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기는 데에 따르는 문제와 그 해결책

김윤학 / 건국대 교수, 국어학

1. 머 리 말
    우리 겨레에게는 이 땅에 정착한 이래, 말은 있으면서 글자가 없어, 이웃한 중국에서 오래 전부터 한자를 빌어 써왔다.(1) 처음에는 사람이나 땅이름 따위를 赫居世, 推火와 같이 뜻을 빌어 쓰기도 했고, 浮去隱과 같이 뜻과 소리를 빌어 우리말을 쓰기도 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말을 한자를 빌어 표기해 보려 애썼지만, 한자는 원래 중국 말을 표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글자이기 때문에 중국 말과 체계가 다른 우리말을 표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듯하다.(2) 그리하여 차츰 우리말을 중국식으로 표기하게 되니, 토박이말은 점점 죽어가고 한자 말은 생명력을 얻어 늘어갔던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다음에도 이를 우리 글자로 기록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여 토박이말은 계속 죽어갔다.(3)

새→東 하→西 마→南 온→百 즈믄→千 골→萬 잘→億 노→兆

조선 초기만 해도 한자 말과 토박이말의 비율이 35:65 정도(용비어천가)이던 것이(4) 오늘날에 와서는 이것이 정반대로 바뀌어 한자 말과 토박이말의 비율이 70:30 정도가 되었다.(5)
    이러한 시점에서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바꿔 쓰는 문제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는 것은 뜻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2.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겼을 때 일어나는 문제들
    토박이말이 역사적으로 한자 말에 밀려난 근본적인 까닭은 토박이말을 밑보고 한자말을 윗보는 우리 조상님네들의 사고 구조에 있었다. 그러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자말이 토박이말을 밀어낸 몇 가지 까닭이 있다.

(1)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음절 수가 적다.
고미→첩 손도으리→조수 기→여명 간나→소녀
(2)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의 형태소이기 때문에 서로 복합해서 낱말 만들기가 쉽다.
산간, 산골, 산돼지, 산마루, 산등성이, 산삼, 산신, 산장, 고산, 명산......
(3) 한자 말을 한글로 쓰면 동음이의어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한자를 쓰면 동음이형어를 많이 만들어 쓸 수 있다.
각색;各色 개인個人 보고報告 동요童謠 거부巨富
脚色 改印 寶庫 動搖 拒否
(4) 한자 말은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나는 말―학술어 따위―로 쓰기에 적합하다.
철학, 심리학, 경제학, 언어학
(5) 이름씨뿐만 아니라 통사적 구성―움직씨+목적어, 임자씨+서술어, 어찌씨+서술어―으로 짜여진 낱말들까지도 '―하다'를 붙여 풀이씨로 쓸 수 있는 편리한 점이 있다.(6)
명상하다, 거부하다, 보조하다, 선량하다, 공부하다
(6)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고상하고 우아하다.
비료:거름, 부친:아버지, 자당:남의 어머니, 대변:똥, 소변:오줌
(7) 어려서부터 한자·한문을 교육하여 한문식으로 생각하고 한자로 써야 한다는 사고 구조를 갖게 되어 한자 말을 많이 만들어 내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자 말이 토박이말을 밀어내 왔고, 지금도 밀어내고 있는 까닭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까닭은 곧,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겨 썼을 때, 음절 수가 길어지며, 토박이말로 새 말을 만들기가 쉽지 않고,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겨 놓으면 동음이의어가 많아질 것이며,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 특히 학술 용어를 나타내는 말을 만들어 쓰기가 어려울 것이고, 어휘 수가 줄어들어 말글살이가 위축될 뿐만 아니라, 말글살이가 고상하거나 우아하지 못하고 천박해지는 원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한자를 잘 모르게 되고, 우리 조상들이나 선배들의 전통적인 사고 구조를 이어가지 못하며, 문화의 계승 발전에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3.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겼을 때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
    우리 조상님네들은 일반적으로 한자 말을 윗보고 토박이말을 밑보았다. 약소 민족이고, 문화가 뒤진 민족으로서, 강하고 문화가 앞선 나라를 쫓아가려고 하는 사상은 과히 나무랄 것이 못 된다.
    오늘날에도, 문화가 높은 나라에서 문화가 낮은 나라로 문물이 들어가면서, 그 나라의 말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물은 자연적이며 물리적인 현상이지만 문화는 인위적이고 정신적인 창조물이다. 그런데 문화와 함께 따라 들어가는 말은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7) 그 나라말을 쓰는 사람들이 인위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을 조금만 한다면 이의 흐름을 어느 정도 막고 이에 맞갋는 자기 나라말로 번역하여 쓰거나 만들어 쓸 수 있다.
    우리 역사상에서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정신이 요구될 때마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웠다. 세종 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든 것도 민주적이고, 민족적이며, 자주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것이며, 개화기에 주시경을 비롯한 선각들이 언문일치를 주장하며 한글만 쓰기를 주장하고, 토박이말을 살려 쓰며, 새 말을 많이 만들어 쓴 것도 민족 자주 정신이 극도로 고취되던 때이었다.(8) 일제 때 우리말글을 지키려다 옥고를 치른 분들의 정신도 마찬가지였다. 1948년 한글 전용법이 국회에서 제정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지금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바꿔 쓰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도 다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요즘 한자 말보다 서양 말이 우리말글살이에 빠른 속도로 대량 침투하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자주적이고, 주체적이며, 민주적이고, 민족적인 정신의 자각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한자 말의 토박이말 되기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기본적인 자세를 가다듬는 밑바탕 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2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이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겼을 때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1)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꼭 음절 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우리말 안에 있는 한자 말 가운데 77% 이상이 이름씨라고 한다.(9) 대체로 외래 말은 이름씨가 들어오는 것이 예사이며, 이름씨가 아닌 낱말도 받아들일 때는 이름씨로 받아들이게 된다. 서양말 '칼라풀(colourful)'은 그림씨이지만 이를 이름씨처럼 받아들여 '칼라풀하다'는 말을 만들어 쓰는 것과 같다. 이렇게 들어온 한자 말이거나 여기에서 만든 한자 말이거나 한자 말은 2음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예사이다. 2음절로 만들어진 말이 많으므로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짧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말은 유연성이 짙은 말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유연성이 짙은 중국 말을 많이 들여오게 되는데, 이때 중국에서는 家, 屋, 面, 顔, 體, 身, 草, 木과 같이 1음절로 된 것은 우리말 어절 구조에 맞게, 家屋, 顔面, 身體, 草木과 같이 같은 뜻의 말을 겹친 겹말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10) 나아가서, 우리말의 1음절 말까지도 2음절로 길게 만들어낸 말들도 있다.
 
길→도로, 몸→신체, 집→가옥, 옷→의복, 값→가격

이름씨일 때도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음절 수가 많은 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름씨일 때는 한자 말이 짧다. 그러나 풀이씨일 때는 오히려 한자 말의 길이가 긴 것으로 보아 토박이말이 음절 수가 길어 불편하다는 말은 인정이 안 된다.

싸다→저렴하다, 보다→관전하다, 애쓰다→노력하다, 맡다→담당하다, 치다, 때리다→구타하다, 꾀다→유혹하다

어찌씨에도 한자 말이 긴 것이 있다.

꼭→기필코, 몰래→비밀리에, 빨리 →신속히

만약에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길이가 길다는 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요즘 토박이말보다 더 긴 서양 말이 엄청나게 많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은 설명할 길이 없다. point는 영어로는 한 음절인데 우리말 음절 구조에 맞게 3음절―포인트―로 들여왔다. 비록 한자 말이지만 우리말에 한 음절짜리 말 '점'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 '쪽'이라는 1음절짜리 말이 있는데 영어로는 1음절짜리인 page를 3음절인 '페이지'로 들여왔다.
    일반적으로 소리 말이 뜻 말보다 길다. 그러나 우리말은 소리 말이므로 소리 말로서의 길이를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같은 소리 말인 서양 말도 긴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긴 말이 왜 토박이말을 밀어내고 들어오는가? 이는 토박이말을 밑보고 부려쓰려 하지 않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겼을 때 예상되는 길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에 길이가 문제가 된다면, 요즘 낱말 만들기에서 합성어가 되는 경우에 가려 뽑기(acronym)의 경향이 나타나는데,(11) 이러한 방법을 원용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수어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12)

영재:영 재수없는 사람 청초하다:청승맞고 초라하다
각별하다:각자 별 볼일 없다 바보: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

다만 지면의 제약을 극심하게 받고 있는 신문에서는 고충이 있을 줄로 생각되나, 신문에서도 제정하는 정도에서나 문제가 될 것인데, 이때는 나름대로 신문 용어로서 약식 제목을 얼마든지 붙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나라 신문에서나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요즘 가게 이름이나 물건 이름, 책 이름 따위들이 오히려 길게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음절의 길이가 우리말글살이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13)

새갈씨(침대), 부드러운(초콜릿), 가위바위보(과자), 파란 마음(연필), 미투리(신발), 새로본(화장품), 별바라기(일기장), 고추잠자리(일기장), 너는 한 송이 꽃(일기장), 그리움이 살아서(시, 황송문), 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시, 김창완), 바람불어 좋은 날(경양식집) 해뜨는 집(옷가게)
 
(2) 한자 말만 낱말 만들기가 생산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의 형태소이기 때문에 서로 복합해서 또 다른 낱말을 아주 생산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자라고 해서 무조건 두 자 또는 세 자를 결합해서 새 말을 마구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토박이말도 유연성이 짙은 말이기 때문에, 맞춤법 표기가 형태소를 밝혀 적기로 되어 있어, 낱말 만들기가 생산적이다. 우리말의 낱말 만들기에는 파생법, 합성법, 파생법과 합성법의 겹침으로 이루어진 낱말 만들기가 무궁무진하게 생산적이다.
 
나무겉, 나무굼벙이, 나무귀신, 나무그릇, 나무깽이, 나무껍질, 나무꾼......
덧거리, 덧거리질, 덧거칠다, 덧걸리다, 덧게비, 덧게비치다, 덧구두, 덧깔다......
또 낱말 만들기의 방법이 다양하다.
    일반어에서(14)

파생법:한고비, 선무당, 장사꾼, 낚시질, 삐죽이, 갈이, 맏이, 선무당질
합성법:구름다리, 밀물, 푸석돌, 보슬비, 서로치기, 마른고기, 장국밥, 닭의 어리, 솜틀집, 놀림감, 속썩은풀, 도둑놈의 지팡이
파생법과 합성법의 겹침:선머슴아이, 목걸이, 도둑놈들, 못난이, 놀림가마리, 씀씀이
땅 이름에서 (15)

파생법:덧밭, 들머리, 한논
합성법:두뭇골, 물미, 윗말, 윗뜸, 넓티, 둥글바위, 가는골, 검은여, 벌원틀, 세집땀, 삐죽바위밭, 왯재, 안넓티, 안새원, 개안벌들, 머리얹은바위, 긴밭말, 진사래밭
파생법과 합성법의 겹침:개떡배미, 쿵쿵쟁이고개, 바우배기, 똘감나무재, 한섬지기틀, 놀이터바위, 달맞이고개

토박이말에 생산적인 면이 더 많다. 한자 말의 앞가지 '비(非)'나 뒷가지'―적'은 한자 말에만 붙지만 토박이말의 '―스럽다, ―롭다, ―님' 따위는 계통에 구별 없이 붙어 생산적이다.(16)

바보스럽다, 밉살스럽다, 어른스럽다, 자연스럽다
새롭다, 괴롭다, 평화롭다, 한가롭다
해님, 달님, 도련님, 선생님, 과장님, 총장님
심적(심적), *마음적, 비생산적, 비경제적, 비무장, *비생산, *비경제, *비무장적

어찌씨를 만드는 뒷가지'―히'도 토박이말, 한자 말 가리지 않고 모두 붙을 수 있어 생산적이다.

나란히, 극히, 정숙히, 조용히, 솔직히, 명백히......

나라말마다 생산적인 낱말 만들기는 얼마든지 있다. 한자 말만 생산적인 낱말 만들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3)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겨 쓰면 동음이형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토박이말로 바꾸기 어려운 것은 다른 말로 바꿀 수 있다. (17)
거부 巨富: 큰부자 선량 選良:  
拒否:   善良: 착하다, 어질다
동요 童謠:   보조 補助: 도와 주다
動搖: 흔들림, 움직임 步調: 걸음 속도
사교 邪敎:   독자 讀者:  
社交: 사귀다, 사귐 獨子: 외아들

한자 말을 한자로 쓰면 동음이형어를 많이 만들어 내어 말글살이가 풍부해지는 면이 없지 않다. 입말과 글말을 달리해서 옛날에 두겹 말살이를 했을 때는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입말과 글말이 일치하는 말글 일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점점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만 쓰는 시대에 있어서는 동음이의어를 동음이형어로 구별할 수 있는 시대와는 달라졌기 때문에, 동음이형어는 동음이의어가 되고 말았다. 동음이형어나 동음이의어가 있을 때에는 한 쪽을 토박이말이나 다른 말로 바꿈으로써, 말글살이를 편리하게 해 준다. 그러나 토박이말로 바꿀 때에는 단순히 낱말 단위에서의 맞옮김만이 아니라 문장에서 쓰일 때까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꼭 한 가지로만 맞옮길 수 없는 낱말들이 많이 있게 된다. 그러나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문맥에서의 문제가 되므로 그리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맞옮겨 쓸 수 있다.

학생들의 동요(動搖)가 있다. →학생들의 움직임이 있다
기차가 심하게 동요한다→기차가 심하게 흔들린다
내 마음이 동요하고 있다→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4) 한자 말만 학술어 따위의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인 것은 아니다.
    '심리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말만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학문적 용어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哲學'으로 자꾸 표기하려고 하는 데서 낱자의 뜻에 얽매어 원래 그 낱말에 부여되어 있는 개념을 흐리게 할 염려가 있다. '명석할 철'과 '배울 학'이라는 한자의 낱자의 뜻을 알고 있다고 해서 철학의 개념을 알 수는 없다.
    언어에는 자의성이 있어서 처음에 어떤 소리(시니피앙)에 어떤 뜻(시니피에)를 결합시키느냐에 따라서 소리―뜻이 연결되는 것이다. '사람'에 뜻이 없으며, '말'에 뜻이 없는가? 요즘에는 언어학에서도 토박이말로 용어를 많이 만들어 이에 뜻매김을 하여 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18)
 
갈이소리, 부려 쓰인 말, 갈무리된 말, 매김마디, 머리소리 되기
 
이제까지 한자 말이라야 학술 용어가 되고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주로 한자 말로 써 왔고 최근에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 새로운 학문이 들어올 때, 그들이 쓰던 말을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써 온 버릇이 너무 뿌리가 깊어 그 나름대로 사회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토박이말로 그 개념에 맞갋는 용어를 우리도 만들어 쓸 수 있으며, 기왕에 한자말로 되어 있는 말들도 어려운 용어들은 쉬운 토박이말로 될 수 있는 대로 맞옮겨 쓰면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요즘은 아예 서양에서 들어오는 용어들을 번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양 말로 써 버릇하는 것으로도 한자 말만이 추상적인 용어의 개념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그릇되다는 것이 증명된다.(19)
 
(5) 한자 말에 '-하다'를 붙여서, 새 말을 많이 만들어 쓸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나 얼마든지 다양하고 풍부하게 토박이말로 맞옮겨 쓸 수 있다. 이때는 낱말의 길이도 짧아져 경제적이기도 하다.
 
선량하다→착하다, 보조하다→돕다·도와 주다, 진입하다→들어가다, 주지하다→두루 알다, 체류하다→머무르다, 노력하다→애쓰다, 관전하다→보다, 투석하다→돌 던지다
 
오히려 한자 말을 쓰려다가 올바르지 못한 문장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투석 당하다→돌에 맞다 요금을 투입하다→요금을 넣다
하늘로 승천하다→하늘로 올라가다 이름을 거명하다→이름을 들다
 
(6)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고상하고 우아한 것은 아니다.
    한자 말이 토박이말보다 고상하고 우아하다는 생각은 현학적인 심리와 토박이말을 밑보는 사고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20) 이러한 사고 구조는 우리 조상들의 지배층이 두겹 말글살이―입말과 글말-를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리하여 대체로 같은 뜻의 말이 함께 쓰였을 때 한자말은 점잖고 격식이 있는 말이 되고, 높이는 뜻의 말이 되기에 이른 것도 있다.

 
늙은이―노인, 계집―부인·여자, 나이―연세·연령, 아버지―부진·엄친, 남의 아버지―춘부장
 
그러나 이와 같은 말씨의 갈음 현상은 말씨의 두겹살이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의 계층을 둘로 나누어 버렸다. 양반층·지배층은 한자 말을, 상민·평민층은 토박이말을 쓰는 말의 층이, 곧 사회의 계층을 형성했던 것이다.(21) 이러한 현상은 땅 이름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22)
 
큰말>대촌, 샛말>간촌, 윗말>상촌, 긴발말>장전촌, 대섬>죽도, 뒤깬>후포(23), 물미>수산, 뱀골>사동, 차돌배기>백석, 말모시>두천, 버들미>양산리, 누를미>황산리, 궝말>구억촌, 절골>사곡(24)
 
행정 관서의 기록이나 글을 꽤 아는 사람들은 한자 말로 말하고 쓰지만, 현지 주민들은 토박이말을 쓰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런데 요즘에도 정부에서는 거꾸로 토박이말을 한자 말로 바꿔 가고 있다.(25)
 
버들골>유등(柳等), 가래올>추동(楸洞), 된골>직동(直洞)
 
요즘에도 배운 사람은 한자 말이나 서양 말을 많이 쓰려고 하여 새로운 사회 계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현상을 그대로 두고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같은 국민이면 모두 말하고 듣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박이말이 그 말글살이의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7) 어려서부터 한자·한문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사고 구조를 한문식으로 하게 되어, 우리의 사고 구조를 망치게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국민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학교가 더러 있다.(26) 그리고 한자를 한 자라도 더 익히게 하려고 일기에도 한자를 많이 섞어 쓰게 하는데, 한 어린이의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우리 家에서는 개를 기른다.
 
'집'가 자를 배웠기 때문에 이를 익히려고 '집'이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에 '家'를 넣은 것이다. 이 아이로서는 아주 잘한 것이다. 그러나 한자는 뜻 글자로서 독립적으로 뜻을 지니고 있지마는 언어 형식으로서는 구속형식인 것이 많기 때문에 문장에서 쓰일 때에는 독립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말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나라말이 똑같은 개념으로 늘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른 나라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가장 가까운 낱말을 고르기도 하고, 때로는 문장 전체의 흐름과 뜻에 맞게 아주 엉뚱한 말이나 표현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는 나라말마다 낱말밭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27) 그러므로 번역은 모방이 아니오, 단순한 번역이 아니며, 창작이라고까지 한다.
    '앞'과 '전'(前)은 버스 정류장 하나 차이의 뜻을 지니고 있다. 버스 안내양에게 "건국대 앞에서 내려 주세요" 하면 우리 학교 앞에서 내려 주지만, "건국대 전에서 내려 주세요" 하면 화양리(건국대 앞 전 정거장)에서 내려 준다. '산'도 '뫼, 메, 미'와 똑같지 않다.(28) '산'은 일반적으로 높고 낮은 산 구별 없이 나타내지만, 조그만 산에 마을이 들어선 산 이름은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굳어져 오늘날 쓰이고 있는데 이는 거의 '미, 메, 뫼'로 쓰이고 있어, 마을을 나타내는 땅 이름 형태소가 되었다.(29)

 
물미, 누를미, 버들미(경기도 평택군 현덕면), 토끼미(충북 중원군 엄정면)
 
말글 교육의 차례는 '듣기→말하기→쓰기→짖기'라고 한다. 이 교육을 차례를 밟아 잘 해야 한다. 아울러 문학 작품 따위 책들을 많이 읽혀 토박이말 어휘 수를 늘리는 교육도 어려서부터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며, 글을 쓰는 데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논리적인 문장들을 마음대로 잘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토박이말보다 한자 말을 더 즐겨 쓰려고 하는 까닭이 있다. 아주 분명한 것에 대해 저항하는 묘한 심리가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서양 말의 본뜻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 우리가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모듬살이―사회생활―에서 윗분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려는 마음과 비위를 맞추려는 심리가 작용하기도 하고, 윗분들이 아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젊은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까닭도 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사회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들로서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기만 하면 머지않아 해결되리라 믿는다.

4. 맺음말
    한자 말을 토박이말로 맞옮겨 쓰려는 노력은 제일 먼저 정신적인 자세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온 국민은 말··얼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는 정신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민족 주체성은 다른 곳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말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을 밑바탕으로 해야 진정한 우리의 문화를 계승, 발전, 창조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