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어문 소식]
소련의 언어 사용 실태와 그 어문 정책

강덕수 / 한국 외대 교수, 슬라브 어학

다민족 국가인 소련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는 모두 13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민족어들은 대부분 제정 러시아 치하에서는 적당한 문자 기반을 갖지 못하는 구어로서 방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어적 민족어들의 방치는 러시아 사회 전체의 유기적 발전을 저해하는 전근대적 요소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소련은 혁명 후 사회 전체의 문화적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하여 체계적 언어 정책의 수립이 시급하여 졌다.
    먼저 소련은 언어 정책의 대원칙으로서 모든 민족어의 평등성을 헌법에 명시하였다. 다민족 국가의 언어 정책의 주춧돌로서 예외 없는 모든 민족어의 평등 원칙을 수립함으로써 언어 문제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마찰이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실제로 동슬라브 어 가운데 하나인 우크라이나 어와 벨로러시아 어가 러시아 어와 동등한 민족어로서 공식 인정된 것은 각각 1906년, 1917년에 이르러서였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어를 비롯하여 각 연방 공화국의 다수 민족어들, 예를 들어 카자흐 어(카자흐 공화국), 키르기스 어(키르기스 공화국), 몰다비아 어(몰다비아 공화국)등도 해당 연방 공화국의 공용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1920년대에 소련 정부는 소수 민족어들의 문화적 역량을 향상시키고 문맹률을 감소시키기 위한 실천적 방안으로서 첫째, 민족어를 사용하는 신문, 학교, 극장, 클럽 및 문화 교육 기관을 발전시키고 둘째, 민족어를 사용하는 학교와 직업 훈련 과정을 설치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언어 건설' 개념을 도입하여 적당한 문자 기반을 가지지 못한 민족어들의 미래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문자 형태를 창조하였다. 문자 창조와 관련된 언어 건설은 3단계로 추진되었다. 첫 번째는 민족어가 기존의 알파벳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알파벳의 체계를 향상시키는 단계였다. 두 번째는 알파벳이 없는 언어에 문자 체계를 만들어 주고, 배우기 어려운 고대 알파벳을 라틴 문자로 전환시키는 단계였다. 세 번째는 마지막 단계로서 러시아 어의 문자 체계와 같은 키릴 알파벳으로 바꾸어 주는 단계였다.
    러시아 혁명 전의 문자들은 민족어의 다양성만큼 갖가지였다. 소수 민족어들 가운데 기독교를 신봉하는 일부 민족들은 러시아 어와 같은 키릴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모르드바 어(볼가 어계), 오세트 어(이란 어계), 추바슈 어(터키 어파), 코미 어, 우드무르트 어(보타크 어)(페름 어계), 야쿠트 어(터키 어계) 등. 그러나 발트 연안의 에스토니아 어, 라트비아 어, 리투아니아 어는 라틴 문자를 가졌다. 알타이 어족의 부랴트 어, 칼무크 어를 쓰는 라마교도들의 문자는 고대 위구르-몽골 문자였다. 중앙 아시아나 코카서스 지방에 퍼져있던 모슬렘교도들은 아랍 문자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자들은 주로 종교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으므로 기본적인 책과 2~3권의 교회 서적들밖에는 생산해 내지 못하였다. 문맹률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쉽고, 간편한 문자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제2단계로서 1920년대 소수 민족어들의 라틴 문자화가 추진되었다. 1922년 아제르바이잔에서 처음 시작된 라틴 문자화 시책은 새로운 알파벳 창조를 위한 과도기적인 정책이었다. 혁명 후 러시아 연방 주도의 소련에서 민족어들의 문자 체계를 개선하거나 창조하는 과정에서 바로 키릴 문자화시키지 않고 라틴 문자화한 데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혁명 직후 러시아 어와 같은 키릴 문자로 모든 민족어들의 문자를 바꾸면 제정 러시아 시대의 러시아화 정책으로의 귀환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키릴 문자화로서의 전환에는 소수 민족 간의 민족적 갈등이나 오해를 해소할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거의 모든 민족어에서 라틴 문자화가 추진되었다. 중앙 아시아의 최대 사용 인구를 갖고 있으며, 소련에서 세 번째인 우즈베크 어도 아랍 문자를 버리고 1927~40년 사이에 라틴 문자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라틴 문자화 정책은 반시대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라틴 문자가 「세계 공산주의 사회의 알파벳」이 될 것을 기대했지만, 이미 키릴 문자를 채택한 소수 민족들이 상당히 있었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러시아 어를 민족어와 함께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키릴 문자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 외에 다민족 국가에서 러시아 어의 역량이 공용어로 증대됨으로써 키릴 문자의 영향력도 커졌다. 따라서 1930년대 말부터 키릴 문자로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키릴 문자로 바꾼 최초의 소수 민족어는 1936년 카바르디 어(이베로-코카서스 어족)이었다. 이어서 1937년~1940년 사이 중앙 아시아, 볼가 지역, 다게스탄 지역의 언어들과 아제르바이잔 어에서 키릴 문자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현재 소련은 이중어 또는 다중어 체계 사회를 이루면서, 비러시아 어 사회에서 러시아어를 공용어 또는 제2모국어로 인정하고 있다. 러시아 어가 전 소련 사회의 국가적 공용어가 된 이유는 소련에서 가장 많은 사용 인구(1979년 통계 연감에 의하면 약 56%)가 모국어로 러시아 어를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연방 공화국이 소련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 어는 방언적 측면에서 남부, 중부, 북부의 세 가지 방언을 갖고 있으나, 큰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이 원활한 동질적, 단일체적 언어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어가 공용어로 채택되는데 무리가 있었던 점도 중요한 이유였다.
    소련은 이중 언어 또는 다중 언어 사회 체제로서 사회학적으로 제2모국어의 역할이 아주 중요시되고 있다. 보통 비러시아 어 사회에서 제2모국어라 함은 러시아 어를 지칭하게 된다. 중앙 아시아의 한인 교포들도 거의 모두 다중 언어 사용자들로서 한국어 외에 그 지역 공용어인 우즈베크 어나 카자흐 어를 러시아 어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