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고 싶은 사라져 가는 우리말

金 周 榮 / 소 설 가

영어가 논리적이라는 평판을 듣게 되는 것은 주어가 분명하다는 데 있다고 한다. 비견해서 우리말에서는 주어가 불분명할 때가 많다. 그 대신 우리말은 곁말과 형용사가 세련되어 있어 맛갈스럽고 때깔스런 전통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오랜 생활 역사에서 얻거나 터득한 금언적(金言的) 요소가 말의 쓰임새에 골고루 배어 있어서 한마디 말에도 폐부를 찌르는 기능을 갖고 있다. 가령 싱겁다는 말을 <고드름 장아찌 같다>고 한다든지, 평생 동안을 고생이란 것을 모르고 부자집 자식으로 성장한 사람을 가리킬 때, <저 사람은 무거운 것이라곤 은수저밖에 들어본 것이 없다>로 표현한다든지, 여울이나 봇도랑에 고기가 많다는 것을 가리킬 때, <고기 많기가 못자리에 올챙이 끓 듯한다>로 비유한다든지, 제 분수를 모르고 콩팔칠팔 대중없이 지껄이거나 냅뜨는 사람을 <곁방년 코곤다>로 표현한다든지 하는 말들은 우리들의 생활 문화의 근거에서만 생겨나기 가능한 말들이다. 소귀에 경읽기란 말이 있지만 <두꺼비 낮짝에 물 끼얹기>란 생활 경험에서 나온 우리말도 있다. 힘없는 자의 비애를 표현하는 말로 <애는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죽을 지경>이란 말도 있다. 그처럼 우리가 좀더 성의 있게 국어사전만 들춰보아도 구태여 어려운 한자에서 빌어오지 않더라도 맛갈스럽고 아귀가 딱 들어맞는 순수한 우리말이 산재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필자가 <客主>라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쓰지 않고 있거나 훼손되거나 마모되었거나 걸맞지 않아서 버려진 말들을 찾아 헤매게 되면서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고 우리의 생활에 밀착되었던 말들이 홀대와 괄시를 받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말이란 약속된 기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말에 기호의 개념을 원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실수에 속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에는 한마디 한마디에 역사가 있고 오랜 생활 전통이 배어 있음으로 해서 말을 배우는 그 자체가 바로 역사를 배우는 것과 손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흥선 대원군이 섭정했던 시대 민간에 떠돌던 욕말로, 들어서 가장 꺼림적했던 것으로 <천좍을 할 눔>이란 욕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천주학을 할 놈>이란 뜻이겠는데, 그 한 마디의 욕말로 천주교에 대한 흥선 대원군의 탄압이 얼마나 철저하고 참혹했던가를 충분히 가늠하게 된다. 술을 마실 때 순배<巡盃>를 나이 많은 사람에게 먼저 돌리라는 뜻으로 <시구문 차례로 돌려라>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나이 많은 사람이 십중팔구 먼저 죽게 될 것이고 죽게 되면 그 상여는 필경 시구문(光熙門)을 거쳐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때 장안의 상여는 광희문과 서소문(西小門)을 통해서만 성외로 나가게 조치하고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우두커니 앉아서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을 보고 <자네 강화(江華) 도령인가>라고 빈정거려 반문한다. 그것은 바로 조선 시대 25대 왕인 철종(哲宗)이 즉위 전에 강화도에서 하는 일 없이 그날그날 노량으로 보내고 있던 시절의 원용이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것을 두고 하는 말로, <뜨겁기는 박태보(朴泰輔)가 살았을라구>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조선 시대 19대 왕인 숙종(肅宗)이 인현 왕후 민씨(仁顯 王后 閔氏)를 폐비(廢妃)시킬 제, 박태보가 이에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아서 불의 혹형(酷刑)을 받았던 일을 원용함이다. 굶주린 사람이 허기를 채울 일이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제, <병자년(丙子年) 까마귀 어물전 돌 듯한다>는 곁말을 쓰는데, 이 말은 고종(高宗) 13년에는 한재(旱災)로 기근이 들어서 금주령(禁酒令)을 내리는가 하면 흉작이 심했던 경기와 삼남(三南)지방에 내탕금(內帑金)을 일 만 냥씩이나 분급(分給)하기까지 했었다. 또한 그 해는 방죽이 모두 메말라서 건(乾)방죽이 된 것을 따서 건방진 사람을 두고 <병자년 방죽이다>라고 했었다. 이처럼 우리의 속담과 곁말에는 바로 우리 역사의 앙금이 배어 있는 것이다.
    성숙기에 있는 여성이 매달 정기적으로 겪게 되는 생리적 현상을 월경(月經)이라 한다. 그러나 요사이 와서는 월경보다는 멘스라는 서양말로 많이들 통용되고 있음을 본다. 경도(輕度), 월사(月事), 월후(月候), 월수(月水)같은 한자어가 많이 있지만 순수한 우리말도 여럿 있다. 그것이 <달거리>다. 이 말은 다달이 한 번씩 앓는 전염성 열병의 뜻도 함께 포함된다. 또는 달거리가 아닌, <몸짓>이나 <몸엣것>으로도 쓰거니와 몸짓이 있을 적에 샅에 차는 헝겊을 <개짐>이나 <귀삼접>, 혹은 <×가짐>이라고 부른다. 처녀에게 첫경험이 있을 적에는 <첫몸>이 있다고 한다. 몸짓을 줄여서 <몸>으로 쓴 것이다. <몸짓>이 있네요 하면 바로 멘스가 있다는 뜻이 된다. <배내>난 말이 있다. 명사로서 남의 가축을 길러서 다 자라거나 혹은 새끼를 낸 뒤에 원래의 임자와 나누어 가지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접두어로는 <배안에 있어서부터>의 뜻을 갖는다. 사람이 어른으로 성장해서까지 반편짓을 하거나 맺고 끓음이 아금받지 못할 때 우리는 배냇병신이라고 부른다. 이 배내란 말 한 가지가 빌미가 되어 만들어진 우리말만 해도 여러 가지다. 갓난아이가 태어나서 먹은 것도 없이 맨 처음 싸는 똥을 한자로 쓸 때는 태변(胎便), 태시(胎屎), 해분(蟹糞)이라고 쓴다지만 우리말로는 <배내똥>이라 한다. 갓난아이가 입는 깃저고리를 배냇저고리, 그리고 갓난아이의 몸에서 나는 시큼한 비랫내를 배냇내, 출생 후 아직 한번도 깎지 않은 머리를 배내털이나 배냇머리로 부른다. 갓난아이가 태어날 적에 머리에 묻은 탯물을 배냇물이라 하고 그 아이가 잠잘 때 혼자서 생긋생긋 웃거나 손짓발짓으로 발장고나 손장고를 치고 있을 땐 배냇짓이나 배내웃음이라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버르장머리 없이 굴거나 존장(尊長)을 알아보지 못하고 찍자를 부리거나 말버릇이 막된 것을 보면 <배냇물도 덜 마른 녀석이 버릇없이 군다>고 말한다. 혹은 <막된 것>이라고 핀잔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은 상하를 구별하지 못해서 어른과 얘를 할 때도 너나들이로 트고 지내기 일쑤다. 엄연히 공댓말을 써야 할 존장 앞에서도 곧잘 해라로 대답하기 거리낌이 없고, 그런 아이가 또한 제법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날라치면 성장해서도 어른에게 서슴없이 하겟말을 쓰게 되니,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말은 그런 아이에게 안성맞춤이다. 반상의 구별이 엄연했던 옛날에 내노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하여도 사람을 상종함에 신분이 낮아뵐지언정 문벌을 따지고 항렬을 따져서 마땅히 하겟말이나 해라로 대접할 자리가 아니면 언사에 조심하여 행동했었다. 말 한마디로 천냥의 빚을 갚는다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의 추억 가운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우리 시골 마을을 뒷산 숲 속에 숨어 있던 도수장(屠獸場)에서 소를 잡던 광경이다. 대개는 읍내에서 저자가 서던 전날 바지게를 진 푸주한들이 소를 몰고 도수장으로 향한다. 아이들에게 도살 장면을 보이기 꺼려하던 푸주한들과 호기심 덩어리가 된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쫓고 쫓기는 실랑이가 벌어지곤 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꽃기는 척하다가 도수장 근처의 갈밭 사이에 몸들을 숨기고 도살 장면을 훔쳐보기 마련이었다. 그 허우대가 껑충한 큰 짐승이 푸주한들의 도끼에 정수리를 맡고 쓰러지고 난 뒤 각기 뜯기고 피를 흘리는 장면을 긴장과 두려움의 시선으로 훔쳐보곤 했었다. 엄장이 큰 푸주한들은 능숙하고 날이난 솜씨로 그 큰 짐승을 삽시간에 해체시켜서 육고간(肉庫間)으로 나르곤 하였었다. 육고간으로 운반되면 그 땐 소가 아닌 쇠고기가 된다. 그리고 고기의 특질에 따라서 고유의 이름이 따르게 된다. 쇠고기를 저미어 양념해 구운 것을 불고기나 주물럭으로 부르고 있는데 실은 <너비아니>란 고유한 우리말이 있다. 간혹 어떤 음식점에 가면 그것을 바로 써서 너비아니로 적은 것을 볼 때도 있으나 그것이 오히려 낯설어 보이니 탈이다. 양념하지 않고 그냥 구워서 소금이나 참기름에 찍어 먹는 것을 두고 로스구이라 부르고들 있지만 그 역시 <방자고기>란 우리말이 있다. 소위 다리 아래 마디 뒤쪽에 붙은 고깃덩이를 <아롱사태>라 하고 줄여서 <사태고기>로 부르기도 하는데, 얼핏 외국말이 아닌가 할 정도로 보통 쓰기엔 매우 낯설다. 조선 시대 땐 소의 생식기를 뽑아 말려서 형구(形具)로 사용하기도 했었는데 그것을 이름해서 <쇠좇매>라 하였다. 너비아니, 방자고기, 아롱사태 같은 고유의 우리말이 분명 있는 데도 주물럭이니 로스구이니 하는 조어들이 식탁에서도 날뛰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가 못하다. 가령 어떤 음식점 문앞에 <냉방>이라 써서 게시해 두었다 하자, 그리고 같은 음식을 팔고 있는 그 앞집의 대문에는 <완전 냉방>이라 써 두었다 하자, 요사이 상식으로 보면 아무래도 그냥 냉방이라 써 붙인 집은 덜 시원할 것 같아서 완전 냉방이라고 써 둔 집으로 발길이 옮겨지게 된다. 완행 버스보다 빠른 것으로 직행 버스가 있는데 그냥 <직행>이라고 써 붙인 것이 성에 차지 않았던지 얼마 후에 보니까 <직통>이라고 쓴 버스가 있었다. 이 모두가 뭔가 믿지 못하는 그릇되고 뒤틀린 사람들의 심성에 편승된 말들의 장난일 뿐이다. 직통 버스라 해서 비행기(이 물건을 날틀이라는 우리말로 적으려 한 바 있는데, 이 말은 왠지 비행기라는 것으로 그대로 적거나 부르고 싶은 것인지)처럼 날아갈 것도 아니고 집 마당까지 데려다줄 것도 아닌데 직통이라야 성에 차는 것인지 정녕 모를 일 중의 하나다. 우리들이 뭘 믿지 못하고 서두르는 버릇은 우리가 쓰는 말씀에까지 미치게 되면서 이것 또한 오염이란 말을 써야 하리만치 악화되었다는 것은 큰일이다. <너비아니>나 <방자고기>라는 말은 아무리 되씹어 보아도 그것에서 어떤 거부감을 느낄 수가 없고 말로 써서 모순되는 측면도 찾아볼 수 없건만 <소금구이>나 <로스구이>같은 단도직입적인 어휘를 써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 필자가 구태여 우리말을 찾아서 쓰려 하고 그런 우리말을 또한 찾아다니는 행태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까지도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필자가 찾아낸 우리말을 어느 지방에서만 쓰여지고 있는 사투리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에서 쓴 우리말만 보더라도 사전을 들추어 보면 모두가 제가 앉아 있을 자리에 있는 표준어다. 정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렵지 않되 수고스러운 이 일에 몰두하는 것도 작가가 해야 여러 가지 일들 중의 한 가지라고 생각된다.