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語文 政策의 座標

全 東 基 / 문교부 인문 과학 편수관

Ⅰ. 序言
    言語는 인간 최고의 능력이며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본질적 특징이라 함은 지금까지 많은 언어학자들의 연구 실험 결과 밝혀진 결론이다.(1)
    우리 민족은 우리의 고유한 말과 글을 가지고 상호 간의 의사를 疏通하고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고유한 민족 문화와 국민 정신을 형성하여 온 言語 共同體(Sprachgemeinschaft)이다. 민족 문화와 국민 정신의 核心인 말과 글을 잘 保全할 뿐만 아니라 역사의 변천에 능동적으로 부응할 수 있도록 이를 잘 가꾸어 우리 후세들에게 傳承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인 동시에 국가 정책의 주요 과제가 되는 것이다.
    語文 政策의 槪念은 廣義로는 국어 정책 외에 외국어 정책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고, 또 국어 정책은 문자 문제, 표기법 문제, 문법 문제, 국어 순화 문제, 국어 교육 문제, 어문의 기계화 문제 등 국어 전반의 문제가 대상이 되겠으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문제들 중에서 해방 후 지금까지 가장 論難의 대상이 되어 왔고, 또 현재 추진 중인 정책과 관계가 깊은 文字 問題와 表記法 問題를 중심으로 그 현황을 槪觀하고 정책 과제와 기본 방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Ⅱ. 語文 政策의 基底에 대한 考察
    1. 言語의 可變性
    언어란 사회 집단의 成員들이 그것을 통하여 협동하고 상호 작용하는 任意的인 음성 기호의 체계이다.(2) 언어의 핵심적 특징은 記號性(symbolism)에 있으며 기호란 協約에 근거한 임의적 특성을 지니므로 일정한 음성 및 連續音(sequences of sounds)은 특징의 언어 사회의 약속에 의해서만 일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며 그 언어 사회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통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언어가 恣意性이 아니라면 세계의 모든 언어는 하나의 개념에 대해서 같은 형태, 즉 소리를 지니고 있게 될 것이다. 일단 형식과 의미가 결합되면 개인의 힘으로 변경할 수 없는 拘束性을 지니게 되며 이것이 언어 공동체의 意識 속에 자리잡게 된다.(3) 따라서 언어 기호는 恣意性과 拘束性의 모순된 兩面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언어는 그 자체의 變異와 다른 언어와의 교섭으로 부단히 변천되는 屬性을 가지고 있다.(4)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同時代人이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몇 세대를 거친 후에 비로소 변화가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언어는 有機體와 같아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死滅하는 변화를 규칙적으로 겪는다고 주장되기도 하지만 언어의 변화는 이를 사용하는 인간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언어 음성을 발음하는 자연적인 습관의 변화에 의해서 또는 言衆의 이동, 인접어와의 접촉 등에 의하여 점차 변화한다. 언어의 변화는 언어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形態素, 文法, 意味의 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5) 이와 같은 언어의 변화는 국가 간의 力學 關係에서 일방적인 강제되거나 개인의 恣意的인 主觀으로 변경될 성질이 아니며, 언어 고유의 법칙에 따를 때 言衆이 受容할 수 있을 뿐이 아니라 언어의 순수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오늘날 先進諸國이 국어 문제를 정책적으로 매우 신중하게 다루는 까닭은 이와 같은 연유에서이다.

2. 國語의 歷史性
    우리의 民族語가 형성된 이후 어느 정도 本來語(native words)의 전통을 지켜왔을 것이나 주변과의 접촉에 따라 역사적으로 여러 언어의 영향을 받아왔다고 믿어진다. 漢字語가 우리말에 들어오기 시작한 年代는 대충 2000년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의 본래어가 한자어로 대치되기 시작한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이다. 여기에서 漢字 受容의 특징으로 지적되어야 할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漢文과 아울러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며, 이는 세계 文字史에서 특이한 예라 할 수 있는데, 그 주된 원인은 漢字의 특이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한자는 漢族의 언어를 표기하는 데 적합한 것이어서 구조가 다른 언어의 표기에 적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 선조들은 오랜 역사에서 입으로는 우리 국어를 말하면서 글로는 漢文을 쓰는 매우 거북한 이중 생활을 하게 된 것이며 이것은 우리에게는 큰 불행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고유 문자가 없었던 관계로 우리 조상들은 漢字를 빌어 국어를 표기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이 방법은 매우 복잡하고 불완전한 것이어서 우리말의 표기 수단에 대한 염원을 품어 왔다. 이 민족적 염원을 실현한 것이 訓民正音이었다.
    훈민정음의 창제로 국어의 전면적 표기가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上流 階層은 여전히 漢字, 漢文을 애용하여 왔으며, 한글이 한자를 제치고 '國文'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은 19세기말 10년 동안의 일이었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언어와 문자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言文一致의 실현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새로운 문자 생활의 가능성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순수히 국문으로만 글을 쓰는 방법이오, 다른 하나는 국문과 한자를 섞어 쓰는 방법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文體로 어느 것을 택하느냐가 큰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19세기 말엽에 周時經은 국문체를 택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국한문체는 兪吉濬에서 비롯되었다.(6) 여기서 시작된 국문체와 국한문체의 갈등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문자 생활의 가장 큰 문제가 되어 있다. 오늘날 語文 政策의 樣態는 이와 같은 국어의 역사적 脈絡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3. 認識의 誤謬
    語文 政策과 관련하여 일부 국민이나 學界 一角에서의 다음과 같은 그릇된 인식이 국어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첫째의 오류는 내 주장만이 옳고 남의 주장은 모두 그릇된 생각이라는 독단적 思考이다. 나의 학설만이 참되고 애국하는 길이요, 남의 학설이나 주장은 一考의 가치도 없다는 極端論은 특히 文字 問題와 國語 淨化 問題에서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고질적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둘째는 국민의 語文 生活은 국가 公權力으로 左右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多重 言語의 국가에서 일부 타당성이 인정되나 한계가 있는 것이며,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 언어 국가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發想일 것이다.
    셋째 오류는 국민의 語文 生活에는 국가의 公權力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학계의 硏究 成果나 言衆의 여론을 도외시하고 어문 정책을 수행할 경우에 가지게 될 감정적 反應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意圖的 信念에서 나온 생각이라면 언어의 본질에 대한 認識 不足에서 나온 것이다.
    넷째로 우리나라에는 語文 政策이 不在하다는 생각이다. 일부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動機가 지난날 文字 政策에서 보인 일시적 試行錯誤에 있기도 하고, 語文 政策의 槪念에 대한 認識 不足에도 緣由할 것이다.

Ⅲ. 語文 政策의 現況과 展望
    1. 文字 政策
    1945年 日帝의 敗亡으로 國語 抹殺 政策은 終熄되고 중단되었던 국어 교육은 부활되었다. 美軍政廳 學務局이 우리나라의 교육의 방향과 정책을 자문받기 위하여 설치한 朝鮮 敎育 審議會에서는 1945년 12월에 "한자 사용은 폐지하고 초중등 학교의 교과서는 전부 한글로 하되, 다만 필요에 따라 한자를 괄호 안에 적어 넣을 수 있음"을 한글 가로쓰기와 더불어 다수결로 채택하고, 미군정청 당국의 무수정 공포로 그대로 실시를 보게 되었으니, 이것이 한글 전용에 대한 최초의 공식 결의였다. 이 결정으로 모든 교과서는 한글 전용이 되고 필요에 따라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교과서의 표기 방식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에도 답습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해 10월 9일 한글 전용법을 법률 제6호로 공포하여 공문서까지도 한글 전용을 확대하게 되었다.(7) 교과서와 공문서의 한글 전용에도 불구하고 일반 간행물, 특히 대중 매체인 신문에서는 무제한의 한자가 混用되어 학교 교육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문교부는 1951년에 교육 한자 1,000자를 제정하고 57년에 300자를 추가하여 이를 권장하였으며, 그 해 12월에는 국무 회의에서 「한글 전용 실천 요강」을 의결 시달하였다. 동 요강에 따라 내무부는 1958년 8월, 한글 간판 권장 기간을 설정하여 일반 상점의 간판도 정부 공공 기관과 같이 한글만으로 표기하도록 하였다. 1961년 법원 행정처에서도 법원의 판결문은 한글을 전용하기도 하였다. 5·16혁명이 일어난 1961년 12월에 국가 재건 최고 회의는 신문, 잡지, 기타 모든 간행물에 한글 전용을 실시하기 위한 한글 전용법의 개정을 시도했으나 학계 언론계의 반대 여론에 부딪쳐 법개정이 보류되자 1962년 2월, 문교부 안에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를 설치하여 한글 전용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게 되었다. 1968년 5월 국무회의는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을 의결하였고 동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 전용 7개항'을 지시,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공문서와 간행물과 민원 서류도 한글을 전용하도록 하였으며 1969년 5월 국무 회의는 '한글 기계화 표준자판 통일안'을 의결하였다.
    앞서 言及한 바와 같이 각급 학교의 교과서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필요한 경우 한자를 괄호 안에 병기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은 한글 전용을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서, 일시적인 試行錯誤(8)를 제외하고는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시행되어 정착된 表記 方式인 것이다. 한편 우리의 전통 문화가 대부분 한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는 漢字 混用이 엄연한 현실임을 감안하여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학문을 독립 교과로 설정,(9)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를 가르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보강하기 위하여 국어 교과서에서도 한자를 병기 지도하고 있는바, 이는 교육의 機能은 未來 指向的일뿐 아니라 現實 適應的인 면을 아울러 충족하기 위한 것이며, 1977년 8월 대통령은 "기초 한자는 더 늘리지도 줄이지도 말고 새 世代를 염두에 두고 일관성 있게 어문 정책을 추진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現 語文 政策의 安定性을 뒷받침하였다.
    한글 전용 또는 국한문 혼용에 대한 찬반 여론 조사나 연구 결과는 조사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경향이 있는바, 이를 근거로 문자 논쟁을 일삼는 것은 文字 政策이 정착되어 가고 있는 이 時點에서 평지풍파를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일부의 극단론이 尙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言衆의 대세는 한글 전용의 추세로 나아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국민의 언어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문 기사는 1956년 서울신문의 한글판 신문 발행을 필두로 1960년대 이후로는 한글에 대한 한자의 비율이 현 저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일반 대중을 위한 단행본과 잡지 등은 이제 거의 한글을 전용하고 있어도 독자들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져 읽혀지고 있으며, 특히 해방 후의 한글 世代에게는 한글 전용과 독서의 능률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10)
    이상의 槪觀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文字 政策은 한글 전용을 바탕으로 한문 교육을 병행한다는 것이 정부 수립 후의 일관된 정책으로서 이것은 국민의 언어 생활 속에서 정착되어 가고 있다. 이는 또한 文字 生活의 大衆化의 能率化의 요구와 傳統 文化 價値의 繼承 暢達이라는 當爲性을 共히 受容했다는 점에서 政策의 妥當性을 言衆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건국 초기에 설정된 한글 전용의 理想 實現을 위한 이와 같은 정책의 一貫性은 少數의 我執이 파괴할 수도 없고 흔들려서도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병기되고 있는 한자를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삭제할 것이며, 이와 아울러 必須 敎養 科目으로서의 漢文 敎育의 내용과 방법을 어떻게 效率的으로 개선하느냐 하는 문제가 政策 課題로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제는 충분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表記法 改正 事業
    언어는 역사와 더불어 변천한다는 屬性에 따라 文字의 表記도 달라지기 마련이므로 表記의 문제가 정책의 대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訓民正音은 원래 音素 文字 體系이면서도 직선상에 배열하지 않고 音節로 묶어 쓰는 방식으로 세계에 유례없는 奇拔한 方法으로서 이는 한글 맞춤법 문제 제기의 주요한 원인이 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語文 表記에 관련된 한글 맞춤법, 外來語 表記法, 標準法, 그리고 국어의 로마字 表記法 改正 事業의 경위와 과제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가. 한글 맞춤법
    현행 맞춤법은 1933년 朝鮮語 學會에서 제정·공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기초를 둔 것이며, 그 후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글이 철자법에는 언어와 문자의 특징과 관련하여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근본적으로 언어면에서 단어의 형태를 어떻게 나타내며, 문자면에서 한글 字母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前者는 우리 철자법을 크게 音素主義와 形態主義의 논쟁을, 後者는 모아쓰기와 풀어쓰기로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말의 正書法은 形態主義에 따라 모아쓰기를 취하고 있다. (11)
    정부에서는 1946년 9월에 조선어 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일부 수정한 현행 맞춤법을 訓民正音의 正統性를 계승한 正書法으로 채택하였으며, 다만 그 후 언어 변천에 따라 불합리한 점을 補完하기 위하여 1970년 4월에 국어 조사 연구 위원회를 구성, 표기법 개정 연구를 착수하게 되었다. 국어 심의회는 동 연구 결과를 심의 검토하고 전국적 규모의 市道別 公聽會, 설문지 분석, 紙上 輿論 분석 등 광범하게 여론을 收斂하여 1979년에 맞춤법 개정안을 마련하였으나 사회 정치적 상황 변동으로 확정이 일단 보류되었다. 정책 결정에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1981년 5월에 동 개정안의 검토 보완을 학술원에 의뢰하였으며 학술원에서는 內規로 語文 硏究 委員會를 구성하여 이 사업을 추진, 1984년 12월에 학술원 안을 문교부에 보고하였다. 문교부는 表記法 改正이 국민의 언어 문화 생활에 끼치게 될 막대한 영향을 고려, 보다 광범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학술원 안을 국어 연구소에 재검토 연구를 의뢰하였다. 국어 연구소에서는 동 사업을 계속 추진 중에 있으며 1987년 말까지는 매듭지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 外來語 表記法
    외래어 표기법에 관한 최초의 통일안은 1940년 조선어 학회에서 제정 발표한「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이며, 표기의 원칙은 만국 발음 기호를 표준으로 표시된 원어의 발음은 表音主義 원칙에 따라 표기하는 것이었다.
    1958년 국어 심의회(외래어 표기 분과 위원회)에서는 이 통일안을 보안하여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12)을 제정하고 문교부가 공포 시행하였으며, 표기의 세칙과 용례는 별도로 편수 자료를 발간하고 각급 학교 교과서는 이를 적용, 근 20여 년간 사용하였다. 그러나 동 표기법의 長音 表記가 우리말의 음운 체계와 맞지 않고 破裂音 표기상의 혼란 등 문제점이 주로 언론계와 학계에서 제기됨에 따라 1977년 국어 심의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개정 연구를 착수하여 1979년에 다른 표기법 개정 사업과 같은 절차와 방법에 의하여 외래어 표기법 개정안을 마련하였으나 이 역시 확정이 보류되었다. 이 개정안 역시 확정에 보다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그 후 학술원의 검토와 국어 연구소의 재검토 연구를 거쳐 1985년에 외래어 표기법 개정 최종안을 마련하였으며 국어 심의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1986년 1월에 확정 고시하였다.(13) 이 표기법의 원칙에 따라「외래어 인명 지명 표기 용례법」(14)을 발간하여 언론계, 출판계, 각급 유관 기관 등에 배포하였으며, 한국 신문 편집인 협회는 '86년 1월 31일 신문 제작에 있어 문교부가 개정 고시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동 표기법의 시행은 교과용 도서는 고시일로부터 일정 기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기타 출판물은 가능한 한 早期 定着을 유도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앞서 말한 人名 地名 외래어 용례집에 이어 '87년에는 교과용 도서 수정을 위한 편수 자료를, '88년에는 일반 용어 외래어 용례집을 발간하기로 했으며, 동 사업을 현재 국어 연구소에서 추진 중에 있다. 앞으로의 과제로는 개정 표기법 사용상에 문제점이 나타나면 이를 적절한 시기에 보완하는 일과 궁극적으로 외래어 사전을 편찬하는 일이다.
다. 표준말 再査定
    현재 쓰고 있는 표준말은 1936년 日帝下에 조선어 학회가 査定 公表한 것으로 현재까지 우리말의 尺度가 되어 왔다. 그러나 그 후 8·15 光復, 6·25사변을 거치면서 4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말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때에 사정한 표준말이 言語 現實에 맞지 않는 점이 많이 나타났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생활의 급격한 변화로 당시 사정한 말 중에는 현재 쓰이지 않은 말도 다수 있고, 말소리의 변화로 현대 국어에서 그대로 표준말로 할 수 없는 말이 많다. 이에 1970년 문교부는 국어 조사 연구 위원회(15)를 구성하여 표준말의 연구를 위촉하였다. 1979년 국어 심의회는 동 연구 위원회의 기초 연구 결과를 심의 검토하고 다른 표기법 개정 사업과 같은 절차와 방법에 따라 재사정 시안을 마련하였으나 이 역시 확정이 보류되었다. 문교부는 語文 事業에 보다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1981년 同試案의 검토를 학술원에 위탁하고 1985년에 또다시 이를 국어 연구소에 재검토 연구를 위탁하여 현재 동 사업에 추진 중에 있으며 이 연구 결과는 '87년 말까지는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라. 국어의 로마자 表記法
    구표기법인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은 1959년 국어 심의회(외래어 분과 위원회)에서 제정, 문교부가 공포 시행한 후 1983년까지 20여 년간 사용되어 각급 학교 교과서, 정부 간행물, 지명, 역명, 도로명 등은 이 표기법에 따라 표기되어 왔으나, 동 표기법은 正字法(16)의 원칙에 따라 표기되므로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원음대로 발음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외국 기관, 영자 신문, 일부 관공서 등에서는 1939년에 제정된 매큔-라이샤워 表記法(M-R표기법이라고도 함)(17)을 따르고 있어 표기에 혼란을 초래하였다. 문화적 경제적 국제 교류의 폭과 질이 加速的으로 확대 심화되고 있는 현대에서 상호 교류의 한 수단인 로마자 표기법의 통일이 시급한 정책 과제로 대두됨에 따라, 1978년 문교부는 동 표기법의 개정 사업을 착수, 국어 심의회 표기법 분과 위원회에서 다른 표기법 개정 사업과 마찬가지의 절차와 방법을 밟아 1979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안」을 마련하였으나 이 역시 확정이 보류되었으며, 1981년에 동 개정안의 재검토 연구를 위촉받은 학술원은 1982년 6월에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안」(18)을 마련하여 문 교부에 보고하였다. 그 후 각 부처 유관 기관 실무자 협의회와 문교부의 자체 검토 연구 및 표기법 분과 위원회의 재심을 거쳐 1983년 최종안(19)을 마련, 차관 회의와 국무 회의의 심의(20)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로 확정되어 1984년 1월에 고시하였다. 동년 2월에는 「대한민국 주요 지명의 로마자 표기 용례집」5,000부를 발간, 각 부처, 유관 기관, 언론계, 학계 등에 배포하였다. 전국의 도로 표지, 역명, 문화재명 등이 개정 표기법에 따라 거의 교체되고, 관광 안내 지도, 영자 신문 등이 이 표기법에 따라 적고 있음은 매우 고 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개정 표기법에서 반달표()와 어깨점(') 사용의 번거로움을 解消하는 방안이라든가, 기계에 의한 자동적 조작으로 로마자를 한글로 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의 개발 등이 연구 과제로 남아 있으며, 人名 中 적어도 姓氏만은 합리적으로 조정 통일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있는바, 이 역시 연구해 볼 과제라 생각한다.

3. 國語 硏究所의 法定 機構化
    국민의 언어생활 향상을 위한 국어 및 국어 교육, 국어 정책에 대한 종합적 계속적 연구를 전담하기 위한 公式的인 국어 연구 기구를 설치 운영해야 한다는 漸增하는 여론에 부응하여 1978년 문교부에서 假稱「국립 국어 연구원 설치안」을 마련한 바 있으나 실현을 보지 못하였고, 제5공화국에 들어 또다시 이 문제가 정책 과제로 浮上함에 따라 1983년 국어 연구소 설치 계획을 마련하였으나 정부 기구 축소화 정책에 따라 공식 기구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동 기구의 설치는 학계 언론계 등 국민의 한결같은 여론임을 감안하여 1984년 5월 학술원에 보조금을 교부하여 운영되는 非公式 機構로서의 국어 연구소가 開所되었다.(21) 비록 비공식 기구로 발족하였으나 이를 公式 機構化 한다는 것이 정책 방향으로 잡혀 있기 때문에 실현될 것으로 본다. 동 연구소는 開所 後, 어휘 빈도수 조사 연구 및 기초 어휘 조사, 한자 및 한자어 사용 실태 조사, 북한 언어 연구 등 제반 국어 문제의 연구와 語文 政策의 懸案인 語文 表記 改正 事業(맞춤법, 표준말 사정, 외래어 표기)의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硏究 論文集, 계간 '국어 생활' 등 국어 연구 자료를 발간 보급하고, 外來語 表記法 改正 最終案을 매듭지어 1986年에 정부에서 告示하고 外來語 人名·地名 用例集을 발간 보급하는 등 開所 日淺함에도 불구하고 所長을 위시하여 모든 硏究職員이 渾身의 熱情을 다하여 현저한 실적를 거두고 있다. 정부로서는 국어 연구소를 가능한 한 빠른 時日에 公式 機構化하여 그 機能을 보다 活性化할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에 즈음하여 현재 분산된 국어 연구 기능을 국어 연구소에 어떻게 통합 조정하여 一元化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宿題로 남아 있다.

Ⅳ. 結 語
    지금까지 국민의 語文 生活에 관한 문제가 국가 정책의 대상이 되는 當爲的 基底를 언어의 可變性과 歷史性에서 考察하고 그러한 바탕에서 전개되어 온 우리나라의 語文 政策을 文字 言語 문제를 중심으로 그 現況과 展望을 대충 훑어보았다. 우리나라가 日帝로부터 國權을 恢復한 후 펼쳐온 敎育 文化 政策의 일관된 兩大 理念은 自由民主主義와 民族主體性의 確立이다. 日帝에 의한 國語 抹殺 政策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우리의 말과 글을 身命을 바쳐 굳건히 지켜 왔음은 언어가 존재하는 한 민족의 생명은 영속한다는 인류 역사의 교훈에서 터득한 信念에서 나온 것이며, 민족의 主體性은 민족 정신의 形成 手段인 말과 글의 주체성을 되찾는 일이 先行되어야 한다는 論理에서 한글 專用을 語文 政策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한글 전용을 바탕으로 漢文 敎育을 병행한다는 기본 방향은 建國 初期부터의 일관된 政策 方向으로서 이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歷史的 現實로 定着되어 가고 있다. 어문 정책에 대한 이와 같은 기본적 認識에 더하여 政策 決定에서 고려되어야 할 原則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1)未來 指向性의 原理:말과 글은 역사와 더불어 변천되는 것이므로 어문 정책은 새로운 世代를 염두에 두고 민족의 主體性을 提高하는 방향에서 펼쳐져야 할 것이다.
    (2)民主性의 原理:言語 文化의 大衆化는 歷史的 趨勢이다. 語文 政策은 그 過程에서 學界, 言論界, 敎育界 등 국민의 여론을 광범하게 收斂하여 國民的 合意에 도달되는 방향에서 수립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3)能率性의 原理:言語生活의 能率化의 言語 媒體의 機械化는 言語 文化의 大衆化와 더불어 오늘날 지배적인 역사적 추세이다. 언어 문화의 大衆化가 가능하려면 언어 생활의 能率性, 言語 媒體의 機械化가 가능하도록 配慮되어야 한다.
    (4)安定性의 原理:語文 政策의 기본 방향을 자주 바꿈으로서 국민의 言語生活에 不安定과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며 정책의 一貫性과 安定性이 확보되어야 한다.
    (5)均衡性의 原理:言語 政策은 極端論이 排除되어야 하며, 理論과 實踐, 理想과 現實, 進步와 保守 등 諸 要因의 균형적인 調和의 토대 위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어는 社會의 認識 形式이며 국민 정신 形成의 核心으로서 民族 最高의 文化財이다.(22)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이 소중한 文化財를 후대에 올바로 傳承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時代 狀況에 슬기롭게 副應할 수 있도록 主體的 歷史 意識과 未來 指向的 眼目에서 우리말과 글을 갈고 닦는 일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책임인 것이며, 이러한 共同 責任 意識의 바탕에서 우리나라의 語文 政策은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