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어문 소식>

벨기에에서 사용되는 언어 상태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특징만이 아니라 각 사람의 인격의 표시이고 각 나라의 문화와 사고 방식의 표현이다. 즉, 각 나라의 역사에 달려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나라가 똑같지 않지만 어떤 나라들은 이런 상황을 더 눈에 띄게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벨기에는 작은 나라이지만 언어 관계는 복잡한 나라이다. 벨기에의 북쪽에서는 네덜란드 어를 쓰고 남쪽에서는 불어를 쓰고, 동쪽에서는 독일어를 쓴다.
    벨기에 인들에 대해서는 로마 시대부터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는 온 지방이 라틴 어를 쓰고 있었지만 남쪽이 북쪽보다 오랫동안 라틴 어와 불어를 쓰게 되었다. 왜냐하면 5세기부터 내려오던 게르만 어를 썼던 도민들이 남쪽보다 북쪽에 더 많이 있었다. 그러니까 5세기부터 남쪽 지방이 라틴 어 문화와 말을 쓰고 북쪽 지방이 게르만 어 계통의 영향을 받았다. 몇 세기 동안 온 유럽이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각 나라가 다른 말을 사용해도 지식인이나 귀빈들은 다 불어를 사용했다.
    1830년에 벨기에가 독립되었다. 그 당시는 북쪽은 네덜란드 어를 쓰고 남쪽은 불어를 썼지만 사실상 공식적으로 통용되던 말이 불어였다. 반면에 네덜란드 어는 하류 계급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씩 폴란드 지방이 자기 말에 대해서 자신이 생겼다. 1878년에 불어와 네덜란드 어를 공용어로 쓰기로 법을 만들었고, 1898년부터 네덜란드 어가 제2국어로 되었다. 1910년부터 북쪽 지방에서 네덜란드 어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벨기에는 국어가 두 가지가 되었지만, 1950~1960년경까지 지식인들이나 상류 계급의 사람들이 국어로 불어를 많이 사용했다. 19세기부터 네덜란드 어 문학이 생겼지만 20세기 중반까지 벨기에는 네덜란드 어보다 불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제1차 전쟁 이후 독일 지방이 다시 벨기에의 지방으로 되었을 때 그 지방에서도 일상생활에 독일어를 썼지만 1960년쯤까지 독일어를 제1국어로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 이런 역사를 통해서 벨기에뿐만 아니라 유럽의 입장도 볼 수 있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불어만 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불어 문화적 환경이 전통적이었다. 그런데 벨기에에서 사회가 바뀌는 바람에 언어도 문제가 생겼다. 하류 계급 인구가 권리를 얻기 시작했을 때 자기가 쓰던 말을 꼭 사용하려고 했다. 오랫동안 남쪽 지방은 석탄 때문에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한 후에 북쪽 지방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구도 처음에는 남쪽·북쪽에 50%씩 있었지만 요즘은 불어를 쓰는 지방보다 네덜란드 어를 쓰는 지방에 인구가 더 많다. 이렇게 되니까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달라졌다. 법대로 세 지방에서 각각 그 지방 말을 꼭 써야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이나 5학년부터 제2국어를 배워야 한다. 제3국어(독일어)는 중학교부터 선택이다. 얼마 전까지 중학교 1학년에서 영어하기 전에, 지방에 따라서 불어나 네덜란드 어를 배워야 했는데, 지금은 북쪽에서 불어나 영어를 선택해도 되고, 남쪽 지방에서는 네덜란드 어나 영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북쪽에서는 불어를 잘 아는 편이지만, 남쪽에서는 네덜란드 어를 그렇게 열심히 배우지 않는다. 요즘은 국가 공무원이 되려면 적어도 두 가지 국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역이나 정치 계통에 일하려면 두 가지 말을 아는 것이 좋다. 교육도 둘이나 세 가지 말로 잘 해야 한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적어도 두 가지 말로 완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서류도 세 가지 말로 되어야 한다. 그리고 네덜란드 어를 쓰는 사람들이 게르만 계통의 영향을 받으니까 라틴 어 문화 계통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한 작은 나라에 다양성이 많다. 이렇게 되면 경쟁도 많이 할 수 있지만, 서로 많이 나눌 수도 있다.
    긍정적인 점이 있다고 보면, 여러 가지 말이나 사고방식을 어렸을 때부터는 경험하게 되어서 생각이 넓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남의 나라에 가게 되면 더 쉽게 그곳 생활에 익숙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제2국어를 배우니까 다음에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기가 덜 어렵다. 귀에 익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몇 킬로미터만 가면 다른 말을 들을 수 있고 읽을 수가 있다. 이런 나라에서 의견 일치를 보기가 다른 나라보다 어렵지만 한 백성이 자기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깊은 뜻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더 눈에 띄게 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 나라의 다양성 때문에 국가주의가 다른 나라보다 일어나기가 더 어렵다. 더군다나 작은 나라에 있어서 자기 혼자 앞서 가는 것을 못한다고 느낀다. 남 없이 나갈 수 없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날마다 알게 된다. 벨기에는 항상 이런 생활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좋은 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두 문화를 살리기 위해서 경제적으로도 확실히 부담스럽다. 언어가 다른 것이 문화뿐 아니라 정치도 다르니까. 또 언어 문제가 너무 많으니까 다른 문제에 대해서 덜 신경 쓰게 된다. 말을 사용하는 관계 국민끼리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기 말만 사용하려 하는 사람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대답을 안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해도 생길 수 있다. 이런 속에서 언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한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숨쉬는 것과 같다. 각각의 말이 자기 사고 방식의 표현과 같다고 본다. 그렇다면 필자는 벨기에 인이지만 프랑스 사람과 같은 말을 사용하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국적을 떠나 문화적으로 보면 북쪽 벨기에 인보다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 공통점을 더 많이 느낄 때가 있다. 물론 프랑스에 벨기에 지방의 특수 문학 작품이나 노래도 있다. 이 작품도 프랑스에서 잘 알려지게 될 수 있다. 북쪽에서는 네덜란드와 비슷한 느낌이 있는지도 모른다. 한 나라에 한 문화가 보통이지만, 우리는 한 나라에 특수 국어 없이 세 문화를 소화시키면서도, 옆 나라에 있는 이 세 문화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형성했다. 그 속에서 벨기에 인들이 자기 특징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성격이 아니었으면 못 했을런지도 모른다.

(백 마리죠:한국 외대 교수·불어학, 벨기에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