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의 구조와 그 조어력

沈在箕 / 서울大 敎授, 國語學

1. 머리말
    이 글은 한자어의 구조와 한자의 조어력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한자어의 구조를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한자어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으므로 한자어의 구조 분석은 관점만 바꾸어 놓으면 한자의 조어력을 증명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업의 순서로 보아, 우리는 '한자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어 어휘 체계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를 먼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또 '한자어'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면 '한자(漢字)'가 무엇인지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1)
    한국어의 테두리 안에서 한자어가 누리는 자리의 중요성은 한국어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사항의 하나이다. 전체 한국어 어휘 가운데에서 한자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분야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어휘의 빈도 수에 있어서도 한자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고유어보다는 엄청나게 높기 때문이다.(2) 초기 이래 약 2000년) 동안 이웃하여 살아온 중국 민족과의 정치 문화 사회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교섭의 결과이다. 오늘날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중국과의 교섭을 배제하더라도 아무 불편 없이 진행되리라는 생각에서 한자어가 많게 된 과거 문화 유산을 거추장스러운 것 내지는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하루 빨리 한자어의 짓눌림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생각은 한국어의 어휘 체계 안에서 한자어의 비중을 될 수 있는 한, 줄여 보자는 것이다. 아마도 근자에 이르러 한자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와 같은 한자어 극복을 위한 방법의 모색과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언어가 지나간 문화의 모임, 쌓임, 맺힘이라고 한다면 우리 한국어의 어휘 자산 안에 한자어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요, 또 앞으로의 문화 활동이 한자어를 쓰지 않고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앞으로의 한국어 어휘 체계에서는 한자어의 위세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한자어에 대해 적대 감정을 갖거나 감소화 대책 같은 것에 마음 썩힐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한자어의 정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은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한자어 우세 현상은 지난 수천 년(정확하게 말한다면 삼국 시대

2. 한자와 한자어
    그러면 한자어란 무엇인가? 가장 평범하게 풀이해 본다면 <우리말 가운데에서 한자어로 적을 수 있는 모든 낱말>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몇 가지 단서 조항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첫째로 한자의 범위 문제이다. 한자는 일찍이 동북 아세아 전 지역에 걸쳐 공통으로 쓰이던 문자로서 한자가 만들어진 지역과 시대가 광범위하다. 어떤 글자는 오천 년 전에 생긴 것이고 또 어떤 글자는 비교적 근대에 생겼다.(3) 어떤 글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어떤 글자는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의 창안으로 생성되었다. 한자를 사용한 민족들은 한자가 중국에서 생성되던 방법 곧 六書(象形· 指事· 會意· 形聲· 轉注· 假借)의 방법을 이용하여 자기네들의 언어를 표기하는 새로운 한자들을 만들었다.(4) 그러므로 우리가 한자를 말할 때에는 어디에서 언제까지 만들어진 것들을 가리키느냐 하는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한국어 안에 있는 한자어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으므로 중국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 그리고 시대적 한계는 대체로 19세기 말까지로 제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로 한국에서 만든 한자라 할지라도 순수한 우리말 즉 고유어를 표기하려는 수단으로 만든 글자는 제외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鄕札이나 吏讀로 기록된 낱말을 한자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한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한자의 발음이나 뜻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이용하여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발음이나 뜻을 표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것이다. 앞의 것을 '바꾼 한자'라 한다면 뒤의 것을 '만든 한자'라 하겠다. 그러니까 바꾼 한자에는 '발음 바꾼 한자'와 '뜻 바꾼 한자'가 있다.(5) 이 가운데서 '뜻 바꾼 한자'로 표기한 한자어 이외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한자어에 포함시킬 수 없다.
    셋째로 한자는 원칙적으로 단음절로 읽힌다. 중국의 경우에는 그 발음이 그대로 그 글자가 나타내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 되겠지만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말에서는 그 나라 고유의 낱말이 있을 터이므로 그것이 한자의 수입 과정에서 이른바 한자의 뜻(또는 '새김'이라고도 함) 즉 字訓, 字義, 字釋이 되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를 이 새김으로도 읽었다. 그러나 그러한 관습은 조만간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일본에서는 아직도 字訓으로 한자를 읽는 습관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어떤 한자어는 반드시 字訓으로 읽어야 한다는 제한된 규칙까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관습이 일찍이 사라졌으므로 한자어를 그 뜻에 따라 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록 어떤 한자어가 우리 한국에서 충분히 이해되고 이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에서 字訓으로 읽히는 것이라면 우리의 한자어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한자어는 19세기 말까지 중국에서 생성된 한자를 가지고 중국, 한국, 일본에서 두루 통하도록 만든 어휘 항목으로 반드시 지정된 한자음으로 읽히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여기에 따로 한국에서 만 통하는 어휘 항목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한자가 한국어 체계 안에서 어떤 언어 단위에 속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아야 한다. 한자는 중국에서 중국어를 전반적으로 표기하기 위하여 생성·발달해 온 문자이다. 비록 단음절로 읽히고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어떤 언어이건 뜻만 중요하고 음은 중요하지 않으며 문법적 여러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언어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한자는 뜻 이외에, 단순한 발음이나 여러 가지 문법 기능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도 사용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한자 쓰임의 특성에는 일단 다음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1. 하나의 한자는 여러 개의 음(音)을 가질 수 있다.
2. 하나의 한자는 여러 개의 뜻(義)을 가질 수 있다.
3. 하나의 한자는 여러 가지 문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4. 따라서 하나의 한자는 특정한 문장 안에서 문법 기능에 따라 그 위치를 자유로이 바꿀 수 있다.

위의 네 가지 특성은 한자가 가질 수 있는, 가능한 특성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겠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자주 쓰이는 한자일수록 위의 네 가지 특성을 두루 구비하고 있다.(6)
    하나의 언어를 완벽하게 표현하려면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좋고 다만 소리만 묘사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소리 묘사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른바 會意나 形聲의 방법을 사용하여 만든 ¿(중얼거릴 술, 휘파람 술) 자라든가, 입 구 자 셋을 옆으로 나란히 모아 놓은 口口口(많은 소리 령, 시끄러울 령) 자 같은 것을 보면 정도의 문제일 뿐, 한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웃는 소리를 묘사하는 呵呵(가가), 哇哇(와와)라든지, 돼먹지 않은 소리를 나타내는 哃¿(동당)이나, 뜻밖의 일에 놀라 소리를 지르는 것을 표현하는 咄咄(돌돌) 같은 한자어를 보면 막연히 한자는 뜻글자라고 생각해 온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알게 된다.
    한자는 또한 말하는 대로 적는 言文一致의 白話文이 생기기 이전부터 文法的 機能을 나타내는 이른바 語助辭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焉 哉 乎 也 같은 한자는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러한 글자들도 단순한 語助辭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뜻이 있다.(7)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한자가 한국어 체계 안에서 어떤 언어 단위에 속하느냐 하는 물음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자 하나하나는 일괄하여 규정할 수 있는 어떤 언어 단위가 아니다. 대부분의 한자는 고대 중국에서 생성될 당시에 그 하나하나가 틀림없는 낱말이었고, 또 단음절로 읽혔다. 그러므로 쉽게 생각하여 낱낱의 한자는 語幹 形態素로 여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어 체계 속으로 들어오면 名詞는 제외한다 하더라도 動詞로 쓰이는 한자는 語幹 끝에 {-하-}가 있어야 하고 또 活用 語尾를 붙여야 낱말의 행세를 할 수 있다. 또 어떤 한자는 반드시 일정한 다른 한자와 결합하여 낱말을 형성하므로 이런 경우에는 독립된 형태소라기보다는 차라리 語根 또는 語基를 이루는 音節로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와 같은 記述 語學的 관점의 分析이 한자를 아무리 語根이나 語基에 해당하여 음절로 취급한다고 할지라도 한자가 지니는 語幹 形態素的 특질은 한국어 체계 안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특정한 한자가 그 글자를 포함하고 있는 한자어의 대표 구실을 하면서 略語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흔히 '著'나 '作'은 한국어의 체계 안에서는 완전한 낱말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왔었다. 즉 어떤 책의 著者를 밝히는 책 겉장에 '○○○ 著'라고 쓰고, 그림이나 사진 같은 예술 작품의 作家를 표시할 때 '○○○ 作'이라고 쓰는 수가 있다. 이때에 '著'나 '作'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좋은 대답이 없었다. 한국어의 일반적인 문법 체계 따르면 그것은 분명히 완전한 명사도 아니요, 동사도 아니다. 일종의 갖추지 못한 낱말(不里單語)일 뿐이다. '著書'와 '作品'의 略語形으로 '著'와 '作'이 쓰였다고 본다면 갖추지 못한 형태이기는 하나 낱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자 하나하나는 이처럼 그 글자를 포함한 낱말의 略語形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와 같은 略語的 특성과 語根으로서의 특성을 고려하여 우리는 한국어 체계 안에서의 한자를 準語幹 形態素 또는 豫備語幹 形態素라는 용어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한자어의 구조
    한자어의 구조를 살펴보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字數에 따라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단음절로 읽히는 낱낱의 한자는 앞에서도 논의된 바와 같이 대개 語幹 形態素로 쓰일 수 있으며 또 語幹이 되지 못할 경우에는 語根의 구실을 할 수 있으므로 하나의 한자로서 독립된 낱말은 상당히 많을 것이 예상된다. 다음 예들을 보자.

山, 江, 冊, 窓, 門, 香, 燭, 妻, 妾, 鐘, 城, 樓, 棺, 劃, 線, 龍, 賞, 罰, 罪, 金, 銀, 銅, 鐵, 百, 千, 萬, 億, 憤, 情, 恨, 前, 後, 左, 右, 甲, 乙, 秀, 優, 美, 善, 惡, 肺, 肝, ......, 東, 西, 南, 北......
甚하--, 醜하--, 貴하--, 惡하--, 善하--, 足하--, 因하--, 險하--, 害롭--, 弊롭--, 能하--, 亡하--, 臨하--, 隔하--, 通하--, 滅하--, 害하--, 求하--, 責하--, 退하--, 合하--, 答하--, 犯하--, 要하--......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한자의 一字語는 名詞類에 限한다. 그러나 動詞를 만드는 語幹末 形態素{-하-} 따위의 特殊性과의 語幹性를 고려하여 위에 보이는 바와 같은 動詞類도 一字語에 포함시켰다.(8) 이들 예에서 특별히 흥미 있는 것은 '秀 優 美'와 '善, 善하-, 惡, 惡하-'등이다. '秀, 優, 美'는 等級을 表示할 때에 한하여 명사로서 낱말이 되는 것이며 그 외에는 語幹의 상태로 남는다. '善'과'善하-'에서 한자{善}은 경우에 따라 完全한 自立 語幹이 되기도 하고 語幹의 상태에 머물기도 하는 예를 보인다. 우리는 이 예에서 한자가 지닌 形態素的 特性을 꿰뚫어 볼 수가 있다. 이 特性을 우리는 앞에서 準語幹 形態素 또는 豫備語幹 形態素라고 이름 붙였었다.
    그러면 이제는 二字語를 살펴보기로 하자. 아마도 한자의 二字語는 한자어의 핵심이라고 보아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9)

1. 主述 構成
天動, 地動, 家貧, 日沒, 月出, 夜深, 市立, 國立, 天崩, 人造, 天定......
2. 修飾 構成
動詞, 過程, 完璧, 長期, 特徵, 槪念, 國會, 營門, 校則, 人品, 漢字......
3. 並列 構成
家屋, 人民, 土地, 河川, 方法, 言語, 上下, 左右, 日月, 山川, 父母, 祖孫, 行爲, 達成, 錯誤, 操作, 關係, 對應, 繼續, 檢査, 選擇, 明滅, 授受, 去來, 浮沈......
4. 限定 構成
密接, 冷凍, 指示, 特定, 豫測, 脫出, 並列, 聯合, 必然, 使用, ......
5. 補充 構成
社會, 意味, 性質, 說明, 移動, 買入, 賣出......
6. 接尾 構成
硝子, 樵子, 椅子, 人間, 空間......
7. 目的 構成
避難, 殺生, 防火, 停會, 觀光, 開議......
8. 被動 構成
見奪, 所定, 被侵......
9. 否定 構成
勿論, 不利, 非理, 無罪, 否決, 莫逆......
10, 省略 構成
懷中, 傷寒, 意外, 亡命, 避靜, 特委, 大入, 入試......

二字語의 構造를 분석하는 데에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총체적인 모습은 위의 열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主術 構成에 속한 낱말은 기원적으로는 한문 문장에서 主語와 述語의 구실을 하던 일종의 문장이다. 즉 '하늘이 움직이다(天動)''집안이 빈한하다(家貧)''해가 지다(日沒)''밤이 깊다(夜深)'와 같은 문장이 낱말로 굳은 것이다. 이렇게 낱말로 바뀐 뒤에는 慣用의 정도에 따라 명사로 쓰이기도 하고 동사로 쓰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형사로만 쓰이는 것도 있다. 天動(천둥) 地動(지둥) 같은 것은 명사로 쓰이는 것이고, '家貧하여' '夜深한데'의 경우는 동사로 쓰인 것이다. '日沒 時間, 月出 東山, 市立 合唱團, 國立大學, 人造 絹紗, 天定配匹'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관형어로 자주 쓰이는 것도 있다. 명사로 쓰이는 것은 관점에 따라 '하늘의 움직임(天動)'으로 해석하여 修飾 構成으로 볼 수도 있다.
    修飾 構成에 속한 낱말은 원칙적으로 名詞에 속한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動詞)' '지나온 길(科程)' '흠이 없는 구슬(完璧)' '긴 동안(長期)' 같은 낱말들은 낱말의 중심이 뒤에 쓰면서 앞의 것이 관형어의 구실을 하는 것이고, '나랏일을 의논하는 모임, 나라의 모임(國會)' '군대들이 주둔한 곳의 문(營門)' '학교의 규칙(校則)' '한나라의 글자(漢字)' 같은 것은 낱말의 중심은 뒤에 있으나 앞의 것에 소속된, 소유의 관계를 보인다. '完璧'은 完의 의미를 강조하여 '完璧하다'와 같은 상태 동사로도 쓰인다.
    並列 構成은 두 개의 한자가 對等한 자격으로 결합된 것들인데 '家屋, 人民, 土地, 行爲, 達成, 錯誤와 같이 같은 의미의 글자가 연이어 쓰인 것과 '上下, 左右, 明滅, 去來'처럼 대립적인 의미의 글자가 결합된 것의 두 가지가 있다.(10) 그리고 '山川, 父母, 祖孫' 등은 명사이며 '檢査, 選擇, 授受' 등은 명사와 동사의 두 방향으로 두루 쓰인다.
    限定 構成은 앞의 것이 副詞의 구실을 하고 뒤의 것이 敍述 動詞의 구실을 하는 動詞類들이다. 이들 어휘는 '가까이 붙다(密接)' '차게 얼리다(冷凍)' '가리키어 보이다(指示)' '특별히 정하다(特定)' '반드시 그러하다(必然)' '부리어 쓰다(使用)' 등으로 풀어볼 수 있다.
    補充 構成은 해석 방법에 따라 並列이나 限定 構成으로 볼 수 있는 素地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앞의 글자만으로도 의미는 분명하지만 뒤의 글자를 덧붙임으로써 그 뜻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는 낱말로 해석된다는 관점에서 補充 構成이란 부류에 넣었다.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는 말로는 '社' 하나만으로도 充分하며 '뜻'을 나타내는 말로는 '意' 하나로 충분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자어는 語彙的 安定을 얻기 위하여 하나의 글자를 더 補强하여 二字語를 構成한다. '사다(買)'는 '사들이다(買入)'로 바꿈으로써 그 의미를 분명히 한다.
    接尾 構成은 이른바 接尾辭를 결합시켜 語彙的 安定을 얻은 낱말들을 포괄한다. '유리'를 뜻하기 위하여는 '硝' 한 자로도 가능하지만 접미사 '-字'를 결합하여 안정감 있는 二字語를 형성하였다. '人間'의 경우는 '間'을 접미사로 볼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을 내놓을 수 있지만 '간'의 의미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間'이 결국 접미사처럼 쓰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여섯 가지 構成은 한국어의 통사 구조에 맞추어 보았을 때 語順이 一致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目的, 被動, 否定의 세 가지 構成은 한국어 통사 구조상으로 보면 逆順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다. 한국어 어휘 체계 안에서 異質的인 構成을 보이는 典型的인 例가 이들 세 가지 구성이다.
    '난리를 피함(避難)' '산 것을 죽임(殺生)' '빼앗음을 당함(見奪)' '정하여짐(所定)' '이롭지 않음(不利)' '죄가 없음(無罪)' '거스르지 못함(莫逆)'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고유어로 풀어놓으면 語順을 바꾸게 된다. 또 이들 세 가지 구성에 속한 한자어는 애초에 敍述 動詞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생성된 낱말이지만 名詞 冠形詞 副詞 등으로 폭넓게 사용된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한자어의 생성이 중국의 古典에 매우 크게 의존하였을 것이라는 推測을 할 수 있다. 즉 중국의 문헌을 涉獵하던 우리 조상들이 부족한 고유어를 보충하기 위하여, 혹은 간편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또 혹은 한문 지식을 과시하기 위하여 漢文 文章에서 이해가 가능한 二字를 우리말 속에 語彙처럼 집어넣어 사용한 오랜 관습이 二字 漢字語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타당한 추론이라면 한자어는 원칙적으로 중국 고전 곧 漢文의 傳統的인 統辭 構造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바로 目的 構成, 被動 構成 否定 構成으로 되어 있는 한자어들이다.(11)
    끝으로 省略 構成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 省略 構成이야말로 한자어가 얼마나 한자의 자유로운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省略은 언어의 慣習性에 근거한 것으로 省略의 原則 같은 것을 설정하기가 어렵다. '懷中'은 '櫰於身中(몸 안에 지님)'의 축약으로 볼 수 있고 '傷寒'은 '傷以寒(추위로 인하여 병을 얻음)'의 축약으로 볼 수 있다. '意外'는 '意之外(마음먹은 것이 아님)'으로 '亡命'은 '逃亡而救命(도망하여 목숨을 건짐)'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만일에 '亡命'을 目的 構成으로 풀이한다면 '목숨 또는 운명을 망하게 함'이 되어 '생명을 죽임'이라는 뜻을 나타낼 수도 있다. 또 '避靜'을 目的 構成으로 보면 '고요한 곳을 피하여 시끄러움을 찾아감'이 될 것이나 이것은'避世靜靈'의 준말로 '속세를 피하여 조용한 곳으로 가서 영혼을 고요하게 함'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낱말이다. '大入'은 최근에 생성된 한자어로 특별한 주목을 끈다. 이 낱말은 '大入 學力考査' '大入 競爭率' 같은 복합 한자어의 관형어로 쓰이는데 '大學에 入學하다'라는 우리말의 머리 글자 모아쓰기에 의한 준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통적인 고전 한자어와는 전혀 다른 계통의 낱말로서 한자어가 얼마나 자유로운 방법으로 준말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다. 오늘날 이 방법에 의한 한자어는 일상의 時事用語에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三字語 이상의 한자어는 二字語의 構成 方式에 따라 二字語의 앞이나 뒤에 一字 또는 그 以上을 덧붙여 형성된 것이다. 다음에 三字語 몇 예를 보기로 한다.

傳簡-錢 傳燈-寺 傳染-病 不凍-港
僞證-罪 亡命-客 櫰古-談 不戰-勝
大-辭典 過-保護 僉-君子 不-作僞
諸-問題 非-課稅 微-粒子 不-調和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三字語는 반드시 二字와 一字로 나뉘고 二字는 다시 二字語 構成 方式에 따라 또 分析할 수 있다.
    四字語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基本 二字語 두 개가 결합한 것.

傳奇-文學 傷痍-軍人 懷中-時計
亡命-政府 不正-處分 關係-改善
傷人-害物 傷風-敗俗 傾筐-倒篋

둘째 基本 二字語의 앞이나 뒤에 一字씩 덧붙이어 만든 것.

僉-節制-使 大-單位-群 非-合理-的
南-回歸-線 北-太平-洋 不-道德-性
携帶-用-品 成績-表-綴 精神-病-質

셋째 원래는 하나의 文章 또는 語句로서 한국어 문장에서는 語彙처럼 慣用되는 것.

宿虎衝鼻(자는 범에 코침 주기)
尺蠖之屈(다음을 위하여 지금은 몸을 굽힘)
言飛千里(말은 빠르고도 멀리 퍼짐)
熟不還生(익은 음식은 날것으로 돌아가지 못함)

여기에는 이른바 古事成語라고 하는 상당수의 語彙가 있다. 이처럼 三字語까지는 낱말의 次元을 넘지 않으나 四字語 이상이 되면 漢文 統辭上으로는 文章으로 보아야 할 것이 국어 문장 속에 語彙처럼 揷入되어 쓰인다. 四字語의 전통은 詩經과 같은 古典으로부터 千字文에 이르기까지 漢字語句의 核心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때는 '小株密植(적은 포기 빽빽이 심기)' '應能負擔 (개인 능력대로 조세를 부담함)' '匣內包紙(갑 안에 싼 종이)' 같은 새 말을 만들어서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발음만 들어 가지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五字語는 直接 構成素 分析 방법에 따르면 반드시 첫째 단계에서 二字와 三字로 나누어지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三字語가 다시 二字와 一字로 나뉜다. 이 五字語에도 四字語의 경우처럼 語彙의 차원을 넘어선 成句가 있다.
    다음 예를 보자.

愛情-缺乏-病 書籍-都賣-商 不-定期-航路
韓國-文學-史 民主-正義-黨 不知-何-歲月
國際-裁判-所 不當-利得-金 光-合成-裝置
懶儒-飜-冊張(게으른 선비 책장만 넘긴다)
惡狗-無完-鼻(못된 강아지 콧등 아물 날 없다)

以上으로 글자 수에 의한 한자어의 구조에 대한 검토를 마무리 짓기로 한다. 한자어는 五字語 以上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三字語 以上의 모든 한자어는 二字語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으므로 구조적 특징은 결국 二字語의 해명에서 끝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그 二字 漢字語의 造語法上의 강점은 무엇인가?

4. 한자의 조어력
    한자어가 지닌 造語法上의 특성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漢字 하나하나가 지닌 統辭的 機能의 多樣性이다. 하나의 漢字가 여러 가지 意味로 轉用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統辭的 機能을 수행함으로써 다른 글자와 매우 自由롭게 결합한다. 과장하여 표현한다면 古典的인 漢文 문장에서 임의로 연이어 있는 二字를 뽑아내면 그것이 낱말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처럼 보인다.(12) 그러면 하나의 글자가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는가를 다음 '宿'字의 예로 살펴보자.

(가) ①宿德 ②宿望 ③宿命
(나) ④宿泊 ⑤宿食
(다) ⑥宿直
(라) ⑦合宿 ⑧下宿 ⑨野宿
(마) ⑩投宿
(가)에서는 宿이 冠形語로 사용되고 있다.
오랜 세월 닦아 놓은 덕망
오랜 세월 품고 있던 희망 사항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나)에서는 宿이 動詞로 사용되고 있다.
잠자고 머무름
잠자고 밥 먹음
(다)에서는 宿이 副詞로 사용되고 있다.
자면서 지킴
(라)(마)에서는 (가)(나)(다)와 달리'宿'字가 뒤에 놓여 있다. 그중에서 (라)는 動詞로 쓰인 것이고 (마)는 名詞로 쓰인 것이다.
⑦ 여럿이 함께 잠
⑧ 한 곳을 정하여 오래도록 잠자고 머무름
⑨ 들어서 잠자고 머무름
잠자기 위하여 들어감

이해를 위하여 위와 같은 예를 들었거니와 대부분의 한자는 모두 이 정도의 통사적 다양성은 가지고 있다.(13)
    둘째 漢字 하나하나가 나타내는 意味의 融通性이다. 意味가 轉變擴大되면서 二字語에서부터는 慣用的으로 特殊化 專門化하는 수가 있다. 가령 音譯語인 佛敎 用語 '三眛, 菩薩, 涅槃, 佛陀'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洪武, 永樂, 光武, 隆熙' 등 年號名을 비롯한 固有 名詞, 그리고 '經濟, 白眉, 三才, 土木' 등에서 볼 수 있는 意味의 專門化는 다른 어떤 言語의 경우보다도 强度가 크다고 보겠다.
    셋째 漢字 하나하나가 갖는 意味의 代表性이다. 앞에서는 意味의 幅이 넓어지면서 二字語의 의미를 制約하는 경우였지만 이번에는 이미 形成된 二字語 혹은 三字語에서 대표가 되는 글자 하나가 다른 대표 글자와 어울려 略語를 만들 수 있는 특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特性에 의해서 漢字語의 短型化가 가능하게 되고 이러한 간결성이 보다 많은 漢字 造語를 부채질하는 要因이 되기도 하였다. '科技處(科學 技術處)' '文公部(文化 公報部)' 등 政府 機構의 명칭에서부터 '大統領 訪歐(대통령의 유럽 방문)'라고 하는 신문 기사의 제목에 이르기까지 漢字 略語는 국어 생활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특성, 즉 機能의 多樣性, 意味의 融通性, 意味의 代表性은 漢字로 낱말을 만들어 쓰는 것이 고유어로 낱말을 만들어 쓰는 것보다 더할 나위 없이 간편하다는 인식을 굳혀 왔었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가 늘어가면서 낱말이 반드시 짧아야만 좋은 것이냐는 의문과 함께 좀 음절 수가 많더라도 알기 쉬운 말이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간결한 한자어에 대한 매력을 감소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급하게 짧은 한자어가 좋으냐, 긴 고유어가 좋으냐하는 黑白 論理에 따른 결정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어의 역사 속에서 한자어는 분명히 한국어의 어휘 체계 및 의미 체계상의 모자라는 점을 채워 주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또 앞으로도 여전히 그러한 공헌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자의 조어력은 더 면밀하게 검토되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