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을 한자어로 잘못 아는 말

이강로 / 단국대 교수, 국어학

우리말은 그 계통으로 보아 한자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한자어를 국어로 쓰고 있는 중국과 인접하여 있고, 문화 교류의 역사가 워낙 깊기 때문에 많은 한자어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쓰이고 있다. 국어 안에는 많은 외래어가 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한자어이다. 한자 외래어가 우리 언어 사회에서 오랫동안 널리 쓰이다 보니, 그 말밑이 흐리어져서 심지어는 토박이말인지 한자 외래어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다. 본고에서는 이런 것들을 몇 가지로 분류 제시하여 일상 언어생활을 바르고 곱게 하는데 데에 참고로 이바지하려 한다.

Ⅰ.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

가지, 판수, 굴

1. 가지 이 말은, 그 형태소는 '갖-'이고, 여기에 뒷가지 '-앙구, -앵이, -이' 들이 붙어서 '가장구, 가쟁이, 가지' 들과 같은 낱말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한자에 柯자 枝자 들이 있는데, 이 글자의 뜻이 바로 토박이 말의 '가지'와 같다. 여기에서 이 두 글자를 합한 것이 토박이말의 '가지'와 같은 데에서, 옛날 한자를 즐겨 쓰던 버릇에서 토박이말에까지 연장 사용하게 되었다.
    2. 판수 이 말은, 점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소경을 뜻한다. 토박이 말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소경, 장님, 애꾸, 봉사 들의 여러 낱말로 부른다. 이른바 뜻 같고 소리 다른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눈으로 보지 못하는 대신 귀로 듣는 감각이 상대적으로 예리하게 발달하고, 따라서 귀로 듣고, 사리를 판단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고, 여기에 알맞은 직업이 점치는 일이었다. 관상감(觀象監)의 종팔품 벼슬에 봉사(奉事)가 있는데, 점치는 일을 관장하고, 소경이 이 일에 적임자인 까닭에 봉사는 대체로 소경을 임명한 데에서 '봉사'가 '소경'이란 낱말과, 뜻은 같고 소리만 다른 말로 인식하기에까지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이치로, 점치는 일에는 청각과 촉각(觸覺)이 큰 구실을 한다. 그런데 '판수'라는 토박이 말이 한자의 判手――뜻으로 미루어, 시각이 불완전하므로 손으로 판단하여, 이 불완전한 점을 보충한다――와 우연의 일치로 딱 들어맞으므로 한자로 바꿔 쓰기 시작한 데에서 잘못의 싹이 트게 되었다.
    3. 한자의 窟은 입성이고, 따라서 그 소리는 짧다. 토박이말은 같은 입성이면서도 길다. 그런데, 한자의 窟이나 토박이말의 '굴ː'이 그 지시하는 뜻은 같다. 이런 연유에서 자연스럽게 토박이말 '굴ː' 대신에 한자인 窟을 대신 쓰기 시작한 데에서 혼돈이 생기게 되었다. 토박이말 '굴ː'의 파생어로 구렁, 구렁텡이, 여기에서 다시 뻗어나가 구멍, 구먹 들의 낱말이 있고, 또 골, 고랑, 골자기 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한자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Ⅱ. 마음가짐, 정신, 인식의 정도 들을 나타내는 말

〔미련하다 : 매련하다〕애처롭다, 궁금하다, 생각

1. 미련하다 : 매련하다 이 말은 분명한 토박이말이다. 그런데, 어느 사전에는 '昧練하다, 未練하다'와 같이 한자어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아주 잘못이다. 한자어의 뜻대로, '매련하다'는 단련되지 못하여 어둡고 아둔함을 지시하고, '미련하다'는 단련되지 못한 것을 지시하여 토박이말의 '미련하다 매련하다'가 지시하는 뜻과 어느 정도 근사치는 있다. 이런 까닭에 억지로 한자어를 만든 것이라고 추측된다. 사실 우리 토박이말을 이런 식으로 부회하여 쓰는 말이 수없이 많다.
    이런 것들을 잘 분간하여 바로 잡아 쓰는 것이 국어 순화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미련하다'와 '매련하다'는 큰말과 작은말과의 관계로서 다 같이 어리석고 둔한 것을 나타낸다. 큰말과 작은말의 관계는 홀소리의 다름으로 구별되고, 센말과 거센말의 다름은 닿소리로 구별된다. 이런 말은 우리 토박이말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미련하다:매련하다.
빌어먹다:배라먹다.
비틀다:배틀다.
끽끽거리다:깩깩거리다.

그리고 토박이말의 '미련'과 한자어 '未練'은 그 지시하는 뜻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덧붙인다. 토박이말의 '미련'은 어리석고 둔한 모양이고, 한자어의 '未練'은 지시하는 뜻이 두 갈래로 갈리어 ①은 익숙하지 못한 것을 나타내고 ②는 생각을 딱 끊을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한자어에는 큰말 작은말과 같은 언어상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차이도 이 두 말을 구별하는 잣대의 하나로 들 수 있다.
    2. 애처롭다 이 말은 불쌍한 것을 보고 마음이 슬프다는 그림씨 낱말이다. 이 때의 '애처'가 토박이말인지 한자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데에 문제점이 있다. 토박이말로 보는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의 말밑이 될 만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가령 '애'를, '애가 탄다, 나의 애를 끊으니'들의 '애'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아래 이어지는 '처'와의 연결이 이해되지 않는다. 한자어로 보는 견해에 따르면 중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哀悽로 쓰인 한자어는 찾을 수 없고, '애처롭다'와 비슷한 형태도 찾을 수 없는데, 사전에서는 '哀悽롭다'로 쓰고 있다. 이 말을 문헌에 근거를 둔다면, 한자어로 보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 역시 토박이말로 보는 것은 순리일 것이고, 이렇게 단안을 내리고 보면 한자어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Ⅲ. 추상적 관계를 나타내는 말
    낱말에는 어느 주체를 나타내는 말과, 이 주체의 행동이라 상태를 나타내는 낱말이 있다.
    이 중 주체의 행동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의 풀이가 가장 어렵다. 우리말에는 이런 유형에 속하는 낱말로서 토박이말인지 한자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다. 이 중 몇 개만 본보기로 들어 보기로 하자.

공자(空者), 동무(同牟), 방귀(放氣), 자취(姿就)

1. 공짜 토박이말에 '공으로 얻었다. 오늘은 공을 쳤다'들의 '공'을 으뜸으로 하여 '공짜, 공짜배기'들의 파생어가 있고, 동그랗게 생긴 것을 '공'이라고 하는 것도 소리에 길고 짧은 차이는 있으나, 같은 말밑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짜'의 '공'은 토박이말인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어느 사전에서 '空者'로 쓴 일이 있고, 일상 문자 생활에서도 '空者'로 쓰는 일을 흔히 본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일본 말에 空車로 쓰고, カラクルマ라고 하여, 사람이 타지 않은 차를 지칭한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나라에 잘못 들어와서, 우리 택시의 앞에도 空車라고 써 붙인 택시를, 몇 해 전까지도 더러 본 일이 있다. 空車의 독음은 '공차'이지, カラクルマ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공차'라면 돈 안 주고, 거저 타는 차가 공차이다. '사람이 타지 않았으니, 얼마든지 타십시오'라는 뜻으로는 '빈차'이지 '공차'는 아니다. 아주 잘못 쓰는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고쳐 써야 한다.
    2. 동무 이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토박이말이다. 다만 북한 공산주의 집단에서 딴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이 말을 쓰기를 꺼리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널리 쓰이게 되자, 그 뜻에 비슷한 한자의 '同牟'라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일본에서조차 전혀 쓰지 않는, 괴이한 말을 만들어 썼다. 이런 말은 한자어라기보다 토박이말을 한자를 빌어서 표기한 취음인 것이다. 마치 가리마를 '加里亇', 단골을 '丹骨'들과 같이 한자를 빌어 쓴 것과 같다. 이런 버릇은 얼른 고쳐야 할 것이다.
    3. 방귀 순수한 토박이말이다. 뜻은 뱃속에 차 있던 것이 몸 밖으로 배설되는 구린내 나는 가스이다. 가스는 기체(氣體)이다. 기체가 몸 밖으로 방출되는 과정을 머릿속에서 상기시켜서, 방귀가 기체를 방출시키는 한자어 放氣와 비슷하므로 하자로 적었고, 이런 것들이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한자어로 잘못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엄밀히 따지면 토박이말을 한자 말로 잘못 알고 썼다기보다는, 토박이말의 취음 표기로 보는 것이 올바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Ⅳ. 행동을 나타내는 말
    우리나라의 토박이말은 움직씨 그림씨 등의 낱말에서 가장 현저하게 발달하였다. 특히 그림씨의 경우, 한자어의 단점인 창조성, 유연성 등의 제약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극치의 발달을 이루었다. '검다[黑]'라는 뜻을 나타내는 한자는 몇 자 되지 않는다. 강희 자전에 보이는 '검다'또는 이와 유사한 뜻을 나타내는 한자는, 이름씨, 그림씨, 움직씨, 어찌씨 들의 씨갈래를 달리하는 것을 모두 합쳐서 20자 이내이다. 그러나 토박이말에서는 검다, 감다, 껌다, 깜다, 따위 으뜸말과 여기에 파생한 가맣다, 까맣다, 거멓다, 꺼멓다 들과 다시 여기에서 파생한 낱말을 합치면 80여 가지나 된다. 이런 낱말들은 널리 자주 쓰이는 것들이다. 널리 자주 쓰이기 때문에 한자어로 대치하려는 심리적 작용이 가세하여 순수한 토박이말이 한자어로 잘못 인식된 낱말이 적지 않다. 몇 개 들어 그 잘못 쓰인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구경하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어떤 사전에서는 친절하게도 '구경(求景)'이라고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처리하였다. 일상 문자 생활에서는 이렇게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인 양, 더 나아가서는 한자를 몰라서, 한자어 인 데도 한글로만 쓰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2. 마전하다 이 낱말의 뜻은 '피륙을 누음하는 일'이다. 따라서 한자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磨全하다'로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밖에 '선사하다'라는 토박이말을 '膳謝하다'로, '장만하다'를 '作滿하다', 억지를 쓴다의 '억지'를 '抑止' 들로 한자어화하여 잘못 쓰고 있는데 이런 경향이 점점 심하여 지고 있는 듯하다.

Ⅴ. 말을 한 나라의 정신 세계를 이끄는 그릇이고 한편으로는 정신세계를 창조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토박이말이든, 외래어이든 혼돈됨이 없이 정확하고 분명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말을 잘못 사용하거나 모호하게 사용하거나 불분명하게 사용하면 정신세계도 그만큼 이지러지게 된다. 특히 외래어는 한자 외래어이든 그 밖의 외래어이든 신중하게 받아들이어 정확하게 써야 한다. 우리 언어 사회에는 먼 옛날서부터 한자어를 제한 없이 비판 없이 받아들이어 써 왔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 사회에 적지 않게 폐를 끼치고 있다. 이런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서는 일상 언어 사용에 있어서 민족 정신이 바탕이 되는 깊은 사려를 가지고,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교육면에서는 언어가 겨레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언어생활, 문자 생활에서 각별하게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

어휘 상식

◁ 'ㄻ' 받침을 갖는 말
앎:아는 일.
삶ː:사는 일. 살아 있는 현상.
젊ː다:나이가 많지 아니하고 혈기가 왕성하다.
잗젊ː다:나이 보다 젊어 보이다.
애젊ː다:앳되게 젊다.
배젊ː다:나이가 아주 젊다.
짊다:짐을 뭉뚱그려 지게 에 얹다.
굶다:먹지 못하거나 또는 먹지 아니하다.
옮ː다:있던 곳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가서 자리잡다.
곪다:탈난 살에 염증이 생겨서 고름이 들게 되다.
삶ː다:물건을 무르게 하거나 그 진액을 빼기 위하여 액체 가운데 넣고 끓이다.
곱삶ː다:두 번 삶다.
구슬려삶ː다:그럴 듯한 말로 남을 자꾸 추기어 움직이게 하다.
데삶ː다:삶는 듯만 하고 다 삶지 아니하다.
엎어삶ː다:엇구수한 말로 속이어 넘기다.
밞ː다:팔을 펴서 길이를 재다. 걸음을 걸어서 거리를 헤아리다.
닮다:무엇을 본따서 그와 같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