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語辭典 編纂의 歷史

李 秉 根 / 서울大 敎授, 國語學

1. 序言
    일반 독자들이 흔히 言語 辭典을 찾아볼 때에는 자신이 알고자 하는 어떤 하나의 言語 項目을 개별적으로 찾아보게 되는데, 사전에 실린 각각의 言語 項目은 일반적으로 ① 標題項의 제시 ② 發音의 明示 ③ 文法 範疇의 표시 ④ 專門語의 경우 그 略號의 揷入 ⑤ 語原의 明示 ⑥ 定義(뜻풀이) 用法의 해설 및 例文의 제시 등을 포함하고 있음도 보게 된다. 즉 하나의 言語 形式으로 제시한 項目에 대해서 다시 言語로써 필요한 여러 정보를 제시하는, 그래서 때로 關語的(메타 언어적) 機能의 성격도 지니는 것이 言語 辭典의 한 특징이 되는 셈인데 標題項의 맞춤법으로부터 定義 즉 뜻풀이에 이르기까지 흔히는 표준적인 적으로 인식되어 言語生活의 指標로서 구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言語 辭典은 標準語를 중심으로 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辭典이란 敎科書와 같이 言語 敎育의 규범적인 텍스트로서 구실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비록 독자들은 개개 項目 중심의 실용적인 효용에 관심의 초점을 두게 되지만, 項目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辭典의 구성은 특정의 排列을 갖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언어학자들이 사전학적으로 辭典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에는 ① 辭典의 體制 ② 辭典의 類型 ③ 辭典의 構造 ④ 辭典 構成의 原理 등에 관심의 초점을 두는데, 辭典 編纂史에 대해서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게 됨은 당연한 것이다.
    현재의 필자에게 주어진 이 글은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國語辭典 編纂의 歷史》를 槪觀하는 그런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實學時代에는 中國語·蒙古語·滿洲語·日本語에 관련된 語彙集들, 物名考 등이 있었고, 開化基에는 外國人듈에 의해 편찬된 對譯 辭典들이 있었으며, 이른바 韓日合邦에 따른 日本의 植民 統治 아래에서 國語辭典의 편찬이 여러 차례 진행되다가 (예컨대「말모이」 등) 文世榮 篇의 「朝鮮語 辭典」(1938)이 처음 간행되었고, 해방을 맞고서 비로소 그동안 朝鮮語 學會 事件을 비롯하여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朝鮮語 學會 篇의 「조선말 큰사전」이 1947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일찍부터 國語辭典의 편찬에 관여해 왔던 李允宰가 그동안 준비해 오다가 마무리 짓지 못하고 獄死로 인해 남겨졌던 遺稿를 그의 弟子이자 사위였던 金炳濟가 정리한 「표준 조선말 사전」(1947)이 나옴으로써 國語辭典의 기틀이 일단 마무리된 셈이었다. 이들 사전을 바탕으로 숱한 國語辭典들이 쏟아져 나와 현재의 우리의 국어 생활을 돕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國語辭典이라고 할 때에는 어느 범위까지의 사전을 말하는 것이며, 다시 그러한 뜻의 國語辭典은 어떠한 역사를 지녀왔는가 하는 문제가 이 글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2. 國語辭典의 意義
    흔히 言語 辭典의 유형을 분류할 때에 그에 사용된 언어에 따라서 單一語 辭典(monolingual dictionary) 二重語 辭典(bilingual dictionary) 및 多重語 辭典(multilingual dictionary)으로 분류하는데, 이 분류는 辭典 機能上의 차이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언어로 標題項과 풀이 문장을 제시한 사전이 바로 單一語 辭典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언어 사용자들이 그들의 언어에 대해서 더 알고자 하는 또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항들을 찾아보는 데에 이용하는 일차적 기능을 가짐은 물론이고 外國人으로서 해당 外國語를 더욱 수준 높게 이해하고자 할 경우에 이용하는 이차적 기능도 때로 가진다. 우리가 國語辭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單一語 辭典 중에서 韓國語 標題項을 韓國語로 풀이한 사전을 말한다. 즉 自國語를 自國語로 풀이한 辭典이 곧 國語辭典인 것이다. 에컨대 앞에서 든 「말모이」「朝鮮語 辭典」(文世榮 篇) 「표준 조선말 사전」「조선말 큰사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에 國語辭典 編纂의 역사를 기술하는 경우 이들을 중심으로 하게 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方言 辭典, 動詞 辭典, 類義語 辭典, 反意語 辭典 등은 選別型 辭典이므로 別個의 문제이다.
    標題項과 풀이 문장이 서로 다른 언어로 구성된 사전을 우리는 흔히 對譯 辭典이라 불러왔는바, 그 중에서도 標題項에 대하여 하나의 딴 언어로 對譯이 있었으면 그러한 사전을 二重語 辭典이라 하고 둘 이상의 딴 언어로 對譯이 되었으면 그러한 對譯 辭典을 특히 多重語 辭典이라 한다. 이들 對譯 辭典이 外國語의 學習에 도움이 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二重語 辭典은 하나의 外國語 學習上의 기능을 그리고 多重語 辭典은 둘 이상의 外國語 學習上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外國語의 學習을 위한 對譯 辭典에서는 흔히 自國語를 source language로 삼음이 우선적일 것이다. 이른 시기에 나온 韓國語 중심의 對譯 辭典으로는 뿌찔로의 「露韓 辭典」(1874) 파리 外邦宣 敎會의 「韓佛 字典」(1880) H.G. 언더우드의 「韓英 辭典」(1890) 다블뤼의 「羅韓 辭典」(1891) J. 스코트의 「英韓 辭典」(1891) J.S. 게일의 「韓英 字典」(1897) C. 알레베끄의 「法韓 字典」(1901) 등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데, 朝鮮總督府의 「朝鮮語 辭典」(1920)도 韓日 對譯 辭典이다. 그리고 後述할 「國漢會語」(1897)는 원래 韓英 對譯 辭典이지만 풀이가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文字 生活을 이룬 漢字語 또는 漢文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딴 對譯 辭典들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1904년 카잔에서 간행된 「露韓 小辭典」도 역시 對譯 辭典이지만 標題項과 풀이가 모두 실릴릭 계통의 러시아 文字로 되어 있음이 특이하다.
    韓國語에 관련된 이들 對譯 辭典들은 source language와 target language와의 관계에 따라 外國人이 韓國語를 배움에 편찬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韓國人이 外國語를 배움에 편찬 목적을 둘 수도 있다. 우리가 國語辭典이라 할 경우에는 이러한 對譯 辭典들을 제외하고 韓國人을 위해서 韓國語를 韓國語로 풀이한 사전을 이르게 되어 그 역사를 서술하는 경우에 자연히 그 서술의 대상을 이러한 한정된 의미의 國語辭典에 두게 된다. 다만 國語辭典의 편찬에 이들 對譯 辭典들이 이바지한 바가 있을 수 있어서 辭典史의 보조적인 서술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國語辭典 編纂의 準備期
    우리의 語音을 표기하기 위한 우리의 文字 體系인 訓民正音이 15세기 중엽에 이루어짐으로써 우리의 語文 整理에 대한 새로운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한 예로 「東國正韻」을 들 수 있다. 비록 이 책이 韻書의 성격을 지니기는 하지만 일단 國之語音異乎爲中國에 따라 中國 漢字音보다는 韓國 漢字音의 정리를 꾀하였음이 주목된다. 訓民正音의 창제에 따라 당시에 출판된 책들 예컨대 「龍飛御天歌(國文 歌辭)」「月印千江之曲」「釋譜詳節」「月印釋譜」 등에서 漢字音들을 正音으로 일일이 표기하여 讀者들의 편의를 꾀한 것은 漢文을 전제로 했던 당시의 우리나라 語文 生活을 고려할 때에 過渡期的인 방법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러한 語文 生活 속에서 漢字 내지는 漢文의 學習을 위해서 漢字의 音과 釋을 체계적으로 학습해야 함은 물론이었을 터인즉, 그 후 「千字文」「訓蒙字會」「類合」같은 漢字 學習書가 등장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外國 文字로서 만이 아닌 당시 生活 文字의 하나로서의 漢字에 대하여 '天 하텬'과 같이 그 뜻과 발음을 제시한 이 방법은 일종의 對譯 方法이라 할 수 있는데, 다만 釋主音從의 순서가 현대의 對譯 辭典의 構造와는 달리 되어 있을 뿐이다. 개개의 漢字에 대한 發音의 표시와 뜻의 풀이는 곧 우리말의 語彙 整理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지만 漢字·漢文 중심의 語文 生活을 누렸던 朝鮮時代에 國語 語彙集이나 國語辭典이 체계적인 모습으로 출간되기는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實學時代에 들어서서 우리말의 語彙들에 대한 自覺이 있어서 부분적으로 語彙들을 모으곤 했어도 막상 집대성한 모습으로 나온「語錄解」와 같은 語彙集들은 역시 漢字音들에 대한 우리말로의 對譯이란 성격을 버리지 못했었던 것이다. 實學時代에 쏟아져 나온 才物譜類 類解類 物名考類 鄕名類들도 비록 釋音을 주로 한 漢字 學習書가 아닌 語彙集이기는 하나 그 標題語들이 漢字語를 source language로 삼고 固有語를 飜譯語로 삼고 있어서 역시 對譯의 형식을 취했던 것이다. 다만 책에 따라서는 韓國 漢字語로서가 아니라 中國 漢字語로서 sourse language를 삼고 있기도 하다. 「事類轉解」(1839년 이전)는 實學時代의 일반적인 유형에 따라 '天文部 地理部......'式으로 語彙 意味에 따라 분류하고 다시 '天文部'는 '天道門, 天時門'으로 분류하여 漢字 語彙들을 제시하면서 각각 그에 해당되는 國文 語彙를 필요한 대로 對當시켰는데, 때로 漢文으로 다시 보충·설명한 항목도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서 한 항목에 대해서 그와 意味上으로 상관 있는 항목까지 확대시켜 제시하곤 하였는데, 예컨대 疾病門에서의

○ 牛皮癬 버즘 ○ 乾癬 마른버즘 癬瘡 즌버즘

과 같은 형식이었다.
    四譯院의 類解書들은 그 나름대로의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譯語類解」는 漢語---韓語의 對譯으로 되어 있고 「蒙語類解」「同文類解」 및 「倭語類解」는 각각 漢語----韓語----蒙語 韓語----韓語----淸語 漢語----韓語----倭語의 對譯으로 구성되어 漢語를 공통적으로 source language로 삼은 多重語 辭典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시기의 語彙集들은 意味에 따라 語彙들을 분류하던가 아니면 漢字 標題語 중심으로 '一字類, 二字類, ......' 式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이 시기의 語彙集들의 韓譯語 중에서 用語들에 대해서 現代 辭典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다'에 의한 形式을 취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다. 「譯語類解」에서 예를 보면

月明 다 月兒落了 디다
有風 람잇다 起風 람니다
天旱 므다 下雨 비오다

들과 같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대 사전들에서와는 달리 'ㄷ'앞에서 'ㄹ'이 탈락한 대로 제시하고 있다. 漢字語--韓語--漢語--淸語--蒙語--倭語의 多重語 辭典인 「方言類釋」(方言輯釋, 1778)에서도 마찬가지이다.

星稠 별다 星稀 별드므다
星隕 별러지다 星移 별옴다

어휘 제시의 이러한 방식은 實學時代에 비롯된 것이 아니고 상당히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흔히 15세기 초엽의 자료로 지적되고 있는 「朝鮮館譯語」는 모두 漢字로 표기되기는 했어도 일종의 漢韓 對譯 語彙集이라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이미

天晴 哈嫩黑大 忝送 日出 害那格大 忍處
日落 害底格大 忍刺 日長 害吉大 忍掌
日照 害必翠耶大 忍著 有雨 必以思大 與五

와 같은 '-다(大)'形이 제시되었던 것이다. 다만 많은 動詞의 경우에는 格大/耶大'와 같이 時想 形態素까지 포함시키고, 形容詞의 경우에는 '大'만을 첨가시키고 있음이 현대 사전들의 형식과 다를 뿐이다.
    實學時代의 대부분의 語彙集들이 漢(字)語 중심의 意味에 따라 분류한 glossary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는 것이기는 하나, 우리말의 語彙 整理에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實學時代를 거치면서 實學時代의 語文 整理 課題를 이어받은 시대를 19세기 중엽으로 잠정적으로 볼 수 있는바, 1846년에 편찬되었다고 하는 「諺音捷考」(表題 「石帆諺音考」)는 이 시기의 사정을 잘 알려주는 책으로 현재의 우리에게 특별한 눈길을 끌게 한다. 이 책은 당시의 혼란된 표기를 정리하기 위해 漢字 내지 漢字語를 우선 제시하고 그에 해당되는 우리말을 國文으로 보이되 '             ...'의 音節이 포함되는 어휘를 위의 字母 順序에 따라 배열하였다. 다만 漢字語를 一字 二字 三字......式으로 배열하고 그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字母 順序로 배열하였다. 行 부분의 國文項들을 일부 보이면 다음과 같다.

음, 다을뎡, 영, 랏랑, 릴예, 셜, 칠훈, 칠지, , 훤, 한, 애젼, 츄, 장최, 등, 구, , 다, 라안말암, 래춤, 렵다, 로, 만다, 알다, 못지, , 나, 곰, 다, 슈로, 마, 위, 월, 가마괴여, 길젼, 며기구, 마들일경, 오기산, 올병, 변, ......
「石帆諺音考」에서

이상의 일부를 통해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朝鮮時代의 漢字 學習書들의 내용과 現代 辭典들의 그것이 함께 하고 있으면서 그 排列 順序는 각각 現代 辭典들의 방식에 접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字母 排列 順序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訓民正音」의 '牙 舌 脣 齒 喉'에다가 調音 方法이 기준 되었던 것에서 「訓蒙字會」이래로 '牙 舌 脣 齒 喉'의 기준이 반복해서 적용된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 ㅋ ㅌ ㅍ ㅈ ㅊ ㅿ ㅇ ㅎ' 같은 것을 거쳐 「三韻聲彙」(1731) 등을 통해 현대의 그것에 이르게 되었는데, 위의 「諺音淸考」는 그 字母 排列에 있어서는 현대의 그것에 거의 일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實學時代로부터 現代로 넘어오는 데에 있어서 「諺音捷考」는 語彙集 내지는 辭典 편찬에 있어서 한 分岐點을 이룬 것이라 할 만하다. 用言項의 제시에 있어서도 實學時代의 語彙集들에서와는 달리 '-다'에 의한 'ㄹ'脫落이 수의적으로 표기됨으로써 現代 辭典에서의 기본형 제시 방법에 가깝게 되었다. 用言項의 예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다(細) 렵다(癢) 만다(匿) 알다(司), 목욕다(洗澡), 래다(浪蕩), 려내다(剋落), 이다(鏃了), 즉놀라다(驚跳), 벼다(替代) 돗다(布席) 어름므다(嚼冰), 뵈다(撒布), 기리다(待), 다(走), 다(作, 글다), 다(尖, 단말), 옷다(洗衣裳)

다만 문장과 같은 句의 풀이에서는

近火先焦 블예 븟면 몬져 다

와 같은 動詞形이 나타나기도 한다.

4. 國語辭典 編纂의 胎動期
    19세기 후반기는 國語辭典의 胎動期라 할 만하다. 국어의 標題項을 국어로 풀이한 單一語 辭典으로서의 國語辭典이 19세기에 출간된 경우를 현재 우리가 볼 수는 없으나, 국어의 標題項들을 現代 辭典과 같이 배열한 사전이 이 시기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예가 바로 「國漢會話」(1895. 內題는 「國漢會語」)
    국어와 관련된 言語辭典 편찬의 역사를 언급할 때에 으레 드는 初期의 것들은 19세기 후반기에 간행되었던 西洋語 韓國語와의 對譯 辭典들이다. 대체로 開港期에 접어들면서 주로 새로운 外交 活動이나 傳敎 活動을 위해 韓國語를 學習함에 도움을 주려는 動機로 편찬되었다고 할 수 있다. 西洋人에 의한 최초의 對譯 辭典으로서 뿌찔로의 이른바「露漢 辭典」(1874)을 드는데, 이는 露領의 우수리 地域으로 移住한 韓國人들인 行政的인 필요로 편찬된 것이다. 파리 外邦 宣敎會(La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de Paris)의 朝鮮 敎區 宣敎師들 특히 리델(李福明)에 의하여 요꼬하마에서 출판된 「韓佛 字典」(한불뎐,Dictionnaire coréen-Français,1880)은 宣敎 活動을 위해 편찬한 것으로 그 바탕이 되는 「韓語 文典」(Grammaire coréenne,1881)과 함께 출판했던 것이다. 언더우드의 「韓英 辭典」(1890)으로 게일의 「韓英 辭典」(1897)에 이르는 對譯 辭典들도 대체로 같은 성격의 것으로 일차적으로는 모두 韓國語를 공부함에 도움이 되도록 편찬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한 근거로 字母 排列 順序를 들 수 있다. 西歐의 言語 辭典들처럼 '아(A,a)'로부터 시작하여 우선 母音으로 시작되는 항목들을 배열하고 이어서 子音들로 시작되는 항목들을 그들 言語의 알파벳 순서에 맞추어 배열하였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한불뎐」「한영뎐」(언더우드) 두 사전에서의 子音 排列 順序를 보면 대체로

ㅎ ㄱ (ㅺ) ㅋ ㅁ ㄴ (ㄹ) ㆁ ㅂ (ㅽ) ㅍ ㄹ ㅅ (ㅆ) ㄷ (ㅼ)ㅌ ㅈ (ㅾ) ㅊ

으로 되어 있어서, 佛語 또는 英語의 사용자들이 그들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찾아보기 쉽게 구성했던 것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당시 우리의 전통적인 字母 排列 順序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1894년의 이른바 甲午更張에 따른 語文 政策의 轉換은 國漢文 混用體의 사용을 권장하고 이에 의한 公私文書의 작성은 물론이고 새로운 學制에 알맞은 敎科書의 편찬에도 國漢文 混用體가 公式的으로 쓰이게 됨에 따라 西洋人들의 對譯 辭典으로 받은 자극 이외에도 國語 辭典 편찬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1895년에 등장한 사전의 하나가 바로 「國漢會語」(乾坤 2冊)인 것이다. 이 사전은 그 題名대로 國漢 對譯 辭典으로, 國文 標題語에 漢字語·漢文句로 對譯하였는바, 그 國文解는 主殿司長을 지냈던 李準榮이 담당하였고, 漢文釋은 前承文院 副正字 鄭玹, 記錄은 前主事 李琪榮, 編輯은 李明喜, 그리고 校訂은 姜璡熙가 각각 담당하였다. 이 사전의 편찬 동기는 交隣通譯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고 그 체재는 外國冊規를 모방한 것이어서 가로쓰기로 하되 左右兩段으로 항목을 배열해 나갔던 것이다. 字母 排列 順序를 보면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으로 되어 있는데 'ㅇ'에 들어간 母音 排列 順序는 'ㅏ ㅐ (ㅑ) ㅓ (ㅔ) (ㅕ) ㅖ ㅗ ㅚ ㅛ ㅜ ㅟ ㅠ ㅡ ㅢ ㅘ ㅙ ㅝ ㅞ'로 되어 있어서 현대의 國語辭典들의 그것에 상당히 접근하고 있다.
    標題項 가운데서 用言은 '가다(去·往)'와 같은 형식으로 제시되었는데 '가(去 往 逝)'와 같이 語幹만을 제시한 단 하나의 例外가 있기도 하고 또 '갓다(去也)'와 같은 活用形이 역시 예외적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또한 標題項 가운데에는 「千字文」「類合」「訓蒙字會」 등의 漢字 學習書에서 볼 수 있는 '하텬(天)'과 같은 釋·音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諺音捷考」 등에서 이미 볼 수 있었으나 現代 辭典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가라치다---敎 訓 teach
가라칠교---敎 teach
가라칠훈---訓
가라치다---指點 point
가라칠지---指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 사전이 實學時代의 語彙集들과 現代辭典들과의 過渡期的인 형식에 속함을 알 수 있다. 위의 예에서 英語를 附記한 것은 乾冊의 경우인데, 이와 같이 간혹 가다가 英語로 追補하면서 끝에는 地名·國名까지 英語로 나열한 것은 본질적으로는 國漢對譯이라는 二重語 辭典의 성격을 띠면서도 多重語 辭典의 성격까지 지니도록 시도하려 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動機는 그 序文에서 밝힌 것처럼 開港期의 西隣講和에 따른 交隣通譯에 萬一之助가 庶或할 것을 바란 데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國漢會語」는 開港과 甲午更張에 따른 당시의 社會 變動으로 辭典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편찬된 것으로 우리말의 標題項들을 현대 사전들의 字母 排列 順序에 가깝게 배열하고서 가로쓰기를 한 國漢 對譯 辭典인 것이다. 다만 實學時代 이후로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5. 최초의 國語辭典「말모이」의 編纂
    國語辭典의 편찬에 대한 1890년대의 관심이 높아가면서 國語辭典 편찬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곤 하였다. 리봉운은 그의 「국문졍리」(1897) '셔문'에서

문명의 뎨일 요긴거슨 국문이 반졀 리치를 알 사이 적기로 리치를 궁구야 언문 옥편을  죠야에 발야 이왕 국문을 안다 사도·····우리 나라 글이 연 을 거시오 독립 권리와 쥬 무에 뎨일 요긴거시니······

라 하여 語文 民族 思想에 따른 國語·國文을 정리와 國語辭典(cf.언문 옥편) 편찬의 긴요성을 강조하였고, 周時經도 獨立新聞에 실린 그의 '國文論'(1897)에서

죠션말노 문법을 졍밀게 드어셔 남녀 간에 글을 볼 에도 그 글의 을 분명이 알아보고 지을 에도 법식에 고 남이 보기에 쉽고 경계가 게 짓도록 아쳐야 겠고  불가불 국문으로 옥편을 드러야 지라

와 같이 國文辭典 편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19세기 말엽에 國語·國文辭典의 긴요성이 강조된 데에는 그만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고 여긴다. 앞에서 이미 보았던 것처럼 實學時代를 거쳐 19세기 중엽까지는 보다 현실적인 國文의 정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語彙의 정리를 시도했던 흐름 속에서 開港期를 맞이했고, 이어서 甲午改革을 통해 自意든 他意든 自主獨立 思想이 洪範十四條 등을 통해 표면화되었으며, 나아가서 高宗은 國漢文 混用體를 公文에서까지 사용하도록 法令까지 발표했고 다시 官制의 개편으로 나타난 學部의 編輯局에서는 國文 綴字 各 國文 飜譯 및 敎科書 編輯 등을 담당하게 되어 1895년에는 「國民小學讀本」「小學讀本」 등의 國漢文 混用體의 교과서들이 출판되었던 것이다. 「國漢會語」가 바로 이 해에 출판되었던 것이고, 「國文 整理」'國文論'에서의 '國'이 '諺'대신 등장한 것은 高宗의 言語 政策에서의 '國'에 힘입은 것이었다. 國語·國文은 리봉운을 통해서 "독립 권리와 쥬 무에 뎨일 요긴"것이라고 강조되기에 이른 것이다.
    19세기 후반기는 구라파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까지도 語文 民族主義가 팽배했던 시기로, 극심한 轉換期 속에서 周時經도 "말과 글은 한 社會가 組織되는 根本이요 經營의 意思를 發表어 그 人民을 」聯絡케 고 動作케 는 機關"이라 하고 이러한 語文은 "그 社會가 天然의 다름으로 自然 自立됨을 特別히 表는 것"이라 하여 語文과 民族 自立과의 깊은 관련성을 주장하였으며 (「대한 국어 문법」跋文, 1906), 나아가서 民族·社會·國家에 대하여 "基域은 獨立의 基요 基種은 獨立의 體요 其言은 獨立의 性이다"라고 자신의 語文 民族 思想을 확립하였다. (「國語文典音學」1908). 語文 民族主義가 이와 같이 확립되었음은 朴慇植 申采浩 李鐘一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國魂의 핵심인 國語의 敎育을 통해 愛國·救國의 정신도 고취할 수 있다는 것이 었다.
    1910년 이른바 韓日合倂이 이루어진 직후에 崔南善이 세운 朝鮮 光文會에서는

今에 我等이 文明上으로 一大 轉機를 會하니 光明을 大放할 好機인 同時에 存喪을 未判할 危機라 如前히 光緖를 繼하며 如何히 來運을 開할가 旣往은 湮沒하고 現在는 混沌하고 將來는 茫昧한 此地頭에 大한 覺念과 小한 事力으로 我光文ㅣ 兀立하니 修史와 理言과 立學은 실로 三大標識며 辭典編纂과 文法整理는 理言의 兩大眼目이오 我의 言語와 關繫가 深切한 語文의 對譯辭典을 作成함은 辭典計劃의 一要件이니......

라 하여 우선 漢韓 對譯 辭典인 「新字典」(1915)을 周時經․金枓奉(國語 訓釋을 담당) 등으로 하여금 편찬하게 하였고 1911년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國語辭典인「말모이」(辭典)를 편찬하게 했던 것이다.
    「말모이」의 편찬에 직접 참여하였던 이들은 위의 周․金 이외에 李奎榮과 權悳奎 모두 넷이었다. 1914년 여름 周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1916년에는 이 「말모이」의 바탕이 되는 문법책으로 金이 「조선말본」을 간행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上海로의 亡命 그리고 李의 作故로 「말모이」의 편찬은 거의 완성 단계에서 멈추어졌고 그 原稿조차 散失되어 현재는 그 첫째 권으로 보이는 'ㄱ~걀죽'까지의 標題項이 포함된 한 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말모이」(稿本)는 凡例에 해당될 <알기>, <本文>, 標題項 索引인 <찾기> 및 漢字語 索引인 <字劃 찾기>의 네 부분으로 짜여져 있다. 辭典 編纂의 기본 방침을 제시한 <알기>에서 우선 6항을 다음과 같이 보였다.

ㄱ.이글은낱말을모고그밑에풀이를적음.
ㄴ.낯말벌이놓은자리는「가나......하」의자리대로함.
ㄷ.뜻같은말의몸이여렷될때에는다그소리대로딴자리를두되그가온대에가장흖이쓰이고소리좋은말밑에풀이를적음.
ㄹ.몸같은말의뜻이여럿될때에는다딴자리를두되제뜻에여러가지가잇는 것「㉠㉡...㉨ᄁ」의보람을두어풀이함.
ㅁ.말소리의높으고낮은것은「‥」의보람을두고흖이쓰이는이사소리는보람을아니둠.
【벼슬을 . 논을. 칼을】.
ㅂ.한문말다른나라말은「+×」의보람을두어알아보기에쉽도록함.
【+강산〔江山〕. ×까스〔gas〕】.

이어서 문법 용어와 전문 용어의 略號를 제시하였다(다음 면 참조).
    「말모이」의 標題項들의 排列 順序는

〔첫소리〕ㄱ(ㄲ)ㄴㄷㄹㅁㅂ(ㅃ)ㅅ(ㅆ)ㅈ(ㅉ)ㅊㅋㅌㅍㅎ(두첫소리는첫첫소리자리대로둠)
〔가온대소리〕ㅏ(、)ㅐ(、ㅣ)ㅑㅒㅓㅔㅕㅖㅗㅚㅛㅜㅟㅠㅡㅢㅣㅘㅙㅝㅞ
〔ㄱ]ㅍ[〕ㄱ(ㄲ) ㄴㄷ(ㄸ)ㄹㅁㅂ(ㅃ)ㅅ(ㅆ)ㅇㅈ(ㅉ)ㅊㅋㅌㅍㅎ(두받힘은첫받힘자리대로둠)

와 같이 함으로써 'ㅘㅙㅝㅞ'의 排列이 하는 現代 辭典들에서의 그것과는 다르고 오히려 「國漢會語」에서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다.
    개개의 標題項은 다음과 같이 構成되고 풀이되고 있다.

(外來語 표시 부호)標題項〔漢字․英字 제시〕(文法 用語)〔專門 用語〕풀이(예)

예컨대 標題項 중심의 微視 構造(microstructure)는

+가슉 〔家塾〕 (제) 한사람의힘으로그집안에잇는글방.
×까스 〔gas〕 (제) ㉠尋常한狀態에서는液化하기難한氣體니水素沼氣따위  ㉡石炭까스의俗稱

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周時經과 그의 제자들은 가능한 한에 있어서 모든 언어 단위를 분석하고 그 元素的인 분석 단위들의 合成으로 다시 해석하려는 방법을 즐기곤 했는데, 이에 따라 '씨갈'(≒품사 분류론)에서도 문법 용어의 略號로 제시한 것처럼 文法 形態素들까지도 세분하고 있다. 그리하여 標題項들은 動詞․形容詞의 語幹만을 제시하였는바,

(안)㉠저쪽으로 옴김 ㉡맘이끌림 ㉢때가지남 ㉣일이틀림 ㉤죽음 ㉥일움(되어―) ㉦닿임(손―) ㉧높아감(갑―).
(밖)㉠껍질을 벗김 ㉡남이잘못녀김을 밝힘 (뒤를―).

와 같이 例文들에서 조차 역시 語幹만을 제시하였다. 文法 形態素의 예를 들면,

(심) 어느임을다만임이되게하는홀소리밑에쓰는토 (배__뜨).
(맺) 꼭알지못함을말할때에어느「때토」와어울어남이밑에쓰는토 (그이가누군__. 쇠가물에뜰__).
까지 (둘) 무엇에서무엇에이르기동안.
간두루 (둘) 니까. 이니까. 으니까.

들과 같다.
    標題項의 설정은 <알기>에 제시한 "뜻 같은 말의 몸이 여럿 될 때에는 다 그 소리대로 딴 자리를 두되 그 가운데에 가장 흔히 쓰이고 소리 좋은 말 밑에 풀이를 적음"의 규정에 따라 상이한 음성 형식 또는 표기 형식을 가진 단어들을 모두 標題項으로 올리되 다만 풀이는 '가장 흔히 쓰이고 소리 좋은 말 밑에' 적었는데, 이는 곧 標準音 내지 標準語를 뜻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가느 (엇)「가늘」에보임.
가늘 (엇)㉠갸름한것의몸피가작음. ㉡일이작음. ㉢사람의짓이작음.

와 같이 異形態 表記形에 대한 것도 있고,

 (억) 內에 「滿」을--이라함「가득」에 보임.
가득 (억) 찬꼴.--하 (엇) 참.

과 같이 古語에 대한 것도 있으며

가파랍 (엇) 「가파르」에 보임.
가파르 (엇) 언덕이 나메의 깎아지른듯한꼴.

과 같이 方言形에 대한 것도 있다. 金枓奉의 「깁더 조선말본」(1923)에서 "표준말은 이제에 쓰이는 우리말 가운데에 가장 흖이 쓰이는 말을 모아 표준잡은 것"이라 하고 "같은 뜻을 가진 말이 여럿 될 때에 좋은 소리를 뽑아서" 표준말을 삼는다고 한 사실과 일치되는 태도라 하겠다.
    「말모이」는 標題項의 맞춤법에서 볼 때에 共時態와 通時態를 완전히 구별하고는 있지 않다. 漢字語들에 대해서는 '가(歌詞) 가(家事) 가수분(加水分解) 개(開墾) (筒筒)......'등에서처럼 ''表記의 特典을 주고 있다. '깨닷'으로 標題語을 삼고 '깨달'은 '깨닷'을 찾아보게 한 것도 實學時代 이후 당시까지의 表記法에 따른 歷史的 表記를 보인 예이다. 'ㅂ,ㅅ'불규칙 활용을 인정하지 않았던 편찬자들도 'ㄷ'불규칙 활용에 대해서는 역시 不規則性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말모이」에서는 일반적인 言語 辭典과 같은 發音 表示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유독 '깨닷'에 대해서는 發音의 설명까지 시도하고 있다.

깨닷 (밖)모르든일을알음 (우리사람버릇으로이말밑에홀소리를잇어낼때에는「」을「ㄹ」으로 박구어냄).

<알기>의 文法 用語들이 말해주듯이 形態素 分析의 極致를 보였던 周時經들에게 標題項의 제시에 있어서도 분석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감-으-스럼 (억) 채덜감음. -하 (엇) 채덜감게함.

에서와 같이 '-'로 分析 單位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周時經의 '늣씨' 즉 씨의 최종적인 分析 單位에 에 해당되는 것이다. 당시에 현실적으로 쓰였던 副詞(억)이었는지는 몰라도 '감을'이란 標題項을 올리고서 複合語․派生語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감을 (억) 불이꺼지랴고하는꼴. --하( (엇) 불이꺼지지랴고함,또「-거리」.
-어-터리 (밖) 남을넉이없께함. -치 (안) 스스로 넉을잃음.

形態素 分析上의 차이는 辭典 編纂者들의 分析 方法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러한 「말모이」의 태도는 그 후 모든 國語辭典들의 방식과 같은 것이었다. 「말모이」에서 특이한 것은 '+감(減)'이 標題項으로 올려져 뜻풀이까지 제시되었는데 "+감하 〔減〕(제)「減」에 보임."도 별개의 標題項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더 이상분석하지 않은 점이다. '해바라기'를 '해-바라-기'로까지 분석했던 그들도 辭典에서는 '感하'를 더 이상 분석하지 않은 그들 나름대로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말모이」는 그 稿本만을 보았을 경우에 專門語들을 포함하고는 있으나 言語 辭典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固有 名詞는 일체 標題項으로 올리지 않았으며, '갑오(甲午) 갑(甲子)' 등은 올려 있어도 '갑오경장, 갑자사화' 같은 항목은 올려 있지 않다. 다음의 한 예는 辭典의 敍述 方式으로는 特異하게 보인다.

+갑텰함 〔甲銕艦〕(제) ㉠ 裝甲한軍艦이니壬辰役에李舜臣氏가첨으로 龜船에 銕甲을裝하앗고西洋에서는 北美合衆國의南北戰爭때에創始하앗다함 ㉡戰鬪艦.

요컨대「말모이」는 固有語 및 外來語에다가 專門語를 포함시킨 言語 辭典의 성격을 지니는 최초의 순수한 國語辭典이라 할 수 있는데, 語原의 제시 등이 없는 실용적인 성격의 사전이라 할 수 있다. (「말모이」의 全文은 「韓國文化」(서울대) 7집에 資料로서 全載될 것임. 현재 印刷中)

6. 日帝 植民 統治를 위한 朝鮮總督府 編「朝鮮語 辭典」(1920)
    이 사전은 韓․日 對譯 辭典으로 韓國語 標題項에 대해 간략하게 日文의 풀이를 붙였고 固有語․漢字語․吏讀를 標題項으로 삼은 言語 辭典이다. 總 語數는 58,639項으로 고유어 17,178項 한자어 40,734項 그리고 이두가 727項이다.
    이 사전은 日本의 帝國主義 아래에서 초기의 植民 統治를 위한 朝鮮 舊慣 制度 調査 事業과 관련하여 편찬되었는바, 1911년 4월 총독부의 取調局에서 鹽川一太郞 주임 담당으로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가 이듬해 官制 改編으로 參事官室에서 위의 調査 事業과 함께 小田幹治郞 담당으로 사전 편찬을 맡게 되었다. 語彙의 수집을 비롯해서 사전 편찬의 기초적인 작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朴彝陽 玄檃 宋榮大 金敦熙 등이었고 審査 委員들은 小田 이외에 秋山雅之介(위원장) 國分象太郞 神岡一亨 西澤勇志智 左左木憲護 小倉建平 川上立一郞 魚允迪 9명이었다. 이 중에서 일찍이 金澤庄三郞의 《辭林》을 편집한 바 있고 또 韓國語의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小倉建平이 文例의 修正 統一과 편찬 형식의 작업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1918년의 최종적인 심사 위원들은 모두 16명이었다.

小田幹治郞(총독부 주임 사무관) 新庄順貞(총독부 통역관) 陶山武二朗 高島五八(고등 법원 통역관) 淸永三男(복심 법원 통역관) 小倉建平(경성 의전 교수) 李完應(경성 고보 규유) 玄櫶(경성 여고 교유) 魚允迪(중추원 부찬의) 鄭丙祖(중추원 부찬의) 鄭萬祖(중추원 촉탁) 朴宗烈(중추원 촉탁) 玄檃(중추원 촉탁) 金漢睦(중추원 촉탁) 尹希求(중추원 촉탁) 韓永源(중추원 촉탁)

이 「朝鮮語辭典」은 語辭에 "邦文及鮮文의 解說을 붙여 日鮮人 雙方에 便하게" 國文․日文의 두 풀이를 모두 제시하기로 하여, 예컨대

가(力)助 終聲이 無한 名詞를 主格으로 삼아 表示하는 辭.
「새-나다」 「머리-압흐다」 「비-오다」
母音レテ終レル名詞ヲ主格トシテ表ス語.
「鳥が立ツ」「頭が痛イ」「雨が降ル」.

과 같이 하였는데, 최종적으로 정리된 161권의 「朝鮮語 辭典 原稿」를 막상 인쇄함에 들어갈 무렵에는 "朝鮮人을 위해서 특히 朝鮮語 辭典을 作成할 필요가 크지 않다"고 하여 韓日 對譯 辭典으로 變身함으로써 國語辭典의 성격을 잃게 되었다.
    標題項의 배열은 물론 字母 排列 順序를 따르고 있는데, 동일한 語形일경우에는 固有語가 먼저 배열되고 漢字語가 이어지되 漢字語의 배열은 그 첫 漢字를 제시하고서 그것으로 시작된 漢字語를 國文 字母 排列 順序로 다시 배열하였다. 複合語는 그 第一語基를 標題項으로 올리고서 다시 그 아래 이에 의한 複合語들을 배열시키고 있다. 예컨대 '敎坊' 아래에 '敎坊鼓''敎坊司'를 배열시켰고 '나무' 아래에 '나무가래, 나무ㅅ결, 나무ㅅ군, 나무못' 등을 배열시켰다. 接頭辭에 의한 派生語들의 배열도 같은 방식을 따랐다. 예컨대 '짓'이란 接頭辭 標題項에 이어 '짓굿기다, 짓너다, 짓널다, 짓닉이다, 짓마다, 짓먹다, 짓밟다, 짓씹다, 짓익이다'를 배열하면서 각각 독립된 標題項으로서 풀이하였다. 語源 辭典의 방식과 비슷한 것인데(regroupement), 古語論的인 특성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長點을 지니게 하였다. 흔히 逆順 辭典에서 派生 接尾辭에 의한 派生語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장점에 비교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배열 방식의 일부가 文世榮․李允宰의 國語辭典들에서도 채택되었는데, 「큰사전」이후로는 이 방식이 무시되어 버리고 말았다.
    標題項의 形態 가운데서 'ㄹ'末音 用言들은 '-다'에 의하여 'ㄹ'이 탈락된 형식에 풀이를 달고 있어서 實學時代의 그것과 비슷하게 되었다. 예컨대 '아다'를 標題項으로 올리고서 그 밑에 풀이를 했으며 '알다'란 標題項 아래에는 "「아다」와 같다"라고만 지시하고 있다. 'ㅎ' 末音 用言의 경우에는 '좃타, 하야타, 아타'처럼 標題項을 제시하고서 예컨대 '아타'에 대해 (아, 은 )과 같은 活用形을 제시하였다.
    發音 表示는 標題項에 대한 長․短音의 구별에 초점을 두었고, 用言 標題項의 경우 두 개의 母音 語尾 '아/어, ㄴ/은'과의 결합형을 제시함으로써 發音 表示를 겸하였다.

가다(가/간) 가다(갈아/간) 가리다(가려/가린) 가지다(가저/가진) 곱다(곱아/곱은) ‧곱다(고와/고은)
곪ㅅ다(곪아/곪은) 곫흐다(곫하/곫흔) ‧괴다(괴여/괸) 긋다(그어/근) 난호다(난화/난혼)
다투다(다투어/다툰) 다이다(다이여/다인) 담그다(담거/담근) 타(하/흔) 말느다(말너/말는)
보내다(보내여/보낸) 보다(보아/본) 복다(복가/복근) 일캇다(일칼아/일칼은) 하다(하야/한)

이 「朝鮮語 辭典」의 맞춤법은 대체로 朝鮮總督府의 言文 綴字法을 따르고 있다.
    舊慣 制度 調査 事業의 一環으로 편찬된 「朝鮮語 辭典」은 자연히 漢字語․吏讀語들이 많이 포함되었는바, 初版 1,000부를 各級 機官에 배포하였다가 일반인들을 위해 같은 해에 再版을 내면서 小田幹治朗의 編纂 經偉를 덧붙였던 것이다.

7. 國語辭典의 出刊과 基礎 確立---- 「조선말 큰사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위에서 이른바 韓日合邦 이후 愛國 啓蒙思想에 입각하여 편찬된 「말모이」와 植民 統治의 一環으로 편찬된 「朝鮮語 辭典」 두 경우를 보았다. 이들이 직접․간접으로 그 뒤의 國語辭典 편찬 작업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1927년 1월에 朴勝彬을 중심으로 하여 설립된 啓明俱樂部는 崔南善 鄭寅譜 卞榮魯 林 圭 梁語植 李允宰 등을 편찬 위원으로 하고 「말모이」의 남은 原稿를 찾아 받아 國語辭典의 편찬 작업을 1년간 하다가 다시 총독부의 「朝鮮語 辭典」으로부터 語彙를 보충하면서 특히 朴勝彬과 林圭가 노력한 바 있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는 李常春 金枓奉 등이 國語辭典을 편찬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29년 10월 31일에 各界의 有志 108명의 발기로 '朝鮮語 辭典 編纂會'가 조직되어 國語辭典 편찬 작업이 새로이 진행되었다. 1936년 4월 1일에는 이 편찬회가 朝鮮語 學會(朝鮮語 硏究會의 後身)에 합쳐져 20년간의 波浪을 겪으면서 1947년「조선말 큰사전」을 간행하게 되었다. 한편 개인적인 노력으로 1938년 文世榮의 「朝鮮語 辭典」이 나왔고 또 李允宰의 「표준 조선말 사전」이 1947년 나온 있다. 이들 國語辭典의 간행은 곧 현대 사전들의 기초를 확립해 준 셈이 된다.

文世榮 「朝鮮語 辭典」(1938)
    이 사전은 印刷出版 된 國語辭典으로서는 최초의 것인바, 배재 고보 교원이었고 朝鮮語 辭典 編纂會의 발기인의 한 사람이었던 文世榮이 앞서 언급한 총독부의 「朝鮮語 辭典」을 대본으로 삼고서 편찬한 것으로 "편찬의 체계로부터 교정에 이르기까지" 李允宰의 지도를 받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言語 辭典의 성격을 지니는바, "순전한 조선말과 吏讀은 물론이요 한문으로 된 말 기타 외국에서 들어온 말 및 학습상 용어"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전에서는 事件名 地名 人名 등은 標題項으로 올리지 않았다. 다만 '경덕궁(敬德宮)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동구릉(東九陵) 정릉(定陵) 남묘(南廟) 북묘(北廟) 서묘(西廟) 동대문(東大門) 동소문(東小門) 서대문(西大門) 혜화문(惠化門)'이라든가 '경성(京城) 기호(畿湖) 관동(關東) 관북(關北) 관서(關西) 교남(嶠南) 호남(湖南) 영남(嶺南)'이라든가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서라벌(徐羅伐) 신라(新羅) 발해(渤海) 교려(高麗) 조선(朝鮮) 대한(大韓)' 등등이 標題項으로 올라 있다. 非自立的인 漢字는 標題項으로 올리지 않았으나, 유독 接頭辭는 標題項으로 올린 다음 그 項目 속에서 派生語들을 벌여 놓으면서 풀이하고 있다. 예컨대

接頭 정도가 심한 뜻을 표하는 말. ─구기다 (自)(他) 함부로 막 구기다.
---구끼다 (自) 재액을 거듭 당하다. ---굿기다 (自) 「짓구끼다」에 보라. ---:너다 (ㄹ변) (他)「짓널다」와 같음. ---:널다 (ᄅ변) (他) [-너니-넌] 잘게 널다. 함부로 널다. ---니기다 (他)「짓이기다」에 보라. ---마다 (他) 잘게 깨떠리다. ---먹다 (他) 넉넉하게 먹다. 과하게 먹다. ---밟다 (他) ①밟아 으깨다. ②유린하다. ---씹다 (他) 잘게 씹다. 함부로 씹다. ---밟히다 (自)① 함부로 밟히다. ②유린을 당하다. ---이기다 {-니-} (他) 썩 잘게 이기다. ---찟다 (ㅅ변) [-찌어-찌은] (他) 「짓찧다」와 같음. ---찧다{-찌타} (他) ①몹시 찧다. ②찧어 으깨다. ---치다 (他) 함부로 치다. 도륙하다.

接頭辭의 경우와는 달리 接尾辭의 경우에는 接尾辭 자체를 標題項으로 올리기는 하였으나 그에 의한 派生語들은 함께 묶지 않고 별도의 標題項으로 각각 제시하였다. 예컨대

스럽다(ㅂ)변〔-러워 -러운〕(接尾) 어떠한 명사 아래에 붙이어 형용사를 만드는 말.

와 같이 풀이하였고 '상-스럽다' 등의 派生語들은 따로 標題項을 삼았다.
    發音의 表示는 現代 辭典들과 크게 다른 바가 없다. 表記와 달리 발음되는 경우 '장군{-꾼} 좋다{조타} 핥이다{할치-}'와 같이 發音 表示를 하였고, 不規則 活用의 경우에는 朝鮮總督府 編의 「朝鮮語 辭典」에서와 같이 '아/어, ㄴ/은'과의 결합 형식을 제시하였다. 다만, 'ㄹ' 不規則의 경우 '니, ㄴ'形이 제시되었다.

듣다(ㄷ변) [들어들은], 놀다(ㄹ변) [노니논], 돕다(ㅂ변) [도와도운], 긋다(ㅅ변) [그어그은], 하얗다{-야타}(ㅎ변) [-야니얀], 이르다(러변) [-르러른], 누르다(르변) [놀러누른], 하다(여변) [하여한], 끄다(으변) [꺼끈]

이 윤 재 「표준 조선말 사전」
    이 사전은 1933년 겨울부터 李允宰가 편찬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자료들을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金炳濟가 修正․增補하여 출판한 사전으로 해방 직후에 제법 많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 사전의 편찬 방침은 <일러두기>에 상세히 제시되어 있으므로 이를 통해 기본적인 성격을 알아본다. 우선 이 사전이 言語 辭典의 성격임을 밝히고 있는데, "일상 생활에 필요한 현대의 순조선말과 한자말에서 온 말을 주로 하고, 널리 쓰이는 외래어 시골말을 대강 뽑았으며, 옛말 이두말은 넣지 아니하였고 제도어 전문어는 특별히 많이 쓰이는 말만을 골라 넣었다"고 하였다. 固有 名詞는 標題項으로 올리지 않았는데, 다만 '경성(京城), 대한(大韓), 왜(倭)' 등이 標題項으로 올려졌는바, 이는 당시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標題語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을 기준 삼았고 그 맞춤법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기준 삼았으며, 그 排列은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ㅌㅍㅎ'과 'ㅏㅐㅑㅒㅓㅔㅕㅖㅗㅘㅙㅚㅛㅜㅝㅞㅟㅠㅡㅢㅣ'로 하였는데, 'ㄲㄸㅃㅆㅉ'은 각각 'ㄱㄷㅂㅅ'의 맨 끝 자리에 붙이었다.
    標題項에 대한 形態論的 分析은 '-'으로 그 境界를 표시하였는데, 다만'-하다'에 의하여 名詞로부터 用言을 만든다고 인식한 경우에는 딴 辭典들에서와 같이 標題項으로는 별도로 울리지 않고 별도로 '-하다' 用言에 대한 定義도 부여하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수두룩-하다, 어물쩍-하다, 착-하다, 허-하다'라든가 ꡐ감-하다(鑑), 강-하다(强), 정-하다(定), 험-하다(險), 훈훈-하다(薰薰)ꡑ등과 같이 분석이 어려운 것은 標題項으로 올렸다. 標題項들에 대한 문법적인 정보로는 品詞의 表示와 接頭辭․接尾辭․語尾의 표시에 그치고 있고, 「말모이」이래로 전통이 되어온 自動詞․他動詞의 구별과 같은 統辭的인 정보는 부여하지 않았다.
    發音의 표시는 일반적인 國語辭典의 방식과 같아서 長母音 音節은 線을 얹었고, 表記 자체에서 어긋나는 경우에 實現音을 넣었으며 (ex. 심다[-따] 앓다[알타] 등), 不規則 用語에 대해서는 '아/어'와 '(으)니' 두 語尾와의 結合形을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놀다<놀아, 노니> 낫다<나아, 나으니> 발갛다<-가, -가니>
듣다<들어, 들으니> 춥다<추워, 추으니> 말-하다<-하여, 하니>
이르다<이르러, 이르르니> 흐르다<흘러, 흐르니> 아프다<아파, 아프니>
푸다<퍼, 푸니> 있다<있거라> 오다<오너라>

조선어 학회 「조선말 큰사전」
    1929년 10월 31일에 108명의 발기로 '朝鮮語 辭典 編纂會'를 조직하고 權悳奎 외 32인의 사업 추진 준비 위원을 두고 申明均 李克魯 李允宰 李重華 崔鉉培 5인의 執行 委員을 두어 朝鮮語 辭典의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다. 1936년 4월에 이 사전 편찬 사업이 朝鮮語 學會로 넘어 가면서는 이극로이윤재정인승(주무)한징이중화의 5인이 전임 집필 위원이 되었으며(뒤에 권승욱권덕규정태진 增員), 1942년 가을까지에는 語彙 카드 대부분의 초벌 풀이가 끝나 일반 造版까지 시작되던 중에 이른바 朝鮮語 學會 事件이 일어나 해방까지 原稿조차 紛失되고 말았다. 해방 뒤에 서울역 운송부 창고에서 다시 찾은 原稿를 정리하여 1947년 10월 9일에 그 첫째 권을 乙酉文化社에서 「조선말 큰사전」(본문 654면)이란 이름으로 朝鮮語 學會가 출판하기에 이르렀고, 둘째 권은 1949년 5월 5일에 그리고 셋째 권은 1950년 6월 1일에 각각 간행하였다. 6. 25動亂 기타 여러 사정으로 여섯 권 전부를 完刊한 것은 1957년 6월 30일이었는바, 이 때에는 「큰사전」(한글 학회 지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사전의 편찬 간행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과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과 함께 우리 語文 生活의 기초를 확립해 주는 데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조선말 큰사전」은 "현대에 표준어로 쓰이는 순조선말, 한자말, 외래어, 숙어, 각종 전문어들은 물론이요, 옛말, 이두말, 옛제도어, 각 지방의 널리 쓰이는 사투리, 변말, 곁말, 및 내외 각지의 유명한 땅이름, 사람이름, 책이름, 명승고적의 이름들까지 널리 망라하고, 필요에 따라 중요한 종합 용어와, 익히 쓰이는 마디말(慣用句語)들도 수용하였음"에서 보아 일단 言語 辭典의 성격을 지닌다고 하겠다. 물론「조선어 표준말 모음」의 원칙을 따랐고, 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改正案(1947)에 따랐다. 標題項의 설정을 위한 語彙 蒐集은 李常春의 원고 이외에 총독부의 「朝鮮語 辭典」과 게일의 「한영뎐」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졌다.
    標題項이 두 單語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그 單語 境界를 띄어쓰기도 하였고 - 境界 符號를 삽입시키기도 하였는데 그 구분은 분명한 기준에 따른 것 같지는 않다. 派生 接辭들까지도 標題項으로 올렸는데, 定義를 제시한 다음에 例示를 들고 있을 뿐으로 각각의 派生語들은 모두 독립된 標題項으로 올렸다. 예컨대

짓-〔머리〕동사 위에 더하여 함부로, 또는 흠씬의 뜻을 표하는 말. 〔-이기다 -밟다. -주무르다〕.

와 같이 구성하고서 '짓-이기다, 짓-밟다, 짓-주무르다' 등은 각각 標題項으로 올려 定義하고 있다. 漢字 接頭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가-(假) 〔머리〕① 영구적(永久的)이 아닌. 우선 시험적(試驗的)인. 임시 권도(權道)로의. 〔-계약(假契約). -결의(假決議). -승지(假承旨)〕. ② 참 것이 아닌. 참 것인 듯한. 〔-어사(假御史). -화류(假樺榴)〕.

이렇게 실린 標題項의 수효는 「큰사전」의 경우 164,125項에 달한다. 그 구체적인 분류는 다음 표와 같다.

  순우리말 한 자 말 외 래 어 합 계
표 준 말 56,115 81,362 2,987 140,464
사 투 리 13,005 13,006
고유명사 39 4,165 999 5,203
옛 말 3,013 3,013
이 두 1,449 1,449
마 디 말 990 990
합 계 74,612 85,527 3,986 164,125

發音의 표시는

감다〔-따〕 같이 〔가치〕 글방〔-빵〕

과 같은 방식으로 하였는데, '같다, 꽂다'들 같은 경우에는 아무런 발음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변칙으로 활용되는 말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발음의 표시 없이 '갈다〔남. ㄹ벗〕'와 같이 그 '변칙'의 종류만을 표시하였다 : ㄹ벗, ㅅ벗, ㅎ벗, ㄷ벗, ㅂ벗, 여벗, 러벗, 르벗, 으벗, 우벗, 거라벗, 너라벗. 물론 凡例에 설명이 있다. 딴 이전의 사전들에서처럼 標題項의 長母音 音節 위에 線을 그어 短母音 音節과 구별하였는데, 第二音節 이하에도 적용하여 '간-정맥(肝靜脈), 간질-대다, 갈강-갈강, 갈마-반도(葛麻半島)'들처럼 표시하였다. 기타 發音의 표시는 表記와 어긋나는 發音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 놓았다.

콩엿〔-녓〕 불시〔-씨〕(不時) 걷히다〔-치-〕 속눈〔송-〕 밥물〔밤-〕 합력〔함녁〕(合力)

標題項에 딸린 '-하다' 類 用言에 대해서는 「말모이」에서는 일일이 그 定義를 보이고 있었는데, 이 「큰사전」에서는 文世榮의 「朝鮮語 辭典」 이후의 방식처럼 品詞 表示와 變則 表示만으로 끝내고 더 이상의 定義는 제시하지 않았다.

8. 結 論
    지금까지 國語辭典 編纂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實學時代의 語彙集으로부터 「(조선말) 큰사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개략으로 서술하였다. 여기서 實學時代로부터 開化期에 이르는 語彙集들의 특징을 略述한 이유는 辭典 編纂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함이었으며, 日本人의 韓國語 學習을 위해 韓日 對譯 辭典으로 간행한 총독부의 「朝鮮語 辭典」(1920)을 언급한 것은 이 사전이 그 이후의 國語辭典들의 편찬에 깊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辭典史를 서술함에는 各 項目들의 構成 原理에 따라 標題項의 성격과 맞춤법, 發音 表示, 文法 情報, 語源 提示, 定義, 用法과 例文의 提示들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모두 포함시켜야만 될 터이지만, 標題項의 성격, 發音 表示 方式 등에만 한정시켜 서술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전에서의 맞춤법 문제는 이미 拙稿 "國語辭典史 片攷"에서 언급한 바 있고, 대체로 國語辭典들이 實用을 목적으로 편찬되었기에 語源 提示가 인색하게 되었으며, 또 定義 즉 뜻풀이의 방식도 그 역사적 변천을 파악하기에는 어렵게 되었으며, 用法과 例文은 거의 제시되지 않은 일종의 單語帳과 같은 성격으로 편찬되었기에 그 역사적 흐름을 서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標題項의 구성은 實學時代의 語彙集들로부터 「國漢會語」에 이르기까지는 漢字 學習書에서의 漢字와 現代 辭典들에서의 語彙素들을 다 포함시켜서 과도기적인 성격을 보였으며, 用言 標題項들의 제시도 대체로 '-다'에 의한 基本形으로 하되, 다만 'ㄹ'末音 用言의 당시의 音韻 現像에 따라 'ㄷ'앞에서 'ㄹ'이 탈락한 형태를 취하였고 이 방식이 총독부의 「朝鮮語 辭典」에까지 적용되었던 것이다. 光文會의 「말모이」는 編纂者들의 독특한 形態 分析에 따라 用言 語幹을 독립적인 標題項으로 올림으로써 자연히 'ㄹ'이 유지된 語幹 形式을 취하게 되었다. 文法 形態素들 이외에 派生 接辭들도 標題項으로 올려 풀이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총독부의 「朝鮮語 辭典」과 文世榮의 「朝鮮語 辭典」에서만은 接頭 派生語들을 해당 接頭辭項에 모아서 그 속에서 다시 독립된 항목처럼 再排列하여 풀이하고 있어 語源 辭典의 성격도 지니게 하였다. 총독부의 사전에서는 複合語의 경우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한 예도 보인다.
    發音 表示로는 標題項에 長․短音을 구별한 것이 대부분인데, 다만「말모이」에서는 高低를 셋으로 처리하였다. 點과 線 두 방법이 사전에 따라 적용되었다. 그리고 表記와 달리 발음될 수 있는 경우에 發音을 특별히 표시한 점에는 공통적이었고, 用言 活用 時의 發音에 대해서는 총독부의 사전은 '아/어, ㄴ/은'의 두 母音 語尾와의 결합형으로 발음 표시하였으며, 文世榮의 사전에서는 '니/으니, ㄴ/은' 또는 '아/어, ㄴ/은' 등에 의한 방식을 따르되 '變則' 活用의 종류까지 표시하였고, 李允宰의 사전에서는 變則 活用에 대해서 '아/어, 어/으니'와의 결합형만을 제시하였다. 「큰사전」에서는 母音 語尾와의 결합형은 제시하지 않고서 '變則'의 종류만을 제시하였다. 「큰사전」부터서는 用言 標題項에 대해서 '-다' 앞에서의 겹받침의 발음도 표시하게 되었다.
    定義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한 경우로 '-하다'類 用言을 들 수 있는데, 애초에 標題項으로 올린 경우에는 물론 모든 사전에서 定義를 내렸으나, 흔히 漢字語 標題項에 딸린 부수적인 '-하다'類에 대해서는 「말모이」만이 다시 定義를 내리고 그 이후의 사전들에서는 定義는 생략하였다. 총독부의 사전에서는 개개의 漢字 중심으로 그 漢字로 시작되는 漢字語들을 묶어서 標題項으로 삼고서 그에 딸리는 부수적인 '-하다'類의 항목은 삽입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 「조선말 큰사전」이후에 쏟아져 나온 많은 國語辭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文世榮의 「修正 補增 朝鮮語 辭典」(1949)이 나오고, 신기철신용철의 「표준 국어사전」(1958) 국어 국문학회의 「국어 새사전」(1958) 李熙昇의 「국어 대사전」(1961) 등등이 나와 國語辭典 편찬의 기틀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들 모두가 그 이전의 사전들과 같이 실용적이고도 표준적인 목적을 지녀 교육적이고도 규범적인 텍스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語彙를 늘리는 가운데서 '事典'의 성격까지 띠게 된 경우도 있었다. 標題項의 수가 엄청나게 늘기는 하였으나, 語源의 제시가 없고, 例文의 未備, 文法 情報의 未備, 文脈的 意味의 非體系化 등등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辭典學의 定立과 바람직한 國語辭典의 편찬은 이제부터의 課題인 셈이다.

■ 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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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國語辭典史 片攷, 백영 정병욱 선생 화갑 기념 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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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最初의 國語辭典 「國漢會語」에 대하여, 白昊 全在昊 博士 華甲 記念 國語學 論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