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채 / 고려대 교수, 국어학
1.
세종 25년(1443)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漢字를 매개로 하는 문자 생활을 영위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正統 漢文이든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어 우리말을 표기한 鄕札·吏讀·口訣이든 한자임에는 다름이 없다. 그리고 한글이 만들어진 후에도 한자의 세는 꺾이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한자의 造語力 탓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글을 빌어 모양새를 갖추고 자리잡은 15세기 이래의 한국 한자음(Sino-Korean)이 중국의 어느 시기, 어느 지방의 한자음을 젖줄로 하여 굳어진 것인가 하는 기원적 모태에 대한 해명은 주어진 지면의 제약상 소상히 논술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왕에 알려진 학설을 간단히 언급하고 필자가 보는 견해를 들어 그 윤곽만이라도 살펴보려 한다.
2.
한국 한자음의 기원적 모태를 밝히는데 있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史書의 기록이나 金石文 또는 考古學的 자료 등에 의거한 역사적 문화사적 관점에서 추리하는 방법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적 문화사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실제로 전승된 한국 한자음의 내부 구조를 분석하여 그 모태가 되었다고 짐작되는 시기의 중국 한자음과 음운론적으로 대비하고 그 음운 대치법(Substitution Law)을 귀납하여 체계적으로 실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전자는 어디까지나 추리에 그칠 뿐 과학성을 부여하기는 어렵고 후자만이 그 실상 구명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 한자음 자체의 내부 구조적인 면에서 관찰한 학설로 알려진 것은 Bernhard Karlgren, 有坂秀世, 河野六郞 교수 그리고 필자 등의 설이 있다. 이중 Ksrlgren 교수의 설은 중국어의 古音(中古·上古漢音)을 재구하는 과정에서 고대 중국에서 고대 중국어에서 많은 借用 語詞를 받아들인 한국 한자음·일본 한자음·안남 한자음을 중시하여 이들 세 나라 한자음을 연구한 결과로 얻어진 설이며, 有坂 교수의 설은 일본 고대 한자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중국 古音과 그리고 중국 古音과의 관계에서 같은 위치에 있는 한국 한자음과의 비교 연구에서 얻어진 설이다. 그리고 河野 교수와 필자의 설은 한국 한자음 자체를 놓고 이를 전면적 체계적으로 분석 연구한 결과에서 나온 설이다. 따라서 이 설은 앞 두 사람과는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다. 다음에 전술한 세 사람의 설을 간단히 소개하고 필자의 사견을 덧붙이려 하는데 먼저 우리 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고 내용도 특이한 有坂說부터 언급하려 한다.
有坂 교수의 설은 한마다로 10세기 開封音 母胎說이다.(1) 有坂 교수는 한국 한자음의 세 가지 근대적 특색을 들어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한국 한자음의 기초가 된 중국 原音은 當代의 長安音과는 별도의 것」이라 단정하고 다시 고려 초기의 문화적 배경을 중시하면서 「한국 한자음은 이 시대(10세기)에 중국의 수도였던 汴梁(즉 開封)지방에서 차입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극히 온당하다」하여 이 점을 다시 唐代의 西北 方言과 대비 끝에 「한국 한자음에 반영되어 있는 10세기의 開封音을 그 직계의 조상으로 보아도 추호도 불합리한 점이 없다」고 결론하고 있다. 그리고 「新羅 이전의 한자음은 별도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부연하였다. 이에 대하여 사견을 붙인다면 필자가 직접 한국 한자음의 내부 구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有坂 교수가 開封音的 특색으로 내세운 것은 오히려 보다 전대인 切韻系의 中古 漢音(Ancient Chinese)이거나 보다 古層인 上古 漢音(Archeic Chinese)계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新羅 이전의 한자음은 별도 계통에 속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한자음을 마치 일본 한자음 중 吳音과 漢音의 두 가지 다른 근원의 전래음이 있는 것과 같이 한국 한자음에도 신라 이전의 한자음과 고려 이후의 한자음으로 가상적 두 가지 전래음을 추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2)
다음 Karlgren 교수의 설은 6~7세기 北方 中原音 母胎說이라 할 수 있다. Karlgren 교수는 有坂 교수와 같이 직접 한국 한자음의 내부 구조를 토대로 구체적인 반영 현상을 가지고 어떤 단독 논문이나 그의 많은 저술 중 어느 장·절을 빌어 그 기원과 모태를 논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적 저술인「中國 音韻學 硏究」(Etudes Sur la phonologie Chinoise)를 비롯 많은 논저에서 한국 한자음을 예시 비교하고 있는 점에서 볼 때 그 내부 구조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Karlgren 교수는 「언어학과 고대 중국」이란 저술에서 추상적이기는 하나 한국 한자음에 대한 모태론적 견해 표명을 볼 수 있다.(3) 그는 고대 중국어의 再構에 필요한 주자료는 첫째 실제음의 현대의 중국 여러 方言과 둘째 외국의 여러 언어에 반영된 고대 중국어음 자료임을 강조하고 그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것은 東亞 文化의 원천지로서의 중국 문화가 有史 이래 한국·일본·안남 등에 유입되었는데 이때 중국어에서 많은 借用語를 받아들인 이른바 한국 한자음·일본 한자음·안남 한자음이 가장 귀중한 자료가 됨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세 나라의 中國 原音 반영 세기를 한국 한자음은 600년 경, 일본 한자음은 5~8세기 경, 안남 한자음은 9세기경으로 보고, 중국 고대음과 한국 한자음 및 일본 한자음과의 유사점을 실례를 들어 비교하고 있다.(4)
Kaolgren 교수가 600년경이라고 한 것은 그가 직접 그의 「中國 音韻學 硏究」의 제18장 方言字彙의 序說 모두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 한자음의 기원에 대한 Maspero 교수의 南方系 吳音說을 논박하고 대부분 切韻音으로 해석된다고 언명하고 있는 사실과 일치한다. 따라서 Karlgren 교수의 견해는 切韻音系의 北方 中原音 母胎說 또는 北方 中古 漢音 母胎說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연대 추정은 실제 내부 구조를 토대로 비교 언어학적 측면에서 도출된 만큼 그 실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切韻 시대의 北方 中原音으로 단순하게 추정하여 어느 한 시대의 기원으로 본 점이 좀 아쉬울 뿐이다.
河강 河野 교수의 설은 慧琳의 唐代 長安音 母胎說이다. 이 河野 교수의 설은 그가 한국 한자음에 대한 체계적인 내부 구조의 분석에 의하여 모태론을 주장한 점이 주목의 대상이 된다. 河野 교수는 그의 논문 「朝鮮 漢字音의 硏究」에서 먼저 한국 한자음의 기원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한 Henoi Maspero 교수의 설과 내부 구조적 관점에서 고찰한 有坂 교수의 설을 소개 비판한 뒤「한국 한자음의 모태는 아마도 근저의 原型을 준 것은 南朝의 江東音이며 그 위에 가장 유력한 각인을 찍은 것은 唐代의 長安音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우선 그가 예상하는 바를 전제하고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다시 한국 한자음의 체계를 조사하여 그 시현하는 특징을 세밀하게 중국 음운사의 각 단계에 비추어 고찰함으로써 비로소 알려지는 것이다」라 하여 그 방법론으로 한국 한자의 전승자음을 분석하여 이것을 6세기의 北方 中原音을 대표하는 切韻音과 그리고 唐代 長安音을 대표하는 慧琳의 一切經音義反切에 투영함으로써 체계적인 비교를 시도하였다. 그 결과 그는 결론에서 有坂 교수의 開封音 母胎說을 재비판하면서 「한국 한자음의 모태는 慧琳에 의거한 唐代 長安音이라고 하는 것이 억단이 아니며 唐代 長安音이 기초가 되고 그 위에 近世音的 層이 곳곳에 덮혀 있는 사실도 명백하다. 그러므로 앞서 서론에서 Maspero의 설을 비판할 때 예상했던 唐代 長安音의 영향이라는 것은 한국 한자음의 내적 분석에서 입증되었다」고 결론하였다.(5)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한 근거는 切韻에서 慧琳音義反切에의 추이에서 드러나는 慧琳音의 현저한 改新點 3개 항에 의거하고 있다. 이 3개 항은 慧琳音이 切韻音을 통합하는 세 가지 개신점을 보인 것인데 이 慧琳音의 통합 체계에 비추어 한국 한자음의 반영을 투영하여 그와 거의 일치한다는 면에서 唐代 長安音 母胎說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분석한 바를 이 慧琳音에 투영해 본 결과는 河野 교수의 견해와는 상반되는 점이 없지(6) 결과적으로 볼 때 河野 교수의 설은 미리 예상한 慧琳의 통합음에 너무 집착한 데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직접 한국 한자음의 내부 구조 면에서 주장된 설에 대하여 간단한 소개와 사견을 붙였지만 그 방법이나 논증에 있어서는 매우 경청할만한 설들이라 할 수 있다.
3.
위에서 소개한 모태설에 비추어 볼 때 필자의 견해는 Karlgren이나 河野 교수의 견해와 접근되어 있기는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좀 이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분석 결과에 대한 투영 방법에서 오는 해석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직접 한국 한자음의 내부 구조 분석에서 귀납한 결론에 따르면 한국 한자음의 기원적 모태는 6~7세기 中原音을 대표하는 切韻音이 국어 한자음의 형성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이며 일부 吳方言이 가미된 江東音이 그 속에 깔려 있다고 보는 이른바 6~7세기 切韻音系의 北方 中原音 母胎說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필자의 견해에 대한 구체적인 주요 논거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면상 상론은 졸저에 미루고 요점만 간략히 지적하려 한다.(7)
이상으로 필자가 보는 견해의 윤곽만을 들어 약술한 바 한국 한자음의 전면적 내부 구조의 분석 결과에서 볼 때 그 근저를 형성하고 있는 기층은 墮·唐初의 切韻音系에 거의 일치하고 있으며 더러는 보다 古層이 곳곳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切韻音보다 통합된 唐代 慧琳音의 영향도 있을 수 있고, 보다 후기적인 開封音的 要素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층으로 강력히 투영된 것은 6~7세기 隋·唐初의 切韻音系인 北方 中原音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한국 한자음의 모태는 상술한 바와 같이 다소의 이견은 있으나 거금 1,000년 내지 1,500년 전의 중국의 中古 漢音에 의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외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후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 하는 실상을 생각해 봄직하다. 먼저 결론부터 말한다면 어느 면에서 변천을 거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한자음이 고정될 당시의 근간만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원래 문화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기 마련이다. 유사 이래 중국의 선진 문화가 인접국에 유입되어 많은 차용어를 받아들이면서 그 음운 체계에 따라 한번 굳어진 한자음은 중국과 공간적으로 단절될 뿐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천에 의한 영향을 입지 않고 대체로 그대로 이국 땅에 보존되는 것이 상례이다. 더더욱 글자가 없는 나라에 이방의 글자가 들어와 만부득 음을 익힘에 있어서는 자연히 수용하는 사람들의 발음 습관에 따라 익힐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한자음·일본 한자음·안남 한자음이 중국의 古代音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불가결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이를 증언하고도 남는다.
중국에서는 실제로 송대에서 원대에 걸쳐 북방 중원음은 급격한 음운 변동을 초래하여 이른바 韻書 時代에서 音標 時代로 넘어온 바 한국 한자음과 관련된 대표적인 음운 변동을 보면 入聲의 소실을 비롯 舌上音의 齒頭音化·正齒音의 捲舌音化·拗音의 直音化·合口音의 開口音化·陽韻韻尾의 移動 등 중·상고 한음과는 현저한 일대 변동을 입은 것이다. 그리하여 13~14세기 원대에 수행된 早期官話는 현 북경관화와 聲母 體系上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그 맥통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16세기에 엮어진 우리나라 한자 학습서인 訓蒙字會를 비롯 類合·千字文에 나타난 한국 한자음은 이러한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변동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訓蒙字會에서 몇 예를 들어보면 舌頭音:踏·錔--답/舌上音:卓·椓--탁 등과 같이 入聲이 소실되지도 않았다. 혹 현재 우리가 발음하는 木瓜:목과>모과/熟肉:숙육>수육/十月:십월>시월 등에서 入聲 ㄱ·ㅂ 등의 상실을 원·명대 중국과의 구어적 접촉에서 온 영향으로 볼 수도 있으나 고정된 단독 한자음은 어디까지나 원래의 木--목/熟--숙/十--십이지 모·수·시는 아니다. 또한 舌上音:智·池--디/雉·馳--티/轉·전--뎐/貞·呈--뎡 등과 같이 舌上音의 齒頭音化도 없다. 이것이 후대에 디>지/티>치/뎐>젼>전/뎡>졍>정 등 ㄷ>ㅈ ㅌ> ㅊ으로 齒頭音化한 것은 중국 본토의 음운 변동에 따른 영향이 아니라 국어 내부에서 일어난 구개음화 현상에 의한 것이다. 舌上音은 원래 韻圓에서 3·4등 拗音에 속하므로 구개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 한자음에서 다소의 변천을 겪었다면 그것은 국어 내부의 음운 변동에 의한 것이며 어두에서 ᄅ과 ᄂ이 떨어지는 현상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외에 한국 한자음의 변천을 찾는다면 그것은 다른 음의 類推에 의한 변동을 들 수 있다. 한자는 90%이상이 形聲 文字로 되어 있다. 形은 글자의 뜻을, 聲은 글자의 소리를 나타낸다. 이른바 聲符에 따라 소리 내는데, 엄밀한 뜻에서 이 성부는 대체로 모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성부만을 보고 짐작으로 읽을 때 엉뚱한 음으로 발음하게 된다. 이를 한자의 유추음이라 한다. 이것이 이른바 俗音이다. 한둘 예를 들면 定母:舵·駝 다>타--透母它 (託何切)타의 유추음/莊母:甃 쥬>츄--淸母秋(七由切)츄의 유추음 등과 같이 聲符 它·秋 등에 유추되어 속음화되었다. 이렇게 유추된 속음은 통용되는 것이 원칙이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