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의태어 표현의 묘미

李 勳 鍾 / 전 건국대 교수, 고전 문학

어떤 영감님이 귀가 먹어 아주 절벽이 되었다. 농악대의 꽹과리를 뚜드려 대는 것 같다는 그 요란한 당나귀 영각(1) 소리를 못 알아듣고
    "저 당나귀가 왜 자꾸 하품을 하노?"
하였을 정도니 알 만 하다.
    한번은 무슨 일로 마음에 왔다 가는데, 한 청년이 인사를 했다.
    "잘 가거라."
    "요 못된 녀석 같으니! 늙은이더러 잘 가거라가 뭐야? 고연 놈."
    "제가「안녕히 가십시오」했지, 언제「잘 가거라」했어요?"
    "욘석!「안녕히 가십시오」하면 말끝에 입이 오므라들어. 너 인사할 땐 입이 벌어졌어, 해라를 해 놓고 나쁜 녀석 같으니."
    아마도 인류 최초의 말은 부르짖음이었을 것이다. 어떤 여자 유학생이 고국 친구가 찾아와 반가워서 서로 얼싸안고 "어마 어마"해 댔더니, 같은 반의 그 나라 학생이 한국말 사전을 찾아보고 놀라더란다.
    "그 단어는 여기도 없는데, 너희는 어떻게 사전에도 없는 말을 그렇게 쓰니?"
    굵은 몽둥이로 궁둥이를 한 대 얻어맞았다면 가냘픈 여자라도 "어이쿠!"할 것이고, 바늘 끝에 찔렸다면 체구 큰 사나이라도 "아야"하며 옥타브 높은 소리를 칠 것이다.
    바다 한복판에서 문어라는 놈이 길고 치렁치렁한 발을 허우적거리며 떠서 노는데, 요건 손마디만 밖에 안한 멸치가 그 번들번들한 대머리 대갈통 ― 사실은 내장 주머니지만 ― 위에 올라앉아 거드름을 뺐다.
    "요런 쬐끄만 놈이 어른 투상에 올라앉아 가지고, 발칙한 놈 같으니...."
    그랬더니 멸치의 대답이 깜찍하다.
    "나 요래 봬도 뼈 있는 가문이다. 네가 아무리 커다래 봤자 임마 너는 무골충이야."
    「커다랗다」에서는 입을 한껏 벌린다. 그런데「조그맣다」할 적에는 입이 오므라든다.「넓다」「좁다」도 매한가지다. 이건 외국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어―한문―에서 큰 것은「따아(大)」적은 것은「쇼오(小)」다. 영어에서도 큰 것은 large고 작은 것은 small이고.......
    한자에서 ᄅ,ᄀ,ᄇ받침 가진 자는 입성(入聲)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현대 중국어에서는 그 구분이 없어졌다. 그래 그 곳 학생들하고 글자 가운데 입성자 골라내기를 하면, 한국 사람이 비교도 안되게 빠르다. 그 입성의 특징을 학술적으로는 촉이급(促而急)이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입성자에는 긴 발음을 가진 글자가 없다.
    입성자(入聲字)에 긴 발음이 없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窟이 있지 않으냐"고 반문해 왔다. 그래서 나는「ᄀ( )ᄅ」을 칠판에 크게 쓰고 ( )안에 여러 모음자를 써넣어 보였다. 갈-갈피-가리····길. '굴'은 그 중의 하나지 한자의 차용(借用)은 아니다. 그런데 좁고 막힌 것을 나타내는 자는 모조리 여기 들어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狹窄 縮約 沒入 掘鑿 促急......
    친구 하나는「발칙한 녀석」이라는 꾸지람을 어른들께 곧잘 들었다.「발칙」의 본래 모습은「불측―不測」이라,「빌어먹을 놈」이라는 욕을 몹시 얕잡아서「배라먹을 놈」이라 하는 것처럼 모음이 변한 것이다.
    일본서 공부한 선배가 광복 직후 미군 부대에 영어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잣도 이즈 아 만'하는 일본식 발음이라 통화를 끝내고 나더니 그런다.
    "마지막 인사로 저쪽에서 '게부리 짭짭' 그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 뒤 미군 통역 다니던 이에게 물었더니, 인디안 말로 "밥 먹어라~밥이나 처먹어라"하는 놀림말이라는 것이다. 발음이 하 우스꽝스러우니까 한마디 던진 것이다. 여기「짭짭」은「쩝쩝」과 함께 한때 널리 유행하였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정인지(鄭隣趾) 후서(後序)에 보면 고인이 소리를 바탕으로 해 글자를 정했다―古人因聲制字―고 하였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보다 늦게 깨었으면서 글자를 먼저 갖게 된 점에 대해서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전(字典)의 음(音) 색인(索引)을 보면 한자음이 모두 해야 480밖에 안 된다. 일본의 발음은 46자면 족하다. 그러니까 한자의 귀퉁이를 떼거나 초서자(草書字)를 빌어 써도 충분하였던 것이다.
    거기 비한다면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세상에 못하는 발음이 없어 놓으니, 이 다양한 발음을 무엇으로 표현한단 말인가? 중국어에서는 초성(初聲)과 중종성(中終聲)을 성(聲)과 운(韻)으로 구분해 두 syllable로 갈라도 되는데, 우리말에서는 어림도 없다. 그래 초··종(初中終)의 세 syllable로 갈라 글자를 지어 맞추고 스스로 자랑하였다.

"비록 바람소리 두루미 울음·닭 울고 개 짖는 소리라 할지라도 모두 써 낼 수 있다. 雖風聲鶴唳·鷄鳴狗吠·皆可得而書矣."

1930年代 이 땅에 농촌 계몽 운동이 크게 일었을 때 , 신문사에서는 여기 사용되는 교재를 무료로 내어 주었다. 필자도 그것으로 학교 못 간 소녀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그 마지막 졸업 논문이라고 할 받아쓰기 문제는 대충 이런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 쓸 수 있으면 한글을 깨친 것으로 쳐주었던 것이다.

"개똥 할아버지가 장에 가서 술을 먹고 와 주정을 하는데 아주 야단스럽습니다. 놋그릇은 왱그렁댕그렁, 독개 그릇은 와지끈뚝딱, 검둥이는 멍멍, 수탉은 꼬꼬, 암탉은 꼬꼬댁, 할머니는 애고대고......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붙잡고 말려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래 이걸 놓고 생각해 본다. 한자나 일본 글자로 이런 발음을 옮겨 쓸수 있을 것인가?
    물론 한자어에도 의태어 의성어는 많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첩어(疊語)로 기록되는 것도 같다. 「쟁쟁」하는 소리가 쇳소리일 때는 錚錚, 옥에서 났을 때는 琤琤, 아롱아롱할 때는 斑斑, 반짝반짝하는 것은 爛爛, 이런 것은 운(韻)을 같이 하는 첩운(疊韻)이다.
    여기 동원된 쇠금변-金, 구슬옥변-玉, 불화변-火은 일종의 분류 기호다. 청-靑이란 발음은 맑다는 뜻인데, 일상생활에서는 그 발음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글로 썼을 때 靑 하나 가지고는 충분치 못하다. 그래 淸.晴.精.情.請.靖.菁.靜들 분류 기호를 얹어서 많은 글자를 파생시켰다. 그 결과 발음 수가 적기 때문에 무수한 글자-기실은 단어-를 써야 했고, 우리는 무수한 발음을 가졌기 때문에 적은 글자를 만들어 충용(充用)해도 됐던 것이다.
    한번은 고향엘 다니러 가 친구네 사랑에서 이슥토록 얘기를 나누는데 뜻하지 않은 친구가 찾아 들었다.
    "마침 지나려니까 뎅걸뎅걸 얘기 소리가 나기에 들렸오."
    "뎅걸뎅걸?"
    얘기 소리 표현에는 종류도 많다. 지껄지껄.재깔재깔, 두런두런.도란도란.......
    그런데 「짓」이란 말의 받침을 세게 붙이면 「질」이 되고, 더 세게 힘을 주면 「지랄」이 된다. 그러니까 「지랄」이란 「짓」의 너무한 것이다. 한편 「짓」을 나쁘게 말할 때는 「짓거리」라고 한다. "왜 그따위 「짓거리」를 하고 다니느냐?"하는 식이다.
    한편 욕하는 것을 「욕지거리」라 하고, 일부 지방에선 「나무래 줬다」는 것을 「지껄여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껄지껄」한다는 계통은 좋은 말이 못된다. 아무리「재깔재깔」작은 소리로 해도, 그건 싸우고 따지는 계통의 대화다.
    「두런두런」의 본래 모습은 「둘레다」이다. 「둘렌다」는 말은 큰일났다고 허둥대는 말투다. 물론「도란도란」은 ㄹ발음 구르는 맛이 평화감이 감돌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두런두런」의 계통이어서 밤중에 일어나 「술렁이는」기분이 들어 온당한 말이 못된다. 「술렁술렁」도 피난을 앞두고 불안하여 술렁이던 일이 회상돼 아무래도 좋은 표현이 못된다. 고장에 따라 「두세두세한다」는 말이 있으나 이것도 「두런두런」과 같은 어감의 말임을 어쩌랴?
    역시 외국어 바람도, 또 한자 교양도 거의 없는, 이 촌로(村老)의 표현은 아주 적절하였다는 기분이 든다.
    「처신」이 「채신」으로 변했다면 아주 미덥지 못한 몸가짐인데, 「채신머리」없는 사람을 표현한 말이 있다.
    "쫄랑하면 한잔 주.
    바삭하면 한대 주.
    딸랑하면 한닢 주.
    쩍하면 한점 주."......
    술병을 흔들거나 담배 부스럭거리는 소리, 엽전 셀 때 나는 소리, 고기를 씹으며 쩍쩍하는 것을 잽싸게 듣고, 그때마다 하나 달라는 행동을 말한다.
    언성을 높여서 한바탕 욕해 주는 것을 충청도에서는 「왈긴다」고 하는데 아주 실감나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것은 「왈자-曰者」하고도 일맥이 통한다. 「왈자가 망해도 왼라리길 하나는 남는다」 했듯이, 그들도 폭력은 썼다. 그러나 역시 기세 좋은 언변으로 안될 일도 되도록 「왈겨 붙일 때」 제 맛이 난다.
    오늘날 「왈자」 비슷한 것에 「깡패」라는 것이 있고, 「깡」은 자주성(自主性) 내지 「반항심」이라는 뜻으로 군대에서 흔히 쓴다.
    "곰자식 제법 「깡」이 세다."
    우리네 가정에서도 부갑(2)에 잡혀 술이나 사는 그런 스라소니(3)를 보고 「요 깡아리 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쓰기는 한다. 그러나 깡패랬을 때는 정의감(正義感)이랄까 협기(俠氣)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어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광복 직후 중학생에게 「뉘엿뉘엿」이란 말을 넣어 단어를 지으라고 했더니 엉뚱한 답이 나왔다. "중국집 앞을 지나가면 속이 뉘엿뉘엿하다."
    왜정의 말살 정책에 걸려들어 말을 빼앗겨 놓았으니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메식메식」이란 말을 일러 주고 「메시껍다」는 표현으로 이끌어 주었는데, 그 학생도 이제 환갑이 가깝다.
    方榮雄이란 작가의 糞體記를 읽었는데, 그야말로 「구수텁텁」한 「토장국」(4) 냄새나는 표현이 쑬쑬히도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도 여름 저녁 뒤꼍에서 실성(失性)해 돌아다니는 여자를 미역감기는 대목에 「끼들끼들」이라는 말을 썼다. 웃으며 시시덕거리며 하는 행동의 표현으로 도회지 사람은 잊은 지 오랜 말이다.
    웃는 것을 가지고, 코미디언 모씨가 「가갈갈갈」하는 말을 했다가 문제된 일도 있지만, 「가」자 줄에서 포개면 무던히도 많은데, 숨어서 웃는 데서 「낄낄거리다」가, 숨을 죽여 웃을 때는 「킬킬거리다」가 된다.
    오래된 얘기다. 주말에 산엘 다녀오는데, 한 잔씩 한 친구들이 찻간에서 노래를 돌려가며 한다. 그런데 일행 중에서 누가 「피시이」하니까 뚝 그친다. 그러더니 그 친구가 이어서 하는데 또 하나가 「피시이」해서 노래를 막는다. 그제사 여겨보니 노면 전차 승무원들끼리의 모임이었다. 전차「에어브레이크」의 정지 신호를 흉내낸 것이다. 그야말로 김빠지는 소리다. 소리 없는 방귀가 구리다는 식으로 의미 심장한 웃음이 「피식」하는 웃음이다.
    별 볼일 없는데, 「기웃기웃」하고 다녀서는 안되지만, 그것을 「기웃기웃거린다」라고 하는 청소년층이 있어서 문제다. 그럴 때는 그냥 「기웃거리다」로 족한데 말이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으면 「기우뚱」이 된다. 「덥적덥적하다」가 「덥적거리다」가 되듯, 많은 데에 적용되는 원칙이니 유의할 일이다.
    글방 시절 글자 수수께끼는 흥미 있는 일이었다.
    "돌담 무너지는 자가 무슨 자냐?"
    손바닥에다 돌 석(石)자를 써서 다른 자를 보태 보며 제각기 찾노라 애썼더니,
    문제 낸 이가 「씨익」 웃으며 써 보인다.
    "오를 우(右)-「오루루」소리를 내며 무너지니까......."
    아랫목의 선생님이 재담(才談)을 들려 주신다.
    樓上鼠樓樓-다락 위에서 쥐가 다락다락한다.
    누가 짝을 채워 보라는 얘기다. 마침 놀러 왔던 노인이 귀를 달았다.
    石上轉石石石石-돌 위에 돌을 굴리니 돌돌돌한다.
    "솔개는 비우하고 토끼 귀는 발족하고 가마귀는 각각각 하는 자는 무슨 자냐?"
    글방 적에 들은 수수께끼다. 비우-雨, 발족-足, 각각각-各 합하면 이슬로-露자가 된다.
    중학교 때 교재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풍취엽팔푼(風吹葉八分)이요 조비지이월(鳥飛枝二月)이라, 바람이 불어 잎이 너푼너푼하니까 합하여 8푼이고, 새가 날자 가지가 한달한달하니까 합해서 두 달 -二月이다.
    "따끔이 밑에 빤빤이, 밑에 떨떨이, 떨떨이 밑에 아드득이 뭐냐?"
    이 역시 수수께끼인데 사람 놀린다고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 선인들은 우리 것을 아끼고 즐기면서 살았으니까....... 답은 밤이다. 밤송이의 가시서부터 차례로 까 들어가는 순서를 말한 것이다.
    요새 부녀자들 용어를 보니까 재미있는 것이 많다. 금속성의 섬유를 넣어서 짠 옷감이 뻔드기, 양말 위로 덧신도록 쪼골쪼골하게 짠 양말은 쫄쫄이, 살에 붙지 않게 짠 천은 깔깔이....... 그 이름지은 감각이 참으로 뛰어나다.
    아직도 촌에 가면 들을 수 있는 말에 「곰배염배」 아니면 「곰배렴배」라는 말이 있다. 쥐가 쥐꼬리를 물고 쥐가 쥐꼬리를 물 듯, 연달아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어서 장가들라고 아버지 편지가 「곰배염배」날아오는 거여 글쎄."
    이런 유의 말은 활용을 않는다. 그래서 「곰배염배거린다」라고 틀리게 말할까 보아 걱정 안 해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