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당신의 우리말 실력은?
이기문 편저
신국판 285면, 1985, 리더스다이제스트 간

남기심 / 연세대 교수, 국어학

대학에서 교양 국어를 가르쳐 보았거나 졸업 논문을 지도한 일이 있는 사람이면 우리나라 대학생의 어휘력, 문장력이 얼마나 저급한지를 잘 안다. 대학생이면, 다른 과목에 비해 국어의 비중이 높은 초··고등학교의 교육을 거쳐서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대학생들의 국어 실력은 한심할 정도로 빈약하다.
    생각하면 초··고등학교에서의 국어 교육이란 것이 고작 국어 교과서를 읽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국어 교사들이 교과서 밖의 책을,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도록 훈련하는 일이 거의 없다. 하기는 학생들이 책을 읽으려고 해도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는 하다. 하기는 학생들이 책을 읽으려고 해도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는 하다. 뜻있는 출판사, 또는 뜻있는 교육 관계 기관이 각급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읽을 거리를 제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아이들은 길러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씩은 경험했겠지만, 국민학교 학생이면 더러 읽으라고 사다가 줄 만한 책이 있으나, 중학생에게는 사다가 줄 책이 없다. 읽기에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거나 한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것이 없다. 말하자면, 각급 학생들이 자기 수준에 맞추어 읽을 만한 책이 고루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치원생으로부터 고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수준에 맞추어 책을 출판하자면, 어휘의 사용 빈도수 조사가 되어 있어서, 그 빈도수의 차례를 따라 어휘를 늘려 가면서 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우리 손으로 국어 교육을 시작한 지 40년이 넘도록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교육을 총관장하는 문교부도 그런 생각을 한 일이 없으며, 사범 대학이 그렇게 많아도 이런 데 주의를 기울인 국어 교육학자가 없었다.
    어휘의 빈도수 조사라는 기초 작업뿐만 아니라, 다른 국어 정책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감정적인 추상적 논쟁은 있었어도, 구체적인 실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업적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좋은 예가 우리나라에 사전다운 국어사전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왜정 치하에서 '큰사전' 같은 사전을 만들 생각을 했을 뿐이다. 왜정 치하, 해방, 육이오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큰사전'을 만들어 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더 완벽한 국어사전이 지금쯤은 나와 있어야 한다. 한글 학회의 '큰사전'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백과사전식이 아닌, 언어 사전으로서의 국어사전, 국어로 된 모든 문헌을 조사한, 각계 각층에서 쓰고 있는 살아 있는 모든 말을 다 망라한, 그리고 정확한 용법을 보여 주는 국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없을 만큼 국어 교육자들은 무감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의 우리말 실력은?」은 이러한 무감각, 이러한 무신경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름 있는 작가, 학자의 2·30년대 이후에 발표된 글에서 주요한 어휘를 뽑아, 그 정확한 뜻을 사지선다형 문제를 통해 찾아내도록 하고, 해답 편에는 간략하나마 예문을 통해 각 단어의 용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을 보는 사람은, 꽤 독서를 하는 사람도 누구나 자기의 어휘력에 조금씩 문제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자기는 알고 쓴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뜻을 부정확하게 알았거나, 애매하게 알고 있던 어휘가 상당수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고 또 느끼는 것은, 불과 몇 해 전까지도 예사롭게 쓰던, 많은 말들이 잊혀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녀리, 나우, 끌밋하다, 사위다, 되우, 저저이, 베돌다, 잔입......" 같은 향수에 젖은 말들이 어느 틈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지면서, 이런 보석처럼 귀중한 말들을 되살려 가는 수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어휘 선정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명확히 언급된 바 없으나 대충 다음과 같이 추측이 된다.
    우선, 뜻을 잘못 알기 쉽거나, 비슷한 말과 혼동하여 쓰기 쉬운 말을 골라 정확한 뜻을 알게 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면, '볕'의 뜻을 '해의 빛', '해의 내리 쏘는 뜨거운 기운', '색채', '광선' 중의 어느 것이냐고 물은 것이나, '지내다'의 뜻을 '통과하다', '시간이 흐르다', '살아가다', '정도를 넘다' 중에서 고르라고 한 것이 그러한 예라 생각된다. '볕'은 '빛'과 자주 혼동되고 발음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지내다' 역시 '지나다'와 혼동하는 일이 흔한 데 착안한 문제이다.
    맞춤법을 잘못 쓸 우려가 있는 말을 문제로 삼은 것도 있다. '붙이다', '받치다', '홑' 등의 예가 그러한 것이다. '붙이다'와 '부치다', '받치다'와 '바치다'는 실제 발음이 똑같다. 그리고 '홑'은 흔히 '홋'으로 발음된다. 발음이 같은 데서 오는 맞춤법의 혼동을 시험하기 위한 문제다.
    차츰 사용 빈도가 줄어들어 탈락 위기에 있는 말들, 되살려 쓰면 좋을 듯한 말들을 많이 문제로 삼기도 하였다. '세우'(힘차고 억세게), '나우'(좀 많게, 약간 낫게), '기리다'(칭찬하다, 찬사를 드리다),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미립'(경험에서 얻은 묘한 이치), '꺽지다'(억세고 용감하고 과단성이 있다), '너나들이'(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터놓고 지내는 사이), '왕청되다'(차이가 엄청나다), '숫눈'(건르리지 않고 쌓인 채로 있는 눈), '살붙이'(혈육 계통이 같은 사람), '끌끌하다'(마음이 곧고 씩씩한 데가 있다)...... 등이 그러한 예인데 이들은 젊은 세대에서는 차츰 잊혀 가는 말들이다.
    또, 조금 사용 빈도가 낮거나 문어에서 나 쓰이는, 뜻이 비교적 어려운 말들도 문제로 보였다. '정곡'(正鵠), '영성'(零星), '갈파'(喝破), '용훼'(容喙), '둔사'(遁辭), '온축'(蘊蓄), '참척'(慘慽), '모피'(謀避), '기반'(覊絆), '수택'(手澤), '상호'(相好), '근참'(覲參), '한미'(寒微)...... 등의 예가 그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 종류는 살아 있는 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이미 일상어로는 쓰이지 않는 말들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은 고전이나 앞 세대의 글을 읽는 데 소용되는 말들이다. '친국'(親鞫), '사위'(嗣位), '모역'(謀逆), '서얼'(庶孼), '친정'(親征), '시해(弑害), '외척'(外戚), '명기'(明器), '거둥'같은 말들은 역사 책을 읽기 위해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요, '둔치', '모태'(인절미나 흰떡을 안반에 놓고 한 번에 처서 낼 수 있는 한 덩이), '떡심', '개호주', '버캐', '벼리다'같은 말들은 지금 젊은 세대는 잘 모르는 말로 앞 세대의 글을 읽기 위해서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할 말들이다.
    다만 이 책의 어휘 선정 기준이 어떤 계층, 어느 세대를 겨냥하고 세운 것이냐 하는 것이 좀더 분명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트집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모으다', '번듯하다', '닫히다' 등은 문제가 될 수 없을 만큼 평이한 것들이다. '모질다', '낯', '얕보다', '그지없다', '거름'같은 것들 역시 어떤 효과를 거두기 위해 출제됐는지가 분명치 않다.
    이 책의 근본 목적이 독자들의 어휘력을 점검시키고, 현대 생활에 소용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외래어나 어색한 신조어로 대체되어 가는 말들을 되살려 쓰도록 유도하기 위한 데 있다면 '둔치', '모태', '홰' 같은 말들 대신 다른 말들에 주의를 환기시켰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