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표준 중세 국어 문법론
고 영 근 저 / 신국판 369면. 1987. 탑 출판사

李 賢 熙 / 한신대 교수, 국어학

15세기 국어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한 문법서가 몇 안 된다는 것은 가르치는 이에게나 배우는 이에게나 안타까운 일이다. 학문 연구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목소리의 이론과 설명이 있을 수 있겠으나, 통설적인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목소리로 구성된 교재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반가운 출판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본서는 머리말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1985년도부터 시행되고 있는 학교 문법 통일안의 체계와 용어에 준거하여 15세기 국어의 문법 전반을 다룬 것이다. 저자의, 남기심 선생과의 공저인 「표준 국어 문법론」(1985)과는 자매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본서는 3편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 뒤에는 연습 문제, 참고 문헌이 붙어 있다. 또한 '붙임'으로 사전 및 문법서 목록과, 문법 연구 자료의 간략한 서지 문헌적 정보를 담고 있으며 문법 용어와 문법 형태의 찾아보기가 있다. 제1편은 총론으로 문법 학습에서 알아 두어야 할 예비 사항들이 담겨 있으며(1장~4장), 제2편은 형태론(5장~10장), 제3편은 통사론(11장~13장)으로서 군데군데「표준 국어 문법론」과 해석을 달리하는 곳도 없지 않으나(p.174,317), 대체로 전체 골격은 변함 없다.

본서는 예문을 통해 문법 현상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초보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참고 문헌을 통해 각 주제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일 수 있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본서는 최근까지 이루어진 중세 국어 문법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이 현대 국어 문법에 준거하여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저자가 중세 국어의 기술과 설명에서 취하는 기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이미 저자의 「중세 국어의 시상과 서법」(1981)에서도 보였던 것이다. 또한 본서는 철저히 공시적 분석과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능하면, 역사적.통시적 설명을 유보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나모'의 교체형 ''의 설명에서 어간 말 모음 탈락과 더불어 'ᄀ'이 덧생긴다는 것(p.92)이나, '모-'의 활용형 '몰라'의 설명에서 모음 탈락과 더불어 'ᄅ'이 덧생긴다는 것(pp.106~7) 등의 기술이 그것이다. 기저형 내지 재구형으로 '*나''*모-' 등을 실정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한 해석을 취하지 않고 있다. 관형사형 어미(p.47,127,193)와, 의문형 어미 '-ᄂ다'(p.(124,294), 용언의 불규칙 활용(pp.109~114) 등에 대한 기술과 설명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볼 수 있다.
    본서의 내용은 지면 관계상 본론인 형태론과 통사론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한다. 제5장은 형태소의 분석 기준, 중세 국어 품사 분류(9품사)의 실제 등으로 되어 있다. 특히 단어의 개념 규정(pp.55~6), 형용사의 동사로의 전성(p.58) 등은 잘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제6장은 체언과 조사를 다루고 있는데 '거긔, 게, 손' 등을 후치사로 보지 않고 부사성 의존 명사로 파악하는 점(p.64)은 저자의 기본 태도와 관계 있다.
    제7장은 활용론으로서, 활용어의 갈래로 동사.형용사.서술격 조사의 구분이 문법 서술에 이득이 많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동사와 형용사가 묶일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pp.96~7). 특히 협주의 한자 뜻풀이 형식과 관련해서 그 가능성을 찾은 것은 흥미롭다. 능격 동사를 피동사와 관련시켜 한 언급(pp.98~9,218~221)은 독특한 서술로 주목된다. 용언의 규칙적 활용은 어간과 어미의 자동적 교체를 말하는데(p.105)

현대 문법의 '으'불규칙에 소급되는 '크'나 '르'불규칙과 '러'불규칙에 소급되는 '다-', '모-' 등의 활용도 여기에 포함된다(pp.105~7). 그 외 자음 동화에 의해 어간이 교체되는 것(p.108의 '놋' 등은 '녿' 등의 오기인 듯하다)이나, 성조가 바뀌는 현상 등과(p.108), 어미 '-ᄂ, -ᄅ, -며, -시-, -()-'가 'ᄅ' 외의 받침으로 된 어간 아래에서 매개 모음 '/으'가 삽입(상점:서평자)되는 현상도(p.109) 여기에 속한다.
    어간의 불규칙 활용은, 현대 문법의 'ᄉ'불규칙, 'ᄇ'불규칙, 'ᄃ'불규칙의 소급형들과, '시므-'류, '잇-'류, '니-'류, '주-'류 등이 있다. 저자는 '짓-', '덥-'을 기본 형태로 잡고 모음 어미 앞에서 교체되는 이형태가 '-', '-'이라고 파악하고 있어서(pp.109~111), '-' 등을 기본 형태로 잡아 설명하는 견해와는 대척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특히 '웃-'의 경우(pp.110,146,157), '-'을 기본 형태로 보아야 파생어 '-'가 쉽게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미의 불규칙 활용으로는 서술격 조사와 선어말 어미 '-리-' 뒤에서 'ᄃ'계열 어미가 'ᄅ'계열 어미로 바뀌는 현상, 'ᄅ'과 부음 y 뒤에서 'ᄀ'이 'ᄋ'으로 바뀌는 현상, 서술격 조사 뒤에서 '-오-'가 '-로-'로 바뀌는 현상, '-엣-'이 '두-' 아래에서 '-잇-'으로 바뀌는 현상, '-아/어-'가 '-거-'나 '-나-'로 바뀌는 현상, '야'에서 부음이 덧나는 현상 등이 언급되고 있다(pp.112~4).
    그 외, 관형사.부사.감탄사(제8장), 품사의 통용(제9장), 단어 형성의 원리(제10장) 등이 형태론에서 다루어져 있다.
    제11장 이하는 통사론이다. 제11장에는 문장 성분이 다루어져 있는데, 문장 성분은 어절로 성립되지만 구나 절로 성립되기도 한다(pp.174~6). 제12장에는 사동문과 피동문, 시제.서법.동작상, 높임법, 선어말 어미 '-오-'의 기능, 문장 종결법, 부정문, 문장과 이야기 등, 형태론에서 확인된 문법 요소들의 통사적 기능과 그 의미가 소상하게 서술되어 있다. 학계의 업적을 망라해서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으나 군데군데 저자의 독특한 견해가 반영되기도 한다. 피동문과 능격문의 관계(pp.218~221), 관형사형 어미 '-ᄅ', 의문형 어미 '-려,' '-ᄅ다'를 '*-린'(p.237)과 '*-리녀'

(p.123,127,292), '*-린다'(p.124,127,294)로 파악하는 일, 중세 국어 상대 경어법에 반말을 하나의 등분으로 추가하는 일(pp.125~6,266,296~7,299), 관형사형 어미를 보수적인 평서형 어미 '-니라'에서 '-이라'가 떨어져 형성된 것으로 파악하는 일(p.127,280~1), 경계문 설정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p.301), 인용 동사에 타동사 표지 '-아/어-'가 통합되어 나오는 것을 근거로 인용절을 목적어 명사에 상당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일(pp.317~8) 등이 그것이다.
    이상 주마간산 격으로 본서를 대충 살펴보았다. 현재 필자의 처지로서는 본서의 서평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나, 외람된 짓을 본의 아니게 저지른 것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이 크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이루어진 업적을 포괄적으로 수용하여 중세 국어 문법의 전체 윤곽을 이만큼 짜임새 있게 제시해 주신 저자께 깊은 감사를 표하면서 끝을 맺는다. *

 

兒童의 言語 發達 -韓國 兒童의 段階別 位相-
李 仁 燮 著 / 新菊版 297面. 1986.9. 開文社

盧 命 完 / 韓國 敎育 開發院, 國語 敎育學

비록 전체 면 수는 297면밖에 되지 않지만, 이 硏究書는 국내 문헌 192개, 일본 문헌 16개, 영문 문헌 129개, 총 337개의 문헌을 참고하면서 한국 아동의 한국어 발달을 기술한 방대하고도 의욕이 넘치는 종합 연구서이다.

저자의 박사 학위 청구 논문의 단행본 출판서인 이 연구서에서 저자는 20여 년 간 직접 수집한 자료들을 言語 發達의 普遍性(一般 言語 發達論)과 個別性(韓國語의 發達)의 양측 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서평자는 물론, 다른 독자들도 이 연구서에 제시된 자료의 방대함에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 7장(Ⅰ. 序論 Ⅱ. 硏究史 Ⅲ. 言語 發達에 관한 理論的 基礎 Ⅳ. 幼兒期의 言語 發達 Ⅴ. 兒童期의 言語 發達 Ⅵ. 言語 發達의 普遍性과 個別性 Ⅶ. 結論)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先行 硏究의 槪觀과 言語 發達의 理論으로서 Ⅰ,Ⅱ,Ⅲ장의 내용이 이에 해당된다. 둘째 부분은 출생부터 취학 전까지의 언어 발달로서 Ⅳ장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국민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조사한 언어 발달(Ⅴ장 및 Ⅵ장)이다. 출생부터 취학 전까지의 언어 발달 연구는 직접 관찰 자료에 의존하였고, 국민학교 아동 대상의 연구는 직접 관찰 자료와 함께 질문지에 의한 조사 자료도 함께 취급하였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출생부터 국민학교를 마치게 되는 12세까지 한국 아동의 언어 발달을 언어의 構造와 機能 양측 면으로 位相지었는데, 이는 言語 發達 課業을 설정함으로써 지금까지의 記述的 연구에서 課業에 따른 敎育的 연구로 한 단계 발돋음하기 위한 저자의 연구 포부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아동의 言語 發達을 언어의 習得(acquisition)과 學習(learning)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자연스런 언어 환경에의 노출에서 오는 언어 습득에도 의도적인 敎育的 要因이 내포되어 있으며, 국민학교 취학기의 언어 학습도 生得 能力(competence)의 가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저자는 習得과 學習 양자를 설명 원리로 볼 때에만 언어 발달 과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兒童의 言語 發達」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에서 출생에서부터 국민학교 6학년 아동의 언어 자료를 함께 발달적인 측면으로 취급한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語彙의 把持, 意味의 聯想, 作文 能力의 發達, 그리고 국민학교 취학 후에 본격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敬語의 사용까지 모두 발달적인 측면에서 生得的인 言語 能力의 발현으로 보는 것은 좀 지나친 가정이 아닌가 한다. 그 단적인 예의 하나가 국민학교 1학년 학생들이 2~3학년 학생들보다 더 바르게 경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이다(p.248, 표4).
    이 연구서의 핵심이며 한국 아동의 언어 발달 연구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은 제Ⅳ장의 兒童期의 言語 發達 부분이다. 이 章에서 저자는 저자 자신이 직접 수집한 자료와 국내의 다른 연구물에서 발췌한 자료를 함께 검토하면서 저자 나름대로 유아기(출생부터 취학 전까지) 한국 아동의 언어 발달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유아기 아동의 언어 발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본 가정과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p.68).:

(1) 각 단계의 아동어는 그 아동에게 최적한 언어다. 성인어의 관점에서 非文法的이라거나 逸脫된 것이라는 평가는 무의미하다.
(2) 언어의 습득은 아동의 내적 요구와 언어 형식 간의 平衡化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 平衡化는 量的 變化와 質的 變化를 수반한다.
(3) 언어 발달에서는 生得性 못지 않게 학습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相互 作用說 내지는 構成主義에 기울고 있음을 뜻한다.

아동의 언어 발달을 아동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동의 내적 요구(저자는 아동의 내적 요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서평자는 이를 生理的 要求와 표현하고자 하는 意味로 보고 싶다.)와 언어 형식, 그리고 환경 사이의 구성적 평형화로 본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같은 관점은 아동의 언어를 생물학적, 인지적, 그리고 사회적 상관 속에서 탐구하고 있는 최근의 연구 동향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1975년에 프랑스의 Abbaye de Royaumont에서 벌어진 生得主義者 Chomsky와 構成主義者 Piaget 사이의 대논쟁이 명쾌한 승패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음은 아동의 언어 발달이 생득적인 측면과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서 오는 구성적인 측면 모두를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Piattelli-Palmarini, 1980참조).
    아동의 언어를 生物(理)的, 認知的, 그리고 社會的 소산으로 보는 최근의 언어 발달 연구 경향은 기존의 Chomsky식의 연구 즉, 발달을 生得的인 言語 習得 機制의 계속적인 성장으로 보는 生得主義, 그리고 Piaget의 認知 發達 段階說에 기초를 둔 言語 發達 段階說 모두에 회의를 제기하고 있다.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變形 生成 文法으로 언어 발달을 연구한 언어 심리학자들은 아동 언어를 技能과 知識으로 기술하려 하였으나 이런 경향은 아동 언어의 學習과 發達을 소홀히 하였다. 그런 반면, 認知 發達에 기초한 아동 언어 연구는 언어가 意味와 形式의 양면 동시에 갖고 있고, 언어 행위에 나타나는 언어는 주의와 관심의 직접적 대상 즉 형식이면서 동시에 의미 전달을 위한 수단도 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지 못하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즉, 언어 사용은 무의식적인 정신 과정이면서 또한 그 같은 무의식적인 정신 과정의 의식적인 사용이기도 하다. 李 교수의 「兒童의 言語 發達」 연구가 언어의 이 같은 양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였다는 데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다. 다시 말하면, 아동의 언어 발달을 기술함에 있어서 저자는 生得과 構成 모두를 함께 고려한다는 기본 입장을 표명하기는 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Chomsky와 그의 동료들의 記述 方法 또는 Piaget의 方法을 개별적으로 적용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저자가 보인 20여 년간의 일관된 연구, 방대한 문헌 섭렵과 자료 제시는 독자가 간간이 느끼는 이론의 일관성 결여를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어느 한 개인에게 萬能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책을 대학원 이상의 학도들에게 권하고 싶다. *

참고 문헌
    Piattelli-Palmarini, M. (Ed.), Language and learning: The debate between Jean Piaget and Noam Chomsky.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1980.

 

訓民正音 硏究 / 姜 信 沆 著
신국판 viii+414면. 1987.4. 成均館大 出版部

高 永 根 / 서울大 교수, 국어학

훈민정음의 창제는 우리 민족에게 자유로운 문자 생활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의 역사를 뒤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이 문제의 제자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훈민정음해례」가 저술되었다는 것은 국어학사뿐 아니라 세계 문자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조선조 전 시대를 통하여 훈민정음은 학자들의 꾸준한 탐구 대상이 되어 왔고 갑오경장 이후로는 그 열기가 더욱 고조되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일차적인 연구 대상으로 등장하였다. 해방 후에는 각급 학교 국어 교과서에 훈민정음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실려있어 훈민정음은 이제 우리 국민들의 상식적 지식 세계 속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있다.
    훈민정음에 관한 연구는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해례」가 발견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전에도 훈민정음에 관한 연구가 적지 않았으나 예의편만 알려져 있어 제자의 원리나 실제의 용법을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려웠다. 「훈민정음해례」의 발견은 훈민정음의 문자론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15세기의 음운 체계를 밝히는 데 있어서도 새로운 전기를 이룩하였다. 「훈민정음해례」는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였다. 홍기문의 「정음 발달사」(1946), 김민수의 「주해 훈민정음」(1957), 유창균의 「훈민정음」(1974), 강신항의 「역주 훈민정음」(1974), 서병국의 「신강 훈민정음」(1975), 박병채의 「역해 훈민정음」(1976),

박종국의 「주해 훈민정음」(1976), 박지홍의 「풀이한 훈민정음」(1984), 이성구의 「훈민정음연구」(1985) 등이 「훈민정음해례」의 번역.주석을 다룬 업적이다. 이 가운데는 단순한 번역.주석의 경지를 뛰어 넘어 훈민정음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 것도 적지 않다. 김민수, 박지홍, 이성구의 업적이 그러하다. 홍기문은 상하로 나누어 상권에는 「훈민정음해례」뿐만 아니라 이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정인지의 "훈민정음서", 신숙주의 "동국정운서", "사성통고범례", "홍무정운역훈서", 성삼문의 "직해동자습서", 최만리의 "언문 창제 반대 상소문" 등의 번역.주해를 넣고 하권에는 훈민정음 창제 비롯하여 15세기의 어문 문제 전반을 다루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훈민정음해례」에 대한 권위 있는 번역은 말할 것도 없고 훈민정음에 관련된 당대 내지 후대의 연구 자료에 대한 역시 권위 있는 번역.주석이 절실히 요망된다. 이를테면 홍기문의 업적이 그동안 우리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왔으나 나온 지가 너무 오래되어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현대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이번에 얼굴을 드러낸 강신항 교수의 「훈민정음 연구」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간행된 것이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세종조의 어문 정책"과 "훈민정음(해레본)의 해제"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전자에서는 "우리 것"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기초로 하여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어문 정책이 활발히 전개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세종조의 어문 정책의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① 고유 문자인 훈민정음의 창제
② 외래어음인 조선 한자음의 정리
③ 중국 본토 표준 자음의 표시
④ 인근 제 민족어 학습을 위한 사학(四學)의 장려

훈민정음은 결국 ① 순수한 국어의 표기, ② 개정된 한자음의 완전한 표기, ③ 외국어음의 정확한 표기의 사명 띠고 창제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밖에 훈민정음은 교화와 훈민 정책으로도 이용될 수 있는 사명도 띠고 있었다. 특히 저자는 훈민정음 창제의 사상적 배경으로 유교 중심의 언어관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는 「성리대전」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오래 전에 "훈민정음해례 이론과 성리대전과의 관련성"(「국어 국문학」26,1963)을 발표한 바 있다. "훈민정음 해제"에서는 주로 해례본의 내용을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에 걸쳐 내용을 소개.평가하고 있다. 이 곳에는 부록으로 "1. 훈민정음의 이본, 2. 훈민정음 기원설"이 마련되어 있다.
    제2부는 "훈민정음 본문(예의편), 훈민정음 해례(정인지 서문 포함), 세종어제훈민정음"에 대한 번역.주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두 편은 현대역과 함께 주석이 붙어 있으며 마지막은 주석만 베풀어져 있다.
    제3부는 훈민정음과 관련되는 기록들의 번역이다. "최만리 등의 언문 창제 반대 상소문, 동국정운 서문, 홍무정운역훈 서문, 사성통고 범례, 직해동자습서, 보한재집내 훈민정음 관계 기사초, 훈몽자회 인(引)과 범례"를 먼저 해설을 붙인 다음, 원문 제시와 함께 주석을 달고 이어 번역을 베풀었다. 마지막 두 편은 홍기문의 「정음발달사」에도 없던 것이다. 사성통해 범례의 번역도 곁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4부는 저자가 그동안 지상에 발표한 3편의 훈민정음 관련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조선 초기 불경 언해 경위에 대하여"(「국어 연구)창간호, 1957)는 세조조의 불경 언해 사업이 세조의 강력한 왕권에 의하여 추진되었으며 당시의 지배 계급인 지식 계층과 분리된 사업이었음을 실록을 중심으로 분명하게 밝혀 내고 있다. 저자의 20대 후반의 업적이다. "용비어천가의 편찬 경위에 대하여 "(서울대 「文理 大學報) 6.2, 1958)는 용비어천가의 간행 연대를 세종 27년(1445) 4월로 잡던 종래의 견해를 수정하여 세종 29년(1447)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 곳에는 용비어천가의 한문 가사가 먼저 지어지고 국문 가사는 나중에 지어졌다는 사실도 지적되어 있다. "연산군의 언문 금압에 대한 삽의"(「진단학보) 24,1962)는 연산군이 신문자 훈민정음을 박해한 최대의 반역자라는 종전의 견해에 회의를 품고 이를 시정하는 뜻에서 쓰여진 것이다. 연산군의 언문 금압이 국문 보급을 위축시킨 것이 아니며 그것이 지연된 원인은 훈민정음 제정 당시의 유학자들의 반대와 결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3편의 논문 전부가 종래의 잘못된 견해를 수정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끝에는 1945년 이후의 훈민정음 관계의 주요 참고 문헌이 정리되어 있고 훈민정음 원본이 영인되어 있다. 영인 상태가 깨끗지 못한 점이 아쉽다. 예의의 첫 두 장은 보사시의 잘못으로 틀린 데가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안병희, 訓民正音解例本의 復元에 대하여, 「국어학 신연구」1986). 이런 점을 종합하여 보다 완전한 자료를 붙일 것을 요망한다.
    저자 강신항 교수는 처음부터 훈민정음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국어학사 연구에 전념하여 이 방면에서는 거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해 왔다. 「국어학사」(개정판, 1979)는 저자의 연구 결과가 체계화된 것이며「운해훈민정음 연구」(1967), 「사성통해 연구」(1973), 「이조 시대의 역학자와 역학 정책」(1978) 등도 저자의 집념 어린 국어학사 관계의 무게 있는 업적이다. 한마디로 저자의 「훈민정음연구」는 30년에 걸친 조선조 국어학사 내지 중국 운학 관계의 업적이 기초가 되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이 저서에는 지금까지의 이 방면에 대한 학계의 성과가 무리 없이 종합되어 있다. 해례본 발견 이후 훈민정음에 관한 업적이 많이 나왔지만 이 저술만큼 깊이 있고 객관적으로 연구된 것이 달리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훈민정음 연구의 표준 저술로서 누구든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가치가 오래 유지되리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