 잘 정착시켜야 할 책임이 있지 않나 합니다.
司 會:우리의 인사말은 서양과 달라서 아주 독특합니다. 서양에서는 아침, 낮, 저녁의 인사가 각각 구분되어 있고 일본에서도 明治維新 이후에 그것을 모방해서 만들어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처럼 인사말의 定型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개 아침에 만나면 '진지 잡수셨습니까?' 길가다 만나면 '어디 가십니까?'하는데 이것은 그 말에 대하여 이렇다고 꼭 대답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사니까요. 어른 같으면, 그저 '아, 그래' 정도로 대답하면 될 것입니다. 제가 한 번 겪은
鄭良婉 : 그전에는 말을 해도 조용조용하게 하고 손짓 몸짓도 많지 않았고 말 자체도 완곡하였지 직선적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 진지를 드릴 때 '진지 잡수세요'하지 못하고 '진지상 잡숴 왔습니다'로, 명령형을 쓰지도 못했습니다. |
일입니다만, 집에서 아침에 변소에 갔다가 막 나오는데 집에 사는 다른 사람이 '진지 잡수셨습니까?'하고 인사하는 겁니다.(일동 웃음)
李應百:그런 경우 食前에야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해야 되는데......
司 會:그럼 그 안에서 편안히 자고 나왔다는 말입니까? 참, 인사말이란 어느 나라든지 그 뜻을 곧이곧대로 캐고 보면 어색한 경우가 있습니다.
車柱環:비슷한 예가 중국에도 있습니다. 못 살아서 끼니를 굶을 때가 많아 '진지 잡수셨습니까?' 했는데, 중국 사람도 그 전에는 아침만 되면 '츠러판러마'(식사했느냐?)라고 인사했는데, 요즈음은 쓰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침 인사는 '이를 조(早)'를 써서 '짜오'로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아주 쉬운 '짜오'가 정착이 됐습니다. 평배끼리는 '짜오', 조금 높이면 '닌 짜오'로 합니다. 중국 사람은 이인칭에 대한 존칭은 '닌'이란 말을 쓰는데, 정착이 됐습니다.
司 會:서양의 인사말 유형은 어떻습니까?
洪承五:서양의 인사는 상대편의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은 묻지 않고 객관화시켜 주로 날씨를 가지고 묻습니다. 영어는 다 아시겠지만 프랑스 어의 경우 '좋은 날' 이런 말을 가지고 인사에 대용합니다.
李應百:비가 와도, 폭풍이 불어도 좋은 날이란 말이죠.
洪承五:네, 비가 와도 물론 쓰는데요, 그런 경우에는 좋은 날씨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돌려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司 會:좋은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의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洪承五:예, 해석은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날씨가 궂을 때는 '좋은 날'의 뜻을 가진 인사말 '봉주르'로 인사를 하고 화제를 날씨로 돌리게 됩니다.
李應百:인사 말씀이 나왔으니 그에 대해 여기서 좀더 얘기를 하십시다.
車柱環:중국에서는 아침에 '짜오'로 하는 인사말 외에도 '안녕하십니까?'의 '하오'를 써서 '니하오' 등의 말로 간소화해서 정착시켰습니다.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전의 '진지 잡수셨습니까?' '어디 가십니까?' 이런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요즘에는 서양풍이 들어서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되어 거의 체질화되고 정착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자지네 나름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나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녕'이라는 말이 어떤 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李應百:광복 직후에는 '한결같이'로 하자는 얘기도 있었으나, 건강하거나 좋은 사람에게는 괜찮지만 병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곤란하여 흐지부지 돼 버렸습니다. 요즈음은 보편적으로 '안녕하십니까?'가 많이 쓰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다 같이 '안녕'이라고만 하는데 헤어지는 인사에서는 꼬리를 좀더 끄는 점이 다르죠. '오래간만입니다' 또는 '어디 가십니까?'도 흔히 쓰지요, 그런데 어디 가는지 정말 의문이 날 때만 '어디 가십니까?'를 쓰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안녕하십니까?'가 좋겠습니다.
司 會 :전에는 아침에 '안녕하십니까?'라고만 하지 않고,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들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진지 잡수셨습니까?'하고, 점심때가 되면 '점심 잡수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노상에서는 뭐라고 인사할 말이 있습니까? 그래서, 대개 '어디 가십니까?'하는데, 그것은 굳이 가는 곳이 어디냐고 꼭 묻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던가, 어른일 경우에는 '근력 안녕하십니까?' 혹은 '신수가 좋아지셨습니다' 등과 같이 대답 삼아 인사하게 되는가 봅니다. 이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내키는 대로 적당한 인사말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전통적인 인사말은 시기나 상황에 따라 어떤 일정한 定型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있다면, 적절히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精神 그것이 定型이라면 定型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해석됩니다.
車柱環:교육을 하려면 어느 수준까지는 敎本化가 되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敎本化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오면 대답하기가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도 그런 면에서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司 會:앞으로 복잡한 현대 생활에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인사말의 定型化는 어느 정도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李應百:저녁에 헤어질 때도 웃어른이 가실 때는 '살펴 가십시오' 하는데 괜찮은 것 같습니다. 명령은 아니고 인산데.......
車柱環:젊은 사람들이 헤어질 때, '또 보세' '또 만나세' '잘 가게'가 있으나 교본 수준까지는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李應百:말하기·듣기 교육을 자꾸 하다 보면 이 정도가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정착되지 않을까요? 한 5~6년 지나면 정착되리라고 봅니다.
車柱環:대화할 때 예절 바른 언어생활의 자세에 대해서인데 중국에서 어려운 사람일 때는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 덮어놓고 '옳다', '아무렴', '맞습니다' 따위의 말을 잘 씁니다. 의견을 말해 보라고 해도 '아이구, 제가 어떻게 감히 말씀을 드립니까' 이런 식으로 자꾸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려고 합니다. 옳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비굴해지면서까지도 맞추려 하는 작풍은 예절 바른 언어생활에 있어서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李應百:상대방의 약점을 찌르는 소리는 안 되고, '자네 왜 그렇게 야위었나?'하는 것도 失禮가 됩니다.'전보다 날씬해지셨네!' 한다든지 유머러스하게 말을 돌리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여자에게 늙어 보인다느니 얼굴이 안됐다느니 하는 것은 금물이죠. 이런 것도 다 예절입니다.
車柱環:상대방과 얘기할 때 맞장구를 치는 것도 언어생활의 예절입니다. 그러나 덮어놓고 '아무렴요'하면 두루뭉수리가 되어서 한계성도 막연하고 사람이 비굴해지고 합니다. 그런 것이 잘 조정돼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의 '어딜요' '천만에요' '옳습니다' '네네' 등의 남발은 너무나 보수적이고 전제 정치 시대의 상전과 하인이 얘기하는 식이니 그런 점도 현대 사회에서는 과감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李應百:솔직해야 하는데 형식적이 된 것이지요.
司 會:전통적인 인사말과 관련해 한가지 생각할 것은 예로부터 하는 德談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아주 오묘합니다. 예를 들면, 새해에 어른에게 세배할 때 세배한 사람이 노총각이면 '아, 자네는 올해에 장가갔다지'라고 아예 기정 사실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뜻이 맞지 않지만, 금년에는 꼭 장가가라는 뜻입니다. '가라'는 미래인데, 미래로서는 실현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장가갔다지'하면, 올해는 꼭 장가가라는 德談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때도 어떤 定型이 없어서 세배를 받으면 그 사람 개개인의 상황을 보고 所望이 무엇인지, 이룰게 무엇인지 그것을 생각해서 각각 다른 德談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德談으로 '장가갔다지'하면 '저 안 갔습니다' 할 것입니다.(일동 웃음) 이런 것은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옮겨서 재생시킨다기보다 그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서 표현을 가다듬는 방법이 좋겠습니다.
李應百:그렇지요. 참고로 해서 다듬을 것을 다듬으면 됩니다. 가령 喪禮 人事가 어렵다고 하는데 남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大故 말씀 무어라 여쭈오리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喪事 말씀 무어라 여쭈오리까'라 하는데 일반이 잘 몰라 우물우물하게 됩니다. 상대방에 노인이 계시어 전통적인 예절을 찾는다면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냥 '얼마나 슬프십니까'하는 식으로 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司 會:어렸을 때 처음으로 吊喪을 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할지 몰라서 先親께 여쭈었더니, '상사 말씀이 웬 말씀입니까'라고 하되 뚜렷이 하지 말고 작은 소리로 들릴듯 말듯 하는 것이며, 그 常制 앞에서 뚜렷이 얘기하는 것은 더 상대방에게 슬픔을 주는 것이니 吊門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물우물하는 것이 원래 예절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李應百:인사 첫머리에 상사 말씀, 대고 말씀이란 말만 나와도 굉장히 성공이지요.
司 會:인사말에 대해 鄭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鄭良婉:헤어질 때 '수고하십시오'라고 하는데 어른께 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李應百:안되죠. 그런데 이에 대체할 만한 말이 있어야 할텐데......
鄭良婉: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지하도 같은 데서 길을 쓰는 분에게도 지나갈 때 '수고하십시오'라 하기 어렵습니다. '고맙습니다'로 합니다.
李應百:현장에서는 '수고하십니다'로 할 수 있지요.
車柱環:'애쓰십니다'도 좋지요.
司 會:학생들이 연구실에 와서 뭐라고 얘기하고 돌아갈 때 선생 연구실을 나서면서 '수고하십시오' 그러거든요. 학생이 어른보고 수고하라니 말이 안되지요 '수고하지 마십시오'해야지요. (일동 웃음)
李應百 :그때는 수고하라 마라 할 것도 없이 '안녕히 계십시오'가 좋겠습니다.
車柱環:중국 사람의 '짜이젠(再見)'이라고 하는 작별할 때의 인사말은 우리말로는 '안녕'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통용됩니다. 그러나 우리 경우를 가지고 말하자면 어른한테는 '안녕'으로는 안되겠고 '또 뵙겠습니다' 정도가 좋겠지요?
李應百:'안녕히 계십시오', '저 먼저 갑니다', '또 뵙겠습니다', '다시 만납시다' 이 정도겠지요. 그리고 '실례합니다'란 말을 자주 쓰는데 아주 좋지 않습니다. 점심 시간이 돼서 다른 사람이 아직 일이 안 끝나 먼저 점심을 먹게 될 때나 시간이 되어 남보다 먼저 퇴근할 때, '실례하겠습니다'하는데, '먼저 들겠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로 하면 될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하는데 실례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司 會:'실례했습니다'는 혹 되는 경우가 있지만, '실례하겠습니다'는 알고서 하겠다니 안됩니다.
李應百:문을 두드리면서, '실례합니다'하는데, 실례면 하지 말아야지 왜 합니까? 그것보다는 '계십니까?'가 좋습니다.
車柱環: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저는 '이리 오너라'를 쓴 것도 있습니다.
李應百 : 방송에서도 남편을 아빠라 한다든지 시누이를 고모, 장인·장모를 아버지·어머니라고 하는 망발을 하지 말고 언어 예절에 잘 맞는 방송을 해야 합니다. 또 집안이 아니라 다른 데서도 좋은 말을 들으면 배울 수 있겠는데, 우리 전체적으로 보아 그런 분위기는 깨진 것 같습니다. |
司 會:하인이 있을 때는 당연하지요?
李應百:그것은 없을 때도 있다고 가정하여 '이리 오너라'하는 것이지요.
司 會:서양에서는 욕할 때에 어떻게 하는지요.
洪承五:옮기기 거북한 낱말이 있는데, 남에게 욕을 할 때는 그것을 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 대화에서나 글을 쓸 때에나 그 낱말과 발음이 같은 표현을 써야 할 경우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 1자를 일부러 중간에 넣어서 발음이 달라지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구문 자체를 바꾸거나 그 낱말이 연상되지 않도록 합니다. 또 몹시 못마땅한 일이 있거나 화가 나거나 해서 혼자말로 욕을 할 때에는 "메르드"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것도 아주 상스러운 말입니다. 점잖은 사람은 그 철자가 5글자로 되어 있어 '다섯 글자'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車柱環:敬語와 막 놓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는데 말씀해 주시지요, 막 놓는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할 때 '즈부젬므'만 알았었는데 후에 '즈뗌므'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즈뗌므'는 더 절실한 사랑의 경우라고 하는데 그런 경우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洪承五:敬語의 경우 프랑스 어에서는 이인칭에서 단수로 하면 보통말이고 상대방이 한 사람일 때라도 복수로 쓰면 경어가 됩니다. 지금은 없지만 과거 군주나 귀족에게 아주 높여서 말할 때에는 삼인칭을 썼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아직도 명령할 때 '너, 자네, 당신'같은 이인칭을 쓰지 않고 삼인칭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의 '이리 오너라' '출입하셨느냐고 여쭈어라' 등과 마찬가지요. 하인을 통해 제삼자에 명령하는 형식으로 돼 있어 상대방이 거기 있어도 상대방이 들리도록 3인칭을 쓰는 것입니다.
鄭良婉:저희 경우도 이인칭 말고 삼인칭을 쓸 때가 있지요? '그대가''당신이''게서' 등은 3인칭으로 2인칭을 쓰는 것이지요.
司 會:'당신이 생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일 때의 '당신'은 3인칭입니다.
李應百:'당신'은 이인칭도 되고 삼인칭도 됩니다.
車柱環:옛날 우리말을 보면 '마마'가 가장 높고 '마마님'은 그 아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鄭良婉:소실에게도 '마마'를 붙였습니다. '강계마마', '명천마마'그랬지요.
司 會:다음으로 회갑, 혼인, 득남 등 慶事에 임해서 어떤 인사말을 쓰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李應百:아들을 낳았을 때 인사는 '得男하셨다니 얼마나 기쁘십니까?', 딸은 '産慶이 있으셨다니......'라 씁니다. 어떻습니까?
車柱環:요즘은 '축하합니다'인데, 좋다고 봅니다.
洪承五:'축하합니다'를 많이 씁니다.
李應百:모두 '축하합니다'이군요.
車柱環:'축하합니다'가 좋을 듯 싶습니다.
李應百:입학할 때도 '축하합니다'이지요.
車柱環:중국에서도 '꽁시(善)'를 많이 씁니다. 신년 인사도 '꽁시꽁시'로 축하합니다가 됩니다. 많이 보편화되었습니다.
李應百:어떤 경우라도 '축하합니다'가 좋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洪承五:프랑스 어도 축하합니다인 '펠리시타시옹'입니다.
車柱環:영어로는 '컨그라츄레이션즈'이겠지요.
李應百:병문안 갔을 때 '좀 어떠십니까?' '差度가 있으십니까?', 헤어질 때는 '調理 잘 하십시오' '調攝 잘 하십시오'가 있습니다. 이런 인사 말들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된 것 같습니다.
車柱環:그런 것도 교본 형식의 정착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과도기이므로 잡아 주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李應百:문교부에서 한 것(「생활 예절」, 1972)이 있긴 있는데요.
車柱環:너무 어렵게 하지 말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두 분 선생님 책임이 많겠습니다.
李應百:아침에 MBC 라디오에서 나오는 전통 언어 예절에 대한 방송에서는 어렵고 까다로운 말이 많지만 크게 참고가 됩니다.
車柱環:TV에서 차 마시는 예절을 방영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런 것도 현대 생활에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잘 조정해서 현대 생활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호칭어의 무질서도 문제
司 會:그러면, 인사말에 대한 얘기는 이것으로 마치고, 요즘 부쩍 문란해지고 있는 호칭어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씀하여 주십시오.
李應百:요새 젊은이들 가운데는 장인·장모를 아버지·어머니라 부르는 예가 흔히 있는데 그것은 妄發입니다.
洪承五:요즘은 남편을 아빠라고 하는 예도 있는데 참 문제입니다.
李應百:그것은 물론 틀렸고, 장인 어른, 장모님으로 해야 됩니다.
鄭良婉:요즘은 시어머니를 '시엄마'라고 하기도 한답니다. (일동 웃음)
李應百:시어머니가 좋겠지요. 또, 자기 아버지는 아버님이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남의 아버지는 아버님이지만 남에게 자기 아버지를 일컬을 때는 아버님이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아버지, 어머니가 좋을 듯 합니다.
鄭良婉:며느리는 시아버님이라 합니다.
李應百:며느리는 아버님으로 해야 되지만, 아들은 그렇게 써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시누이를 고모라 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車柱環:'너의 엄마'라고도 하는데 남자가 하면 장모를 말하고, 여자가 하면 시어머니를 말하는 것입니다.(일동, 큰일날 얘기입니다.)
司 會:제가 어렸을 때 先親께서 '너의 어머니 어디 가셨니'하고 저에게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李應百:그것은 됩니다. 할아버지께서 손자에게 '아비 어디 갔니?'하고 물으시면, 손자는 壓尊法을 써서 할아버지께 '아비 시장 갔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전통적인 언어 예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차마 그대로는 쓰려 들지 못하는데 어떤 규정이 있어야겠습니다. 아버지 정도로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壓尊法은 방계 할아버지께는 쓰지 않고 직계 할아버지께만 씁니다.
車柱環:서양에서는 우리와 사고 방식이 다르므로 시어머니에게도 '퍼스트 네임'을 부릅니다. 즉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데 이것이 다정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경우에도 며느리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李應百:그건 언어의 습관입니다. 우리나라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욕이 됩니다. 습관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司 會:습관의 차이입니다. 한 예를 들면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거기서 결혼한 교포 부부 교수를 만났습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결혼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편지를 올렸는데, 편지 속에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답니다. 그랬더니, 답장에 처음부터 끝까지 꾸중이었다는데, 그 며느리는 왜 꾸중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저에게 그 까닭을 질문하더군요. 그래서, 물론 이름은 부르자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동·서양의 습관 차이에서 오는 인식의 차이를 설명을 했더니 비로소 이해를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남편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남편도 부인 이름을 불러서는 안됩니다. 서양에서는 그렇다 하되, 우리나라는 서양이 아니니까 우리식으로 해야 합니다.
李應百:언어는 나라마다 습관이 다르므로 다른 나라를 덮어놓고 따라갈 수도 없고, 우리에게 맞게 해야 합니다.
車柱環:중국과 한국에는 대조가 되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위를 나타내는 말인 사장, 국장, 장관 등에다가 '님'을 붙이거나 '어른'이란 말을 붙이는데 중국에서는 그런 것은 안 붙입니다. 선생을 '라오스(老師)'라고 많이 하는데 '라오스'는 '라오스'라고 하면 그만이고, 자기 스승의 부인을 '스무(師母)'라고 하는데, '스무'는 '스무'라고 하면 됩니다. 거기에다가 또 높이는 말을 더 붙이지는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각하가 존대가 아니고 약간 좀 뭐하던가 거의 평배끼리 하는 것입니다. '장총통(蔣總統)'하면 그만입니다. 한국의 경우 같으면 '장총통 각하'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님'을 너무 남용합니다.
李應百:덧붙여서 몇 가지를 중복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언어 예절에 대한 定型化된 교본을 바탕으로 가정·학교 교육 강화해야
司 會: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절 바른 국어 생활을 하기 위해 바람직한 방향과 소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마디씩 말씀해 주십시오.
車柱環:예절 바른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인간은 사회 성원의 하나라는 인식이 몸에 배어야 하며, 또 겸허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그것이 언어에 반영된다고 봅니다. 둘째로, 언어의 예절도 시대적으로 격변을 겪어 오면서 과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고 교본 단계까지 정착되지는 않았습니다. 국어학이나 국어 교육을 담당하시는 분들이 영도적 위치에서 많이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李應百:예절은 행동의 規準이므로 한편으로 치우쳐도 안됩니다. 過恭이 非禮라 하듯 지나치게 공손해도 예의에 맞지 않습니다. 덮어놓고 공손해도 안됩니다. 언어는 사회의 관습이므로 관습에 맞춰 인간 관계를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規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언어 행동은 몸에 배어야 하니 家庭에서 어려서부터 가르쳐 몸에 배게 하고, 학교나 사회에서도 체계적으로도 교육하고, 어른이 아이들에게 示範的 존재가 되어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放送에서 언어 예절에 잘 맞는 방송을 해야 합니다. 남편을 아빠라 하다든지, 시누이를 고모, 장인·장모를 아버지·어머니라고 하는 망발은 하지 말고, 신경을 써서 예절에 맞는 언어를 驅使해야 할 것입니다. 언어 예절의 先導的 입장에서 敎師라는 심적 자세로 자부심을 가지고 방송을 하였으면 합니다.
洪承五:말하는 당사자나 지도할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평소에 올바른 언어 예절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혹 예의에 어긋나면 그때그때 지적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몰라서 예절을 못 지키는 경우가 많으니 그때그때 지적하면 깨닫고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지적하고 가르쳐 주면서 하나하나 바로 잡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기가 교육 과정의 일부로 들어갔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하에서 학생들이 훈련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예절 바르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鄭良婉 :선생님들께서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특별히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때 주관도 없이 비굴하게 맹종만 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도 간혹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런 것을 볼 수 있는데 젊은이는 비굴할 정도는 아닌 듯하여 다행입니다. 겸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명백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말하는 훈련이 안되어 말을 잘 못하고 비비꼬고 하는데 이런 것들은 말하기 시간을 통해서도 차츰 고쳐지리라 봅니다.
司 會: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셨습니다.
바른 언어 예절을 지켜 가기 위해서 가정, 학교, 사회에서 계획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향상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인사말의 경우 定型化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서양에서 대학생에게 좌우명으로 삼는 책을 들라면 聖經과 禮節敎本 이라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禮儀之國이라 하는 우리보다 더 많은 예절을 지키는 이유나 근거가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건대 언어 예절을 포함한 예절, 예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알려주는 敎本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에는 물론 있었지만, 현대 생활에서는 현대에 알맞은 禮節 敎本이 없습니다. 言語 禮節을 포함한 예절을 지키려 해도 제대로 알 수가 없고 가르쳐 주는 곳도 없으니 시급한 것은 言語 禮節을 포함한 禮節 敎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소망하는 예절 바른 언어생활이 기어코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譯 : 예는 망령되게 남을 즐겁게 하지 않으며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評說 :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부터가 이미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니다. 더군다나 망령된 언동으로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이겠는가. 그것은 예(禮)가 아니고 아첨일 뿐이다. 또 조급한 사람은 말이 많다. 쓸데없는 말이 많으면 번거로와서 듣는 사람이 반드시 싫어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말은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 면 그친다. 그것이 예의 바른 일이기도 한 것이다. 南晩星 譯 「禮記」(平凡社)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